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77화 (177/244)

# 177

59) 제주도, 마굴 공략 - 8

성우는 구덩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약 10미터의 깊이였지만, 이 정도는 가뿐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반쯤 잿더미가 된 뼈 무더기가 기분 나쁘게 바스락거렸다. 뼈 자체에 대한 혐오는 아니었다. 이 뼈의 주인이 이 세계의 ‘수호자’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락자가 승리한 결말, 나 역시 앞으로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쩝一 쩝一 쩝一

성우는 고개를 들어 어둠에 반쯤 가려진 벽면을 바라보았다. 끔찍한 입술이 달려 있었다.

총 5개, 그중 3개가 쩝쩝거리는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머지 2개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무언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성우는 그 2개를 노려보았다.

‘······나온다.’

다음 순간, 우물거리는 입술이 둥글게 벌어졌다. 그리고 무언가를 뱉어냈다. 역시나 엄청난 양의 화염이었다.

콰과과과과!

불기둥이 소용돌이치며 구덩이 안을 가득 메웠다. 성우는 고개를 숙이고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뜨끈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 뿐이었다. 압도적인 화염 저항력이 그의 몸을 완벽하게 보호해냈다.

후우우우우一

이내 불기둥이 가셨다. 이제는 5개의 입이 모두 쩝쩝거리고 있었다.

저 행동은 입안에 화염을 모으는 것으로 보였는데, 다음 공격까지는 한참 남았을 것이다.

“머, 멀쩡하잖아? 뭐야 너?”

구덩이 위에서 리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너는 할 수 있는 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거야?”

리웨이이 경악을 담아 물었다. 새삼 박탈감을 느낀 듯했다. 그래도 한 서버의 랭킹 1위로서 황제에 맞섰던 그녀였거늘, 네크로맨서와 함께하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성우는 뼈 무더기를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흑색의 낫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확실하다.’

성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리퍼와 비교해 보았는데, 두 아이템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생김새였다.

’역시 이곳에서 이 세계의 네크로맨서가 죽었다.’

성우는 그것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한 세계에 딱 1개만 존재하는 물건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루트로 얻는다고 해서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여러모로 걱정이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우우우우一

그런데 성우의 손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 물건이 부르르 떨리며 경고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주의! 해당 아이템을 소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 ‘죽음 목도’가 필요합니다.

당연하게도 1차 각성의 요건인 ‘죽음 목도’는 드레이크의 불꽃에 휘말리며 진작에 만족한 상태였다. 성우는 거리낌 없이 그 물건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 경고! ’상충 되는 아이템(그림리퍼)’을 소지하고 있기에 아무런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 해당 아이템을 제거하고 다시 접촉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세계의 물건을 얻을 수 있되, 한 사람이 2개를 지닐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내 권속에게 주면 또 하나의 리치가 탄생하는 건가?’

성우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웨어 울프 스켈레톤’을 소환하여 그림리퍼를 쥐게 한 것이다.

- 경고! ‘대상(웨어 울프 스켈레톤)’ 은 ‘해당 아이템(그림리퍼)’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역시 한 직업군의 ‘각성’을 끌어내는 물건인 만큼, 쉽게 적용이 될 리가 만무했다.

‘그나저나 어떤 수준이 필요하다는 거지?’

생각해보면 ‘〈죽음의 마법사 임명(기초)〉’ 스킬을 사용할 때도 ‘지능이 낮은 대상’은 큰 효율을 발휘할 수 없다고 떴었다.

낮은 수준의 마법사도 그런 제약이 따르는데 고위 죽음 마법사인 ’리치’는 오죽하겠는가? 즉, 지능이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역시 빅터 녀석에게 줘야 하나?’

빅터는 이미 리치 상태에 도달했지만, 플레이어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 출신인 만큼, 성장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녀석에 그림리퍼를 쥐여 준다면, 무한정 부활 마법인 ‘사자의 권역’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2개의 사자의 권역이라니······ 생각만 해도 엄청난 퍼포먼스가 될 것이었다.

‘음, 빅터가 아니면 또 누가 있지?’

다양한 추가 요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테스트해볼 시간이 없었다.

일단은 그림리퍼를 쥔 웨어 울프 스켈레톤을 ‘공허의 안식처’로 복귀시켰다.

“선배! 그, 그 앞에 아이템도 확인해 보세요!”

한호는 직접 내려오지는 못했지만, 구덩이 안으로 목을 내빼고 있었다. 침이 뚝뚝 떨어질 기세였다.

“알았어. 좀 기다려 봐.”

성우는 그림 리퍼를 발견한 곳 근처에서 웬 낡은 책을 한 권 찾아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악령 마법 설명서(뮌헨 핸드북)

- 등급 : 전설

- 종류 : 오브

- 효과 : 소지자의 ‘죽음 계열 마법’ 중 ‘언데드 소환 효과’를 대폭 강화합니다. (단, 죽음 계열 마법이 하나도 없는 자가 함부로 펼쳐본다면 ‘죽음의 저주’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역시 이 세계의 네크로맨서가 소지하고 있던 아이템으로 보였다.

’선대의 유산을 물려받는 기분이군.’

성우가 그 아이템에 손을 대는 순간, 책장이 저절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촤라라一

- 최대 권속 수가 (+15)만큼 증가했습니다.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최대 권속 수가 15나 늘어났다. 엄청난 증가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죽음의 지식을 깨닫습니다.

이어서 페이지 사이에서 보라색 기운이 터져 나오더니 성우의 몸으로 흡수 되었다.

- 〈죽음의 응답(장인)〉 사용 시 ‘주인 없는 좀비’를 (+10)만큼 추가 소환 합니다.

- 〈죽음의 마법사 임명(기초)〉 사용 시 ‘스켈레톤 메이지’를 (+5)만큼 추가 임명할 수 있습니다.

성우는 그 메시지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대박이다.’

여기에 ‘그림자 군단’을 적용한다면, 죽지 않은 병력이 무려 50마리나 증가한 셈으로, 언데드 군단의 전력이 수직으로 상승한 것이었다.

뒤이어 발견한 건 웬 반지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치명적인 손재주

- 등급 : 전설

- 분류 : 반지

- 효과 : 한 손 무기 공격력 상승(+20%), 단검 치명타 확률 증가(+50%), 마나를 주입할 시 ‘달인의 손놀림’이 발동하여 손 움직임이 1분간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300%)

누구에게 필요한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만한 물건이었다. 성우는 반지를 한호에게 던져주었다.

“오! 오오! 저, 전설 등급! 역시 절 챙겨주는 건 선배밖에 없다니까요? 와······ 이거 아빠 드리면 타짜될 수 있겠는데?”

그 외에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몇 가지 발견되었는데, 성우가 쓸만한 건 더 없었다. 성우는 그 아이템을 싹 긁어모아 승무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수호자들이 악마의 세계수를 공격했다면, 여기서 전멸한 건 아닐 거야. 일부는 살아서 전진했다. 그렇다면 더 깊은 곳에 더 많은 아이템이 있을 거다.’

아이템을 대량으로 얻을 기회였다. 놓칠 수 없었다. 아이템은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전력이니 말이다.

그때, 후방에 있던 승무원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

“총무팀장님! 비행선에서 비상 연락이 왔습니다!”

“네? 남아 있던 사람들한테······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성우도 그 대회에 귀를 기울였다.

“그건 아닙니다. 마물들이 들어오긴 왔는데······ 그것들이 갑자기 다시 날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웬 포탈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포탈?

“포탈이라니? 성우 씨, 이게 무슨 뜻일까요?”

간단했다.

“지수 씨가 잘 싸워주길 바라야죠.”

성우는 뼈 무기 제조를 이용하여 구덩이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제조했다.

“······우린 다시 들어가죠.”

그들을 돕는 길은 단 한 개였다. 끝까지 가서 임무를 마치고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 * *

지수는 ‘마굴의 문 수문장’을 두 마리나 처리한 뒤 21레벨에 도달했다.

직후, 지수의 등 뒤에 무언가 내려앉았다. 혜연과 그리핀 태풍이었다.

“언니!”

혜연은 후방에서 명령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지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언니가 이제 랭킹 3위에요! 축하해요!”

핸드폰 화면에는 랭킹 페이지가 띄어져 있었다. 그 말에 지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3위? 지수 네가 3위였어?”

이미 지수의 압도적인 강함을 목격하긴 했다만, 한국 서버 전체를 통틀어 3번째로 레벨이 높다는 건 또 다른 충격이었다.

“아, 방금 된 거야.”

[KOR 서버 랭킹(1페이지)]

1) 한강석 (LV. 25)

2) kor-157 (LV. 24)

3) kor-339 (LV. 21)

4) 영등포 검사 (LV. 20)

5) 최윤 (LV. 18)

마침내 지수가 랭킹 3위에 올랐다.

물론 정훈보다 레벨이 낮았을 때도, 사실상 한강석과 네크로맨서의 뒤를 잇는 최강자로 받아들여지고 있긴 했었다.

“그나저나 성우 씨도 레벨이 오르신 걸 보면, 마굴 안에서 잘 하고 계시나 봅니다.”

인호의 말대로 성우로 24레벨에 도달했다.

“다행이네요.”

이처럼 랭킹 명단을 통해서 생사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양쪽 모두 잘 버틸 수 있다면······.”

그러나 이쯤 되니 걱정을 숨길 수 없었다. 웨이브 2단계에서 무려 마굴의 수문장이 2마리나 나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과연 얼마나 더 끔찍한 게 나올 것이란 말인가?

“이제 또 뭐가 나올지 걱정입니다. 부디 기상천외한 것만 아니면 좋겠네요.”

- 마굴의 문(2층) ‘3차 침공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온다.”

다시 고요가 시작됐다. 2단계에서 처절한 공포를 마주한 뒤, 그 공포가 너무나 쉽게 쓸려 내려가는 걸 느꼈기에,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상당히 모호한 기분이었다.

공포에 질린 상태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사기가 높은 상태도 아니었다.

“······될 대로 되겠지. 우리는 그냥 목숨 걸고 싸우면 돼.”

“좋은 생각이야.”

그렇기에 오히려 담담해진 듯했다.

쿠구구구구一

그러나 그 담담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감정이었다.

“쏴!”

포탈에서 마물이 뿜어져 나왔다.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다. 화살과 마법이 작렬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퍼부어!”

“포화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1차 웨이브가 성공한 것처럼 화력으로 밀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

마물들이 공중으로,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끄에에!

거대한 피막의 날개를 펼친 괴수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예상 밖의 장면이었다.

“제, 젠장! 공중이다! 놈들을 격추해!“

그러나 2차원의 공간을 틀어막는 것과 3차원의 공간을 틀어막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건 땅 위로 흐르는 시냇물을 막는 것과 공기 중으로 퍼지는 연기를 차단하는 것 정도의 차이였다.

펑! 펑! 펑! 펑!

땅 위로 집중되던 세계수 진영의 막강한 화력이, 공중으로, 몇 배의 달하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에 따라 명중률 감소, 단일 개체에 대한 데미지 저하가 발생했다. 그건 놈들을 밀어낼 ‘저지력’이 상실되었다는 뜻이었다.

겨우 십여 초 만에 수십 마리가 빠져 나와 새장을 탈출한 새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노, 놈들이 온다! 어떻게든 떨어뜨려!”

“맞추기가 쉽지 않아!”

그것들이 포화 밖으로 벗어나, 머리위로 정신없이 날아다니다가, 거칠게 달려들었다.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놈들이 행하고 있는 건 탈출이 아니라, 사냥이었다.

끄에에! 끄에에!

그것들은 비행선의 방어막에 달라붙어 거대한 발톱을 휘둘러댔다. 갑판 위의 병력은 기겁하며 그것들을 떼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부는 지상의 병력을 향해 급하강하며 발톱을 들어 올렸다. 수십 센티에 이르는 단단한 칼날, 그 흉측한 것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단숨에 수십명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었다.

“대규모 방어막 전개!”

다행히도 프리스트들이 대비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방어막이 펼쳐지며 첫 번째 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계속 버텨내는 건 불가능했다.

지지지지!

“마, 말도 안 돼! 대규모 방어막이 저렇게 쉽게 찢어진다고?”

상상 이상의 공격력이었다. 다량의 마나를 소모하여 전개한 방어막이지만, 단 몇 분도 버티지 못할 듯 싶었다.

“어, 어쩌지! 뭘 어떻게 해야 해!”

“일단 뭐라도 쏴!”

당황은 이성적인 대응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큰 싸움에 익숙해진 세계수 진영이었지만, 압도적인 공세에 전의를 잃고 말았다. 이대로면 순식간에 전멸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돌격!”

어디선가 다소 황당한 명령이 내려왔다.

“마굴의 문을 향해 돌격하라!”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저기로 간다고? 최후의 발악인 걸까?

“화력이 아니라 입구 근처를 막는다!

그렇게 소리친 건 크루세이더 커맨더, 정훈이었다. 그는 방패와 대검을 들고 폭격이 난무하는 곳, 마굴의 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돌격하라!”

그리고 정훈의 뒤로 백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뒤따랐다. 크루세이더 팀 전원이 다소 무모한 돌격을 시작한 것이다.

“······아?”

경수는 그들의 의도를 대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서둘러 긴급 명령을 내렸다.

“지상 사격 중지! 공중에 집중한다! 문 근처, 지상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하라!”

3차원으로 퍼져나가는 적의 침투를 2차원으로 강제할 방법이 있었다.

‘그래, 놈들이 튀어나와 하늘로 흩어지기 전에 저 평면의 포탈을 틀어막으면 된다.’

이미 백여 마리가 튀어나와 활개를 치고 있지만, 후속 공습을 차단한다면 승기가 있었다.

‘비록 캐논과 마법사의 화력은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몸으로 틀어막는 게 더 적은 희생이 될 거다.’

경수는 즉시 후속 명령을 내렸다.

“프리스트 부대! 크루세이더 팀을 지원해야 합니다! 문으로 전진하세요! 그들이 쓰러지지 않게 만드세요!”

경수의 명령에 프리스트 부대가 크루세이더 팀의 뒤를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경수는 비행선 한 대를 움직여 프리스트 부대의 머리 위로 바짝 따라 붙였다. 일종의 가림막을 형성하여 마물의 공격을 최대한 차단한 것이다.

이내, 크루세이더 팀이 마굴의 문 앞에 도착했다. 정훈이 방패를 바닥에 내리꽂고 대검을 들어 올렸다.

“크루세이더 팀! 대열을 갖춰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백색의 빛이 번 져 나왔다. 그것은 크루세이더 대원들 의 몸 안으로 스며 들어갔더니, 그들의 몸 주변에 피어올랐던 금빛 보호막을 한층 두껍게 했다.

“방패 대형!”

“방패 대형!”

여기저기서 복명복창이 이루어지며 마굴의 문을 반원형으로 틀어막았다.

촤—악!

정훈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물 한 마리를 베어 넘겼다. 지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는 한국 서버 랭킹 4위의 강자였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쏴라!”

이내 크루세이더 팀의 사수들이 캐논의 총구를 들어 올려 백색의 광선을 발사했다.

콰一 과과과과!

“날개를 노린다!”

그 광선은 포탈을 비집고 나오는 마물의 날개, 피막을 집중적으로 찢었다.

끄에에!

날개가 찢긴 마물은 제대로 날지 못하거나 바닥으로 추락했다.

푹! 푹! 푹!

그런 놈들을 향해 대검이 내리꽂혔다. 특유의 질긴 생명력 때문에 대여섯 번을 내리쳐야 했지만, 가장 효율적인 사냥 방법이었다.

“잡았다!”

“오른쪽 위에서 4마리가 튀어나온다 ! 사격 준비!”

정훈의, 크루세이더 팀의 대응은 꽤 성공적이었다. 포위망을 벗어나 하늘로 비상하는 마물의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크루세이더 팀이 나머지 공세를 모두 받아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생각보다 무리였다.

“커맨더! 바, 방어막이!”

“······컥!”

결국, 그토록 단단했던 방어막이 깨지고 한둘씩 쓰러졌다. 마물의 공격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잘 단련된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안돼!”

방패가 튕겨 나가고 갑옷이 찢겼다. 누군가는 마물의 발톱이 붙잡혀 허공으로 끌려갔다.

“으아아!”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크루세이더 팀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백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한 명, 한 명, 줄어들 때마다 확연한 전력 감소가 나타났다.

그렇게 전열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세 마리가 동시에 스쳐 지나가며 발톱을 휘저었다. 방어막 안으로 그 흉기가 파고들어, 대원들의 머리를 과일 따듯 손쉽게 뜯어버렸다.

“수, 숙여!“

촤아아아아!

피가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마치 누군가 양동이째 뿌린 것만 같았다. 깜짝할 사이에 11명이 고꾸라졌다.

“커맨더! 이대로면 우린 전멸입니다!“

“······.“

정훈의 눈빛에도 좌절감이 번져나갔다. 분명 옳은 판단이었지만,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공백을 따라, 십여 마리의 마물이 포위망을 벗어났다. 저것들을 보냄으로써 후방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속출할 것······.

그때, 번뜩임과 동시에 11마리의 마물이 허공에서 고꾸라졌다. 이내 사분 오열되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턱—

그리고 정훈의 옆으로 지수가 내려섰다. 이어서 그녀의 등 뒤로 두 마리의 영혼이 나타났다.

“아, 지수 씨······.“

마법사 부대를 공격하는 마물을 처리하던 지수가 이곳에 당도했다.

“······힘들겁니다.”

그녀는 분명 압도적인 강자였지만, 그녀가 이 대열에 함께 한다고 한들, 포탈 전체를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신경 쓸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좁았다. 그러나 전장은 너무나 넓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수가 정훈의 눈을 바라보았다.

“용감한 사람들이 쓰러졌네요.”

“······제 무능 때문입니다.”

지수가 죽은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이 사람들을 거두어도 될까요?”

“······예?”

거둔다니,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지수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우우우우—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 백색의 빛 줄기가 뻗어 나왔다. 마치 새하얀 날개를 펼치는 것만 같았다.

- 발키리가 ‘자격 있는 전사’의 영혼을 거둡니다.

백색의 빛줄기가 죽은 대원들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들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크······.”

“으으!”

다만, 움직이는 건 그들의 몸이 아니었다.

- 18명의 전사가 당신의 ‘에인헤랴르(Einherier)’로 거듭납니다.

* 최대 권속 수에 도달했습니다.

붉은색으로 물든 뜨거운 시체에서, 푸른색의 영혼이 분리되어 일어났다.

“포기하면 안 돼요.”

지수가 고개를 돌려 마굴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20개의 빛 줄기가, 20명의 에인헤랴르가, 광채를 내뿜으며 섰다.

죽음을 자산으로 삼는 건, 이제 네크로맨서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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