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64) 죽음에 대한 완벽한 통제 - 2
게임으로 변하여 단절된 세계,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구일까?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사람들은 주저없이 단 한 명의 플레이어를 떠올릴 것이다.
“······네크로맨서!”
그는 ‘월드 메시지’를 통하여 여러 차례 언급될 만큼 남다른 업적을 이뤄왔다.
또한, 공식 채널의 방송을 통하여 월드 전체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압도적인 무력을 거듭하여 선보이며 그 유명세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여러분, 이 장면이 믿기십니까? 정말······ 매, 매번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 그의 군단은······
안 기자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제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 다릅니다. 그는 언제나 진화하고 있습니다!”
수백에 달하는 죽지 않는 군단, 그건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막지 못한 공포의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 화면에 보이는 장면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쿠구구구—
공중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교호수공원의 전장은 언데드 군단에 의해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그 숫자는 족히 수 천에 달했다.
그것들은 마치 밀밭을 갈아버리는 콤바인 기계처럼, 중국군의 ‘방패 제대’를 무자비하게 밀어버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 저건! 본 드래곤입니다! 얼마 전에 반격 선언 방송 때 나왔었죠!”
본 드래곤, 그건 깜짝 등장은 아니었다. 성우가 공식 채널의 방송에서 ‘통제 기구’ 창설을 선언했을 때, 녀석의 머리 위에 올라탄 채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활약상은 또 다른 위압감을 선사했다.
쿵— 쿵— 쿵—
그것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십여 대의 공성 병기가 으스러졌다.
또한, 최상위 등급의 골렘인 ‘강철 골렘’마저 찰흙반죽처럼 으깨어 버릴 정도였으니, 그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사실은······ 여기까지가 네크로맨서 전력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는 엄청난 숫자의 귀신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장면, 믿어지십니까?”
파도와 같은 언데드 군단이 지상을 휩쓸고 있다면, 그 위로 폭풍우 같은 귀신 군단이 몰아쳤다.
우우우우—
그것들은 을씨년스러운 괴성을 내며 비행하다가 적을 낚아채 올라가,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염동력으로 휘둘러,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공격하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엄청난 속도로 흐르는 안개 같습니다. 다량의 핏물이 섞여 있는 안개······.”
이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폭풍우, 그사이에 놓인 조난자들은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끝났습니다.”
마침내 중국군의 방패 제대가 전멸했다. 안 기자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물병을 들어 올렸다.
“후, 여, 역시나······.”
예상했지만, 잠깐 의심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승리했다.
“이걸 진짜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예, 네크로맨서가 네크로맨서했습니다.”
안 기자의 목소리는 감탄에 절어 갈라지고 떨리기까지 했는데, 그는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건 채팅창도 마찬가지였다.
[실시간 채팅]
- K.J.Y : 역시! 믿고 있었다고〜!
- 안동숙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박
- 광문반달곰 : 와.... 쩔긴 쩌는데 솔직히 무섭다ㄷㄷ 적이 아닌 게 다행이다 진짜로
- 빙닭러 : 근데 안 기자님? 옆에 유사 문명인께서 언어를 잊으신 것 같습니다???
- 봉담 전 씨 : 역시 중국은 물량 장인 + 대패 장인 오늘도 중국이 중국했다
이렇듯, 채팅창은 감탄과 비아냥으로 범벅이 되고 있었다.
“······자, 이쯤에서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으로 네크로맨서가 또 어떤 충격을 선사할지 모르니, 심장 건강을 위해서 조금 진정할 필요가 있어요.”
안 기자는 히죽 웃으며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자, 웡 씨?”
웡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웡 씨? 방금 전투 어떻게 보셨습니까?”
“······음”
“제가 생각하기에 웡 씨 말씀대로 중국 서버의 황제가 네크로맨서를 대항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그에 따라 많은 카드를 준비했지만, 알고 보니······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아, 그······.”
웡은 말을 얼버무리며 채팅창을 슬쩍 봤다. 당연하게도 웡을 비웃고 조롱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에 안 기자가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진정하세요! 조금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원래 자기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일에 대해서, 바보 취급받지 않으려고 거창하게 부풀리는 법입니다. 동네 시냇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더라도 제 딴에는 급류의 계곡물에서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거라고요!”
“······.”
“저는 웡 씨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다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자, 웡 씨, 걱정하지 마시고 본인 의견 열심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안 기자가 웡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하는 듯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속절 없이 비죽비죽 치솟았다.
“하하! 자 다시 해설로 돌아가서······ 어?”
그때였다. 공식 채널의 화면이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세계수 진영의 본진, 성벽 쪽이었다.
“뭐, 뭐야, 벌써?”
그런데 그 잠깐 사이, 결계가 무너졌다.
* * *
이 게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이템이 존재하며 플레이어에 의해 새로이 제작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예상 밖의 아이템을 활용하여 상대의 허를 찌르는 상황이 꽤 자주 연출되곤 했다.
그런 점에서 특별한 재료를 바탕으로 유용한 기능을 가진 아이템을 제작하는 기술, 일명 ‘마법 공학’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었다.
한편, 성벽 부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공방전은 마법 공학 기술 간의 정면 승부나 다름없었다.
“마나 공급이 부족하다! ‘장막 분쇄기’에 새로운 마나 탱크를 연결해!”
일명 ‘장막 분쇄기’라고 불리는 공성 병기 아이템은 중국군의 히든카드 중 하나였다.
무한궤도로 굴러가는 그 거대한 전차는 긴 원통형의 포구에서 주황색 광선을 쏘아내며, 마치 산소 절단기처럼 결계를 갈라버리는 중이었다.
지이이이이!
그 장비에는 방어막 붕괴에 효과적인 ’마나 역류’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
즉, 수백 대의 공성 병기로 무작정 두드려대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한편, 세계수 진영 쪽은 이를 막기 위하여 비행선 7척을 결계 근처에 전진 배치했다.
역시나 마법 공학의 산물인 ‘비행선’과 ‘철갑 캐논’을 이용하여 공중 포격을 가했지만······.
“방어막 전개!”
그 정도 저항이야 이미 예측된 바였기에 충분한 방비가 되어 있었다.
구—구—구—궁—
장막 분쇄기 위로 무려 4중의 방어막이 펼쳐지며 포격을 빈틈없이 방어해냈다.
그런데 그건 평범한 대규모 방어막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법사 십여 명이 펼치는 대규모 방어막 따위가 함대의 포격을 방어 낼 수는 없었다.
“마나 완전 소비! 방어막 배터리 교체!”
그러자 전사 계열의 덩치들이 거대한 녹색 통을 들고 뛰어들어와, 레이더처럼 생긴 원형 장치에 연결했다.
녹색 통의 비밀은 포로로 사로잡은 마법사들을 마치 사육하듯 구류하여 마나를 쥐어 짜낸 뒤, 물리적인 통안 에 응축시켜둔 것이었다.
즉 일종의 마나 배터리였다.
“충전 완료!”
이렇게 할 경우, 현장에서 다수 마법사가 직접 공급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할 수 있을뿐더러, 강제로 뽑아서 정제한 마나가 훨씬 질이 좋기도 했다.
“역시 ‘구야자’ 아이템은 믿을만하군! 계속 진행한다!”
한국 서버 측에 ‘세계수 공방’과 미국에서 지원 나온 ‘허스트 공방’이 있다면 중국에는 ‘구야자 시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구야자 시설은 3333명의 프리스트를 갈아 넣은 ‘백광성구’를 만드는 등, 중국 서버 측의 다양한 마법 공학 무기를 제작하는 황제 직속 기관이었다.
쩡! 쩌一엉!
두 차례의 파열음과 함께 세계수 진영의 결계 일부분이 유리창처럼 무너져 내렸다.
“됐다! 뚫렸다!”
그렇게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며 다수의 병력이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발생하자 중국군의 ‘창 제대’가 진격을 시작했다.
“전군! 전진하라!”
강철 골렘들이 선두로 진입했다. 그것들 역시 몸에 방어막 발생 장치를 달고 포격을 버티면서 나아가, 거대한 공성 병기를 개인 화기처럼 들어 올렸다.
투—웅! 투—웅!
전격 마법이 담긴 철창이 비행선의 하부 갑판 쪽으로 날아갔다.
텅! 텅! 텅!
물론, 비행선 역시 단단한 방어막으로 보호받고 있기에 단숨에 격추되는 일은 없었다.
“젠장!”
그런데도 함교는 비상이었다. 결계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뚫렸다는 것 자체가 최악의 상황이었다.
“전 함대, 일제 사격 준비!”
전진 배치되어 있던 7대의 비행선이, 모든 캐논에 마나를 공급하여 포신을 달구었다. 그리고 일제히 발포했다.
콰—과—과—과—광!
수십 개의 캐논이 작열하며 결계의 구멍 근처를 초토화했다.
일대의 건물이 무너지고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지만, 마법 공학이 집중된 중국군의 선발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쿵— 쿵— 쿵— 쿵—
벌써 강철 골렘 27마리가 결계 내부로 침투하여 비행선을 격추하기 위한 대형 공성 병기를 설치하고 있었다.
“함장님! 이 자리에서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함대 지휘를 맡은 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견제하며 후퇴한다!”
결국, 함대는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성벽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는 게 최선이었다.
그때였다.
“다수의 적 병력 결계 안으로 침투 중! 어, 엄청나게 빠릅니다!”
관측 승무원의 보고에 인호는 고개를 돌렸다. 결계에 난 구멍 다수의 말들이 달려 들어왔다. 약 천여 마리, 기마대였다.
“······나, 난다!”
그런데 그것들은 구멍을 통과한 뒤,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살펴도 날개 같은 건 없었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나 있는 것처럼, 발을 굴리며 비행선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놈들, 그 몽골 놈들이다!”
리웨이가 경고했었던 몽골 서버 랭킹 1위와 그 휘하의 기마대 6케시크(Kesh ig)’였는데, 예상대로 연합 함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놈들은 방어막을 무시할 수 있으니 선체가 무방비로 노출되고 만다! 전속력 후퇴!”
엔진이 최대 출력을 발휘하며 선체가 뒤흔들렸다.
“적의 접근이 너무 빠릅니다!”
기마대는 순식간에 비행선 주변을 포위했다. 그리고 리웨이가 말했던 것처럼, 일시적으로 몸이 반투명해지는 ‘영혼 상태’가 되며 방어막을 안으로 침투했다.
쾅! 쾅 쾅!
그리고 각종 폭탄과 스킬을 퍼부어 선체에 심각한 손상을 준 뒤, 빠르게 빠져나갔다.
“11번 함, 추락합니다!”
특히나 가장 뒤쪽에 있던 11번 함은 다수의 공격에 노출되어 순식간에 대파되고 말았다.
“이어서 9번 함, 좌측 엔진에 심각한 손상 발생한 것 같습니다! 중심을 잃고 항로 이탈합니다!”
“제, 젠장······.”
막대한 함대를 보유한 연합 함대였지만, 막상 저런 작고 빠른 공격에 맞수를 둘만한 기동 병력은 없었다. 마치 공격기의 공격에 노출된 전함처럼 무력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럴 때를 대비한 작전이 존재했다.
“······왔다!”
그 말에 갑판병과 함교 승무원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높은 고도 허공에 누군가 우뚝 서 있었다.
“발키리가 도착했다!”
적의 화살 제대를 잡기 위한 아군의 화살 제대가 ‘순간 이동’ 기능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녀의 주변, 몇 마리의 케시크 기마병들이 피를 흘리며 추락하고 있었다.
“저 여자를 죽여!”
어디선가 우렁찬 고함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케시크 기마대 일부가 지수를 향해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발키리의 등 뒤로 20명의 에인헤랴르가 마치 불꽃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쓸어버려요.”
지수의 한 마디와 함께 20명의 에인헤랴르가 앞으로 튕겨 나갔다.
촤— 아— 아—
그 격돌의 순간, 케시크 기마병 30명이 추락했다. 2초 뒤, 에인헤랴르는 어느새 지수의 등 뒤로 복귀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튕겨 나가며 또 한 번 수십 명의 적을 도륙했다. 빠르고 강력했다.
“저, 저게 뭐야!”
“너무 빠르다!”
기동력 하나만큼은 중국군 내에서도 최고 수준인 케시크 기마대였지만, 그 들은 눈앞의 상대가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 그리고 재빨리 그녀의 주변에서 벗어나 멀리 흩어졌다.
그 덕분에 세계수 진영의 함대가 난전 밖으로 벗어나, 성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후퇴했다.
“전부 비켜!”
그때, 케시크 기마대 사이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이내 좌우로 갈라지며 누군가 나왔다.
말이 작아 보일 만큼 덩치 큰 사내였는데, 그의 어깨 위에 솔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흠······.”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지수를 올려다 보았다. 아무래도 그가 바로 몽골 서버의 랭킹 1위로 보였다.
그는 말을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별안간 안장에 매달려 있던 창을 꺼내어 지수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부—웅!
맨손으로 집어 던졌음에도, 그 충격에 공기가 찢어지며 돌풍이 일었다. 주변에 있던 말들이 울부짖으며 좌우로 흩어졌다.
‘빠르다.’
이쑤시개처럼 아주 작게 보이던 그 창끝이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해졌다.
‘하지만 나보단 아니야.’
지수는 허공을 걷듯 움직여, 아주 자연스레 피해냈다.
“오, 어떻게?”
적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수는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괜찮네.”
이렇게 간단하게 피할 수 있던 건 성우가 선물한 ‘탈라리아(헤르메스의 신발)’ 덕분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탈라리아(헤르메스의 신발)
- 등급 : 신화
- 분류 : 신발
- 효과 : 민첩성 수치 상승(+10), 체력 수치 상승(+2), 이동 속도 상승(+200%), 비행 속도 상승(+300%) 일시적으로 ‘기체화 상태’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 10분)
그렇지 않아도 굉장히 빠른 지수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었다.
적장이 지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칼 한 자루를 꺼냈다.
파지지지!
칼날을 따라 전기가 흐르며 스파크가 튀었다.
“그래, 누군지 알겠다. 네년이 바로 그, 이 땅의 유명한 칼잡이 계집이구나? 으흐흐! 맘에 들었어! 전쟁이 끝나면 너를 나한테 달라고 해야겠다.”
적장은 그렇게 무식한 엄포를 두었지만, 쉽사리 달려들 수 없었다.
후우우—
그렇게 잠깐의 대치가 이루어지며 일대의 공기를 스산하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서로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결판을 지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중요한 순간을 뒤로하고 공식 채널의 카메라가 전혀 다른 곳을 향했다.
이렇게 갑자기 화면이 바뀐다는 건, 더욱 중요한 장면이 나타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군 정지! 진입을 멈춰라!”
어느새 더욱 넓어진 결계의 구멍 근처, 진입하던 중국군 병력이 멈춰 서더니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리 장군이 헐레 벌떡 뛰어들어오더니 구멍에서 조금 떨어진 곳, 흙 바닥 위에 넙죽 엎드렸다.
“······.”
잠시 후, 구멍 근처의 모든 병력이 바닥에 엎드리며, 구멍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이 거친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후우우우—
어느새 단 한 사람이 구멍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차가운 표정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작은 궤를 하나 들고 있었다.
그녀는 결계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와, 붉은 천이 깔린 바닥 위에 궤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콰과과과과!
궤가 열리며 돌풍이 몰아쳤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이들은 날아가지 않기 위하여 온몸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저벅一 저벅一
그리고 그 돌풍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후우우우一
아주 키가 큰 사람이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불투명한 방어막이 그의 온몸을 둘러 싸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어렴풋한 형체만 알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월드의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폐하!”
중국 서버 랭킹 1위, 황제가 직접 나타났다.
* * *
“······서, 설마?”
고요한 스튜디오 안으로 안 기자가 긴장한 목소리 울렸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웡이 아주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황제입니다. 그 사람이 직접 나섰습니다.”
웡은 꽤 심각한 표정을 자아내며 사뭇 진지한 톤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황제 역시 엄청난 군대를 통솔하죠. 아마 이제, 중국 서버를 통일했던 바로 그 군대를 소환할 겁니다. 네크로맨서의 군단 보다 더 위대한······.”
그리고 웡의 말대로 무언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방어막으로 감싸진 황제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무언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건 한 개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았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초공병영(超空兵營)’이 열립니다.
그건 오래된 목재로 만든 것 같은 중국풍의 대문이었다. 그것들이 일제히 열렸다.
부우우우一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군단이었다. 백 명도, 천 명도, 만 명도 아닌, 그 이상의 대규모 군단이 문을 열고 나와 전장의 하늘을 시커멓게 메워 나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말도······ 안 돼.”
“허허······.”
안 기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웡 역시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안 기자와 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한국 서버 여러분, 제가 드린 말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부디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정말로 소신껏 말씀드렸던 겁니다.”
웡은 여전히 그 고집을 꺾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안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이제 시작이죠. 웡 씨, 카메라 말고 화면 보시죠. 다시 화면이 바뀌었습니다.”
화면은 어느새 다른 곳을 비추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화면이 바뀐다는 건, 더욱 중요한 장면이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 안에는 암녹색의 로브를 입고, 머리 뒤에 아우라를 띄운 자, 네크로맨서가 우뚝 서 있었다.
“이쪽도 군단이 왔습니다.”
네크로맨서와 그의 군단이 어느새 성벽 근처에 와 있었다.
“그럼······.”
안 기자는 클라이맥스가 왔다는 걸 직감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 전쟁······ 그리고 아시아 전체의 운명, 더 나아가 사실상 월드의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두 거대한 파도가 서로를 향해 몰아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