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67)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 - 2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세계수 진영의 활주로는 분주했다.
연합 함대는 간단한 정비를 끝낸 이후 곧바로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었다.
“2번 하이퍼 게이트 마나 주입 성공, 점프 스페이스 가동 준비 완료입니다!“
하이퍼 게이트를 이용할 일이 잦아질 것을 대비하여 활주로 한쪽에 ‘점프 스페이스’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둔 상태였다.
이는 워싱턴의 이스트 포토맥 공원에 있는 비행선 전용 도크(Dock)와 같은 거대한 철골 구조물로써, 지면과 떨어진 곳에 하이퍼 게이트를 설치할 수 있는 일종의 받침대 역할이었다.
“출구 주변 재확인 결과 충돌 우려 없습니다!”
하이퍼 스페이스를 높은 곳에 설치해야만 하는 이유는 비행선이 하이퍼 게이트를 통과한 직후, 지면이나 주변 건물에 충돌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이퍼 스페이스 가동!”
가동 명령과 동시에 두 개의 철제 기둥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베이징과 이어지는 통로가 열렸다.
우우우우一
베이징으로 갔던 ‘1차 원정 함대’ 중 일부가 복귀하기 시작했다.
한편 ‘2차 원정 함대’가 베이징행을 위하여 하이퍼 게이트 뒤쪽에 대기 중이었다.
“1차 원정 함대 총 7대 복귀 완료! 2차 원정 함대 진입 시작합니다!”
일종의 임무 교대인 셈이었는데, 이는 베이징에 쌓여 있는 전략 물자를 최대한 수거해오기 위한 ‘물자 수송 작전’의 연속으로,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와, 갑판에 뭐가 가득 쌓인 것 봐 저걸 창고에 정리하는 것도 문제겠어.“
중국 서버에서 돌아온 1차 원정 함대는 배불뚝이가 된 것처럼 선미, 후미 갑판에 무언가를 잔뜩 싣고 있었다. 아마 선내도 가득 찼을 것이었다.
세계수 진영은 이 엄청난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개발 지대의 절반을 개조하여 전부 창고로 만드는 등, 물류 창고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창고만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 숙소도 문제야.”
“아, 이번에 들어오는 게 물자뿐만이 아니지?”
중국 서버에서 들어오고 있는 건 골드나 물자뿐만이 아니었다.
제조·생활 분야의 플레이어 중 능력있는 이들을 포섭하여 세계수 진영으로 데려오는 일명 ‘스카우트 작전’ 역시 한창이었다.
“이번에 대장장이 집단 하나가 통째로 온다는데, 이러다가 온 세상 기술자들은 여기 다 모이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세계수 공방의 김 팀장, 요즘 밤새 연구만 한다고 하더라. 외국에서 들어오는 장인들한테 밀리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켠 모양인데, 어이구, 안 그래도 독종이 얼마나 독해 지려고 그러는지······.”
이 게임 특성상 제대로 성장한 단 1명의 인재가 10명, 아니 100명, 더 나아가 1,000명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줄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풍경이 바뀌고 있다.’
성우는 세계수 진영의 남부, 새로 지어진 행정 센터인 ‘오더 타워’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세계수가 성장하여 미술관 건물을 쓸 수 없게 된 이후, 무연의 건축 스킬로 단 며칠 만에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이외에도 무연과 건축가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하루가 다르게 풍경이 바꿔나가는 중이었다.
덜컹一
그때, 아놀드 허스트가 성우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성우가 몇 시간 전에 호출했는데, 2차 원정 함대에 대한 긴급 점검이 있어서 이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오셨습니까?”
“음······.”
그는 언제나 그렇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음, 또 무슨 일에 부려먹으려고 날 불렀나?”
성우는 그와 소파에 마주 앉았다.
“수원 센터 설립은 잘 되어 갑니까? 그 정도 면적이면 충분하시죠?”
내일, 워싱턴에 있는 ‘허스트 공방’의 직원들이 대거 이주해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허스트 공방 - 수원 센터’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리, 그 양반이 있으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사흘 만에 만들 수 있을 거야.”
여기서 ‘마스터 리’는 무연을 뜻했다.
“오늘 마스터를 모신 이유는 프로젝트팀을 하나 이끌어주시길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허, 말이 좋아 프로젝트팀이고 내가 팀장이지 사실상 뭐······ 그래, 그래서 이번엔 뭔데?”
성우는 고개를 돌려, 창밖에 떠 있는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복귀한 원정 함대였다.
“중국 측에서 대장장이 팀이 들어올 겁니다.”
허스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설마 이번엔 그놈들하고 한 팀을 이루란 소린가?”
“맞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도움이 될 겁니다.”
미국 서버에 허스트 공방이 있고 한국 서버에 세계수 공방이 있다면 중국 서버에는 ‘구야자 시설’이 있었다.
이번 전쟁 중 중국군이 선보였던 백광성구, 장막 분쇄기, 마나 배터리 같은 상당한 수준의 마법 공학 아이템 역시 전부 구야자 시설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흠, 좋아, 나도 이번 전쟁에서 그런 끔찍한 물건을 만든 놈들을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는데 잘 됐군.”
허스트는 고집스러운 인물이었지만, 편견은 없었다.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인정해주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마스터 허스트,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깍지를 꼈다.
“헤파이스토스의 신격, 혹은 또 다른 대장장이의 신격이라도······ 이른 시일 내에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우의 물음에 허스트는 턱을 만지작 거리더니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방법을······ 어느 정도 알아낸 것 같긴 해.”
신격의 발현 조건은 두 가지였다. 퍼즐과 같은 ‘조건’을 모아서 임시 신격을 얻던가, 아니면 한 가지 능력이 ‘극’에 달해 곧바로 정규 신격을 얻는 것이었다.
“전설이나 걸작 아이템을 완성할 때 마다 ‘알 수 없는 조건’에 가까워졌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어.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래, 신격에 도달하고 있는 것 같아.”
성우 역시 한호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에 충분히 일리 있는 추론이라고 봤다.
“좋습니다. 그럼 그런 등급의 아이템을 가리지 말고 만들어서 최대한 빨리 신격을 획득해주세요.”
그 말에 허스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야 좋지만, 그놈, 헤파이스토스의 모루와 화로를 한 번 쓸 때마다 얼마가 드는지 아는가? 알면 놀랄걸?”
“얼마죠?”
숫자 이야기가 나오자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허스트는 품속에서 시가를 하나 꺼내들었다.
“음, 화로를 한 가동 하는데 화력에 따라 최소 10만 골드에서 최대 100만 골드, 모루는 망치질 한 번에 1천 골드씩 깨지고 있어.”
“그렇습니까? 그럼 이번 연구 지원비로 20억 골드를 배정하죠. 반드시 신격을 얻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제가 원하는 아이템을 만들어주세요.”
“······뭐?”
아놀드 허스트가 입에 물었던 시가를 툭, 하고 떨어뜨렸다. 20억 골드라니?
“음······.”
그는 실수인 양 다시 잽싸게 물었지만, 눈썹이 꿈틀거리는게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노, 노력해보지. 그래,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뭔가? 미리 말해주면 먼저 구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우는 아이템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웬 밧줄 같은 물건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글레이프니르
- 등급 : 신화
- 분류 : 올가미
- 효과 : 특정 대상을 이 밧줄로 ‘한 바퀴’ 두를 시 마법의 힘으로 ‘구속’할 수 있습니다. 근력 수치가 250 미만일 경우 혼자서는 끊어낼 수 없습니다. 타인이 해제해주기 위해서는 3명 이상의 마법사 필요합니다.
+ 티르의 팔 : 상대에게 오른팔을 내어준다면 이 아이템이 자동으로 발동하여 상대를 구속합니다.
이는 가짜 황제가 지수를 속박했던 아이템이었다.
“이걸로 드래곤의 날개를 묶고, 떨어 뜨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허스트가 씩 웃었다.
“드디어 그놈을 사냥할 때가 온 거군?”
성우는 고개를 끄덕 였다.
다음은 드래곤 사냥, 그리고 마왕 토벌이 될 예정이었다.
* * *
거대한 세계수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수 진영의 본진은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북부 지역은 물류 창고와 각종 공방이 위치했다. 엄청난 물자가 들어오기 있기에 차량과 지게차가 끊임없이 오고 가며 소음을 자아냈다.
서부 지역은 격납고, 활주로, 점프 스테이션이 위치했다. 일종의 공항이었다.
동부 지역은 플레이어 거주 구역이 밀집해 있었다.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날로 확장되어 가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남부는 행정 기관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허, 이 거대한 빌딩이 단 53시간 만에 지어졌다니, 믿어지십니까? 저는 매번 신기합니다.”
경수가 말했다.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그 거대한 건축물은 세계수가 드리운 천장 아래에, 가장 높은 축으로써 우뚝 서 있었다.
- 걸작의 아우라를 목격했습니다. 30분간 ‘환상의 축복’이 부여됩니다.
* 체력·마나 회복 속도 상승(+20%)
* 모든 능력치 상승(+1)
‘건축물 자체가 걸작이라니······.‘
이 빌딩은, 이제는 세계수 진영의 머리나 다름없는 종합 행정 센터, 일명 ‘오더 타워’였다.
그 구조는 분명 현대의 건축물인 빌딩이었지만, 새하얀 대리석 재질인데다가 건물 외벽에 웅장한 벽화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죄다 내 모습이군.’
그 벽화의 내용은 대부분 성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다. 여의도의 드레이크, 북한산의 이무기, 대만의 마굴 등······ 지금까지 성우가 지나온 모험담이 유적에 새겨진 대서사시처럼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한쪽 구석에 지수의 발키리 변신이나 방패를 5개나 든 한호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이건 좀 낯부끄러운데······.’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건 아니었다. 건물 곳곳에 ‘방어막 생성기’와 ‘마나 배터리’가 설치되어 있어 건물 전체를 방어막으로 두를 수 있었으며, 옥상에 공성 병기가 설치되어 유사시 거대한 요새가 될 수 있었다.
성우도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축가들의 실력도 나날이 늘어가는 것 같네요. 곧 2차 성벽 건설도 시작할 수 있겠어요.”
세계수 진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오래전에 지어둔 성벽 밖으로 삐져나가고 있었다.
무연은 곧 두 번째 성벽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성우도 그 대공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었다.
“뭐, 물자만 충분하다면 한 달 내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니, 말 다 했죠.”
두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가 이끌고 있던 ‘총무부’ 이제는 ‘총괄 통제실’이라는 이름으로 확장 개편되었으며, 그곳을 중심으로 각종 행정 부서들이 신설되는 중이었다.
“이런 건물은 스킬로 뚝딱 지어지지만, 행정이라는 건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 구색을 갖추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행정에 도움이 되는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여타의 스킬을 응용하여, 일 처리를 빠르게 하는 것쯤이야 가능하겠다만, 부서를 꾸리는 건 사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전기가 아니라 마나의 힘으로 움직이는 장치였다.
경수가 25층을 눌렀다. 오더 타워의 가장 높은 곳에는 ‘국제 통신 센터’가 위치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안경 쓴 중년 남자 한 명이 달려 나와 반겼다. 이곳의 총괄 책임자인 센터장이었다.
“아! 네크로맨서님! 통제실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자,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국제 통신 센터의 기원은 월드 시즌이 시작되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서버와의 전쟁을 위해 성우가 내린 ‘한국 서버 총동원령’을 내렸을 때, 그에 대한 응답 메시지가 폭주했고, 그 많은 양을 처리하기 위해 ‘총무부’ 휘하에 ‘임시 통신 센터’가 급히 설립되었다.
“후! 그때부터 기반을 다져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대응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센터장의 말처럼 그때 설립된 그 임시 기관이 지금 상당한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그는 성우와 경수를 시설 안 쪽으로 안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저희는 더욱 원활하고 빠른 통신을 위해서 여러 통신 아이템을 보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부 두 분 덕분이죠!”
센터는 25층 전체를 사용하는 만큼 매우 넓었다. 특히나 ‘관제실’은 마치 CCTV 통합관제센터를 연상케 했는데, 한쪽 벽을 수십 개의 화면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 여기서 한 번에 24개의 서버의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감시 요원들이 항시 대기하며 각 서버의 소식을 수집 중입니다.”
이어서 센터장은 관제실의 우측 구석, 유리 벽으로 분리된 작은 공간 앞에 섰다. 바닥에 노란 테이프가 붙어 이곳이 통제 구역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가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그 안에는 웬 아이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타자기처럼 생긴 장치는 옥상의 ‘커뮤니티 접속 권한생성기’와 연결되어 어떤 메시지라도 지금 당장 월드 전역으로, 구체적으로는 다른 서버의 ‘ 커뮤니티’에 게시물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서버 별로 나뉘어 있는 커뮤니티는 해당 서버의 플레이어가 아니면 접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커뮤니티 접속 권한 생성기’라는 이 특이한 아이템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다.
“여기서 보내는 메시지가 세계수 진영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실수가 벌어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무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소형 결계로 막아두어 각인된 몇 명만 들어갈 수 있게 보안······.”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센터장의 말을 끊었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보낼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자 센터장이 수첩을 한 장 꺼냈다.
“말씀만 하시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월드 전체로 전파하겠습니다.”
세계수 진영의 ‘통신 센터’로 하여금 월드 전체에 메시지를 전파하도록 했다.
그건, 성우가 수차례 언급해 온 ’통제 기구’를 설립하기에 앞서, 전반의 과정을 함께 논의하기 위한 설립 멤버, 일명 ‘임시 위원회’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성우의 말을 받아 적은 센터장이 소형 결계 안으로 들어가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거절할 수 없는 기회일거다.’
지금 ‘통제 기구’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머지않은 미래, 월드의 중심축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걸, 각 서버의 권력자들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일명 ‘설립 멤버’가 된다는 건, 다른 서버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아주 중대한 기회로 느껴질 것이었다. 마치 UN 상임이사국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내 밑에 줄 서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번 모임이 게임이 시작된 이후, 첫 번째 국제 모임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즉, 이번 ‘임시 위원회’가 새로운 국제 정세의 시작점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통제 기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해도 이런 중대한 모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이라도 보기 위해올 것이었다.
‘월드 전체 알아서, 이곳, 한국 서버로 모여들 거야.’
성우의 예상이 맞았다.
불과 몇십 분 뒤, 각 서버에서 합류 의사를 알리는 연락이 속속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주 서버의 연락입니다. 참여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정면의 벽을 메우고 있는 24개의 화면, 외국 서버의 커뮤니티를 출력하는 화면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이번에는 베트남 서버의 연락입니다! 지금 바로 출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센터장은 마이크를 쥐고 이 상황을 지휘했다.
“오케이! 지금까지 2개 서버 응답받았고······ 보고 들어오는 건 바로바로 명단 작성해!”
그렇게 말하고는 성우와 경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몽골 서버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그 말에 경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몽골 서버? 황제한테 붙어서 우리 쳤던 얘들인데······ 물론 랭킹 1위가 죽어서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한번 잘 알아봐야겠습니다. 혹시나 헛짓거리하지 않게요.”
임시 위원회에 찾아오겠다는 서버 대표자들이 전부 우호적일 수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정보기관을 운영하여 불순한 속셈을 사전에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 서버, 그리고 라오스 서버도 회신했습니다!”
어쨌든 이렇듯, 월드 전체가 네크로맨서의 소집 명령에 응하고 있었다.
“워, 판이 생각보다 커지겠는데요?”
경수는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방문 예정자 명단을 바라보며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사람들을 관리·통제하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경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23개 서버에서 응답하다니······ 이러다가 진짜 전 세계 서버가 다 모이는 거 아닙니까?”
“언젠가 그래야겠죠.”
성우가 지금까지 해온 선전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시스템은 과연 반길까?’
시스템은 갈등을 유발하기 위하여 ‘월드 시즌’이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에 따라 숱한 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에 의해 시나리오 밖의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걸······ 예상했을까?
‘반기지 않는다면 분명 방해하려고 할 거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예상할수 없다.’
이건 도박이었다. 통합과 평화, 그것만큼 따분한 상황은 없으니 시스템은 분명 분열을 조장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예상 밖의 연락이 도착했다.
“······어! 이건?”
센터 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센터장이 아닌, 성우와 경수에게 다가왔다.
“네크로맨서님? 이건 브라질 서버에 온 연락입니다.”
성우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걸 느꼈다.
“브라질 서버요?”
브라질 서버는 멸망했다. 정확히는 아마존에서 일어난 드래곤에 의해 장악당한 상태다.
W·P·U의 첩보에 의하면, 그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드래곤에게 충성하고 있다고 했다.
“맞습니다. 마왕성의 연락입니다. 마왕성에서······ 이번 임시 위원회에 참가하겠다고 합니다.”
너무나 예상 밖의 연락이었다.
‘왜지? 무슨 속셈이지?’
월드에 선전포고한 마왕성이 이곳에 나타나겠다고? 센터 직원은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드래곤도 함께 오겠다는데, 뒤이어 말하길······ 네크로맨서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합니다.”
직원이 성우를 쳐다보았다.
“네크로맨서, 우리의 적은 천사와 악마 ‘절대 종족’임을 잊지 마라. 내가 선전포고하여 공격하고자 한 건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놈들이었다. 2시간 전, 놈들이 하늘의 문을 열었다. 마지막 전쟁을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