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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2화 (12/388)

◈ 5. 성장 (1)

늦은 밤의 체력단련실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시간 때문은 아니었다. 7월이 시작된 이후로 항상 그래 왔다. 입관 초기 수련생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불꽃은 대부분 꺼진 상태였다.

물론 그들 잘못은 아니었다.

웬만한 군인들조차 소화하기 힘든 트레이닝이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거기에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가 더해지니, 추가로 훈련을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주디스였다.

붉은 머리를 어깨까지 자른 소녀가 힘찬 기합과 함께 단련을 시작했다.

“후읍, 흐읍, 으읍, 흡!”

탄력이 있는 밴드를 활용한 하체 단련법.

철봉 양쪽에 무거운 원판을 잔뜩 달아 놓고 그것을 드는,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언뜻 보면 12살 소녀에게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운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주디스는 천재다.

크로노 검술관 교관들이 고르고 고른 대륙의 영재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능을, 육체를 지닌 자다.

그럼에도 자만하지 않고 매일 혹독한 추가 훈련을 이어 갔다.

실제로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밴드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의 힘을 사용해 저항감을 극도로 높인, 평범한 사람은 잡아당길 수조차 없는 물건.

소녀는 그것을 계속해서 잡아당겼다.

지치고 힘들어도 멈추지 않았다. 자극점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올라와도 참았다. 이때야말로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여기서 한 번을 더 하냐 못 하냐에 따라 근육의 질이 달라지니까.

주디스는 기어코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한 다음에야 밴드를 손에서 놓았다.

“흐아! 하아! 하아! 하아…….”

소녀는 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쯤이야 익숙했다.

그보다는 오늘도 한 발 나아갔다는 성취감이 주디스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행복은 만족감으로 바뀌었고, 만족감은 곧 안락함으로 바뀌었다. 하고자 하는 것을 달성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녀가 희미한 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웁, 우욱, 우웨에엑!”

옆에서 들려오는 역한 소리. 주디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듣기 싫은 소리여서가 아니었다.

구토의 주인공은 방금까지 고중량 스쿼트를 하고 있었고, 하체 단련을 하다 보면 구역감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주디스 역시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해 본 일이었다.

문제는 소리가 아닌 사람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보여 주는 정신력이었다.

그녀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아이른 파레이라…….”

주디스는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검술관에 처음 입관했을 때만 하더라도 쓰레기 같은 모습을 보여 줬던 녀석이다.

자신보다 세 살이나 많은 주제에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그런데도 아무런 문제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아왔던 쓰레기 귀족 새끼.

그렇기에 무시했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멱살을 잡게 될까 봐 근처로 가지도 않았다.

애초에 중간 평가 이후로는 볼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뒷배로 들어온 놈팽이가 살아남기에, 이곳은 꽤나 가혹한 환경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버텼지.’

오판이었다.

나태 공자는,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야말로 악착같이 버텼다.

남들보다 훨씬 떨어지는 몸 상태에도 아득바득 자율 훈련에 참여했고,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그렇게 열심히 해도 발전은 더뎠다. 애초에 검술관에 들어오기 전까지 쌓아 놓은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으니까.

그렇기에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따위 몸을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야?’

물론 입관 초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샌님’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던 몸에는 어느새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혀 있었고, 체력을 비롯한 전반적인 신체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결코 믿지 않았을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과 비교하면 모든 분야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아이른 파레이라다.

자신과 똑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녀석의 정신력 소모가 더 크다는 의미였다.

체력과 정신력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니니까.

체력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정신적으로도 더 여유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 녀석은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고 하루를 끝마치려는 순간까지 단련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주디스는 그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분했다. 화가 났다.

‘내가 나태 공자라고 소문까지 났던 녀석보다 의지가 약하다고?’

붉은 머리 소녀가 이를 악물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지만, 머리의 열기로 인해 마치 불꽃이 나풀거리는 것 같은 분위기가 퍼졌다.

주디스도 어렴풋이 깨닫기는 했다.

예전에 어떤 놈이었건, 지금의 저 녀석은 나태하지 않았다.

가끔은 존경의 감정이 들 정도로 아이른 파레이라의 정신력은 대단했다. 마치 강철 같은 정신력이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다.

아직 그러고 싶지 않다!

“흡!”

생각을 마친 그녀가 기합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태 공자 쪽으로 눈을 부라린 뒤, 다시금 단련을 이어 나갔다.

그날, 주디스는 아이른보다 더 오랜 시간 운동한 뒤에야 단련실을 빠져나왔다.

샤워를 간신히 마치고 잠에 빠져드는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 * *

“후우.”

주디스가 잠에 빠져든 것보다 조금 이른 시각. 고된 하루를 마무리한 아이른이 침대에 누웠다.

붉은 머리 소녀보다 먼저 단련실을 빠져나온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타인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정해진 과업을 완수하고, 정해진 시간에 휴식한다. 그거면 된다.

‘일리아도 그게 좋다고 했지.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행동하라고.’

맞는 말이다.

꿈속의 남자도 매일매일 똑같은 일정을 소화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그의 모습을 또 한 번 되새긴 아이른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주디스.’

12살짜리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아이였다. 지구력, 근력, 순발력, 유연성 등 전반적인 육체 능력이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그런 대단한 아이가 요즘 들어 자신을 자꾸 바라본다.

물론 아이른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눈빛의 의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어.’

그녀뿐만이 아니다.

주디스와 함께 최상위권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브랫 로이드도, 그보다는 못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는 상위권 아이들도.

그리고 다른 모든 수련생들도 이제 자신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무시와 비아냥, 조롱이 넘쳐났던 입관 초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해.’

평생을 손가락질만 받고 살아왔다.

뒤에서 들리는 험담과 괄시를 아이른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개선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럴 여력이 없었고, 나중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고, 평생 이렇게 살 운명이라고. 그런 자포자기의 심정이 15살까지 쭉 이어져 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알지도 못했던 방랑기사 브란 서머빌이 자신을 인정했다.

거베라 왕국의 고위 귀족 브랫 로이드가 자신을 달리 봤다.

마치 없는 사람 취급했던 주디스가 자신을 경계했다.

이 모든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만 생각하자.’

아이른이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확실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생처음 쏟아지는 여러 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즐기기엔, 소년의 마음의 문이 너무 좁았다.

그에 비교해 겁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태 공자는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왜 도와주냐고? 글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남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뒷말이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마. 내 신경도 쓸 필요 없고. 그럼 다시 뛰어 볼까?’

무슨 이유로 자신을 돕는지 물어봤을 때, 일리아 린제이가 한 대답이었다.

납득가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녀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다.

정의감에 불타거나 동정심이 많은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다.

잠깐씩 마주치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해 주다니,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

잠시 고민하던 아이른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이 역시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다.

게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벌써 1시간이나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난 몇 달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게다가 아이른의 경우에는 한 가지 효과가 더 있었다.

잠을 통해 발현되는 신비한 꿈.

이 덕분에 소년은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매일 새로운 의지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검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이 점점 강해지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다시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아이른은 동생이 선물해 준 검 목걸이를 매만지며 눈을 감았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

나태 공자는 평소와는 다른 꿈을 꾸었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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