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59) 제주도, 마굴 공략 - 3
구미호는 무력 했다.
깨갱!
물론, 제주도 안에서는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던게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깽! 깽!
게임이라는 특성상, 다른 세계와 교류하지 않는 존재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즉, 성장이 멈추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강자인 네크로맨서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아······ 신께서······.”
숭배자들은 구미호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바라보며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들이 믿고 있던 세계가 단숨에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투성이가 된 구미호가 쓰러졌다.
- 필드 보스 몬스터 ‘구미호’를 사냥하여 8,7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성우는 그 메시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그 정도 골드는 이제 성에 차지도 않았다만······
‘적당한 크기에 기동력 좋은 뼈다.’
괜찮은 뼈를 하나 더 얻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리고 구미호의 입안에서 구슬이 하나 굴러 나왔다.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여우구슬
- 등급 : 전설
- 분류 : 오브
- 효과 : 최대 마나 상승 (+300), 마나를 주입할 시 20km 이내의 지역을 1분간 샅샅이 살펴볼 수 있으며, 1분 후 10km 이내의 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포탈을 개방합니다. (재사용 대기 24시간)
- 설명 : 영험한 힘이 깃들어 있는 구슬입니다.
여우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우 구슬’이었다. 삼킨 자로 하여금 지리에 통달하게 해준다는 그 전설처럼, 지형 관측과 순간 이동 효과가 붙어 있었다.
’때마침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다.’
고작 1분이었기에 내비게이터 역할까지는 할 수는 없을 테지만, 마굴 공략 때 쓸모가 있을 것이었다. 성우는 그 물건을 안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숭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성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성우를 올려다보며 손을 싹싹 빌어댔다.
“부,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신으로, 아, 아니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
어이가 없었다. 왕이라니? 숭배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건, 나약한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인 걸까?
“······어, 벌써 끝났군요?”
그때쯤 인호와 한호가 오름 정상에 도달했는데,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였다. 성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인호가 소개해주었다.
“아, 이분들은 제주도의 생존자들입니다. 저런 광신도들과 다르게 제정신을 유지하신 분이죠. 그렇죠?”
그런데 생존자 무리의 맨 앞에 서 있던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표정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아뇨, 미안하지만 딱히 제정신은 아니에요. 이······ 개새끼야!”
별안간 욕설을 내뱉더니 갑자기 땅을 박차고 성우 쪽으로 달려드는 게 아닌가?
정확히는 성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몬스터 숭배자’를 향해서였다. 그리고 우두머리인 백발의 노인의 안면을 향해 힘을 실은 발차기를 날렸다.
쩍!
그녀의 워커 발이 노인의 하관에 적중했다. 입에서 선지피가 터지며 뒤로 고꾸라졌다.
“으, 으아아!”
모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여자는 노인의 멱살을 붙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하, 이런 미친 새끼들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 같이 미쳐야 하거든요! 미안해요.”
그녀는 분노에 찬 조소를 지으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드디어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컥, 너, 이 늙은이를 이렇게 무, 무식하고 무참하게······.”
노인은 연민을 유발하려는 듯, 부자연스럽게 발버둥치며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지랄? 18레벨에 능력치도 제일 높고 제일 건강한 새끼가 이럴 때나 노약자인 척 빌빌거려? 너 어린 애들한테도 그 약초 처먹였지? 응?”
그녀는 왼손을 들어 올려 어딘가를 가리켰다. 제주도의 생존자들 뒤로 아이들이 보였다. 하나 같이 눈이 퀭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포로로 잡혀 있던 중에 세뇌 작업에 당한 모양이었는데, 역시나 그 정체불명의 약초가 사람을 미치게 했던 모양이었다.
“그, 그건 미, 믿음을 위해서 그, 그게······.”
노인은 본능적으로 중얼거렸지만 이내 말을 얼버무렸다. 그 믿음의 주체가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노인의 눈에 혼란이 번져나갔다.
성우는 쌓인 게 많아 보이는 두 인연을 위해, 잠깐의 면담 시간을 내주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녀는 두 주먹이 피투성이가 된 채 성우 일행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 덕분에 이 미친 세계에서 해방되었네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런데 혹시 다른 세상은 괜찮은가요?”
이들 역시 꽤 오랫동안 제주도 안에 고립된 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듣지 못한듯했다.
하긴, 그러하니 네크로맨서와 세계수 진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뭐, 미쳐 돌아가는 건 똑같습니다. 오히려 더 재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죠.”
인호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극악무도한 일을 겪어왔다. 그저 잘 버텨 냈을 뿐······.
“그나저나 광신도를 제외한 생존자는 얼마나 됩니까?”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는 한, 얼마 없어요. 많아 봐야 천 명은 될까요? 섬 여기저기 숨어 지내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보시다시피 몬스터가 더 많은 곳이라서요.”
이런 고립된 섬은 잘 풀리면 미국 서 버처럼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 만, 그게 아니라면 한도 끝도 없이 참 혹해질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거의 다 토벌된 내륙과 다르게, 이곳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여기! 뭔가 찾았습니다!”
그때, 수색에 나섰던 승무원들이 오름 가장 높은 곳, 어느 철탑에 설치된 무언가를 끌어내렸다.
“이게 바로 전파를 차단하는 아이템인가 봅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비밀의 솟대
- 등급 : 영웅
- 분류: 토템
- 효과 : 솟대가 설치된 인근 지역(5km)의 모든 ‘원격 연결’이 단절됩니다. 10개 이상의 솟대가 ‘연결’되면 더욱 광범위한 영향력이 발휘됩니다.
“맞아요. 이런 물건이 제주도 곳곳에 있어요. 저희가 어떻게든 부수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서 실패했죠.”
그깟 게시판 하나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한 세계를 고립시킬 수 있다니, 새삼 커뮤니티 기능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나저나 지수 씨 쪽에서는 연락은 없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검은 사자의 흔적을 찾으러 간 지수 일행 쪽에서는 아직 기별이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니, 성우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어디든 바로 이동할 수 있게 준비하죠.”
이내 비행선 두 척이 오름의 정상 부근에 가까이 내려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도르래 장치를 이용하여 병력과 물자를 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으아아!”
메신저호 선루 갑판 쪽에서 별안간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으아! 네, 네크로맨서! 제발, 제발, 이 꼬마 괴물 좀 어떻게 해 봐!”
리웨이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미르를 안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 치킨 스켈레톤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치이이이一
그것도 불타오르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리웨이는 ‘물의 정령술사’였고, 작은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제 머리에 끼얹음으로써, 머리가 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빠, 빨리 좀 올라와!”
성우가 비행선에 탑승하니, 미르는 리웨이 품에서 성우의 그림자 안으로 순간 이동했다.
끙— 끙—
비행선에서 곤히 재운 뒤 나왔던 거였는데, 그사이 깨어나 난리를 쳤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성우에 품에 와락 안겼다.
킁— 킁킁—
그러고는 가슴팍에 코를 박고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안주머니 쪽이었는데, 그 안에 주둥이를 욱여넣는 게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너 뭐해?”
꿀꺽!
“너, 그걸······.”
꿀꺽이라니? 성우는 서둘러 미르 녀석의 주둥이를 벌렸지만, 이미 입안은 깨끗했다. 녀석이 삼킨 건 무려····· ‘여우구슬’이었다.
“대체 왜 그걸······.”
- ‘블랙 드래곤(헤츨링)’이 영험한 물건을 흡수합니다.
* 흡수 완료까지 남은 시간 : 03:59:59
“이, 이건 또 뭐야.”
드래곤은 역시, 도저히 알 수 없는 생명체였다.
* * *
한편, 오름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이탈한 1척의 비행선은 ‘검은 사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한라산 남쪽 경사면으로 날아갔다.
한라산을 넘어갈 무렵, 백록담에서 치솟은 정체불명의 불빛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당장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보다 ‘마굴 공략’을 위한 길잡이를 찾는 일이 중요했다.
“저기, 저 건물 근처로 착륙해주시오!”
백색 늑대의 요청에 따라서 비행선이 고도를 낮췄다. 산속에 오래된 산장 하나가 어렴풋이 보였다.
우우웅—
나무가 우거져 있기에 지상에 착륙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지상과 가까워지자, 백색 늑대와 지수는 과감하게 뛰어내렸다.
지수는 착륙과 검을 뽑아 들었다.
“······뭔가 있어요.”
숲속에서 기분 나쁜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백색 늑대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곳은 아직 몬스터 천지군.”
지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어두운 숲속에서 붉은색 눈빛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눈빛들은 아주 높은 곳에 맺혀 있었다. 압도적인 체구의 거인들이었다.
“젠장, 오우거인가? 거의 7마리······ 비행선에 지원 사격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소?”
백색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졌다지만 오우거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상대하기 여간 껄끄러운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수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드드드드—
나무가 기울어짐과 동시에 그 붉은 눈빛들이, 아니, 눈빛을 달고 있는 머리가 우수수 낙하했다.
쿠구구구—
초목의 상단 부분이 깔끔하게 절단되며 햇빛이 눈을 찌르고 들어왔다. 백색 늑대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다.
“······.”
“가죠.“
그는 놀람을 애써 감추며 몸을 돌렸다. 한때 이들에게 맞섰다는 게······ 새삼 놀라울 지경이었다.
끼익一
그들은 낡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우一
건너편에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며 나직이 울부짖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살고 있지 않은 듯, 창문은 깨져 있고 천장은 내려앉은 상태였다.
“여긴 아무도 없어요.”
지수는 직접 확인하지 않더라도 예리한 감각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때 있었다면, 적어도 나는 알수 있소.”
백색 늑대는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먼지가 쌓인 기름 난로에 손을 얹었다.
이어서 눈을 감자 그의 손에서 푸른 불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사물에서 기억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약 1분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분은 지금,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있군.”
흔적을 짚어낸 듯했다.
“네? 사람이라면 몬스터 숭배자요?”
“아니, 그들 말고도 정상적인 생존자가 있소.”
그 말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위치를 확인했다면 더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오두막을 나서다가 문득 백색 늑대를 돌아보았다.
“그럼 혹시······.”
그녀는 주저하는 듯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찾아 주실 수 있나요? 여유가 있다면······.”
백색 늑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일단 빨리 가죠.”
단서를 얻은 그들은 서둘러 비행선에 올랐다.
* * *
“3번 함이 들어옵니다!”
그 보고에 성우는 선루 갑판으로 나갔다. 지수와 백색 늑대가 타고 갔던 3번 함이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철컥!
두 척의 비행선 사이에 간이 통로가 연결되었다. 그곳을 통하여 두 사람이 건너왔다.
“찾았나?”
성우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백색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분께서는······.”
그런데 그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 그래?”
그는 성우의 등 뒤로 시선을 옮기더니 놀란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검지를 들어 올려 그곳을 가리켰다.
“······저 여자와 함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여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가 가리킨 건 제주도의 생존자, 지민이었다. 그녀 역시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분이 이 제주도의 생존자 무리와 함께 계시는데, 저 여자를 그분 기억 속에서 봤어. 저 여자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네? 누구를 찾는 거죠? 어!”
그런데 이번에는 지민이 놀란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너, 지수니?”
제주도에 도착한 이후, 지수를 알아 보는 사람이 벌써 두 번째였다. 지수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언니?”
“너, 살아 있었구나?”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언니? 선배, 그러면 설마······.”
“그 설마 같은데?”
그 대목에서 성우와 한호는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꽤 닮았다는 걸 말이다.
“허허, 왠지 저 여자분한테 지수 누님 느낌이 나더니······.”
구체적으로 묻지 않더라도 둘 사이가 자매 관계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제주도에 산다는 가족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죽은 줄 알았는데, 무사해서 다행이네.”
“······그러게.”
그런데 뜨거운 가족 상봉 같은 건 없었다. 평소에 그리워하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태수의 말로 볼때, 둘 사이에 복잡한 가정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다른······ 가족들은?”
“뭐, 알잖아? 우리 집안 사람들이 어디서 당할 스타일은 아니야. 다들 무사하고 건강해. 지윤이가 손가락이 하나 잘리긴 했는데, 뭐 그 정도면 무사한 편이지?”
지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벌써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때, 성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두 분 대화할 시간을 뺏어야겠습니다. 검은 사자, 당신들과 같이 있습니까?”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누군지 알아요. 그분을 찾는 거였군요?”
* * *
전쟁까지 38시간 남았다. 비록 몬스터 숭배자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그 이후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제주도의 생존자 그룹과 함께 있던 ‘검은 사자’와 만났으며,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검은 사자는 꽤 호의적이었다.
“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분명하군.”
그는 덥수룩하게 자란 갈기를 한 갈래로 묶은 채, 검은 창 한 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어딘가 축처진 모습이 무리에서 쫓겨난 늙은 사자처럼 느껴졌다.
“우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적이었지만, 내가 잘못되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진화 학회와 함께했다는 점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은 종족을 위해서라는 핑계로도 인정 받을 수 없고, 결코 속죄할 수 없겠지만, 지금······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서 그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좋겠군.”
성우는 거기까지 들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의를 얻었다면 더 지체할수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원하는 물체를 감지할 수 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일대에 큰 힘을 행사하는 물체는 감지할 수 있다. 가령, 나는 세계수의 등장을 일찌감치 느꼈다. 그런데 한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라면······ 분명 멀리서도 감지하고 찾아갈 수 있을 거야.”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성우는 인호를 돌아보았다.
“그럼 바로 마굴의 문을 열죠.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공략 준비 세팅 완료입니다.”
마굴 공략은 이곳, 제주도의 오름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지대가 높고 방해물도 없으며 아군의 주요 시설물도 없기에 ‘마굴의 문’이라는 끔찍한 물건을 다루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마굴을 열면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별개로 엄청난 수의 마물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그걸 막아낼 사람이 필요해요.”
마굴의 문은 양방향의 문이다. 성우는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갈 생각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웨이브가 쏟아져 나올 것이었다.
그걸 내버려 둔다면? 제주도가 지옥으로 변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성우가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시간 시간 전에 하이퍼 게이트를 미리 설치해뒀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수원에서 지원군을 더 부를 예정입니다. 총무팀장이 이미 후속 준비를끝내 뒀다고 합니다.”
경수를 필두로 세계수 진영의 총력이 지원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단순히 많아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몇 차례 경험했듯, 상상 이상의 것들이 나오고 끝에는 수문장, 그게 나올겁니다.”
성우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 씨가 여기 있어 줘야겠습니다.“
“제가······ 같이 안 들어가도 될까요?“
처음에는 성우에게 같이 가도 되냐고 묻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없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그만큼 필요한 존재였다.
“꼭 필요하지만, 여기에 더 필요해요. 이번에는 마굴 밖의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알겠어요.”
성우는 선루 갑판으로 나왔다.
성우가 타고 들어갈 메신저호는 오름의 중심 상공에 떠 있었으며, 나머지 2척의 비행선은 오름의 정상 부근을 포위하는 형태로 늘어섰다.
그리고 비행선의 선루 갑판 위에는 공성 병기가 고정된 채 오름 쪽을 조준하고 있었다.
“하이퍼 게이트 연결됩니다!”
이내 미리 설치해두었던 하이퍼 게이트가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수원의 마을로 이어지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세계수 함대가 등장합니다!”
거대한 포탈을 통하여 세계수 함대의 본대가 차례차례 나왔다. 제주도의 생존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우우우一
각 비행선의 갑판 위에는 상당수의 병력이 타고 있었는데, 상당히 질 좋은 병장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중국 서버와의 전투 이후, 노획한 아이템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선별해 낸 것이었다.
그리고 급히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선발대를 위해서 다량의 보급품을 가져오기까지 했다.
두두두두一
뒤이어 5대의 헬리콥터가 등장했다. 정훈과 크루세이더 팀이었다. 이번 작전이 아주 중요한 일이기에 빠지지 않고 지원 나온 것이었다.
“각 함선 지정 위치 이동합니다.”
그렇게 총 9척의 비행선이 오름의 하늘 위를 가득 메웠으며 지상으로 병력을 내리기 시작했다.
“마굴의 문은 정 가운데에 열린다! 그곳을 포위하는 대열을 만든다!”
“모두 빨리 이동해! 시간이 없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민이 약 100명 정도의 플레이어를 대동하고 등장한 것이다. 그는 인호에게 다가왔다.
“우리도 도울게요. 당신들의 끝내주는 군대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뭐라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거······ 아주 위험한 일인데요?”
인호는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지민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죠.“
“좋습니다. 그런데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준비되는 가운데, 성우는 오름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모든 준비 끝났습니다!”
그는 경수의 목소리를 들은 뒤, 검은 색 스크롤을 꺼냈다.
- ‘마굴의 문(2층)’을 여시겠습니까?
그는 스크롤을 열기 전,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모든 병력에 제 위치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모아온 전부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난 여기에 있을 수 없다.’
마굴 공략은 안과 밖, 두 군데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며, 얼마 전의 ‘동시 전쟁’처럼 빠르게 돌아와 합류할 수 없었다.
즉, 성우가 성공하더라도 여기에 있는 모두를 잃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성우는 지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성우는 스크롤을 찢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마굴의 문(2층)〉이 열립니다.
* 해당 지역이 봉쇄됩니다. (제주시)
마굴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