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크로노 검술관 (1)
크로노 검술관.
국적과 성별, 신분을 막론하고 재능 있는 아이들만을 선별해서 가르치는, 여타 검술관들과는 격이 다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단체였다.
그곳을 무사히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아니 정식 수련생이 되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귀족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웬만한 왕립 아카데미 이상의 명성을 자랑하며.
검에 뜻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발을 들이고 싶은, 그런 곳.
하지만.
‘……그만큼 어렵지. 들어가는 것도, 버티는 것도.’
당연한 소리다. 대륙 각지의 영재 중에서도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들만이 크로노 검술관을 졸업한다.
경쟁에서 도태된 이들은 좌절감과 열등감을 품에 안은 채 쓸쓸하게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파레이라 남작은 고민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아이른이, 그 무한 경쟁의 장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인가.’
브란 서머빌의 말은 그를 춤추게 했다. 뛰어난 기사가 된 아들의 모습을 그리며 밤새 웃었던 것이 불과 어제다.
그러나 남작은 강요하지 않았다.
은근한 압박을 주지도 않았다.
아이른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겨우 방 밖으로 나온 아들이 다시금 꺾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담담한 말투로 의중을 물어봤을 뿐이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해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담담한 말투로.
하지만 평소보다 강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아이른 파레이라를 보며, 남작은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줬다.
평생 날 생각을 하지 않던 새가, 새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꽃샘추위마저 완전히 사라진 4월 말.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는 생에 처음으로 파레이라 영지 밖으로 나갔다.
크로노 검술관 수련생들의 집합 장소로 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도착한다고 끝은 아니었다.
방랑기사 브란 서머빌의 추천서를 받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련생으로서 시험을 치를 권리를 받은 것에 불과했다.
정식으로 검술관에 입관하기 위해서는 1년간 치러지는 훈련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의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한다.
이 사실을 떠올린 아이른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을 제외하면 평생을 누워 있었고, 앉아 있었다.
그런 주제에 높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른이 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지금의 기회를 삶의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이 묘한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지금의 자신은 나태하지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 덕분이 아닌, 순전히 신비로운 꿈의 작용에 의해서다.
즉, 이 알 수 없는 현상이 끝나 버리면 다시금 예전의 무기력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싶지 않아. 더는…… 주저앉아 있고 싶지 않아. 나를 위해서도,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어릴 적 사고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10년이나 자신을 응원해 준 가족들이다.
아이른은 그런 그들의 앞에 당당한 아들이, 오빠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생긴 지금,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멈출 수 없는 환경에 자신을 몰아넣어야 한다.
“후우.”
아이른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방에만 갇혀 있던 소년에게는 그 모든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용기를 내긴 했지만, 사실 지금이라도 마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
‘꿈속 사내의 검을 현실에서 재현하고 싶다’라는 강렬한 욕구가, 그러한 행동을 억제하고 있었다.
지난 한 달간 미친 사람처럼 검을 휘둘렀던 아이른이다.
그 덕에 처음 연무장에 들어섰을 때와 비교하면 자세도 훨씬 좋아지고, 힘도 더 붙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문의 연무장에서 혼자 검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나태 공자는 사내에게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의 검에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게 대단한 검술이건, 대단치 않은 검술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고의 환경이 크로노 검술관이라는 것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 꿈속의 남자는 뭐 하는 사람일까?’
소년은 사내에 대해 잘 몰랐다.
그가 왜 검을 수련했는지, 얼마나 오래 검을 수련했는지, 그 지독한 일생의 끝에 어떠한 성과를 얻었는지도.
자신의 잠재력을 낮게 평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낡은 검만 휘두르던 남자가 대단한 실력자일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건네준 의지와 노력.
그것이 아이른에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줬다.
그거면 충분했다.
생각을 마친 나태 공자가 슬며시 눈을 떴을 때였다.
“도착했습니다, 공자님.”
어느새 크로노 검술관에 도착한 마차.
본관은 아니었다. 허나 지부임이 무색할 정도로 웅장한 건물들이 창문 너머에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고작 수련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만 이만한 투자를 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곳일까?
그런 생각들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잊었다. 불필요한 생각이었으니까.
숨을 고른 아이른 파레이라가 마차에 내리며 마부에게 말했다.
“고마워. 이제 가 봐도 돼.”
“입구까지는 제가 모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 거였으면 가족들하고 함께 왔지. 이제 일개 수련생인데, 혼자서 행동하는 거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어? 걱정하지 말고 가 봐.”
“……알겠습니다. 부디 훌륭한 성과를 거두시길 바랍니다.”
공손히 대답한 마부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떠나갔다.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확연히 달라진 대공자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탓이었다.
물론 아이른은 이를 몰랐다. 잠시 마차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그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뱉었다.
그렇게 의지를 다진 그가 검술관의 입구로 향했다.
앞에는 한발 먼저 도착한 수련생 일행이 대기하고 있었다.
“커흠. 이분은 거베라 왕국의 명문, 로이드 백작가의 소영주 님이신 브랫 로이드 공자님이다. 명망 높은 기사인 콜 스웨이디 경의 추천을 받았지.”
“그러시군요! 로이드 가의 고귀한 혈통을 맞이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콜 스웨이디 경의 위명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지요! 이거 미래의 졸업생을 보는 기분입니다!”
“흠, 흠!”
로이드 백작가는 아이른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거베라 왕국의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고위 귀족 특유의 오만함이 절로 묻어났다.
문지기들이 쩔쩔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검술관 내부의 약도를 건네주며 브랫 로이드를 정중히 안으로 모셨다.
이윽고 거들먹거리던 로이드 가문의 하인들마저 떠나고, 아이른 파레이라의 차례가 왔다.
꾸벅 인사를 한 그가 말했다.
“파레이라 남작 가문의 아이른 파레이라입니다. 방랑기사 브란 서머빌 경의 추천서를 받고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도, 가문도 내세우지 않는 평범한 소개였다.
사실 아이른도 자랑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파레이라 가문은 5등작 중 가장 낮은 남작이었지만, 교역량이 많은 덕에 꽤나 부유한 편이었다.
물론 강대국의 고위 가문인 로이드 가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평민들조차 어떻게든 자랑할 거리를 찾아 강조하려는 것을 생각하면 사뭇 다른 태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 아버지의 능력일 뿐.
‘나는 귀족이면서도 1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으름뱅이일 뿐이지.’
남에게 으스댈 자격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크로노 검술관에서는 신분, 나이, 성별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했으니, 사족을 붙일 이유 또한 없었다.
말을 끝낸 아이른은 담담히 기다렸고, 문지기들은 또다시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아, 파레이라 가문의 도련님이셨군요!”
“귀한 분을 봬서 영광입니다. 브란 서머빌 경 또한 알고 있죠. 수십 년 전부터 마인 토벌에 앞장서셨던 훌륭한 분 아닙니까! 그런 분의 추천을 받았으니, 시험에 붙는 건 당연한 결과겠군요!”
“결과가 어찌 됐건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이것이 내부 약도고, 여기 표시된 곳이 강당입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문지기들에게 아이른 역시 고개를 숙였다.
문 사이로 사라지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문지기 둘이 입을 열었다.
“브란 서머빌, 그 영감탱이가 웬일이야? 추천서를 다 쓰고.”
“그러게. 그런데 저 녀석, 나태 공자 아니야?”
“나태 공자가 뭔데?”
“몰라? 파레이라 가의 게으름뱅이.”
“몰라. 그런데 몸을 보니 알 거 같기는 해.”
“하긴, 너무 허약해 보이기는 하지. 도대체 어떻게 그 꼬장꼬장한 늙은이의 눈에 든 거지?”
턱수염을 기른 문지기가 의문을 토했다. 그러자 눈썹에 흉터가 있는 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벌써 궁금해할 필요 있나. 곧 알게 될 텐데.”
“그건 그렇지. 아, 또 온다.”
“이제 거의 다 온 거 같네. 빨리빨리들 와서 좋군.”
또 하나의 수련생이 오는 순간, 형형하게 빛나던 그들의 안광이 줄어들었다.
어느새 소시민적인 모습으로 돌아간 둘이 공손하게 수련생을 응대했다.
* * *
집합 장소인 강당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검술관의 부지가 넓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도가 꽤 자세했기에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을 구경하던 아이른 파레이라는 어느새 강당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이제껏 괜찮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커다란 압박감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침착하자, 침착해.’
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수련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노력해 온 이들이겠지.
몇몇은 어릴 때부터 영재, 천재 소리를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자신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러 온 게 아니야.’
소년은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경쟁자는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저 최선을 다하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굳센 다짐을 한 아이른이 힘차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강당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
이어서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소년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왜 모두 나를 쳐다보는 거지?
아이른이 속으로 생각했다.
단순히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기에 보이는 반응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를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다행히 직접 말을 건네오는 이들까지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이른은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 외의 사람과 어울렸던 경험이 지극히 적었던 그에게, 지금 상황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물론 침묵 속에 수백 쌍의 눈이 자신을 훑고 있는 지금도 딱히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다행인 점은, 그러한 분위기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는 거다.
저벅, 저벅.
“헙!”
“저 사람은…….”
“뭐지? 문지기가 왜…….”
아무도 없던 단상 위를 무거운 걸음걸이로 올라서는 중년 남성.
그의 얼굴이 낯선 수련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눈썹에 난 흉터는 잊기에는 꽤 강렬했고, 애초에 그를 만난 것도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지기가 아니라…….’
‘교관이었어?’
설마설마하는 수련생 아이들의 속마음에 대답하듯, 멈춰선 흉터 사내가 입을 열었다.
“반갑다. 수련생들. 아니, 예비 수련생들.”
“…….”
“나는 오늘부터 너희들을 가르치고 평가할 교관, 아메드라고 한다.”
화악!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교관 아메드의 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단순한 위엄, 분위기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타인에게 압박을 가하는 힘, 그것이 강당에 모여 있는 예비 수련생들 사이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