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71) 아마존의 마왕성 - 2
안 기자의 스튜디 오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저 사람이 마왕이었다니, 이건 저희도 정말 몰랐습니다.”
언제나 베일에 싸여 있던 인물, 너무 오래 신비주의를 고수하여 어느새 잊혔던 인물이 난데없이 ‘마왕’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마왕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성우를 비롯한 세계수 진영의 수뇌부 뿐이었으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네크로맨서와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듯했는데······.
“싸, 싸우기 시작합니다! 무슨 이해 관계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둘은 결국 적대 관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판이 나지 않았다.
마왕이 네크로맨서를 강력하게 몰아 붙이더니, 오히려 물러선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싸움은 서막에 불과했다는 걸······.
2차전은 금방 일어났다. 네크로맨서가 급격한 전개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 배경은 다름 아닌 아마존이었다.
“아, 네크로맨서와 세계수 진영의 전 병력이 엄청나게 과감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바로 아마존입니다!”
“와, 대박! 아직 마왕과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죠! 도망친 놈 빨리 다시 와라, 그런 뜻이 아닐까요?”
그러던 중, 안 기자에게 또 다른 메시지가 전해졌다.
“아!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직원들을 동원하여 거의 모든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있었기에, 모든 서버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 지금, 공식 채널 방송을 통해 월드 전체에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나섰다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그때 등 뒤, 스크린의 화면이 돌아갔다.
“아! 지금 나옵니다!”
그건, 강석이었다. 그가 무너진 건물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에 네크로맨서와 싸웠던 한국 서버의 랭킹 1위! 그리고 마왕으로 밝혀진 자! 한강석입니다!”
그가 방송을 의식하고 이용한 건 한일전 당시, 규슈를 초토화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한국 서버 랭킹 1위, 그리고 아마존에 있는 마왕성의 주인이다.”
무게가 다른 소개였다.
“월드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특히 아마존에 있는 세계수 진영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이 메시지를, 경고를 전한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왠지 모를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지금 아마존의 마왕성으로 돌아가 그곳에 있는, 나에게 대항하는 모든 플레이어를 학살할 거다. 단 한 놈도 빠짐없이······죽일 것이다.”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스튜디오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모두가 그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안 기자와 조수는 숨 소리조차 내지 못 했다.
“나를 따라서······ 네크로맨서를 죽여라.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를 따라라.”
그 말을 끝으로 강석은 카메라 앵글 밖으로 사라졌다.
“······.”
아주 짧은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었다.
“아, 지금 이게······ 마왕성을 공격한 세계수 진영에 대한 복수를 선언함과 동시에 월드에 전역에 어떤 유세를 한 것 같은데요?”
안 기자의 말에 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마왕의 밑으로 들어올 기회를 주겠다, 이런 거죠? 대박!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는 순간이라고 봐야겠네요?”
또 한 번, 월드를 쥐고 흔들만한 파워 게임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황제를 꺾었더니 아마존의 마왕이 등장한 것이다.
“아아, 상황이 다시 복잡해집니다. 마왕이라······ ‘재앙 퀘스트’를 일으킬 만큼 극에 달한 플레이어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그래도······ 네크로맨서를 믿습니다. 그가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기자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월드 곳곳의 소식통에 의하면, 마왕이 도착하는 서버마다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학살이라니? 절대 진영을 지지하지 않는 플레이어까지 죽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애초에 그가 원하는 건 우리, 플레이어간의 통합이나 통제보다 일방적인 억압과 지배가 아닐까 합니다.”
안 기자는 이어서 과거, 네크로맨서가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을 인용했는데, 네크로맨서는 황제나 마왕과 다르다는 걸 주장한 셈이었다.
“여러분, 반드시 월드는 하나가 될 겁니다. 과연 누구에게 권력을 주어야 옳은지······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안 기자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청자 여러분, 저는 이번에도 역시나 네크로맨서를 지지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편파 중계를 하겠습니다.“
* * *
마왕성은 마왕의 ‘권역’이자 하나의 ‘대규모 던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입장과 동시에 아주 특이한 ‘히든 퀘스트’가 동반되었다.
[히든 퀘스트]
- 제목 : 마왕성 토벌전
- 유형 : 던전 공략
- 목표 : 마왕성 점령
- 보상 : 알수 없음
[안내 사항(중요)]
0) 마왕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미궁 공략’이 필요하다.
1) 토벌대는 ‘공격 루트’와 ‘방어 루트’로 나뉘어 움직인다.
2) 공격 루트 : ‘미궁’으로 들어가 그 곳의 ‘심층부’를 정복한다.
3) 방어 루트 : 해당 진영(수원)으로 가는 ‘포탈’이 열린다. 그곳으로 진격하는 마왕의 군단을 저지한다.
4) 공격 루트가 미궁 내 ‘관문’ 공략에 실패하거나 포기할 때마다 방어 루트에 가해지는 공세가 거세진다.
“······응?”
그 메시지 앞에, 세계수 진영의 돌격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어라? 갑자기 무슨 퀘스트야?”
그때, 후방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캠프 근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포탈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아마존의 열대 우림 사이에 거대한 포탈이 하나 생성된 게 보였다.
“성우 씨, 그렇다면 저건 세계수 진영으로 가는 포탈이겠군요? 이렇게 되면 공격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다.”
정훈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이 유도하는 퀘스트라면, 마음대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왕과 세계의 운명을 건 마지막 승부를 치러라, 뭐, 그런것 같네요.”
여기서 지면 돌아갈 고향도 없어진다니, 모든 걸 걸어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젠장, 마왕이라더니, 판타지에 나오는 뻔한 끝판왕처럼 억지로라도 비장함을 연출하려는 모양입니다.”
마왕을 처치하지 못하면 오히려 세상이 위험해지는 게 용사와 마왕 서사의 클리셰이긴 했다만, 그런 게 권능일 줄이야?
세계수 진영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급히 작전을 수립해야만 했다.
“지휘관 집합! 긴급 작전 회의다!”
회의라기보단 성우의 일방적인 명령 전달에 가까웠다.
애초에 깊이 있는 작전 회의를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마왕성 내부, 즉 미궁은 복잡하고 거친 던전일 거다. 대규모 병력이 들어 가면 막대한 희생과 어려움을 겪을 게 뻔하다. 그렇기에 병력 대부분을 ‘방어 루트’에 집중한다.”
성우는 퀘스트 메시지 중 ‘미궁’이라는 말을 중요한 키워드로 여겼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곳 ‘미로’와 같은 뜻인 만큼 대규모 병력을 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었다.
“방어 루트에 해당하는 병력은 포탈을 단단히 둘러싸고 급히 요새를 구축한다. 그리고 모든 화력을 쏟아부으며 단 한 마리도, 포탈로 들어갈 수 없게 한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병력을 ‘방어 루트’에 배치하고 주요 플레이어들만 ‘공격 루트’에 진입하기로 했다.
성우, 지수, 한호, 정훈, 리웨이 등 세계수 진영 내의 최고의 강자들과 첸, 강윤, 안석 등 제 몫을 톡톡히 해낼 만한 상위권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런 상위권 플레이어들 외에는 ‘특별공격대’ 전원과 미로 속에서 함정 해제나 길찾기에 도움이 될만한 도적·탐험가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동원되었다.
“자! 각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그렇게 약 320명의 공격 루트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수만 명에 이르는 방어 루트 병력이 후방으로 이동했다.
“네크로맨서님! 저쪽에 붉은색 문이 있습니다. 미궁의 문인듯합니다.”
이내 미궁의 출입구를 찾아냈다.
흑색의 성벽의 한쪽, 누가 봐도 이질 적인 붉은색 성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성문을 구성하는 게 뭔지 몰라도, 마치 용암처럼 열기를 내뿜으며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일렁거렸다.
“선배, 저기······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공격 루트 플레이어들이 그 앞에 모이자 성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구구구구一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색 연기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용암 폭포 안의 어둠 속으로, 그 누가 섣불리 들어갈 수 있을까?
“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흠, 저런 모양의 호랑이굴이라면 좀 그런데요? 그리고 지금은 그 호랑이도 없잖아요?”
한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이에 성우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한호야, 그 호랑이 사냥 관용구에서 생략된 게 하나 있어.”
“네? 생략이요? 뭔데요?”
성우는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호랑이가 없을 때 놈의 굴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돌아올 때를 노리는 게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야.”
“오, 듣고 보니······ 그런가?”
한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성우는 붉은색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히든 스테이지 ‘마왕성(미궁)’에 입장하셨습니다.
* 모든 플레이어가 무작위 ‘관문’으로 배치됩니다.
* * *
“······뭐지?”
성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삼백여 명이 함께 입장했다.
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옆에 있던 한호가 사라졌다.
끙!
그리고 한호가 데리고 있던 미르만이 바닥에 처량하게 쭈그려 앉아 있었다.
성우는 고개를 돌렸고 뒤에서 따라 들어오던 리웨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크로맨서,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어. 너도 봤지? 전부 어디로 간거야?”
성우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장 성우의 주변에는 약 팔십 명의 플레이어가 전부였다.
나머지 이백여 명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무래도 미궁이······ 무슨 장난을 치는 모양이야.”
미궁이라는 이름만큼, 이곳에 발을 디딘 이에게 기이한 시련을 선사하려는 듯했다.
팟—
그때, 정면의 어둠 속에서 붉은색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팟— 팟— 팟—
일렁이는 불꽃, 횃불이었다. 횃불이 차례차례 켜지며 어느새 거대한 복도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에게는 걸맞지 않을 정도로 천장이 높고 폭이 넓었다. 그야말로 거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크기였다.
“저 끝에 문이 있어.”
그리고 리웨이의 말처럼, 그 끝에 검은색 석문이 하나 보였다.
“숫자가 쓰여 있는데? 숫자 4 같아.”
숫자 4,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때, 특별공격대 중 몇 명이 성우에게 다가왔다.
“네크로맨서님, 저희가 다른 팀에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그는 통신을 담당하는 대원이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무전기 아이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했다.
치지지지一
몇 차례 신호가 오고 가더니, 대원이 누군가와 무전을 주고받았다.
“······전부 확인했는데, 전원 미궁 안으로 입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장하는 순간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모양입니다. 그렇게 총 3곳입니다.”
현재 확인된 바로는 한호와 정훈이 121명의 플레이어와, 지수와 첸이 109명의 플레이어와 떨어진 모양이었다.
문제는 지수와 첸 쪽에 이사벨라······ 레드 드래곤이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리모컨을 여러 개 만들어 두길 잘 했군.’
이사벨라를 통제할 수 있는 ‘드래곤 키퍼’의 작동 리모컨을 여러 개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지수에게 있었다.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이사벨라를 놓치는 것도 모자라 지수를 잃을 뻔했다.
제아무리 지수라고 할지라도 단신으로 드래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도주라도 할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일단 앞으로 갑시다.”
일행은 사방을 경계하는 대형을 이루며, 횃불이 밝혀진 거대한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후우一 후우一
그리고 그들이 지나치는 횃불이 저절로 꺼지며 등 뒤로 짙은 어둠이 한층, 한층 뒤따라왔다.
가각一 가각一
그리고 어디선가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것좀 봐.”
대원 중 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양측, 회색 벽면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벽화가 가득했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기괴한 형태의 괴물들이 인간을 사냥하고 잡아먹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가각一 가각一
가장 끔찍한 건, 그 괴물들의 눈알이 일행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거······ 가고일인가?”
하물며 천장에는 온갖 석상들이 이리 저리 잔뜩 뒤엉켜 있어서, 마치 석회 동굴의 종유석을 연상케 했다.
이런 오래된 성을 지키는 석상 몬스터, 가고일(Gargoyle)일 수도 있으니 경계를 했지만, 복도 끝의 문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끼이이이一
성우가 석문에 손을 얹자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원형 경기장?”
내부는 콜로세움, 분명 그런 형태였다. 성우는 불길함을 느꼈다. 저런 무대가 괜히 있는 건 아닐 것이었다.
“신중하게 진입한다.”
일행은 좌우로 퍼지며 문 안으로 들어가, 관중석 한쪽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 중심, 경기장 안에 옅은 불이 점등하기 시작했다.
“으흐흐! 으흐흐!”
그때, 어디선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울리며 무대가 더욱 환히 빛났다.
그 웃음의 주인이 건너편 관중석에서 나타났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거인이었다.
“으흐흐! 자! 4번 관문에 어서 오세요! 미궁 탐험가 여러분, 아주 끔찍한 길로 들어오셨군요? 운이 없으셨습니다!”
그건 어릿광대였다. 키가 3미터에 이를 법한 거인이 광대 분장을 한 채, 이 쪽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왕님을 섬기며 마왕성의 미궁을 관리하는 집사 중 하나, 페트로스라고 합니다.”
- 히든 스테이지 보스 몬스터 ‘페트로스’가 출현했습니다.
성우는 관중석의 난간을 잡으며 경기장을 쭉 둘러보았다.
“관문이라? 게임 같은 건가?”
이에 페트로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연식 끄덕였다.
“게임이라, 그렇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아주 즐거운 게임이 될 겁니다. 으흐흐!”
“그리고 관문이라고 했으니 이 게임에서 이기면 다음 관문으로 가는건가?”
“아, 그렇습니다! 으흐흐! 통찰력이 있는 분이시군요? 제가 다 설명해드리죠.”
구구구구一
그때, 성우와 페트로스의 앞에 작은 단상이 하나 올라왔다. 그 위에는 체스말 같은 작은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귀찮은 규칙이 부여된다.’
이렇듯 미궁은 복잡하고도 불리한 시련을 뚫고 나아가야만 하는 곳으로 보였다.
“자, 여기에서는 일대일 결투 토너먼트가 벌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 둘, 셋······ 아무튼 더럽게 많지만, 게임에 나설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뿐입니다. 그렇게 총 3게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페트로스는 호들갑을 떨며 한번 낄낄 웃더니 자신의 단상 앞에 섰다.
“그런데 그냥 일대일 결투라면 재미가 없겠죠? 네크로맨서님, 당신은 무조건 가장 강력한 권속 ‘본 드래곤’을 꺼내실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뼈 이무기’ 혹은 기타 등등 짐승들! 으흐흐! 너무 뻔하죠.”
“······.“
“그런데 그런 무식한 놈들이 나오면 제 아름다운 무대가 망가질 우려가 있으니, 그걸 허락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는 단상 위의 석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래서! 이 테이블에 놓인 ‘출전 금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아주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줄 규칙이죠!”
성우는 테이블을 내려보았다.
- 출전 금지 선택 (1개)
1) 인간형(人間形)
2) 동물형(動物形)
3) 식물형(植物形)
4) 기계형(器械形)
5) 무형(無形)
“예, 그 다섯 가지의 석상 중 하나를 앞으로 내밀면, 그에 따라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건 당연하게도 이겁니다!”
탁—
- 상대가 ‘출전 금지’ 대상을 선택했습니다. (동물형)
동물형, 인간을 제외한 형태의 생명체를 뜻하는 듯했고 드래곤이나 이무기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으흐흐! 당신의 그 잘난 언데드 군단, 저도 오랫동안 지켜보며 연구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쉬운 상대더군요? 자,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뭐죠?”
성우는 담담하게 내려보다가 똑같이 ‘동물형’을 선택했다.
상대의 패를 모르는 상태이니, 신중하게 고민해도 소용없었다.
- 당신이 ‘출전 금지’ 대상을 선택했습니다. (동물형)
“으흐흐! 좋습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으흐흐! 하지만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쿵— 쿵— 쿵—
그때, 어딘가에서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자! 그럼, 집중하세요! 저의 챔피언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의 발아래, 원형 경기장 벽면에 있는 철창이 열리며 육중한 무언가 걸어 나왔다.
“거인 전사, 골리앗!”
- 상대의 대전사 ‘거인 투사 골리앗’ 이 등장했습니다.
그아아아!
쇠갑옷을 입고 거대한 철퇴를 든 거인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 키가 족히 30미터는 되어, 경기장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하물며 갑옷 밖으로 드러난 몸 곳곳에 문신이 가득했는데, 그것들이 빛을 발하는 걸 보아하니 특별한 마법으로 보호받는 듯했다.
‘골리앗?’
골리앗이란, 구약성경 속 다윗 대왕의 상대로 잘 알려진 거인 전사였다.
비록 다윗 대왕의 돌팔매질에 쓰러지지만, 그 전까지는 그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만큼 강인한 괴물로 그려졌다.
“으흐흐, 일대일 전투에 아주 능통한 녀석입니다. 당신이 쓸 수 있는 권속 중에서 이 녀석과 대적할 만한 자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 어설픈 동료들을 사지로 모시겠습니까?”
성우가 대답이 없자 놈은 배를 붙잡고 낄낄 웃었다.
“아! 설마······ 직접 나서서 다윗이 되려고 하는 바보 같은 선택은 아니시겠죠? 으흐흐! 기대됩니다!”
하지만 성우는 담담했다.
“이봐 광대, 도박할 땐······.”
어느새 성우의 손에 그림리퍼가 쥐어졌다.
“······상대의 패를 보기 전까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군?”
“응? 뭐라고요?”
성우는 즉시 빅터와 민석을 소환했다. 그들을 내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4명의 리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묵시록의 현현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눈앞에 온갖 메시지가 떠오른 뒤 중요한 선택지가 떠올랐다.
- 소환할 대상(군단)을 선택하세요.
1) 죄수 부대(소환 가능)
2) 기간테스(소환 가능)
3) 봉인된 자(소환 불가 : 종합 미달)
성우는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내 패는 이거야.”
- 심연 속에서 ‘종말의 군단(기간테스)’이 소환됩니다.
성우가 다룰 수 있는 것 중에는 동물형의 권속 말고도 아주 거대한 게 있었다. 성우도 아직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존재였다.
구구구구구—
원형 경기장이 통째로 뒤흔들리며, 그 위로 보라색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것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중심부에서부터 검은 연기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들이 일어섰다.
“······.“
모두가 고개를 들고 입을 쩍 벌린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페트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 그리고 검은 연기 속에 잠식된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
절그럭一 절그럭一
그 두꺼운 발목과 손목에서 흔들리는 족쇄가 경기장의 벽에 부딪히며, 벽을 한 움큼 무너뜨렸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잖아!“
페트로스가 좌절했다. 이 무대를 모조리 뒤덮고 뒤엎을만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사전 조사할 때 분명, 이, 이런 건 없었는데? 아, 아니······ 설마! 마왕님과의 전투 때도······ 숨기고 있었다고?“
페트로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성우의 목소리가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나지막이 울렸다.
“자 이제······ 네 대전사가 과연, 다윗이 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지켜봐.”
입장이 뒤바뀌었다.
- 1라운드가 시작됩니다!
경기 시작 메시지와 동시에, 무겁고 거대한 게 움직였다.
그리고 경기장이 통째로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