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화 (2/388)

◈ 1. 나태 공자, 검을 들다 (1)

헤일 왕국 남부에 위치한 파레이라 영지는 교역으로 유명하다. 주변 두 왕국과 근접하여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유명한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파레이라 남작의 자제들이다.

5년 넘게 문지기를 담당해 온 베테랑 경비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키릴 공녀님 말이냐? 대단하지! 대단하기 그지없지! 나이가 이제 겨우 열한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정식으로 요술사의 칭호를 받았다니까?”

“그, 그렇군요! 설마 왕가에서 직접 임명받은 건가요?”

“그렇다니까! 너도 알지? 요술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선임 경비병의 질문에 신참이 어수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죠! 그 대단한 마법사 나리들보다도 더 보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마탑에 가면 무더기로 있는 마법사랑은 비교도 할 수 없지! 그런데 벌써 요술사로 각성을 하셨으니, 파레이라 영지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이지 않겠어?”

파레이라 남작의 딸, 키릴 파레이라에 대해 말하는 선임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고, 평생을 가문에 충성했다.

파레이라의 자랑은 그의 자랑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껏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커다란 코의 경비가 산통을 깨트렸다.

“헹, 그럼 뭐해. 공녀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장자는 공자님이잖아요.”

“…….”

“그 공자님이 침상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고 있는데, 탄탄대로는 무슨 탄탄대로. 주변의 하이에나 같은 놈들에게 먹히지나 않으면 다행…….”

“이 자식! 너 입조심해!”

지금껏 공녀의 찬양을 늘어놓던 최고참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큰 코의 병사는 구시렁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이내 격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이 새끼가 고참이 하지 말라는 데도 계속해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아니,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인데 말도 못 합니까? 이 신참 녀석, 타지에서 와서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래도 알 건 알아야 하지 않겠습…….”

“그래도 이 녀석이…….”

자리에 멈춰선 두 경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신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둘 사이에서 생각했다.

‘아니, 나도 그 정도는 아는데…….’

그렇다.

열한 살의 요술사 키릴 파레이라가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건 맞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

그가 바로 주인공이었다.

물론 좋은 뜻은 아니었다.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뒤에는 항상 조롱과 비웃음이 따라붙었다.

15살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종일 잠만 자는 그를 많은 이들이 무시했다.

‘저번 달에는 이웃 영지의 공자님이 노골적으로 망신을 줬는데, 아무 대꾸도 안 했다고 했던가…….’

나름 소문에 민감한 신참에게 있어서 이 정도 정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아이른 파레이라가 나태 공자가 된 이유까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아마 어렸을 적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이었나…… 그랬을 거다.

‘하긴, 어렸을 때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보면 충격이 클 만도 하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높은 톤의, 사람의 정신을 바짝 집중시키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헙!”

“허억!”

눈이 벌게진 채로 말싸움하던 두 병사가 얼음이 됐다.

가까스로 눈을 돌린 곳에 서 있는 사람은 키릴 파레이라, 그리고 그의 어머니이자 둘째 부인인 아멜 파레이라였다.

둘의 푸른 눈동자가 병사들에게 꽂혔다. 셋은 부리나케 달려와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근무 중에 누가 그렇게 소란 피우라고 했어?”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을 왜 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앞으로 안 그러면 끝이야? 지금 한 잘못은 어떻게 할 건데?”

“그, 그건…….”

병사를 질책하는 게 익숙한 듯, 표독하게 쏘아붙이는 키릴 파레이라.

그런 그녀를 아멜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렸다.

“그만하렴, 키릴.”

“하지만, 저 녀석들…….”

“이만하면 됐다. 이분들도 충분히 잘못을 알았을 거야. 그렇죠?”

“네, 네! 물론입니다!”

“좋아요. 어떤 얘기를 하셨는진 모르지만, 사담보단 근무에 더 집중해 주세요.”

온화하게 웃는 가운데, 말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린 최고참 경비가 다시 한번 크게 대답했고, 공녀와 남작 부인은 정원을 향해 사라졌다.

그 모습을 긴장하려 지켜보던 신참이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앞으로 잔뜩 긴장하고 근무해야겠다.’

사나운 공녀도, 온화한 둘째 부인도 만만한 느낌이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 * *

그 시각, 파레이라 가문의 장자인 아이른 파레이라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4살 때 어머니의 사고를 목격한 이후 침상을 떠나는 일이 드물었으니까.

남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아침에도 자고, 한창 생업에 힘쓰는 낮에도 잤다.

남들이 자는 시간?

물론 잔다.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자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자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덜 괴로웠으니까.

그가 움직이는 때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극히 적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아이른 파레이라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의 아이른은 꿈을 거의 꾸지 않았다. 꾸더라도 따스한 물속에 잠겨 있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느낌만 반복해서 경험할 뿐이었다.

하지만 요 며칠간 꾼 꿈은, 그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검술 수련이라니…….’

베고, 휘두르고, 찌르고.

무거운 철검을 든 채, 쉬지 않고 고행을 이어 가는 한 사내의 기억이, 잠을 자는 내내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제삼자를 보는 느낌이 아니었다.

꿈을 꾸는 동안 아이른은 아이른이 아니었다. 소년은 중년의 남자가 되었고, 검을 휘둘렀다.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아이른이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고통에서 도망가기 위해 침대에 붙어 있던 건데, 꿈마저 자신을 힘들게 하다니.

‘도대체 뭘까? 이 꿈은.’

머리를 굴려 봐도 모르겠다.

사내의 정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꿈이어서 그런지 기억이 온전치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문제였다.

지극히 평범한 마당에서, 온종일 검만 휘두르는 사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

헌데, 더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포근한 이불에 뒤덮여 누워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앉았다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열 번.

운동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몸인지라 벌써 숨이 가빠 왔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움직인 셈이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근질근질.

몸의 구석구석이, 근육 한 올 한 올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움직이고 싶어 했다.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싶어 했다.

꿈속에서 느꼈던 고통은 사라지고, 수련 후의 보람만이 남아 아이른의 몸이 움직이도록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후우.”

앉았다 일어서기를 끝낸 아이른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하지만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두근두근, 세차게 몸을 울렸다.

억지로 다시 누워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밖을 향해 말했다.

“거기, 누구 있나?”

소리는 크지 않았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목이 잠긴 탓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빨랐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깔끔한 차림의 시종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공자님?”

“음…….”

아이른이 뜸을 들였다.

목을 가다듬기도 하고, 헛기침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이를 지켜보는 시종의 눈빛에 호기심이 어렸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지?’

평소 대공자가 부탁하는 거야 별거 없었다. 물을 달라던가, 간단한 음식을 달라던가.

그런 생리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교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다니.

시종은 은근한 기대를 품은 채 아이른을 바라봤고.

나태 공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깜짝 발언을 내뱉었다.

“내가, 검을…… 휘둘러 보고 싶은데 말이지.”

“…….”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줄 수 있겠어?”

“네, 네! 저기, 그, 그러니까…….”

시종의 얼굴에 커다란 당황의 감정이 스쳤다.

전혀 예상도 못 한 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재차 공자에게 물었다.

“혹시, 방금, 검술 수련을 하고 싶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그러니까 연무장까지의 안내와 목검 따위의 준비를 바라고 명하신 것…… 그것이 맞습니까?”

“……응, 그래.”

빼빼 마른 몸의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종은 또다시 한 박자 늦게 대답했고, 놀람을 숨기지 못한 채 일을 보러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가 난생처음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