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퍼펙트 엔딩 - 2
각기 다른 차원, 수많은 지구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쪽에서도 온다!”
그건, 지옥이자 학살이었다.
미국 서버의 어느 대형 마트, 백여 명의 생존자들이 입구를 틀어막고 농성 중이었다.
우어어! 우어어!
상대는 수백 마리에 이르는 오크 군단, 그것들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와 철퇴와 도끼로 문을 뜯고, 바리케이드를 쳐부쉈다.
쩍! 쩍!
“뚜, 뚫린다!”
농성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을 듯했다.
“미친, 어디에서 이렇게 나오는 거야!”
“틀렸어! 모두 옥상으로 올라가!”
푹!
“······컥!”
게임이 박진감 넘치게 흘러갈수록 생존자는 점점 빠르게 줄어든다.
퍽! 퍽! 퍽!
“서쪽 문도 뚫렸어!”
우어어!
그리고 이곳은 지금, 빠르게 줄어드는 타이밍에 속해 있었다.
“안 돼, 피터! 대체······ 우, 우리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여기는 제36지구, 11번째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무대로, 게임이 시작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곳이었다.
한편으로는 근래 제0지구 인류에게 가장 인기 있던 ‘방송’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제0지구 놈들은 게임의 초반부, 당황한 생존자들이 우왕좌왕하며 죽어 나가고 서로 물고 뜯는 그 난장판에서 가장 큰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놈들은 이러한 시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the hide-and-seek of fools
일명 ‘바보들의 숨바꼭질’
“······뒤를 조심해!”
퍽!
한없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곳, 그래서 가장 자극적인 장면이 연출 되는 시기,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구간이다.
“으아아! 사, 살려줘!”
“빅터! 빅터가 잡혔어!”
“안 돼, 늦었어! 버려!”
“나, 날 두고 가지······ 컥!”
푹! 푹! 푹! 푹!
“어서 옥상으로 가!”
하지만 이곳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제36지구 따위로 칭해진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헉! 헉! 얼마 안 남았어!”
이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싸울 뿐,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시기였다.
덜컹!
생존자들은 겨우겨우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철문을 틀어막은 뒤, 빙결 마법을 쏘아 완전히 얼려버렸다.
“헉! 헉! 모두 올라왔으니까 어서 포, 포탈을 열어! 근처 500m 밖에 못 가더라도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야만 해!”
그래도 만약을 위한 탈출 방법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트, 틀렸어······.”
옥상에서 대기 중이던 백업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우린······ 못 나가.”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백업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옥상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피범벅이 된 시체 3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제임스가 주, 죽었어.”
“······뭐?”
유사시 근처로 탈출할 수 있는 포탈을 열기로 한 마법사는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오크들이 쏜 발리스타가 옥상을 타격했는데, 운이 없게도 그것에 맞은 듯했다.
“아, 안 돼······.”
그들은 절망을 집어삼키며 옥상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우어어! 우어어!
사방에 오크 떼거리가 가득했다. 그것들은 전쟁 북을 미친 듯이 쳐대며 뚫린 문으로 사납게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뚫고 나갈 틈 따위 없이 완전히 포위당했기에 탈출구 따위는 없었다.
“우린······ 끄, 끝났다.”
생존자들은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저게 뭐지?”
빠져나갈 틈 없는 절망 속에서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다.
“뭔데?”
“저거······ 배야?”
하늘에, 하늘을 나는 배가 나타났다.
우우우우―
엔진 소리를 내는 거대한 물체가 구름 사이를 헤집으며, 가라앉듯 내려왔다. 금속 재질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그건 분명 배였다.
그리고 그것이 빛줄기를 뿜어댔다.
콰―아―아―아―앙!
그 빛줄기는 오크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하늘에서 내린 징벌 같았다.
콰―과―과―과―광!
폭음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이 통째로 뒤집히고 마트가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불의 파도가 일어나자 마트 주변을 두르고 있던 오크 떼거리가 삭제되었다. 단숨에 천여 마리의 오크가 폭사한 것이었다.
“신이시여······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그 ‘하늘을 나는 배’의 선루 갑판에서 무언가 연달아 날아올랐다.
이들은 본적 없는 몬스터였는데, 그것들은 후반에 등장할 ‘히포그리프’였다.
그 새처럼 생긴 거대한 괴물들이 마트의 옥상을 향해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마트의 플레이어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고 그들 사이로 히포그리포들이 착륙했다.
쿵― 쿵―
그 위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어휴, 바쁘다 바빠! 인호 형, 초지능인가 뭔가 하는 분께서는, 다른 월드의 시스템을 다운 안 시키는 이유가 뭐래요? 그렇게만 하주면 진짜 편할 텐데?”
“거기에 신경 쓰다가는 제0지구의 시스템 제어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던데? 그렇게 되면 완전히 망하는 거잖아.”
“아, 그래요? 그런 거라면 당연히 우리가 조금 더 수고해야죠!”
동양인 남자 두 명이 옥상에 내려섰다.
“누, 누구······.”
마트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이 범상치 않은 이들이라는 걸 느꼈다.
분명 플레이어처럼 보였는데, 서버 전체, 아니······ 소통이 가능한 그 어떤 서버에서도 저런 수준의 플레이어 집단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즉, 차원이 다른 자들이었다.
“저기······ 누, 누구십니까?”
팔이 여섯 개 달린 남자가 오른쪽 3번째 팔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들은 당연히 한호와 인호였다.
“음, 그게 말하자면 좀 긴데, 혹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생존자 집단이 어디죠? 그 사람들이랑 만나서 말하고 싶어서요.”
“······예?”
“아,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분을 도와서 좀 어디로 가야······ 음······.”
한호는 말주변이 별로 없었기에 인호가 나서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길게 말할 거 없이,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 게임은 이제 끝났어요.”
“예? 끄, 끝이 나요? 그럼 이 게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뜻인가요?”
한호와 인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들은 방금, 제35지구를 해방하고 제36지구로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경험한 일이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차원 플레이어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해선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말이다.
***
반쯤 무너진 도심, 논밭처럼 헤집어진 아스팔트, 세종대로라는 옛 이름을 가진 길을 따라 오토바이 7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다른 소리는 전혀 없는 조용한 세계를 7개의 엔진이 요란하게 뒤흔들고 지나갔다.
“놈이 가까이 왔어!”
그리고 그들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육중한 발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쿵! 쿵! 쿵! 쿵!
“함정이 머지않았어! 계속 가!”
그건 날개 없는 드래곤, 드레이크였다.
“맙소사······.”
드레이크의 몸뚱이가 어찌나 거대한지, 건물을 돌아 나오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드러난 전체 몸길이는 30m가 넘었는데, 등부터 꼬리까지 울퉁불퉁하게 돋아난 가시 때문에 훨씬 거대하게 느껴졌다.
“저게 바로 강북의 몬스터 왕······.”
언뜻 봐도 일반적인 드레이크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것이 오토바이를 따라, 광화문 근처에 쌓인 방어벽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노, 놈이, 입을 벌렸다!”
“뭐? 당장 브레스 방어 준비해!”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마법사들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방어막을 펼쳤다.
바로 그 순간, 드레이크의 목구멍 끝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이더니······.
푸―화―아―아―아!
시뻘건 화염 기둥을 토해냈다.
그 열기가 도로를 짓이기며 몰아쳤는데, 아스팔트가 끓어오르고 도로 양측에 버려져 있던 차량이 녹아내릴 정도였다.
펑! 펑! 펑! 펑!
그 한 방에, 후미에서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 4대가 휩쓸리며 폭발했다.
화마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머지 3대는 액셀러레이터를 가능한 한 당겼다.
우우―웅!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고 핸들을 꺾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 쏘아져 나갔다.
“거의 다 왔다!”
그리고 그들이 아슬아슬하게 어느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발사!”
고함과 함께 사방에서 백색의 마법들이 놈의 발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몽땅 퍼부어!”
쩌―저―저―저―저―
빙결 마법이었다. 그것들이 지면에 작렬하며 드레이크의 발목을 묶었다.
“성공이다!”
마치 빙하기라도 온 듯, 일대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는 순간, 드레이크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대장! ‘드레이크 킹’을 포박했습니다!”
골목마다 대기 중이던 플레이어들이 미리 준비해놓은 대규모 빙결 마법을 일제히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아니, 아직이야! 긴장 풀지 마! 놈은 드레이크와 차원이 다르다! 필드 보스였던 알파 드레이크보다 몇십 배는 강한 존재다! 당장 후속 공격 준비해!”
“예!”
여기는 제34지구로, 게임이 시작된 지 어느덧 3달이 지났기에 한참 중요한 사건들이 진행 중인 곳이었다.
얼마 전에 ‘몬스터의 왕’들이 탄생하여 서울 전역을 초토화했다.
놈들의 출현 이후 4개의 거대 세력이 잿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들이 막지 못하면······ 한국 서버는 끝이었다.
“어디 움직여 봐라······ 네놈 정도면, 고작 이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거 다 알아.”
대장이라고 불린 이 집단의 지휘관은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빙결 마법에 묶인 채 기우뚱거리는 드레이크 킹을 노려보았다.
그는 한국 서버의 랭킹 1위로써, 서울과 경기 지역을 통일한 최강의 플레이어였다.
그렇기에 다른 누구보다 냉철했다.
“너와 나······ 누가 서울의 주인인지, 바로 오늘 가리는 거다.”
그르르르······.
놈의 붉은 눈빛에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쩌적! 쩌적! 쩌적!
백여 명의 마법사가 힘을 모아 만든 얼음 그물이 너무나 손쉽게 파열되기 시작했다.
“······어어!
랭킹 1위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후방의 플레이어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광학 포격을 준비해!”
그때, 광화문 안쪽에서 빛줄기가 치솟았다. 이들이 ‘드워프 유적’이라는 히든 던전에서 찾아낸 엄청난 화력의 공성 병기였다.
쩌―어―어―어―어―
“어디 그것도 막아 보시지?”
그런 말은 한 건 실수였다.
드레이크 킹의 머리 위로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내리꽂히는 순간, 그의 등에서 보라색 파동이 번져 나오며 빛줄기와 맞부딪쳤다.
후―웅―
그러자 빛줄기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뭐, 뭐야? 방어 마법?”
드레이크 킹이 아무리 격이 높은 몬스터라고 한들, 저런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랭킹 1위는 옅을 숨을 내뱉으며 놈의 몸뚱이를 훑었다.
이건 분명 마법사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때, 관측병이 소리쳤다.
“드, 드레이크 킹이 혼자가 아닙니다!”
그렇다. 놈의 등에 누군가 타 있었다.
그건, 보라색 로브를 두른 해골이었다.
“······리, 리치!”
또 다른 몬스터의 왕, 언데드 고위 마법사 리치였다.
“놈이 왜 여기에 있어!”
리치는 경기도 북부 지방의 몬스터의 왕이었다. 즉, 여기까지 올 리가 없는 존재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으흐흐, 나약한 인간들이여 이제 우리에게 시대를 넘겨야 할 때가 왔도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드레이크의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폭발하더니 그 안에서 회색의 스켈레톤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덜그럭! 덜그럭!
그 숫자가 으레 천 마리는 될 법했다.
“전 사수, 발사 준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삐이이이!
독수리 울음과 함께 하늘에서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서, 설마?”
하늘을 가득 메우며 빌딩 사이를 날고 있는 존재들, 그것들은 독수리의 몸뚱이에 인간 여자의 얼굴을 달고 있었다.
“하, 하피! 하피 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인면조 괴물, 하피(Harpy)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솔하는 존재는 그것들의 어머니이자 인천에서 탄생한 몬스터의 왕, 하피 퀸이었다.
“젠장! 왕 등급 몬스터가 3마리나 연합하다니, 이게 말이 돼? 이런 전례는 없잖아!”
이들은 몰랐지만, 그건 ‘황제 등급’의 몬스터가 탄생할 경우 일어날 재앙이었다.
“전사들, 앞으로 전진! 후퇴는 없다!”
“마법사들이여, 마나를 아끼지 마라!”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많은 전쟁을 겪었으며, 전멸에 가까운 위기도 종종 겪어 왔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 게 끝이다! 인류를 위하여 미스터리에 맞서 싸워라!”
하지만, 이번 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드레이크 킹이 브레스를 뿜자 성벽과 함께 백여 명의 엘리트 플레이어들이 사망했다.
리치의 언데드 군단이 그 위로 달려 들어가, 후방의 마법사와 사수들을 덮쳤다.
하피 퀸의 하피 무리가 빌딩 옥상에 대기 중이던 저격수들을 손쉽게 낚아채 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이들이 리치의 하수인으로 재탄생하는 광경은 정말이지······.
지옥, 그 자체였다.
“아······.”
랭킹 1위는 좌절했다.
이런 위기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냉철한 판단을 내리어 동료들을 구하고 승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딱딱하게 변해갔다.
“아니, 아니야! 정신 차려!”
하지만 그는 억지로 이성을 되찾았다.
“후! 어떻게든 방법이 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곽 교수님! 강제 워프 스크롤, 그걸 써야 합니다! 드레이크 킹과 리치를 통째로 강원도로 날린 뒤에 하피 퀸을 사냥하는 겁니다! 당장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쿵! 쿵! 쿵! 쿵!
그때, 드레이크 킹이 방어막을 찢어발기며 플레이어들의 대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으아아!”
“도, 도망 가!”
이대로면 방어 대형이 무너져 버리며, 강제 워프 스크롤을 쓰기도 전에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질 것이었다.
“젠장······.”
랭킹 1위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곽 교수라고 부른 동료에게 말했다.
“······그리고 뒷일을 부탁합니다.”
랭킹 1위는 비장한 표정으로 석궁을 들어 올렸다. 사수 계열의 정점에 올라 ‘신궁’이라고 불리는 그였지만. 드레이크 킹의 가죽을 뚫어낼 자신은 없었다.
쿵― 쿵―
드레이크 킹 역시 그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거대한 입이 천천히 벌어지며 회색 연기와 함께 두꺼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조악한 무기를 든 나약한 살덩이들 사이에서 그나마 먹기 좋은 놈이로다!”
- 미약한 ‘드래곤 피어’가 발동합니다.
그렇게, 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랭킹 1위는 제대로 깨달았다.
“······큭!”
이건,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민첩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전투를 펼치는 그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의 목구멍이 붉게 물들었다.
“······.”
그렇게 모든 게 끝나버릴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으, 응?”
드레이크 킹이 갑자기 우뚝 멈춘 것이었다. 놈은 고개를 들어 올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하늘이었다.
플레이어들 역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저건······.”
그곳에 무언가 떠 있었다. 날개가 날린 백색의 와이번, 정확히는 ‘본 와이번’이었다.
“뭐야 이것들은?”
그것의 등 뒤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 흑발의 소년이었다.
“웬 도마뱀 따위가 어설픈 불을 뿜어대고 있어? 짜증나게······.”
여자는 드레이크를 내려다보며 냉소를 한껏 머금었다. 비웃음과 자신감이 혼재된 그 미소는 묘하게 경이로웠다.
“우와! 저 도마뱀 멋있어요.”
그 옆, 흑발의 소년이 검지로 드레이크 킹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 너는 저딴 게 멋있어?”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친구의 비늘 속에 숨겨져 있는 뼈가 너무 멋있어 보여요!”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는데, 마지막에 군침을 삼킨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괴한 소리에 드레이크 킹의 눈동자가 순간, 휘둥그레졌다. 언뜻 두려움이 스쳐 지나간 듯했다.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휴, 미친, 하여간 지 아빠 닮아서 변태스러운 면이 있어.”
그리고 당황한 건 드레이크 킹뿐만이 아니었다. 놈의 등에 타고 있던 리치, 그놈 역시 어딘가 이상했다.
딱! 딱! 딱! 따―닥! 따―닥!
놈은 턱을 부딪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흐리멍덩한 안광은 흑발의 소년에게 맺혀 있었다.
“아, 아, 아······.”
그러더니 드레이크의 등에서 펄쩍 뛰어내려, 녹아내린 아스팔트 위에 넙죽 엎드리는 게 아닌가?
“주, 죽음의······ 조율자이시여! 이, 부디 이 몸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 근본 없는 상황 앞에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아주 이질적인 정적이 흘렀다.
“응? 미르야, 저거······ 너 말 하는 거야?”
“그런 것 같은데요? 저 뼈는 별로 관심 없는데······ 못생긴 빅터 아저씨 닮았어요.”
이처럼······.
각기 다른 차원, 수많은 지구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건, 해방이자 혁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