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작가 주) 레드 드래곤 아이템 ‘세트 효과’ 스킬 이름 중 잘못 기재한 내용이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 수정전 스킬 이름 : 드래곤 아머
* 수정후 스킬 이름 : 보일링 아머
66) 다중공간전투 - 2
단 한 명의 플레이어도 없기에 공식 채널의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곳이 있었다.
쩡! 쩡! 쩍!
시황제의 고묘 밖, 외딴 건물의 로비였다.
네크로맨서의 정예 권속 셋과 황제의 정예 테라코타들이 맞붙는 중이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 측이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 수적 열세는 좀처럼 극복할 수 없었다.
텅!
민석은 항우와 맞대결에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그는 곧장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테라코타들이 지키고 있는 것, ‘시황제의 고묘’로 갈 수 있는 통로인 작은 궤를 바라보았다.
“젠장, 더 늦으면 안 되는데······.”
성우가 황제를 치기 위해 급히 들어 갔지만, 민석과 미리 주고받은 작전이 있었다.
그 작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저곳으로 들어가 성우에게 어떤 물건을 전달해 주어야만 했다.
조금 전, 혜연이 전해준 바로 그 물건이었는데, 워낙 부피가 커서 성우가 직접 들고 가지 못했다.
하지만 좀처럼 뚫어낼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가 성우씨가······.”
민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던 와중,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마침 딱다 됐군?”
절그럭一 절그럭一
항우를 비롯한 영웅 테라코타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왔다. 민석은 바로 그 순간, 어떤 말을 작게 읊조렸다.
“폭발.”
퍼一 엉!
머리 위에서 폭음이 울리며 건물이 뒤흔들렸다.
그건 시체 폭발이었다.
민석은 ‘리치’의 능력을 활용하여 건물 내, 시체들을 되살린 뒤, 바로 위층에 몬스터 사체를 쌓아 ‘시체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쿵— 쿵—
그렇게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그 파편이 테라코타들의 머리를 낙하하자, 돌파할 틈이 생겼다.
“······지금이야 가!”
민석은 듀라한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가서, 성우 씨에게 그 물건을 전해줘!”
듀라한은 민석의 의지에 따라 괴물 말을 움직였다. 그 거대한 괴수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 듀라한이 전용 스킬 ‘죽음의 질주’를 사용합니다.
듀라한의 좌우로 ‘유랑 기사단’이 피어올랐다. 그 맹렬한 돌진이 영웅 테라코타 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쩌一 적!
그리고 ‘궤’의 앞을 지키고 있던 테라코타 두 마리를 짓밟은 뒤, 제 머리를 안장에 얹고, 몸을 숙여 ‘궤’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듀라한의 몸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
민석은 탄식을 내뱉었다. 성공이었다
“······늦진 않았겠지?”
민석은 대검을 고쳐 쥐며 항우를 마주보았다.
“자, 이제, 이렇게 박 터지게 싸우다가 갑자기 네가 먼저 사라질지 내가 먼저 사라질지······ 한 번 두고 보자고.”
* * *
전황이 한순간에 급격하게 달라졌다.
성벽을 공격하던 테라코타 군단이 별안간 이상 반응을 보였다. 일제히 고개를 돌리더니 우뚝 멈춰선 것이다.
“어? 공격을······ 멈춘 것 같은데?”
이에 결사 항전을 벌이던 양측의 플레이어들은 달라진 기류를 느끼고 덩달아 멈춰 섰다.
“무, 무슨 일이지?”
미친 벌레 떼처럼 달려들던 테라코타들이 건전지가 다된 장난감처럼 우뚝 멈춰 섰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공격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었다.
“설마?”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다.
그때, 어디선가 외침이 들렸다.
“네크로맨서다! 네크로맨서가 황제의 본체를 쳤다!”
누군가 공식 채널의 방송을 통하여, 네크로맨서가 ‘시황제의 고묘’에 침투한 장면을 보고 전해온 것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무리 전황이 불리해지더라도, 이들 모두가 끝내 포기하지 않을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든 버티기만 한다면 네크로맨서가 무언가 해내어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그 믿음대로 됐다.
성벽 너머에서는 어렴풋한 환호가 울렸고 성벽 밖, 중국군 진영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아, 아직이야! 방심하지 마!”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던 테라코타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로 꺾었던 고개가 정면을 향해 돌아오며,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젠장! 다시 퍼부어!”
공격을 재개한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 아주 큰 변화가 하나 생겼다.
“저기 봐! 후방의 테라코타 병력이 어디론가 간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던 엄청난 숫자의 테라코타 군단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성벽을 향한 공세를 계속했고 나머지 하나는 후방의 어딘가, 그러니까 네크로맨서를 막기 위해서 급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막아야 해!“
리웨이는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네크로맨서가 황제의 심장을 제대로 노렸다는 걸 알아챘다.
“장벽을 쳐!”
리웨이는 테라코타 병력이 움직이는 길목에 거대한 물의 장벽을 만들었다.
철썩!
그리고 그곳을 향해 다가오는 테라코타의 머리 위를 향해 물폭탄을 쏟아 부었다.
“통과시키면 안 돼!”
한편, 성벽 위에서도 회군을 막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수 누님! 여, 여기 손 하나가 사라졌어요!”
한호가 소리쳤다. 그는 현무의 화신의 등 뒤에 올라타, 성벽을 향해 점프했다.
“어디론가 도망간 것 같아요!”
지수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상대하고 있던 압제자의 손을 바라보았다.
지수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어떻게든 저 가짜 황제를 베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성우가 게임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상황이 달라졌다.’
상황이 달라졌다면 적의 목표도 달라질 것이었다. 지수는 그게 뭔지 파악하기 위해 감각을 기울였다.
치지지지지一
마치 부처의 손처럼, 찬란하게 흘러 나오던 황금빛이 옅어지고 있었다.
‘사라지고 있다. 역시 성우 씨가 허를 찌른 거야. 저 현상은, 저 손이 성우 씨 쪽으로 가려는 거다.’
즉, 가장 중요한 무기를 뒤로 돌려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지수는 한호를 쳐다보았다.
“저걸 막아야 해요. 도와줘요.”
그 말에 한호의 눈동자가 커졌다.
“와, 지수 누님한테 도와달라는 말을······ 내가 와, 생전 들어보긴 하, 하는 구나? 가, 감격······.”
“감격은 나중에 하시죠?”
“아? 네!”
지수는 성벽을 박차고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이미 수백 번이나 시도했던 움직임이었다.
추추추추추—
이번에도 역시나 황금색 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때, 지수의 등 뒤로 녹색 형체가 다가왔다.
“야! 이제 나도 있어! 나도 끼워줘!”
한호가 조종하는 ‘현무의 화신’이었다. 그 거대한 신수가 꼬리 부분, 뱀의 머리를 휘둘러 압제자의 손을 강타했다.
텅!
육중한 충돌음과 함께 손의 방향이 틀어졌고 그에 따라 수백 가닥의 실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지수는 그 사이로 몸을 던졌다.
‘좋아, 이번에는 피할 수 있다!’
지수는 몸을 극단적으로 뒤틀며 쇄도, 뒤이어 날아드는 몇 가닥의 실을 피해냈다.
‘······뚫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압제자의 손, 손아귀 앞까지 도달했다. 지수는 뒤로 내빼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촤— 악!
지수는 그것의 엄지를 가르며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그것의 손등 위에 앉아 있는 자, 가짜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저건 가짜다. 하지만 강력한 무기다.‘
그런 무기를 황제의 손아귀로 돌아가게 둘 수는 없었다. 여기서 파괴해야만 한다. 그게 성우를 돕는 일이었다.
붕!
지수는 가짜 황제의 목덜미를 향해 광선처럼 쇄도했다. 가짜 황제 역시 무기를 들어 올리며 지수와 맞섰다.
쩡! 쩡! 쩡!
거대한 손등 위에서 3번의 부딪침이 일어났다. 지수 한 발 물러섰다.
그때, 등 뒤로 날아드는 실을 느꼈다. 정면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총 13가닥, 뒤로 피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전진이다!’
지수는 황제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쩡! 쩡! 쩡! 쩡! 쩍!
총 5번의 충돌, 마지막은 소리가 달랐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 가짜 황제의 오른쪽 손목이 날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당했다!’
지수는 급히 몸을 던져, 오른쪽 허공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늦었다.
촤라라라!
가짜 황제의 잘린 팔뚝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지수의 몸을 휘감았다. 함정이었다.
- ‘글레이프니르’에 의해 속박됩니다.
“······윽!”
웬 녹색 줄이 지수의 몸을 칭칭 옭아 매었다. 마치 낚싯줄처럼 투명하고 질긴 것이었다. 지수는 압제자의 손등에서 떨어지며 허공에서 몸을 뒤틀었다.
“윽! 푸, 풀 수가 없어요!”
무려 글레이프니르(Gleipnir)였으니 당연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거대한 늑대 ‘펜리로’를 묶었던 올가미인 만큼, 쉽게 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현무의 화신이 성벽을 발판 삼아 압제자의 손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야! 나도 있다고!”
뱀의 머리가 압제자의 손의 엄지를 휘감았다. 지수가 긴 자상을 만들어 놓아 반쯤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기에 쉽게 잡혔다.
이어서 거북의 머리가 중지를 덥석 물어 단단히 매달린 뒤, 그 상태로 바닥을 향해 몸을 틀었다.
쿠— 웅—
현무의 화신과 압제자의 손이 한 대 뒤엉켜 바닥에 추락했다.
두 거대한 형체는 성벽 아래 모여 있던 테라코타를 짓이기며 데굴데굴 굴렀다.
추추추추추—
그러나 탄력 면에서 압제자의 손이 우위였다. 5개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현무의 화신을 찍어 눌렀다.
마치 사람의 손이 자라를 움켜쥔 것 같았는데, 다량의 황금색 실을 뿜어내어 현무의 화신을 칭칭 휘감았다.
“어,어어?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나 이제 전황이 달라진 상태였다. 뒤엉켜 싸우는 두 형체 위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우우우우-
스무대가 넘는 비행선, 연합 함대였다.
“전 함대, 폭격 준비!”
함교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인호 역시 상황에 어떻게 바뀌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저 손이······ 못 돌아가게 막아야 한다.”
인호는 전 함대에 무전을 날렸다.
“포탄 말고 세계수의 갈고리를 준비해!”
세계수의 갈고리, 그건 성우가 마굴에서 사용한 적 있는 아이템으로, 세계수의 줄기에 뼈로 만든 갈고리를 연결 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중급 마물’ 떼를 막기 위한 전술 병기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견인용 밧줄이나 닻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개조되어 비행선에 장비된 상태였다.
“전 함대 저 손을 향해, 세계수의 갈고리 발사!”
퉁! 퉁! 퉁! 퉁! 퉁!
총 5개의 세계수의 갈고리가 쏘아져 나가 압제자의 손가락에 휘감겼다.
“성공입니다! 목표를 속박했습니다!”
그 긴 넝쿨의 끝자락은 선내, 도르래 장치에 연결되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에 갈고리에 걸린 물체를 기계적인 힘으로 잡아당길 수 있었다.
하물며 세계수의 넝쿨의 효과 자체가 잡아당기는 힘이 폭증하는 것이었으니······.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당겨!”
압도적인 위용을 선보이던 압제자의 손이, 힘없는 거대한 짐승처럼 견인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네크로맨서가 허를 찌름으로써 성벽을 압박하던 전력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되자 전세가 뒤바뀌었다.
* * *
시황제의 고묘, 그곳은 매우 거대한 사원이었지만 이 두 남자가 싸우기에는 너무나 좁은 공간이었다.
네크로맨서와 황제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콰一 직!
그때, 석상의 머리가 반 토막 났다.
용아병 두 마리가 그 거대한 머리통을 양쪽에서 잡고 반으로 갈라버린 것이었다.
그게 마지막 석상이었다.
마치 철거현장처럼, 온갖 돌 파편과 철제 무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철거를 마친 10마리의 용아병은 그 사이에 우뚝 서서 거칠게 포효했다.
크아아아!
성우는 황제를 향해 걸어갔다. 황제는 여전히 여유 있었다. 그는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크로맨서······ 잘 봤다. 그래서 네가 준비한 술수는 그게 끝인가?”
황제의 등 뒤로 거대한 황금색 손이 떠올랐다.
압제자의 손, 왼손이었다.
그것은 황제의 머리 가까이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유사시 황제를 움켜쥐어 보호할 채비를 했다.
“그 손, 성벽 쪽에서 급하게 회수했군?”
성우가 보기에 저 손, 황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신격의 스킬이 분명했다.
‘놈의 신격이 뭔지 정확히 몰라도 뭐든지 강제로 조종하는 신격이다.’
단순히 자신이 만든 인형을 조종하는 걸 넘어, 비행선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수호자의 석상까지 조종하여 움직이는 걸 봤다.
‘그렇다는 건 내 권속도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압제자의 손이 성우를 향해 손바닥을 내미는 순간, 황금색 실이 뿜어져 나왔다.
추추추추추추—
너무나 빨라 미처 대응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용아병을 향해 쏘아졌다. 용아병을 조종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치이이이!
황금색 실이 용아병의 몸에 휘감기는 순간, 검게 그을리며 타들어 갔다.
황제의 왼쪽 눈썹이 두 번이나 꿈틀거렸다.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인 듯했다.
성우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네 실뜨기는 소용없을 것 같은데? 그 잘난 권능에는 단열 기술도 없나 봐?”
물론 저 황금색 실은 거대한 비행선도 장난감처럼 조종하던 힘이었기에 평범한 불에 타들어 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용아병의 몸을 형성하고 있는 저 불꽃은 그 어떤 화염 마법보다 강력한 ‘레드 드래곤’의 힘이었다.
‘역시 어떤 힘에도 허점과 약점이 존재한다.’
이처럼 능력은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먹히고 먹힌다. 만약 레드 드래곤 아이템 세트 효과가 없는 상태였다면, 네크로맨서의 군단은 사실상 황제의 하위 호환으로 무력하게 당했을 수도 있었다.
즉, 성우의 히든카드가 먹힌 것이다.
저벅一 저벅一
하지만 황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여전히 왕좌에 고고히 앉아 성우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놈에게도 다른 카드가 있다.’
마치 패를 돌리는 도박사처럼, 황제는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포커페이스였다.
’잘못 하면 한 번에 판이 넘어갈 수도 있다.’
성우는 신중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사실상 ‘최종 대국’이었다.
즉, 이 판의 승자가 모든 걸 취한다.
‘뭔가 온다.’
그리고 이내 황제의 두 번째 패가 공개되었다.
쿠구구구구-
황제의 등 뒤, 석벽이 위로 치솟으며 열렸다. 그 뒤로 드넓은 복도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곳에 다수의 테라코타 병력이 운집해 있었다. 성벽을 공격하던 병력이 이곳으로 소환된 것이었다.
하지만 저딴 잡병들 따위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성우 역시 두 번째 히든 카드를 꺼냈다.
그건 뼈로 만들어진 창 ‘레드 드래곤 스피어’였다. 성우는 그 창을 역수로 쥐고 어깨 뒤로 당겼다. 그리고 황제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흥—
황금색 실이 쏘아져 날아드는 창대를 쳐냈다. 사실 막기 어렵지 않은 공격이었다.
퍽—
그런데 그게 땅에 박히는 순간······.
- 주의! 해당 지역에 ‘브레스 필드’가 형성됩니다.
히든카드는 바로 이 스킬이었다. 레드 드래곤 아이템의 세트 효과로, 창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100미터 일대를 ‘용암 지대’로 바꾸는 ‘지속형 범위’ 스킬이었다.
후우우우—
땅에 박힌 창대를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의 공간, 그곳의 공기가 순식간에 펄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닥과 벽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발생하며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마그마가 흘러나왔다.
치이이이一
석재가 끓어오르며 유독 가스가 발생했다.
퍼一엉! 퍼一엉!
심지어 테라코타 대열의 한가운데에서 화염과 마그마가 분출되기까지 했다.
- 플레이어의 ‘중급 테라코타’를 제거하여 3,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중급 테라코타’를 제거하여 3,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상급 테라코타’를 제거하여 1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중급 테라코타’를 제거하여 3,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이처럼 마치 활화산의 분화구에 들어온 것 같은 극단적인 환경 변화를 이루어 냈다.
이 공간은 분명 놈의 권역이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힘이 작용하며 성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크아아아!
또한, 용아병들이 ‘브레스 필드’의 열기에 노출되자, 불꽃으로 만들어진 몸이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 ‘브레스 필드’ 내의 모든 ‘용아병’이 ‘요람의 열기’를 얻어 강화됩니다.
그것들은 황소처럼 거대해진 몸집으로 스팀 같은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더니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듯 바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쓸어버려.”
성우의 명령에 10마리의 용아병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그 모습이 잘 훈련된 사냥개 같았다.
콰직! 콰직! 콰직!
그리고 테라코타 부대와 격돌해, 일 순간 수십 마리를 초전박살 내는 모습은······ 마치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스트라이크를 터뜨리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우리 둘만 따로, 조용히 얘기해보자고.”
일대일 대결, 성우는 자신 있었다.
황제가 중국 서버를 점령하는 동안 어떤 시행착오와 성장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능력을 볼 때, 이런 안전한 곳에 숨어서 권속만 조종했을게 뻔했다.
‘양쪽 모두 권속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육체적 능력은 내가 앞설 거다.’
성우는 부서진 석상 파편 위, 들끓는 화염의 복도를 걸어 첫 번째 계단을 밟았다.
그때였다.
황제의 등 뒤, 압제자의 손 위로 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거대한 눈이었다. 두 개 눈이 서서히 개안하며 황금색 눈동자가 떠올랐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압제자의 시선’이 발동합니다.
그 메시지에 성우는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멈췄다.
’놈이 제일 중요한 카드를 꺼냈다. 역시 신격 스킬이다.’
이렇듯, 서로의 스킬을 하나씩 공개하며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이 계속 되고 있었다.
오오오오一
월드 이터의 눈알이 극히 사실적이라 기괴하고 끔찍했다면, 이 눈에서는 회화적인 고풍 속, 형언할 수 없는 경이가 느껴졌다.
그때, 그 두 눈이 황금색 빛을 발했다.
- ‘압제자의 시선’에 노출되었습니다. 모든 신체 기능이 저하됩니다.
* 주의! 해당 상태에 오래 노출될 경우 ‘정신지배’에 취약해집니다.
“······큭!”
그 빛에 노출되자 미쳐 날뛰던 용아병들이 우뚝 멈춰섰다. 성우 역시 몸을 움직이는 게 어려워졌다.
“자, 네크로맨서, 또 뭔가 남았나?”
압제자의 시선이 스포트라이트를 터뜨리듯,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윽!”
코피가 퍽 하고 터졌다.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가 올라왔다.
성우는 결국, 세 번째 계단 위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흠, 내가, 짐이······.”
황제가 왕좌에서 일어섰다. 그는 양 손을 들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짐이 거듭 말했을 텐데? 여기는 짐의 권역이다.”
그가 단상에서 내려와 가장 높은 계단을 밟았다.
“내 힘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너는 이곳에서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압제자의 손에서 황금색 실이 뻗어나와 성우의 목을 감싸 쥐었다.
“커, 컥!”
그리고 그대로 들어 올려, 황제의 바로 앞까지 끌고 왔다. 그 비참한 모습이 방송으로 나갔다.
황제는 허공에 떠 있는 드론을 의식하며 성우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선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승리를 더욱 극적으로 포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성우는······.
“······웃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성우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쿠구구구구!
- 레드 드래곤 아머의 ‘보일링 아머’를 활성화합니다.
이 역시도 드래곤 아이템 세트 효과 중 하나로, 몸 주변에 화염의 토네이도를 형성하는 스킬이었다.
갑옷을 따라 불길이 회전하며 치솟았고, 성우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황금색 실이 타들어 갔다.
턱!
성우는 실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손을 뻗어 황제의 멱살을 움켜쥐어 가까이 당겼다.
“허영심, 그 특유의 허영심, 너희는 그게 문제야.”
노인의 주름진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염에 의해서 데미지를 입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모양인지 잘 견뎌내고 있었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아, 겨우 이건가? 네가 고이 숨겨둔 비수가?”
하지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안하지만, 아니야.”
그 말에 황제는 성우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럼 혹시 저 뒤에 숨어 있는 기사 한 놈을 말하는 건가?”
저 멀리, 어둠 속, 괴물 말 한 마리가 콧김을 내뿜었다. 그건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이었다.
“알고 있었군?”
황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네놈, 아직도 이해 못 하고 있어. 여기는 내 권역이란 말이야. 내 눈을 속일 수 없어. 이해가 아니라······ 인정을 못하는 건가?”
그 순간, 듀라한이 계단을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황제를 고개를 저었다.
“쯧쯧, 멍청한 짓이야.”
‘압제자의 손’이 실을 뿜어냈다.
쾅! 쾅! 쾅! 쾅!
듀라한이 지그재그로 말을 몰았지만, 전부 피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실 한 줄이 괴물 말의 몸통을 강타했다. 듀라한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고꾸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은 말 안장에 얹혀 있던 무언가를 움켜쥐었고, 성우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텅!
성우는 날아드는 그 물건, 거대한 철제 상자를 한 손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짧게, 한 마디를 뱉었다.
“······입장!”
황제의 눈이 커졌다.
“지, 지금, 뭐?”
그 순간, 두 사람이 몸이 사라졌다.
잠깐의 고요······ 이어서 허공에 뜬 채 이 장면을 찍고 있던 공식 채널의 드론 역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곳은······.
-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 입장하셨습니다.
또 다른 권역이 었다.
“······이게, 뭐지?”
황제는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성우는 놈의 멱살을 놓으며 양팔을 벌렸다.
활활 타오르는 그의 갑옷이 먼저 보였고 이내 그의 등 뒤로 뜨겁게 타오르는 화로가 눈에 들어왔다.
“자, 여기서는 공평하게 신격을 쓸 수 없어. 우리를 위한 완벽한 경기장이야.”
황제는 성우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나를······ 여기로 끌고 들어오려고 했던 건가?”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림리퍼를 바닥에 내리꽂고, 둘러메고 있던 겨울 포식자를 풀어, 바닥에 내려 놓았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두던 그 게임, 내가 판을 엎었어. 이제 새로운 룰로 다시 시작이야. 아, 여기서 나가려면 저기 저 모루에 손을 얹고 ‘퇴장’이라고 말해야 해.”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격을 사용하려고 애썼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우가 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얹고 피식 웃다가, 아주 빠르게, 왼손을 내질렀다.
쩍!
“······억!”
성우의 선제공격, 빠르게 접근하여 날린 잽에 황제의 코와 앞니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큭, 이, 이, 이 새끼가······.”
성우는 그 한 방을 날린 뒤 뒤로 쓱 돌아, 허공에 떠 있는 공식 채널의 드론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종목이 바뀌었어. 전쟁이 아니라 격투기야.”
성우가 숨기고 있던 진짜 히든카드는 판을 통째로 갈아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