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 작가 주) 188화 전쟁 방식 규칙에 오류가 있어서 수정되었습니다. 수정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창 제대 : 총 병력의 70% 미만 선정
2) 방패 제대 : 총 병력의 70% 미만 선정
3) 화살 제대 : 총 병력의 10% 미만 선정
63) 전쟁을 위한 전쟁 - 3
12시간이 지나자 ‘전장 배치’가 시작되었다. 세계수 진영은 본진의 성벽 안 쪽에 그대로 자리 잡았다.
중국군은 그곳으로부터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인 ‘광교호수공원’ 인근에 도착하여 대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지휘관들은 서쪽 성벽의 ‘통제 타워’에 모여 앉아 4개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1개가 공식 채널의 방송을 출력 중이었다.
- [공식 채널 : LIVE] 월드 시즌-9번 (9,896,404명)
“와, 시청자 수가······ 말도 안 되는 데요? 그래도 아직 지구에 이 정도 생존자는 있나 봐요?”
월드 전역이 시청하고 있으니 무려 천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 수가 찍혔다.
여기에 더불어 해적 방송 시청자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 방송 때문에 세계수 진영은 비상이었다.
“지금 우리 쪽 화면이 나가고 있어요!“
방송 내용은 아군이든 적이든 여과없이 시청할 수 있었기에 치명적인 전력 노출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격납고 문은 절대 열지 말라고 다시 공지하세요. 함대 전력 노출하면 안 됩니다. 적들은 아직 모를 거예요.”
이렇듯, 양측의 병력이 ‘공식 채널’의 카메라에 잡히며 그 위세를 세간에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게 총 전력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성우만 하더라도 모든 병력을 ’공허의 안식처’에 숨길 수 있으며 그 외에도 32대에 달하는 ‘연합 함대’ 같은 핵심 전력을 최대한 숨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뭐, 숨기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그렇다는 건, 저게 다가 아니라는 뜻이겠죠.”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느새 화면이 넘어가 중국군의 모습이 방송에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맙소사. 최대한 숨기려고 할 텐데도 저렇게 많다니······ 역시 그 종족 특성 어디 안가나보네?”
화면으로 보이는 건, 광교호수공원 일대를 새카맣게 뒤덮은 채, 마치 벌레 떼처럼 바글바글 끓고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의 모습이었다.
“여러분? 김포에서 출현했던 ‘레드 오크 군단’도 저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요?”
그 장면을 바라보는 모두가 치를 떨었다. 1차 전쟁 때보다 대여섯 배는 많아 보였다.
그리고 한쪽으로 공성 병기들이 정렬 되어 있었으며 그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들이 서 있었다.
“저 거인은 뭐죠? 누가 조종하는 건가?”
경수가 그걸 포착했고 성우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통하여 판단하기에, 그건 ‘강철 골렘’이었다.
악마의 세계수에 들어갔을 때, 드래곤의 뼈가 있는 공동 안에서 저것과 비슷한 본 적 있었다. 그때 리웨이가 그게 강철 골렘이라는 걸 알려줬었다.
“저건 골렘입니다. 아무래도 상당한 등급의 골렘을 다룰 수 있는 직업이 있는 모양입니다.”
“골렘이라······ 일찌감치 처리하지 않으면 성벽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도 있겠는데요?”
강철 골렘은 골렘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했다. 그때 리웨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저건 역시 몽골 쪽 지원군일거야.”
이전에 그녀가 말하길, 몽골 쪽에 모든 종류의 골렘을 다룰 수 있는 ‘골렘 마스터’가 있다고 했었다.
“몽골 쪽 지원이라면 상당히 성가신 놈들이 몇 명 있을 거야. 내 판단으로는······ 아마 그놈들이 ‘화살 제대’를 맡지 않을까 하는데?”
이어서 리웨이가 설명하길, 몽골 서버의 랭킹 1위와 그 휘하의 ‘케시크(K eshig)’라는 기동 부대가 있다고 했다.
“놈들은 거대한 말을 소환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하늘을 날 수 있어. 그리고 어떤 스킬을 사용하면 영혼 상태가 되어 엄청난 속도로 돌격해오는데, 충돌 순간에 방어력을 무시하는 효과가 있던 것 같아.”
아무래도 중국군이 숨기고 있는 전력 중 하나일 것을 추정되었다.
리웨이의 말처럼, 그 정도의 기동력을 가진 부대라면 ’화살 제대’로 편성되어 전장을 들쑤시려고 할 것이었다.
“그런데 방어력 무시라니? 그런 방식의 스킬이라면 함대에 치명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애초에 비행선을 노리고 준비한 카드가 아닐까요?”
조나단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함대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건, 성우에 의해 증명된 바 있었다.
“그렇다면 갑판 쪽 방비를 충원해야겠습니다.”
아군이 많은 카드를 숨기고 있는 만큼, 적 역시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게 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것이었다.
* * *
배치가 완료되자 다시금 12시간이라는 긴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세계수 진영은 그 시간 동안 각각의 제대 별로 전술과 행동 지침을 재확인했다.
“방패 제대 제2팀 작전 브리핑 시작합니다! 모두 집합하세요!”
그중에서도 정훈이 총괄 통솔을 맡은 ‘방패 제대’는 철저한 반복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훈이 단상에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강조합니다! 방패 제대의 경우 전투 시작 10분 뒤부터 행동반경이 제한될 겁니다.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될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초반 포지션이 중요합니다. 자, 모두 다시 한번······.”
그는 주의사항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하물며 분대별로 내용을 반복 숙지하도록 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많은 이들이 공황에 빠지는데, 반복 교육이 그걸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절대 뚫리지 않는다.’
정훈은 다짐했다.
’패배와 실패도 이 정도면 됐어.’
과거, 그는 한국 서버 최고의 영웅으로 불렸지만, 네크로맨서라는 인물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네크로맨서라는 이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 이제 내가 네크로맨서 정도의 활약을 하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내 한계 내에서는 반드시 성공한다.’
그는 이번 전투에는 사활을 걸 생각이었다. 영웅은 못되더라도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우우우우一
한편, 비행선 한 척이 6개의 와이어를 팽팽하게 늘어뜨린 채, 무언가를 옮기고 있었다.
“어? 어어! 조심해! 이번 수성전의 핵심이란 말이야!”
그건 대장장이들과 건축가들이 만든 걸작 ‘수호자의 석상’이었다.
아직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파란 방수 천막을 씌워놓은 상태였다.
“위로! 더 위로!”
석상은 성벽의 가장 높은 곳으로 운반되어 미리 만들어 놓은 받침대 위에 내려앉았다.
철컥一
착지와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대장장 이들이 달려가, 석상의 신발을 받침대 위에 단단히 고정했다.
“자, 수호자의 석상은 전투 시작 직후 꺼낸다!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신경 써!”
이렇듯, 방패 제대는 복잡한 준비 과정을 반복하고 있건만, 정작 ‘화살 제대’와 ‘창 제대’는 조용하기만 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 제대는 성우와 리웨이 단 둘뿐이었으며, 심지어 화살 제대는 지수 혼자였다.
물론 양측 모두 다수의 ‘권속’을 부릴 수 있기에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병력이 배속된 셈이긴 했다.
후우우一
세 사람은 성벽 위에 서서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성우나 지수는 개인의 판단력에 따라 전투가 좌우됨으로, 전투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아, 지수씨.”
그때, 성우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지수를 돌아보았다.
“황제는 저처럼 다수의 권속을 부리는 직업입니다. 당장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게 중국군의 핵심 전력이겠죠.”
지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즉, 황제를 무너뜨리면 대군이 전부 무력화될겁니다.”
암살, 그건 적들이 네크로맨서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없이 시도한 방법이었다. 즉, 황제 공략 방법 역시 비슷할 것이었다.
“쉽진 않겠지만, 제 군대와 황제의 군대가 맞붙을 때, 그 틈을 노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숨통을 끊지는 못하더라도 전열을 뒤흔들기는 충분할 겁니다.”
“그렇게 해볼게요.”
“그래도······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이들은 특별한 작전보다는 잘 싸우는 것, 그 어느 때보다 잘 싸우는 것, 그게 중요했다.
“그리고 리웨이 너는, 상급 정령의 위치를 찾아야 해. 그게 나와 같은 제대에 배속된 이유야. 위치를 찾으면 나한테 말해줘. 최대한 구출할 수 있게 노력할게.”
리웨이는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오늘, 게임 초창기부터 이어진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계속 빚을 졌는데, 정령들을 되찾으면······ 내 진짜 실력을 보여줄게.”
* * *
마지막 대기 시간이 거의 다 흘렀을 무렵, 안 기자의 스튜디오는 무려 19시간째 마라톤 방송 중이었다.
“중국군의 병력은 역시······ 물량, 물량입니다. 엄청납니다. 제 채팅방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아, 그건 아니라고요? 아하하! 전부 여러분이 찾아주신 덕분입니다!”
지난 방송 때, 중국 서버 출신의 웡이 쏟아낸 막말, 그건 예상 밖의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다.
당시 방송 내용은 커뮤니티를 타고 일파만파 퍼지며 이슈 몰이를 했고, 그 결과, 안 기자의 방송을 찾는 시청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될 텐데요. 저는 당연히 우리 한국 서버가 승리하기를 바라지만, 냉정한 판단이 피,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안 기자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화면 밖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채팅창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그, 그래서! 오늘도 문제의 그분을 모셨습니다. 제가 한국 서버 편파라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줄 자칭 이성적인 논객 웡 씨! 어서 오세요!”
안 기자의 소개와 함께 웡이 다시 한번 출연했다. 이번에는 양복 차림에 안경을 쓰고 한 손에 노트까지 들고 나타났다.
“워, 여러분 부디 진정을······.”
[실시간 채팅]
- 살고싶다살수있다 : ???????
- 고시생인생의끝 : 아뭔데또나와 착짱죽짱;;;
- 안산협객 : 이걸 짱개코인을 탄다고?
- 이민형33 : 이건 진짜 아닙니다.
- 강현주 : 타이완넘버원!! 티베프리!!!!
- 울산 강준 : 지금까지 잘 봤습니다. ㅅㄱ
- 67세 박헌중 : 기자양반.양친께서.화교인가.
채팅창에서 분노가 들끓었지만, 확실한 건 안 기자의 방송이 유례없이 흥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자극적인 건 먹힌다. 이대로 논란을 만들면 시청자 수가 계속 늘어날거야. 이건 기회다.’
안 기자는 카메라 오퍼레이터로서 ‘전용 퀘스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자 수는 그의 성장에 아주 큰 동력원이므로 웡이라는 이슈를 놓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채팅창은 비난으로 들끓었지만, 시청자 수는 계속 증가 추세였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해설 중계를 시작하겠습니다!”
안 기자는 두 눈 끔쩍 안 하고 진행을 이어갔다.
* * *
-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되었다.
“작전대로 움직여!”
성벽의 방패 제대는 정훈에 의해 철저히 교육받은 대로, 마치 기계처럼 움직였다.
“대형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보고 하라! 10분 안에 수정해야만 한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며 엄청난 돌풍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우우우一
연합 함대였다. 무려 32대의 연합 함대가 발진하여 성벽 인근 상공으로 치솟았다.
“다시 봐도 엄청나군······.”
그 장면이 방송을 통해 중계되자 월드의 플레이어들을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어느 서버도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었다. 심지어 멸망 전, 현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그때, 정훈이 소리쳤다.
“세계가 보고 있다! 우리는 오늘, 세계에 우리의 힘을 알린다!”
* * *
한편, 중국군의 ‘창 제대’는 일찌감치 광교호수공원을 벗어나 세계수 진영의 본진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척一 척一 척一 척一
수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엄청난 크기의 세계수가 보였는데, 어느새 그 그늘에 들어온 상태였다.
“저 나무는······ 아름다운 건지 끔찍한건지 모르겠어.”
세계수의 영험한 자태는 이들에게 불길함을 품게 했다.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진흙 발을 디민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지 말고, 나무를 보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 어차피 우리가 베어 넘길 나무다!”
창 제대는 전 병력의 60%에 달했기에 무려 6만이 넘는 숫자였다.
6만 명의 발걸음이 도심을 뒤흔들어 대니, 없던 용기도 치솟을 판이었다.
척— 척— 척— 척—
하물며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성벽을 파괴하기 위하여 수많은 무기를 숨기고 있었다.
“장군 성이 보입니다!”
어느새 목표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라! 놈들의 창 제대와 화살 제대가 매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걸 의심해라! 워낙 정신 나간 방법을 쓰는 놈이다!”
대규모 폭발에 전멸하고 하늘에서 빌딩을 떨어뜨리고······ 네크로맨서가 기상천외한 공격을 해온다는 건, 지난 패배로 익힌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더욱더 신중했다. 함정이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하여, 투시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로 구성된 척후 부대 동원,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는 중이었다.
“장군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아군의 방패 제대 쪽에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말에 장군은 피식 웃었다. 안심되는 한편 승기가 굳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역시 네크로맨서가 창을 자처한 건가? 그렇다면······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 꼴을 면치 못하겠군?”
방패 제대에는 네크로맨서를 잡기 위한 완벽한 계획이 숨겨져 있었다.
* * *
덜그럭! 덜그럭!
네크로맨서의 군대가 광교호수공원근처에 등장했다. 중국 측 예상대로 수백 정도에 그치는 병력이었다.
반면 광교호수공원 주변의 모든 건물을 밀어버린 채, 밀집 방진을 구사하고 있는 중국군의 ‘방패 제대’는 무려 3만에 이르렀다.
“음······.”
이곳의 지휘를 맡은 태감은 거대한 학의 등에 올라 네크로맨서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약 서른 마리의 학이 따라 왔는데, 금의위의 상급 관료들이 타고 있었다.
“고작 저 정도 병력이라면, 구태여 백광성구 꺼낼 필요도 없어 보인다만······.”
그는 고개를 돌려 제 휘하의 관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기세를 꺾기 위해서 꺼내야겠지 않소?”
태감의 물음에 기술부장이 옆으로 날아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아니, 기세가 아니라 놈의 머리를 꺾은 한 수가 될 겁니다!”
그 말에 태감을 낄낄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좋소! 시작하시오!”
그러자 기술부장이 품속에서 신호탄을 꺼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발포했다.
텅!
신호탄이 허공에서 터지며 붉은 연기를 흩뿌렸다. 직후, 방패 제대 쪽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
“자, 이제! 해골 군주의 몰락이 시작 됩니다!”
태감과 관료들은 고개를 돌려 방패 제대 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방패 제대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구구구구一
그리고 허공에서 일렁거림이 번져나가더니, 무언가 형체를 드러냈다.
거대한 백색 공, 백광성구가 바로 그 곳에 은신 상태로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다.
후우우우一
그것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량의 백색 빛이 방출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신성한 힘’이 해당지역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일명 ‘홀리 필드’가 조성된 것이었다. 그 빛줄기는 주변 모든 곳을 빈틈없이 메우며 넘실넘실 흘러갔다.
그리고 네크로맨서의 군단을 덮쳤다.
“······.”
태감과 관료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은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었다.
“으흐흐! 저 봐라! 저!”
“태풍 앞의 볏단 같은 꼴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그 자리에, 언데드 군단은 없었다.
* * *
거대한 백색 공, 백광성구가 등장했다.
“······저게 뭐, 뭐죠?”
안 기자는 당황했고 웡은 슬며시 웃었다. 웡 역시 저 거대한 구체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자신이 주장한 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어?”
백색 빛이 번져나갔다. 성스러움이 한껏 느껴지는 그 파동은 언뜻 보더라도 네크로맨서에게 좋지 않아 보였다.
쩌저저저一
아니나 다를까, 중국군의 방패 제대를 향해 진격하던 수백의 언데드 군단이 제 자리에 멈춰 서더니, 마치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어떤 데미지가 들어간 것도 아니건만, 정말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뼈 무더기 사이에 단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암녹색 로브를 입은 남자, 네크로맨서였다.
“······.”
그 역시 당황했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바닥을 내려다보기를 반복했는데, 어딘가 초라하고 비참하게만 느껴졌다.
안 기자의 스튜디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안 기자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지, 지금······ 이게,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군단이······ 완벽하게 무력화된 것 같습니다.”
안 기자는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물을 한 모금 삼킨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지, 진짜 큰일입니다. 저 빛을 내뿜는 구체가 원인인것 같은데, 언데드를 부릴 수 없는 이상 저걸 파괴할 방법도 없을 겁니다. 이거 완전······ 당했습니다.”
반면 웡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그는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더니 안 기자를 바라보았다.
“기자님, 제가 강조했던 거기억하십니까?”
그 말에 안 기자는 인상을 팍 구겼지만, 어떻게든 표정관리를 하고는 돌아 보았다.
“강조요? 모든 단어에 강조가 담겨서 기억이 잘······.”
웡은 안경을 치켜세웠다.
“황제가 네크로맨서를 압도적으로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게 바로 방비라고 말씀드렸죠?”
“······아아.”
“중국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손무의 손자에 나오는 말인데,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합니다. 아마 중국의 가르침······ 아니, 중국에게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에도 이 말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이게 두 영웅의 차이입니다. 두 영웅 모두 한 세계를 대표하는 맹장이었지만, 결국은 누가 더 똑똑한가 싸움이죠. 천하는 똑똑한 자가 취하는 법이고요. 언데드는······ 보통 무식하지 않습니까?”
그는 피식 웃더니, 이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지금까지 네크로맨서의 약점이 신성 마법인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걸 완벽한 방법으로 재현해 내는 게 문제였다면서, 그걸 해내는 게 하나 된 중국의 힘이라고······.
“······잠시만요!”
그때, 안 기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두 눈을 큼직하게 뜨고 화면을 향해 목을 뺐다.
“아! 발키리입니다! 발키리가 허공에 나타났습니다!”
어느새 화면은 파란 하늘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단 한 사람, 지수가 떠올라 있었다.
“발키리가! 그녀가 활 제대입니다! 그녀가 순간 이동 기술로 나타난 겁니다! 네크로맨서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 기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고 웡이 눈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발키리의 칼날에 푸른 불꽃이 감돌았다. 그건 모두가 익히 아는 기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기술이었다.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과과과!
수십 개의 푸른 칼날이 뿜어져 나와, 백성광구를 향해 맹렬하게 쏟아졌다.
“갑니다! 이 한 방이 전세를······ 어······.”
안 기자의 표정이 굳었다. 백성광구의 주변에서 두꺼운 방어막이 떠올랐다.
궁— 궁— 궁—
발키리의 일격은 그 방어막에 부딪히는 순간, 너무나 허무하게 증발하고 말았다.
안 기자 뻣뻣하게 굳었고 채팅창도 얼어붙었다. 웡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보세요. 제가 말씀드렸죠? 지피지기는 백전불태, 황제와 그 측근들은 네크로맨서뿐만 아니라, 그 부하들의 수준까지 이미 낱낱이 파악하고 있다는겁니다.”
웡은 물병을 집어 들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드 군대가 없는 네크로맨서는 뭐죠? 그냥 마법사도 아니고······ 아, 시체인가? 으하하! 그냥 시체? 퍽 어울리는 말 아닙니까?”
그때, 안 기자가 손바닥을 뻗어 웡의 입을 막았다.
“잠시만요? 잠시, 입 좀 닫아주실래요? 아, 죄송합니다. 근데 잠시 입 좀······.”
“······예? 또 뭡니까?”
웡은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한껏 찌푸렸지만,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무너진 군단, 삐 무더기 위, 홀로 서 있는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여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그는······ 웬 활한 자루를 당기고 있었다.
“······뭐? 고작 화살?”
웡은 비웃었지만, 이내 자신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쿠구구구구—
네크로맨서가 활의 시위를 당기는 순간, 엄청난 진동이 일며 그가 딛고 서 있던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쿠구구구구—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 바닥이 무너졌다. 일대에 건물들이 내려앉았다.
중국군의 방패 제대 방진이 뒤흔들렸다. 광풍이 일며 공식 채널의 드론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위가 놓였다.
“······.”
스튜디오는 고요했고 채팅창은 멈춰섰다. 모두가 이어지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그리고 모든 게 끝났을 때, 안 기자는 슬며시 웃으며 웡을 바라보았다.
“······웡 씨, 아까 지피지기 백전불태 어쩌고 중국 관용구를 알려주셨죠? 저도 하나 말씀드리는데······ 관용구는 아니지만,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웡이 떨떠름한 얼굴로 안 기자를 바라보았다.
““······.”인생은 실전이야 좆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