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78화 (178/244)

# 178

59) 제주도, 마굴 공략 - 9

감당할 수 없는 위협과 마주했을 때, 낭만적인 무용담과 달리, 인간의 용기는 촛불처럼 쉽게 꺼져버린다.

제아무리 훈련을 거듭한 전사라고 할지라도, 죽음의 냄새를 맡는 순간 움츠러들게 되며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가 강했다. 그가 이끄는 군단은 그 어떤 상황에도 머뭇거림 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조금도 물러서지 마요!”

그렇다면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어떨까?

“못 나가게 몸으로 막아!”

“쓸어버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자들, 잃을 게 없는 자들, 그렇게 남은 공간을 분노로 가득 채운 전사들은 어딘가 달랐다.

촤— 악!

그들은 언데드 군단의 차가움과 달리 어딘가 처절함과 잔혹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맹렬했다.

“······저, 저 사람들, 우리 대원들이 맞습니까?”

민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 정훈의 휘하에서 성장해온 대원들이었다.

그런데 죽음에서 일어난 이후, 어떤 숙명이라도 깨달은 것처럼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랬었죠. 분명 우리가 알던 그들의 움직임이 맞습니다. 그런데······ 거리낌 없이 움직이네요.”

그들은 전장의 천사, 발키리를 중심으로 마굴의 문을 향해 주저없이 돌격했다.

‘에인해랴르’도 큰 데미지를 입으면 소멸하고 말 테지만,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은바, 개의치 않는 걸까?

“한 놈도 내보내지 마!”

크루세이더 팀이 했던 것처럼 대열을 유지하며 포탈을 틀어막는 게 아니라, 온몸을 내던져 거칠게 몰아붙였다. 저런 끔찍한 괴물들을 상대로 난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부—웅!

반투명한 유령 상태인 만큼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허공으로 치솟아, 홰를 쳐 날아오르는 마물의 몸통에 검을 꽂아 넣기까지 했다.

“어, 엄청나다! 아까도 대박이었지만, 지금은 진짜 압도적이야.”

한 명의 발키리와 스무 명의 에인헤랴르가 3차원 공간 위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포탈을 버겁게 비집고 나오는 마물의 몸통을 갈라 버렸다.

플레이어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경이감을 느꼈다.

“저것 봐. 꼭 한 몸으로 움직이는 것같아.”

“와······ 천사가 수십 장의 날개를 휘두르는 것 같달까?”

에인헤랴르의 반투명한 몸은 지수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수는 그들을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듯 활용할 수 있었다.

그녀에 의지에 따라 탄력적이고 변칙적으로 쏘아져 치명타를 가하고, 위험한 순간에 그녀의 등 뒤로 소환되는 것이었다.

멀리서 지켜본다면, 20개의 빛줄기가 번쩍, 번쩍 점멸하며 포탈을 두드려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촤—악!

그렇게, 마물의 시체가 포탈 아래에 쌓여갔다.

“된다! 놈들이 기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

어느새 전장의 기류가 바뀌었다.

- ‘외부 차원의 존재(중급 마물)’을 사냥하여 8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외부 차원의 존재(중급 마물)’을 사냥하여 8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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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차원의 존재(중급 마물)’을 사냥하여 8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지수의 눈앞에 다량의 메시지가 지속해서 떠올랐다. 혼자 활약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성과였다.

그리고 권속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효율적인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시너지 목록]

3) 신의 병사(2단계)

- 구분 : 속성 시너지

- 조건 : 신격의 ‘지성이 있는 권속’ 20명 이상

- 효과 : 생명력 상승(+70%), 모든상태 이상 면역력 상승(+50%), 생명력의 150%에 해당하는 방어막을 형성한다.

4) 실체가 없는 존재(4단계)

- 구분 : 속성 시너지

- 조건 : ‘영혼 형태’ 20명 이상

- 효과 : 이동속도 상승(+35%),

위와 같은 시너지의 영향으로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포탈에서 튀어나오는 마물을 도륙했다.

지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생의 달라진 모습에, 그리고 계속해서 놀랐던 지민이지만, 매 순간 더욱 강렬한 활약이 이어지자, 이제는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너, 너는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겪어온 거야?”

한편, 인호 역시 전장을 두루 살펴야 함에도 한동안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키리가······ 또 한번 승리를 이끈다. 성우 씨가 그녀를 남겨두고 간 이유가 있었어.”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인호는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빠져나온 놈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발키리를 도와야 합니다!”

이미 빠져나온 수십 마리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플레이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포탈 부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일단 저놈들을 처리하세요!”

포탈에 집중되어 있던 병력을 전방위로 돌리자, 그 정도 숫자야 어렵지 않게 정리되어 갔다.

발키리의 전사들이 마굴이 문을 틀어막고 있는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제 할 일을 충실히 해 낼 수 있었다.

마치, 인식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아서 오류를 일으켰던 기계가 다시금 정밀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됐다! 이제 발키리를 보조합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굴의 문을 철저하게 봉쇄할 시간이었다.

“침착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여!”

어느새 공포로 인한 공황은 사라졌다. 프리스트들이 방어막을 걸어주고 저격수들이 공격을 보조했다. 빙결 계열의 마법사들이 포탈을 비집고 나오는 놈들을 정밀하게 얼려버렸다.

그러자 에인헤랴르의 공격이 훨씬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날뛰며, 한 번의 움직임에 하나의 적을 베어 넘겼다.

- ‘외부 차원의 존재(중급 마물)’을 사냥하여 846,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외부 차원의 존재(중급 마물)’을 사냥하여 821,00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몇 마리나 잡았을까?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22)

또 한 번 레벨이 올랐다. 마굴의 문 2층은 권장 레벨 43의 던전이다. 지수에게는 차고 넘치는 경험치가 들어오는 게 당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용 퀘스트]

- 제목 : 수호자의 자격

- 유형 : 목표 제거

- 목표 : 보스 몬스터 ‘마굴 군단장’을 제거하라

- 보상 : ‘정규 신격(神格)‘직업 변경권’ 중 택1

당신은 이 땅을 침략하는 외부 차원의 마수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로써 ‘수호자’의 자격을 얻을 기회가 부여되었다.

침략 병력의 핵심 개체(보스 몬스터)를 제거한다면, 침략자들에게 강렬한 경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 보스 몬스터 ‘마굴 군단장’은 ‘2차 웨이브’가 끝난 뒤 모습을 드러냅니다.

* 24시간 이내에 목표를 처리하지 못할 시 ‘수호자’ 칭호를 얻을 수 없습니다.

‘······수호자?’

성우가 수호자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건 지수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거창한 칭호는 네크로맨서 정도는 되어야 지닐 수 있는, 까마득히 드높은 것인 줄만 알았다.

‘나도 이제······.‘

아니, 사실 까마득한 수준의 칭호인 건 확실했다. 다만, 지수 역시 이제, 그 정도에 이른 것이다.

* * *

악마의 세계수 안, 성우를 비롯한 탐사대는 꽤 긴 시간을 걸어 내려갔다.

여의도를 통째로 뒤덮을 정도로 압도 적인 부피를 자랑하는 만큼, 그 내부를 질러가기도 쉽지 않았다.

“하······ 계산상, 이제 세계수 줄기의 하단부까지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깊숙이 내려온 듯 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거대한 시설이 있네요.”

시설, 악마의 세계수 내부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다듬어졌다는 건 이미 밝혀진 바였으나, 아래로 내려갈 수록 그 흔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어느 지점부터 벽면을 따라서 계단이 이어졌으며, 벽을 파서 만든,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간이 나오기도 했다.

계단을 따라 또 몇 분을 내려갔을까? 별안간 진한 어둠이 덮쳐왔고 탐사대는 이동을 멈췄다.

“여긴 대체······.”

탐사대가 들고 있는 랜턴의 빛줄기가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빛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우측으로 이어지던 벽과 천장이 끝나고 뻥 뚫린 공간이 나오며 빛 반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빛을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절벽입니다!”

회전 계단의 우측으로 까마득한 나락이 펼쳐졌다.

“거대한 공간이네요.”

악마의 세계수 내부, 하단부에 동공이 파여 있었다. 건너편 벽이 어둠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어림잡아서 웬만한 돔구장보다 더 넓고 더 높아 보였다.

‘나무가 애초에 이렇게 자랄 리가 없다.’

이곳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세계수를 훼손하여 만든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저 아래 타락자들의 시설물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안에 ‘마굴의 심장’이 존재할 것이다.

파지지지一

마법사 한 명이 절벽 아래로 불꽃 마법을 사용했다. 깊이를 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닿기 전에 흩어지고 말았다.

“너무 깊습니다. 가늠이 안 됩니다. 적어도 사오백 미터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오백 미터? 그 정도 높이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성우는 본 와이번 두 마리를 소환했다.

“몇 미터든, 이제 빠르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좁은 땅굴을 탐험하는 것만 같았던 지루한 여정을 빠르게 끝낼 수 있게 됐다.

본 와이번 두 마리는 회전 계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성우는 녀석의 등뒤로 뛰었다.

“자, 모두 올라타세요.”

탐사대는 본 와이번 두 마리에 나눠서 올라타자 그것들은 날개를 펼치며 어둠 안으로 육중한 몸을 밀어 넣었다.

“꼭 잠수정 타고 내려가는 것 같네요.”

경수의 표현대로, 뼈로 만들어진 잠수정을 타고, 검은 바다 안으로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후우우一

함정이 있을지 모르기에 최대한 천천히 하강했다. 승무원들은 본 와이번의 뼈를 붙들고 납작 엎드려서 머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사방을 경계했다.

성우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벽면을 살폈는데, 어느 순간부터 특이한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벽면이 무언가에 의해 난도질 되어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흩어진 세 줄기의 긁힘······ 그건 거대한 짐승의 발톱자국이었다.

‘엄청 큰 짐승이다.’

발톱 하나의 너비가 족히 25센티미터는 될법했다. 와이번의 발톱이 8〜9센티미터인 걸 생각할 때, 와이번보다 몇 배는 더 큰 생명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큰 전투가 있었다. 함정에 빠지지 않은 수호자들이 여기까지 내려와 무언가와 맞선 걸까?’

발톱 자국뿐만 아니라 벽이 파인 곳, 그을린 곳처럼 다량의 공격 마법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발톱의 주인과 다수의 플레이어 간의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

승무원 모두가 그 흔적을 목격했으나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같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런 자국을 낸 존재가 저 아래, 잠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던가?

“판타지 소설 보면······ 이런 거 별로 안 좋은 징조던데?”

한호 역시 불안감을 내비쳤다. 성우는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저 발톱의 주인이 누구일지······.

“바닥이 보입니다!”

두 마리의 본 와이번이 동공의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승무원들이 사방으로 뛰어내리며 랜턴과 무기를 들어 올렸다.

“안전합니다!”

“이쪽도 안전합니다!”

그들은 모든 방향을 점검한 뒤, 성우의 명령을 기다렸다. 성우는 랜턴을 들어 올려 바닥을 한번 쓱 훑었다.

“······이거, 여기서도 한바탕 싸운 모양입니다.”

성우의 랜턴 불빛을 따라 다수의 뼈와 아이템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공성 병기도 여럿 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선배, 이건 골렘 아니에요?”

등 뒤에서 한호가 말했다. 성우와 경수가 고개를 돌렸다.

“마, 맙소사. 더럽게 크네요.”

거대한 물체 여럿이 벽면에 기대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거인의 모습이었다.

표면에 녹이 슨 걸 보아하니 금속 재질이었는데, 마치 멸망한 문명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영웅들의 동상처럼 느껴졌다.

리웨이가 다가와 설명 했다.

“이건 강철 골렘이야. 골렘 중에서도 등급이 있는 놈인데······ 내가 알기로는 몽골 서버에 모든 종류의 골렘을 다룰 수 있는 골렘 마스터가 강철 골렘을 다룬다고 들었어.”

그렇다는 건, 골렘을 다루는 직업 중에서 5성급의 직업이 이곳에서 죽었다는 뜻이 될 것이었다.

‘네크로맨서에 이어서 골렘 마스터라, 이 서버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진 곳인가?’

한국 서버를 잠식한 악마의 세계수, 그게 바로 이 서버의 엔딩이었겠지만, 그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최후의 저항을 벌인 걸까?

끙! 끙!

“응? 왜 그래?”

성우의 품속에 안겨 있던 미르가 별안간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주둥이를 쭉 내밀고 킁킁거렸다. 그쪽으로 날아가려는 듯 날개를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이쪽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방향에서 대원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저쪽에 뭐가 있는 거야?”

끙一

그걸 미르가 먼저 감지한 걸까? 성우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미르가 품속에 뛰어내렸다.

“미르!”

녀석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갔고 성우는 그 뒤를 서둘러 쫓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백색의 바위가 하나 나타났다.

끙— 끄응—

미르가 그 앞에서 애처롭게 끙끙거리고 있었다.

’바위가 아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바위라고 생각했던 것의 표면에 일정한 간격의 균열이 있었다.

‘뼈마디······.‘

그건 거대한 발톱이었다. 무언가를 움켜쥔 모양의 발톱······ 그리고 발톱 안에 다섯 개의 해골이 보였다. 일격에 플레이어 다섯 명을 죽인 흔적이었다.

“성우씨, 이건 설마······.”

경수가 뒤로 다가왔고 성우는 랜턴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발톱에 이어서 거대한 다리뼈가 석조 기둥처럼 우뚝 서 있었다. 너무나 높아, 성우와 경수는 고개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그 너머로 고대의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아치형의 흉골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를 들어 올리자, 마침내 내벽에 기대어진 머리, 두개골이 드러났다.

후우우—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뼈 사이로 움직이며 우울한 소리를 자아냈다.

절벽을 가득 수놓았던, 압도적인 발톱의 주인이 바로 이곳에 누워 있었다.

“드래곤······.”

그래 그건, 분명 드래곤의 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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