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05화 (205/244)

# 205

68) 종로, 천사와 악마의 침공 - 2

침공까지 12시간, 세계수 진영의 출전이 시작되었다.

“하이퍼 게이트 작동까지 1분 전입니다!”

드넓은 활주로 위,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운집하여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우우우一

이내 육중한 엔진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로 15척의 비행선이, 세계수 함대가 떠올랐다.

“전 함대,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정지 비행 상태로 하이퍼 게이트 진입을 준비한다.”

기함인 ‘메신저호’의 명령에 따라 15대의 비행선이 천천히 움직여, 자리를 찾아 나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함대의 좌우로 11대의 헬리콥터가 따라붙었으며, 저 위, 고고도 상에 1마리의 그리핀과 213마리의 히포그리프가 정렬해 있었다.

“특별공격대는 전 병력이 이후 진입한다!”

정훈이 소리쳤다.

특별공격대는 이 순간에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출전 과정 역시 전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작전이었으며, 동시에 적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성우와 경수는 메신저호의 선루 갑판에 서서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진짜 완성형 함대네요. 역대 최고의 병력임은 분명합니다. 괜스레 감격이에요.”

경수는 감탄을 마지않았다. 학교에서 탈출한 뒤 고작 버스 한 대를 이끌고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

당시 버스에 타 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이 이런 장면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성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최고의 전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약세였죠.”

세계수 진영은 매 순간 최고를 갱신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거대한 전쟁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소수 정예로 시작한 만큼, 숫자에서 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지금까지 강한 적들을 먹어치우고 강해져 왔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어떤 임계점을 돌파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써도 차고 넘치는 물자와 골드, 월드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들까지, 근 며칠 동안 비약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즉 ‘퀀텀 점프(Quantum Jump)’ 이룩했다.

“하이퍼 게이트가 열립니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진입!”

유례없을 정도로 강력한 대군, 세계수 진영의 총력이 본진을 떠나 전장으로 나아갔다.

* * *

한편, 광복 길드는 일찌감치 종로를 점거하여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시설 점검 완료했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민흠은 한 빌딩에 앉아 상황 보고를 받았다. 정훈이 현장에 없었지만, 민흠의 주도 아래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빌딩 옥상에 공성 병기를 설치하고 포탈을 향해 조준해두었으며 지상에는 참호를, 지하에는 방공호를 설치했다.

“천사 종족과 정면으로 싸우게 된다니······ 과연, 이 정도로 대비해서 막을 수 있는 놈들일까?”

민흠은 여전히 걱정이었다. 언제나 승리했던 네크로맨서지만, 절대 종족이라는 이름값은 무게가 달랐다.

물론 이전에도 ‘천사 심판관’이라는 놈과 맞붙은 적이 있었지만, 그건 전면전, 즉 전쟁의 개념이 아니었다.

“부관님, 추가 보고 드립니다. 지하철 통로에서 트롤 약탈자 무리를 발견하여 모두 소탕했습니다.”

“그래요. 그 시체를 잘 모아두세요. 분명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오자마자 찾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런 걸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민흠은 마지막 보고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세계수 진영이 도착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우우우웅一

그때, 창문이 떨리며 저 멀리, 빌딩 위에 설치된 하이퍼 게이트로부터 일렁거림이 번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비행선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군.”

거대한 비행선이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여전히 허스트 공방에서밖에 만들 수 없는 고도의 마법 공학의 산물이었다.

“세계수 함대가 원래 저렇게······ 규모가 컸었나?”

비록 W·P·U 함대가 빠지며 비행선의 숫자는 확연하게 줄었지만, 함대의 구성은 훨씬 다양해졌다.

비행선과 함께 헬리콥터들이 줄지어 나왔으며 뒤이어 수백 마리의 히포그리프 편대가 등장했다.

“꼭······ 항모전단 같은데?”

그래, 저건 정말 항모전단(Carrier Strike Group)을 연상케 했다.

비행선이 항공모함이나 주력함이라면, 헬리콥터가 그 주변을 호위함처럼 에워싸고 날아다녔다.

그리고 히포그리프 편대는 마치 함재기처럼, 비행선의 갑판 위에 겹치어졌다가 다시 비상했다.

하물며 당장 가동 중인 정찰용 ‘마법 드론’만 백여 대에 달해 보였는데, 함대의 눈 역할이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의 공중 언데드 부대와 발키리의 에인헤랴르가 소환된다면, 훨씬 강력한 함대가 완성될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저런 게 가능하지?”

분명 지난 전쟁까지 함께 있었던 민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 또 잊고 있었어. 저 인간들······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말이야.”

성우나 지수 같은 소수의 플레이어에게나 느끼던 감정을, 이제는 세계수 진영 전체에 느끼기 시작했다.

* * *

세계수 진영의 본대가 합류한 이후, 곧장 지휘관 회의가 시작되었다.

한 빌딩의 로비에 자리가 마련되었으며, 경수가 앞으로 나서 브리핑했다.

“······이곳, 서울의 전장에서 승리하면 우리에게 총 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현재 예상하기로는 대만 서버, 중국 2서버, 일본 서버입니다.”

이곳을 클리어하면 한국 서버에서 가장 가까운 세 곳, 그곳의 전장에 중도 합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이곳, 종로의 침공을 방어한 뒤, 두 부대로 분리, 각각 대만 서버와 중국 2서버로 이동하여, 해당 지역의 동맹군과 합류할 것입니다.”

두 부대는 각기 성우와 지수가 메인이 되어 이끌기로 했다.

사실 병력을 나누는 게 다소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맹군의 괴멸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최대한 빨리 그곳의 침공을 방어한 뒤, 다시금 근처, 하나의 전장으로 전 병력이 모여서 화력 우세를 바탕으로······.”

경수가 리모컨을 조작하자 회의실 한 쪽, 70인치 대형 모니터에 지도가 띄워졌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 붉은 점선으로 작전 경로가 표시되었다. 중국을 거쳐 동남아, 인도, 중동, 유럽으로 그리고 호주로 이어지는 루트였다.

“······자, 이 경로를 통하여 최대한 많은 ‘방어 성공 점수’를 얻는 게 종합 목표입니다.”

그런 식으로 스테이지를 깨듯, 많은 전장에서 활약하는 것, 그게 바로 ‘투쟁 랭킹’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음······."

그러나 지휘관 대다수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민흠이 손을 들었다.

“지금 계속해서 최대한 빨리 적을 무력화하겠다는 말이 반복되는데, 사실 적 병력의 구성도 잘 모르고······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게 가장 중요할 텐데요?”

의아할 만한 대목이었다. 적을 무력화한다? 말이 쉽지 그 방법은 모호하기만했다.

그 질문에 대답한 건 성우였다.

“압도적인 화력입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짧았다.

“화력이요? 그게······끝입니까?”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의 모든 화력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을 단숨에 쓸어 버릴 겁니다.”

호언장담이었다. 그던데 어떤 근거로 그런 호언장담을 할 수 있는지, 당장은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성우 역시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추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난 전쟁 이후 우리의 전력은 특히나 화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력······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끊기지 않는 화력을 가능하게 하는 건 끊이지 않는 생산과 공급이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역시나······ 돈이었다.

“이번 전쟁은 생각보다 수월할 겁니다.”

이건 그 돈을 가진 자의 여유였다.

* * *

침공 시작 10분 전, 어김없이 ‘공식 채널’이 열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채널의 숫자가 수백 개에 달했다. 월드의 모든 서버를 방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한국 서버의 채널에 단연 많은 시청자가 몰렸는데, 그 시청률이 무려 68%에 달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수 진영의 승패에 따라 이 전쟁의 결말이 바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안 기자입니다. 지난 전쟁이 끝난 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또 한 번 이렇게 대규모 전쟁 생중계로 찾아뵙습니다. 정말이지······ 지옥의 연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 기자와 조수는 역시나 해적 방송을 진행했다. 그들은 책상 위에 침공 시작 시각에 맞춰둔 타이머를 두고 프리뷰를 이어나갔다.

세계수 진영이 어떤 전략을 꺼내올지, 과연 이길 수 있을지, 그리고 외국 서버의 주요 전력을 나름대로 조사해와 설명했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그러던 중, 타이머에서 알람이 울렸다.

“어!”

안 기자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뻗어 알람을 껐고 조수는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등 뒤 스크린에 공식 채널의 방송 화면에 떠올랐다.

“······자, 시작했습니다!”

화면에는 종로의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하늘에 뚫린 파란색 포탈, 그리고 그 주변에 쓰여 있는 숫자가 0에 도달하여 빨간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곧 무언가 시작될 것이었다.

“······.”

안 기자와 조수는 말을 삼가고 시작을 기다렸다.

“······음.”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 기자는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조금 지체되는군요? 자, 이번에도 월드의 관심이 한국 서버에 집중되었는데, 과연 그 기대에 부응할지 다 함께 지켜보······ 응? 뭐라고?”

하지만 그 관심은 이내 다른 채널로 돌아가 버렸다. 그곳은 이탈리아 서버, 로마를 중계하는 채널이었다.

“어! 방금 이탈리아 서버에서 가장 먼저 침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어떤 딜레이가 있는지, 침공이 시작된 이후에도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이탈리아 서버에서 먼저 침공이 시작된 것이었다.

“예, 확인 결과 침공이 시작된 게 맞습니다! 절대 진영도 서버 별로 각기 다른 지휘 체계가 있는 만큼, 준비된 쪽이 먼저 내려오는 것일까요?”

안 기자는 서둘러 해적 중계 화면을 이탈리아 서버 채널로 옮겼다.

“······마, 맙소사!”

곧 스크린 위로 로마의 풍경이 펼쳐졌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즐비한 곳, 백색의 대리석 건물로 엮어진 찬란한 도심······.

쾅! 쾅! 쾅!

그 위로 화염이 작렬하고 있었다. 대규모 화염 마법으로 보였다. 그리고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방어막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 긴 기둥 하나가 하늘의 구멍과 지상을 잇고 있었다.

갑자기 기둥이라니?

방송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런데 그 정체불명의 기둥······ 어딘가 이상했다.

까아아아아!

기둥이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청난 양의 백색 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건······ 기둥이 아니었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보이십니까?”

그건, 천사들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들이 하늘의 구멍에서 떼거리로 기어 나와 서로 뒤엉킨 채,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다량의 무언가를 좁은 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욱여넣는 것처럼, 패턴이나 질서 없이 막무가내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까아아아아!

그것들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흩어져 날개를 펼쳤는데, 멀리서 보면 거대한 기둥에서 가루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기둥의 중심에 위치하여 날개를 펼치지 못한 천사들은 지상에 추락한 뒤, 그 ‘천사 더미’ 사이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와, 다시 날아올랐다.

비효율적인 공세였지만, 막을 수 없었다.

마치 황야를 휩쓰는 지옥의 메뚜기 떼처럼, 그것들이 모든 곳에 날아다녔다.

“로, 로마가······ 벌써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로마의 하늘과 땅은 기괴한 천사의 날개에 뒤덮여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뭐? 그게 진짜야? 아!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침공이 시작되고 단 4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 그런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겁니다!”

하늘의 구멍에서 다수의 군단이 튀어 나올 것이란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군단을 막기 위해 ‘대공화망’을 구성하는 것 역시 누구나 계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실제로 그렇게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하는 건 어려웠다.

“화력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사방에서 수천 개의 마법이 쏟아지고 있지만, 단 십 분의 일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군집하여 구성한 방어 라인이었지만, 단숨에 뚫리고 말았다.

“이탈리아 서버는······끝났습니다.”

역시나 모든 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마련이다.

* * *

“이탈리아 서버에서는 이미 시작되었다는데요?”

성우는 빌딩의 옥상에 서서 한호가 보고 있는 공식 채널 방송의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처절한 비명뿐이었다.

‘더 늦게 시작하면 손해가 크다.’

성우는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대한 걱정보다, 상대적으로 시작이 늦다는 사실이 걱정이 컸다.

침공 시작 시각은 서버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건 안 기자의 추측대로 분리된 지휘 체계 때문이었다.

지성을 가진 놈들인 만큼, 나름대로 전략을 짜고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진군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먼저 치고 들어 갈수 있나?’

침공을 저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선제공격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하니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섣불리 시도할 수는 없었다.

“헐······ 로마가 아주 철저하게 파괴 당하고 있어요!”

한호가 놀란 듯 소리쳤지만, 성우는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구멍 안에서 시퍼런 기운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온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건너편 빌딩의 난간 위에 서 있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성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야.”

“네? 뭐가요? 로마가 파괴되는 게요?”

“아니, 너무 늦지 않았어.”

“네? 뭐가 안 늦······.”

그때, 성우가 빌딩 옥상의 난간을 밟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빌딩 아래로 성우의 몸이 사라지는 순간······.

후우우우一

광풍이 불며 ‘본 드래곤’이 치솟아올랐다.

“준비해! 환영의 팡파르를 울릴 때야!”

성우는 그 거대한 괴물의 등에 올라탄 채, 하늘에 뚫린 시퍼런 구멍을 향해 쏘아져 갔다.

“전투 준비!”

이내 전투가 목전에 다가왔음을 눈치챈 지휘관들이 명령을 내렸고, 빌딩, 지상, 지하 종로 전역에 흩어져 있는 플레이어들이 준비된 동작을 취했다.

우우우우一

그러자 빌딩 사이 사이에 숨어 있던 비행선들이 고도를 높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든 화력을 구멍에 집중한다!”

이미 캐논을 달구어 놓은 상태였다.

“따끈한 신상 맛을 보여주자고!”

그리고 그 캐논은 전부 신상품이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천사 군단’의 강림이 시작됩니다.

그 짧은 메시지와 함께, 구멍이 순식간에 몇 배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토해낼 듯 꿈틀거리더니······.

까아아아아!

천사의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비명이 먼저 흘러나왔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그곳을 올려보았다.

“······어, 엄청 많다!”

처음에는 거대한 원기둥이 내려오는 줄만 알았다. 수만 마리의 천사들이 좁은 구멍을 비집고 한대 엉킨 채 튀어 나왔다. 그러더니 사방으로 흩어지며 날개를 펼쳤다.

하얗고 부드러운 날개, 하얗고 부드러운 몸뚱이, 그리고 찬란한 금발······ 하지만 얼굴에는 세로로 찢어진 채, 찐득한 타액을 흘리는 긴 입이 하나 붙어 있을 뿐이었다.

까아아아아!

그런 압도적인 적을 마주한 상황 속, 모든 행동의 고삐를 쥔 자, 네크로맨서의 명령을 짧고 굵었다.

“······전부! 퍼부어!”

그에 따라 플레이어들은 미리 조준해 두었던 그 방향, 그 궤도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콰—과—과—과—과—과—과!

환영 팡파르, 어쩌면 그 말이 적합할 지도 몰랐다. 그건 폭격보다 폭죽에 가까웠다. 하늘을 가득 수놓는 폭죽······.

퍼一버一버一버一버一버一버一

수백 발의 폭죽이 일제히 작렬하며 하늘을 뒤덮는 순간, 수십억 개의 파편이 터지며, 하늘을 뒤덮었던 천사의 몸뚱이가 죄다 잘게 잘게 갈려 나갔다.

단숨에, 수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죽은 천사의 몸뚱이는 마치 대리석 조각처럼 딱딱하게 굳어 으스러져 먼지가 되었다. 하늘이 희뿌연 회색 먼지의 장막으로 뒤덮였다.

“다시 발사!”

콰—과一과一과一과—과一과!

천사 군단을 단숨에 쓸어버린 무기, 신상 캐논, 그건 다수의 적을 처리하기 위하여 허스트 공방이 새롭게 내놓은 ‘버그 헌터’였다.

단 한 발의 탄두에 무려 5,500여 발의 특수 탄환이 들어 있어 폭발과 동시에 사방으로 흩뿌려, 일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즉, 일명 ‘스틸 레인(Steel Rain)’을 일으키는 아이템이었다.

심지어 그 5,500여 발의 ‘특수 탄환’은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갈아서 만들었으며, 세계수의 잎사귀를 끓인 물에 정제하는 등 특별한 ‘인첸트(Enchant)’ 과정을 걸어 ‘방어력 40% 무시’ 효과가 붙어 있었다.

천사의 방어막이 치즈처럼 녹고, 단단한 몸이 두부처럼 쉽게 뚫리고 갈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공격이 가능한 이유?

당연히 돈이었다.

“계속 퍼부어!”

콰—앙! 콰—앙! 콰—앙!

비행선마다 8대씩, 그리고 마천루마다 12대씩 장착된 캐논이 연이어 불을 뿜었다.

“쉬지 마!”

퍼一버一버一버一버一버一버一

재차 폭발, 어느새 거대한 원기둥은 사라졌고 평면의 원만 남았다. 그것들은 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족족 폭발에 휘말렸다.

놈들은 어떻게 해도 화망(火網)을 벗어날 수 없었다.

“벌써, 거의 끝났다!”

“뭐야? 너무 쉬운데?”

월드의 수많은 플레이어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경악했다. 그리고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어떻게 재사용 대기 시간 없이 저렇게 난사가 할 수 있지? 그리고 마나는 대체 어떻게 수급하는 거야?

마법 공학 장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마나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법사가 아무리 많이 달라붙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3번 캐논 배터리 교체!”

그 비밀은 중국 서버에서 가져온 ’마나 배터리’였다. 그리고 ‘구야자 시설’의 마나 배터리 제조 기술을 통째로 얻었기에, 개량을 거듭할 수 있었고, 소형화하여 비행선에 다량을 탑재해 둔 상태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버그 헌터’의 ‘특수 탄환’은 실물 탄환이기에 탄환 공급이 필요했는데······.

“자, 12번 함으로 이동! 포탄을 전해줘!”

기함, 메신저호를 보급 창고로 하여, 히포그리포 편대가 다른 비행선으로 열심히 운반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메신저호에서 그 탄환 박스가 정말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젠장, 엄청 빠르게 소진되잖아? 대장간에서 탄환을 더 꺼내와!”

그건 메신저호에 실려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덕분이었다.

수십 명의 인부가 그 아공간 속에 들어가 박스를 짊어지고 나왔다.

“으으, 들어갈 때마다 대장장이들이 살벌하게 쌍욕을 해대서 무서워 죽겠네······.”

무한 탄환 공급이 가능한 이유는, 엄청난 양의 물자를 물리적인 거리와 공간의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제작한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서버, 미국 서버, 중국 서버의 마법 공학이 한 대 어우러져 무한 동력, 무한 공급, 무한 화력이 가능한 말도 안 되는 전술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역시 제대로 먹히는군?”

성우는 그 화려한 불꽃 아래에서 비행하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2초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

삐一 삐一 삐一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렸다.

“더 큰걸 준비할 시간이야.”

성우가 호언장담했던 ‘화력’이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