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73) 마왕과 용사와 무당 - 2
지수는 죽었다.
왜 죽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과다출혈? 쇼크사? 뭐가 됐든 왼쪽 어깨 부근이 통째로 잘려나갔으니 죽는 게 당연했다.
‘이 기분, 처음이 아니야.’
생각해 보면 두 번째 죽음이었다.
중국 서버와 ‘동시 전쟁’ 당시 서울에서 죽은 적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인정받은 자의 문’이라는 이벤트를 마주한 이후 ‘발키리’ 신격을 얻었다.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어.’
또 한 번의 죽음,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어디선가 향냄새가 났다.
그리고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서늘한 바람, 그 촉감이 온몸을 간질였다.
이어서 어떤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얘야, 너는 아직 죽지 않았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으나 노인의 목소리 같았다.
이번에도 어떤 이벤트가 시작되는 걸까?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기이한 경험을 두 번이나 하다니, 참으로 고된 모험을 겪었구나······.」
시커먼 어둠 위로 글자들이 떠 올랐다.
「······너는 이제 그 두 세계를 이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어서 다시 돌아 가서 그 역할을 다하거라.」
— ‘무당’ 속성이 부여되었습니다.
‘무당? 이게 뭐지?’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일정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무당 속성(복수의 죽음 왕래) * 발키리(여성 전사) * 알 수 없음(추가 획득 필요)
결국, 또 한 번의 기회였다.
‘왜지?’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이 기이한 경험을, 자신은 두 번이나 겪게 된 걸까?
어디선가 빛이 보였다.
“······누님? 지수 누님? 정신이 드세요?”
한호의 목소리 였다.
“으······.”
시야가 천천히 돌아왔다.
옅은 빛이 일렁이는 복도의 천장 아래, 한호와 리웨이가 지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대박! 일어났다!”
“하, 다행이다.”
지수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왼쪽 어깨를 짚었다.
잘려나간 팔이 복구되어 있었다.
“아! 그거요? 저 이상한 보라색 술을 마시니까 막 재생되더라고요! 좀 징그럽지만 신기했어요!”
지수는 상체를 일으켰고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에 대산맥의 왕이 앉아 있었다.
“낭자, 깨어나셨소?”
그가 싱긋 웃었지만, 지수는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또 뭐죠?”
지수가 물었다. 두 번이나 겪은 죽음은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대체 자신에게 이런 일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대산맥의 왕은 시치미를 떼었다.
“응?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는 지수의 각성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발키리의 신격을 얻을 수 있게 유도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 번 무언가를 얻게 했다.
“어떻게 제게 이렇게 매번 필요한 걸 준비하고 있는 거죠?”
“음······ 그건, 미안하지만 비밀이오.“
지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산맥의 왕은 볼을 긁적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래, 뭐 그래도 어떻게든 한 마디 드리자면······.“
그가 지수를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이 시스템의 명령뿐만이 아니라고, 그렇게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소.”
다른 목소리라는 건가?
“ 그럼······.“
그때, 대산맥의 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궁금하더라도 어서 나가서 네크로맨서를 도와야 하지 않겠소? 밖이 아주 난리가 난 것 같은데?”
그래, 궁금해할 때가 아니었다.
* * *
아마존 열대 우림이 불타올랐다.
완전체가 된 마왕이 일격을 날릴 때 마다 수백 그루의 나무가 꺾이고 땅이 녹아내렸다.
“······피해!”
지상의 누군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내 그의 몸이 붉은 광선에 닿아 증발해버렸다. 그가 밟고 있던 땅이 헤집어 지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콰— 과— 과— 과— 과!
3개의 머리에 달린 12개의 뿔, 그곳에서 12줄기의 광선이 뿜어져 나오며 일대를 사정없이 긁어버렸다.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지수 정도 되는 감각과 순발력을 지녀 엄청난 공중 곡예를 펼치지 않는 이상, 저 광선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정거리만 하더라도 반경 5km 안을 초토화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겨우 5분 남짓에 불과하니,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었다.
“전 병력! 다시 후퇴한다!”
마왕을 향해 전진했던 지상 병력은 결국 큰 피해를 보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런 미친 공격을 대체 어떻게 뚫지?”
“네크로맨서라면······.“
“그분 군단도 이미 두 번이나 전멸했어!”
성우의 언데드 군단 역시 그 한 방에 죄다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성우는 본 드래곤에 올라타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고고도로 올라와야지만 광선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 5분, 그 안에 어떻게든 타격을 주지 않으면 다시 원점이다.’
성우는 기간테스 2기를 좌측으로 움직이고 그것들의 그림자 병사 2기를 우측으로 움직였다.
쿵— 쿵— 쿵— 쿵—
그것들이 마왕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하지만 마왕의 체구가 어찌나 큰지, 어린아이들이 어른을 둘러싼 것만 같았다.
‘어린아이라도 넷이나 된다면 어른을 잠깐은 귀찮게 할 수 있다.’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 이사벨라!”
성우의 외침에, 마찬가지로 광선을 피하여 고고도로 피신했던 이사벨라가 성우를 내려보았다.
“내가 붙잡는다! 놈의 머리를 태워버려!”
바로 그때, 4기의 기간테스가 전진을 시작했다.
쿠一웅! 쿠一웅! 쿠一웅! 쿠一웅!
엄청난 중량의 거구들이 하나의 점을 향해 몸을 나아가자, 일대의 지반이 액체가 된 것처럼 출렁거렸다.
‘그래, 어떻게든 묶어 놓기만 한다면, 드래곤 브레스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우의 작전은 물거품이 되었다.
별안간 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붉은 촉수 다발이 뿜어져 오르더니, 기간테스의 발을 칭칭 옭아맨 것이었다.
꾸륵一 꾸륵一 꾸륵一
그것들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기간테스의 몸에 끈적이는 액체를 뿜어댔다.
그렇게 묶인 기간테스의 머리 위로 마왕의 팔이 내리꽂혔다.
팔이 8개나 되었기에 기간테스 4기를 한 번에 공격할 수 있었다.
쿠一 웅一
기간테스 역시 양팔을 들어 올려 방어했지만, 제 머리통보다 큰 주먹이 내리꽂히자 중심이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말았다.
바로 그때, 이사벨라가 하강하며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었다.
콰과과과과과!
하지만 마왕이 손 두 개가 들어 올리며 어떤 파동을 발사했고, 브레스는 그 파동과 뒤섞이며 상쇄되고 말았다.
직후, 무언가 기간테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마왕의 팔에 적중했다.
퍼— 버— 버— 버— 벙!
함대의 포격이었다. 비행선들이 일제히 캐논을 발사하여 마왕은 견제한 것이다.
“다시 발사 준비!”
하지만 재차 포격보다 마왕의 반격이 빨랐다. 마왕의 머리 하나가 고개를 돌려 함대 쪽을 바라보았고, 머리 위, 두 개의 뿔 사이에서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선두! 당장 회피······.”
늦었다.
쩌一저一저一저一저一
광선 공격보다 다소 약한, 단발성의 붉은 번개가 쏘아졌다.
지지지지지!
처음에는 비행선의 방어막이 그 광선을 막아내는 듯싶더니, 마치 플라스틱처럼 안으로 구부러지며, 펑, 하고 뚫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노출된 선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파열되었다.
“비, 비상 탈······.”
비행선 갑판에 전원이 사망하고 선미에 매달려 있던 히포그리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광선에 휩쓸렸다.
전멸이었다.
재앙은 지상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후퇴하는 지상 병력의 발아래에서 진동이 일어더니, 땅을 헤집고 무언가 치솟았다.
“저게 뭐야!”
붉은 촉수 다발이었다.
콰一지一지一지!
그것들이 후퇴 대열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단숨에 수십 명이 전사했다.
심지어 그 촉수 다발 사이에서 지옥 차원의 존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끄에에에!
그것들이 달려들어 혼비백산한 플레이어들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으아아아!”
학살이 벌어졌다.
“저,정신 차려! 침투를 막아라!”
“뒤를 조심해! 악!”
마왕의 몸뚱이에 조금의 상처도 내지 못했건만, 플레이어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장면이 91.2%에 이르는 서약 거부자들의 눈앞에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 * *
안 기자의 스튜디오에는 그 어느 때 보다 차갑고 무거운 긴장이 흘렀다.
안 기자는 약 30여 초 만에 입을 열었다.
“아, 이게 지금······ 어떻게 해설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리고 그 열세는 곧 모든 이들의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이 어, 지금껏 있었나요?”
안 기자가 조수에게 물었고 조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확실한 게 하나 있습니다.”
“확실한 거요?”
조수가 물병을 들어 올렸는데, 그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예, 네크로맨서가 없을 때 밀렸어도 네크로맨서가 함께 있는데 밀린 적은 어, 없었죠.”
이에 안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네크로맨서는 언제나 미리 대비하고 새로운 수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 무슨 수를 쓰고 있긴 한데 족족 무용지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기압의 해설을 하고 있을 동안, 등 뒤 스크린에 출력되는 상황은 점점 더 절망에 가까워졌다.
끄에에에! 끄에에에!
끔찍한 울음이 울리며, 지옥 생명체들이 지상의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어서 자리를 잡아!”
“느, 늦었어! 도망쳐!”
플레이어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데다가 대열이 완전히 무너졌고 함대의 포격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공세를 막아내기 힘들어 보였다.
“아! 이대로면 학살당할 겁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드디어 하나 된 병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까요?”
“언제나 그렇듯, 기적 같은 반전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걸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그런데 안 기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 정말로 무슨 일이 시작되었다.
쿵!
굉음과 함께 지옥 생명체들 진로 앞, 땅이 들썩이더니, 땅이 뒤집어 까지며 무언가 치솟았다.
거대한녹색 덩어리였다.
“······후! 등장!”
그건 거북 형상의 거대한 영물, 현무였다.
“너무 늦지 않았겠죠? 모두 빨리 나와요!”
그리고 현무의 등 뒤에 한호, 지수, 정훈, 리웨이, 첸 등이 타 있었다.
하물며 현무가 들어 올린 땅 아래에서 수많은 플레이어가 달려 나왔는데, 미궁을 공략한 특별공격대 소속의 정예 병사였다.
“자, 이제 우리가 갑시다!”
한호는 그렇게 말하며 6개의 손을 사방으로 펼쳤다. 그러자 그의 눈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음기 지대’가 시작됩니다.
푸쉬이이一
한호는 현무의 권능 중 하나인 ‘음기 지대’를 사용했다. 냉기와 독기가 담긴 음지의 기운이 퍼져나가며 드넓은 완충지대를 형성했다.
지옥 생명체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했고, 플레이어들은 그사이에 무너진 대열을 복구했다.
“지금이다! 정신 차리고 집합하라”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탱커 앞으로! 방패를 들어라!”
“마법사들은 방어 마법을 준비하라!”
그 등장은 평소와 뭔가 달랐다. 네크로맨서가 동료들 앞에 나타난 게 아닌, 네크로맨서의 앞에 동료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아! 드디어, 드디어! 그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혹시 하는 희망을 품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이백여 명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래도 상황이······ 어라? 저건 뭐죠?”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과—과—과—과—광!
음기 지대 밖에 몰려 있던 지옥 생명체들의 머리 위로 불벼락이 떨어졌다.
포격이었다.
“갑작스러운 포격 지원에 지옥 생명체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함대는 분명 훨씬 앞에 있는데요?”
“세계수 함대가 아닙니다! 이건 뒤에 서 왔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네요!”
조수의 말대로 포탄이 날아온 건 후방이었다. 이내 화면이 그곳을 비추었다.
우우우우—
무려 24대의 비행선이 서쪽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W·P·U?”
그렇다. 후방에 하이퍼 게이트가 열리며 미국 서버로 돌아갔던 W·P·U 함대가 마침내 합류한 것이었다.
“와우! 조나단! 오랜만이에요!”
한호가 소리쳤다. 선두 비행선의 선루 갑판에 조나단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러브 의장이 같이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기 점 보십시오!”
수많은 비행선 아래, 엄청난 숫자의 포탈이 열려 있었다. 전부 하이퍼 게이트였다.
“하이퍼 게이트가 수십 개가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한 곳에만 연결된 게 아니라는 뜻이죠. 대체 어디로 연결된 걸까요?”
이내 그 모든 하이퍼 게이트를 통하여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가자!”
“이동해! 어서 자리 잡아!”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무기를 들어 올렸고 상당수의 공성 병기를 끌고 나타나 이곳저곳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 행렬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는데, 그 숫자가 족히 십만이 넘는 듯했다.
안 기자와 조수는 입을 벌린 채 마주 보았다.
“아, 이건······.“
“······월드 전체의 지원이라고 봐야겠죠?”
미국 서버, 캐나다 서버, 대만 서버, 중국 서버 등, 세계 각지에 남아 있던 예비 병력이 전부 지원 나온 것이었다.
“여기서 지면 어차피 우린 멸종이야!“
“힘을 합쳐서 마왕을 토벌한다!”
그렇다. 이게 바로 세계수 진영의 완전체였다.
* * *
이는 성우에게도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용사 특전의 동료 선택을 쓸 수 있다.‘
사실 단순히 ‘동료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그들이 큰 전력이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한호가 올라탄 현무가 지옥 생명체들을 짓밟으며 성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 뒤에는 지수와 리웨이가 타 있었다.
“선배! 혹시 기다렸어요?”
성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 였고 한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혼자 다 해먹게 둘 수는 없죠! 이제 저도 신격이 있거든요!”
- 용사 특전의 ‘동료 선택’을 사용합니다.
성우는 그렇게 한호, 지수, 리웨이, 정훈을 ‘동료 선택’했다.
성우의 몸에서 번져나간 백색 빛이 그들의 몸에 흡수되었다.
“오? 그사이에 또 무슨 이런 대단한 걸 얻으신 거예요?”
그들은 엄청난 능력치 상승에 놀랐다. 모든 능력치가 15만큼이나 상승한다니?
이건 심지어 신격을 얻을 때 올라가는 능력치 상승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다.
“저 무지막지한 놈이 설마 마왕입니까?”
정훈이 물었다. 이들은 계속 미궁 안에 있었기에 전후 사정을 알지 못했다.
“맞습니다. 놈의 얼굴을 노려야 합니다. 몸통은 피해를 주기 어려울 겁니다.“
놈의 몸통은 너무나 커서 웬만한 데미지로는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하물며 포탈에서 기어 나온 지옥 생명체들이 몸통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마치 비늘 갑옷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돌파해서 확실한 순간을 만든다면, 제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습니다.”
성우는 ‘천근궁’과 ‘천근살’을 꺼내 보였다. 세트 아이템 ‘신살자’를 써야 할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성검’을 부여해서 마왕에게 무려 2,000%의 추가 데미지를 입힐수 있었다.
‘세계수도 죽일 수 있는 기술의 20배에 이르는 데미지, 아무리 마왕이라도 버틸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신살자도 성검도 통틀어서 단 한 발뿐이었다. 확실하고 정확한 순간이 필요했다.
“자, 모두 준비되셨으면······.”
그런데 지수가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넋을 놓고 성우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수 씨, 괜찮으세요?”
성우의 물음에 지수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지수는 어딘가 피곤한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지수 누님이 조금 안 좋은 일을 겪으셔서요.”
“아니에요. 지금은 괜찮아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에요.”
지수는 성우의 뒷모습, 정확히는 그의 어깨에 걸려 있는 그림리퍼를 바라 보았다.
’저게 왜 빛나고 있지?’
단순히 빛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대체 뭐야?’
유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