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15화 (215/244)

# 215

71) 아마존의 마왕성 - 3

머릿속에서 무언가 웅얼거렸다. 이사벨라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가 이상행동을 보이자 앞서나가던 지수와 뒤따라 오던 플레이어들이 덩달아 멈춰 섰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지금, 구속당한 채 마왕성 공략에 끌려왔다.

그렇기에 분노와 수치가 치솟는 한편,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뭐지? 그런 게 있었나?’

아니, 떠올리지 못했다.

분명 무언가 떠오르려고 했지만, 이내 암전이 된 것처럼 그 기억이 사라졌다.

‘대체 뭐지? 기억이 맞긴 맞나?’

애초에 그녀에게 어린 시절은 없었다. 어떻게든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녀는 붉고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채 축축한 열대 우림 한복판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때, 첫 번째로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본능적인 분노······.

목구멍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그녀는 눈을 뜬 첫날 그 강력한 몸뚱이와 마법을 가지고 주변의 몬스터, 일대의 플레이어를 죄다 죽여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때처럼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데 그 분노를 곧장 실행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으니, 몸이 오류가 난 것처럼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반응은 의문이었다.

‘나는 왜 항상 화가 나지? 이유가 대체 뭐야? 왜지?’

그녀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기어 들어 왔다. 파괴하고 정복하라는 목소리였다. 아니, 목소리는 아니지만 분명 그런 내용의 무언가가 머릿속을 휘저으며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동공이 확장되고 입이 열렸다. 당장이라도 브레스가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벨라, 이제 가야 해.”

그렇게 말한 건 지수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유약한 인간······ 아니, 인간 중에서는 그나마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지수는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사벨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공포나 경계라기보다는 연민 같다고 할까?

그런데 이사벨라는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넘실거렸다.

‘여기서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저년을 한 번에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수의 오른손에 리모컨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이사벨라의 동공이 확장되는 걸 확인했고 오른발을 뒤로 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엄지가 버튼 위에 올라갔다.

이사벨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지수에게 다가갔다.

“알아. 갈 거야. 아니면 날 죽일 거잖아?”

이사벨라의 목 뒤에는 ‘드래곤 키퍼’에 연결된 3자루의 대검이 마치 망토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지수가 버튼을 누르면 대검이 그녀의 목덜미에 처박힐 것이었다.

“아니, 꼭 널 죽일 필요는 없어. 그러고 싶지도 않아.”

지수의 대답은 의외였다만, 이사벨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근데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야.”

“네가 결정한다고?”

지수의 물음에 이사벨라는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 버튼, 네 감정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는 내 감정에 따라 결정해. 갑자기 짜증이 막 나서 날 뛰고 싶으면······ 그때 내가 죽는 거야.“

자존심이었다. 어떻게든 주도권을 쥐고 싶다는 자존심, 그건 이사벨라의 본능이었다.

“네 감정······이라고?”

“그래, 나는 항상 내 마음대로 움직여.”

이사벨라는 지수를 지나쳐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지수는 그 자리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정말 그래?”

이사벨라가 멈춰섰다.

“이사벨라, 넌 정말 네 마음대로 네 생각대로 움직이는 거야?”

지수가 다시 물었고 이사벨라가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지?”

“그렇다면······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이사벨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내 당황했다. 그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멍청이처럼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얼굴이 붉어졌다. 가장 강력한 생명체인 드래곤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이사벨라.”

그때, 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다가와 이사벨라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너와 비슷한 존재를 알아. 그는 오래된 기억에 관해서 이야기했어. 기억나지 않는 기억, 기억 같은 감정······.“

“기억?”

이사벨라는 절로 눈살이 찌푸렸다. 짜증이 치솟았고 수치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이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건 전혀 다른 분노였다.

“모든게 다 잘못됐어.”

“······.“

“우리가 싸워야 할 몬스터는 너희가 아니라, 이 시스템이야.”

이사벨라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또 다른 분노를 느꼈다.

역시나 이유 모를 분노지만, 그 분노는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

“······시발.”

하지만 감정은 남아 있었다. 어쩌면, 드래곤이 되기 전에 다른 무언가의 흔적일까?

* * *

대산맥의 왕은 아마존 한복판에 도착했다. 그는 습관처럼 곰방대를 물려고 했지만,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도저히 불을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망할, 여기는 백두대간과 또 다른 녹색 지옥이로구나! 젠장!”

그 뒤로 어린 호걸 두 마리가 감자 광주리를 짊어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으, 왕이시여, 저희는 털가죽으로 덮여 있어 훨씬 힘듭니다!”

“도대체 여기까지 와서 저 플레이어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두 어린 호걸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직 왕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대산맥의 왕, 자신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예? 모르시다뇨?”

“그게 무슨 무책임한 말씀입니까?”

두 어린 호걸의 원망 섞인 목소리에 대산맥의 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곰방대를 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고개를 저으며 품속에 집어넣었다.

“음, 내 머릿속에서 너희를 비롯한 산의 식구들을 데리고, 저놈들을 죽이라는 목소리가 반복되고 있으니······ 그저, 단지, 그걸 반대로 하는 것뿐이다.”

두 호걸은 전혀 예상 못 한, 그 이상한 대답에 다소 당황한듯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두 호걸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대산맥의 왕은 어린 호걸이 지고 있는 소쿠리에서 삶은 감자를 꺼냈다.

“이제 이런 맛대가리 없는 감자만 먹는 것도 이제 질리지만, 맛있는 걸 마구 집어삼키다 보면, 결국 그 목소리에 이끌리고 만다. 그래서 참는 것이로다.“

대산맥의 왕은 설익은 감자를 물었다

쿵—

저 멀리, 폭음과 함께 하늘이 붉게 타 올랐다. 곳곳에 떠 있는 비행선이 보였다.

“전투가 시작된 모양이구나, 우리도 어서 가서 도와야겠다.”

그는 강제되는 본능과 반대로 움직였다.

* * *

성우는 무너진 원형 경기장 위로 한없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두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고오오오—

흑색의 신체는 생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암벽처럼 거칠고 단단했으며 그 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보라색 빛을 발했다.

팔과 다리를 휘감은 쇠사슬 역시 영롱하게 빛났으며, 숨을 내쉴 때마다 뿜어지는 열기가 얼굴과 천장 부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열기 속에서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기간테스······.‘

그리스 신화 속,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명계(臭界)보다 더 깊은 곳 일명 ‘타르타로스(Tartaros)’에 갇혀 있다는 종족의 이름이었다.

그들 중 둘이 소환되어 성우의 통제를 받았다.

“크으으······.“

그때, 무너진 잔해 속에서 페트로스가 몸을 일으켰다.

놈은 골리앗의 머리가 대번에 으스러진 이후, 두 차례 또 다른 대전사를 꺼내 들었지만, 그 무엇이 나오더라도 기간테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네 대전사의 뼈, 내가 가져간다.”

그리고 그 대전사들의 뼈는 성우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덜그럭! 덜그럭!

“······.“

놈의 기세는 확연하게 꺾였다. 패배 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마왕과 호각을 다투었고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네크로맨서였다.

고작해야 마왕의 집을 지키는 하수인 따위가 그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이놈은 어차피 시간 벌이일 뿐이다.’

이 미궁이란 건 집주인, 강석이 돌아올 때까지 침입자들을 잡아 두기 위한, 일종의 경비 시스템에 불과했다.

‘그가 곧 올 거다.’

페어리 나비를 잃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와 함께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나비가 여는 직통의 포탈보다야 느리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 안에 월드 시드를 파괴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 큰 타격을 줘야 해.’

성우는 페트로스의 목덜미에 그림리퍼를 가져다 댔다.

“널 죽이면 다음 관문이 열리겠지?”

“자, 잠깐······.“

하지만 성우는 멈추지 않았다. 굳이 쓸데없는 대화 때문에 시간 잡아먹고 싶지 않았다.

페트로스의 머리가 잔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 미궁 ‘4번’ 관문 돌파 (2/7)

‘두 번째라고?’

아무래도 벌써 다른 쪽에서 관문을 돌파한 모양이었다.

‘다행이군.’

솔직히 성우는 다른 팀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수나 한호, 모두 강한 편이었지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성우가 도우러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 문이 열렸습니다!”

페트로스를 죽이자 원형 경기장 뒤쪽, 석문이 열리며 다음 관문으로 가는 통로가 개방되었다.

쿵! 쿵!

그때, 어디에선가 진동이 울리며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나 본데? 강력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아?”

리웨이의 말처럼 미궁 어디에선가, 아주 뜨거운 열기가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었다.

화재가 일어난 것일까?

* * *

한호와 정훈은 121명의 플레이어와 함께 긴 복도를 따라 진군하고 있었다.

쩡! 쩡!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복도 곳곳에서 온갖 공격이 쏟아졌다.

“ 위다!”

천장이 열리며 화염 마법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어서 바닥에서 독침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모자라 양쪽 벽에서 산성 액체가 터져 나왔다.

“신경 쓰지 말고 돌격해요! 내가 다 막을게요! 그냥 고!”

하지만 이들의 진군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호와 정훈, 두 사람이 최전 방에 서서 방패를 들고 모든 공격을 방어했다.

“좋아, 저기 끝이 보인다!”

이들이 마주한 관문은 대규모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방이었다.

본디 공략 방법은 도적과 텀험가 직업군을 바탕으로 천천히, 조심스레 나아가며 마주하는 함정을 해제하는 것이겠지만······.

“계속 전진!”

“고! 고! 앞만 보고 갑시다!”

이들은 그 모든 걸 몸으로 받아내며 나아갔다. 정확히는 일행 전체를 감싸 안은 ‘현무의 권능’ 덕분이었다.

“워! 이거 완전 물총 퍼레이드에 온 기분 아니에요? 사방에서 뭘 쏴 대는 데 그걸 다 뒤집어써도 짜릿하기만 한데요?”

말도 안 되지만, 한호는 신이 나 있었다.

“한호 씨, 방심하지 마세요!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모릅니다!”

“으하하! 다 나오라고 하세요! 이 현무의 권능을 뚫을 순 없을 거예요!”

그렇게 극에 달한 방어막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나아가, 복도 끝에 있는 코어를 제거함으로써, 모든 함정을 무력화로 만들었다.

- 미궁 ‘2번’관문 돌파 (4/7)

그렇게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다.

“이제는 뭐, 선배가 없어도 전부 별 거 아니잖아? 으하하!”

정훈은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명 대단했지만, 너무 막무가내라 어딘가 불안하기만 했다.

“후! 좋아, 이 정도는 몸풀기지! 그런데 다른 곳은 어떻답니까?”

한호의 물음에 무전기 아이템을 들고 있던 통신 대원이 고개를 들었다.

“어······ 네크로맨서님 쪽은 방금 4번 관문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선배 그 인간이야 뭐 당연한 거고 지수 누님 쪽은요? 어쩌면 이제 슬슬 내가 앞설 때가 된 것 같기도 한데?”

한호는 내심 기대하며 물었지만, 통신 대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쪽은 벌써 두 개의 관문을 돌파하고 세 개째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앵? 대체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선배보다 빠를 수가 있지?”

통신 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음,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드래곤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무슨 말인지······.”

* * *

그때, 성우 일행은 두 번째 관문, 7번 관문에 도착했다.

이곳은 오래된 지하 시설이었는데, 군데군데 이끼가 끼어 있는 게 축축한 늪지 같은 느낌이었다.

“여긴 뭐지? 엄청 습한데? 내 정령들이 역겹다고 속삭이고 있어. 아무래도 근처에 오염된 물이 있는 것 같아.”

아니나 다를까, 한쪽에 깊은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웅덩이 위로, 오래된 유적이 침수된 듯, 대리석 기둥과 조각상들이 듬성듬성 치솟아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치켜세우고 그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님?”

그때, 대원 하나가 성우를 불렀다.

“저 안에서······ 뭔가 움직입니다.”

성우가 그곳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웅덩이 안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별안간, 그림자 위로 붉은색 빛이 두 개가 떠오르더니······.

푸화아아!

이내 물보라와 함께 거대한 뱀의 머리가 웅덩이 밖으로 치솟았다.

“마, 맙소사······.”

- 히든 스테이지 보스 몬스터 ‘바실리스크’가 등장했습니다.

바실리스크, 다양한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써, 가장 잘 알려진 건 이렇게 거대한 뱀의 형태였다.

이무기보다는 짧지만, 머리 크기는 1 .5배 정도 될 법했다.

놈의 붉은 눈이 성우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생명체들이여, 불행하게도 마왕성의 미궁, 7번 관문에 온 걸 환영한다. 이곳의 규칙은 아주 간단하다.」

부글부글—

놈의 목소리와 함께 웅덩이의 물이 끓어오르듯 거품을 토해내며 수면이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방에 물이 가득 차 익사하기 전에 탈출하면 된다. 물론 나를 쓰러뜨려야 가능할 테지만 말이다.」

웅덩이의 물이 어느새 성우의 발 앞까지 밀려 올라왔다.

“수위가 상승한다!”

“탈출로 확인해!”

플레이어들은 신중하게 움직이며 대응했다.

그런데 성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실리스크를 살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건 마치······ 이번 시즌 출시할 신상품을 고르는, 명품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의 눈빛 같다고 해야 할까?

「네놈, 왜 날 그렇게 보는 거지?」

바실리스크 역시 그 괴상한 시선을 느꼈는지 그렇게 물었고, 성우가 마침 내 입을 열었다.

“······좋아. 쓸만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냐?」

“너랑 비슷한 걸 가지고 있는데, 한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뭐?」

그 순간······.

콰—앙!

성우의 등 뒤, 일행이 지나온 통로 쪽 벽이 무너져 내려며 그 틈 사이로 무언가 길쭉한 게 튀어나왔다.

쿠구구구구一

“전원, 머리 숙여!”

그건 손이었다. 끊어진 쇠사슬이 달린 거대한 손아귀가 벽을 허물어뜨리고 나타나 웅덩이를 향해 뻗어 나갔다.

“놈을 건져 올려.”

성우의 명령에 따라 바실리스크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는데, 그 손이 어찌나 큰지 바실리스크를 마치 뱀장어 건지듯, 웅덩이 밖으로 뽑아버리는 게 아닌가?

「······가, 감히!」

놈이 기가스(Gigas)의 손에 붙잡힌 채 몸을 뒤틀며 무언가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치이이이一

검은 액체와 연기, 두 개의 송곳니에서 치명적인 산성 독액이 뿜어진 것이었다.

“젠장! 독이다! 뒤로 후퇴!”

플레이어들이 방어막을 펼치며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성우는 독에 내성이 있었기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놈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기가스가 한 손으로 바실리스크의 목덜미를, 다른 한 손으로 아래턱을 잡아 억지로 벌렸다.

「가아아, 이, 으······.」

놈은 몸을 꿈틀거리며 저항했지만, 무의미했다.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이라지만, 신화 속 거인 신족에 비교할 수 없었다.

뒤이어 두 번째 기가스가 벽을 허물고 등장하며 놈의 몸뚱이를 움켜쥐었다.

“좋아, 어디 보자······.”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가운데, 성우가 치과의사처럼 바실리스크의 입 안 쪽을 살폈다.

“······저거다.”

성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가스가 검지와 엄지로 놈의 송곳니 하나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뽑아버렸다.

「각! 가아아아!」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 뾰족한 이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우는 그 이빨을 살폈다.

“독을 뿜는 이빨이라? 뼈와 가죽만 쓸모 있는 게 아니었군?”

성우는 자신의 손목, 레드 드래곤의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레드 드래곤의 이빨을 엮어 만든 장신구로 10마리의 ‘용아병’을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허스트에게 부탁해서 여기에 엮어 달라고 하면, 쓸만한 게 나오겠어?”

역시 마법 공방을 제대로 키워 놓으니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미궁이 아니라 완전 보물창고잖아?“

그리고 주인이 오기 전에 최대한 다 털어먹을 생각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성우를 불렀다.

“네크로맨서님!”

통신 대원이었다.

“방어 루트 쪽 메신저호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성벽 밖 상공에······ 마왕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마침내 집주인이 돌아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