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31화 (231/244)

외전) 엔딩 이후의 시대 - 2

1년 전 시작된 네크로맨서의 통치, 그의 손아귀에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이는 누구일까?

네크로맨서에게 한 번 크게 당한 인물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반체제 사상을 가진 이들이 뭉쳐 ‘오리지널스’를 세웠다.

“네크로맨서는 우리의 모든 걸 앗아갔어.”

백발의 노인이 과거를 곱씹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옆, 양손을 모은 채 공손히 서 있는 젊은 여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뤄온 모든 걸, 송두리째······.”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끄덕이기만 하는 걸 보아하니 말동무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돌려줄 차례가 된 거야. 그리고 그게 내가 아는 한, 세상의 이치야.”

이렇게 울분을 토하는 이는 의정부 ‘재건 동맹’의 우두머리였던 ‘불도저’ 이영환 회장이었다.

한때 한국 서버를 패권을 노리기도 했던 그였지만, 북한산 ‘이무기 굴’에서 네크로맨서에게 패배한 이후 잠적했다. 그리고 끝내 살아남아 이렇게 오리지널스의 주요 멤버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금, 어느 산사의 벤치에 앉아 눈앞에서 벌어지는 어떤 마법 현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우우우―

“저것만 완성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뜻대로 될 겁니다.”

수백 명의 마법사가 단 하나의 마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세계수 진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지난 며칠 동안 공들여 산 전체에 ‘눈속임 마법’을 씌운 상태였다.

우우우우―

시뻘건 빛깔로 번쩍이는 그 마법 현상은 기묘하면서도 어딘가 기분 나쁜 기운을 내뿜었다.

“회장님, 방금 손님이 도착했답니다.”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말했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저 아래로 ‘수원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는 걸 보아하니 이곳은 수원의 외곽, 어느 산자락에 있는 산사였다.

“······썩을 것.”

월드컵 경기장 너머로 세계수가 보였다. 그 거대한 신성한 나무는 어찌나 거대한지 마치 눈앞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의 그늘, 정확히는 찬란한 빛으로 반짝이는 나뭇가지 아래, 아사달이라는 이름의 웅장한 도시가 빼곡하게 세를 늘려나가고 있었다.

“저 나무를 내 기필코 베어 넘기리라······.”

우우우우―

그 말과 함께, 눈앞에서 벌어지던 어떤 마법 현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조금 안정된 빛이 넘실넘실 넘치며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무언가, 완성된 것이었다.

“이 선생, 오래 기다리셨소?”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Z, 딱 맞춰서 오신 겁니다.”

“그럼 다행이군.”

절그럭― 절그럭―

그리고 묵직한 걸음걸이가 다가왔다.

“Z, 이 먼 곳까지 직접 오시다니······ 오시는 길은 평안하셨습니까?”

“그야 하이퍼 게이트를 탔으니,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이 또 없을 테니 당연하오.”

Z라는 이는 범상치 않은 차림새였다. 키는 2m가 넘어 보였으며 보라색 비늘 갑주에 보라색의 철 가면을 썼다. 그리고 제 몸집만 한 철제 케이스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쿵―

그가 철제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자 바닥에서 모래 먼지가 퍽, 하고 치솟았다.

“저게 그 궁극의 마법?”

“맞습니다.”

“······.”

“저 나무와 저 도시를 통째로 날릴 겁니다.”

“정말로 가능한가?”

Z의 회의적인 물음에 이 회장은 숨을 크게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Z, 이 노인네가 감히 장담하건대, 네크로맨서는 지난 1년 동안 쌓는 것에 긴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오로지 무너뜨리기 위해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든 면에서 놈의 조건이 좋았지만, 무릇 무엇이든 쌓는 것보다 무너뜨리는 게 더 쉽지 않겠습니까? 저는 쉬운 일만큼은 절대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게 사업의 기본이죠.”

Z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묘한 가면을 쓰고 있으니 그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수긍하는 건가? 당최 알 수가 없군.’

제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이 회장이라지만, 이 덩치 큰 괴인의 가면 안쪽 표정만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아드리안이 잡힌 모양인데, 대규모 소환 작전에 차질은 없나?”

“아, 괜찮습니다.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야 원래 시선을 끌어주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겁니다.”

“역시 사업하던 분은 마인드가 다르군? 당신이 날 찾아와서 다행히야.”

“아니요. 당신이 날 받아줘서 다행입니다. 이 늙은이가 마지막 사업을 걱정 없이 양껏 진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Z는 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 회장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젊은 시절 이후 언제나 누군가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바닥에 놓인 검은 철제 케이스에 시선이 갔다.

“이 상자 설마······ 그 검이 담긴 겁니까?”

그 질문에, Z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 회장을 바라보았다. 약간의 경계가 느껴졌다.

“그렇소.”

“이게 바로 엑스······ 칼리······.”

이 회장은 그 단어를 아주 조심스레 읊조렸다. 심지어 마지막 발음은 미처 소리 내지도 못했는데, 마치 왕족의 존함을 대하듯, 함부로 언급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Z의 눈치를 봤다.

“······.”

하지만 Z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 검과 당신의 신격이라면, 네크로맨서의 목을 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본 당신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Z는 슬며시 이 회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면 안에서 옅은 숨이 번져 나왔다.

“모르오. 절대적인 건 없소.”

회의적인 반응에 이 회장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과거, 젊은 사업가였던 시절, 지역구 정치인에게 아부를 떨었다가 떨떠름한 반응을 맞이했을 때처럼 민망하고 걱정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때, Z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 나무를 날린 다음이라면, 내가 그 폐허 위에 왕국을 세울 수 있을 것 같군.”

이 회장은 이 대답의 뜻을 알았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라고, 간접적으로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긍정적인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가 그 토대를 마련해드리죠.”

“······.”

“그리고 Z, 당신은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네크로맨서가 들었다는 그 목소리, 조력자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먼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Z가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내가 쫓아냈지만, 그랬지.”

***

제213기동대는 수원시 외곽의 폐공장을 완전히 점거했다. 세계수 진영의 본진인 아사달로부터 약 5km 떨어진 곳이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손을 움직이거나 입 벌려도 죽는다. 그리고 고개만 들어도 죽는다.”

대원들은 제압한 오지리널스 조직원을 일렬로 세운 뒤 무릎을 꿇렸는데, 그 숫자가 41명이었다.

“엄청 많네. 무슨 축제라도 했나?”

“안쪽 놈들도 합치면 거의 백 명 되겠는데?”

심지어 아직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걸 볼 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숫자였다.

게릴라 전도 아닌 소규모 테러를 일삼는 조직이 이 정도 규모로 움직인다는 건······.

“이거 좀 불안하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이러면 통제실 쪽에서도 난리 났겠다.”

“성문 전면 통제 들어갈 것 같은데?”

경수가 실장으로 있는 ‘총괄 통제실’은 아사달 전역의 행정을 맡고 있었는데, 이곳의 소식을 들은 직후 경계태세를 상승 조정했다고 한다.

“아, 씨!”

그때, 한호와 인호는 폐공장에서 달려 나왔다.

“아, 진짜! 형! 그걸 놓치면 어떡해요!”

문제가 발생한 듯했다.

“지금 누굴 탓해? 누가 가까이에 있었는데!”

“형이 현장 책임자고 저는 포로인데요?”

두 사람이 잠깐 한눈판 사이에 심판관, 아드리안이 탈출하고 만 것이었다.

허스트 공방에서 특수 제작한 ‘대인용 전기 그물’로 포박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 크나큰 오산이었다.

“아오! 빨리 타기나 해!”

두 사람은 서둘러 히포그리포 한 마리에 올라탄 뒤, 날아올라 상공에 떠 있던 비행선 ‘우듬’에 탑승했다. 그리고 서둘러 함교로 들어갔다.

“아직 멀리 못 갔을 거야.”

인호는 함교 승무원들에게 수색 명령을 내리고 함장 자리에 앉았다. 정확히는 제독의 자리였다. 인호는 세계수 함대의 제독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이면 사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도망치는 걸 막지 못했어.”

“앵? 그건 아닌데요? 잡자마자 손을 묶어야죠. 그건 쟤들도 할 줄 아는 건데요?”

“······.”

아드리안은 오리지널스의 고위 책임자인 ‘심판관’ 중 하나로서,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나름 탈출구를 마련해놓은 듯했다.

“진짜로 그걸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합리화하지 마시죠?”

아드리안은 일명 ‘랜덤 점퍼’라는 걸 사용했는데, 어떤 환경에서건 주변 500m 이내로 무작위 ‘텔레포트’할 수 있는 상당히 귀한 아이템이었다.

인호가 함대 상황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에 심판관이 직접 나타난 걸 보면 평소처럼 신경 거스를 목적이 아니야.”

“애초에 뭐, 나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긴 했잖아요? 꿍꿍이가 있어요.”

네크로맨서가 부재중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놈들의 움직임은 실로 격렬했다. 가장 두려운 존재가 없으니 적극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놈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야.’

인호는 아사달 총괄 통제실에 연락하여 ‘경계태세’를 상승 조정하게 했다. 심판관이 주변에 있으므로 당장 대규모 테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때, 승무원 한 명이 보고했다.

“제독님 전략정보국의 ‘화이트 울프 감식반’이 현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화이트 울프 감식반, 그들을 정훈이 국장으로 있는 정보 기구 ‘전략정보국’의 산하 조직으로, 사이코메트리처럼 흔적 감지 혹은 추적 능력을 지닌 이들이 소속되어 안보에 위협이 되는 적들을 식별하고 추적하는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구성원으로는 ‘백색 늑대’나 ‘검은 사자’와 같은 수인들이었는데,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인 백색 늑대가 ‘감식반장’을 맡고 있었다.

“좋아, 그 심판관 놈이 떨군 아이템, 완드였나? 그것부터 곧장 확인하라고 전해줘.”

그들이 도착했다면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아내어 추적에 도움을 줄 것이었다.

우우우우―

폐공장 상공에 떠 있던 비행선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며 서치라이트를 사방으로 펼쳤다.

“후······ 괜찮아. 어차피 한 번 우리 눈에 띈 이상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인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느끼기에도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크로맨서와 발키리가 없다는 사실이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놈들은 지금이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고 할 거다. 즉, 평소보다 훨씬 강력한 한 방을 준비했을 거야.’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전방에 하이퍼 게이트가 발견되었습니다!”

인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젠장, 하이퍼 게이트?”

저 멀리 폐허가 된 도심 속에서 피어오르는 파란색의 대형 포탈이 보였다. 이는 대규모 공간 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전 병력, 해당 하이퍼 게이트를 포위한다!”

우우우우―

비행선 3척이 세 방향으로 흩어지며 나아가 하이퍼 게이트를 포위했다.

비행선에서 기동대원들이 내려오며 버려진 건물 옥상에 안착, 저격을 준비했으며 일부는 소형 공성 병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사달 동부 거주지가 불과 5km 밖이다! 하이퍼 게이트에서 뭐가 나오든 절대로 이 자리를 벗어나게 해선 안 된다!”

인호의 외침에 승무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형, 저거······ 비스트 테러겠죠?”

“······아마도.”

비스트 테러(Beast Terror)는 ‘보스 몬스터’를 조종하여 플레이어 거주 지역을 공격하게 만드는 테러 방법이었다.

이는 게임 초창기, ‘진화 학회’가 영등포에 보스 몬스터 ‘오우거 투사’를 소환하여 날뛰게 만든 것과 흡사한 방법이었다.

“더러운 자식들, 불만 있으면 직접 나와서 맞서야지 매번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보내?”

전략정보국에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오리지널스는 몬스터를 구속한 채 먹잇감 즉 ‘경험치’를 공급하여 ‘보스 몬스터’를 양산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보스 몬스터를 세계수 진영의 요충지에 소환하여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고 타격을 주는, 최악의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떤 끔찍한 걸 키워냈나 한번 보죠. 뭐, 어차피 저한테는 맛있는 경험치가 될 거예요.”

한호가 자신감을 표하며 하이퍼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40레벨에 신격까지 보유한 그였기에 웬만한 보스 몬스터는 혼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독님! 긴급 무전입니다!”

첫 번째 비보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아사달 남부 경계에서도 하이퍼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방금, 거대한 두꺼비 형태의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뭐?”

비스트 테러는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이번에는 북부 초소의 긴급 무전입니다! 그곳에서도 하이퍼 게이트가 열리는 중입니다!”

그것도 무려 3곳에서 시작되었다.

“이 자식들, 작정하고 지랄을 하는군!”

그때 한호가 급히 돌아섰다.

“헐? 형! 제가 이쪽 맡을게요! 나머지 좀 어떻게든 알아서 해줘요! 또 바보 같이 놓치지 말고!”

한호 곧장 선루 갑판으로 나가, 비행선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현무를 소환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화신 발현(현무)’이 시작됩니다.

이내 거대한 회색의 폐허 사이에서 짙은 녹색의 신수(神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고―오―오―오―

1년 전보다 2배는 더 커진 몸집과 더욱 짙어진 녹색 아우라가, 무려 40레벨에 이른 한호의 힘을 어느 정도 증명해주는 듯했다.

“하이퍼 게이트 열립니다!”

때마침 하이퍼 게이트가 진동하며 무언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 등장입니다!”

그어어어!

첫 번째로 머리가 3개 달린 오우거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등장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보다 몇 배는 강력한 존재였다.

‘필드 몬스터’ 급으로서, 엔딩 전이었다면 한 서버의 지배자 격이었다.

우어어어!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몸집이 20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소, 미노타우로스가 등장했다.

나름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인 만큼,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권능을 지녔을 것이었다. 외에도 보스 몬스터가 3마리나 비집고 나왔다.

“어서 와! 경험치 배달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호는 그것들을 즐겁게 맞이하며, 현무가 냉기의 폭풍 쏘았다.

푸우우우―

보스 몬스터들을 등장과 동시에 새하얀 눈보라에 휩쓸리더니 그대로 얼어붙어 마치 얼음 조각상처럼 변했다. 아직 죽지 않았지만, 한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그 위로 현무가 달려들어 육중한 몸집으로 보스 몬스터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펑! 펑!

그리고 현무 위에 타 있던 한호가 6개의 손을 들어 올려 거대한 캐논을 난사하자 트리플 헤드 오우거의 머리 하나가 터지는 게 보였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빈틈투성이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손꼽히는 강자는 분명했다.

“좋아, 여기는 저 녀석이 알아서 할 거야. 우리는 즉시 남쪽에 열린 하이퍼 게이트로 간다.”

하지만 여전히 전 지역을 커버할 수는 없었다.

“제독님, 북쪽 하이퍼 게이트는 어떻게 할까요? 현재 그쪽으로 제3 방위군이 서둘러 출발했지만, 그들만으로는 보스 몬스터를 막을 수 없으니 헌터 등급의 부대를 보내 달라고 합니다.”

‘헌터 등급’의 부대는 20레벨 이상, 10인 이상으로 구성된 부대를 말하는데, 웬만한 보스 몬스터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뜻했다.

“그런데, 우리 쪽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엔딩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강해진 건 아니었다.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올리는 플레이어는 극소수가 되었으며, 그런 이들은 대부분 월드의 안정화를 위해 외국 서버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괜찮아. 그쪽은 이사벨라가 갈 거야.”

다만, 세계수 진영에도 이런 일을 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 어떤 보스 몬스터가 머리를 들이밀더라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존재, 보스 몬스터들의 보스 몬스터, 드래곤이었다.

그러나······.

“저, 제독님? 저, 그······ 레드 드래곤은 현재 아사달에 없습니다.”

그 말에 인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아, 썅······ 맞다. 미르의 탈피 때문에 어제 새벽에 아마존의 레어로 출발했지?”

이사벨라는 성체가 되어가는 블랙 드래곤 헤츨링, 미르의 유모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첫 번째 탈피가 다가오자 ‘레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탈피해야 버프를 받을 수 있다며, 오늘 새벽 아마존으로 떠났다.

“대체 어떻게 딱 이 타이밍에······.”

이쯤 되자 뭔가 이상했다. 놈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부 알고 있었던 걸까?

“······수상한데?”

네크로맨서는 장기간 부재중, 발키리는 호주에 출현한 필드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급파된 지 3일째, 그리고 이사벨라는 바로 오늘······ 하필이면 바로 오늘 아마존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이런 공세를 감행한다?

‘그렇다면 아사달을 지키고 있던 한호를 납치한 건 한호가 마지막 남은 방패라는 걸 알고 아사달의 수비에 완전한 공백을 만들기 위함이다.’

인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저 멀리, 남쪽에 열린 하이퍼 게이트가 보였다.

“설마, 내부에 배신자가 있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1년,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급성장했기에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구멍이 많기 마련이었다.

정훈의 ‘전략정보국’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보 전쟁을 펼쳤지만, 끝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복잡해지네. 슬슬 감당하기 힘들어지는데 이럴 때 성우 씨는 어디에 있는 거야?”

***

성우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집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담의 갈비뼈(3번)

- 등급 : 신화

- 분류 : 알 수 없음

- 효과 : 알 수 없음

“그래, 드디어 마지막 뼈를 찾았군?”

대산맥의 왕이 물었고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금, 위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던전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걸 얻으면 이제, 너희도 인간의 모습을 탈피하고 나 같은 몬스터가 되는 건가?”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너 같은 털가죽 달린 짐승이 되는 건 아니야.”

그 대답에 대산맥의 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 뜨고 입을 쩍 벌렸다.

“세계의 지배자께서 그렇게도 감수성 부족한 발언을 하시다니, 부디 몸보다 입을 조심하게.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 탄핵감이야! 그리고 털이 아니라 비늘 달린 짐승이 되겠지!”

성우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아담의 갈비뼈를 오른이에게 건넸다.

딱딱!

오른이는 제 배낭을 열어 그 갈비뼈를 집어넣었다. 안에는 그것과 비슷한 물건이 대여섯 개쯤 들어 있었다.

‘이걸로 신화 퀘스트는 끝이다.’

약 11개월 전, 세계수 완성 단계에 이르며 ‘신화 퀘스트’의 조건 일부를 만족했다.

하지만 곧장 ‘용인족’이 되는 건 아니었다.

‘드래곤의 부화와 세계수의 완성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시작······.’

사실 그건 퀘스트 내용을 자세히 살피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신화 퀘스트]

- 이름 : 종족의 기원(용인족)

- 유형 : 알 수 없음

- 목표 : ‘진화의 단서’를 찾아라

- 보상 :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

당신은 두 개의 ‘절대적인 씨앗’을 손에 넣었다. 하나는 자라나고 있는 강력한 종족 그 자체이며, 나머지 하나는 초월적인 힘을 품을 수 있는 생명의 그릇이다.

두 가지의 씨앗이 운명적인 조건을 하에 융합된다면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킬 것이다.

* 정체불명의 알이 ‘부화’하고 세계수가 ‘완성’ 단계에 도달할 때 ‘진화의 단서’가 공개됩니다. (두 가지 씨앗 중 어떤 것이라도 손상될 시 실패합니다.)

이 메시지에 따라 ‘진화의 단서’가 공개되었다.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월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아담의 뼈’를 모두 모으라는 퀘스트가 발행된 것이었다.

‘쉽지 않은 퀘스트였다.’

그리고 무려 근 4개월의 투자하여 그 퀘스트 아이템을 방금, 마침내 다 모았다.

“앞으로 벌어질 꼴이 참 기가 막히겠어? 세계수 진영에 속한 14만 명의 플레이어가 일제히 드래곤으로 변한다는 게 아닌가? 음, 그런 점에서 말일세, 집을 너무 작게 지은 거 아닌가?”

대산맥의 왕이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그건 성우도 알 수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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