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36화 (236/244)

외전) 엔딩 이후의 시대 - 7

이 회장은 멀찍이 떨어져 아사달 근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역시 대단한 자야.”

비록, 야산을 아사달 도심에 떨어뜨리는 회심의 일격인 ‘마운틴 메테오’ 작전은 실패했지만, 그 직후 Z가 더욱 강력한 일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저 멀리, 붉은 태양 하나가 점등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그건, 일대의 모든 생명체를 태우는 광역 학살 스킬 ‘징벌의 불’이었다.

“정말이지 그는······ 추종받을 자격이 있어.”

이 회장은 영웅의 행보를 지켜보는 소년처럼 감격한 표정으로 저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첫인상부터 달랐어. 고귀한 풍모가 있었달까? 세계 각지에서 모인, 날고 긴다는 사상적 지도자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그는 뭔가 남달랐으니······.”

Z는 ‘오리지널스’의 수장으로써, 십여 명의 심판관들조차 거역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저 가면의 사나이가 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 새삼스레 더욱 궁금해지는군, 그래?”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아는 조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옆에 서 있던 여자, 미스 최라고 불리는 이 회장의 비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회장님께서도 모르시는 건가요?”

이 늙은 구렁이의 수발을 들면서 항시 묵묵하게 제 할 일만 하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먼저 질문했다. 오늘 처음 목격한 가면의 사내, 그 모습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궁금증이었다.

그 사람, 정체가 뭘까?

“전혀 몰라. 소문에 의하면 영국 서버 출신의 사십 대 남자라고 하는데······ 글쎄, 그게 뭐가 중요할까? 영웅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게 범인(凡人)의 본능이라지만, 그건 영웅이 이룩한 업적 이후에 붙은 긴 사족에 불과해.”

이 회장은 신나게 떠들어대며 큭큭 웃었다.

“범인이 어떻게 영웅의 열망을 헤아릴 수 있을까? 실은 우리는 그에 대해서 알 자격조차 없는 거야.”

하물며 그가 왜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인 ‘Z’로 불리는 건지, 그 의미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가 자신을 Z라고 소개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Z’라는 아명, 그게 그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으며, 항시 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평소 표정조차 비공개 상태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신비주의였다.

다만, 그와 조금 더 밀접하게 일하는 이들, 이를테면 오리지널스의 핵심 간부인 ‘심판관’ 정도가 되면 단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Z가 ‘조력자’에게 ‘먼저 선택받은 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네크로맨서보다 먼저 그 미지의 손길을 받았어. 그런데 말이야, 그는 스스로 뿌리쳤어. 그들이 자신을 이용한다고 하려는 걸 눈치채고 거부한 거야.”

GM, 제0지구, 조력자 등 평범한 이들이라면 웬만해서는 알 수 없을 다른 차원의 무언가들······ 그것들의 존재를 네크로맨서가 직접 인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와 연관성이 있다는 건, 이 세계에서 상당한 ‘특별함’으로 받아들여졌다. 평범한 이들은 존재조차 모를 이 게임의 진실을 직접 마주했다는 뜻인 만큼, 일종의 ‘정당성’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보다 조력자의 선택을 먼저 받았다니? 그건 엄청난 후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Z와 오리지널스가 이 세계를 지배할 명목이 되어줄 정도였다.

일종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인 셈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이름 앞에 한 줄의 이력이 더 붙게 될지도 몰라. 네크로맨서 슬레이어······.”

난세의 실권을 쥐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오늘, 두 개의 명분이 하나로 합쳐질 것이었다.

***

Z는 자신의 손 위에서 타오른 ‘징벌의 불’을 거친 파동을 느끼며,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네크로맨서, 그곳에 있나?’

그는 네크로맨서를 증오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언젠가부터 그를 혐오하게 되었다.

그는 속으로 남몰래 그 감정을 되뇌었다.

‘그 자리는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애초에 나에게 먼저 주어진 자리였는데, 네가 운이 좋게 그리고 편법을 이용하여 꽤 찼다.’

Z가 조력자의 ‘접촉’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네크로맨서보다 앞선 것도 맞았다.

그가 어느 서버의 랭킹 1위로써, 누구보다 먼저 ‘수호자’ 칭호를 얻었을 무렵 첫 번째 ‘시스템 오류’를 경험했다. 보스 몬스터 ‘자이언트 가고일’의 목소리를 빌린 자, 조력자가 Z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분명······ 나를 지원한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Z가 조력자의 접촉을 뿌리쳤다는 것이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Z는 조력자를 믿고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 이후 2번의 연락을 통해 Z의 행보를 도왔다. Z는 그 힘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며 성장했다.

능력 있는 동료들의 신뢰와 칭송을 한 몸에 받았으며 생존자들의 리더로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나는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력자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런데 별안간······ 한국 서버의 네크로맨서를 도우라고 하다니? 혼자 잘해온 나한테?’

Z는 밀려나 버렸다.

그렇다. Z가 조력자의 접촉을 뿌리친 게 아니었다. Z는 네크로맨서에게 밀려난 것이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의 ‘들러리’ 역할을 강요받았다.

중국 2서버의 랭킹 1위였던 리웨이가 조력자의 요구로 네크로맨서를 찾아와 결정적인 역할을 했듯, Z역시 비슷한 주문을 받은 것이었다.

Z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조력자는 온갖 페널티를 부여하며 Z를 협박했다.

‘그때 느꼈다.’

보라색 가면 안, Z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조력자, 그들은 신이 아니며, 틀린 선택을 하며, 더 나아가 잘못된 생각을 지닌 존재들이란 걸······.’

- 주의! 해당 지역에 ‘징벌의 불’이 시작되어 모든 ‘생명체’를 소거할 예정입니다. (남은 시간 : 00:00:03)

“······놈들은 악마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 징벌의 불이 완성되었습니다.

“악마의 힘을 얻어 세운 제국은 무너져야 마땅하다.”

손 위에서 요동치던 붉은 공이 안정화된 듯 천천히 멈춰 섰다. 하지만 그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쩌저저저······

Z가 딛고 선 땅이 갈라졌다. 그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더는 쥐고 있을 수 없었다.

Z는 완성된 ‘징벌의 불’을 아사달을 향해 기울였다. 그러자 마치 거대한 그릇을 기울여 그 내용물을 대번에 쏟아내듯, 붉은 공의 상단부부터 녹아내리며 아사달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발키리조차 징벌의 불의 열기를 피해 멀리 물러설 수밖에 없었으니,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콰―아―아―아―아―

그것들이 넓게 퍼지며, 마치 기조력에 의해 땅으로 치고 들어오는 밀물처럼, 점점 더 빠르고 거칠게 공간을 채우며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우······

세계수가 반응했다. 몰려오는 징벌의 불에 맞서듯, 세계수가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뭐지?”

세계수로부터 새파란 에너지가 반구형으로 터져 나왔다. 엄청난 힘이었다.

쩡!

Z는 그 에너지에 휩쓸려 뒤로 날아가 건물 외벽에 충돌, 외벽을 그대로 뚫고 어둠 속에 처박혔다.

“······.”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

불길이 휩싸이기 직전, 세계수로부터 어떤 파동이 터져 나왔다.

파란색 에너지는 반구형으로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오며 모든 곳을 휩쓸며, 아사달 안의 모든 플레이어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 전체로 퍼졌다.

그 순간, 성우는 세계수의 뿌리에 서 있었다.

- 신화 퀘스트 <종족의 기원(용인족)>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

‘됐다.’

마침내, 길고 길었던 신화 퀘스트가 막을 내렸다.

- 당신의 몸이 다른 형태로 진화합니다.

*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될 수 있습니다.

“큭······.”

성우는 온몸이 뒤틀리는 느낌에 신음을 흘렸다.

쩍! 쩌―적!

메시지의 경고처럼 적잖은 고통이 온몸을 헤집었다. 마치 뼈와 피부 틈 사이에 새로운 뼈와 살이 채워지며 단단해지고 질겨지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그렇게 표현할만한 현상이 성우의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인간의 고유한 입자 구조 위에 드래곤의 무엇인가, 한 겹 덧대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다행히도 그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당신은 ‘용인족(龍人族)’으로 거듭났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10)

* 마법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50%)

* 물리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50%)

* 공포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100%)

* 화염 면역력이 상승합니다. (+150%)

* 신체 재생력이 상승합니다. (+100%)

* 건강 회복력이 상승합니다. (+100%)

이렇게, 용인족(龍人族)이 되었다.

이는 성우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 진영 소속, 약 삼십 만의 플레이어가 모두 해당했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수 진영에 가입할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은 건가?”

인간을 탈피하여 다른 무엇이 된다는 건 여전히 찝찝했다. 그래도 당장 보고 느끼기에는 외양적으로 큰 변화가 생긴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혹시 기괴한 파충류처럼 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게임을 디자인한 것들도 같은 인간인 만큼, 기본적인 미적 요인을 고려한 모양이었다.

다만, 피부는 확실히 훨씬 질겨진 것 같았으며 눈동자는 같은 경우는······.

- 당신의 의지에 따라 ‘시각 방식’이 변경됩니다. (현재 방식 : 열 감지)

구조 자체가 바뀐 듯했다.

‘이거,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

시력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이 몇 배나 좋아졌다. 하물며 습도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습도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란 건, 인간의 언어로는 그 느낌을 표현해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만큼 이질적이었다.

이렇듯, 전혀 다른 몸이 된 건 확실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 ‘종족의 공명’을 향상할 경우 새로운 ‘종족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용의 후예

- 등급 : 신화

- 분류 : 종족 전용 스킬

- 소모 : 없음

용의 피를 타고난 ‘용인족(龍人族)’은 종족 전체의 발전 수준(종족의 공명)에 따라서 ‘잠재된 능력’을 발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종족의 공명이 낮아(0단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없습니다.

‘신경 쓸 게 하나 더 늘었군.’

이제는 스킬 종류가 하도 많아서 전부 기억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쿠―구―구―구―구―구―

그때, 열 감지 방식에 맞춰져 있던 성우의 눈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저 멀리, 붉은색 열기가 모락모락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두바이의 모래 폭풍처럼 보였다.

“아, 맞다.”

그건 아사달을 덮치기로 예정되어 있던 대학살 스킬 ‘징벌의 불’이었다. 세계수가 내뿜은 ‘진화의 파동’에 밀려나 한 발짝 뒤늦게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

하지만 이제 그깟 열기쯤이야, 더는 두렵지 않았다. 용인족이 되며 화염 저항력이 무려 150%나 올랐다. 이 수치는 딱 ‘샐러맨더의 아우라’가 발현되는 지점이었다.

‘모두에게 그게 부여되었다면, 아무 문제 없다.’

샐러맨더의 아우라가 어떤 효과였던가?

- ‘화염 면역력’이 일정 수치(150%)를 초과하여 ‘샐러맨더의 아우라’가 부여됩니다.

* 모든 직접 공격에 ‘화상’ 효과가 부여됩니다.

* ‘화염 공격’에 맞으면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1%)

이는 불의 공격을 공격으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버프로 느끼게 되는 효과였다.

쿠―구―구―구―구―구―

징벌의 불이 목적까지 다가왔으나, 아사달에 사는 세계수 진영의 시민들은 그것을 그저 뜨끈한 열풍으로, 오히려 땀을 쭉 빼주고 활기를 되찾아 줄 사우나쯤으로 넘기고 말 것이었다.

“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꽤 실망하겠어.”

성우의 예상대로, 적의 회심의 일격이 허무하게 아사달을 스쳐 지나갔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징벌의 불은 허무하게 꺼졌다.

Z는 실패 원인을 알지 못했다. 다만, 네크로맨서가 또 어떤 수작을 했음을 직감했다.

“역시 놈이 그간 독점하며 쌓아온 이점을······ 어떻게 해도 꺾을 수는 없는 건가.”

그런데도 Z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실패했다.

“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힘을 보존하며 정진했다. 그 결과 큰 후퇴 없이 조금씩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졌다.

“언젠가······ 내가 승리한다.”

이번에도 그럴 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웜홀이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제아무리 놈이라도 이 게임을 만든 존재들에게는 이길 수 없다.’

Z는 팔뚝에 새겨진 어떤 기호를 활용하여 웜홀 연구소에 잠입시켜둔 부하에게 연락했다.

- 음성 전송 준비 중······

그곳에 침투시켜둔 심복이 조금 전,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전해왔다.

곧 웜홀이 열리고 오리지널스 중 일부가 ‘위대한 자들’이라고 칭송하는, 일명 제0지구의 GM들이 돌아온다는 첩보였다.

‘끝이다.’

Z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다시금 이 지구를 지배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전에 그들이 가장 골칫거리로 여기는 네크로맨서를 처치하여 그들의 호의를 살 생각이었다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그들이 네크로맨서를 제거할 거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공백을 누군가 채워주길 원할 거야.’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제이슨, Z다. 연락을 기다린다.”

그는 짧게 송신한 뒤, 어느 골목에 몸을 숨겼다. 근처에 발키리가 있었다. 상황이 달라졌고 그녀에게 발각되면 골치 아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제이슨에게 답장이 왔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Z는 미국 서버, 필라델피아에 대기 중이던 ‘결사대’를 움직이라고 명했다.

“우리가 웜홀 연구소를 장악한다. 그리고······ 게임 제작자들을 맞이한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웜홀을 열고 있다. 그게 누구일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Z는 당연히 제0지구의 인류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

“히, 힘들어요.”

새파란 하늘, 그 허공의 어딘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낑낑거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몇 시간이 날았다고? 웃기지 마.”

매정한 목소리가 낑낑거리는 목소리를 질타했다.

“지, 진짠데······ 이러다 떨어지는데······.”

훙―

그 순간, 블랙 드래곤이 구름 안에서 튀어나와 급격하게 추락했다. 그러다가 다시 힘을 내어 고도를 높였지만,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힘든 티를 냈다.

그러자 블랙 드래곤의 등 뒤에 타고 있던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죽는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블랙 드래곤의 등에 난 뿔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야! 내가 모르겠니? 내가 적어도 너보다 지구 몇 바퀴는 더 날았을 텐데?”

“저 탈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어젯밤에 너무 열심히 훈련했는데 갑자기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죠!”

“그거야 네 아빠가 그러라는데 어떡하니? 네 아빠가 대장이잖아. 그래도 지금은 내가 보호자다! 계속 징징거리며 뒤지게 혼날 줄 알아!”

“그, 그런데······ 선생님이 포탈을 열면 제가 굳이 힘들게 날아가지 않아도······.”

화르르!

무언가 타오르는 소리에 블랙 드래곤은 화들짝 놀라며 긴 목을 아래로 쭉 늘어뜨렸다. 어느새 여자의 입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꼬마야. 나도 널 떠안게 돼서 참으로 성가시단다. 그리고 떠 먹여주는 게 교육은 아니잖아? 떠먹을 줄 알게 하는 게 교육이지. 그런 면에서 난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너만 잘하면 돼.”

“······.”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 부디 조용히 드라이브하자. 괜찮지?”

“네······.”

여자는 드래곤의 넓은 등 뒤에 벌러덩 누웠다. 그런데······.

덜그럭! 덜그럭!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대화를 멈추자 확실해졌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드래곤의 등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드래곤이 어딘가 어색하게 몸을 배배 꼬아댔다.

“야! 저것들 안 집어넣어!”

덜그럭! 덜그럭!

새 모양의 스켈레톤 대여섯 마리가 드래곤의 배를 받치고 날고 있는 것이었다.

“······귀도 좋으셔.”

“너 진짜 죽는다!”

어느 스승과 제자가 대륙과 대양을 가로질러 작은 섬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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