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지켜보는 사람들 (2)
그리핀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설의 동물이다.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강철처럼 질긴 가죽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괴수라는 말이다.
하지만 키릴 파레이라가 타고 있는 것은 분명 그리핀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연무장 내의 사람들, 특히 신참 경비병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요술사 키릴 파레이라 님의 능력이구나!’
자신이 빚은 창조물을 움직이게 하는, 더 나아가 살아 있는 것처럼 기운을 불어넣는 것.
그야말로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수도, 배울 수도 없다.
그런 특별한 힘을 무려 10살 때 각성하고, 11살인 지금은 왕궁에서 인정까지 받았을 정도니 키릴 파레이라의 위명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너.”
“흡!”
그런 키릴 파레이라가 그리핀에서 폴짝 뛰어내려 한 명을 지목했다.
작은 신장에 귀여운 외모의 소녀가 살짝 턱을 치켜들고 삿대질을 한다.
그에 따라 찰랑거리는 금발에 햇볕이 내리쬐어 귀엽고 화사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목받은 신참 경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삿대질은 두 번 더 이어졌다.
“너, 그리고 너.”
“헙!”
“네, 넵! 공녀님!”
“너희, 근무 중 아니야? 왜 여기서 알짱거리고 있는 거야?”
“그, 그러니까, 근무는 방금, 성실하게 마치고, 그러니까 오후 근무자와 이상 없이 근무 교대를 하고 온 참입니다! 무, 문제 될 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근무 중에 사담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임 경비병 둘이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얘기하는 건데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키릴 파레이라 공녀는 파레이라 영지의 자랑이다.
왕국에 불세출의 천재가 나타나면 왕국민 모두가 기뻐하고 어깨가 으쓱하듯, 그들 역시 키릴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의 이야기.
영지의 유명인이 아닌, 가까운 윗사람으로서의 키릴은 나이답지 않게 무섭고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카랑카랑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불만에 찬 듯 찡그려진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거야? 내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긴. 그리고 지금은 뭔데? 신성한 연무장에서 단련하긴커녕 또 쑥덕쑥덕 떠들고 있잖아? 모범을 보여야 할 베테랑 경비들이 그래도 되는 거야?”
“그, 그건…….”
“그쪽도 그래! 고용된 지도 얼마 안 된 주제에 벌써 안 좋은 물이 들어서야 되겠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트집, 그리고 갈굼!
그것이 영내 병사들이 키릴을 존경하면서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그녀가 아무 때나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만큼 다소 오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품 좋은 파레이라 남작의 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기분은 무척 좋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계속해서 경비 셋을 몰아붙이려는 순간이었다.
“키릴.”
“…….”
“후욱, 훅…… 무슨 일이야?”
후들거리는 다리와 무거운 검을 이끌고 가까이 다가온 아이른 파레이라, 그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키릴에게 말을 걸었다.
“…….”
키릴은 잠시간 경비들을 노려보다 이내 대공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말을 참을 수는 없었다. 그게 그녀의 성격이었다.
키릴이 더욱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였다.
“당장 그만둬.”
“……뭘.”
“뭐겠어? 이 바보 같은 짓, 그만두라고.”
“…….”
아이른은 말없이 자신의 동생을 쳐다봤다.
매서운 표정에 뜨거운 기세.
자신보다 4살이나 어린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아마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충돌할 일조차 벌어지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아직 몸의 근질거림이 가시지 않았다.
아이른은 휙 신형을 돌린 뒤, 자신이 할 일을 이어 갔다.
“이, 이……!”
그러자 키릴의 두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설마 무시당할 줄은 몰랐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녀.
허나 그것도 잠시, 이내 불꽃이 터지듯 뜨거운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검술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그 나이까지 내내 잠만 자 놓고, 갑자기 막 휘두른다고 해서 뭐가 나아질 거 같아?”
“봐봐! 형편없잖아! 저기 신참 경비가 훨씬, 훨씬 나은 건 알고 있어?”
“설마, 2주 전에 들었던 그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하, 그런 거라면 진짜 바보 같다는 말도 부족…….”
“키릴.”
연무장 모두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폭언을 뚫고, 맑고 고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오히려 작은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이목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키릴 또한 입을 꾹 다물고 뒤편을 향해 목을 삐걱 돌렸다.
파레이라 남작의 둘째 부인이자 자신의 어머니.
아멜 파레이라.
그녀를 확인한 키릴 파레이라의 얼굴에 낭패의 감정이 스쳤다.
“키릴. 오빠 방해하지 말고 이리 오렴.”
“…….”
“알았지?”
“하지만…….”
“어서.”
아멜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따사로운 웃음으로 딸을 대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 속에는 항거하기 어려운 힘이 담겨 있었다. 그 사나운 키릴조차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결국, 그녀는 제압당한 야생 망아지 같은 꼴이 되어 터벅터벅 어머니 쪽으로 향했다.
“그럼, 모두 고생하세요.”
“……예!”
“넵!”
“아이른도 힘내려무나. 너무 무리하진 말고.”
“……알겠어요.”
아이른 파레이라를 포함한 모두가 부인의 말에 대답했다.
아멜은 예의 미소를 남긴 채 키릴과 함께 돌아갔다.
그녀가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동안 자기 일을 하지 못했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지킬 뿐.
휘익!
휘이익!
그 사이에서 오로지 대공자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직 베기를 연습할 따름이었다.
* * *
한밤이라고 하기는 다소 이른 저녁.
아이른 파레이라는 일찍 잠에 빠져들었다.
도피하듯 억지로 청한 잠이 아니었다.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탓에 어쩔 수 없이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잠귀가 밝은 평소와는 다르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수면에 빠진 상태.
그때,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키릴 파레이라가 보따리 하나를 품에 안고 살금살금 그의 방으로 접근했다.
“공자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키릴이 찔끔 놀라 돌아봤다.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른의 전속 시종이었다.
사나운 표정을 지은 그녀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중에 오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볼 일이 있어.”
“공자님께서 깨어나신 뒤에 오셔도 충분한 일이 아닙니까?”
“감히 나에게 말대꾸를 하는 거야?”
화악, 키릴의 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표정,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따위가 아니었다.
요술사의 신비로운 힘은 실체를 가지고 시종의 전신을 압박했다.
‘무슨…….’
시종의 이마에서 굵은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딸보다도 어린 소녀일진대, 중압감을 버텨 낼 수 없었다.
그는 메두사의 눈을 직시한 듯 석상이 되어 굳어 버렸다.
“흥. 별것도 아닌 게.”
“…….”
“혹시나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 어긴다면…… 알지?”
은근한,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협박을 던지고 공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키릴 파레이라.
시종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이른 새벽.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일찍 잔 걸 고려해도 그리 긴 수면은 아니었다. 어제가 아닌 평소와 비교해도 훨씬 더 짧은 시간.
그런데도 몸이 상쾌했다. 매일 느껴지던 근육통도 비교적 적었다.
아이른은 의아함을 느끼다가, 귓가에 살며시 들려오는 멜로디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아아- 아아아아-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음성.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정교한 형태로 가공된 종이 인형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시골 농부였다면 귀신에게 홀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지만, 아이른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종이 인형의 옆에 놓인 종이를 집어 들었다.
[To. 오라버니
- 낮에 한 말은 미안했어. 오라버니가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무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걱정돼서…… 말을 하다 보니 뜻이 제대로 안 전달된 것 같아. 엄마한테도 혼났어. 혼날 만했고.
…… (중략) ……
아무튼, 그런 쓰레기 녀석의 말 때문에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휴식에 도움이 되는 인형을 놓고 갈 테니, 도움이 되기를 바랄게.
그럼 잘 자.
PS - 엄마한텐 내가 잘 때 온 거 비밀로 해.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거든. 방해하러 가는 거 아닌데……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깔끔한 외모답지 않게 삐뚤빼뚤한 글씨체.
여동생의 편지를 읽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 고마운 동생이다.
항상 우울했던 자신의 삶 속에 몇 안 되는 웃음을 건네준, 소중한 동생.
‘이렇게 못난 오빠인데도…….’
씁쓸한 표정을 지은 아이른이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옆에 놓여 있는 다른 메모를 손에 들었다.
[키릴이 귀찮게 굴면 말하렴. 그전까진 모른 척할게. -사랑하는 엄마가-]
소중한 거론 어머니 역시 키릴 못지않았다.
비록 친모는 아니지만, 아멜은 평생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 줬다.
한마디 말보다 더욱 가치 있는 따스한 웃음으로, 포옹으로.
그 덕분이었다. 언제까지고 닫혀 있을 뻔한 아이른의 마음은 가족에게만큼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꿈의 영향일까. 아니면 며칠간 격하게 몸을 움직이며 좁았던 시야가 넓어진 덕분일까.
아주 조그맣게만 열려 있던 마음의 창이, 조금 더 넓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공자님.”
이런저런 감상에 빠져 있는데,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른은 낮게 대답했고, 시종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요깃거리를 가져왔다.
나태 공자는 고개를 저었다.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시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식을 거르면 걸렀지, 편식하지는 않는 대공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은, 가족과 함께 식사할게.”
“…….”
“시간이 되면 불러 줘. 준비하고 있을 테니.”
“……예, 예! 그럼, 영주님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까스로 대답한 시종이 조심스레 문을 나섰다.
그리고 점차 빠른 걸음으로, 나중에는 달리듯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얼굴에는 며칠간 보지 못했던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공자님이…… 달라지셨다!’
단순히 수면 주기가 바뀜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검술 수련을 말함도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마음가짐의 변화.
얼어붙어 있던 소주인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녹은 것을 확인했기에, 시종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은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늘 음식은 특별히 신경 써라.”
“예, 영주님!”
하룬 파레이라 남작이 무겁게 명령했다.
근엄한 얼굴이지만, 한쪽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무뚝뚝한 말투와 거친 외모와는 달리 성격이 무척 섬세한 그였기에, 긴 세월 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들의 변화가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아멜도 마찬가지였고, 여동생 키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라버니, 이거 먹어!”
“응.”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먹어!”
포크를 꼭 쥔 키릴 파레이라가 아이른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줬다. 키가 작은 탓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채였다.
그 모습을 본 아멜이 점잖게 타일렀고, 아이른은 슬며시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키릴.”
“…….”
“…….”
“…….”
“항상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는 것도 없이 누워만 있는 저를 이렇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욱 놀랍고 기쁜 아들의 한마디.
이를 들은 아멜이 따사로운 웃음으로 아이른을 반겨 줬다.
키릴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파레이라 남작 역시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감정이라 해도, 직접 말로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 이 순간, 가족들은 깨달았다.
오랜 시간 주저앉아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함을 말이다.
“……나도 사랑한다, 아들아.”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런 말은 할 필요 없다. 식사나 마저 하자.”
남작의 근엄한 말에 다시금 식사가 이어졌다.
말 한마디 없이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이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매우.
10년 만에 찾아온 4인 가족의 식사. 10년 만에 찾아온 4인 가족의 웃음.
평범하기에 더욱 소중한 이때를, 모두가 얼마나 고대해 왔던가.
잠시 후, 정적을 뚫고 하룬 파레이라 남작의 질문이 흘러나왔다.
“아들아.”
“예, 아버지.”
“최근 검술에 매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늦게나마 몸을 단련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만, 무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구나.”
“…….”
아이른이 움직임을 멈췄다.
남작은 아닌 척,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염려의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무리한 시도를 하다 보면 쉽게 지치거나, 혹은 탈이 생길 수도 있다. 내 믿음직한 기사를 붙여 줄 테니, 그때까지는 쉬엄쉬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대공자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남작도, 키릴도, 심지어 평정심이 뛰어난 아멜 부인까지도.
아이른이 여태껏 이렇게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전혀 무리하고 있지 않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힘이 있었다.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꿈속의 사내가 했던 수련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
아이른 파레이라는 식사를 이어 갔고, 다른 이들도 더는 그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평생 웅크리고 있던 소년이 처음으로 내보인 자신감이다.
이를 억지로 꺾을 수는 없었다.
속에서 걱정이 들끓고 있더라도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힘들 텐데.’
‘혹시라도 중간에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해.’
‘바보 오빠, 무리하는 거 다 보이는데 거짓말이나 하고.’
가족들은 아이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고, 지금의 변화를 기꺼워하긴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큰 무언가를 바라기에는, 지금까지 대공자가 보여 왔던 모습이 별거 없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파레이라 일가의 생각은 하나씩 빗나갔다.
아이른은 도중에 포기하지도 않았고.
수련 강도를 조절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시간을 늘리는 모습을 보여 주변의 우려를 샀다.
그에 따라 키릴 파레이라의 신경은 더욱 곤두섰다. 병사들이 앓는 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열흘 후, 파레이라 영지에 방문한 방랑기사는 달랐다.
그는 아이른 파레이라의 과거와 상관없이, 현재의 모습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