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25화 (225/244)

# 225

75) 마지막 시스템 오류 - 1

최후의 순간, 네크로맨서가 마왕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직후······.

콰一 아一 아一 아一 아一 아一

마왕의 몸 안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마왕의 등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퍼— 어— 어— 어— 어— 어—

피 분수가 뿜어져 올랐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한 줄기의 빛이 솟아올라 하늘까지 닿았는데, 붉은 구름이 절반으로 갈라지며 좌우로 밀려 났다.

마왕 안에서 일어난 폭발이건만, 그 여파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늘을 갈라놓은 충격파가 서서히 내려앉으며 마왕성이 무너져내렸다. 공기가 뒤틀리고 땅이 울렸다.

“모두 숙여!”

돌풍과 지진이 아마존을 휩쓸었다.

“윽!”

심지어 일대의 모든 마나가 타오르며 ‘마나 번(Mana burn)’ 현상에 의해 마법사들이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 이게······.”

공식 채널의 드론 카메라는 그 내부까지 따라가지 않았고 근처에서 거대한 마왕의 몸뚱이를 관조했기 때문이다.

“······무슨 상황이죠?”

세상을 뒤흔들던 폭발음이 멎어가자 아주 천천히, 고요가 찾아왔다.

“······.”

어느새 모든 게 멈췄다.

마왕의 몸부림과 지옥 생명체의 공격이 중단되었기에 플레이어들 역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그저 멍하니 서서, 마왕, 그 가슴에 뚫린 구멍을 바라볼 뿐이었다.

전장이 일시 정지되었다.

“아······.”

안 기자의 처지도 비슷했다. 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섣부른 말로 마냥 오디오를 채워대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순간이었다.

“······.”

그저 숨을 죽이고 다음 장면을 기다릴 수밖에······.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만······.

“아?”

마왕의 몸뚱이가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으적— 으적— 으적— 으적—

마치 종이가 구겨지듯, 뼈가 접히고 살이 움푹 들어갔으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크기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마왕이······ 죽어갑니다!”

알 수 있었다. 마왕은 죽었다. 그건 긍정적인 소식이 될 터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네크로맨서는?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저 안에 있는데, 탈출할 수 있을까요?”

안 기자의 말은 의문형이었지만 사실상 확신했다. 네크로맨서라면, 그라면 분명 어떻게든 저 지옥을 비집고 나올 것이었다.

“정황상 네크로맨서가 승리했을 거라는, 희망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그가 걸어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모두가 그 장면을 지켜보며, 뭉개지는 몸을 뚫고 네크로맨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

마왕의 거대한 몸뚱이가 우그러지고 우그러져 하나의 점으로, 무(無)로 사라질 때까지······ 네크로맨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

“······.”

아무리 살펴봐도 마왕이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네크로맨서가 탈출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

몇 분의 침묵 끝에 안 기자 입을 열었다.

“이게 설마, 그, 네크로맨서가, 네크로맨서까지 같이 죽······.”

안 기자는 잠시 공황에 빠졌다.

여기에서 그가 죽은 거라고 말해야 할까? 그건 생각보다 내뱉기 어려운 말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사라진다니?’

게임이 시작된 이후, 마침내 질서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네크로맨서의 의지와 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없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막연한 기분이었다.

’멍청하게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여러분,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모든 플레이어 여러분, 네크로맨서가 이 싸움에서 이겼다면, 그리고 동시에 그가 이제 사라진다면······.”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여러분, 우리는 그 이후를 대비해야만 할겁니다.”

옆자리의 조수는 멍한 표정으로 안 기자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같은 추임새를 넣을 수도 없었다.

안 기자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네크로맨서의 힘과 비전에 의존해왔습니다. 이건 모두가 인정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조차 오직 그에게 내걸고 있었죠. 그가 이겨주길, 그가 질서를 찾아주길 바라고 있었죠.”

네크로맨서의 부재는 그 모든 것의 중심축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했다.

“혼란이 찾아올 겁니다. 그가 없다면 반드시 큰 혼란이······.”

그런데 그때, 공식 채널 방송 화면이 돌아가며 어딘가를 비췄다.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응? 네, 네크로맨서?”

죽은 줄만 알았던 네크로맨서, 성우의 얼굴이 화면 가득 비췄다.

그는 파란색의 일렁임을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가 어디죠?”

* * *

아마존 전장의 최후방에는 포탈이 하나 열려 있었다. 그건 세계수 진영, 수원으로 가는 포탈이었다.

마왕의 군단이 그곳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기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둘러싸고 철통 방어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응?”

그곳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네, 네크로맨서님?”

그건 성우였다.

“뭐야, 진짜야?”

포탈을 지키고 있던 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마왕의 몸 안으로 들어갔던 그가 수원과 이어진 포탈에서 나오다니?

이내 그들 중 하나가 뒤돌아 소리쳐다.

“살아 있다! 네크로맨서가 살아 있다!”

그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네크로맨서가 이겼다!”

“심지어 다친 곳도 없어!”

“어,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 보기에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부활 주문서라는 아이템 게임 내에서도 가장 희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우씨!”

이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측근, 경수가 급히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안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경수 역시 성우가 죽은 줄만 알고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나중에 말씀드리죠.”

부활 주문서에 대하여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더 중요한 걸 말했다.

“마왕은 죽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났다.

“아, 정말다행입니다.”

“아뇨, 아직입니다.”

“······예?”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더 큰 문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제였다.

‘엔딩이다.’

성우의 시선은 허공에 맺혀 있었는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는 중이었다.

[엔딩 퀘스트]

- 제목 : 우승자의 권리

- 유형 : 선택

- 목표 : 엔딩 선택

- 보상 : 선택에 따라 차등 지급

축하합니다! 당신은 ‘잠정 우승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우승자’와 동일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월드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월드의 운명, 더 나아가 당신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 주의하세요. 잠정 우승자는 언제든지 우승자의 권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뜻합니다.

’엔딩 퀘스트? 설마 나보고 우리 세계의 엔딩을 결정하라는 건가?’

그리고 그렇게 떠오른 선택지는 황당할 지경이었다. 아니, 황당함을 넘어서 여태 참아왔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우승자의 권리 ‘엔딩’을 선택하세요.

1) 이어서 하기

* 이는 본 게임의 연장선으로써 ‘종말’을 맞은 당신의 월드에서 ‘월드 이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 월드 이터는 또 다른 월드를 침공하여 ‘특별한 조건’을 만족할 시 ‘월드 재건’의 기회를 얻습니다.

* 당신을 제외한 생존자는 ‘캡슐’에 봉인되며 그들의 ‘정신’은 침공 대상 월드의 ‘보스 몬스터’로 활용됩니다.

2) 새로운 게임

* 이는 ‘도박사’의 ‘서포터’를 받으며 2회차 플레이어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도박사와 계약하여 ‘일정 조건’을 충족할 시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단, 당신을 제외한 생존자들은 ‘하급 몬스터’의 영혼으로 소모됩니다.

3) 게임 종료

* GM은 당신의 휴식을 존중합니다. 죽음을 택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단, 당신 월드의 모든 플레이어가 함께 ‘폐기’되며, 세계는 ‘맵’으로 재활용됩니다.

“이 3개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애초에 이 게임에는 해피 엔딩, 그러니까 탈출구 따위는 없었다.

충격적인 진실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엔딩을 맞이한 월드의 후속처리마저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생존자의 정신이 몬스터로 활용된다니?’

대산맥의 왕, 빅터, 이사벨라, 이들이 전부······ 아니, 이들을 포함한 모든 몬스터가 다른 월드의 플레이어들이라는 뜻이었다.

‘맵은 멸망한 지구를 활용한 거고?’

심지어 던전, 아공간, 히든 스테이지 등 게임에서 사용된 특별한 공간은 멸망한 세계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대체 왜?’

성우는 막연한 분노에 눈앞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강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태고의 죽음에 의해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 침울한 표정으로 변명을 내뱉었다.

‘네크로맨서, 나보고 악당이라고 했나? 그래, 그게 맞을 수도 있어.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이럴 수밖에 없었어. 나는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한 것뿐이야.’

이에 성우는 물었다.

‘그들이 대체 누구지?’

이에 강석은 머뭇거렸다. 그들이 이 장면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잃을 게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적어도 신은 아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아. 어쩌면, 우리가 가장 나빠질 수 있는 모습이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죽었다.

정보를 누설하여 죽은 것인지, 아니면 태고의 죽음에 의해 생명을 다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만, 성우보다 먼저 죽었다.

“······.”

성우는 선택지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정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선택지가 없었다는 강석의 말, 악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됐다.

‘그래도 결국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잘못한 거야.’

강요받은 선택이라고 해도 그에 따라 충실한 행동을 했다. 그건 면죄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우 역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결국, 한 가지를 선택했다.

그는 경수를 바라보았다.

“경수씨.”

“예, 말씀하세요.”

성우는 입안에 도는 말을 몇 번이고 곱씹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수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주세요. 오늘 밤은 다 같이 파티를 열었으면 좋겠네요.”

경수는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파티요?”

파티를 열자니? 평소의 성우라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 이게 바로 성우의 선택이었다. 그는 선택지가 아니라 파티를 선택 했다. 그러니까······.

“그런데 당장은 진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조금만 자고 싶네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아, 맞습니다. 성우 씨도 그렇고 모두가 쉬어야 합니다. 너무 고생만 했어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걸어 갔다.

그의 주변에 몰려 있는, 세계수 진영에 속하여 이 전쟁을 함께 치른 수십 만의 플레이어들이 좌우로 물러서며 길을 텄다.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한다.

이 게임이, 그리고 이 세계가 당장 성우의 선택 하나로 엔딩을 맞이한다면, 영원히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엔딩을 맞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게 성우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걸 용인할 시스템이 아니었다.

- 경고! 선택하지 않을 시 ‘우승자’의 권리가 타 플레이어에게 양도될 수 있습니다.

성우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도?’

이 미친 선택을 또 다른 이에게 강요하겠다는 뜻이었다.

과연 누구에게 넘어갈지,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지, 성우는 잠깐이나마 고민했다.

그래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 협박에 못 이겨 마지막까지 멍청한 장난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했다.

“어! 이게 뭐야?”

“갑자기 월드 퀘스트라니?”

성우 주변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그리고 당황했다.

“서,성우씨?”

성우에게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그들 모두에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 떠오른 메시지는······.

[월드 퀘스트]

- 제목 : 우승의 기회

- 유형 : 살해

- 목표 : kor-157 살해

- 보상 : 우승자의 권리 부여

이 게임의 우승자인 ‘kor-157’이 잘못된 판단으로 월드를 무가치한 길로 몰아넣고 있다. 그를 제거한다면 ‘우승자의 권리’를 얻고 월드의 방향성을 좌우할 수 있다. 모두 힘을 합쳐 지금 당장 그를 처단하라!

그와 동시에 모든 이들의 핸드폰이 빛을 발하며 동영상 하나가 저절로 재생되었다.

그건 공식 채널의 방송 화면이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성우가 나오고 있었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우웅—

드론들, 사방에 떠오른 드론들이 성우를 찍고 있었다. 월드 퀘스트의 목표물, 성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우는 주변을 쓱 쳐다보았다.

“······.”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

침묵, 긴장, 불안, 온갖 위화감이 성우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성우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방금 저를 죽이라는 메시지를 보셨습니까?”

그는 주변을 훑어보며 플레이어들과 눈을 마주쳤다. 일부는 그 눈을 피했다.

“누군가 그렇게 해보겠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도하지는 마세요. 그건 아주 비효율적이니까요.“

그는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려 드론에 달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제가 훨씬 쉬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정확히는 그 카메라를 통해 성우를 바라보고 있는 월드 전체와 눈을 마주 친 것이었다.

“오늘 밤, 파티를 열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고생했습니다. 하룻 밤 정도는 마음 편히 쉴 자격이 있습니다.”

성우는 양팔을 벌렸다.

“저는 오늘 밤에 무방비 상태가 될 겁니다. 저를 죽이겠다면 바로 그때를 노리세요. 훨씬 손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세계수 진영으로 파티를 즐기 러 오세요.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성우는 경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경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경수 씨, 몇 명이 놀러 오든 문제없겠죠?”

하지만 성우의 너스레를 듣고는 한층 안정된 표정이 되었다.

“아, 뭐······.“

그는 이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몇 명이 오든 몇 날 며칠 먹고 마실만큼 모든 게 충분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긴 이유 아니겠습니까? 아! 제가 전 세계로 하이퍼 게이트를 열겠습니다.”

성우는 다시 드론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들으셨습니까? 부담가지지 않고 저를 죽이러 오면 됩니다. 물론 지금처럼 몇 번이고 부활할 수도 있으니 계획을 철저하게 짜고 오세요.”

그러자 누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외침이 들려왔다.

“와, 그럼 계획 짜는 데만 백 년 정도는걸리겠는데?”

이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오지 말라는 뜻 아닌가?”

“쉿, 그거 비밀이야.”

어느새, 위화감이 사라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 밤에 이 게임이, 이 지옥이 끝날겁니다.”

성우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경수 씨, 가죠.”

성우와 경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떤 경계심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러자······.

“자! 모두 돌아갈 준비를 한다!”

“공성 병기 정리하고 부상자 챙겨!”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성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한 것이다.

“으! 드디어 끝났다!”

“빨리 한숨 자고 싶다.”

이들 모두 성우의 선택을 선택했다.

‘물론 이대로 끝날 리는 없다. 하지만 시스템이 원하지 않는, 최악의 루트를 선사했다.’

이길 수 없는 존재에게 먹일 수 있는 최고의 한 방을 먹였다고, 성우는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플레이하는 사람이 없으면 게임은 작동하지 않는다.

후우우우—

성우와 경수가 서 있는 공터를 향해 메신저호가 고도를 낮췄다. 그곳의 선루 갑판에 지수와 한호 등, 익숙한 얼굴들이 타 있었다.

“선배! 진짜 파티죠? 괜히 한 소리 아니죠? 저 진짜 기대하고 있을 거예요?”

한호의 아우성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어? 이게 뭐야?”

그런데 그때, 이상한 글자가 모두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 뷁궭$%#©긜!%67#

이건 시스템의 소행이 아니었다.

“이거 보여?”

다른 모두에게는 낯설지만, 성우에게는 익숙한 메시지······.

- 뀕궭$%%%&©긝!(%67#)

- 쉙뉅벩밝#!!$%$$##%!!&*

- 치명적인 오류로 인하여 클라이언트 서버 연결이 종료됩니다. (ERROR CODE:0014231532)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메신저호의 동력이 꺼지며 허공에 멈춰 섰다. 게임에 의해 생성된 모든 것들이 제 기능을 멈춘 것이다.

성우는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이무기의 비늘’을 꺼내 들었다.

뜨거웠다.

“드디어 왔나?”

존재감 없던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아주 오랜만, 그리고 마침내 판에 끼어든 것이었다.

“이제 다 끝이야. 설마 이번에도 쓸데없는 힌트만 주려는 건 아니겠지? 약속한 대로 이 게임을 박살 낼 방법을 알려줘.”

성우는 따지듯 말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스템을 붕괴시킬 시간이에요.」

그 오류를 일으킨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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