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75) 마지막 시스템 오류 - 3
GM들은 오만했다. 그들은 애초에 이 시설이 뚫릴 수 있다는 걸 전혀 예상 못했다.
그리고 누군가 침입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숫자가 몰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은 시스템을 맹신했고 시스템이 마비되자 눈뜬장님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자, 시간이 없어서 두 번 질문 안 해.”
GM들은 완전히 결박되어 성우 앞에 무릎 꿇려졌다.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는 모두 압수되어 아군의 손에 들려 있었다.
“시설 내에 몇 명이 더 있지?”
뒤통수에 총구가 닿고 목덜미에 칼이 들어오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없다. 애초에 이 시설에 상주하는 직원은 우리뿐이야. 대부분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작업을 대신하고 있거든.”
이들은 일종의 관리직에 불과했다. ‘메인스트림’이나 ‘월드 시즌’ 같은 큰 맥락의 시나리오를 기획하는 등, 인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복수의 슈퍼컴퓨터가 시스템을 컨트롤했다.
“슈퍼컴퓨터라면, 센티널?”
성우의 말에 월터라는 중년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가 이 시설의 책임자로 보였다.
“맞아. 그런 것도 알 정도면 역시 널 돕는 배신자가 있군? 그렇지? 누군지 알 것 같아. 우리 지구에도 정치는 복잡······.”
성우는 대답 대신 놈의 복부를 걷어 찼다.
“······컥!”
놈이 뒤로 넘어갔지만, 인호가 놈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지금부터 웃으면 이빨을 하나씩 뽑을거야. 이빨 보이지 마.”
감정을 절제할 수 없었다. 아니 절제 해서는 안 됐다.
이것들이 어떤 존재던가?
단순한 범죄자 정도가 아니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악마들이었다.
“그리고 묻는 말에 빠르게 대답하지 않으면 왼쪽부터 한 새끼씩 죽인다.”
거기에다 몇 번의 주먹질을 추가하자 더욱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력자가 파괴하라고 알려준 ‘메인 코어’는 일종의 ‘서버’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한 ‘센티널’은 인공지능으로, 지구 전역에 퍼져서 게임에 대한 직접적인 제어 역할을 하는 장치였다.
“이, 이봐, 네크로맨서, 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월터였다. 성우는 놈을 노려보았고 놈은 힘겹게 입을 뗐다.
“저, 그······ 너는 우리 지구에서 엄청난 슈퍼스타야. 나와 같이 우리 지구로 돌아간다면 평생······.”
그 헛소리의 대가는 컸다.
“자, 잠깐만!”
성우는 곧장 놈의 손목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누른 뒤, 쇠 지렛대로 내리찍어 손가락 두 개를 잘라버렸다.
“끄으으······.”
성우는 손가락을 붙들고 신음하는 월터를 턱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그 잘난 너희 고향에 대해서 말해봐. 너희는 누구고 왜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이들을 진정으로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걸 넘어서 이들이 누군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 다 마, 말할게!”
끔찍한 종족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GM들이 사는 곳, 자칭 ‘제0지구’는 24세기 중반의 먼 미래에 해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타락은 22세기 초부터 시작됐다.
“모든 자원이 고갈되었고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130억 이르는 인구가 먹고 살 수 없었어······ 하지만······.”
과학 기술은 공평하게 발전하지 않았고 우주 개발은 지연되었다.
수 광년 떨어진 외행성에서 자원을 얻는 작업은 채산성이 너무나 떨어졌기에 13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그 무렵, 버뮤다 삼각지대의 밑바닥에서 ‘웜홀’이 발견되었다.
“당시 인류 지도자들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토, 통로를 열고 다른 차원의 원시 지구에서 자원을 수급하는 방법을 고안한 거야. 하지만 재, 재밌는 문제가 생겼어.”
그들에게 중대한 분기점이 제시되었다.
“그 당시는 웜홀 통제가 미숙했던 탓에 원하는 시간대에 도착할 수 없었어. 그렇게 처음 도착한 지구는 이미 문명이 번성한 시기, 18세기 무렵이었어. 하지만 우리는 여유가 없었고 당장 선택을 해야만 했지.”
배고픔 앞에 도덕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우리를 선택했어.”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수탈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들 걸 빼앗는 원초적인 폭력······.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온갖 합리화를 통하여 그 폭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일명 ‘다차원적 제국주의(Multidime nsional imperialism)’의 탄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살아남기 위하여 다른 차원을 약탈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경쟁적인 약탈이 시작되었다.
“국가와 기업은 하나의 지구를 통째로 차지하고 그곳의 모든 걸 손에 쥐었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원 수급, 그렇게 이루어진 완벽에 가까운 물질적 풍요, 그 꿈만 같은 미래가 완성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자원만 가져오는 걸······ 지루하게 여기고 만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물질은 풍족했으나 정신은 채워지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즐기고 있는건 가상현실 따위와는 전혀 다른 원초적 쾌감을 줄 수 있는 리얼리티 게임이야.”
수백 차례 약탈을 일삼으며 합리화를 해왔고 죄의식 따위는 눈곱만큼도 남지 않는바, 사회적인 브레이크는 이미 닳아 없어졌다.
다른 차원의 자원을 약탈하는 걸 넘어서, 그 세계 전체, 그리고 그 세계의 사람들까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게 바로 ‘게임’이었다.
궁극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된 ‘나노 테크놀로지’는 그들이 상상하는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몬스터, 마법, 기적 등 완벽한 판타지 세계를 구현한 것이었다.
“나노 시스템, 그 원리는 복잡하지만, 너희 몸속 그리고 너희 세계 전체에 ‘나노 머신’이 섞여 입자를 조절한다고 보면 돼. 분해하고 조합하고······ 그걸 지구 전체에 심는데 약 6년이 넘게 걸리는 거야. 그게 바로 ’인스톨’ 과정이다.”
이곳은 그렇게 탄생한 지옥이었다.
“순 쓰레기 새끼들이네! 이거!”
한호가 발끈하며 소리쳤고 다른 이들도 험악한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GM들을 사분오열할 것만 같았다.
“미안하지만, 너희도 언젠가 처할 운명이고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거야.”
성우가 쇠 지렛대를 들어올렸다.
“그딴 합리화 한 번만 더 하면 네 두 개골을 뚫어서 뇌를 채굴할 테니까 닥쳐.”
“······.”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월터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멸망한 지구의 사람들, 왜 그들의 영혼까지 착취하지? 그것도 단순히 재미인가?”
그래, 이들은 자원과 목숨만을 약탈하는게 아니었다.
희생자들의 영혼까지 움켜쥐고 흔들어, 죽은 뒤에도 게임의 데이터 조각이 되어 영원히 고통받게 했다.
“그거야 순전히 경제성이야. 귀찮은 설계와 엄청난 용량이 있어야 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의 뇌를 살짝 손봐서 기억을 지우고 그걸 일종의 NPC로 쓰는 게 더 쉽잖아?”
뻑!
성우는 주먹으로 놈의 머리통을 갈긴 뒤 일어섰다.
“이제 더 들을 것도 없군.”
그리고 경수를 바라보았다.
“메인 코어를 찾았습니까?”
사람들이 시설 내부를 수색 중이었다. 시설을 완전히 장악했으니 이제 메인 코어를 찾아 부수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그때, 월터가 성우의 발목을 잡았다.
“나, 날 보내줘······ 그럼 잘 말해서 이쪽 지구는 앞으로 게임에서 빼서 자유를 보장할게! 그게 아니라면 너희는 이 게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
“너! 설마 내부자······ 그러니까 널 돕고 있는 그것들을 믿나? 걔들도 전부 똑같아. 정치적인 목적으로 너에게 접근한 거야!”
“정치적인 목적?”
“그래! 우리 세계에도 정치가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우리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이자 게임이자 방송이야! 최고의 산업이라고! 이걸 이용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것들이 한 둘인 줄 알아?”
성우는 말없이 놈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월터의 얼굴 위로 안도감이 옅게 번져나갔다.
“이봐 월터,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데.”
“그래, 뭐든 말해줄게! 제발 살려만 줘!”
성우는 쇠 지렛대를 놈의 턱 끝에 가져다 댔다. 놈이 움찔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나노 머신으로 만들어진 이 힘, 허상이 아니라 진짜라는 거지?”
“그래 전부 진짜야. 입자를 결합하고 분해하면서 실제 현상을 일으켜.”
“그럼 너도 이 섬 밖으로 던져지면 몬스터한테 죽을 수도 있겠네?”
월터의 눈동자가 불안을 머금었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성우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 마, 맞아. 그래서 GM은 이 시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
성우는 거기까지만 들은 뒤 몸을 돌려, 바짓단을 붙잡고 있던 월터를 뿌리쳤다.
“인호씨, 이 새끼들 전부 묶어요. 영원히 집에 돌아갈 수 없게요.”
“뭐? 자, 잠깐!”
놈들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성우는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그의 옆으로 경수가 다가왔다.
“성우 씨, 시설 안쪽에서 메인 코어를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곳 컴퓨터를 뒤져봤더니 ‘차폐 장치’라는 게 있더라고요?”
“차폐 장치요?”
“이 섬에 덧씌워져 있는 나노 로봇 제어 장치인 것 같습니다.”
즉, 이곳에서는 게임 시스템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인듯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풀면 조력자가 다시 나타나겠군요. 그렇다면 그전에······.”
성우는 멈춰 서서 월터를 돌아보았다. 월터는 절망 어린 표정으로 성우와 마주 보았다. 저런 인간이 이곳의 책임자라니?
“이번에는 내 제안을 들어보고 생각 해봐.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라.”
성우의 말에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제부터 배신자가 되는 거야.”
“······뭐?”
“쓰레기 같은 너희 세계를 배신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거야.”
월터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놈의 표정은 이미 단념한 듯했다.
“좋아.”
성우가 놈에게 다가갔다.
“시스템을 해킹으로 다운시킬 수 있잖아?”
“그래. 지금이 바로 그런 사, 상황이야.”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럼 반대로 혹시 아주 잠깐이나마 시스템을 복구할 방법이 있나? 지엽적인 곳이라도 말이야. 길지 않아도 돼.”
“그걸 대체 왜 묻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월터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도덕심을 상실하고 유희에 찌든 종족에게 의리라는 게 남아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 * *
제0지구의 컴퓨터 조작 방법은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소한 부분도 상당수 있었지만,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아는 이가 금방 익힌 뒤 차폐 장치를 OFF 할 수 있었다.
「차폐 장치를 끄셨군요.」
조력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좋아요. 앞으로 20분 정도 남았어요. 그 이후에는 다수의 센티널이 대거 복귀하여 시스템이 복구될 거예요. 그 안에 마무리해야 해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설명해줘.”
「서버 역할을 하는 메인 코어를 파괴하면 GM들의 세계와 연결이 끊어질 거예요. 그리고 저와의 연결도 종료되고요. 저도 사실은 GM들의 세계에 있으니까요.」
조력자는 성우가 GM을 심문했다는 걸 모르는지 그들이 정식 명칭으로 사용할 ‘제0지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웜홀이 남아 있잖아? 그렇다면 GM들이 다시 넘어올 수 있을 텐데?”
「맞아요. 그래서 시스템을 끈 이후에 웜홀을 붕괴시켜야만 해요.」
“어떻게 붕괴시키지?”
「이 시설의 지하에 웜홀과 연결되는 초대형 수직 터널이 있을 거예요.」
이들은 이미 시설 전체를 수색하여 그 공간을 발견한 상태였다.
“알고 있어.”
「웜홀 안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다면 통로 자체를 붕괴, 그 길을 영원히 차단할 수 있어요. 실제로 GM들은 웜홀을 통한 미지의 침공을 대비하여 웜홀을 붕괴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받고 있고요.」
“미지의 침공을 대비한다?”
「섣불리 연 다른 차원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다고 믿고 있긴 해요.」
성우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시설의 지하로 내려갔다. 웜홀 터널이 있다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오만에 절어 있군. 그래서 강력한 폭발은 무슨 수로 일으키지?”
「가장 쉬운 방법은 핵융합로를 개조하여 수소 폭탄을 만드는 거예요. 이 시설의 핵융합로는 손쉽게 수소 폭탄으로 개조할 수 있어요. 단, 관계자의 패스워드가 필요해요. 혹시······ GM을 다 죽이지는 않았죠?」
“그건 확보했어.”
월터의 소지품에서 ID카드를 확보했다. 만일 생체 패스워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놈을 끌고 가면 될 것이었다.
「아, 그런가요?」
“그래.”
「좋아요. 앞서 말씀해드린 그 수소 폭탄을 작동시켜 웜홀 안으로 던져 넣는다면, 강력한 파동이 일어나 웜홀을 붕괴시킬 수 있을 거예요.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바로 준비하지.”
이미 시설 전체를 점거하고 그 쓸모를 확인해둔 뒤였다. 명령만 내린다면 각 장소에 있는 이들이 정확하게 움직일 것이었다.
* * *
성우는 ‘웜홀 통로’가 내려다보이는 상황실에 서 있었다. 거대한 안전유리 너머로 시퍼런 빛을 내뿜는 원형의 장치가 보였다.
“저건가?”
「맞아요.」
돔 형태의 축구장보다 훨씬 큰 면적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니 그 위압감이 엄청났다.
우웅一 우웅一
그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는데, 저 장치가 바로 심해에 열려 있는 웜홀과 이어지는 통로였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어.”
「뭐죠?」
“넌 뭘 원해서 날 돕지?”
성우가 물었다.
「나는, 우리는 그저······」
조력자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평화를 원해요. 이런 끔찍한 게임도 반대하고요.」
그래, 제0지구에도 아직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인권 봉사 단체와 같은 마음 가짐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성우의 세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게임의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건 조력자의 마음가짐 따위가 아니었다.
’정의······.’
정확히는 폭력적인 정의 구현이었다.
성우는 그걸 원했다.
“설사 네 말이 사실이더라도 그리 달갑지 않을 거야. 너희는 우리에게 절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
「그 과오······ 제가 그리고 우리가 노력해서 어떻게든 씻어낼게요.」
“어떻게 씻지?”
「이번 사건을 통해 불안감, 저희는 그렇게 여론을 움직여 ‘차원 게임’을 폐지하게 할 거예요. 사람들을 깨닫게 하고요.」
성우는 코웃음 쳤다.
“역시 정치와 관련된 일이었나?”
「뭐라고요?」
월터가 말했던 게 전혀 없는 말은 아닌 듯했다. 조력자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건 씻는 게 아니야.”
「그렇게 어떻게 하길 원하나요?」
“다른 사람을 찔러서 네 얼굴에 튀긴 피를, 그 피를 씻는다고 과오가 사라지나?”
「그게 무슨······.」
“넌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어. 끔찍한 자기 위안일 뿐이야. 너희가 처음으로 다른 차원을 침공했을 때, 어떤 합리화를 통해 사회 전체가 용인하게 된 거잖아?”
「······.」
“그것과 다르지 않아. 그저 너희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포장하는 것뿐이잖아?”
「······.」
“애초에 씻을 수 없어. 그래도 어떻게 보상할지, 적어도 그런 말이라도 했어야지.”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이 성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먼 미래에도 마찬가지였다.
위이이이一
그때, 안전유리 안쪽, 우측의 방화문이 열리더니 레일을 타고 카트 한 대가 들어왔다.
그 위에는 발전기에서 꺼낸 핵융합 장치로 만든 수소 폭탄이 실려 있었다.
총 3개였다.
「뭐죠? 3개까지 필요 없어요. 계산 상 1개면 충분해요. 위험할 수 있으니 다시 돌려 놓······.」
“알아. 아까 말했잖아.”
「그런데 뭘 하려는 거죠?」
조력자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다시 말하지만, 웜홀을 붕괴시키는 건 1개면 충분해요. 그 이상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요. 일대의 지반이 날아가거나 최악의 이곳에 소형 태양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지구 생태계가 붕괴할 거예요.」
“그래? 난 그런거 잘 몰라.”
「당신······ 다른 계획이 있군요?」
“너희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
「너희라니······.」
“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다 같은 침략자에 학살자야.”
「왜 그렇게 생각하죠?」
“이건 일부의 잘못이 아니라 너희 세계의 너희 세대 전체의 잘못이야.”
「대체 무슨, 어떤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거죠? 그러지 말아요. 제가 대신 당신의 목소리를 우리 세계에 전하겠어요. 가장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요!」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몸으로 깨달아야 해.”
성우는 쇠 지렛대를 내려놓았다.
챙一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시스템이 긴급 복구 중입니다. (99%)
「어? 시스템이 생각보다 빨리 복구 됐어요. 이, 이렇게 순식간에 될 리가 없는데? 시간이 없어요. 메인 코어를 부수고 최대한 빨리 움직이세요!」
“잘 됐군.”
「······뭐라고요?」
- 시스템이 복구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복구한 거야.”
성우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역시 컴퓨터 기능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월터를 협박하여 잠시나마 지엽적인 공간의 주도권을 얻을 수 있었다.
딱 이 섬만 시스템을 복구시킨 것이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성우는 그렇게 외치며 스킬을 사용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덜그럭! 덜그럭!
그리고 그 안에서 하얀 그림자가 쏟아져 나왔다. 안전유리가 깨지고 벽이 무너졌다.
후우우우一
상황실을 깨고 나온 거대한 괴수 ‘본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성우는 그 위에 올라타 있었다.
「당신 미쳤어!」
“맞아, 미쳤어. 너희는 모르지. 너희가 만들어 놓은 지옥 같은 세계에서는 미치지 않는 놈이 진짜 미친놈이야.”
성우는 본 드래곤을 움직였다.
쿵— 쿵—
녀석이 거대한 몸뚱이가 수직 터널 근처로 비집고 들어갔으며, 그와 동시에 앞발을 뻗어 핵분열 장치로 만들어진 ‘수소 폭탄’ 3기를 움켜쥐었다.
“너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희 세계에 알려줄게.“
본 드래곤이 수직 터널 안으로, 웜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수천 마리의 언데드 군단이 몸을 던졌다.
역 침공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