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28화 (228/244)

# 228

76) 최선의 엔딩 - 1

성우는 웜홀을 통과했다.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빛깔들이 뒤엉킨 통로를 지났다.

그렇게 단 몇 초가 지나자······.

후우우우—

백색의 빛이 터져 나오며 익숙한 하늘을 맞이했다. 하늘색과 백색이 어우러진 우주상에서 몇 없는 ‘하늘’이라는 공간이었다.

‘지구다.’

지구였다. 다른 차원의, 정확히는 ‘제0지구’라고 일컬어지는 악의 요람이었다.

지상을 향해 본 드래곤이 수직으로 하강하는 가운데, 성우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게 게이트?’

궤도 위에 거대한 고리 형태의 시설물이 떠 있었다. 일명 ’게이트’였다. 성우는 게이트의 중심을 통과하여 나온 것이었다.

“게이트 바로 아래로 간다.”

제0지구 역시 ‘버뮤다 삼각지대’ 밑바닥에 웜홀이 존재했다.

하지만 통로가 지하에 박혀 있다면 원활한 통행이 어렵기에, 웜홀을 통과하는 즉시 궤도 위의 ‘게이트’와 연결되어 허공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정보는 월터를 통해 얻었다.

‘그렇게 쉽게 제 고향을 배신할 줄이야?’

오만하고 나태한 제0지구의 인간들에게는 숭고함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원초적인 본능과 자극적인 유희 추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월터 같은 인간을 구워삶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기다!”

이내 거대한 도심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 크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보아도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드높고 드넓게 덩어리진 도심이 해안을 따라 이어졌다.

“놈들의 심장부······.”

미국 동부 해안에 있는 신생 대도시 ‘네오 알렉산드리아’였다.

저곳이 제0지구 최대의 도시라고 했다. 22세기, 인구 과잉과 자원 부족으로 기존의 대도시들이 몰락한 이후, 웜홀 근처라는 이점을 살려 급부상한 곳이었다.

’차원 약탈로 자란 기생충 같은 도시, 반드시 박멸해야 한다.’

성우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독기를 품고, 그곳을 향해 급하강했다.

그리고 수천 마리의 언데드 역시 그곳을 향해 수직 낙하하는 중이었다.

도심을 향해, 수천 개의 뼈로 이루어진 유성우(流星雨)가 낙하했다.

「당장 그만둬요! 미친 짓이야!」

조력자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울렸다.

「대답해! 내 목소리 들리잖아!」

성우의 몸속에 있는 나도 로봇으로 그 목소리를 전하는 것일까? 하지만 월터를 통하여 지엽적인 LOCK을 걸어두었기에 성우의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당장 그만두라고!」

“늦었어. 이미 엔딩이 시작됐어. 그리고······.”

성우는 본 드래곤의 머리를 밟고 일어서며 그림리퍼를 뽑아 들었다.

“이번 엔딩은 아주 교훈적일 거야.”

조력자의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1억 명이 사는 도시야!」

“그래? 그런데 그거 알아? 우리는 77억 명이 사는 행성이었어.”

그리고 그들, 네오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시1억 명 대부분은 77억 명······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인류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걸 유희로 즐겼다.

“그런 놈들이라면 1억 명쯤 죽어 마땅해.”

대답이 없었다.

포기한 걸까?

‘아니, 어떻게든 제 고향을 구하기 위해 나를 방해할 거다.’

성우는 하강 속도를 높였다.

놈들은 압도적인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 성우의 침공을 눈치채고 대응한다면, 성우 따위는 단숨에 지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도시 위로 반투명한 무언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우— 우— 우— 우— 우—

그것들은 도시의 외곽에서 뻗어 올라와 도시의 상공을 반구형으로 덮기 시작했다. 일종의 방어막 같았다.

‘설마 차폐막?’

아니나 다를까, 먼저 떨어진 언데드들이 그 막에 걸리자 눈 녹듯 사라졌다. 나노 로봇을 무력화하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차폐막이 펼쳐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고, 아주 작은 차이로, 언데드 대다수가 도시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소용없어! 내가 센터에 연락해서 조치하게 했어. 당신도 몸속에 나노 로봇이 잔뜩 있으니 저 차폐막에 걸리면 죽어. 비집고 들어가도 결국 못 나올 거야. 당장 돌아가!」

‘하지만 방법이 있다.’

차폐막은 아직 다 닫히지 않았고 성우의 권속 대부분이 그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성우와 연결된 ‘나노 로봇’이 도시 안에 다수 존재하게 됐다.

성우는 챙겨온 수소 폭탄 3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도시의 그림자 안으로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 오6%#@*%#$지[email protected]

오류 메시지, 반응이 느렸다.

‘실패는 아니다.’

마치 몸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마법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 줄 나노 로봇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된다.’

웅—

성우는 그 도심 안, 한복판에 솟아오른 마천루에 서 있었다. 옥상의 넓이만 하더라도 웬만한 야구장 넓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건물이었다.

「어, 어디로 갔지?」

성우는 그곳에 3개의 수소 폭탄을 내려놓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 00:02:59

‘3분 뒤 터진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차폐막이 도심을 거의 다 덮었다.

하지만 아직 틈이 있었다. 성우는 그 곳을 향해 ‘황혼 습격’을 사용했다.

— %#[email protected]%@@$WLD연$!

그때, 도시의 하늘에 사각형의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도시의 절반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사각형의 틀 안에 글자가 떠올랐다.

- [LIVE] 긴급 속보! “네오 알렉산드리아 상공에 UFO 출현” 당국 현재 확인 중

‘뉴스?’

다소 오래 걸렸지만, 성우의 발아래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며 ‘황혼 습격’이 적용됐다.

우우우우—

성우의 몸이 검은 회오리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수직으로 상승, 닫혀가는 차폐막을 향해 쏘아졌다.

파지지지!

성우의 몸이 차폐막의 마지막 틈을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나갔다. 성우과 탈출함과 동시에 도시가 완전히 봉쇄되었다.

‘위험했다.’

성우는 그대로 본 드래곤에 올라탔다.

“······응?”

직후, 도심을 내려다보니 그 거대한 홀로그램에 본 드래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현재 성우의 모습이 뉴스 채널의 긴급 속보에 실시간 중계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 카메라를 단 드론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성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무기가 장착되어 있을 수도 있다.’

성우는 본 와이번 무리를 움직여 다가오는 드론들을 휩쓸어 버렸다.

그러던 중, 홀로그램 상에서 본 드래곤의 머리 부분이 클로즈업되더니 이내 성우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아래 글자가 떠올랐다.

- 네오 알렉산드리아 상공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은 제32지구 플레이어 ‘kor-157’로 추정 중

성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뭔가 이상하지?”

「그래, 뭔가 이상하지?」

성우의 목소리가 도시 전역에, 아니 제0지구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토록 먼 거리에서도 성우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었다.

“자, 이번 게임의 ‘플레이어’는 너희야.”

「자, 이번 게임의 ‘플레이어’는 너희야.」

성우의 주변으로 본 와이번 무리, 좀비 히포그리포, 좀비 괴조, 귀신들이 모여들었다.

이 모습, 제0지구의 인류가 유희 거 리 삼아 지켜보고 열광했던 모습일터였다.

일명 제32지구의 우승자 네크로맨서······.

하지만 그가 자신들의 머리에 등장할 것이란 건, 꿈에도 몰랐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적이 되리라는 것도 말이다.

“제0지구의 플레이어들, 잘 들어. 내가 퀘스트를 하나 내줄게.”

「제0지구의 플레이어들, 잘 들어. 내가 퀘스트를 하나 내줄게.」

성우의 얼굴 위로 냉소가 번져나갔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갑작스레 시작된 재앙, 성우는 그 감정을 똑같이 전해줄 생각이었다.

“······살아남으시오.”

「······살아남으시오.」

성우는 그 말을 끝으로 본 드래곤을 타고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돌아갈 생각이었다. 성우 단신으로는 이 지구를 정복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애초에 성우의 힘의 기원인 ‘나노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시스템을 개발한 게 바로 이들이었으니, 곧 제압되고 말 것이었다.

’그래도 선물은 잘 도착했다.’

성우는 게이트 앞에 도착한 뒤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10초.’

시간이 다 되었다.

‘8초.’

성우는 제0지구를 내려다보았다.

‘6초.’

마지막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3초.’

그리고······

푸— 어— 어— 어— 어— 어— 어—

수소 폭탄이, 폭발했다.

3차례의 동시다발적인 폭발, 시뻘건 화염의 파도가 일어나 도심을 빠르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빌딩이 모래성 무너지듯 무너지고 지면이 마치 바다처럼 물결치며 밀려났다. 버섯구름이 그 중심에서 솟아오르며 이중, 삼중으로 부풀어 올랐고 그 주변으로 고리 모양의 구름이 연이어 생성되었다.

초토화였다. 고도에서 내려다보니 그 파괴력이 명확하게 전해졌다. 성우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쿠— 구— 구— 구— 구— 구— 구—

그렇게, 도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인근 도심의 불빛이 사라졌다. 전자기 펄스, EMP 때문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량의 방사능이 일대에 짙게 내려앉아,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 것이었다.

성우는 그 폭풍에 휘말리기 전에 고개를 돌렸다. 폭발의 마지막 순간을 눈에 담지 못하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타격을 준 건 확실했다.

「악마 같은 새끼!」

조력자의 목소리가 성우의 귓등을 때렸다.

「어, 어떻게! 대체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런 끔찍한······.」

“나도 내가 이럴 수 있을 줄은 몰랐어.”

「넌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어!」

“내가 하고 싶은 건 비난 따위가 아니야.”

「대체······.」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려서 애초에 내가 원망하고 비난할 대상도 없으면 좋겠어. 그리고 방금, 조금은 성공했군.”

「······.」

“언젠가 마무리할 기회가 있었으면 해.”

성우는 그 말을 끝으로 웜홀 안으로 들어갔다.

* * *

성우의 몸속, 나노 로봇에 일종의 좌표가 입력되어 있기에 웜홀에 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제32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웜홈을 통과하여······.

쿵—

수직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본 드래곤이 빛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앞발을 뻗어 지상을 짚었다.

“성우 씨!”

일행이 수직 터널 주변에 모여 있었다.

“어떻게, 잘 끝났습니까?”

그들의 얼굴은 걱정에 물들어 있었는데, 성우의 등장과 함께 걱정이 지워지고 서서히 안도감이 번져나가는 중이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본 드래곤이 몸을 기울여 머리를 낮췄고 성우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웜홀을 붕괴시키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었다.

“폭탄은 준비됐습니까?”

제0지구와 연결고리를 끊을 때였다.

“물론입니다.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수가 가리킨 방향, 넓적한 카트 위에 수소 폭탄 3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혹시 몰라서 여분으로 2기를 더 준비했고 전원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 드래곤을 소환 해제했다. 수소 폭탄을 집어넣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모르니 방화문 안쪽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지금 바로 집어넣으세요. 놈들이 반격해올지도 모릅니다.”

성우의 말에 경수가 손짓하자 두 사람이 달려왔다. 그들은 버튼을 조작하여 수소 폭탄을 작동시켰다.

삑— 삑—

기폭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삑— 삑—

이제 곧 내부의 우라늄 폭탄이 터진 뒤, 함께 들어 있던 삼중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제0지구에서 본 것처럼, 이곳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남을 정도였다.

“던져!”

단 10초 남은 순간, 웜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방화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쿵—

수십 센티 두께의 방화문이 닫혔다.

”······.”

모두가 숨을 죽이고 수직 터널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콰一 아一 아一 아一 아一

수직 터널이 시퍼런 에너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그 안에 담고 있던 모든 것을 게워내듯, 시원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에너지가 천장에 닿더니, 닿는 모든 걸 뚫고는 하늘로 뿜어졌다.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대피 준비하세요!”

다행히 건물은 생각 이상으로 튼튼했다. 그들은 유사시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마치고 웜홀의 붕괴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쿠一 구一 구······.

천천히 돌아가던 수직 통로가 멈춰섰다.

”······.”

빛이 사라지고, 텅 빈 구멍 안에서는 그 어떤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웜홀이 붕괴했다.

”······.”

그리고 게임이, 모든 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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