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204화 (204/244)

# 204

68) 종로, 천사와 악마의 침공 - 1

절대 종족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 모든 이들의 눈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투쟁’과 ‘복종’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성우는 당연히 ‘투쟁’을 선택했다.

- 절대 종족에 대한 ‘투쟁’을 선택하셨습니다. 절대 종족이 이 땅에 강림하여 당신을 추격할 것입니다.

그러자 투쟁 방법에 대한 세부 규칙이 제시되었다.

[투쟁 규칙(중요)]

1) 침공이 시작될 때 당신이 위치한 곳과 가장 가까운 ‘전장(도시)’으로 자동 이동됩니다.

* 현재 가장 가까운 전장 : 서울

2) 전장(도시) 방어 성공 시, 아직 침공이 진행 중인 인근 3개의 전장(도시)이 제시됩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순간 이동’할 수 있습니다.

3) ‘투쟁 랭킹’에 반영되는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일반 천사·악마 살해 : 1포인트

* 간부 천사·악마 살해 : 10포인트

* 보스 천사·악마 살해 : 50포인트

* 전장(도시) 방어 성공 : 100포인트

* 숨겨진 조건 만족 : 300포인트

성우는 그 규칙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 규칙에 따라 작전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인근 3개라······.‘

서울에서 시작한다면 대만 서버, 중국 2서버, 일본 서버가 가장 가까웠다.

‘다행이야. 서울을 빠르게 끝내고 대만과 중국의 동맹군을 도와주러 갈 수 있겠어.’

대만 서버의 타이페이와 중국 2서버의 상하이가 전장으로 선정되었는데, 각각 첸과 리웨이가 방어 작전을 지휘할 예정이었다.

양측 모두 세계수 진영의 핵심 동맹인 만큼, 서울 전장을 빠르게 방어하고 곧장 두 곳으로 지원·합류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그리고 방어 성공 포인트가 무려 100점인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연이은 방어 성공 루트를 탄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플레이어도 고득점을 올릴 수 있다.’

어떻게 잘만 한다면 ‘투쟁 랭킹’ 안에 세계수 진영 소속 플레이어를 꽉꽉 채워 넣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또 한 번 엄청난 양의 물자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물며 세계수 진영의 위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과시할 기회이기도 했다.

’분명 내 앞길을 방해하려는 기회로 삼는다.’

성우는 숱한 장애물을 마주쳤지만, 지금까지 그 모든 장애물을 도움닫기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 었다.

* * *

절대 종족의 침공을 앞두고 세계수 진영에 모여 있던 외국 서버 동맹군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떠나는 건 W·P·U였다. 연합 함대의 삼 분의 이가 넘는 숫자인 22척의 비행선이 일제히 비상하여 미국 서버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우는 ‘점프 스페이스’ 앞에서 조나단과 마주 보았다.

“러브 의장께 안부 전해주고, 어떻게든 최대한 버티고 있어. 인근 서버를 정리하면서 그쪽까지 갈 테니까.”

미국 서버는 한국 서버로부터 굉장히 먼 거리에 있었기에 대만 서버나 중국 2서버처럼 곧장 지원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시죠. 놈들이 어떤 모습으로 내려올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화력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지도 못하게 만들 겁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고 조나단은 성우의 손을 맞잡으며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이봐 조나단!”

그때, 성우의 등 뒤에서 누군가 조나단을 불렀다.

“아, 마스터 허스트, 지금 한창 바쁘실 텐데 왜 직접 나오셨습니까?”

“나는 바람도 못 쐬나? 18번 함과 21번 함에 새로운 캐논을 적재시켜 놨으니, 두어 번 시험 발사해보고 적당히 알아서 써봐.”

W·P·U 함대가 일제히 귀환하지만, 허스트 공방 직원들은 함께 돌아가지 않고 수원에 남아 있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이곳, 세계수 진영의 본진이 가장 안전한 곳이기에 아무런 피해도 없이 병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 물자가 충분하기도 했다.

“아, 그리고 내 공방은 절대로 못 건드리게 해.”

“물론입니다. 새것처럼 잘 보존해두겠습니다.”

조나단은 비행선에서 내려온 사다리를 붙잡았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사다리가 자동으로 올라가며 조나단의 모습이 비행선 안으로 사라졌다.

우우우우一

이내 W·P·U 함대가 하이퍼 게이트 너머로 차례차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절반이 가버렸으니······ 원래 우리 소유는 아니었지만, 뭔가 괜히 아쉽네요.”

경수의 말처럼 왠지 모르게 하늘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전력 공백이 발생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다. 성우는 허스트를 돌아보았다. 그는 성우의 눈빛에 움찔했다. 경계심이 가득했다.

“마스터 허스트, 앞으로 48시간 동안 비행선을 몇 척이나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물음에 허스트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2척이 최종 정비 단계에 있고, 음, 앞으로 4척은 더 가능할 거야. 대장장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다루면 5척 까지는 뽑아낼 수도 있어.”

엄청난 자원과 숙련된 기술자들이 있으니 정말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었다.

“그럼······ 조금 더 잘 독려해서 한 7척까지 밀고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돌이들이 강력한 이유는, 유사시 생명력을 담보로 200% 300%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한국 서버의 전장은 서울이었다. 정확히는 서울 종로에 천사 종족의 파란색 포탈이 열려 있었다.

침공 시작까지 43시간 남은 시점, 바쁜 경수를 대신하여 총괄 통제실 직원이 보고해왔다.

“······광복 길드 쪽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종로의 포탈 아래, 지형을 정비하여 엄폐 공간과 공성 병기를 설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복 길드의 본진은 여전히 영등포에 있었기에, 그들이 선발대를 자처하여 사전 정비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세계수 진영은 12시간 남은 시점에 합류하기로 했으며 그 전까지 장비 점검과 작전 훈련이 거듭될 예정이었다.

“어······ 이상으로 끝입니다! 추가 사항 있으면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직 많은 이들이 성우를 직접 마주 하는 걸 어려워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이미지가 워낙 드세기 때문일까?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

성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 선배, 다시 시작해요!”

지금, 성우와 한호는 활주로에 서서 하늘에서 벌어지는 기동 훈련을 지켜 보고 있었다.

우우우우一

11대의 비행선이 활주로 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직후, 그 거대한 그림자에서 수백 개의 작은 그림자가 분리되어 나왔다.

후우우우!

1마리의 그리핀과 213마리의 히포그리프였다.

‘빠르다.’

그들의 비행은 가히 장관이었다.

공기를 뒤흔드는 엔진 소리, 바람을 내리치는 수백 개의 날갯짓 소리, 기수의 고함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 대 뒤 엉키며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하물며 활주로 위로 펼쳐지는 그림자 춤사위와 함께 어우러지며, 마치 하나의 공연을 보는 것만 같았다.

“우와······ 세계수 함대와 특별공격대, 멋있다, 멋있어!”

그 춤사위의 선두는 당연하게도 혜연과 태풍이었다.

“······태풍아, 가자!”

히포그리프보다 조금 더 큰 체격의 그리핀은 그 무엇보다 날렵하게 하늘을 가르고 지나갔다.

삐이이!

녀석은 순식간에 고도를 높였다가 급하강하며 무리를 이끌었고, 그 뒤로 다소 벅차 보이지만 213마리의 히포그리프가 촘촘한 대열을 이루며 뒤따랐다.

“모든 방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마요!”

한편 그 대열 속에 지수도 섞여 있었다. 그녀는 히포그리프에 타지 않았지만,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저공 비행할 때는 머리 위를 경계해요!”

한편, 정훈 역시 서울 쪽 지휘를 민흠에게 맡기고 특별공격대 훈련에 참여한 상태였다.

혜연이 비행을 주도하고 지수가 경계를 담당한다면, 그는 대열의 중심에서 공격과 방어를 결정했다.

“마법사들은 항시 방어 마법을 준비한다!”

그는 오랜 기간 ‘크루세이더 팀’을 이끌어 온 만큼, 포지션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 방어막 전개!”

정훈의 외침과 동시에 대열의 중심,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대규모 방어막 스킬을 사용했다.

곳곳에서 가지각색의 빛이 뻗어 나오며 한데 뒤엉키더니, 구형의 방어막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밀집 대형!”

이어진 명령에 히포그리프들이 간격을 좁히고 대열을 촘촘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 덕에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전 병력이 방어막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공중 기동 부대가 한 곳에 뭉쳐 있는 건 좋지 않았다. 순간적인 방어와 이후 더 빠른 탈출이 필요했다.

“산개 탈출 준비, 산개 탈출!”

산개 탈출 명령이 떨어지자 전 병력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활공했다.

적의 공격을 회피한 뒤 다시 하나의 대형으로 뭉치는 연습인 듯했다.

“와, 짧은 시간인데 금방 적응하네요? 으, 나는 진짜 뚜껑 없이 날아다니는 건 타기 싫던데······.”

끙! 끙!

한편, 성우의 옆에 앉아 있던 미르가 칭얼거리더니 별안간 날개를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넌 또 왜 그래?”

녀석은 어느 기점을 넘기자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성견 도베르만 정도로 자라, 이제는 안고 있기도 힘들었고, 혹시나 말썽이라도 부리면 훨씬 골치 아팠다.

“선배, 얘도 날고 싶은가 본데요?”

한호의 말처럼 저 수많은 히포그리프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니, 덩달아 신나서 같이 놀고 싶은 듯했다.

“안 돼. 저건 노는 거 아니야. 네가 지금 끼어들면 훈련에 방해될 거야.”

성우는 미르의 머리를 지그시 눌러 진정시켰다.

끙······.

미르는 실망한 듯 엎드려 제 앞발 위에 턱을 괴었다.

뻬이이!

그때, 선두에서 날고 있던 돌풍이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

동시에 213마리의 히포그리프가 비행선 위, 각자의 위치로 착륙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님!”

잠시 휴식에 들어간 모양이었는데, 혜연은 성우를 발견하고 활주로 위에 착륙했다.

“저,저! 새로운 스킬이 생겼어요!”

그녀는 학교에서 상을 타온 아이처럼 자랑했다. 걱정과 달리 혜연은 밝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활기차 보였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세계수 진영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한 모양이었다.

“새로운 스킬?”

“네! 정확히는 태풍이한테 생긴 건데 ‘비행 리더’라는 스킬이에요! 편대 비행을 계속하다 보니 생겼어요!”

이어서 설명하길, 다수의 히포그리프가 본능적으로 그리핀, 태풍이를 따르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지구력, 비행 능력, 목표 포착 능력, 명령 전달의 편의성 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생각 외로 히포그리프 태풍이를 너무 잘 따라서, 태풍이도 더 자신감을 가지는 것 같아요!”

애초에 ‘히포그리프’라는 생명체가 ‘그리핀’과 ‘말’ 사이에서 태어난 이종 교배종인 만큼, 상위종인 그리핀을 본능적으로 따르는 듯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그리고 역시······ 잘 하네.”

성우의 칭찬에 혜연은 무언가 벅차오르는지, 귀까지 빨개지는 등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 네!”

아주 오래전부터 성우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그녀였기에, 이런 한 마디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어. 곧 실전이야.”

성우는 딱딱하게 말했지만, 혜연은 그 한 마디에 더 큰 동기부여를 느꼈다.

“아! 네! 더 열심히 할게요! 그럼 다시 갈게요!”

그녀는 다시 태풍이 위에 올라타, 하늘로 비상했다.

‘생각보다 훨씬 잘 되고 있어.’

특별공격대는 상당한 레벨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만큼, 어려운 공중 기동에도 금방 적응해나갔다.

‘이렇게 훈련과 실전을 거듭하면, 드래곤을 잡을 때도 도움이 될까?’

그때, 누군가 성우를 찾아왔다.

“······네크로맨서님!”

허스트 공방 직원이었다.

“지금 급히 와보셔야할 일이 있습니다!”

* * *

성우는 허스트를 찾아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쨍一 깡一 쨍一 깡一

뜨거운 열기 속, 수십 명의 대장장이가 화로와 모루 앞을 오고 가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허스트가 걸어 나왔다.

“아, 좋은 소식 때문에 불렀어.”

허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갯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성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좌측 벽면에 금고 하나가 열려 있었다.

“금고를 하나 더 열었는데, 괜찮은 게 나와서 말이야.”

멸망한 월드 플레이어들이 아이템을 보관한 금고, 그건 24시간에 한 번씩 열 수 있었는데, 강제로 열기 때문에 ‘도굴꾼의 시련’이 적용되었다.

그럴 때마다 ‘골드 가드’가 한 마리씩 출현했지만, 이제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안에 공성 병기를 잔뜩 들여놔, 출현과 동시에 박살 낼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그 골드 가드를 되살릴 수는 기술을 개발했거든? 다음에 창고 뜯을 땐 한 세 놈 살려서 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골드 가드를 살려서 조종할 수 있다니? 이처럼 마법 공학 기술은 날이 갈수록 진보되고 있었다.

언젠가는 과학이 그랬던 것처럼, 플레이어의 무력보다 더욱 유용해질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렇군요. 그래서 저 창고에서 나온 아이템이 뭡니까?”

성우의 물음에 허스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던졌다. 녹색 돌이었다.

“강화 아이템이 나와서 말이야. 자네가 가진 아이템 중 하나를 강화하면 어떨까 하는데?”

성우는 그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시간의 조력

- 등급 : 알수 없음

- 분류 : 신화

- 설명 :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공식이 담겨 있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수 없다.

“당장 거기에 적힌 설명은 모호하지만 이런 종류의 오브는 아이템에 특별한 특성을 부여하거나, 건드리기 쉽지 않은 효과를 강화할 수 있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압니다.”

과거, 평택에서 ‘불의 거인’을 잡았을 때 ‘불의 정기’라는 오브를 리피팅 크로스보우에 적용하여 ‘발화’ 효과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샐러맨더’를 잡고 얻은 ‘불의 정령석(상급)’을 얻은 적 있었다.

‘그 두 가지는 전부 화염과 관련된 효과를 부여해줬다. 그런데 시간이라······.‘

위의 두 아이템은 어떤 추가 효과를 줄지 명확했다. 화염 데미지 혹은 화염 면역력이었다. 이는 물, 바람, 얼음과 같은 ‘원소’ 계열도 비슷할 것이었다.

반면 시간은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시간과 관련된 오브는 과연 어떤 효과를 부여해준단 말인가?

이에 대해 허스트가 이어서 설명했다.

“음, 이 아이템은 아마도 아이템에 붙어 있는 추가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줄이거나 ‘지속 시간’을 늘려줄 거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최고의 강화가 될 수 있어.”

성우는 그 대목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그럼 이것도 됩니까?”

성우는 아무것도 없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허스트는 무슨 장난인가 싶어 눈썹을 꿈틀거렸는데, 그때, 성우의 손 위로 흑색의 낫이 나타났다.

절그럭一

그림리퍼였다.

“음, 각인에 소환 아이템이군? 그런 건 애초에 평범한 모루에 올리는 것조차 안 될 텐데······.”

턱—

허스트는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하지만 이 녀석은 평범하지 않으니 한 번 시도해봐야지? 자, 여기 한 번 올려놔 보게.”

성우는 그림리퍼를 헤파이스토스의 모루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우웅—

다행히도 거부 반응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모루와 연동된 듯, 보라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허스트는 모루에 손을 얹고,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망치를 쓰는 대장장이보다 기계 장치를 조작하는 엔지니어처럼 느껴졌다.

“그래, 좋아, 된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허리춤에서 에메랄드 색깔의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성우에게 왼손을 뻗었다.

“오브를 주게.”

성우는 ‘시간의 조력’을 그에게 건넸고, 허스트는 그걸 그림리퍼 옆에 올렸다.

“맙소사, 무슨 조합 비용이 1억 2천 만 골드야?”

“괜찮습니다. 진행해주세요.”

“미친······.”

허스트는 혀를 내두르며 고글을 썼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어 올려, 오브를 힘껏 내리쳤다.

쩌一 어一 엉!

그 순간, 오브가 산산조각이 나며 엄청나게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성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지지지지!

그 빛은 전류가 되어 요동치더니 이내 실타래처럼 한 대 뒤엉키기 시작했다.

허스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그 안으로 망치를 집어 넣었다.

“자, 조심해! 이, 이게 터지면······ 우린 다 죽어!”

그렇게 위험한 작업이란 말인가? 그런데 정말인지, 주변에 서 있던 대장장이들이 엉거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으으으!”

허스트는 이를 꽉 다물고, 양손으로 망치를 쥔 채, 실타래 같은 전류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림리퍼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망치를 내리쳤다.

쩌저저저저一

그러자 그 전류가 그림리퍼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아닌가?

“으! 순순히, 드, 들어가라, 좀!”

그림리퍼의 흑색 날이 시퍼런 예기를 품은 걸 보아하니 분명 어떤, 굉장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 마스터피스 ‘그림리퍼’가 특별한 힘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새로운 효과가 부여됩니다.)

성공이었다.

“하······.”

빛이 멎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강한 빛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삼박자가 맞았어. 좋은 재료에 좋은 시설 그리고 좋은 기술자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성우는 그림리퍼를 집어 들었다. 이 아이템은 1차 각성 스킬과 직접 연결된 것이었기에, 그의 눈앞에는 스킬 정보가 떠올랐다.

[스킬 정보]

- 이름 : 그림리퍼 소환(시간 지배)

- 등급 : 1차 각성

- 분류 : 액티브

- 소모 : 0

하루에 단 3시간 동안 사신의 낫 ‘그림리퍼’를 소환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리치’상태가 됩니다.

+ 사자의 권역 : 리치의 힘을 얻는 동안 최대 권속수가 (+50)만큼 증가하며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인고의 숙련’ 효과에 의하여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스킬 효과가 (+20%)만큼 증가합니다.

또한,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 태고의 죽음 : 해당 아이템의 소환 시간이 종료되는 순간, 1분간 ‘태고의 죽음’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성우는 절로 기어 나오는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림 리퍼의 유지 시간이 무려 3배나 상승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인고의 숙련? 시간이 지날수록 거듭해서 강해진다.’

네크로맨서는 원래부터 전투가 계속 될수록 강해진다. 그건 지금까지 증명해온 공식이었다. 그런데 그 공식이 한층 더 향상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태고의 죽음, 이건 뭐지? 어떤 기능이기에 설명이 감추어져 있는거지?’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만, 왠지 모르게 위험천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림리퍼 소환이 끝나는 순간에만 쓸 수 있다니? 웬만하면 쓸 일이 없길 바라야 했다.

“어때, 마음에 드나? 뭐,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다 드러나고 있지만 말이야.”

허스트의 물음에 성우는 그 내용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만들어주신 것 중, 최고입니다.”

역시, 기술자에게 투자하고 지원한 것들은 어떻게든, 배가되어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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