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엔딩 이후의 세계 - 10
성우는 제 손으로 엔딩을 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그는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 누구보다 열성적인 플레이어로서, 적극적으로 사냥에 임하고 있었다.
이는 전부 필요에 의해서였다.
‘원활한 통제를 위하여 행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강력한 힘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그는 그 기준에 따라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배웠으며 아이템을 얻었다. 즉, 끝없이 성장했다.
공략되지 않은 던전을 찾아 나섰으며 여전히 지상을 활보하는 필드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렇게 해서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가장 쉬운 안보 방법이다.’
그렇게 그의 힘은 엔딩 이전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잡다한 퀘스트 혹은 적대 세력 등 귀찮은 방해물 없이 오로지 성장에 몰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남들보다 몇 배는 앞서 나갔다.
마치 자본을 가진 자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듯, 이미 힘을 가진 자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성우는 그 시스템에서 다른 이들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초격차(超隔差)를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 어떤 위협이 오더라도 손쉽게 막아냈으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
감히 네크로맨서에게 도전한 자가 큰 산을 마주했다.
“······.”
Z는 말없이, 하지만 다소 거칠어진 숨소리를 흘리며 온 세상을 뒤덮은 보라색 포탈을 바라보았다.
저게 어디로 통하는 문인지 무엇이 나올 것인지 알 수 없었다만,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었다.
“네크로맨서······ 너는 나에게서 빼앗아간 특혜를 아주 제대로 이용하고 있군? 매번 새로운 재주를 발굴해내는 걸 보면 말이야.”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떨렸다.
“······.”
그러나 성우는 대답이 없었다.
이런 부류의 것들과 대화를 하는 게 손해라는 걸 오랜 경험 안에서 깨달아왔다. 그리고 이런 부류를 상대해주는 건 길면 길수록 손해였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 시작되었다.
푸화아아아!
수십 개의 포탈이 무언가를 내뿜었다.
푸화아아아!
마치 항공기 엔진 수십 개를 동시에 쐬는 듯한 엄청난 풍압과 함께, 포탈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와 Z를 덮쳤다.
“크으······.”
Z는 날아가지 않게, 그리고 그 바람에 짓눌려 쓰러지지 않게,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죽음의 힘이 담긴 가스, ‘심연의 호흡’이었다. 이전에는 ‘시체 폭발’만으로 발생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뚜껑을 여닫듯 언제든지 발생시킬 수 있었다.
“이건 소용없다!”
하지만 Z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엑스칼리버’의 힘을 얻어 모든 ‘상태 이상’에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겨우 이 정도라면······.”
Z는 목소리에 약간의 안도가 어렸다.
어쩌면 어떻게든 맞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포탈이 다른 걸 쏟아냈다.
고―오―오―오―오―
이번에는 형태가 있는 것이었다. 그건 심연 속에 잠겨 있는 무한한 숫자의 시체, 그것들의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 일명 ‘심연의 손’이었다.
쩌적― 쩌적― 쩌적―
코끼리를 통째로 움켜쥘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손이, 사방에서 뻗어 나와 Z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몽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젠장!”
Z는 엑스칼리버를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손들을 이리저리 쳐냈다. 처음 두어 개는 어찌어찌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십 개의 포탈에서 동시에 튀어나오는 손들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쩡! 쩡! 쩡! 쩡!
사방에서 날아든 심연의 손이 그의 몸을 연달아 내리쳤고 4번 남은 ‘절대 방어’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이젠, 무방비였다.
“안 돼!”
Z는 몸을 웅크리며 몸 주변에 헬리오스의 권능, 태양의 힘을 둘렀다. 화염이 일어나며 그의 몸 근처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접근하는 모든 걸 태우는 방어막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궁여지책일 뿐이었다.
고위 죽음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한 ‘심연의 손’이 그깟 화염에 녹아 사라질 리가 없었다.
“컥!”
Z는 결국 ‘심연의 손’에 짓눌려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엑스칼리버마저 떨어뜨렸다.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엑스칼리버가 저 멀리, 미끄러져 갔다.
몸을 뒤틀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으으! 네, 네크로맨서!”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증오를 가득 담아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평소 묵묵하기만 했던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쇳소리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
성우는 그의 고함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 검은 연기 밖으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무시였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마, 말도 안 돼.”
Z는 몸에서 힘을 풀었다.
단숨에, 정말 단숨에 제압당했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찍어누르는 것처럼 너무나 쉬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심연의 문을 열다니? 그게 뭐야?’
모든 걸 알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심연(深淵)’은 ‘죽음의 마법’이나 ‘흑마법’을 이용한 스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어였다.
‘심연의 호흡’은 그곳의 공기였으며 ‘죽음의 응답’은 그곳을 떠도는 좀비를 소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말의 군단’이 봉인된 지옥의 밑바닥 ‘타르타로스(Tartarus)’ 역시 심연의 일부일 뿐이었다.
이처럼 흔히 이해하길, 심연이란 모든 죽은 자들의 빈 껍데기가 모이는 무덤쯤으로 여겨지곤 했다.
즉, 죽음의 힘의 근원지였다.
성우는 죽음의 권능을 다루는 자로서 이제, 심연, 그 기이한 공간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이는 50레벨을 달성하여 ‘2차 각성’을 이뤘을 때 얻은 힘이었는데, 2차 각성의 존재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성우를 제외한다면, 60레벨은커녕 50레벨에 도달한 플레이어조차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우는 언제나 그렇듯, 만약을 대비하여 이 스킬을 ‘히든 카드’로 이용하기 위해 숨기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 카드가 손쉬운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사실 그냥 싸워도 이겼을 테지만, 앞서 말했듯 저런 부류와 오래 마주하고 있는 건 낭비였다.
***
성우는 불청객을 순식간에 제압한 뒤, ‘터널’ 근처로 다가갔다. 연구원들이 그 주변을 바쁘게 오가며 터널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는 중이었다.
우우우우······
1년 전에 붕괴한 터널은 다시금 생기를 되찾은 듯 시퍼런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연구소장, 헨드릭스가 다가왔다.
“곧 웜홀이 개방됩니다.”
“다행히도 제가 딱 맞췄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성우는 고개를 슬쩍 돌려 Z를 바라보았다.
그는 심연의 손에 짓눌린 채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였는데, 포기한 듯, 말없이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터널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역시 웜홀 개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등장하여 자신을 구원할,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복구 10초 전!”
드디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8, 7, 6······.”
연구원 중 한 명이 숫자를 읊는 가운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웜홀을 바라보았다.
“5, 4, 3······.”
과연 무엇이 나올 것인가?
그것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일까?
“2, 1······.”
마침내, 임계점에 달했다.
“웜홀! 열렸습니다!”
그 외침과 동시에 터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빛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어―
강력한 에너지가 터널에서 뿜어져 나오며 천장에 닿았다. 그 충격에 천장에 균열이 일어났으나 다행히도 붕괴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수십 중의 보강 공사를 해두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무너졌을 것이었다.
그런 기현상이 약 십여 초간 계속되더니 아주 천천히 멎기 시작했다.
“······.”
이내 연구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현재 상황을 분석하여 보고했다.
“분석 결과, 웜홀 완전 복구 후 안정화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0지구로 가는 통로가······ 다시 열렸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고요가 찾아왔다.
많은 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웜홀이 열렸다. 그렇다면 무언가 나온 게 아니던가?
하지만 무언가 저 통로를 통하여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건 그 누구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뭔가 왔다.”
성우는 느낄 수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이곳에 무언가 도착했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비록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확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직접 존재를 드러냈다.
「그렇다. 약속대로, 우리가 왔다.」
목소리였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혹은 노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귀가 아니라 뇌로 바로 꽂히는 듯했다. 뇌는 분명 목소리라고 인식했지만, 그건 현상적 의미의 ‘음성(音聲)’이 아닐 것이었다.
“······.”
그리고 그건 모두에게 들렸다. 하지만 누구나 대화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모두가 성우를 쳐다보았다. 그 정체불명의 존재와 협상할 사람은 성우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다!”
성우보다 앞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당신들을 기다렸다!”
그건 Z였다. 심연의 손에 짓눌려 있던 Z가 온 힘을 쥐어짜 소리친 것이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저항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당신들이 이 세계를 통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그리고 당신들이 즐기는 그 유희도 이해하고 존중한다! 나를 이용하여······ 큭!”
성우는 심연의 손을 움직여 Z를 찍어 눌렀고, 그의 헛소리는 맥없이 끊어졌다.
그런데, 허공의 목소리 역시 Z의 환영을 그리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그것들이 아니다.」
“······뭐?”
Z가 당황했다. 예상했던 답변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는 그것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너희를 찾아왔다.」
그 말을 들은 성우가 입을 열었다.
“제0지구의 멸망을 바란다?”
「그렇다.」
“그렇다면, 묻고 싶은 게 있다.”
「말해라.」
제0지구의 멸망을 바라는 게 사실이라면 적어도 적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무조건 믿을 순 없다.’
하지만 적의 반대 개념이 아군이라는 법은 없었다. 상식 밖의 존재에게 휘둘려온바, 언제나 상대의 정체를 의심해야만 했다.
즉, 검증이 필요했다.
성우는 첫 번째 질문을 고민했다.
“그래, 질문하겠다.”
「말해라.」
“웜홀이 닫혀 있었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접촉했지? 방문객으로서 어디에서 온 건지 말해줄 수 있나?”
낯선 이의 정체를 규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묻는 게 아니었다. 저들이 사실을 말할 것이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유도 질문을 통하여 특정할만한 정보를 얻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연락했는가?’ 그리고 ‘어디에서 왔는가?’ 이 두 질문은 그들의 윤곽을 어느 정도 드러내게 해줄 것이었다.
이에 목소리가 답했다.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을 이용했다. 웜홀이 폐쇄되기 전,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던 그자의 구성 성분 중 일부 양자, 총 2,445개의 양자를 쪼개어 수집했고 그 양자들을 이용했다.」
성우는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으나, 양자 얽힘이라는 말에 연구원들이 동요하는 게 보였다.
“양자 얽힘? 그게 진짜 가능하다고?”
“맙소사······.”
하물며 GM들도 마찬가지였다. 웜홀이 닫힌 상태에서 외부의 개입으로 시스템 오류를 발생시키는 방법, 그건 그들조차 이해하지 못한 미스터리였기 때문이다.
이론은 존재하나 구현해내지 못한 기술인 걸까?
그렇다면 확실해졌다.
이들은 제0지구보다 앞선 기술을 가진 존재였다. 어쩌면 산군이 증언한 것처럼 신적인 존재인 걸까?
정보가 더 필요했다.
“좋아. 그런데 아직 답변을 못 들은 게 있어 네가 여기 온 목적이 뭐든 간에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해. 너희는 어디에서 왔지?”
「돌려 말하고 있군? 쉽게 말해서 우리의 정체가 궁금한 게 아닌가?」
목소리는 성우의 의도를 꿰뚫은 듯, 그렇게 물었다.
성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나?”
그 물음에 모두가 집중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원하고 있었다. 이 기이한 존재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이다.」
그리고 이내, 그 목소리가 증언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아무도 예상 못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