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08화 (208/244)

# 208

69) 세계수 진영의 진격 -2

하늘이 절반으로 나누어졌다.

- 히든 스테이지 ‘천사의 전당’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낯선 장소로 들어가는 건 언제나 어려운 결정이었다. 특히나 포탈처럼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경우는 더더욱······.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몸을 던져야만 했다.

‘오래된 골칫거리를 끝내는 일이다.’

해충 박멸을 위해서는 해충이 득실거리는 ‘근원지’를 소독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고 이로써 엔딩에 가까워질 거다.’

현재로서는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게임이 시작되며 나타난 존재 즉, ‘몬스터’로 여길 수 있는 적대자는 얼마 남지 않았다.

천사와 악마, 두 절대 종족을 제외한다면 아마존에서 탄생한 드래곤 뿐이었다.

어느새 마지막에 가까워졌다.

“천사의 전당으로 진입한다!”

성우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 떠 있던 모든 병력이 방향을 틀었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전 함대, 경계 대형으로 진입 준비한다!”

천사의 전당으로 통하는 입구가 드높은 하늘에 열렸기에 함대와 특별공격대만이 성우의 뒤를 따를 수 있었다.

“이쪽 걱정은 하지 말고 쭉 가십시오!“

어쩔 수 없이 지상에 남은 병력이 수만에 달했는데, 이는 민흠이 통제하기로 했다.

성우와 본 드래곤이 갈라진 하늘의 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 히든 스테이지 ‘천사의 전당’에 입장하셨습니다.

성우는 입장과 동시에 귀신 20마리를 소환하여 사방으로 퍼뜨렸다.

이곳은 적의 안방이었기에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성우의 입장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저 백지장 같은 세상이 펼쳤다.

‘하얀 사막?’

마치 소금 사막을 보는 것처럼 새하얀 모래가 가득한, 백색의 사막이 펼쳐졌다.

어찌나 넓은지 어디를 둘러보아도 파란색 하늘이 절반, 하얀색 지상이 절반이었다.

성우를 뒤따라 특별공격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전방위를 경계했다.

“경계 태세 유지!”

그렇게 안전을 확보하자 뒤이어 비행선이 그 큼직한 머리를 들이밀려 등장했다.

우우우우—

성우의 본 드래곤 옆으로 메신저호가 다가왔다. 선루 갑판에 인호가 나와 있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워······ 사람이 미칠 것 같은 풍경이군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저는 좀처럼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어디를 보더라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니 방향을 가늠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방법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런 미지의 공간을 마주할 때를 위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있었다.

끙?

그건 다름 아닌 미르였다.

“네 힘 좀 빌리자.”

녀석은 여우의 구슬을 삼켜 흡수한 이후 ‘세계안’이라는 스킬을 얻은 바 있었다.

[스킬 정보]

- 이름 : 세계안(世界眼)

- 등급 : 특수

- 분류 : 패시브/액티브

- 소모 : 없음

세계를 꿰뚫어 보는 눈을 얻습니다. 또한,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탐험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손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 통달의 지도 : 일정 지역(20km)의 모든 지형지물을 표시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가 표시되는 소형 지도를 만듭니다. 이 지도는 20분 후 소멸 합니다. (재사용 대기 : 1시간)

+ 미로 무력화 : 일정 반경 내의(300m) ‘숨겨진 공간’을 포착해내며 절대 등급 이상의 ‘함정’과 ‘봉인’을 쉽게 해제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 30 분)

“어디 보자······.“

세계안의 하위 효과 중 하나인 ‘통달의 지도’는 주변 20km의 상세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당장 주변 20km 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는데, 저 멀리 지평선까지 백색의 사막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뭐라도 기점이 있어야 이 스킬을 사용하여 방향을 잡을 텐데······ 지도를 만들어도 아무것도 안 나오면 낭패잖아?”

최악의 경우 스킬을 사용하여 지도를 만들었는데 텅 빈 백지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 문제에 해답을 내놓은 건, 메신저호에 타고 있던 수인들의 우두머리, 검은사자였다.

“네크로맨서! 북동쪽이다! 그곳에서 이 세계를 움직이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는 ‘포식자의 영역’이라는 스킬을 통하여 마굴에서도 마굴의 심장을 찾아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시계가 0에 가까운 모래 폭풍속에서 꽤 어렵게 해냈는데, 이렇게 날이 맑고 방해물이 없는 지형에서는 더욱 쉽게, 더욱 멀리 감지해낼 수 있는 듯했다.

“그럼 전투 정찰 대형으로 주변을 철저하게 수색하면서 비행하겠습니다.”

세계수 함대는 그동안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여 수많은 대형을 훈련해왔다.

광범위한 지역을 경계하고 수색하기 위한 ‘전투 정찰 대형’도 그중 하나였다.

“넓게 퍼져서 일대를 싹 훑으며 지나간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놓쳐서 안 돼!”

15대의 비행선이 간격을 넓히고 그 사이에 특별공격대가 촘촘히 위치했다.

그리고 특별공격대 1개 팀, 총 15명이 수색 임무를 맡고 앞서 날아갔다.

그렇게 약 십 여분을 나아갔을 때였다.

“저기, 지상에 뭔가 있습니다!”

앞서 나간 수색대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하얀 모래 위, 하얀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정훈이 특별공격대 몇 명을 대동하고 내려가, 그 조각을 회수하여 성우에게 가져왔다.

“성우 씨, 이건 천사의 시체입니다.”

천사가 죽어서 변한 대리석 조각이었다.

“여기에서 전투가 있던 걸까요?”

전투라?

그 물음에 성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천사들의 소굴에서 천사들이 무엇과 싸웠단 말인가? 저들끼리 싸울 리는 없을 테고······.

그때, 특별공격대원 한 명이 성우와 정훈의 앞으로 날아왔다.

“저길 보십시오! 건물 같습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의 지평선, 파란 하늘과 하얀 사막 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얼핏 보였다.

아주 멀어서 구체적인 모양새는 확인할 수 없었고 그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쯤에서 지도를 만들어야겠군.’

저곳에 천사들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전투의 흔적이 있는 만큼 함부로 다가가는 것도 능사가 아니었다.

- ‘블랙 드래곤(헤츨링)’이 해당 지역을 기준으로 ‘통달의 지도’를 제작합니다.

미르는 성우의 의지를 읽고 ‘세계안’ 스킬을 사용하여 ‘통달의 지도’를 만들었다.

우웅—

그러자 허공에서 빛이 조합되며 반투명한 백색 종이가 만들어졌다.

마치 미래 기술로 만들어진 종이 형태의 디스플레이 같았다.

성우는 지도를 살폈다. 자신의 현재 위치가 표시되고 20km 근방의 모든 지역이 간략하게 표시되었다.

정말로 게임의 미니맵(Mini-Map)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긴 뭐지?”

이내 지도의 북서쪽 면에서 어떤 아이콘을 발견했다. 하단부에 표시된 축척으로 볼 때,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약 14km쯤 떨어진 곳이었다.

성우는 그 아이콘을 클릭했다.

[지역 상세 정보]

- 장소 : 신성한 요람

- 소유 : 천사 진영

- 목적 : 천사 생산

* 현재 위치로부터 18.45km 떨어져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세하게 표시된다.’

이 지도만으로도 처음 보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 뭔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때, 수색대가 또 한 번 무언가를 찾았다. 모래 언덕 아래, 그 그림자 속에 거대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비행선?”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분명 마법 공학 기술로 만든 비행선 같았다만, W·P·U의 허스트 공방에서 만든 비행선처럼 ‘배’의 형태는 아니었다.

거대한 기낭에 수소를 채운 기구, 체펠린식 경식 비행선에 가까웠다.

“비행선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 설마 누가 먼저 온 걸까요?”

20번의 침공을 저지해야 열리는 이 장소에 누군가 먼저 왔다?

성우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아—앙!

모래 언덕 너머에서 폭음이 울렸다.

“······이건?”

성우는 즉시 본 드래곤에 올라타 날아올라, 모래 언덕을 너머를 확인했다.

“북서쪽, 약 18km 거리에서 화염 기둥 형태의 폭발이 두 차례 확인되었습니다!”

관측병이 보고했다. 사실 보고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그 폭발은 여전히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쿠구구구구······.

파란색의 하늘과 백색의 지상 사이에서 빨간색의 화염이 넘실거렸다.

“저곳은······.”

성우는 지도를 다시 펼쳤다.

“천사의 요람이잖아?”

이곳으로 오는 길에 발견된 천사의 시체, 그리고 비행선, 이어서 천사의 요람에서 일어난 폭발······.

그래, 분명 누군가 먼저 왔다.

성우는 메신저호에 접근하여 선루 갑판에 서 있던 경수를 찾았다.

“경수 씨, 수인들을 데리고 비행선 안을 탐색해주세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활용하면 대체 누가 먼저 온 건지 알수 있을 겁니다.”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백색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성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는 그들을 믿고 돌아섰다.

‘누군가 먼저 왔고 앞서 나가고 있다면, 뭐가 됐든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다.’

누군가 성우의 목표를 먼저 채가려는 것이었다.

* * *

본 드래곤의 거대한 그림자가 새하얀 모래 위를 내달려, 폭발이 일어났던 지점에 이르렀다.

‘여기가 신성한 요람이다.’

일종의 천사들이 만들어지는 공장, 신성한 요람은 피라미드 형태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무언가 저 건축물을 공격한 듯합니다!”

정훈이 소리쳤다. 그의 말처럼 거대한 피라미드의 북쪽 경사면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강력한 화염 공격에 적중당한 듯했다.

그리고······.

까아아아!

구멍 안에서, 마치 뭔가 벌집을 건드리고 지난 것처럼, 천사 무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적 출현! 즉시 대응하라!”

이미 숱하게 상대해온 것들인 만큼, 세계수 진영의 함대는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버그 헌터 발사 준비!”

이미 장전되어 있던 ‘버그 헌터’를 교차 발사하여, 구멍에서 나오는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뒤이어 특별공격대가 치고 들어가 포격에서 살아남은 잔존 천사를 사냥하다가, 다시 적의 수가 많아지면 빠져나온 뒤 포격을 시작했다.

“이미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서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공격이 있던 게 확실합니다!”

피라미드의 북쪽에 흔적을 남긴 정체 불명의 공격이 피라미드 안을 초토화한듯했다.

지금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천사는 그 공격에 살아남은 패잔병에 불과해 보였다.

“그렇다면 빠르게 처리하고 앞서 온 이들의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언데드 군단을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사냥이 시작되었다.

한편, 무려 넷이나 되는 리치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합이 맞아가는 중이었다.

“딱! 주인님, 지상을 포위하겠습니다!”

빅터는 제가 부릴 수 있는 스켈레톤 부대를 움직여, 피라미드의 지상에 도열, 공성 병기를 설치하고 시작했다.

“이봐 빅터! 그쪽으로 독 안개를 펼쳐주겠네! 적들의 시야를 막을 수 있을 거야!”

민석 역시 빅터와 소통하며 전장을 지휘했다. 그는 ‘스켈레톤 메이지’ 출신의 리치인 만큼, 각종 버프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끙! 끙!

미르는 다른 이들과 소통이 쉽지 않았고 소통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만, 본능적으로 그리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각으로 서포트 해주는 중이었다.

‘역시, 한층 편하군.’

성우는 오랫동안 군단을 지휘해왔기에 드넓은 전장을 컨트롤 하는 데 도가 튼 편이긴 했다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리치가 넷이나 되니 훨씬 부담이 덜하며, 더 많은 면을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전투를 거듭하자, 리치들의 수준이 조금씩 올라갔다.

- ‘리치(빅터)’의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 ‘공허의 안식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 주인님! 저, 저도 공허의 사용 권한을 얻었습니다!”

수준이 오를 때마다 스킬 등급이 오르거나 새로운 스킬이 부여되었는데, 이번에 얻은 건 무려 ‘공허의 안식처’ 였다.

물론 곧바로 장인 등급을 얻은 성우와 달리, 기초 등급부터 시작했다. 그렇기에 ‘대강령(大降靈)’도 쓸 수 없으며, 보관할 수 있는 권속의 숫자도 고작 50마리로 제한되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묵시록 4기사의 권능(전쟁의 권능) 중 일부 항목이 ‘사용 가능’ 상태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묵시록의 현현’시너지로 얻은 ‘묵시록 4기사의 권능’ 중 첫 번째 권능인 ‘전쟁의 권능’이었다. 성우는 그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 소환할 대상(군단)을 선택하세요.

1) 죄수 부대(현재 소환 중)

2) 기간테스(소환 가능)

3) 봉인된 자(소환 불가 : 종합 등급 미달)

기존에는 1번, 죄수 부대만 소환할 수 있었는데, 시너지를 이루고 있는 리치들의 수준이 상승하여 종합 등급을 만족하자 2번이 열린 것이었다.

“······기간테스라?”

‘기간테스(Gigantes)’라면 말 그대로 ‘거인족’을 뜻했다.

단어가 복수형인 만큼 한 마리만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대충 알만하군.’

죄수 부대가 물량을 위한 선택이라면, 기간테스는 질적으로 우수한 소수를 소환하는 것이었다.

물론 무조건 한 쪽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전략적으로 선택해야만 했다.

쿠— 웅—

그때, 피라미드의 천장이 폭삭 주저 앉으며 먼지와 굉음을 토했다.

“건물이 무너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큰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것인가 했지만······.

고오오오오—

“안에서······뭔가나옵니다!”

정훈의 고함과 함께 회색 연기 사이에서 새하얀 무언가 치솟았다.

“······거, 거인이다!”

그건 아주 거대한 머리, 빌딩만큼 거대한 거인의 머리였다.

「그으으으······.」

천사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흉측한 입이, 세계수 함대를 집어삼킬 듯 쩍 벌어졌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들이, 감히 이 신성한 곳에, 그 더러운 몸뚱이를 끌고 오다니······.」

성우는 알 수 있었다. 저건 과거, 영등포에 강림했던 ‘천사 심판관’과 비슷한 개체였다.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 하염 없이 부유하는 한낱 먼지 조각에 불과하도다······.」

이어서 놈의 등 뒤, 하나의 머리가 더 치솟았다. 총 2마리였다.

「그런 미물이 여기에도 있구나.」

그런데, 여기도 있다니?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이들이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간 건가? 이놈들은 그걸 목격한 거고?’

아무래도 앞서 나가는 놈들이 벌집을 들쑤신 뒤, 정작 그 피해는 성우와 세계수 함대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제, 젠장, 저거 저번에, 그, 그거잖아?“

“그 끔찍한 게 두 마리나 된다니······.“

세계수 함대의 승무원 중 다수가 광복 길드 출신이었고 영등포에서 천사의 강림을 목격한 적 있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았다.

그 당시는 그 거대한 천사를 굉장히 어렵게 잡았다. ‘프로즌 시드’를 통하여 통째로 얼린 뒤, 공격을 퍼부은 끝에 쓰러뜨렸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

성우는 그 덩치 큰 존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너희처럼 덩치만 큰 멍청이들한테 아주 딱 좋은 처방이 있지.”

그건 ‘천근궁(千斤弓)’이었다.

성우는 본 드래곤의 등 뒤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오른발을 뒤로 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후······.”

숨을 들이켜고 활대를 들어올렸다.

세계수 함대는 성우가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채고, 일찌감치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폭발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은색의 시위에 손가락을 걸었다.

- 당신은 천근궁(千斤弓)을 당길 수 있습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적 있는 엄청난 장력, 감당할 수 없는 압력, 그리고 폭발적인 폭풍······.

성우는 이번에는 놀라지 않고, 그 무지막지한 힘을 견뎌내며 천천히 잡아 당겼다.

공기가 요동치며 광풍이 불었다.

후우우우—

그리고 놓았다.

쩌— 어— 어— 엉!

일대의 공기가 뒤엉키고 찢어지며 굉음을 만들어냈다. 그 충격에, 본 드래곤마저 뒤로 날기 위해 날개를 펼쳐버텼다.

성우가 쏘아낸 무형살(無刑)은 첫 번째 천사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웃기지 마라!」

두 천사는 거대한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방어막이 겹겹이 펼쳐졌다. 무려 십수 겹에 이르는 것 같았다.

쩡! 쩌 쩡! 쩡! 쩡!

무형살은 방어막을 유리처럼 깨뜨리며 나아갔지만, 한 겹 한 겹 뚫어낼 때 마다 그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역시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다소 파괴력이 약해진 무형살은 고작 천사의 오른쪽 손을 으스러뜨린 뒤 허공에 멈춰섰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천사가 그렇게 고고히 말하며,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놈의 손바닥에 빛줄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광선 공격이었다.

“아니, 아직 아니야.”

놈의 부서진 어깨 근처에서 무형의 살이 다시 응집하기 시작했다.

- ‘해의 추락’이 발동됩니다.

마치 핵분열과 같은 엄청난 에너지, 시뻘건 그 힘이 허공의 아주 작은 점에서 일어나며, 순식간에 동그랗게 번져나갔다.

콰과과과과과과—

그리고 방대한 지역의 모든 걸 밀어 내고 집어삼켰다. 뒤이어 으스러뜨리고 불태웠다.

“······윽!”

성우 역시 그 후폭풍에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쥘 수밖에 없었다.

- ‘천사 챔피언’을 사냥하여 60,0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해의 추락은 앞에 있던 한 마리를 통째로 으스러뜨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놈을 수십 미터 뒤로 튕겨냈다. 놈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감히······.」

성우는 쓰러진 놈을 향해 다시 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발감이 없었다.

쩌一 엉!

다소 흐릿한 무형의 화살이 쏘아졌다.

- 천근의 시위가 힘을 모두 소비하여 일정 시간 동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회복까지 남은 시간 : 24시간)

가공할만한 무기인 만큼, 그 엄청난 파괴력이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이 정도라도 공성 병기 이상의 파괴력이지만, 저런 괴물을 단숨에 끝장낼 정도는 아니었다.

‘이러면······ 천근살을 써야 하나?’

천근궁만 당길 때 발휘되는 옵션인 ‘해의 추락은’ 무려 10일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갖는다. 그 이후에는 지금처럼 조금 강력한 마법 화살만 쓸 수 있다.

하지만 ‘천근살(千斤)’을 건다면, 그 제약과 상관없이 ‘신살자(神殺者)’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즉, 남은 한 마리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쾅 쾅 쾅!

하지만 그 필살의 무기를 꺼내기 무색하게, 상황은 의외로 쉽게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전 함대, 모든 캐논에 ‘대물용 포탄’을 장전하라!”

세계수 함대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물량 공세를 막기 위하여 ’버그 헌터’라는 확산탄을 만든 것처럼, 이런 거구를 대비하여 대물용 탄환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콰— 앙! 콰— 앙! 콰— 앙!

한 방 한 방이 매우 강력하며, 방어력 무시와 관통력 추가 옵션, 그리고 종류에 따라 저지력까지 붙어 있는 대물용 철갑탄, 일명 ‘다이어트 피어서’가 쓰러진 천사 챔피언의 몸 위로 쏟아졌다.

「으으으으!」

천사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렸다. 마치 넘어뜨린 뒤, 몸 위에 올라타 파운딩 세례를 퍼붓는 것처럼, 천사 챔피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아껴둬야겠어.’

성우는 천근살을 집어넣으며, 눈앞에 있는 이 개체들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했다.

그런데 그때, 쓰러진 천사 챔피언의 몸뚱이 아래, 피라미드 안쪽에서 시퍼런 불빛이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성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쩌저저저저저!

‘······뭐지? 번개?’

순간적이었지만, 분명 시퍼런 빛줄기의 연속이었다. 그건 아주 익숙한 번쩍임이었다.

후우우우—

그리고 희뿌연 연기가 폭발에 휩쓸려 잠깐 벗겨지는 순간, 무너진 천장 아래 , 백색의 회랑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한강석.’

이제는 마왕이 된 그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솔로 플레이를 선호한다던 그의 옆에, 또 다른 누군가 서 있었다.

그건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그 순간, 성우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 느낌이 달랐다. 등골이 싸늘했다.

그때, 그녀가 싱긋 웃었다.

끙! 끄르르······.

성우의 등 뒤에 앉아 있던 미르 역시 그녀의 기운을 눈치챘는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느낌, 이 위화감······.

’······드래곤이다.’

마왕과 드래곤, 그 두 존재가 이곳에 와 있었다. 그렇다. 성우보다 먼저 이 장소에 도달한 존재는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잠깐 바라보더니, 이내 피라미드 안쪽으로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 저쪽에서 벌집을 뒤흔들어서 일부로 뒤로 던진 것 같은 건······ 피해의식일까?

확실한 건, 그들이 성우의 등장을 확인했음에도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군?’

어쩌면, 천근살을 아끼길 잘한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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