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61) 마굴 탈출, 중국 정벌 준비 - 1
월드 이터는 마굴의 심장이었다. 그렇기에 월드 이터의 죽음은 마굴의 붕괴와 직결되었으며 중국 서버, 베이징에 열려 있던 마굴의 문 역시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어? 뭐야?”
마굴의 문을 지키고 있던 관리 요원들이 즉시 이상 증세를 포착했다.
“여기! 이것 좀 봐! 포, 포탈이 수축 하는데?”
한국 서버의 공격을 대비하여 항시 개방 상태를 유지해왔던 마굴의 문이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며 오그라들기 시작한것이다.
“설마 저거 닫히는 건가?”
“뭐? 그, 그러면 안 되잖아?”
이 현상은 곧장 베이징 방어와 행정을 총괄하는 ‘수도 전략 통제부’에 보고되었다.
“그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최고의 전략 무기에 이상이 생긴 셈이었기에 관리를 도맡고 있던 수도 전략 통제부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당연했다.
그때, 추가 보고가 들어왔다.
“통제부장님! 방금 제3동에서 들어 온 보고인데 2개소가 완전히 닫혔고 나머지도 곧 닫힐 것 같다고 합니다!”
통제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니까 그게 왜 닫히냐고! 황제께서 항시 개방 상태를 유지 있어야 한다고 명하신, 아주 중대한 일이란 걸 모르는 거냐?”
“그, 그게 그건 저희도 잘······ 그동안 경비 임무만 맡고 있었기에 기술적인 문제는 잘······.”
사실 통제부장 역시 이 조직의 우두머리인 만큼, 마굴의 문이 다히는 이유를 규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후······ 그래, 이건 오직 황제 폐하만이 알고 계실 거다. 당장 금의위 태감께 급히 연락을 드려라.”
마굴과 연락할 수 있는 건 오직 ‘황제’뿐이었다. 마굴의 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황제 역시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망할······ 그 끔찍한 구멍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렇게 통제부장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금의위의 책임자인 ‘태감’이 전략 통제부를 찾아왔다. 예상하지 못한 방문에 통제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아! 태, 태감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태감은 키가 작은 중년 남자였다. 그는 통제부장의 사무실을 한 차례 쭉 둘러보더니 다소 늦게 인사를 받았다.
“통제부장 선생, 늦은 시간이 고생이 많소.”
통제부장은 허리를 굽히며 벌벌 기었다.
“이거, 제가 직접 보고를 드려야 했는데, 현장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황제의 친위부대인 ‘금의위’의 장(長)인 ‘태감(太監)’은 싱 장군이 전사한 이후 실질적인 이인자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왜 직접? 까딱하면 이자 한테 죽는다.’
사실 싱 장군이 건재할 당시에도 황제의 최측근 심복으로서, 황제의 눈과 귀 역할을 해왔다.
그런 만큼, 중국 제국의 플레이어들은 태감의 입김이 황제의 또 다른 입이나 다름없었다고 여겨왔다.
“어차피 폐하께서 현장을 확인하라고 명하셨소. 그것 때문에 나온 것이니 염려 마시오.”
“아, 예! 곧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통제부장은 태감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황제가 분노하여 이 일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면, 그의 표정에 무언가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저, 어른······ 그럼 역시······ 이 현상, 황제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소. 저쪽 세계와 연락이 끊긴 모양인데, 황제께서도 분명한 원인이 무엇인지 고심하고 계시오.”
다행히도 현장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통제부장은 안심 했다만, 사뭇 놀라듯 눈을 치켜 떴다.
“대체 왜······ 아니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앞으로 다가올 오랑캐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한, 가장 주요한 전략 병기였는데······.”
그때, 태감이 통제부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통제부장은 화들짝 놀랐는 데 태감은 달래듯 어깨를 툭툭 쳤다.
“통제부장 선생, 걱정하지 마시오. 마굴의 문은 구우일모(九牛一毛)였을 뿐, 나머지 아홉 개는 전부 유효하니, 우리의 힘만으로도 적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오.”
“태감 어른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놓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겁니까?”
그렇게 재차 묻자, 어깨 위, 태감의 손에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언짢음이 절로 느껴졌다.
“우리 금의위 첩보대는 거의 모든 정보를 취하고 있다는 걸, 선생도 잘 알지 않소? 우리가 네크로맨서의 전력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으니 내 이렇게 호언 장담할 수 있는 거요.”
“아! 물론입니다! 제가 무지했습니다!”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 직속 부대의 정보였다. 그리고 태감의 얼굴에는 평소보다 진한 여유가 담겨 있었다.
“흠, 우리 첩보대가 한국 정벌 작전을 수립할 때, 싱 장군의 패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모든 걸 설계했다는 걸 들으셨을게요. 물론, 패배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봤고 그렇게 처참하게 질 줄은 몰랐으나······.”
태감의 말처럼, 싱 장군이 대규모 원정대를 이끌고 한국 서버로 출발했을 때, 중국 서버 전역이 때이른 승기에 취한 순간에도, 금의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후속 전쟁을 준비해왔다.
“······어쨌든, 그곳에서의 승패를 떠나, 그 전투를 통하여 한국 서버의 모든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분석했다는 점을, 우리는 중요한 성과라고 보고 있소.”
태감은 통제부장의 어깨에서 손을 떼더니 이번에는 등에 손을 얹고는 창가로 데리고 갔다.
이곳은 베이징의 한가운데 서 있는 고층 빌딩의 펜트하우스였기에 드높은 도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 그자가 부리는 것들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불사의 군대라지만, 겨우 이백 남짓 아니오? 놈이 그동안 성장을 거쳤다고 해도 고작해야 수십 마리의 오차범위 내일테고······.”
태감은 창문 앞에 섰다. 창문에 그의 미소가 비쳤다.
“그 정도 화력으로는 절대로, 이곳, 베이징을 함락할 수는 없소. 그리고······.”
그는 검지를 들어 창밖 어딘가를 가리켰다. 통제부장이 눈을 들어 올렸다.
“결정적으로 저게 있으니 승리를 보장될 거요.”
태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원형 물체가 하나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직시하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신성한 힘’이 해당지역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마치 인공태양처럼 백색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크기가 족히 거대한 원형 경기장만 했지만, 저것 역시 하나의 아이템이었다.
일명 ‘백광성구(白光聖球)’ 신성한 에너지 생산·방출하여 일대에 ‘홀리 필드’를 조성하는 초대형 아이템이었다.
후우우우-
며칠 전부터 베이징 상공에 떠올라 있던 물체였는데, 저렇게 빛을 내는 건 통제부장 역시 처음 봤다.
마굴의 문이 닫힌 이후, 혹시 모를 네크로맨서의 기습에 대비하여 가동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저게 도시 전체를 신성함으로 채워 줄 것이오.”
물론, 신성한 힘이 네크로맨서에게 치명적이라는 건 지금까지 네크로맨서를 상대해온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프리스트는 생각보다 희귀한 직군이었으며,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군단을 박멸할 정도로 강력하고 지속적인 신성 마법을 구사하는 건 웬만한 숫자의 프리스트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륙의 막대한 자원은 그걸 해내고 말았다.
“즉! 저게 있는 한 네크로맨서의 군단은 불사의 힘을 잃을 것이고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이외다.”
통제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조심스레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태감 어른, 제가 잘 모르고 드리는 말씀인데, 네크로맨서가 공격해 온다면 저것부터 부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네크로맨서의 기동력과 변칙적인 화력은 언제나 이변을 만들어냈다. 통제 부장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으흐흐······ 저게 진짜 기가 막히는 건, 유례없이 강력한 방어막으로 보호 받고 있다는 건데, 마법사 1,000명이 함께 펼친 대규모 공격 마법도 거뜬히 버텨냈소. 상상이 가시오? 무려 1,000명이 합작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마법을 막아냈단 말이오!”
“······아?”
“네크로맨서, 그놈 역시 백광성구의 존재를 눈치채고 부수려고 안간힘을 쓰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힘을 낭비하고······ 그렇게, 아주 무력하게 우리한테 잡아 먹히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소?”
태감은 창가에서 홱 돌아서며 말을 이어갔다.
“한국 서버가 그 잘난 네크로맨서를 필두로 하여 쳐들어온다면, 그건······ 몸에 두르고 있는 전리품과 목숨 골드를 조공하는 것에 불과할 거라고, 내 장담하니, 앞으로 지켜보시오.”
태감이 기분 좋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 * *
전투가 끝난 직후, 성우의 눈앞에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성공, 레벨 업, 칭호 등 그리고 그에 따라 보상을 선택하라는 메시지까지······.
‘선택은 조금 뒤로 미뤄야겠군.’
- 60분 뒤 모든 ‘마굴의 문’이 봉쇄됩니다.
당장은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마굴의 심장이 파괴되었고 예정대로 모든 마굴의 문이 닫힐 예정이었다.
“으······.”
“머, 머리가 너무 아파.”
때마침 ‘드래곤 피어’에 의해 경직 상태에 빠졌던 이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성우는 그들이 무방비 상태에 빠진 이후, 일부 언데드를 이용해 구석에서 보호하고 있었기에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었다.
“으아! 지, 진짜 끔찍한 경험이었어요. 가위눌리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한호는 거의 울상이었다. 신격이 없는 한 제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한들 드래곤 피어를 버텨낼 수 없었다.
‘이러면 진짜 드래곤과 싸울 때도 문제다.’
성우는 벌써 걱정이 들었다. 신격이 없는 플레이어들이 예외 없이 드래곤 피어에 무방비 놓이는 거라면, 지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전투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래곤 피어를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다.’
성우 개인의 무력이 동맹 전체의 힘보다 강력하다고 하지만, 세계수 진영과 미국 서버의 전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주 큰 손해였다.
진짜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힘이라도 남김없이 끌어모아도 모자랄 것이었다.
“······끄, 끝났습니까?”
경수가 비틀거리며 다가왔고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이거 아무런 도움도 못 됐네요. 바로 보, 복귀하면 됩니까?”
“아직 챙길 게 좀 남았습니다.”
월드 이터가 ‘수호자의 전당’ 천장을 확인하라고 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에 적의가 있지는 않았다.’
뭐랄까, 마치 자신이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성우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아니면 이 지옥에 영원히 갇힐 수도 있어요.”
탐사대는 정신이 들기도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승리자의 요람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수호자의 전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곳, 수호자의 전당은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어? 캡슐에 불이 꺼졌어요.”
한 대원의 말처럼, 좌우 회랑에 줄지어 놓여 있던 캡슐 장치가 죄다 꺼져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달라진 점은 단 하나, 이곳의 관리자인 ‘월드 이터’의 죽음이었다.
‘월드 이터가 처음에 말하길, 방주를 유지할 수 있게 에너지를 수급해온다고 했던 게 이런 뜻이었나?’
이 멸망한 세계의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아마도 이들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리고 월드 이터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거, 왠지 모르게 안타깝네요. 저 사람들, 다 죽겠죠?”
안면 일식 없는 낯선 땅의 주민들이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도울 수도 없고요. 무엇보다······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살아 숨 쉬던 이들이니까요. 시스템상, 두 세계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일 겁니다.”
성우는 이 지점에서 불길함을 하나 느꼈다.
‘그렇다는 건, 엔딩 이후에도 또 다른 시련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월드 이터 역시 시스템에 놀아난 하나의 말일뿐이었으니······.‘
성우는 이 게임의 끝은 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상에 도달했다.
엔딩을 보더라도 시스템에 구속되어 또 다른 게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었다.
쉽게 말해, 마굴로 활용될 수도 있다.
‘절대로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다.’
그때, 앞서가던 대원 중 한 명이 소리 쳤다.
“저깁니다! 천장 부근에 통로가 있습니다!”
드높은 천장 한가운데에 격자가 달려있었다. 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짝이었다. 성우는 즉시 본 와이번 한 마리를 소환했다.
“한호야 타.”
성우는 딱 한호만 태운 뒤 본 와이번을 비상하게 했다.
“저희는 저 공간을 확인하고 갈 테니, 경수 씨는 먼저 가서 탈출 준비를 서둘러주세요.”
“알겠습니다.”
그저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이니 모두가 함께 갈 필요는 없었다. 또한, 한시라도 빨리 탈출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일을 나누어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본 와이 번이 천장으로 다가가자 한호가 손을 뻗어 문을 열어젖혔고 성우와 한호는 천장 안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긴 복도가 펼쳐졌다.
“어? 이거 함정이 있던 흔적 아니에요?“
복도의 좌우에는 무언가 녹아내린 흔적이 역력했다.
“으······ 젤리 녹은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역겹네.”
“저게 젤리 같다고?”
“곰 젤리 녹은 것 같아요.”
성우가 보기에는 갈기갈기 찢긴 살점 위에 핏물과 고름 등이 뒤섞여 있는 꼴이, 마치 트럭에 짓눌린 짐승의 사체처럼 보였다.
‘화염을 내뿜던 그 역겨운 입술이군?‘
월드 이터의 권능이 소멸함으로써, 월드 이터와 관련된 생명체들이 모두 사멸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복도를 지나, 거대한 철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一
어두운 방이었다. 그런데 그 어둠의 중심에서 밝은 빛이 하나 고고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사각형의 금속 장치 안에 백색의 열매 하나가 두둥실 떠올라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오? 딱 봐도 존귀한 아이템 같은데요?”
성우는 장치를 열고 아주 조심스레, 그 열매를 움켜쥐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정기
- 등급 : 신화
- 분류 : 알수 없음
- 효과 : 알수 없음
- 설명 : 경이로운 힘이 담겨 있다.
‘······정기?’
정기라는 단어는 몇 차례 들어봤다. 대산맥의 왕이 사용하는 ’산의 정기’ 그리고 월드 이터가 노리던 ‘세계의 정기’ 등 어떤 강력한 힘의 정수 같은 걸 의미했다.
악마의 세계수는 아주 오래전에 죽었지만, 죽어서도 강렬한 에너지 덩어리를 남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월드 이터는 어떤 연유에서건, 이게 미래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하고 보관해둔 듯했으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마지막 순간, 적의를 접고 성우에게 넘긴 것이다.
‘어쩌면 세계수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종족 ‘용인(龍人)’으로 나아 가는 ‘신화 퀘스트’가 꽤 오랫동안 지체되고 있었다.
세계수가 완성 단계에 이르는 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건 예상했다만, 이대로라면 몇 달이 더 걸릴 수도 있었기에 빠른 성장을 위한 영양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선배! 선배! 여기 상자요!”
그때, 한호가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검은색의 철제 상자였는데,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뭔가 범상치 않죠? 이런 곳에 있을 정도면 보물 상자 맞겠죠?”
성우는 상자에 손을 얹었다.
- 상자가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 상자에 ‘각인된 존재’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 1등급 이상의 ‘봉인 해제’ 주문이 필요합니다.
* 궁극 등급 이상의4자물쇠 해제’ 스킬이 필요합니다.
꽤 오래전에 공략했던 ‘트롤의 토굴’이라는 대규모 던전 끝에서 마주했던 보물창고와 유사한 봉인이었다.
“음, 열쇠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맞아.”
특수한 마법으로 봉인된 상태이기에 힘으로 뜯을 수는 없었다. ‘만능열쇠’ 같은 아이템이 필요했다.
즉, 지금은 열 수 없었다.
“일단 챙기자.”
그 외에 다른 물건은 없었다. 성우와 한호는 바로 이동하여 왔던 길을 되짚어갔고 이내 메신저호가 대기 중인 구멍 안에 도착했다.
우우우우一
메신저호는 일찌감치 탈출 준비를 끝낸 모양인지, 거대한 구멍 중심에 떠오른 채 엔진을 달구고 있었다.
“성우 씨! 당장 출발할 수 있습니다.”
선루 갑판에서 경수가 소리쳤다. 다행히도 마물에 의한 파손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성우는 급히 메신저호로 향하던 중, 문득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 거대한 구멍을 만든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아직 확인 못 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안쪽 벽의 움푹 파인 곳, 그곳에 무언가 박혀 있는 것 같다고 느꼈지만, 급히 내려가만 했기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었다.
“선배 왜 그래요?”
성우는 좀비 괴조를 소환했다.
“확인할 게 하나 더 있어. 먼저 가서 경수 씨한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해.”
그렇게 말한 뒤, 좀비 괴조에 올라타 급히 비상했다. 그리고 움푹 파인 흔적을 조사했다.
“······역시나.”
그곳의 정 가운데, 아주 얇은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성우는 그 끄트머리를 움켜쥐고 힘을 주어 뽑아냈다.
투— 둑!
[아이템 정보]
- 이름 : 천근살(千斤)
- 등급 : 신화
- 분류 : 화살
- 효과 : 알 수 없음
- 설명 :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단독으로는 사용할 수 없으며 기반이 되는 세트 아이템이 필요하다.
“······이거 설마?”
- ‘세트 아이템(신살자)’이 완성되었습니다.
성우는 이 아이템과 세트가 분명한 ‘천근궁’을 꺼내어 아이템 설명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천근궁(千斤弓)
- 등급 : 신화
- 분류 : 활
- 효과 :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당길 수 없다. (사용 조건 : 근력 수치 100 이상)
시위를 당길 때 자동으로 화살이 생성되며 타격 지점에 ‘해의 추락’ 스킬이 발동된다.
+ 해의 추락 : 타격 지점 근방에 광 범위한 폭발·화염 마법을 일으킨다. 일대를 초토화할 수 있기에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재사용 대기 : 10일)
+ 신살자(神殺者) : 천근살(千斤) 을 시위에 걸고 발사할 시 발동한다. 적중 대상의 모든 방어 효과를 무시하며 가공할만한 파괴를 일으킨다. (재사용 대기 : 10일)
맨 마지막, 미확인이라고 되어 있던 부분에 ‘신살자’라는 새로운 스킬이 열린 상태였다.
‘무려 완성 단계의 세계수에 구멍을 뚫어낸 무기다.’
즉, 당길 수만 있다면, 부수지 못할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