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72) 마왕성 토벌전 - 2
오래된 경험에 의존하여 나아가는 이들은 언젠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이 지옥 같은 게임을 수차례 경험한 플레이어, 강석이 그랬다.
강석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오묘한 감정이 당혹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가 계속해서 나왔다. 이건······ 과거에 상대했던 플레이어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쉽게 말해 ‘변수’였다.
변수와 변수가 거듭되어 강석의 경험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큭······.”
강석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4개의 드높은 벽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벽이 아니라 빌딩만큼 거대한 크기의 거인이었다.
고오오오······
까마득한 높이의 두 거인, 그리고 두 거인의 실체화된 그림자······ 강석은 저것들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들의 머리가 회색 연기 속에서 슬며시 기울어져 강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분노한 신들에 의해 천상의 법정에 세워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가 모이는 지점, 그곳의 허공에 네크로맨서가 서 있었다.
“네크로맨서, 네가 이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어. 인정해, 이건 내가 여러 세계를 멸망시키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야. 하지만······.”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그의 몸 위로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푹!
그것이 가슴을 관통했다.
“······컥!”
붉은색 창, 레드 드래곤 스피어였다.
바실리스크의 이빨과는 차원이 다른 데미지와 고통이 밀려왔다.
“브레스 필드!”
성우는 곧장 스킬을 사용하여 강석이 말을 이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반전이 일어날 만한 조금의 변수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브레스 필드’가 형성됩니다.
‘드래곤 로드-레드’의 스킬 중 하나인 브레스 필드가 발동, 창 주변의 공기가 달아오르고 마그마 지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 안으로 열기가 파고들어 온몸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것 같았다.
치이이이!
살이 타고 뼈가 녹았다.
강석은 비명을 질렀다. 순수하게 고통에 찬 비명이었다.
이렇게 본능적인 육성을 배출한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을 토해내자······.
-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꺼져가는 정신 속에서 다시금 차가운 이성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뭐, 이런적이 처음은 아니잖아?’
유일한 목표가 떠오르고 그걸 이룰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이 차올랐다.
‘나는 그들 사회로 섞여야 해. 이 세계만 멸망시키면, 그들이 날 받아줄 거야. 그래,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나 같은 장난감을 원할 거야······.‘
빛이 돌아오고 시야가 밝혀졌다.
그의 눈앞에 이 시나리오의 변곡점을 뜻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본체의 죽음을 양분으로 ‘마왕(眞)’으로 부활합니다.
* * *
성우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28,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끝이라고?”
만전을 기하여 감행한 기습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아니,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심스러웠다. 모든 기계처럼 척척 들어 먹혔다고 한들, 그 잘난 놈이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진다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끝이 아니야.”
꾸륵— 꾸륵—
놈의 시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헉!”
놈이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쩌적一 쩌적一
등이 반으로 갈라지며 몸 밖으로 척추뼈가 비집고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가 뒤틀어지고 뿔이 자라는 등, 온몸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후······.”
이어서 놈이 다시금 숨을 내쉬자 마그마의 열기가 밀려나며, 팔팔끓던 바닥이 딱딱하게 바스러졌다.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 브레스 필드를 종식해 버린 것이었다.
턱—
그렇게 놈이 몸을 일으켰다.
머리에는 두 개의 붉은색 뿔이 투구처럼 솟아나고, 붉은색 눈동자 위에 금빛 안광이 피어올랐다.
척추를 따라 날카로운 뿔이 튀어나왔으며 팔과 다리가 길게 자라난······ 웅장하고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 보스 몬스터 ‘마왕(眞)’이 등장했습니다.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냈나?”
그러나 성우 역시 다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성 밖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미궁 안에는 여전히 ‘공격 루트’ 플레이어들이 남아 있었다.
“발키리님, 저기! 끝이 보입니다!”
지수와 첸, 그리고 이사벨라가 속한 팀은 3개의 관문을 돌파하고 기나긴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어둠에 잠긴 복도가 나타났다.
“이사벨라, 여기가 최하층 맞아?”
지수가 이사벨라에게 물었다.
“그래.”
이사벨라가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한동안 이곳, 마왕성에서 머물렀기에 내부 시설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지수가 느끼기에, 이사벨라는 미궁에 들어온 이후로 부쩍 말이 줄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흔들리고 있어. 대산맥의 왕을 처음 봤을 때처럼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거야.’
지수가 태백산맥에 떨어지고 대산맥의 왕을 만났을 때, 그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 나를 보자마자 나를 죽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혀서 당황스러웠는데······.‘
그래서 지수가 물었다. 그 목소리를 따를 것이냐고, 그러자 대산맥의 왕이 대답하길, 며칠 전까지는 그랬을 텐데, 최근 들어서 괜스레 짜증이 나기 시작 하여 한 번쯤 반항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종종 전혀 다른 목소리가 떠 오른다고 했다.’
정말 웃기고 이상하게도, 대산맥의 왕은 ‘피시방’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런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웃고 떠드는 목소리가 떠오르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몬스터였다면 그런 기억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들처럼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은 어쩌면······.‘
지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앞서 나가던 이사벨라가 멈춰 섰다. 그리고 뒤돌아 지수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나한테?”
지수는 의아했다. 이 고고한 레드 드래곤께서, 그토록 깔보던 인간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니?
이사벨라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이 세계에 처음부터 존재했나?”
“······응?”
지수가 듣기에는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로서는 게임 외의 것에 대해 전혀 모를 만도 했다.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평범하게 살았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지도 않았고 싸울 필요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게임이 시작됐어.”
이사벨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이 게임의 목적은 너희를 기로에 몰아넣는 거고 내 목적은······ 너희를 방해하는 것이겠군?”
지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불필요하게 생각하고 혼란스럽지? 내가 이런 생각에 잠길 필요는 하나도 없잖아?”
불필요한 생각과 혼란, 역시나 대산맥의 왕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이에 지수가 물었다.
“혹시 너를 조종하려는 목소리 같은 게 들려? 진짜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마치 목소리 같은 생각 같은 거.”
“······.”
이사벨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언의 긍정이 었다.
“그렇다면, 그걸 반대로 해. 네 존재 목적, 진짜 존재 목적을 찾으려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면 돼.”
“존재 목적이라······.“
하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스릉—
지수가 무언가를 느끼고 검을 뽑아들었고 이사벨라도 그걸 느꼈다.
전방, 복도의 어둠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후우우우—
옅지만 어딘가 사나운 바람이 복도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온다.”
이사벨라가 말했고 지수는 오른발을 뒤로 빼며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콰과과과과!
이내 돌풍이 몰아쳤다.
“큭, 모두 날아가지 않게 자세를 낮춰!”
계단을 내려오던 첸이 소리쳤다. 플레이어들은 계단 위에 웅크려 앉으며 전방, 복도의 어둠을 경계했다.
그때, 그곳으로부터 무언가 날아왔다.
“으아아!”
사람, 정확히는 여자였다.
“리웨이?”
리웨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는 성우와 함께 있지 않았던가?
“리웨이!”
그녀가 돌풍 날아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기 직전, 지수가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물의 정령들이 함께 밀려와, 지수의 머리 위로 물방울이 흩어졌다.
“리웨이! 어떻게 된 거예요?”
“지수? 다행이다. 그년이 오고 있어!“
“누구요?”
이내 복도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단 한 사람, 그레이스였다.
“어머, 여기 다 모여 있었어?”
그레이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동자를 천천히 굴렸다. 그러다가 지수의 뒤에 서 있던 이사벨라를 발견했다.
“어, 이사벨라님?”
그레이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지팡이를 치켜세웠고 지수는 검 끝을 들어 올렸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지수의 어깨에 얹혔다. 이사벨라였다.
“너, 이미 묶였어.”
이사벨라가 지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응?”
“네 발, 봐.”
지수는 고개는 정면을 향한 채 눈동자만 내려 제 발끝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그림자가 이상했다.
이사벨라는 분명, 아군이 들고 있는 랜턴을 쬐고 있었다.
즉, 정면에서 비추는 빛, 그림자는 등 뒤로 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앞으로 길게, 아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당했다.’
그림자의 지팡이 부분이 한없이 길게 늘어져, 이미 지수의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비보나가 널 끌고 갈 거야. 만약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때 다시······.”
지수는 이사벨라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마치 암전된 듯, 눈앞이 시커멓게 물들었기 때문이었다.
- 주의! 당신은 ‘그림자의 굴레’에 빠졌습니다.
지수는 어둠 속으로, 어딘가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검을 단단히 쥐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정말로 물에 빠진 것처럼, 알 수 없는 압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지수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목이 날아갈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최상위 수준의 암살자다. 다가오는 것조차 몰랐다니?’
하지만 쉽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허무하게 죽을수 없다. 이런 중요한 전투에 내가 빠지면 더 많은 이들이 죽을 거야. 최대한 빨리 나가야 해.’
지수는 책임감을 느끼며 들이마신 숨을 내뱉었고 이내 바닥에 닿았다.
턱—
거친 돌바닥이었다.
슥—
지수는 신발로 바닥 위를 문지르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있는 거 다 알아.”
텅—
순간, 천장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내렸다. 지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떻게든 눈을 감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그림자가 이상하다.’
정확히는 빛이 이상했다. 광원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지 수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무려 4개나 만들어졌다.
그때,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가 갈기갈기 찢길 예정이라는 뜻이야.“
어느새 눈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거 알아? 아직도······ 옆구리가 계속 시큰거려! 시발!”
잔뜩 흥분하여 씩씩거리고 있는 남자, 그림자를 다루는 암살자, 비보나였다
“개 같은 년, 넌 죽었어.”
비보나의 발밑에 드리운 4개의 그림자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 * *
성우는 언데드 군단을 정면으로 움직이며 뒤로 빠졌다.
파지지지! 퍼一억!
그가 직전까지 서 있던 자리 위로 붉은색 번개가 낙하했고 땅이 움푹 파였다.
’다르다.’
마왕의 본 모습, 심지어 그냥 마왕이 아니라 ‘마왕(眞)’이었다.
‘확실히 다르다. 명계에서 처음 변신했을 때와 차원이 달라.’
당시 마왕은 염라의 권역인 명계를 붕괴시켰지만, 성우의 군단과 정면으로 맞서는 걸 포기하고 물러선 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眞)이라는 수식이 붙은 만큼 정면 승부에서 오히려 성우의 군단을 밀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기간테스’가 추가되었음에도 말이다.
콰—앙!
기가스 한 마리의 머리에 붉은 번개가 작렬하며, 그 거대한 몸뚱이가 서서히 기울어졌다. 마치 빌딩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콰과과과과!
뒤이어 놈의 어깨 위에 떠 있던 ‘붉은 구체’에서 붉은 번개가 다발로 뿜어지며, 성벽 위를 훑고 지났다.
화살과 공성 병기를 쏘아대던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단숨에 으스러지며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버렸다.
‘저 구체는 전혀 다른 권능이다. 마왕 외의 다른 신격은 뭐지?’
번개를 다루는 신은 몇 개 없었다. 제우스? 토르? 혹은 또 다른 무언가?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신격을 알아도 그 스킬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소용없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빈틈을 노리던가, 신살자를 쓴다.’
지금까지 아껴둔 비장의 수 ‘천근살’을 써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발인 만큼, 신중해야만 했다. 무턱대고 당기는 게 아니라 확실한 한 방을 노려야 할 테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태고의 죽음을 쓰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다.’
[스킬 정보]
- 이름 : 그림리퍼 소환(시간 지배)
- 등급 : 1차 각성
- 분류 : 액티브
- 소모 : 0
하루에 단 3시간 동안 사신의 낫 ‘그림리퍼’를 소환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리치’상태가 됩니다.
+ 사자의 권역 : 리치의 힘을 얻는 동안 최대 권속 수가 (+50)만큼 증가하며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인고의 숙련’ 효과에 의하여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스킬 효과가 (+20%)만큼 증가합니다.
또한,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 태고의 죽음 : 해당 아이템의 소환 시간이 종료되는 순간, 1분간 ‘태고의 죽음’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게 도대체 어떤 능력인건지 불명확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설명만 보더라 의도적으로 숨기는 게 역력하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걸 사용하는 순간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 때가 될 것이었다.
파一 직
그때, 약 십 미터 앞에 붉은 스파크가 튀기더니 허공에서 마왕이 튀어나왔다. 근거리 도약 스킬이었다.
“그렇게 계속 도망만 칠 건가?”
마왕이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성우는 그림자 이동으로 기가스의 뒤로 순간 이동했고, 마왕은 계속해서 성우를 쫓았다.
치지지지!
놈의 몸에 붉은 전류가 흐를 때마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다. 떼어 낼 수 없었다.
‘이대로면 결국 잡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아—앙!
좌측, 마왕성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틈으로 시뻘건 불기둥이 터져 나오며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콰과과과과과—
그 불기둥은 한참을 뿜어져 오르며 일대의 공기를 뜨끈하게 데웠다.
“······브레스?”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브레스였고, 브레스라면 이사벨라밖에 없었다.
이내 폭발이 일어난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걸어 나왔다.
역시, 레드 드래곤, 이사벨라였다.
‘젠장, 일이 더 꼬였다.’
성우는 당황했다. 그녀의 목에 ‘드래곤 키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수 씨는 어떻게 된 거지? 지수 씨라면 분명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텐데?’
당황은 불안이 되었다. 반면 마왕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여유가 번져나갔다.
“이사벨라, 무사했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고 떠나갔을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사벨라를 맞이했다.
“나야 뭐······.”
“그런데 그레이스는?”
이사벨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 다는 뜻이었다. 강석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어. 너만 있으면 돼. 저놈을 빠르게 죽이고 세 번째 월드 시드를 찾으러 간다. 계획은 꼬였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네크로맨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왕 그리고 드래곤, 네크로맨서가 제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조합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사벨라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강석, 나 지금······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
그리고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사벨라는 혼란스러운 듯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목소리가······ 너를 따라서 저 플레이어들을 전부 죽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거 잘 됐군. 그게 정답이야. 이 세계를 좌우하는 신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강석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네크로맨서, 나는 이 세계가 세 번째다. 그리고······ 마지막이다. 그동안 수고했다.”
그러는 사이 이사벨라의 몸은 붉은빛으로 물들며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고오오오—
폴리모프를 풀고 본래의 모습,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붉은 뿔을 가진 마왕의 뒤로, 붉은 드래곤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리우는 장면은 모두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터져 나온 외마디 외침이 분위기를 헝클었다.
“······마, 마왕님!”
그건 그레이스의 목소리였다. 마왕이 고개를 돌렸다.
“그레이스?”
이사벨라가 무너뜨린 성벽의 틈 사이로, 온몸이 녹아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존재가 서 있었다.
그녀는 어떤 보호 마법으로 제 몸을 두른 채 간신히 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 조심하십······ 이, 이사벨라가······.”
마왕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시뻘건 불기둥이 놈을 덮쳤다.
레드 드래곤이,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