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화 (3/388)

◈ 1. 나태 공자, 검을 들다 (2)

“뭐지? 공자님이 이 시간에?”

“어떻게 된 일이래?”

“크흠, 흠!”

직급 높은 시종의 기침에 영주관의 하녀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셨습니까, 공자님’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잠깐의 침묵. 하지만 그 침묵은 곧이어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게으르기로 소문난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가 건물 밖으로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도대체 어디 가시는 거지?”

“당연히 남작님이 부르셔서, 거기로 가는 건 줄 알았는데…….”

“건물 밖? 설마 산책이라도?”

산책. 남들이라면 그리 놀랄 것 없는 행위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3월이지만 지금은 한낮.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거닐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라도 들 만하니까.

그러나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아이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녀들은 그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이나 이야기를 꽃피웠다.

“충성!”

“그래요. 혹시 지금 연무장 상황 어떻소?”

“예? 그게 무슨…….”

“병사들이나 기사들 훈련…… 아니, 그러니까 공자님께서 검술 수련을 할 만한 공간이 있냐는 뜻이오.”

“……오전 정규 훈련 시간이 끝나서 공간이야 충분합니다만.”

대답하는 연무장 관리인이 침을 꿀꺽 삼키며 시종의 뒤를 쳐다봤다.

새하얗고 고운 피부, 적당히 큰 신장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가녀린 체구.

그가 아는 대공자가 맞다.

하지만 관리인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설마, 아이른 도련님이 연무장을 사용하려는 건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종의 말이 확정을 냈다.

“그래, 나도 알고 찾아오긴 했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흠흠. 자, 들어가시죠, 공자님.”

아이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시종의 안내에 따라 연무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은 그 모습을 당혹스럽게 쳐다봤고, 이내 그의 주변으로 동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아?”

“볼이라도 꼬집어 볼…… 아야! 내 볼 말고 네 볼 꼬집어!”

“꿈은 아닌 것 같네. 그런데 진짜 뭐지. 어떻게 나태 공…… 아이른 도련님이 여기까지?”

“뭐, 그냥 둘러보러 온 거 아닐까?”

“그렇지. 설마 검술을 수련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개인 훈련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 각자 추측을 했다.

그들 중 아이른이 수련을 할 거로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태 공자는 무기 진열대로 향했다.

“어어?”

“진짜냐…….”

웅성거리는 소리.

모여드는 시선.

소문을 듣고 점차 모여드는 병사들, 그리고 여유가 되는 영주관 내 고용인들.

아이른은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자꾸만 충동질하는 물건이 확대되듯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검에 조예가 깊은 병사 하나를 부를까요?”

“…….”

“목검이라고 다 같은 목검이 아닙니다. 형태, 무게, 길이가 천차만별이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 또한 검에는 문외한이라 공자님께 알맞은 목검을 추천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아니, 괜찮아.”

평소보다 훨씬 또렷한 음성에 시종이 멈칫했다.

그리고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시종장의 바로 아래까지 올라간 그의 눈치가 말했다.

지금의 아이른은 평소와 다르다고. 그리고 윗사람의 심경에 변화가 있을 때는, 그저 조용히 있는 것이 답이다.

그런 시종의 판단 덕분에 아이른은 집중할 수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꿈결을 좇는 듯, 허공을 더듬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그가 천천히 검을 집어 들었다.

‘으음…….’

시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특이한 검은 아니다. 그야말로 표준에 가까운 형태.

진검이 아니기에 위험할 일도 없다.

그러나 크기가 컸다.

비실비실한 대공자가 감당하기에는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로.

“오오, 저걸?”

“꽤 힘들 텐데. 다 큰 성인이 아니라면…….”

구경하는 병사들이 작게 수군거렸다.

물론 아이른이 집어 든 검이 중검사가 쓸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검을 처음 휘두르는, 아니 잡는 것조차 처음인 그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무게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본자세를 취한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마에 벌써 땀이 맺혔다.

휘우웅!

목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흡!”

“으음.”

그리고 억눌린 웃음소리, 그리고 안타까운 신음이 뒤를 따라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커다란 검을 집어 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있어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뒤에 보인 검격이 형편없기 그지없었으니, 실망과 탄식, 조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검 한번 안 휘둘러 본 왕국 제일의 게으름뱅이가 잘할 리가 없지.’

‘처음 자세는 봐줄 만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기대한 내가 바보 같다.’

‘혹시, 저번에 가이른 소영주에게 무시를 당해서 홧김에 온 건가? 연무장에?’

‘그런 거면 글렀다. 얼마 안 가서 포기하고 침대로 기어들어 가겠구먼.’

‘그냥 하던 일이나 마저 하러 가야겠다.’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어 갔다.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검에 휘둘리는 아이른의 모습은 그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검을 들어 올린 기본자세가 그럴듯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들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곁에 서 있던 시종에게까지 느껴졌다.

그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저 새끼들이!’

물론 그도 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나태 공자’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를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귀족으로서 존경받을 수 없을 정도로 게으른 시간을 보내 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이 저런 반응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시종이 살짝 이를 갈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미소로 아이른에게 말했다.

“공자님, 검술은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기예입니다. 혼자서 해나가기엔 힘든 점이 많죠.”

“…….”

“훌륭한 검술 스승을 구해 볼 테니, 수련은 내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고마워.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

아이른이 재차 검을 들었다.

이제는 휘드르기 전부터 힘겨워 보였다. 후들후들, 검을 든 팔이 떨리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상태 그대로 아이른이 말했다.

“딱히 검술을 잘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니까.”

“…….”

이유를 알 수 없는 대공자의 말에 시종이 입을 다물었다.

작은 주인이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고 판단해 말을 아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이른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그저 꿈 때문에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

‘그리고…… 이미 꿈속 남자의 기억이 있으니까.’

꿈속의 사내가 대단한 검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온전치 않은 기억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입은 옷은 남루했고, 그가 있는 곳도 초라했으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건 상관없었다.

아이른의 목적은 그저 몸과 마음의 간질거림을 없애는 것이었다.

후웅!

후우웅!

후우웅!

한 번, 열 번, 스무 번.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에 따라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이상했다. 움직이는 건 팔인데 팔이 아닌 다른 부위도 힘이 들었다.

이렇게 몸이 지쳤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해.’

그랬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아이른은 항상 아팠다. 몸뚱이 겉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속이, 가슴 속이 묵직하게 아팠었다.

허나 꿈속 사내의 검을 좇고 있는 지금은, 그런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휘둘렀다.

계속해서 휘둘렀다.

휙!

한 번.

휘익!

열 번.

휘이익!

또다시 스무 번, 그리고 백 번.

그렇게 무아지경에 빠져, 비틀거리면서도 목검을 내지르고 있을 때였다.

커다란 목소리가 아이른의 귓가를 뚫고 들려왔다.

“공자님! 아이른 도련님!”

“……어?”

바로 자신을 연무장으로 안내해 준 시종이었다.

그가 걱정돼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이었다.

“공자님! 이제 그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만하시죠!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아이른이 의문을 표했다.

눈앞의 사람은 평소 자신에게 강한 어조를 쓰지 않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 한 걸음을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이후 격렬한 통증이, 호수에 동심원을 그리듯 넓게 퍼져 나갔다.

“으윽!”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위를 보십시오! 벌써 어둡습니다!”

“……정말이네?”

아이른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한밤은 아니어도 보랏빛에 가까운, 노을이 다 진 시간인 것이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가 시종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오래됐으면 볼일 보러 가지 그랬어. 아니면 더 일찍 부르든가.”

“제가 어찌 감히 공자님을 두고 다른 곳을 가겠습니까! 게다가 부른 건 한참 전부터 불렀습니다!”

“그래? 음, 으윽…….”

목검에 의지해 일어나려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시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오만상을 쓴 그의 표정에서 미루어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종이 호들갑을 떨었다.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하녀들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할 테니, 씻고 푹 쉬시죠. 치료사도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아니야, 치료사는 무슨…….”

“아이고, 그러다가 탈이 나시면 공자님도, 저도 큰일입니다!”

시종의 말을 들은 아이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상하긴 하다.

자신이 매일같이 연무장에서 구른 병사도 아니고, 이런 근육통에 이렇게 의연할 수 있다니 말이다.

아무래도 꿈의 영향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오늘 자신이 한 행동은, 꿈속의 사내가 해 왔던 것에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하찮은 것이었으니까.

“공자님, 내일은 이렇게 무리하지 않으실 거죠?”

“으음.”

“약속하시죠. 공자님께서 검을 든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지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건 절대 좋지 않습니다. 휴식도 수련의 일환이라고 유명한 기사가 그랬답니다.”

“알았어. 아마 앞으로는 더 할 것 같지도 않아.”

무기 진열대에 목검을 갖다 놓은 아이른이 부축을 받으며 말했다.

시종은 의심스럽게 쳐다보지만, 이 또한 진심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자신은 검술을 배우는 것에 뜻이 없었다.

그저 도저히 가만히 있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움직였을 뿐.

‘내일부턴 다시 누워 있는 생활의 반복이겠지.’

그러한 생각은 목욕을 끝내고, 식사를 마치고, 밤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더욱 심해졌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일 때보다 더한 격통이 몸 이곳저곳을 찔러댔던 것이다.

‘미친 짓을 했구나. 꿈에 취해서 완전히 미친 짓을 했어.’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이대로는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고통보다 큰 피로는 그를 잠의 세계로 이끌었고, 그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자신을 괴롭혔던 사내의 꿈을.

“…….”

그렇기에, 아이른 파레이라는 또다시 연무장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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