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61) 마굴 탈출, 중국 정벌 준비 - 3
마굴 탈출 직전, 검은 사자가 포탈 너머에서 어떤 기운을 느꼈다. 그가 말하길, 악마의 세계수에서 마주했던 ’마굴 제2군단장’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월드 이터가 소멸했음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물이 있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특정 퀘스트에 결부된 존재는 시스템상 원활한 퀘스트 진행을 위하여 보존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끝난 게임입니다. 빠르게 종지부를 찍죠.”
성우는 ‘본 드래곤’을 소환하여 포탈을 통과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상황은 단숨에 정리되었다.
‘마굴 공략이 끝났다. 그리고 이제 다시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플레이어들의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을 때, 성우는 다른 생각 중이었다.
그는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선 채, 오래된 메시지를 하나 띄웠다.
- 한국 서버 측에 ‘전쟁 상대(중국 서버)’에 대한 ‘반격의 기회(주도권)’이 주어집니다.
* 반격을 선택할 시 주도권을 가지고 ‘전장’과 ‘종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 서버 마스터의 권한으로 ‘종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추가 보상 없이 전쟁이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즉시 중국 서버에 대한 ’반격’을 결정했다. 그러자 전 세계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한국 서버’가 ‘중국 1서버’에 선전 포고(반격)했습니다.
* 이 전쟁은 ‘공식 채널-9’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열렬히 환호하던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레 침묵했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모든 아군에게 ‘역습’ 효과가 부여 됩니다.
* 모든 능력치 상승(+3)
* 이동 속도 상승(+10%)
-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에 ‘전쟁 방식(전장·종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 23:59:59)
“······후, 다시 시작이야.”
“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잖아?”
멸망으로 치닫는 시대, 전쟁의 끝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걸,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 드론이 하나 생성되었다. 그건 일명 ‘공식 채널’의 방송용 드론이었다.
위잉一
드론은 본 드래곤 위에 올라타 있는 성우를 찍기 시작했다. 전쟁이 재개되면서 방송도 다시 시작된 것이다.
평소 같으면 관심도 없었을 성우지만, 지금은 그 드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국서버를 대표하여, 이 방송을 보고 있을 월드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전한다.”
마굴과 달리,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세계에 전할 말이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네크로맨서의 목소리에 전 세계가 집중할 것이었다.
“게임의 모습을 한 이 정체불명의 현상이 우리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이후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이제······ 그 끝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숱한 플레이어들이 이 게임의 진실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끝’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 게임이 얼마나 지속할 거라고 보는가?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떤 모습일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월드의 플레이어 대부분은 오늘을 살기 위해 이 게임에 대한 의문을 접은 상태다.
각 서버를 지배하는 권력들은 그 오래된 의문을 되새겨 보기도 하겠지만, 성우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무지했다. 그리고 무지함은 무력함이기도 했다.
“······나는 알고 있다.”
성우는 아주 짧게 자신의 남다른 위치를 표현했다. 단순히 무력이 강한 게 아니라 이 게임의 근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우리의 세계가 최악 중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건, 어떻게서든 그 최악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성우는 마굴의 진실을 목격하고 깨달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엔딩을 막아야만 한다.
쿠구구구一
그때, 본 드래곤이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공식 채널의 드론이 그에 따라 고도를 높였다.
그러자 이곳, 오름에 배치된 세계수 진영의 함대와 병력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 잡혔다.
그 중심, ‘네크로맨서’라는 명성이 ‘본 드래곤’이라는 압도적인 위용 위에서 더욱더 고고하게 도드라졌다.
“그를 위해서 나는 중국 서버의 침략자들을 처리한 이후, 우리 세계수 진영을 중심으로 범세계적인 조직, 일종의 세계 통제 기구를 발족할 예정이다.”
엔딩을 막기 위해서는 하나 된 강력한 조직이 필요했다. 그 어떤 배드 엔딩이 몰아치더라도, 끝내 버텨낼 수 있 는, 단 하나의 완성된 힘이 필요했다.
“미리 경고한다. 그 조직은 모두에게 자비롭지 않을 거다.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놈들을 과감하게 걸러내는 작업을 시작할 테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모든 서버의 모든 플레이어는 부디······.”
성우는 그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말을 멈췄다. 짧은 침묵은 이 장면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또한, 지켜보는 이들의 집중력을 한충 끌어올리며, 뒤이어질 발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무의식 속에 각인시켰다.
성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명한 선택을 내리길 바란다.”
성우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마지막 말이 핵심이었다. 앞으로 세계수 진영과 함께하던지, 아니면 적이 되어 무너지던지,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걸 전 세계에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마디의 무게감을 위해서 새로 얻은 전력인 ‘본 드래곤’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중국 서버와의 전쟁을 위해서 숨기는 것보다 이렇게 이용하는 게, 미래에는 더 큰 이익이 될 거다.’
본 드래곤 위에 올라탄 네크로맨서의 이미지는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아우라가 될 테니 말이다.
‘견고한 이미지를 완성하려면 일종의 숙성 단계가 필요하다.’
지금 이 연설을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꽤 오랜 시간 맴돌 것이다.
그리고 성우가 중국 서버의 황제를 꺾는 순간, 세계는 자연스레 성우의 주장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메시지가 이미지가 되는 과정이다.
“······워, 선배!”
성우가 본 드래곤의 등에 내려오자 한호가 달려왔다.
“갑자기 뭐예요? 방금 순간 시청자 수가 18만 명이었어요.”
한국 서버와 중국 서버의 전쟁은 월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벤트였기에, 전쟁 메시지와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가 몰린 것이었다.
하물며 그 18만 명의 시청자는 각자의 서버에서 소란을 일으키며 성우의 목소리를 모두에게 전할 것이었다.
이렇게, 네크로맨서는 중국 서버에 대한 전쟁 선포와 함께, 전 세계 모든 플레이어 대한 시험을 내렸다.
* * *
잠시 후, 마굴의 문이 닫혔다. 이제 저쪽 세계와의 연결점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었다.
“자! 돌아갈 준비를 합시다!”
경수의 주도로 전후 수습이 시작되었다.
“사망자는 총 98명, 대부분 추락한 4번 함에서 발생했습니다.”
마굴 공략 도중 적지 않은 플레이어가 사망했지만, 적의 수준을 고려했을 땐 양호한 피해였다.
하물며 마굴 탐사에 나선 메신저호의 승무원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작전 성공이었다.
“반파된 4번 함 견인 준비하고, 4번 함 내부의 물자들은 5번 함으로 옮깁시다.”
모든 물자와 병력을 비행선에 실었고 한쪽에서는 수원 마을로 이어지는 ‘하이퍼 게이트’를 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저기, 네크로맨서?”
그때, 리웨이가 성우를 찾아왔다.
“솔직히 마굴에서 진짜 대단했어. 내가 어디서 이렇게 들러리가 될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전에 말했듯 나는 내 정령들을 찾기 위해서 널 찾아온 거지만, 이제는 그런 조건 없이 도울게.”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웨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당연히 환영이었다.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춰 보았으니 더욱 믿음직했다.
“아, 그리고 중국 2서버에 아직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들이 도우러 올 거야.”
한 서버의 수장인 만큼, 그녀의 합류는 다수의 동맹군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리웨이가 이어서 말하길, 자신의 말이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줄 이들이 천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세계수 진영에 온전히 합류하게 된 건 리웨이뿐만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 우리도 계속 돕겠다.”
리웨이의 뒤로 백색 늑대와 검은 사자가 다가왔다.
“지금처럼, 필요할 때 우리를 찾아오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항상 함께하며 우리의 모든 능력을 쏟겠다.”
“그래. 우리가 지은 죄가 크니, 앞으로 두고두고 조금이라도 청산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이 둘이 합류한다는 것 역시, 수백에 달하는 수인 동맹을 얻는 셈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제주도의 플레이어들 역시 네크로맨서와 세계수 진영이라는 구세주들의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저, 혹시 저희도 데려가 주실 수 있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와 제 가족들을 거둬주세요······.”
지민이 데려온 제주도의 플레이어 중 일부는 이 불안한 땅에서 벗어나, 세계수 진영에 합류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의 요청은 경수 선에서 정리되었다.
“죄송하지만, 당장은 추가 인원을 받을 여유가 안 됩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어서 말이죠. 다만,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물자 지원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수는 리웨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성우를 슬쩍 바라보았다가, 그가 할법한 말을 했다.
“저희는 구호 집단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수준을 확보하신 뒤, 여러분의 가치를 입증하셔야 합니다. 즉, 누군가에게 짐이 아니라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이 되셔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저희가 함께하자고 제안 할 겁니다.”
제주도의 플레이어들은 다소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역시 지옥 같은 곳, 봉쇄된 제주도에서 꿋꿋이 버텨낸 이들이었다. 세계수 진영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단단해진 이들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언젠가 상호 도움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경수는 그들에게 비상 연락망을 제공하고 적지 않은 양의 물자를 남겨주기로 했다.
하물며 ‘구미호 숭배자’들이 모아둔 다량의 물자도 노획했으니, 그걸 기반으로 한동안은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편, 지민은 이제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동생, 지수를 어색하게 마주 보고 있다가 쭈뼛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지수야, 애월 쪽 안전 구역에 가족들이 살아 있어. 돌아오는 건······ 어때?”
지수 스스로 결정하여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가족들이었지만, 정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지민만 하더라도 지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는 고민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돌아갈 생각 없어. 그리고 아직 돌아갈 때도 아니야.”
지민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앞으로의 전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게 느꼈어. 그래서 이 싸움에서 피하자고는 말 못하겠다.”
지민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이, 아버지가 대단하게 생각할 거야. 아니, 그 이상이야. 이런 말 좀 오글거릴지도 모르지만, 넌 영웅이 됐잖아?”
“······.”
“그래서 더 걱정이다. 부디······ 죽지 마. 집에 와서 잘난 척 한 번은 해야지?”
지민은 이어서 무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지수의 등 뒤에서 확성기를 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퍼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곧 출항합니다!”
지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마침내 세계수의 진영으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 * *
세계수 함대는 마을로 귀환하여 재정비에 들어갔다. 성우 역시 마굴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정리했다.
마굴 공략의 성과는 대단했다. 다른 월드의 고 레벨 장비를 잔뜩 주워왔으니, 그 어느 때보다 압도적인 보상을 얻은듯했다.
“성우씨, 미국 쪽 연락입니다.”
그때, 경수가 찾아와 미국 서버의 W·P·U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들도 방송을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밀려 있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다른 서버인 데다가 태평양 너머에 존재하는 W·P·U지만, 실시간으로 연락을 할수있었다.
한때 그들 소유였던 비행선에 원격 통신 장치가 탑재되어 있었고 그걸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얘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나 본데, 미국 3개 서버 물론이거니와 캐나다 서버와 알래스카 서버까지 평화를 위한 전략적 동맹 관계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서버 모두가 우리, 세계수 진영의 승리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역시 러브 의장의 통솔력은 남달랐다. 월드 시즌 이후 전 세계가 전쟁으로 들끓고 있음에도 앵글로아메리카 전역을 평화의 끈으로 묶어냈다.
물론 그건,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상호 우호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던 지역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멕시코 서버와는 소통조차 안 되고 있으니······.
“그런데 안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멕시코 서버에서 넘어오는 카르텔의 공격은 여전한데, 그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중남미의 카르텔에서 기인한 도적 집단이 멕시코 서버를 장악하고 미국 서버를 심심찮게 약탈해댄다는 건, 성우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 소식은 사뭇 달랐다.
“음, 조나단이 보낸 첨언에 따르면······ 여러 정황상, 놈들이 드래곤의 수하가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아, 카르텔이 아마존의 드래곤을 숭배한다는 겁니까?”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메시지를 메모한 종이를 들어 올렸다.
“음, 그러니까······ 남미 쪽에 심어둔 첩보원이 전해주길, 드래곤이 남미를 초토화하고 휴면에 들어갔는데, 그 이후로 해당 지역에 드래곤 숭배자가 될 수 있는 지역 퀘스트가 발행되었답니다. 참나, 이게 무슨······.”
경수의 표정은 어두워졌으나 성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지능을 가진 몬스터가 플레이어를 부하로 삼는 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당장 제주도만 봐도 그랬다.
“그런 극단적인 목적을 가진 집단이 생겨나는 걸 막기 위해서 ‘통제 기구’가 필요한 겁니다.”
성우가 앞서 방송으로 공표한 ‘통제 기구’가 필요한 이유는 ‘드래곤’ 같은 강력한 몬스터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은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를 관리하기 위함이 더 컸다.
‘우리의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존재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몬스터가 아니다. 사실상 우리 자신이다.’
비록 몬스터에게 무력하게 당한 서버가 있을지언정, 대부분은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찾았다.
그러자 잘못된 목적을 가진 강자들이 탄생했다. 일명 ‘타락자’ 월드 이터의 서버 역시 그런 플레이어에 의해 멸망을 겪었다.
’우리 서버에도 여럿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닥터, 황제 등······ 그런 놈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올 거다.’
즉, 가장 큰 원흉은 플레이어 그 자체였다. 그것들을 뿌리째 뽑고 새싹부터 짓이기는 게, 이 세계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아, 경수 씨, 지금 세계수 근처에 접근 금지를 내려주세요.”
“······무슨 일로?”
성우는 품속에서 ‘세계수의 정기’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큰 힘을 얻기 위해선, 모든 자원을 남김없이 활용해야만 했다.
그중 가장 큰 자원은 역시 세계수였다.
“어쩌면 세계수가 급격히 커질 수 있거든요.”
이걸 세계수에 가져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아직 알 수 없었다만, 어쨌든 근처에 누군가 있는 건 위험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끙— 끙—
성우의 발아래에 웅크려 자고 있던 미르가 낑낑거리더니 별안간 부르르 떨어대는 게 아닌가?
“응? 왜 그래? 어디 아파?”
성우는 미르를 들어 올렸다. 녀석은 몸을꿈틀거리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는······.
끄— 륵—
“······트, 트림?”
거하게 트림을 했다.
- ’블랙 드래곤(헤츨링)’이 영험한 물건을 완전히 흡수했습니다.
얼마 전에 삼켰던 ‘여우 구슬’을 완전히 흡수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그런데 녀석의 눈동자가 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붉은 눈동자였거늘, 여우 구슬을 흡수함과 동시에 황금색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 ‘블랙 드래곤(해츨링)’이 당신에게서 물려받은 스킬을 응용하여 ‘새로운 스킬’를 창조합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세계안(世界眼)
- 등급 : 특수
- 분류 : 패시브/액티브
- 소모 : 없음
세계를 꿰뚫어 보는 눈을 얻습니다. 또한,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탐험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손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 통달의 지도 : 일정 지역(20km)의 모든 지형지물을 표시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가 표시되는 소형 지도를 만듭니다. 이 지도는 20분 후 소멸합니다. (재사용 대기 : 1시간)
+ 미로 무력화 : 일정 반경 내의(300m) ‘숨겨진 공간’을 포착해내며 절대 등급 이상의 ‘함정’과 ‘봉인’을 쉽게 해제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 30 분)
“······이건?”
세계안(世界眼), 리웨이가 말한 ‘세계의 눈’이라는 스킬이 바로 이것이었다.
’정령왕 정도나 되어야 쓸 수 있는 스킬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 작은 헤츨링이 얻었다니? 아무리 여우 구슬을 삼켰다고 해도······.
아니다. 오히려 헤츨링, 즉 드래곤의 새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 종족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가능할까?
‘그나저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이 있다.’
세계안은 단순히 ‘미니맵(Mini-Map)’ 같은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나아감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모든 걸 없애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스킬이었다.
끙! 끙!
그렇게 메시지를 읽고 있는데, 품에 안겨 있던 미르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왜 그래?”
품에서 나가려고 하기에 그냥 놓아주니, 녀석은 날개를 펼치고 방 끝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그 구석에 놓여 있는 상자, 정확히는 세계수의 정기 옆에서 한호가 발견했던 봉인된 상자 앞에 내려앉았다.
킁— 킁—
그리고는 관심을 보이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저거, 마굴에서 들고 온 상자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체 왜 갑자기 저거에 관심을 가진······.
철컥!
- 봉인이 해제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어, 뭐야?”
“지금 쟤가, 저걸 연겁니까?”
“그러게요······.“
둘 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안의 미로 무력화 스킬로 1등급의 봉인을 풀어버린 거다. 그런데······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라고?’
성우는 상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뚜껑이 열린 상자 위에 손을, 아주 천천히 얹었다.
그 순간······.
-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 입장합니다.
성우의 눈앞에 엄청난 공간이 펼쳐졌다. 반투명한 상태로, 성우의 사무실과 겹쳐졌다.
“뭐가 보이십니까?”
경수의 물음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황색으로 이글거리는 공간이었는데, 한쪽에 거대한 화로와 모루가 있었고 좌우로 수많은 아이템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우는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월드 이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월드 이터가 수호자의 전당, 그곳의 천장을 확인하라고 한 건, 세계수의 정기 때문이 아니었어.”
멸망한 서버의 유산이 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