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75화 (175/244)

# 175

59) 제주도, 마굴 공략 - 6

세계수의 그늘 안에서 압도적인 폭발이 작렬했다.

쿠구구구—

세계수의 몸통에 구멍을 발생한 이후, 이 근처에서 벌어진 가장 강력한 폭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아흔 마리가량 잡았다.’

분명 적지 않은 숫자를 대번에 녹였지만, 새 발의 피일 뿐이었다.

정말 다행인 점이라면, 그 열기가 마물 떼거리를 멀찍이 밀어냈다는 것이었다.

후우우우—

메신저호는 마물들이 멀어진 틈을 타 검은 연기를 뚫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세계수의 중단에 뚫린 구멍,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퇴로였다.

하지만 마굴의 포식자들은 오랜만에 먹잇감을 발견한 건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놈들이 다시 들러붙습니다!”

함교의 창문이 열리며 승무원 한 명이 소리쳤다. 성우 역시 놈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절대 멈추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성우, 리웨이, 한호는 선미 갑판으로 달려갔다.

“허, 여전히 엄청······ 많네요.”

폭발에 놀라 흩어졌던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대 뭉쳤는데, 벌써 수십 미터 뒤까지 따라붙은 상태였다.

마치 폭풍우 속의 파도 같았다. 당장이라도 메신저호의 선미를 향해 몰아쳐, 이 선박을 한입에 집어 삼켜질 것 같았다.

“놈들을 다시 밀어낼 또 다른 방법이 있어?”

성우는 리웨이의 질문에 대답할 틈도 없이 그림리퍼를 들어 올렸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 당신의 무기에 ‘악령 폭격’ 깃듭니다. (MAX)

성우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단일 데미지로 따진다면 단연 ’악령 폭격’이 최고였다.

하지만 그 피해 범위는 ‘시체 폭발’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는 부적합했다.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성우는 그림리퍼를 크게 휘둘러, 악령 폭격을 최대한 넓은 반경으로 흩뿌렸다.

구— 구— 구— 구— 구— 궁—

선두 대열에 명중, 약 스무 마리가량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성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폭발!”

그렇게 발생한 스무 개의 사체에 ‘시체 폭발’을 불어넣은 것이다.

쾅 쾅! 쾅! 쾅 쾅!

수백 미터에 이르는 공간 위에 폭발이 번져나가며 놈들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30초의 팽창 시간이 필요한 ‘고압 폭발’에 비교하면 이렇다 할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었다.’

당장 필요한 건 놈들의 숨통을 끊는 게 아니라 다가오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건 성공이었다. 놈들이 종전의 거대한 폭발에 충격을 받았는지, 상대적으로 작은 폭발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덕분에 추격이 지연되었다.

“선배! 도, 도착해요!”

그리고 마침내, 머리 위를 뒤덮는 그림자가 짙어졌다. 성우는 세계수를 등진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치 까마득한 절벽 같았다. 그것은 뒤통수가 시큰할 정도로 한없이 뻗어 올라 구름 안으로 퍼져나갔는데, 시각의 왜곡 속에서 콧잔등에 닿을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쿵— 쿠구구구—

메신저호는 세계수의 구멍 안으로 거칠게 비집고 들어갔다.

콰과과과과—

가속도가 붙은 탓에 착륙이 거칠었지만, 성우는 비행선이 멈추기도 전에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거대한 바닥은 거칠었고 축축했다.

성우는 즉시 구멍을 향해 뛰어갔다.

끄에에에!

구멍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몰아쳤다. 당장이라도 안으로 비집고 들어올 것 같았다.

성우는 그곳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뼈 무기 제조!”

정말 다행히도 빅터를 소환할 때 ‘뼈 무기 제조’ 스킬이 궁극으로 맞춰졌다.

성우는 그걸 이용하여, 입구를 채울 만한 뼈 조형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직전에 메신저호를 덮었던 덮개보다 더 튼튼한 형태가 필요했다.

쩌적一 쩌적一

등 뒤, 메신저호의 갑판에서 트롤 스켈레톤들이 분해되어 올랐다. 그리고 성우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구멍 근처에서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一

그것들은 세계수의 껍질 위에 단단히 박히며 이리저리 엮였고, 이내 구멍을 완전히 틀어막을 만한 거대한 ‘뼈 문’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성우는 즉시 ‘겨울 포식자’를 꺼내어 ‘확산 모드’로 바꾼 뒤, 뼈 문 위로 분사했다.

쩌저저저저저一

50발의 탄환이 뼈 문 위에 덕지덕지 들러붙으며, 순식간에 두꺼운 얼음층이 형성되었다.

뼈라는 철골 위로 얼음이라는 콘크리트를 들이부은 꼴이었다. 간이적이었지만, 마법이 담긴 것들이기에 웬만한 콘크리트 벽보다 단단할 것이었다.

“전원 빠르게 내린다!”

“시간 없어! 빨리 이동!”

이내 멈춰선 메신저호에서 승무원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가 뼈 문을 향해 달려왔다.

“입구를 봉쇄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사용해!”

빙결 계열, 암석 계열의 마법사들이 달려와 성우가 막아놓은 입구에 힘을 더하기 시작했다. 리웨이 역시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방어막을 한 겹 덧씌웠다.

그렇게 승무원들이 추가 조치를 하는 사이, 성우는 검은 사자를 찾아갔다.

“마굴의 심장, 방향은?”

검은 사자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았다.

“이 바로 아래다. 하지만 그 아래로 들어가는 입구는 나도 못 찾아. 나는 방향만 짚을 뿐이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찾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없다면 낭패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쿵! 쿵! 쿵!

마물들이 문을 두드리고 긁어대는 소리가 구멍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승무원들은 요동하지 않고 서둘러 흩어져 구멍 안을 탐색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여기!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냈다.

“그런데 너무 깊고 어둡습니다.”

그 아래로 불꽃 마법을 쏘아 보내 확인한바, 약 20미터 정도 수직 통로였다.

“타고 내려갈 장비가 필요합니다. 3분이면 설치합니다.”

기술자들이 레펠(Rappel)을 위한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성우는 주변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대체 뭐가 세계수를 뚫어 버린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거대한 동굴 같은 구멍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구멍의 안쪽 벽면, 약 100미터 쯤 위에 움푹 들어간 곳이 눈에 띄었다.

정황상 무언가 세계수의 표면을 꿰뚫어 이 구멍을 만든 뒤 저곳에 부딪힌 모양이었는데······.

’방금 뭐가 번쩍였는데?’

확실하지 않지만, 그 움푹 파인 공간의 중심에서 무언가 손전등 불빛을 반사한 듯했다.

“하강 준비 완료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그걸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쾅! 콰- 앙!

“입구가 곧 뚫릴지도 모릅니다!”

이 구멍이 믹서 통으로 변해서 메신저호의 대원들을 통째로 갈아버리기 전에, 더 안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 * *

제주도의 오름, 네크로맨서가 없는 전장, 그곳에 우뚝 선 이들은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없다는 건, 당연하게도 가장 큰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패배에 가장 가깝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면 죽음까지도······.

“후······ 우리가 여기서 버텨내야지만 이 작전이 성공하는 거지?”

“그래, 어려울 것 없어. 얼마 전 수원 전투 때도 잘 했잖아?”

하지만 이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네크로맨서와 함께 하며 성장을 거듭하며 힘을 축적했다.

그리고 그 힘이 유효하다는 걸 수차례 경험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저, 그걸 다시 한번 증명해내면 그만이었다.

“전투 준비!”

“싸우자!”

함성을 지르고 무기를 들어 올리며 보라색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포탈을 노려보았다.

메신저호가 치고 들어가면서 포문을 열은 놈들이 다시 휩쓸려 들어가 버렸지만······ 이내 두 번째 등장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끄에에에一

그 어떤 짐승과 다른, 이 세상 것이 아닌 괴성과 함께 끔찍한 몰골들이 포탈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 ‘외부 차원의 존재’의 위압감에 짓눌립니다.

*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20 %)

“······윽!”

“모, 몸이 굳은 것 같아!”

사실 이런 경직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전달받은 상태였다. 마물이 등장하면 그 위압감에 짓눌려 평소와 같은 몸 상태가 아닐 거라고, 사전에 교육받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니 생각보다 훨씬 답답한 일이었다. 숨 쉬는 것조차 한층 어려워진 느낌이었다.

“그, 그래도 일반인보다 훨씬 센 상 태야! 겁먹지 마!”

“쏴! 머뭇거리지 말고 퍼부어!”

그들은 평소보다 무거운 몸을 움직여, 마굴의 문을 향해 화력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쉬쉬쉬쉬쉬쉬一

첫 번째는 화살 세례였다. 끈적한 포탈의 입구를 비집고 나오는 놈들을 향해, 궁수들이 정밀 사격을 가했다.

끄에에! 끄에에!

그러나 이내 몇 마리가 포탈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엎어졌다. 그 순간부터는 화살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다.

“마법을 준비해!”

엄청난 탄력과 속도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들어 플레이어들의 진영을 헤집어 버릴 것이었다.

그 전에 쓰러뜨려야만 했다.

“1조 1열 공격!”

후방에서 대열을 형성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나섰다. 그들 마치 잘 훈련된 머스킷 보병처럼 움직였는데, 가장 첫 줄 10명이 미리 준비해둔 화염 마법을 발사했다.

후우우우우一

10개의 화염 마법이 일제히 날아가 포탈 입구에 작렬했다.

콰과과과과一

엄청난 불꽃과 열기가 오름의 중심에서 타올랐다.

끄에에에一

하지만 마물은 죽지 않았다. 수십 발의 화살을 몸에 매달고 10개의 마법에 지져졌음에도, 끝내 걸레짝이 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마, 말이 돼?”

그 장면을 바라보며 지민을 비롯한 제주도의 플레이어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맞고 안죽는다고?”

“우리는 대체······ 뭐랑 싸우려고 온 거야.”

그리고 이 전투에 동참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악몽은 어린아이의 악몽에 불과했던 것일까?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그들을 뒷걸음질치기 만들었다.

“다음! 저지 마법 발사!”

하지만 세계수 진영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은 저런 극악무도한 것들과 맞서면서 성장해온 그룹이었다.

쩌저저저一

빙결 마법이 작렬하여 달려드는 놈들의 발을 묶었다. 빙결 전문 마법사들이 전방 곳곳에 배치되어, 마물의 접근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투一 웅一

직후, 발리스타가 쏘아낸 철창이 날아들어 놈의 몸통에 꽂히자 마침내 움직임이 멎었다.

“드디어······ 주, 죽였다.”

제주도의 플레이어들은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이제 고작 한 마리 잡았을 뿐이 었으니까······.

“쏟아져 나온다!”

끈적한 포탈에 뒤엉켜 있던 것들이, 밀가루 포대가 터지는 것처럼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포탈의 저항력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결국, 수십 마리의 마물이 이 땅에 발을 디뎠다.

“퍼부어! 있는 대로 퍼부어!”

화살이 장대비처럼 퍼부어지고, 대규모 마법이 작렬하고, 포탈을 포위하고 있는 차례대로 캐논을 발사했다.

콰—앙! 콰—앙!

그뿐만 아니라 성벽을 부술 때나 쓸법한 공성 병기들이 수십 대나 동원되어 하나의 점을 향해 모든 화력을 집중했다.

하물며 거대한 뿌리가 땅에서 치솟아 오르더니 서로 뒤엉키며 마치 거대한 구렁이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 위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놈들, 여기저기서 벌레처럼 기어 나오는구나!”

사내는 그렇게 외치며 손을 뻗었다. 그 뿌리가 마물 한 마리를 옮아 매더니 그대로 내리찍어버렸다. 놀랍게도 마물은 즉사했다.

“······저 사람 이상한 한복을 입고 연기 나는 막대기까지 물고 있는데 혹시, 도인 같은 걸까요?”

“그러게? 저, 저건 대체 뭐 하는 직업이지?”

크루세이더 팀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그들은 그간의 사용했던 거대한 쇠뇌가 아니라, 총구가 아주 긴 캐논을 정비하고 있었다.

“사격!”

콰— 과과과과!

그 물건은 백색 빛줄기를 발사했는데, 20명가량이 일제히 사격하자 3마리의 마물이 단숨에 녹아 사라졌다.

“이 사람들 하나 같이 굉장해······.”

제주도 플레이어들로서는 진기명기를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하물며 종종 떠오르는 골드 획득 메시지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 ‘외부 차원의 존재(하급 마물)’를 사냥하여 24,550골드를 얻었습니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14)

지민은 제 눈을 의심했다.

“······단 두 방 맞췄는데?”

단 2방, 석궁으로 단 2발 명중시켰다. 그런데 놈이 죽으며 일부 정산되었는데, 레벨 업과 더불어 엄청난 양의 골드가 들어왔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지민은 근처에 서 있는 동생,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 녀석, 확실히 이렇게 강한 군대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겠어. 나한테 내 비쳤던 자신감······ 그럴 만도 해.’

하지만 지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검을 쥐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전장을 살필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칼을 쓴다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저 괴물과 근접전을 펼치는 건 미친 짓이야. 그러니까 지수 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야.’

그녀는 여전히 지수에 대해서 잘 몰랐다. 천천히 물어볼 시간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지수가 얼마나 강한지를 떠나서, 한국 서버 랭킹 4위라는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격 중지!”

인호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쩌렁 쩌렁 울렸다. 이내 모든 공격이 멎었다. 포탈 근처가 잠잠해진 것이다.

쿠구구구구—

후폭풍으로 일어난 먼지와 열기가 흩어지며, 포탈 근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

잇따른 폭격에 움푹 파인 지형 위로, 수백 마리의 마물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웨이브 1단계를 성공적으로 차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무거운 침묵만이 감도를 뿐이었다.

“뭐야, 이긴 거야?”

지민이 지수에게 물었다. 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이야.”

- 마굴의 문(2층) ‘웨이브 1단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20초 뒤에 다음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이제 시작이야.”

“아, 그래?”

지민은 석궁을 들어 올렸다. 한편으로는 서서히 의아해졌다. 이런 거친 전투가 오가며 아쉬운 상황이건만, 지수는 어째서 움직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아무리 근접 전투에 특화되었다고 한들, 자신처럼 원거리 무기를 들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그때, 포탈을 바라보고 있던 지수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마치 그 너머의 세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언니, 뒤로 충분히 물러서 있어.”

“어? 왜?”

“······곧 뒷걸음질 치는 것도 힘들어 지게 될 거야.”

그와 동시에 한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중간 보스 몬스터 ‘마굴의 문 수문장’이 등장했습니다.

“놈이, 생각보다 일찍 나왔어.”

“······수문장?”

마굴의 문 1층에서는 최종 보스였던 존재 ‘마굴의 문 수문장’이 이번에는 중간 보스로 등장했다.

쿵— 쿵— 쿵—

그놈이 포탈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왔다.

크르르······.

끔찍한 외형의 거인이 흑요석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등과 어깨에서 자라난 뿔과 돌기가 온몸을 갑옷처럼 휘감았으며, 오른손에는 핏줄이 휘감긴 장대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그 끄트머리에는······ 사람의 상체가 장식처럼 꽂혀 있었는데, 절규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미친······.“

그건 역겨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빚어 만든 괴물이었다.

- ‘외부 차원에서 온 존재’의 위압감에 짓눌립니다.

*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50 %)

“허, 헉!”

지민은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무려 절반의 능력 감소는 그만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윽!”

“모, 몸이 아, 안움······.“

레벨이 낮은 편인 제주도의 플레이어 중 상당수가 주저앉고 말았다.

심지어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 역시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등장만으로 모든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게 대체······.“

지민은 숨을 몰아쉬며 그 괴물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시야 외곽으로, 누군가 걸어 나가는 게 아닌가?

그건, 지수였다.

“지, 지수야······ 너 어딜······.“

그런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아주 멀쩡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절그럭!

그 순간, 지수의 몸 위로 검붉은 갑주가 떠올라 저절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한눈에 봐도 격이 다른 장비였다.

절그럭! 절그럭!

마치 황금색의 금속을 핏물로 담금질한 것처럼, 잔혹한 아름다움으로 번뜩였다.

곳곳에 달린 날개 모양의 장식은 금방이라도 찬란한 날개를 펼칠 것만 같았다.

- ‘알 수 없는 기운(우호)’이 엄습합니다.

하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겼다. ‘신격(神格)’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민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설마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건 그저, 네가 나설 체급이 아니었던 거야?’

그녀의 등 뒤에서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그러자 양쪽으로 두 마리의 푸른 호걸이 피어올랐다.

최악을 대비하고 있던 자, 발키리의 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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