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30화 (외전) (230/244)

외전) 엔딩 이후의 시대 - 1

게임은 끝났다.

정확히는 이 세계를 종말로 몰아가던 유희로서의 게임은 ‘최선의 엔딩’을 맞이하여 종료됐다. 네크로맨서가 GM들을 처단하고 차원의 통로를 붕괴시킴으로써 이룩한 결말이었다.

다만 ‘게임성’ 즉 ‘시스템’은 유지되었으며 그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바야흐로 ‘포스트 엔딩(Post-ending)’시대입니다.”

ON AIR 불빛이 깜빡이는 스튜디오 안,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스템은 멀쩡히 존재하고 있으나 관리자는 없는 시대, 시스템이 하나의 자연현상이 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자연현상을 정복하고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들, 바로······ 자발적 플레이어가 된 우리들의 시대입니다.”

안 기자, 아니, 이제는 ‘안 국장’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는 드넓은 스튜디오에 앉아, 언제나 그렇듯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잘 정돈된 스튜디오 곳곳을 채우고 있는 전문 장비와 수십 명에 달하는 스텝을 보건대, 이제는 제대로 된 방송국 구실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이 왔습니다.”

그가 그렇게 운을 떼며 걸음을 옮겼고 카메라가 그의 움직임을 쫓아갔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방송 화면 왼쪽 상단에 타이틀이 박혀 있었다.

- 엔딩 1주년 특집 방송 : 네크로맨서와 세계수의 시대, 그리고 우리의 시대, 다음 시대는?

“자, 그간 우리의 삶은 어땠습니까?”

안 국장이 대형 스크린 앞에 멈춰 서, 사뭇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엔딩 1주년을 맞아 잠깐이나마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 지금부터 저와 함께 과거로 가시죠.”

화면이 바뀌었다.

안 국장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드높이 솟은 세계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장면 위로 안 국장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울렸다.

“시작은 다 좋았습니다. 네크로맨서의 통치는 음······ 솔직히 성공적이었으니까요.”

웬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세계수 함대가 ‘하이퍼 스페이스’를 통과하여 세계수의 그늘로 들어오는 장면, 그건 1년 전,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귀환하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메신저호에서 내려오는 암녹색 로브의 남자,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절대 종족, 마왕, GM으로 이어지는 거친 전투를 연달아 치렀음에도 그 어떤 변화도 없이 평소처럼 담담하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모두가 그를 격렬하게 환영했다.

“네크로맨서, 그는 지구의 구원자이자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로서 이 땅에서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 같았던 질서와 평화를 다시금 이룩해냈습니다. 이걸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요?”

이어서 세계수 진영에서 열린 대규모 파티 장면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음식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춤을 췄다. 스켈레톤과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마치 먼 과거를 추억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같았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전쟁과 파티가 끝나고 일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해나갔죠.”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는 장면이었다.

쿠구구구······

중장비와 트럭들이 수원의 도심을 지났다. 전사들은 자재를 나르고 마법사들은 복구 불가능한 건물을 철거했다. 프리스트들은 그들에게 피로 해소의 축복을 걸어주었다.

“계속, 계속 발전했죠.”

그런데 그때, 그 현장을 한 무리가 습격했다.

그어어어!

오우거 무리였다. 아직 도심 곳곳에 잔존 몬스터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뭐 이런 방해물은 종종 있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 습격은 오우거의 사체가 도축장에 쌓여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아이템을 모으며 잃어버린 세계를 재건해나갔습니다. 네크로맨서와 세계수 진영의 아래에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금방이라도 과거의 영광을 찾을 것 같았죠.”

이어서 세계수 진영을 원경으로 찍은 영상이 빨리 감기로 이어졌는데, 세계수 주변의 도심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서 안 국장의 모습이 떠오르더니, 그가 도심의 상공을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가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우리는 매일 매일 높아졌고 넓어졌죠.”

그의 걸음걸음마다 마천루가 솟아오르고 대규모 마법 공학 공장이 줄지어 들어섰다.

그의 머리 위로 수십, 수백 대의 비행선이 떠올랐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등 뒤로 세계수의 줄기가 가파르게 자라나며 세계수의 그늘이 확장되었다.

마침내 거대한 도시가 탄생했다.

“신세계의 구심, 아사달······.”

도시의 이름은 ‘아사달’이었다.

성스러운 나무인 ‘신단수’가 수호하는 고조선의 도읍, 그곳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수백 년의 평화가 이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저도 정말 그럴 줄만 알았죠. 하지만 어느 날,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그의 말이 멎는 순간, 화면이 정지했다.

안 국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고, 그는 비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깨달았죠. 영화는 평화는 없다는 걸······.”

쾅! 쾅! 쾅! 쾅!

그의 좌우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이어서 그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격한 표정의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 나왔다.

그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세계수를 태워라!”

누군가 세계수 진영을 습격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몬스터가 아니라 플레이어들이었다.

“······테러가 시작되었습니다.”

화면에는 한동안 폭발, 불길, 마법, 함성, 혈흔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예, 그렇습니다. 평화가 찾아오자 중화사상, 이슬람 극단주의, 백인우월주의, 민족주의, 지역주의 등 과거의 그릇된 사상들이 평화를 양분으로 다시금 움텄습니다. 그들은 세계수 진영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하나로 힘을 합쳤고 그렇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거죠.”

화면에 붉은색 폰트가 떠올랐다.

- O R I G I N A L S

“그들은 자신들을 ‘오리지널스(Originals)’라 칭합니다. 시스템에 의해 조작되지 않은 ‘원본 인류’로서 지구의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의미죠.”

오리지널스(Originals), 굳이 해석하자면 ‘원본’이라고 해야 할까?

이는 시스템의 힘을 빌려 이루어지는 통제를 부정하고 종교와 과학 등 인류 본연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었으나, 실상은 그들도 시스템을 이용하여 투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한번 폭력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오리지널스는 네크로맨서를 타도하며 세계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공격해······.”

그때였다.

“저, 국장님······.”

화면 안으로 누군가 뛰어들어왔다. 방송국 스텝이었는데, 안 국장에게 급히 귓속말을 전했다.

실상 방송사고에 가까운 장면이었는데, 그런 문제를 감안할 만큼 위급한 상황인 듯했다.

“······.”

안 국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그는 숨을 들이켜며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특집은 여기서 끝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뉴스 속보입니다.”

화면 상단의 타이틀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 긴급 속보 : 오리지널스, 아사달에 13차 테러 감행······ 트리 가드 “상황 파악 중”

“네크로맨서가 자리를 비운 사이를 노린, 오리지널스의 테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근 일주일 사이에 벌써 3번째 테러인데요. 이번에는······.”

그는 카메라를 지그시 응시하며 한층 나직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심각한 것 같습니다. 트리 가드의 지휘관, 일명 경비대장이라고 불리는 ‘현무’ 최강돚거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세계수 진영의 영웅 중 하나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

그렇다. 현재 ‘아사달’에는 네크로맨서가 없었다. 그가 모종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지 언 23일째였다.

그의 부재는 철저한 기밀이었지만, 그 정보는 미상의 경로로 새어 나갔다. 그러자 지난 며칠 사이, 오리지널스의 테러가 노골적으로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가 없는 세계수 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약소한 상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 이건 다신 없을 기회야.”

굵직한 목소리가 폐공장을 울렸다.

끼익―

반쯤 뜯겨 나간 철문이 열리며 무법적인 발걸음이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심판관님, 오셨습니까?”

공장 안에서 대기 중이던 사내들이 좌우로 비켜섰고 그 사이로 발걸음의 주인, 선글라스를 쓴 히스패닉계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대머리 남자가 그를 맞이했다.

“심판관님, 환영합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으로 모시게 돼서 죄송······.”

“저놈인가?”

‘심판관’이라 불린 남자가 고갯짓으로 기둥에 묶여 있는 포로를 가리켰다.

포로는 양손이 앞으로 묶여 있었는데, 밧줄 위에 보라색 사슬 아이콘에 떠올라 있는 걸 보아하니 마법 아이템으로 구속된 듯했다. 설계상 혼자서는 절대로 풀 수 없었다.

심판관은 마음 놓고 가까이 접근했다.

“맞습니다. 저놈이 트리 가드의 지휘관입니다.”

그 포로는 세계수가 있는 도시 아사달을 지키는 ‘트리 가드’의 지휘관, 다름 아닌 한호였다.

“······.”

한호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정신을 잃은 것일까?

하지만 선글라스의 남자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더니, 한호의 뒤통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손 잘 묶고 아이템은 모두 회수했지?”

“물론입니다.”

완전히 묶여 있다고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이 남자는 한국 서버 랭킹 3위의 플레이어가 아니던가? 심지어 전 세계에 단 11명만 존재한다는 ‘신격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만일 풀려나서 날뛰기라도 한다면······ 이들만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스페인 서버에서 온 심판관, 아드리안은 긴장을 최대한 숨기며 한호를 살폈다.

‘솔직히 나도 상대가 안 된다.’

그는 스페인 랭킹 3위의 강자이며 유럽 최고의 빙결 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한국 서버에서는 감히 내세울 수 없는 성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한국 서버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인 ‘현무’가 아니던가?

‘하지만 아이템을 빼앗고 손발을 묶어 놓으면 웬만한 스킬을 쓸 수 없으니 무방비 상태다.’

심판관은 그의 팔이 철저하게 묶여 있는 걸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6개의 팔을 다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망토는 없으니까 괜찮다.’

6개의 팔은 ‘아수라의 망토’ 아이템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었기에, 아이템을 모두 압수한 지금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눈동자가 바삐 움직인 뒤에야 꾹 다물고 있던 입이 열렸다.

“그래, 그래, 그래, 세계수 진영의 영웅 중 하나가 드디어 이렇게 내 앞에 묶여 있구나!”

오리지널스 조직원 한 명이 그의 등 뒤에 철제 의자를 가져왔다.

그는 의자에 앉더니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는 한호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거북이! 나는 오리지널스의 심판관 중 한 명인 아드리안이라고 한다.”

한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치켜세우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앞으로 얘기할 시간이 좀 많을 거야. 우리가 궁금한 게 좀 많거든? 네크로맨서가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는 건지, 그게 제일 궁금한데 너는 알고 있겠지? 사실 너희는 네크로맨서만 없으면 우리······.”

와그작!

어디선가 들린 이상한 소리,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심판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조직원들 역시 무슨 소리인지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만, 심판관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계속 이어갔다.

“······뭐,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그래, 네크로맨서만 없으면 너희는 금방 무너지고 말 거란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게 바로 오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와그작!

“······어. 발키리마저도 호주에서 탄생한 레이드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러 갔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왔거든! 그게 너희의 한계다. 의지와 믿음이 아니라 오로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게임 시스템에 의지해······.”

와그작!

계속되는 수상한 소리, 아드리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조직원을 쳐다보았다.

“······뭐야?”

조직원들을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 그게 잘······.”

두 번이나 연달아 들리는 수상한 소리에 모든 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그때······.

와그―작······

또 한 번 들리는 그 소리, 그런데 이번에는 다소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응?”

그 순간, 아드리안과 부하들은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기둥에 묶여 있는 포로, 한호였다.

“아, 아하하······ 들켰네.”

한호는 아드리안을 올려보며 씩 웃고 있었다.

와그작!

한호의 윗옷 안에서 올라온 정체불명의 손이 남몰래 재갈을 내리고 있었고 어깨를 타고 넘어온 다른 손이 팝콘을 한 주먹 집어넣고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유가 설마? 아드리안과 조직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뭐, 뭐, 뭐야!”

텅!

아드리안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다가 철제 의자를 넘어뜨렸다. 그는 선글라스를 내리며 한호를 쳐다보더니, 손가락질해댔다.

“파, 팔이 있잖아! 아이템은 전부 회수했다며!”

한호의 진짜 팔은 마법으로 묶여 있었는데, 등 뒤에서 2개의 팔이 더 나와 있는 것이었다.

“아? 망토는 분명 압수했습니다!”

조직원은 그렇게 항변하며 고개를 돌렸다.

먼지가 쌓인 낡은 책상 위에 한호의 아이템들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을 십여 명의 조직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망토는 분명 거기에 있었다.

“화, 확실합니다!”

그때, 한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호 형, 들리죠? 저 팝콘 먹기 4번 성공했어요! 제가 이겼죠? 약속대로 서큐버스 고화질 사진집 2권, 내놓으시면 됩니다. 으흐흐······.”

한호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아드라인을 올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으, 웅크려서 먹느라고 체하는 줄 알았네! 그래도 뭐, 스릴 넘치고 좋았어. 다들 어렸을 때 교실에서 과자 몰래 먹는 거 해봤잖아?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 나더라고?”

어느새 그의 등 뒤에서 4개의 팔이 꿈틀꿈틀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몸 이곳저곳에 묶여 있는 밧줄을 훌렁훌렁 푸는 게 아닌가?

그는 나름 프리스트인 만큼, 이제는 ‘주문 해제’ 스킬도 쓸 수 있는듯했다.

“······어?”

제 손으로 구속을 풀고 일어나는 포로라니, 폐공장 안의 기류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어, 어떻게······.”

한호는 여유 넘치게 기지개를 켰다. 한호의 티셔츠 안, 등 쪽 피부에 검은 문신이 얼핏 보였다. 손바닥 모양이었다.

“나도 이게 좀 신기한데, 문신으로 스킬을 쓸 수 있다니? 그치?”

발전한 ‘마법 공학’은 상식 밖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다양한 기술 및 학문과 접목하여 발전했는데 ‘마법 생명학’ 역시 그중 하나였다.

마법 생명학의 대표적인 사례가 몸에 새겨 넣은 ‘문신’ 안에 아이템 능력을 전이할 수 있는 ‘바디 인챈트(Body enchant)’ 였다. 다소 위험한 일이지만, 이렇듯 기발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내가 듣기론 GM들의 기술도 결국 미래 인류의 기술이라서 어느 정도 해독해냈다나? 아무튼, 이게 엄청 대단한 기술이란 말이지!”

자세히 말하면 ‘나노 테크놀로지’를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되어서, 체내에 들어 있는 나노 로봇의 상태를 제한적으로나마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이게 너무 힙해서 나 같은 태생적인 찐따는 좀 부끄럽고 막 그래······.”

한호 역시 등에 새겨진 문신을 통하여 ‘아수라 망토’의 효과를 일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등에 그려진 문신이 멋쩍은지 긁적였다. 그가 추구하는 ‘간지’와는 거리가 있는듯했다.

“쉽게 말해서, 모르면 그렇게 입만 쩍 벌리고 당해야 하는 거야. 이 멍청이들아.”

한호가 한 발짝 다가가자 조직원들이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섰다.

“으흐흐······.”

전부 겁에 질린 표정을 보며, 한호는 자신이 한 마리 호랑이가 된 것 같다는 망상을 했다.

“그나저나 네가 그 심판관이라는 놈이구나?”

“······.”

아드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됐다. 귀찮게 꼬리에 꼬리 물고 찾으러 가야 할 줄 알았는데 아주 넝쿨째 들어왔네?”

심판관은 오리지널스의 핵심 간부로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기밀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드리안은 그제야 뒤통수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나를 끌어내기 위해서 잡힌 건가?”

“응. 근데 이렇게 제 발로 나올 줄은 몰랐어.”

아드리안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져나갔다. 그는 곧장 주머니 안에서 작은 완드(Wand)를 꺼내 들어 한호를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의 조직원이 제각기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워, 워, 친구들, 잠깐만, 팝콘 좀 먹으면서 잠깐 이야기 좀 할래?”

한호의 오른쪽 4번째 팔이 작은 팝콘 봉지를 내밀었다. 봉지에 세계수 모양이 새겨진 걸 보아하니 아사달 동부 거주 지역에 새로 생긴 극장에서 사 온 모양이었다.

“파, 팝콘은 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

한호의 몸을 직접 수색한 조직원이 물었다. 그로서는 의아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비밀이야. 좀 많이 비밀이야.”

한호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다, 닥쳐! 움직이지 마! 아무리 너라고 해도 아이템도 없이 이렇게 포기된 상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한호는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3번째 팔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저기 아저씨들, 조금만 더 생각 좀 해봐요. 내가 팝콘은 몰래 챙겨 오면서 아무런 대비도 안 했겠어요?”

그의 왼쪽 2번째 팔, 검지가 천천히 들어 제 목덜미를 가리켰다. 그곳, 목덜미에는 검은 점이 하나 있었다.

“이거 보여? 이거 사실 복점 아니다.”

그것마저도 ‘바디 인첸트’였다. 복점으로 위장한 위치추적 효과가 달린 문신이었다.

그 순간······.

콰―앙!

천장에서 폭음이 울리며 콘크리트와 철근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렇게 벌어진 구멍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들어와 한호를 비췄다.

그 주변에 서 있던 오리지널스 조직원들은 얼굴을 가리며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우우우우―

어느새 비행선 4대가 폐공장의 상공에 떠 있었으며 수십 개의 서치라이트로 일대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강하! 강하! 강하!”

이어서 고함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플레이어들이 뛰어내렸다.

쩡! 쩡! 쩡! 쩡!

그들은 바닥을 구르며 자세를 잡더니, 단거리 공간이동 ‘텔레포트’를 사용,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오리지널스 조직원들을 덮쳤다. 가까이에 서 있던 13명의 조직원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움직이지 마!”

그러나 먼 거리에 서 있던 놈들은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제, 젠장! 쏴!”

“탈출구 확보해!”

픽! 픽! 픽! 픽! 픽! 픽!

섣부른 저항과 동시에 놈들의 눈, 목, 심장에 화살이 박혔다.

어느새 ‘리피팅 크로스보우’로 무장한 이들이 폐공장의 상층부를 점거하고 실내 전체를 감시하고 있던 것이었다.

“죽기 싫으면 움직이지 마!”

“감히 누구한테 저항해?”

이들은 세계수 진영의 특수부대 ‘제213기동대’였다. ‘특별공격대’가 전신으로써, 전원 20레벨 이상의 엘리트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는 세계수 진영에서는 3번째로 강한 군대로 알려져 있으며, 단독 작전만으로도 거의 모든 서버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한호는 팝콘을 씹으며 그 난장판 속을 유유히 걸어가 빼앗겼던 아이템을 되찾아 착용했다.

“놈들이 탈출한다! 막아!”

“잡아라! 되도록 생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폐공장 곳곳에서 진압 작전이 계속되었다.

빙결 마법으로 입구를 얼려 틀어막고 폐공장 밖으로 탈출하는 놈들을 비행선이 서치라이트로 비추며 제압했다.

“제, 젠장······.”

아드리안은 서둘러 이곳을 탈출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의 앞길을 한호가 막고 있었다.

“잠깐만, 나랑 할 얘기가 많다며?”

“이, 이제 없어! 저리 가!”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열 받잖아?”

아드리안은 완드를 들어 올리며 경계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였지만, 어떻게든 도망 정도는 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와그작! 와그작!

한호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팝콘을 씹었다.

“아니 진짜, 대체 왜 우리한테 네크로맨서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네크로맨서와 함께 성장하고 네크로맨서의 가호를 받으며 발전한 세계수 진영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그리고 바로 나! 최강돚거! 무려 레벨 40에 한국 서버 랭킹 3위! 너한테 무시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랭킹 1위 네크로맨서와 불과 19계단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한호는 대형견 사이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포메라니안처럼, 고개를 치켜세우며 포효했다.

성우와 지수 사이에서 기어코 영웅 칭호를 받게 된, 상대적 약자의 설움이 터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 과잉은 누군가 그의 당찬 포효에 찬물을 끼얹어 버리며 막을 내렸다.

“아니, 틀렸어.”

“······응?”

“미안하지만, 다시 20계단 차이야.”

이건 인호의 목소리였다. 그는 어느새 폐공장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한호의 뒤로 다가오며 아드리안을 향해 무언가를 쏘았다.

퍽!

그물이 펼쳐지며 아드리안을 덮쳤고, 전류가 흐르며 아드리안을 감전시켰다.

파지지지!

“으어어어······.”

한호는 그 모습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라, 형, 언제 왔어요? 그리고 뭐라고요?”

“방금 다시 20계단 차이가 됐다. 자, 봐라.”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호에게 핸드폰을 던졌다. 한호는 왼쪽 3번째 팔로 핸드폰을 받았다.

“네? 앵?”

[KOR 서버 랭킹(1페이지)]

1) kor-157 (LV. 60)

2) kor-339 (LV. 49)

3) 최강돚거 (LV. 40)

4) 영등포 검사 (LV. 39)

5) 최윤 (LV. 31)

“······앵?”

성우의 레벨이 그사이에 또 올라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 59였거늘, 단 몇 시간 만에 60에 도달한 것이었다.

60레벨이라니, 전무후무한 성적이었다.

월드 전체에 5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가 그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보면, 60레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알 수 있었다.

“뭐야······. 선배 어디서 뭘 하길래 벌써 60레벨이야? 설마 혼자 꿀 빨려고 잠수탄 거였어? 와! 나도 데려가지 좀!”

이렇듯, 게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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