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71) 아마존의 마왕성 - 1
월드 전체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설악산의 산골짜기 어딘가······.
“헉! 헉!”
두 개의 그림자가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거의 다 왔어!”
그들은 어린 ‘호걸’들이었는데, 제 몸집만 한 광주리를 짊어지고 비탈길을 버겁게 오르는중이었다.
“아오, 무거워! 그런데 왕께서는 대, 대체 왜 감자만 드시는 거야?”
“나도 몰라. 이번에 제대로 삶아졌겠지? 또 투덜거리시는 거 아니야?”
그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감자 광주리를 추스르며 다시금 산길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기다! 동굴이 보여!”
그들은 미리 준비한 횃불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윽! 이게 뭐야?”
동굴 안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보라색 연기 이건 분명······.“
죽음의 냄새였다.
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대산맥의 왕이 저 아래에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었다.
“서, 서두르자!”
그들은 감자 광주리를 내려놓고 동굴 안으로, 내리막을 달려 내려갔다.
정말로 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권속으로서, 오직 충성심만으로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헉! 헉!”
그렇게 밑바닥에 다다를 무렵, 무언가가 횃불을 반사하여 빛났다. 지하 호수였다. 그런데 그 위로, 아주 짙은 보라색 연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왕이시여!”
두른 헐레벌떡 뛰어가며 제 주인을 목청껏 불렀다.
바로 그때, 보라색 연기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응? 무슨 일이더냐?”
대산맥의 왕이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나? 네놈들 목청이 워낙 커서 귀가 아릴 지경이구나!”
그런데 그는 아주 멀쩡했다.
“와, 왕이시여?”
두 어린 호걸은 당황했다. 그들이 보기에 대산맥의 왕은 아주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건 K-1 방독면이었다.
“컥! 컥!”
“웁! 이게 뭡니까?”
왕의 안위를 안심한 것도 잠시, 두 어린 호걸은 보라색 연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아! 너희한테 방독면 쓰고 들어오라는 걸 깜빡했구나, 이건 네크로맨서에게 얻어 온 ‘심연의 호흡’이라는 독가스라 함부로 마시면 몸이 마비되니, 이제부터라도 숨을 쉬지 말아라.”
두 어린 호걸은 기겁하며 보라색 연기 밖으로 뛰어나가 숨을 골랐다.
“캑! 가, 감자 챙겨오라고 하실 때 그런 것도 언질을 주셨다면 저희가······.“
“내가 정신이 없어 깜빡······ 응? 이 놈들아 그런데 내 감자는 어디에 있어? 정신이 없는 게 나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결국, 두 어린 호걸은 결국 동굴을 다시 올라가, 입구에 던져 놓고 온 감자 광주리를 지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겁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몇날 며칠 틀어 박히셔서 말입니다.”
두 어린 호걸은 멀찍이 떨어져 보라색 연기 속을 내려다보았다.
대산맥의 왕은 마치 화학실험실의 연구원이 된 것처럼 방독면을 쓴 채, 무언가를 제조하고 있는 듯했다.
“자! 드디어 완성이로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들어 올렸는데, 그건 갈색 항아리였다.
“그건······ 무엇입니까?”
대산맥의 왕은 항아리를 흔들었다.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술이다.”
“술? 마시는 술 말입니까? 지금 이 난리가 전부 술을 담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렇다, 이놈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술의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산의 정기 안에 죽음이 아주 잘 녹아들었구나! 명작이로다!”
그건 지수가 되찾아준 ‘태백산맥의 내단’으로 담근 술이었는데, 대산맥의 왕이 심연의 호흠 등, 무언가를 더 첨가하여 개량한 듯했다.
“그런데 왕께서 약주도 하셨습니까?“
“응? 나는 이런거 안 마신다.”
“예? 그럼 누가 마시는 겁니까?”
대산맥의 왕은 준비해둔 나무 궤짝에 항아리를 넣고 노끈으로 정성스레 포장했다.
“이 술은······ 오로지 죽음을 즐길 수 있는 자가 마실 자격이 있는 것이로다.“
정체불명의 술, 발효가 끝났다.
* * *
함대는 천사의 전당에서 퇴장하여 밖에 대기 중이던 병력과 합류했다.
하지만 절대 종족과의 전쟁은 중단되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주목! 포탈이 열리는 대로 특별공격대가 먼저 출발하여 아마존으로 이어지는 하이퍼 게이트를 오픈한다! 모두 열대 우림 기후로 들어갈 준비를 해라!“
지휘관들의 명령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전장으로 갈 준비가 시작되었다.
성우는 메신저호의 선루 갑판에 서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절대 종족 따위는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천사 종족이 멸망했다. 그리고 강석은 마지막 남은 ‘악마 종족’을 공략하여 ‘월드 시드’를 얻기 위해 떠났다.
악마 종족의 멸망 역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월드 시드 3개, 그걸 모으면 월드 이터가 된다. 놈이 마지막 1개를 손에 넣기 전에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
운이 좋게도 그 방법을 찾았다. 백색 늑대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발휘하여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마왕성, 그곳에 방법이 있다. 시간을 단축할 방법만 있으면 돼.’
성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뒤쪽, 갑판 중심으로 고개를 돌렸다.
“······싫어! 안 열어!”
그곳에서 강석의 페어리, 나비의 고함이 들렸다. 나비는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진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그 앞에 한호가 비열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는데, 6개의 팔로 6개의 무언가를 쥐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중이었다.
그건 전부 살충제였다.
“그럼 살충제 한 모금 더 할래? 아니면 그냥 순순히 포탈을 열래?”
그러자 나비는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번 마셔본바, 견딜 수 없는 역겨움이었다.
“싫어!”
하지만 한호에게 자비란 없었다. 6개의 팔이 새장 전체를 둘러싸고, 6개의 검지가 분사 버튼을 눌렀다.
푸쉬이이이一
마치 무대 위의 연무처럼, 새하얀 연기가 새장을 완전히 뒤덮고 넘실거렸다.
“······으에에! 콜록! 콜록!”
나비는 철창을 붙들고 절규했다. 페어리가 살충제 따위에 죽을 일은 없겠지만,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고문인 듯했다.
“콜록! 콜록! 그, 그곳은 마왕의 권역이야! 부디 다시 생각해 봐! 콜록! 너희 따위가 하, 함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나비의 말대로 마왕성은 마왕의 권역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 바로 지옥 차원의 ‘월드 시드’였다.
‘마왕성의 월드 시드를 공격하면, 강석, 그놈이 급하게 귀환할 수밖에 없을 거다.’
즉, 성우의 계획은 빈집을 공략하여 집주인이 일정을 뒤로 미루고 급히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아마존으로 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면 어떻게든 새로운 방법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당장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한호가 아마존으로 가는 하이패스를 열겠다고 나서서, 나비와 저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마왕성으로 가는 포탈 열 마음이 안 생겨? 응?”
페어리의 마법은 지정된 위치로 포탈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왕성을 지정해놓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푸쉬이이이一
“으, 으에에!”
“어때? 어때? 라벤더 맛이잖아? 이제 좀 적응돼서 괜찮지? 천천히 먹어! 더 줄게! 더 몇 박스나 더 있어!”
“미, 미친놈! 으에에!”
나비는 새장 꼭대기까지 날아올라 밖으로 머리를 내밀려고 했지만, 새장에 쳐진 결계 때문에 불가능했다.
“으으! 못 해! 안 열어!”
푸쉬이이이一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이고 살충제를 뒤집어쓰자 결국 양팔을 내저으며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악! 항복! 아, 알았어!”
사람이라면 몰라도 페어리에게는 최고의 고문이 분명했다.
“······열게! 열게! 열면 되잖아!”
한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으흐흐! 그래, 진작 그래야지! 어디서 나방 따위가 까불고 있어? 아직 너한테 사과받을 게 많으니까 이따 또 보자?”
“으! 제발! 꺼져!”
어쩌다 보니, 한호의 아주 오래된 개인적인 원한이 승리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 * *
나비가 연 포탈을 통하여 가장 먼저 진입한 건 성우였다.
그리고 그 뒤로 지수와 정훈이 포함된 특별공격대가 진입했다.
“자! 바로 하이퍼 게이트를 설치한다!”
나비가 열 수 있는 포탈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기에 비행선이 통과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특별공격대가 선발대로 들어와 ‘하이퍼 게이트’를 열 계획이었다.
“1팀은 최대한 고지대를 찾고, 나무를 밀어서 공간을 확보한다! 2팀은 사주 경계하여 접근하는 모든 걸 공격하라!”
정훈의 지휘 아래 하이퍼 게이트 설치가 진행되는 동안, 성우는 본 와이번 한 마리를 소환, 그 위에 올라타 날아 올랐다.
‘진짜 넓군.’
영화 속에서나 보던 지구의 허파,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무더워.’
아마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벌써 온몸이 끈적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한도 끝도 없는 녹색 바다의 끝자락 저 멀리, 흑색의 거성이 보였다.
’······마왕성이다.’
바로 저곳이 마왕의 권역이었다.
기사의 영웅담에 나오는 공주가 갇혀 있을 법한 성은 아니었다.
차라리 멸망한 고대 제국의 유적 같은 느낌 같다고 해야 할까?
넝쿨과 이끼가 잔뜩 달라붙은 성곽이 방대한 영역을 따라 이어졌다.
그리고 성벽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동상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가장 이상한 점은 마왕성 위에 몰려 있는 검붉은 색깔의 구름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피 웅덩이 같았다.
‘놈의 권역이니, 저 안으로 들어가면 불리하다. 하지만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도 파울로를 죽이고 드래곤과 페어리를 사로잡는 등, 마왕성의 전력에 상당한 피해를 줬으니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또한, 놈도 크게 다친 상태다. 탈출 이후 치료를 했겠지만, 완벽하게 회복 할 수는 없을 거다.’
비록 성우의 권역, 명계가 놈에 의해 공략되었지만, 그곳에서 제대로 한 방 먹인 건 사실이었다.
“하이퍼 게이트 설치 완료되었습니다! 마나 배터리로 급속 공급 시작합니다!”
모든 작전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고 이내 2개의 하이퍼 게이트가 열리며 지상의 군대와 함대가 도착했다.
우우우우一
십여 대의 비행선이 저공 비행하여 나무 위를 휩쓸고 지나가자, 수많은 새와 벌레들이 쏟아지듯 날아올랐다.
“으, 더워······.”
“인도보다 더 숨 막히는데?”
곳곳에서 아우성이 들려왔다. 월드 각지에서 모인 가지각색의 플레이어들은 열대우림의 숨막히는 공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모두 독사나 독충을 조심하세요!”
열대우림은 외부에서 온 생명체에게 결코 온화하지 못한 곳이었다.
독, 균, 짐승 등 모든 것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플레이어라고 해도 조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녹색의 지옥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그 무엇보다, 이곳이 ‘재앙 퀘스트’의 근원지이기 때문이었다.
“저 성좀 봐. 엄청 크다.”
“왠지······ 기분 나빠.”
모두가 저 멀리 치솟아 있는 흑색의 거성을 바라보았다.
“넋 놓고 있지 말고 모두 움직여!”
플레이어들은 서버별로 해체 모여, 스킬로 우림을 밀어내고 공터를 만들었다. 전쟁에 앞서 캠프를 조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1시간 후, 하이퍼 게이트로부터 이어지던 합류 행렬이 종료되었다.
“전 병력 도착! 모든 준비 끝났습니다!”
바로 그때, 거대한 날개가 모든 캠프 위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본 드래곤이었다.
“우리는지금부터······.”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자, 이 군대의 책임자, 네크로맨서가 입을 열었다.
“······마왕성을 철거한다.”
토벌이 시작되었다.
* * *
파울로는 네크로맨서에게 머리가 잘렸다.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마법의 힘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욱!”
그런데 그 후유증 때문이지 어지럼증이 계속되고 속이 울렁거렸다.
“으으, 모, 목이 다시 떠, 떨어질 것만 같아! 욱! 그레이스? 혹시 내 목 뒤가 덜렁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봐줄래?”
그레이스는 그의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병신, 대체 왜 멍청하게 목을 내준 거지? 너도 정말······ 알면 알수록 답답해.”
“뭐? 너,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너를 지키려고 그놈을 막았던 거라고! 다음에 만나면 놈들을 다 박살 낼 테니 두고 봐!”
그때, 그들 사이로 비보나가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그레이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핸드폰이었다.
“응? 비보나, 무슨 일이야?”
“놈들이······ 아마존으로 갔다.”
그의 말에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비보나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공식 채널의 방송이었다. 그곳에는 네크로맨서와 그의 군대가 있었으며······ 그 뒤로 흑색의 거성, 마왕성의 보였다.
“맙소사! 크, 큰일이잖아? 그레이스? 이거 어쩌지? 욱!”
파울로가 다시 구역질하는 사이 그레이스는 서둘러 강석을 찾아가 보고 했다.
그런데 상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늘, 강석은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마왕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으로······ 돌아가는 포탈을 열까요?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강석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우리가 할 일을 한다. 마왕성의 방어막은 두껍고 경비 병력도 충분히 있으니, 쉽게 뚫리지 않는다.”
세계수 진영이 총공세를 펼치더라도 마왕성은 단숨에 함락될 곳이 아니었다.
강석은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섰다.
’월드 시드를 얻고 월드 이터가 되면, 그깟 공격쯤이야 쉽게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때······.
”······마, 마왕님?”
그레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강석을 불렀다. 강석은 돌아서지도 않고 고개만 슬쩍 돌렸다.
“그게,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습니다. 이게 도대체······.”
그레이스가 핸드폰을 내밀어 그 화면, 공식 채널의 방송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십여 대의 함대 사이로 수백 마리의 히포그리프, 수백 마리의 귀신, 수십 마리의 본 와이번이 대형을 이루며 날아갔다.
그리고 그 위로 그 모든 걸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화면을 가득 채운 장막의 날개······ 그런데 날개가 두 쌍이었다.
그렇다. 그건, 두 마리의 드래곤이었다.
‘두마리? 어째서?’
강석은 이사벨라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며 자세히 살폈다.
하나는 성우가 타고 있는 ‘본 드래곤’ 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그보다 조금 작지만, 생기가 있는, 즉 살아있는 진짜 드래곤······ ‘레드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마왕성을 향해 진격 중이었다.
“마, 마왕님 이거······.”
그레이스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강석에게 물었다.
“······이사벨라가 우리를 배신한 걸까요?”
강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놈들이 이사벨라를 죽이면 죽였지, 멋대로 부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드래곤이란 그런 존재였다. 어설픈 방법으로는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없었다.
조금만 틈을 내주더라도 그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여 탈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강석은 이사벨라 역시 그럴 거라고 여겼다. 빼앗겼되 통제할 수 없는 폭탄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 * *
시뻘건 화염이 흑색의 거성을 뒤덮고 있는, 반구형 형태의 방어막에 작열했다.
퍼一 어一 엉!
세계수 함대의 포격이었다. 최대한 한 점에 집중하여 방어막을 뚫어내고 있었다.
끄에一 끄에에一
성벽 위, 마왕의 권속인 지옥 생명체들이 몰려와 불과 독을 쏘며 저항했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함대는 놈들의 사정거리 밖에서 공격을 퍼부어댔으니 말이다.
“저 성의 방어막,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방어막보다 강력합니다! 저것도 권능인 게 분명합니다!”
특별공격대를 지휘하는 정훈의 외침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광성구보다 강력한 방어막이다.’
중국 서버에서 만든 그 기괴한 물체를 떨어뜨릴 때처럼 천근궁을 사용하여 ‘해의 추락’을 한 방 먹인다면, 훨씬 쉽게 뚫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었다.
‘그래도 저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야.’
성우는 오른쪽, 시야 안에서 일렁이는 붉은색 빛깔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레드 드래곤, 이사벨라, 녀석이 마왕성의 방어막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콰과과과과과!
포격이 집중된 곳에 적중, 방어막이 크게 흔들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브레스는 한 방 한 방이 ‘해의 추락’과 맞먹는 파괴력이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방어막이라고 할지라도 곧 뚫릴 듯했다.
‘저 녀석이 순순히 넘어와서 다행이군. 한강석한테 굉장히 실망한 모양이야.’
이사벨라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마왕성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 모든 건 이사벨라의 목에 채워진 ‘드래곤 키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스트가 만든 목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역시 기발했다.’
놈이 성우의 말을 따르지 않고 날뛴다면, 그 즉시 리모컨을 작동하여 목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박아넣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지수가 이사벨라의 등 뒤에 올라타 모든 순간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방어막이 무너졌다!”
마왕성을 뒤덮고 있던 방어막 중 일부가 녹아내리며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성우는 즉시 그 틈으로 들어갔다.
- ‘미궁(마왕성) 공략’이 시작되었습니다.
“자, 이제!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빈 집을 턴다! 다 부숴버려!”
이제 살림살이 남아나지 않게 깽판을 부릴 예정이니, 집주인은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