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92화 (192/244)

# 192

64) 죽음에 대한 완벽한 통제 - 1

백광성구(白光聖球)가 허공에 나타나는 순간, 성우 역시 불길함을 느꼈다.

’신성 마법?’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죽음 마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신성 마법’이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불길에 한 줌의 물을 끼얹어봤자 증발하여 날아가듯, 네크로맨서의 힘이 워낙 강대하기에 어설픈 신성 마법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저건······ 다르다. 차원이 다른 존재다. 역시 제대로 준비해온 거야.’

- 신성한 힘으로 ‘죽음의 권능’이 제한받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우는 언데드 군단과의 정신적인 연결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 당신의 권속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직후, 이 상황을 눈치챈 지수가 급히 나타났다. 그리고 백광성구를 향해 일격을 날렸지만······.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보통 방어력이 아니야. 저 정도라면 세계수의 결계보다 두껍다. 아? 잠깐만······.‘

세계수의 결계, 바로 그 지점에서 성우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완성 상태의 세계수에 구멍을 뚫을 만큼 강력한 무기라면······.‘

성우에게 그런 게 하나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천근궁(干斤弓)

- 등급 : 신화

- 분류 : 활

- 효과 :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당길 수 없다. (사용 조건 : 근력 수치 100 이상)

시위를 당길 때 자동으로 화살이 생성되며 타격 지점에 ‘해의 추락’ 스킬이 발동된다.

+ 해의 추락 : 타격 지점 근방에 광범위한 폭발·화염 마법을 일으킨다. 일대를 초토화할 수 있기에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재사용 대기 : 10일)

+ 신살자(神殺者) : 천근살(千斤) 을 시위에 걸고 발사할 시 발동한다. 적중 대상의 모든 방어 효과를 무시하며 가공할만한 파괴를 일으킨다. (재 사용 대기 : 10일)

’오랫동안 계륵처럼 생각했던 천근궁, 드디어 쓸 때가 왔다.’

그동안은 근력 수치가 100이 넘지 않아 당길 수 없었다. 하지만 마굴 공략 이후에 달라졌다.

레드 드래곤, 아스켈론, 발뭉 같은 다양한 아이템을 얻었는데, 발뭉 같은 ‘지배자의 검’의 경우 성우가 직접 소지 하지 않고 권속이 지니고 있더라도 ‘각인’ 상태가 유지되어 능력치 상승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두 번째 신격인 염라의 권능을 쓸 수 있게 되어서 모든 능력치가 10이나 상승했다.’

여기에 반격을 통해 얻은 ’역습’ 버프로,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2만큼 상승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로써, 현재는 능력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였다.

[플레이어 프로필]

- 이름 : 유성우

- 레벨 : 25

- 직업 : 네크로맨서, 흑마법사

- 능력 : 근력(44+66), 민첩성(31十66), 체력(37+74)

- 보유 골드 : 1,938,500,412

* 각인된 아이템 : 헬파이어 갑주, 발뭉, 아스칼론, 지배자의 검

성우는 그 모든 능력치 상승을 몸에 두른 채, 신화 등급의 아이템 천궁근(千斤弓)을 들어 올렸다.

‘천근살을 써야 하나‘?’

아이템 설명에 따르면 화살을 걸지 않은 채 당기더라도 자동으로 ‘마법 화살’이 생성된다.

다만, 단 한 발뿐인 ‘천근살’을 건다면 ‘신살자(神殺者)’라는 세트 아이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건······ 아직이다.’

첫 번째 한 방은 그냥 당긴다. 만일 이 한 방으로도 부족할 때, 그때 천근살을 쓰면 된다. 천근살은 단 한 발밖에 없기에 신중히 사용해야만 했다.

그런 마음으로 천근궁을 들어 올려 저 멀리 떠 있는 백색의 구체를 겨누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얹어, 은빛으로 빛나는 시위를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 당신은 천근궁(千斤弓)을 당길 수 있습니다.

숨을 마시고, 멈추고, 어깨를 당겨 잡아당겼다.

기기기기!

엄청난 장력이었다. 질기고 단단했다. 근력 수치가 무려 110에 달하는 성우였음에도 당기는 게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쿠구구구······.

그리고 단순히 물리적인 반동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이 신화 등급의 아이템에서 엄청난 마나가 터져 나오며, 일대에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잡아 당겨지는 걸 넘어,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심지어 심장과 폐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일대의 모든 걸 짓누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느껴졌다.

쩌저저저저一

그 엄청난 힘에 바닥에 균열이 일어날 때쯤, 성우는 시위를 끝까지 당길 수 있었다.

— ‘무형살(無刑)’이 생성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줌통과 시위 사이에 백색의 마법 화살이 떠올랐다.

치지지지지!

그것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거칠게 뒤엉키며 날카로운 모양새로 다듬어졌다.

‘······지금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성우는 힘겹게 쥐고 있던 고삐를 놓아, 그 압도적인 힘을 자유로이 풀어주었다.

쩌— 어— 어— 엉!

굉음, 사출과 동시에 음속을 돌파하며 소닉붐이 일었다. 성우의 몸이 뒤로 4미터가량 밀려나고, 주변의 뼈 무더기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바닥이 움푹 내려앉았다. 살의 비행 궤도를 따라 공간이 일그러지며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마치 로켓이 날아가는 것 같은 폭음과 함께, 허공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윽!”

“추, 추락한다!”

인근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학, 태감과 금의위의 관료들은 그 폭풍에 휩쓸려 균형을 잃었고 이내 바닥으로 추락했다.

살은 백광성구를 향해 직행했다. 이내 그것의 주변에 두꺼운 방어막이 떠 올랐다.

퍽一

하지만 아주 담백한 소리와 함께, 아주 가벼이 구멍이 뚫렸다.

백색의 보호막은 안쪽으로 우그러졌다. 다음은 본체였다.

텅一

역시나, 금속 외벽이 종잇장처럼 뚫렸다.

콰과과과!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형살은 그 모든 걸 헤집어 버린 뒤, 반대 외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바닥으로 추락한 태감은 목이 꺾인 학을 밀어내며, 절규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구구구구구一

이내 그 거대하고 값비싼 물체가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그 아래 모여 있던 중국군의 방패 진영은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수만 명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방진은 그렇게 와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해의 추락’이 발동됩니다.

엄청난 속도로 모든 걸 뚫어버렸던 무형살이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직후, 형태를 잃고 하나의 점으로 뭉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점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핵분열 같았다.

“······아?”

“피, 피해!”

하지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중에서 시작된 거대한 폭발이 도망치는 중국군을 강하게 짓누르고, 휩쓸고, 불태웠다.

콰과과과과과一

마치 종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중국군이 화염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갈 때······.

덜그럭! 덜그럭!

힘을 잃고 무너졌던 언데드 군단은 다시 일어섰다. 하물며······.

- 심연 속에서 ‘종말의 군단(죄수 부대)’이 소환됩니다.

많아 봐야 삼백 정도라고 예상되었던 네크로맨서의 군단이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재로 변한 세상 위로 뼈 부딪치는 소리가 몰려왔다.

덜그럭! 덜그럭!

1차 전쟁 때 부산에서 벌어졌던 일이 재현되고 있었다.

* * *

세계수 진영의 결계 앞에서 공성을 준비하고 있던 ‘창 제대’에 비보가 전해졌다.

“······뭐? 대체 어떻게?”

광교호수공원 쪽, 방패 제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창 제대의 지휘를 맡은 ‘리 장군’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야!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놈의 병력이 죄다 뼛조각이 되어 나뒹군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그, 그게······.”

네크로맨서가 단 한 방의 화살로 백광성구를 박살 내고, 방패 제대의 방진을 박살 냈다는 걸······ 직접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

부관은 결국 핸드폰을 내밀어 공식 채널의 방송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화면에 나오고 있는 곳은 분명 광교호수공원이었다.

“다, 단 몇분 만에 이렇게 됐다고?”

그런데 리 장군이 창 제대를 이끌고 출전했을 때와는 전혀다

불타고 있으며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가 와해된 중국군의 방패 제대를 학살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리 장군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걸 느꼈다. 공황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창 제대의 공격은 방패 제대가 버텨주는 한 유효했다.

만일 방패 제대가 무너진 뒤 저 많은 언데드 군단이 후방으로 치고 들어온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장군, 황제 폐하께······ 보고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 장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급히 어디론가 향했다.

“전부 비켜라!”

황제가 있는 곳은 ‘창 제대’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었는데, 다수의 마법사가 항시 대규모 방어막을 전개하고 있었다.

“비켜라! 황제 폐하를 봬야 한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금의위 호위병들을 밀쳐내고 화려한 장식이 달린 거대한 가마 앞에 섰다. 그건 언뜻 봐도 평범한 가마가 아니었다.

말이 끌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이며, 그 크기만 해도 대형 트럭보다 더 클 정도였다. 이 역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마법 공학’의 산물이었다.

“흠, 흠흠······.”

리 장군은 차림새를 이리저리 정돈하더니 가마의 문을 향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소인, 리 장군입니다. 황제 폐하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덜컹!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마의 문이 신경질적으로 열렸는데, 웬 미모의 여인이 한 명 나왔다.

그녀는 말없이 리 장군을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호박색을 띠더니 뱀의 눈동자처럼 세로로 찢어지는 게 아닌가?

-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신체 기능이 위축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4)

리 장군은 그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알몸으로 전시된 채 몸 구석구석을 바늘로 꿰뚫리는 기분이었다.

이는 황제를 만나기 위해서 항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지만, 좀처럼 적응 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색을 마친 여인은 말없이 옆으로 물러섰다.

“······.”

리 장군은 여인의 눈치를 보며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궤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앞에 큰절하고 두 손을 배꼽 위에 모은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아주 조심스레 뻗었다. 그리고 손이 닿는 순간······.

- ‘시황제의 고묘(古廟)’에 입장 하셨습니다.

그는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후우우우一

아주 어둡고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짙은 향냄새가 진동했다.

이곳은 검은 돌과 회색 돌로 쌓인 사원 같았는데, 천장이 아주 높았다. 그리고 좌우로 거대한 석상들이 언월도와 도끼 같은 무기를 든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쿠국一 쿠국一

그리고 그것들은 살아있었다. 리 장군이 앞으로 걸어가자,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쿠국一 쿠국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돌이 긁히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리 장군.”

정면, 높은 계단 위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고 리 장군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예! 폐하!”

어둠 속, 붉은색 천으로 가리어진 단상 위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 향이 피어올라 자욱한 연기를 형성하여 신비로움을 더했다.

천으로 가리어져 있음에도, 리 장군은 감히 시선을 정면에 두지 못하며 한참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폐하! 소인이 온 까닭······”

“이미 알고 있다.”

“아, 예!”

대체 어떻게 알고 있을까? 리 장군은 이 사람을 꽤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태감이 아직 살아있다. 가서 전하라. ‘비급’을 써서 어떻게든 버티라고······. 내가 적들의 성을 먼저 함락해야지만, 우리의 계획이 원활히 돌아갈 것이다.”

리 장군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아, 비급! 그,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황제가 베일 너머에서 손짓했다.

- ‘고묘주(古廟主)’의 권능에 의해 강제 퇴장됩니다.

그러자 리 장군은 어느새 비밀스러운 고묘 안이 아니라 거대한 가마 안에 앉아 있었다.

덜컹一

밖에 서 있던 여인이 가마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리 장군은 가마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부관!”

그러자 가마 앞에 서 있던 부관이 뛰어왔다.

“예, 장군!”

“당장 방패 제대에 연락하라! 황제께서 비급을 사용해서 네크로맨서를 막으라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즉시 총공세를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아직 숨겨진 수가 여럿 남아 있었다.

* * *

황제의 명령은 무전기 아이템을 통하여 방패 제대의 지휘관, 태감에게 전달되었다.

“······.”

태감은 그 명령을 듣고 좌절하듯 눈을 질끔 감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눈을 떴다.

덜그럭! 덜그럭!

사방에서 기괴한 소리가 다가왔다. 이미 패색이 짙었다. 수천의 언데드 군단은 무너진 방패 제대를 손쉽게 도륙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언데드가 탄생했다. 넷의 리치는 그 권능을 한없이 발휘했으며, 전장의 한 가운데 피어난 보라색 웅덩이에서 일정 시간마다 좀비들이 기어 나왔다.

하물며······.

쿵— 쿵—

차원이 다른, 가히 압도적인 존재, ‘본 드래곤’은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 그것뿐이다.”

태감은 무언가를 다짐한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2번 비급을 가져오라!”

이내 부하 한 명이 무언가를 들고 왔는데,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낡은 상자였다.

“자! 모두 모이시오!”

태감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살벌한 눈빛으로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부하들은 아연실색이 되어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낡은 상자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기에 두려움에 떠는 것이었다.

“이 비급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100인의 피와 영혼이 필요하오! 황제 폐하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기로 했으니 이미 당신들의 피와 영혼은 당신들의 것이 아니오! 군말 말고 내놓으시오!”

태감은 그렇게 소리치며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손바닥만 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자라의 등껍질에 새겨진 갑골문자였다.

- ‘고대의 주문(알 수 없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불분명한 내용의 메시지가 출력되었지만, 태감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Y를 선택했다.

우우우—

그러자 갑골문자가 시퍼런 빛을 발하더니, 자라의 등껍질이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 명단에 기재된 플레이어를 희생하여 ‘고대의 주문’을 발동합니다.

“······컥!”

“허, 허어!”

부하들이 하나둘 쓰러지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건 태감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태감은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무언가를 찾았다.

“고, 공격 대상······ 지정.”

- 공격 대상이 지정되었습니다.

* 대상 : kor-157

* 목표 : 척살

- ‘와일드 헌트(The Wild Hunt)’가 시작됩니다.

와일드 헌트, 수많은 귀신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람을 사냥한다는 유럽의 전설이었다.

이들이 ‘비기’라고 부르는 이 정체불명의 아이템은 무려 100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대가로 일대의 귀신을 통제하여 공격을 강제할 수 있는 저주였다.

우우우우—

그에 따라, 전장 곳곳에서 망자의 영혼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기에, 모든 영혼이 수거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추락한 백광성구에서 엄청난 숫자의 귀신이 피어올랐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수증기가 치솟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그래, 우리에 대한 원한을······ 저놈에게 풀어라.”

백광성구의 알려지지 않은 실체는······ 무려 3333명의 프리스트를 죽이고 그들의 영혼을 강력한 저주로 구속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스트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 마법’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홀리 필드’를 조성한 셈이었다

끄아아! 끄아아!

이렇듯, 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구속된 채 혹사당하고 있었으니 짙은 원한을 품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영혼의 색깔부터 달랐는데, 전장에서 죽은 망자의 영혼이 흰색이거나 회색인데 반해 그들은 짙은 검은색을 띠었다.

끄아아! 끄아아!

원혼들은 고대의 마법으로 지정된 목표, 네크로맨서를 향해 거칠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 휘하의 권속들을 모조리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수백 마리의 귀신이 수백 마리의 스켈레톤이 허공으로 끌고 올라가 거칠게 분해했다.

마치 물에 빠진 들짐승을 향해 달려드는 피라냐 떼처럼, 재빠르고 거칠고 무자비했다.

“그래, 아, 아무리······ 네놈이라고 해도······ 저주받은 마, 망령들의 추격을 따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태감은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면서도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다리가 풀리며 무릎을 꿇었지만,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네크로맨서의 최후를 목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 마지막 소망이니, 부, 부디 잔인하게 뒈져라······.“

두 눈이 피눈물로 뒤덮여 시야가 막혔지만, 손가락으로 피를 긁어냈다. 놈의 죽음을 반드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뭐?”

몽롱해지던 정신이 찬물을 끼얹은 듯 맑아졌다. 믿을 수 없었다. 죽기 직전, 환각을 보는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 무, 무슨······.“

촤라라라!

허공에서 보라색 사슬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일대의 모든 원혼을 옭아맸다.

거칠게 날뛰던 원혼들을 사슬에 묶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사슬이 빛을 발하며 엄청난 고통을 선사했다.

끄아아!

하물며 그것들의 목덜미에 족쇄가 채워졌다. 그러자 미쳐 날뛰던 것들이 마치 길들인 늑대처럼 온순해졌다.

“······아.’’

태감은 생명이 꺼져 가는 마지막 순간에, 그를 보았다.

“······.“

언데드 군단과 수백의 원혼 사이에 서 있는 단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를

우우우우—

단지 손을 뻗어 사슬, 원혼, 그 모든 걸 통제하는 한 사내를······.

- 해당 지역에 ‘명계의 율령’이 발령됩니다.

* 모든 원혼을 통제합니다.

당연하게도, 네크로맨서였다.

“······이건 아직 숨겨두려고 했는데.”

성우의 머리 뒤로 녹색의 아우라가 떠올랐다. 그건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 어떤 빛보다 눈이 부셨으며 그 어떤 어둠보다 까마득히 깊었다.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격이 다른 존재임을 증명하는, 설명할 수 없는 고고한 광채였다.

그건 염라(閻邏) 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는 손을 뻗어 전장을 한 차례 훑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바닥을 향한 뒤, 천천히 들어 올렸다.

- 명계의 율령에 따라 망자의 영혼이 징집됩니다.

그러자 엄청난 수의 귀신이, 보라색 사슬에 묶인 채 일어섰다.

“······제대로 모아서 몰아친다.”

그는 이제 망자의 육신과 영혼, 모든 죽음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