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97화 (197/244)

# 197

65) 사냥꾼 앞의 토끼 - 3

플레이어는 아무리 레벨이 높더라도 ‘생명력’이 많은 편이 아니다.

물론 체력 수치가 높을수록 평범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형 보스 몬스터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얻기는 어렵다.

“커, 커허······.“

즉,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할 경우 그대로 숨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 정도로 안 죽어.”

그렇기에 성우는 쯔쉬안의 양쪽 어깨에 대검을 박아넣어 최대한 치명상을 피하게 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쇼크사나 과다 출혈로 죽었겠지만, 쯔쉬안는 상당한 수준의 플레이어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제압한 이유는 간단했다.

“드래곤이라······.“

드래곤의 숨통을 끊은 무기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된다. 드래곤의 신격을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성우는 마그마가 떨어지는 검, 레바테인을 들어 올렸다.

“으, 자, 잠깐······.“

쯔쉬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 창백한 얼굴에 짙은 감정이 피어났다. 공포······.

어떻게 보면 안쓰럽다. 인간적으로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

‘이 순간의 자비가 모두의 목숨을 앗아간다.’

특히나 마굴에 갔다 온 이후, 그런 생각이 더욱 완고해졌다. 멸망을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아직 모른다. 그렇기에 무작정 강해질 수밖에 없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더 올바른 선택을 해.”

성우는 그 말을 끝으로 대검을 내리찍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23,00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생명에 꺼져가는 동시에 레바테인의 칼날 안으로 무언가 스며들어왔다.

- ‘레바테인(비활성화)’이 ‘특별한 조건(드래곤 슬레이어)’를 달성하여 새로운 효과를 얻었습니다.

이로써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를 불태워버리는 무기인 레바테인이 ‘드래곤 슬레이어’ 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 팀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그리고 역시나 시너지 효과도 달라졌다.

[시너지 목록]

4) 드래곤 토벌대 (히든)

- 구분 : 무기 시너지

- 조건 : ‘드래곤 슬레이어’ 무기 4개 이상 장착

- 효과 : 드래곤 계열 공격 시 추가 데미지(+300%), 모든 종류의 ‘브레스 면역력’ 상승(+300%), ‘드래곤 피어’ 면역력 상승(+300%), 드래곤 계열 사냥 시 경험치·골드 추가 획득(+200%) , 특별한 아이템을 얻을 확률 상승(+100%)

드래곤 원정대에서 드래곤 토벌대로 바뀌며 각 기능이 100퍼센트씩 추가 상승했다.

그리고 두 가지 기능이 추가되었다. 둘 다 드래곤 사냥 이후의 추가 획득에 관한 것이었다.

‘드래곤 사냥 자체가 문제지만, 사냥 후에 짭짤한 보상을 얻을 수 있겠어.’

드래곤 슬레이어 아이템이 4개, 이 역시 리치 넷이 모이는 것처럼 실현 불가능한 수준의 시너지였다.

’이 정도면 드래곤에 대항할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없었다. 드래곤만 있다면 모를까 마왕의 이름을 단 플레이어가 옆에 있으니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칭호는 그대로군.’

월드 이터를 잡았을 때 ‘용 사냥꾼’ 칭호가 전설 등급으로 향상됐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메시지는 없었다.

“끝났어? 끝난 거지?”

리웨이가 다가왔다. 쯔쉬안이 구름에서 끌어내린 다량의 물이 바닥 위에 가득 고여 있어서 그녀는 물의 정령으로 길을 내며 걸어왔다.

“리웨이, 혹시 이 모든 물을 조종할 수 있나?”

리웨이는 주변을 쓱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만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건 어렵지만, 가능해.”

성우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성벽 쪽, 황제의 테라코타를 가리켰다.

“그럼, 쓸어버려.”

그 말에 리웨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했다.

“아, 그전에 잠깐 이리 와.”

성우는 뭔가 떠올랐다. 리웨이가 다가와 앞에 서자 그녀의 머리 위에 툭, 손을 얹었다.

“갑자기 뭐······.”

- 해당 플레이어를 ‘염라의 차사(差使)’로 임명합니다.

그런 메시지와 함께 성우의 손에서 보라색 기운이 피어나 리웨이의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어? 이게 뭐야? 뭘 한 거야?”

[스킬 정보]

- 이름: 차사(差使) 임명

- 등급 : 궁극

- 분류 : 액티브 지속형

- 소모 : 마나 10

플레이어 혹은 지성을 가진 권속을 ‘염라의 차사’로 임명하여 저승사자 임무를 수행하게 합니다. (최대 5명)

차사는 자신이 사냥·살해한 망자의 영혼을 ‘귀신’으로 부릴 수 있습니다. (차사 당 최대 20마리)

또한, 염라의 권능으로 사망한 차사를 1회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 49일)

귀신을 부리는 스킬인 ‘명계의 율령’으로 다룰 수 있는 귀신의 숫자는 총 500마리였다.

지금처럼 주변에 다른 귀신이 있다면 그것들까지 통제할 수 있지만, 앞으로 그런 경우가 허다할 리는 없었다.

‘믿을 수 있는 이들을 차사로 임명해 둬야 한다.’

즉, 염라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차사를 둬야만 했다.

리웨이는 여전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럼 내가 네 권속이라고? 그런 거야?”

주인과 권속, 그 대목에 수치심을 느낀 걸까?

“굳이 의미부여 하지 마. 중요하지 않아.”

리웨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이미 오래전에 성우를 인정했지만, 여전히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다.

성우는 쯔쉬안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 망자의 ‘기억 파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역시 어떤 해답이 담겨 있었다. 쯔쉬안을 성우는 스켈레톤으로 일으켜 그 기억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성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최측근을 나한테 보낸 건, 큰 실수다.‘

쯔쉬안은 황제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런만큼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쯔쉬안의 신격이 ‘응룡(鷹龍)’이라는 것과 황제가 어떤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였어?”

황제가 몸을 숨기고 곳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숨기고 있는 무기라······.”

그런 건 성우에게도 있었다. 성우는 아직 염라의 권능 스킬 중 한 가지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 한 방에 쓸어버릴 기회를······ 기다린다.”

* * *

성우의 언데드 군단이 테라코타 군단의 후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세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았다.

황제의 테라코타 병력은 여전히 충원 중이었다. 초반과 비교하면 그 양이 훨씬 줄긴 했다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가 공급되며 빈자리를 채웠다.

“아! 지금 네크로맨서가, 언데드 군단이 다시 전투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성벽은 위태롭습니다!”

안 기자는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전장은 한눈에 살피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고 복잡했다.

네크로맨서가 다시 참전하며 후방 쪽 전황이 크게 뒤틀리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나 성벽에 가해지는 공세는 좀처럼 느슨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무너져갔다.

콰—아—앙!

성벽 한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거대한 거포가 불을 뿜었다. 전장이 족히 50미터는 될법한 흉물이었다.

몇 분 전부터 거인 테라코타와 강철 골렘이 그 물건을 성문 앞 지면에 설치하고 있었지만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발사를 허용한 것이었다.

“아! 서, 성문이 무너지고 침투가 시작됩니다! 아주 큰 위기입니다!”

“음, 아무래도 곧 끝이 날 것으로 보이네요?”

안 기자는 불안한 듯 손을 떨었고 웡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럼 성벽 방어의 핵심이었던 ‘수호자의 석상’이 무력화되자 성벽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저, 거, 거대한 황금색 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발키리가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듯합니다!”

황제가 부리는 두 개의 황금색 손, 일명 ‘압제자의 손’은 수호자의 석상을 조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 아군의 공성 병기가 넘어갔다!”

성벽 위에 배치된 공성 병기를 실로 조종하여 거꾸로 돌려, 마을 내부를 포격했다.

또한, 수십 가닥의 실을 휘두르며 직접 공격, 성벽을 뭉텅뭉텅 뜯어내기까지 했다.

그걸 제지하기 위해 지수가 달려들었지만, 양손 중 하나, 오른손에서 뻗어 나오는 황금색 실을 피해내는 것만으로 벅찼다.

“아, 발키리가 이제······ 많이 지쳐 보입니다. 그녀도 불가능한 걸까요?”

지수는 성벽에 서서 검을 바닥에 꽂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미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몇 번이고 허공을 쇄도하며 황제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전부 실패였다.

“한계가 올 수밖에 없죠. 저렇게 날 뛰어도 털끝 하나 못 건드리니 이미 심리적으로 포기했을 겁니다.”

“아, 진짜! 제발 좀, 닥쳐요.”

“······뭐, 뭐요? 지금 뭐라······.”

웡이 당황하며 물었지만, 안 기자가 벌떡 일어났다.

“아! 발키리! 다시 한번 갑니다! 포기 안 했죠?”

웡의 예측과 다르게 지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도약했다. 그리고 뒤로 물려두었던 에인헤랴르를 죄다 소환하여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갔다. 사실상 올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쉬쉬쉬쉬쉬쉬一

황금색 실이 뿜어져 나와 허공을 휘젓자, 모든 에인헤랴르가 튕겨 나가고 말았다.

지수 역시 간신히 빠져나와 다시 성벽 위에 착지했다.

“하아······ 하아······.”

황금색 실이 너무 많았다. 가장 깊숙이 접근했을 때는 족히 수백 가닥가량이 뻗어 나오는 것 같았는데 어쩌면 더 많은 양을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머지 왼쪽 손은······.

“지금 저게 마, 말이 됩니까? 비행선을······ 토, 통째로?”

지수가 신경 쓰지 못한, 왼손에서 뻗어 나온 황금색 실이 비행선 3척을 휘감았다.

우우우우一

그러자 3척의 비행선이 선수를 성벽 안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함교의 승무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토, 통제가 안 됩니다!”

“모든 버튼이 전혀 먹질 않습니다!”

추추추추一

선체를 휘감은 황금색 실 안에서 더 가는 실이 뻗어 나와 비행선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부적인 기관까지 장악해나가는 것이었다.

퍼一엉! 퍼一엉!

그리고는 성벽 안쪽, 다른 비행선을 향해 캐논을 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이에 연합 함대도 응사를 시작했다. 아군 승무원이 타고 있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사이에 더 많은 희생을 치를 것이었다.

추락시켜야만 했다.

“어쩔 수 없다! 퍼부어!”

그런데······ 수십 발을 정통으로 맞춰도 비행선의 방어막이 도통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종당하는 비행선에 마나가 공급 되는 것 같습니다!”

정답이었다. 압제자의 손의 엄지에서 뻗어 나온 황금색 실이 후방의 ‘마나 배터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황제는 지금 마나를 끊이지 않고 공급받는 비행선을, 마치 권총처럼 다루고 있는 셈이었다.

지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두 눈을 질끔 감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자신이 저 오른손을 뚫어낼 수 있다면, 뚫어내서 황제로 보이는 저 몸뚱이를 갈라버릴 수만 있다면, 승기를 잡는 건 몰라도 시간은 벌 수 있다.

네크로맨서가 무언가를 할 시간, 그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시간을······.

네크로맨서는 분명, 지금 그 한 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었다. 지수는 성우를 잘 알았다. 그는 통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힘 싸움을 계속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뚫는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도약했다.

* * *

한편, 정훈 쪽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쩡! 쩌—엉!

정훈은 동시에 날아드는 두 개의 창 대에 맞서 대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여포와 관우, 두 영웅의 모습을 한 테라코타는 빠르고 거칠었다. 그리고 강했다.

쩌一 엉!

머 리를 향해 낙하하는 방천화극을 방패로 막는 순간, 정훈의 몸이 뒤로 기우뚱했다.

‘젠장, 힘이 도대체······.‘

근력 수치가 81에 이르는 정훈이건만, 팔이 후들후들 떨릴 정도였다. 그는 좁은 성벽 안에서 뒷걸음질 치며 그 공격에 겨우겨우 맞섰다.

크루세이더 팀이 지원 사격을 하거나 놈들의 등 뒤를 노리며 난입했지만 헛수고였다.

텅! 텅! 텅!

화살이나 마법이 날아드는 순간, 한 놈이 뒤로 빠지며 모두 쳐냈으며, 누군가 등 뒤를 노리고 달려들어도 단 몇 초 만에 몸이 반 토막 났다.

삼국지 속 두 맹장의 모습이 분명했다.

쩡!

그리고 정훈 역시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결국

뻐一 억!

여포의 발에 복부를 걷어차였다. 정훈은 그 충격에 난간 너머로 날아가, 그대로 성벽 안쪽,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큭, 제, 젠장······.”

흙바닥 위에 떨어지자 엄청난 충격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사지가 저릿하고 머리가 멍했다. 호흡곤란이 오며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수와 정훈이 무력화되자 황제는 성벽 안으로 유유히 침투했다.

“하, 하아······.”

정훈은 성벽 그림자 아래에 쓰러진 채, 그 드높은 성벽을 넘어, 세계수를 향해 날아가는 3대의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콰—앙! 콰—앙!

그것들이 폭격에 아군의 비행선 한 척이 추락했다. 그렇게 잃은 게 벌써 3척째였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잃을지 몰랐다.

“마, 막아, 막아야······.”

정훈이 고통을 이겨내며 어떻게든 몸을 돌려 바닥을 짚었을 때······.

턱!

머리맡으로 무언가 착지했다. 정훈은 고개를 들어 올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절그럭一 절그럭一

여포였다. 그 무표정한 토기 인형은 돌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정훈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정훈을 끝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제, 젠장······.”

그때, 정훈의 옆으로 또 다른 누군가 나타났다. 설마 관우일까? 다행히도 아니었다.

“어라, 중국산 피규어 주제에 좀 센 가 봐요?”

분위기 파악 능력이 다분히 부족하여 사회생활을 그리 잘못할 것 같은 이 목소리, 한호였다.

한호는 피식 웃으며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건 방패였다. 정확히 ‘아이기스’였다. 수호자의 석상에서 떨어져 나간 걸 주운 모양이었다.

지一 잉一

석화 광선이 여포를 향해 뿜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여포는 왼손을 들어 올려 광선의 막아, 그 빛에 노출되는 범위를 최소화했다.

쩌저저저一

왼쪽 어깨와 팔이 돌로 변했지만, 애초에 흙으로 만들어진 놈인 만큼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다.

“······오? 막아?”

한호는 그렇게 6개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6개의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그 구성이 기가 막혔다. 아니, 기가 막히는 걸 넘어서 너무······ 기괴했다.

한호가 지금 들고 있는 건 방패가 4 개, 창이 2개였다.

‘바, 방패가 4개?’

정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성이었다. 방패 4를 나란히 세우자 마치 스파르타 전사 4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 같은 꼴이었다.

“저기 그 방패, 저한테 줘요.”

심지어 창 한 자루를 내버리며 그 손을 정훈을 향해 내밀었다.

“······예?”

지금 방패를 하나 더 들겠다는 말인가? 4개나 있는데? 5개를 쓰겠다고?

“빨리요! 쓰고 다시 돌려줄게요! 저는 누구처럼 방패 준다고 하고 다시 뺏어가고 그러지 않아요!”

정훈은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방패를 내밀었다.

“오, 괜찮은 방패네요? 하긴, 기사단장같이 멋진 사람이 이 정도는 써줘야지? 음, 그래도 이건 선배가 나한테 줬던 아킬레우스의 방패랑 비교하면 별로인데, 그건 대체 어디에 떨어진 거야?“

한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여포를 향해 걸어갔다.

절그럭一 절그럭一 절그럭一

여포의 왼팔은 얼굴을 가린 자세로 굳어버렸지만, 오른손으로 방천화극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야! 어디서 팔이 1개인 주제에 팔이 6개인 내 앞에서 나대고 있어?”

여포는 방천화극을 아주 현란하게 휘두르며 다가왔다. 정훈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안 돼, 못 이긴다.’

이 한호라는 남자가 다소 이상한 활약을 펼쳐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병기를 다루는 능력이 우수한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여포는 삼국지 속 그 맹장이 살아나온 것처럼 엄청난 창술을 구사했다.

힘과 기술이 맞붙을 때, 기술이 이길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쩡! 쩡! 쩡! 쩡!

하지만······.

‘대, 대체 뭐지?’

정훈은 당황했다.

쩡! 쩡! 쩡! 쩡!

방패 5개를 각기 다른 손에 들어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었다.

그걸 모를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팔이 두 개뿐인 인간에게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으며, 팔이 두 개뿐인 인간의 이해 범주 밖이었다.

쩡! 쩡! 쩡! 쩡! 쩡!

“좀 더 세게! 더 세게! 더 세게 치란 말이야!”

그는 마치 미트를 잡은 복싱 코치처럼 그딴 농담을 지껄이며 직선으로 성큼성큼 밀고 들어갔다.

“자! 이쯤에서······ 나와라!”

그와 동시에 한호의 몸 위로 황금색 빛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쩡—

한호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던 방천화극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허공에, 툭 하고 걸렸다.

방어막이었다. 창의 진행 궤도에 두꺼운 방어막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저걸 위해 의도적으로 방어막을 끄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창이 허공에 걸리자, 놈의 현란한 움직임이 잠시 멎을 수밖에 없었다.

한호는 그 틈을 노렸다.

퍽! 뻑! 텅!

4개의 방패 중, 하나의 방패가 여포의 발등을 찍었다. 그리고 하나의 방패가 여포의 목을 찍었다. 그리고 하나의 방패가 복부를 밀었다.

그 충격에 여포가 기우뚱하는 순간, 지금까지 쉬고 있던 맨 위의 손이 움직였다.

콰一 직!

한호가 들고 있던 창, 언월도가 여포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렇게, 엄청난 무용을 펼치던 토기 인형이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후!”

한호는 방패 하나를 버리며 ‘방천화극’을 들어 올렸다. 정훈은 몸을 일으키며 한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미 ‘청룡언월도’를 쥐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로 여포의 머리를 뚫은 것이었다.

‘뭐야, 둘 다 잡았다고? 잡고 내려온거였어?’

정훈은 황당함을 느끼는 한편 새삼스레 감탄했다.

‘네크로맨서의 일행 모두가 엄청난 수준에 도달했다.’

그때, 한호가 허공을 향해 고개를 번쩍들었다.

“······어! 조심해요!”

그리고 정훈을 방패로 밀쳤다. 정훈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 한호의 머리 위로 폭발이 작렬했다.

콰—앙!

한호는 그대로 튕겨 져나가 근처 벽돌 자재에 처박혔다. 성벽 수리를 위해 배치해둔 자재였다.

한호를 공격한 건 비행선의 캐논이었다. 황제가 여포와 관우가 쓰러지는 걸 느낀 뒤, 한호를 향해 비행선의 캐논 2발 연달아 쏜 것이었다.

“한호씨!”

정훈은 한호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벽돌 무더기 안에 처박힌 상태였다.

“······괜찮아요?”

“윽, 괘, 괜찮아요!”

다행히 한호는 그 정도 공격으로 죽지 않았다. 과거, 윌리엄 베이커 제독의 유도탄을 맞고도 멀쩡했던 그였다.

“······큭, 여, 여기 있었구나? 너도 내가 그리웠지?”

그런데 몸은 멀쩡해도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인지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그래, 그래, 나한테 와. 어이구 이뻐라!”

한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벽돌 무더기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조금 전과 어딘가 달랐다. 분명 여포를 쓰러뜨린 뒤 방패를 하나 버리고 방천화극을 쥐었는데, 다시금 방패가 5개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그건, 성우에게 받은 ‘아킬레우스의 방패’였다. 달라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 안에서 백색의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오! 뭐, 뭔가! 일어난다!”

그리고 정말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 * *

인호는 좌절했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적이 장전을 끝냈습니다! 우리를 겨눕니다!”

황제가 다루는 ‘압제자의 손’은 단 3대의 비행선을 조종하여 연합 함대를 궁지로 몰고 있었다. 벌써 4대가 격추 당했다.

하지만 여기서 연합 함대가 물러선다면 세계수가 노출되고 말 것이었다.

인호는 머 리를 감싸 쥐었다. 연합 함대의 지휘관으로서 이 위기를 헤쳐나갈 책임이 있었다.

“성우 씨였다면, 여기서······ 어떻게······.“

그런데 구원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어? 적 캐논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아래, 지면을 겨누기 시작합니다!”

그 보고에 인호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정말로 3대의 비행선에 달린 모든 캐논이 전혀 다른 곳을 겨누고 있었다.

“······한호 씨?”

그곳에 한호가 서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의 몸에서 눈부실 만큼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황제 역시 한호에게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힘을 느끼고 모든 포문을 돌린 것이었다.

이어서 그의 몸을 두꺼운 녹색 방어막이 뒤덮었는데,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방어막보다 단단해 보였다.

콰一 과一 과一 과一 광!

이내 한호를 향해 포격이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압제자의 손이 황금색 실을 수십 가닥을 휘둘러댔다.

쾅! 쾅 쾅! 쩌저저저一

한호가 서 있던 일대가 초토화 되고, 한호가 서 있던 자리는 완전히 폭삭 주저앉았다.

그 무식한 장면에 함교 안이 술렁거렸다. 저 정도의 공격을 맞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주, 죽은 거 아니야?”

“······그렇겠지.”

그런데 연기가 가시고 포격 지점이 드러나자······ 한호는 너무나 멀쩡하게 서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런 걸 맞고 살아남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었다. 제아무리 방어력 특화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망원경 좀 주세요!”

인호는 망원경 아이템으로 한호를 살폈다.

한호는 잇몸을 만개하며 웃고 있었는데, 허공에 떠 있는 황제를 향해 무어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물론, 그다지 영양가 있는 말은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보였다. 한호 주변을 달구고 있던 포격의 흔적들, 이를테면 열기, 화염, 마나 등이 한호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뭐지? 데미지를 흡수하는 건가?’

다음 순간······.

쩌어어어어—

한호가 한 줄기 빛을 쏘아냈다. 방금 흡수했던 그 에너지였다. 그 빛은 성벽 안쪽까지 들어와 있던 압제자의 왼손을 강타했다.

그에 의해 왼손에 달려 있던 모든 실이 끊어지며 3대의 비행선이 격하게 흔들렸다.

“18번 함, 21번 함, 22번 함, 조종당하고 있던 비행선 전체가 통제권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함교에 환호가 울려펴졌다.

“······저거 설마?”

저 엄청난 힘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인호 역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성우나 지수 정도가 보여주던 그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그, 근데, 한호 씨가 왜······.”

이상하게도 놀라움보다 의문이 먼저 드는 순간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