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34화 (234/244)

외전) 엔딩 이후의 시대 - 5

버뮤다 삼각지대, 그곳을 수놓았던 숱한 미스터리는 일부분 진실로 확인되었다.

그곳의 바다 깊은 곳에 다른 차원으로 가는 통로 일명 ‘웜홀’이 실재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그곳을 통과하여 ‘제0지구’로 불리는 GM들의 세계에 도달, 그들에게 수소 폭탄 3방을 선사한 뒤, 웜홀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아주 유명한 사실로써, 오늘날의 세계 전역에 건국 신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우―우―웅―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진 모터보트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보트 위, 4명의 플레이어가 마나 감지용 쌍안경 아이템을 들고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스캔 결과 북쪽 해역 이상 무!”

그들은 그렇게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더니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향했다.

“이제 복귀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우―우―웅―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복귀할만한 섬이나 모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쪽 방향 맞습니까?”

“그래, 직진이야. 한두 번 가보나?”

“죄송합니다. 헷갈려서······.”

하지만 계속해서 망망대해뿐으로, 이런 작은 보트가 홀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끝도 없는 바다를 막연하게 나아가다가 결국 동력이 다해 표류하고 말 테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치지지지지―

공간이 일그러졌다. 순간적으로 얇은 막을 통과해 들어온 듯했다. 그러자 방금까지 없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섬이었다. 섬이 나타났다.

후우우우!

직후, 그들의 머리 위로 굉음과 함께 광풍이 몰아치며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윽!”

대원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비행선이었다. 3척의 비행선이 저공 비행하며 섬 주변을 순항하고 있었다.

대원 한 명이 무전기 아이템을 들어 올렸다.

“여기는 해상 수색 3팀, 1급 보안선 안으로 진입 완료! 본부로 복귀하겠다.”

그러자 상공, 비행선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 여기는 하드 가드, 수고했다. 진입 허가한다.

그렇다. 이곳은 ‘신기루 마법’ 안에 감추어져 있는 세계수 진영의 비밀 시설이었다.

총면적 52km²의 이 작은 섬은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럴 것이, 게임이 시작되며 GM들이 만든 인공 섬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웜홀 관측소>로 불리며 붕괴한 웜홀을 관측하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는 중이었다. 또한, 세계수 진영의 과학자들이 제0지구의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의 지하, 메인 연구 시설,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중이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야?”

시설의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메인 스크린에’는 붉은 기호와 문자가 마구잡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좋지 못한 신호였다.

“당장! 4번 그래프 이상 유무 확인해!”

아무래도 무슨 일이, 그것도 큰일이 벌어진 듯했다.

“해당 수치 역시 비정상입니다!”

그때, 회의실로 이어지는 자동문이 열리며 연구소의 주요 간부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 사이에서 뿔테 안경을 쓴 거구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메인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그는 이 시설의 책임자인 연구소장, 헨드릭스였다.

“아주 개판이군? 즉시 터널 봉쇄한다. 그리고 시설 주변에 경비 병력 대기시켜서 이 시설에서 우리 측 사람이든 저 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무엇이든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이내 메인 스크린에 대여섯 개의 그래프가 떠올라 복잡한 정보를 출력했다. 일반인이라면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터널 중심부의 상태는 어때?”

헨드릭스의 물음에 앞쪽에 앉아 있던 수석 연구원이 일어나 보고를 시작했다.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확실히 정상 수준은 아닙니다. 현재 수치상······ 기존과 비교해 약 12만 배 빠르게 복구되고 있습니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끔찍한 결론을, 제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웜홀이, 내일 새벽 안으로 열릴 겁니다.”

웜홀이 다시 열리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GM 애들은 뭐래?”

“그게······ 월터, 그 양반도 모르겠답니다.”

그 대답에 소장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인간들, 요즘 들어 모르는 게 부쩍 많아졌군? 젠장, 당장 아사달에 연락해서 여기 좀 심각한 것 같으니까 신경 좀 팍팍 써달라고 해.”

그는 다소 성급한 발언을 하면서도 신중한 눈동자로 그래프를 훑으며 연구원들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상황 속, 눈동자를 다른 방향으로 굴리는 사람이 있었다.

장발을 뒤로 묶은 남자였는데, 그는 한 발짝 물러서며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저기 티미, 이런 상황에 미안한데,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동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조용히 복도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을 지나쳐, 코너를 돌고 돌아 먼 거리에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쪽을 슬쩍 살피더니 화장실 문을 걸어 잠갔다.

철컥―

그는 화장실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왼쪽 손목을 걷은 뒤 팔뚝 안쪽을 슬며시 문질렀다. 그러자 피부 위, 숨겨져 있던 기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음성 전송 준비 중······

그는 목을 가다듬고 팔뚝의 기호에 대고는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예상하셨던 특이 사항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웜홀을 개방 중입니다. 아무래도 곧······ 위대한 자들이 다시 시스템을 되찾을 것 같습니다.”

그는 손을 벌벌 떨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리고는 숨을 들이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사백 명의 결사대가 필라델피아에서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지 이 시설을 점거할 수 있습니다. 명령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엔딩으로부터 불과 1년, 세상은 여전히 혼란하고 복잡한 상태였다.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었고 어딘가는 썩고 있었다.

***

수원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어느 야산, 그곳의 봉오리 부근에서 붉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그것들은 점점 덩치를 키우더니 이내 마치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기괴한 광경을 자아냈다.

물론, 앞서 설치해둔 눈속임 주문 덕분에 외부에서는 이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우―우―우―우―우―

봉우리의 중심, 무려 104명의 마법사가 고리 형태로 넓게 둘러앉아 그 중심으로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마나가 흘러나와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건, 한 장의 두루마리 양피지였다.

양피지는 마나를 흡수하며 펄럭거렸는데, 안쪽에 쓰인 기호들이 녹색으로 발광했다.

우―우―우―우―우―

이 회장은 멀찍이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주름진 얼굴에서는 슬며시 미소가 번져나갔다.

“미궁 가장 깊은 곳에서 얻는 파멸의 두루마기 2장, 그리고 그것의 연계 스킬, 놈들이 몇 중으로 막아서도 끝내 모든 걸 태우겠지. 그래, 그렇게 되고 말 거야.”

이 회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비스트 테러 따위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걸 놈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참, 어리석지 않은가? 언제나 그렇듯 권력을 쥔 자들은 보다 지혜로운 자의 통렬한 일격으로 바스러지기 마련이야.”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

우우웅―

이 회장 등 뒤의 공간이 타원형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질감을 느낀 이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그의 왼쪽 눈썹이 두어 번 꿈틀거렸다.

그건, 포탈이었다.

“······.”

이내 그 포탈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찾았다.”

백색 늑대와 검은 사자, 그리고 십여 명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전략정보국 소속의 ‘화이트 울프 감식반’ 그들이 여러 실마리를 밟고 밟아, 마침내 핵심의 문제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 회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

어느새 달이 사라지고 일출이 시작되었다. 주황빛이 잿빛으로 일그러진 도시를 물들였다.

Z는 그 쓸쓸하고도 웅장한 유산의 한 가운데, 깨지고 갈라진 4차선 도로 위에 서 있었다.

“······.”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허공을 잠시 바라보았다. 고개를 슬며시 움직이는 걸 볼 때, 어디론가 기를 귀 기울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그리고 실제로 그의 귀로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속삭이며 스며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쿵― 쿵― 쿵―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그곳에서부터 진동이 다가왔다. 정확히는 발걸음 소리였다.

집채만 한 보스 몬스터가 왼쪽 빌딩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거구가 움직일 때마다 갈라진 아스팔트 바닥이 뒤틀렸으며, 깨진 창문 사이로 회색의 털가죽이 얼핏 보였다.

쿵― 쿵― 쿵―

Z는 그깟 보스 몬스터에게 관심이 없었다. 비스트 테러는 그가 주도한 작전이 아니었으며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홀로는 저 성벽을 넘어 세계수의 그늘을 밟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이들, 정확히는 ‘심판관’들의 계획을 수용했다.

“······역겹군.”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찍! 찍! 찍! 찍! 찍!

이어서 더욱 역겨운 장면이 벌어졌다. 빌딩의 깨진 틈 사이, 골목, 좌측 도로 등 곳곳에서 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큰 개 만한 괴물 쥐였다. 군벌 몬스터가 끌고 다니는 것들이었다.

찍! 찍! 찍! 찍! 찍!

쥐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서로를 짓밟고 타 넘으며 어디론가 몰려가는 중이었다. Z는 쥐들의 행렬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제 어미를 따라 도망가고 있군.’

그리고 다음 순간······.

콰―과―과―과―광!

빌딩 한쪽이 폭삭 무너져내리며 그 안쪽에서부터 빛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약 서른 가닥의 빛줄기, 그것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도망치는 쥐들의 행렬을 쫓았다.

그리고 마치 믹서처럼 갈아버렸다.

촤―좌―좌―좌―좌―좌!

빛줄기, 에인헤랴르가 엄청난 속도로 이곳저곳을 헤집고 지나가자, 수천 마리의 쥐 떼가 곤죽으로 변해버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가로수, 갈라진 건물, 녹슨 차량, 그 모든 것들을 베고 우그러뜨리며 그곳 사이 사이에 숨은 괴물 쥐들을 도륙했다.

그어―그어―어어어!

아직 빌딩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보스 몬스터, 아마도 이 모든 쥐를 이끌고 다닐 것으로 보이는 군벌 몬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쥐 떼의 ‘어미’ 역시 난도질당하는 중이었다.

철―퍽!

그리고 놈에게서 터져 나온 시뻘건 선지피가 튀어, 도로 위로 끼얹다시피 쏟아졌다.

촥! 촥! 촥! 촥!

이어서 놈의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오며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량을 대열을 끈적끈적한 빨간 페인트처럼, 듬성듬성 물들였다.

마무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쿠―웅······.

이내 집채만 한 쥐의 머리가 천천히 기울어지며 자신이 쏟은 피 웅덩이 위로 고꾸라졌다. 긴 혀를 비죽 내밀고, 눈동자가 서서히 돌아갔다.

그것은 죽었다.

턱―

직후, 그것의 머리 위에 누군가 안착했다. 검붉은 갑주를 입은 여자, 그녀는 얼굴에 튄 피를 문지르며 피로 얼룩진 검을 흔들어 털어 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머리 위에 신격의 아우라가 짙은 녹색으로 피어올랐다.

발키리 그리고 바리데기로 불리는 여자였다.

그녀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도로 끝자락에 서 있는 보라색의 거구, Z를 바라보았다.

“······.”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둘 다 과묵한 성격인 걸까?

지수는 등 뒤로 에인헤랴르를 정렬시키며 저 정체불명의 상대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평범한 자가 아니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수많은 플레이어와 느낌이 달랐다.

‘쉬운 자도 아니야.’

오래전, 마왕의 부하 중 한 명이었던 암살자 ‘비보나’를 마주한 이후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온몸의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걸 느꼈다.

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 누군지 알 것 같아.”

“······.”

“네크로맨서보다 앞서 ‘조력자’에게 선택받은 적 있다는 사람, 오리지널스의 리더지?”

Z이라는 괴상한 이름은 그다지 신비주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확실해.’

이 정도 기운이라면 그 잘난 명성을 가진 자가 분명하다고, 지수는 확신했다.

“말할 줄 모르는 건 아니지? 당신 입으로 ‘먼저 선택받은 자’라고 떠들고 다녔잖아?”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그의 왼손에 쥐어져 있던 거대한 철제 케이스를 떨어뜨렸다. 그 물건이 자유 낙하했다.

텅―

그것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순간, 그의 오른손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허리춤에 닿았고, 다음 순간,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정면을 향해, 지수를 향해 뻗어 나왔다.

지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이른 새벽의 햇볕에 반사되는 금속 구멍을 발견했다. 총구였다. 엄청나게 큰 총구······.

타―앙!

대구경 리볼버가 검은 총탄을 뱉어냈다.

쉬―이―이!

검은 탄환이 직선을 그렸고 그 주변의 공간이 순간 액체처럼 일그러졌다.

퍼―억!

바닥에 엎어진 거대한 쥐의 머리, 이름 모를 군벌 몬스터의 머리가 그 파동만으로 으스러지며 사방으로 뇌수가 튀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곳에 없었다.

“······.”

Z의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좌우를 살폈다. 지수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었다.

“당신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 알 것 같아.”

지수는 이미 그의 등 뒤에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 대검을 곡선으로 들어 올리며 순식간에 Z의 심장을 찔렀다.

Z는 피했지만, 조금 느렸다. 그의 왼쪽 어깨가 칼에 걸리며 그의 비늘 갑옷이 칼날에 긁혔다. 쇠 비늘이 툭, 툭, 떨어졌다.

“······.”

갑옷만 상한 게 아니었다. 그의 어깨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려 손가락을 타고 떨어졌다.

훙!

지수는 찔렀던 검 끝을 그대로 올려쳤다. 목표는 목덜미였다. Z는 리볼버를 들어 올렸다.

텅!

검과 리볼버가 충돌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당신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 이 정도로는 네크로맨서 앞으로 다가갈 수도 없기 때문이야.”

지수는 그렇게 도발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스―

검은 일렁거림이 그녀의 어깨에 들러붙어 그녀에게 ‘도트 데미지’를 입히는 중이었다.

‘뭐지? 분명 피했는데?’

저주였다. Z가 쏘았던 첫 탄환, 그것을 피했거늘 일순간 스쳐 지나간 것만으로도 일대에 저주를 흩뿌리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타격이 없는지, 지수는 한 걸음 물러서며 검을 들어 올렸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야.’

그러자 보라색 철 가면 안쪽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작은 웃음이었다. Z의 음색은 낮고 두꺼웠다. 그리고 어딘가 차가웠다.

“그래, 발키리, 네 말이 어느 정도는 맞을 수도 있다. 네크로맨서 그자는 나에게 어려운 상대야.”

그는 다시 킬킬 웃더니 지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보라색 철 가면 안쪽에서 붉은 안광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는 몰라도······ 넌 나에게 죽는다.”

지수는 아무런 반응 없이 숨을 내쉬었다. 전력을 다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쿠―우―웅―

어디선가 엄청난 진동이 터져 나와, 파도와 같은 진폭이 발아래를 밀고 지나갔다. 아스팔트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챙! 챙! 챙!

그 충격에 겨우 버티고 있던 창문이 죄다 깨지며 유리 조각이 우박처럼 낙하했다.

지수와 Z, 두 사람 모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뭐지?”

그녀는 방심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저 멀리, 이 진동의 진앙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살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완전히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산이, 통째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다시금, Z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굳이 네크로맨서를 죽일 필요는 없어. 그의 숨통을 조이는 방법은 그것 말고도 많아. 이를테면······.”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지수는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그의 총구는 지수가 아닌, 등 뒤를 향했다.

정확히는 세계수를 겨누었다.

“······그가 가진 모든 걸,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버리는 것.”

다음 장면은 더욱 기가 막혔다. 솟아오른 산이 통째로 사라졌다. 워프된 것이었다.

‘······뭐?’

지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거대한 물체가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심지어 포탈 같은 게 보이지도 않았다. 엄청난 수준의 대규모 마법이 분명했다.

그 산은 저 멀리 천공으로 옮겨져, 하나의 거대한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네 생각처럼 오만하지 않아. 그래서 오늘을, 놈이 자리를 비울 날만을 기다렸다.”

세상은 언제나 혼란했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 전력을 다해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

아사달 중심에 세워진 행정 센터, ‘오더 타워’는 세계수의 그늘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빌딩 중 하나였다.

그곳의 22층은 ‘총장 사무실’로 성우가 평소에 머무는 곳이었다.

째깍― 째깍―

사무실 안, 고요 속에서 시계 소리만이 울렸는데,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흔적이 역력했다. 책상과 책장 위에 먼지가 옅게 쌓여 있었으며 미르가 씹던 거로 보이는 뼈다귀 하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째깍― 째깍―

그 오래된 고요를 깬 건, 웬 폭풍이었다.

후우우우!

창문 밖, 오더 타워를 향해 무언가 날아들더니,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틀어 외벽을 스치고 올라갔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흰색 물체였다.

쿵―

그것은 오더 타워의 옥상에 착륙하며 빌딩을 적잖이 흔들어댔다.

그 소음은 일대에 퍼졌고, 지상 1층에 마련된 ‘아사달 지휘통제실’에 있던 경수는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뭐, 뭐야!”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오더 타워의 옥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채 방대한 크기의 날개를 펼친 괴생명체······ ‘본 드래곤’이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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