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71화 (171/244)

# 171

59) 제주도, 마굴 공략 - 2

집단의 무지(無知)는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비참한 역사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뭐, 저 정도라면 상당한 공군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인호의 말처럼 제주도에서 백여 마리의 ‘히포그리프’ 부대가 날아올랐다.

분명 그 어느 세력도 지니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공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한테는 안되겠네요.”

하지만 그건, 네크로맨서와 세계수 진영의 수준을 모르기에 감행할 수 있는 무모함에 불과했다.

W·P·U의 베이커 함대, 워싱턴 함대를 격파하고 그들의 힘을 그대로 흡수한 ‘세계수 함대’는 세계 최강이 분명했다.

이번 작전에는 겨우 3대가 동원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비행선, 모든 캐논 조준 완료 했습니다!”

“······격발!”

인호의 명령에 3대의 비행선에 장착된 캐논이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벌떼처럼 날아드는 히포그리프 부대를 향해, 놈들의 착각을 대번에 날려버릴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쾅! 쾅! 쾅! 쾅! 쾅!

히포그리프 부대가 넓게 퍼졌지만, 허공에서 광범위한 폭발이 작렬하며 놈들을 휩쓸었다.

그러자 살충제를 맞은 말벌들처럼 균형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게 부지기수였다.

“명중입니다! 적 다수를 격추했습니다.”

놈들은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이며 달려들었다.

“······하, 저런 무모함이라니, 가까이 붙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비행선에 올라타서 백병전을 벌일 생각이겠죠.”

성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제가 나가죠.”

적들이 함대에 들러붙으면 골치 아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아군 희생자도 발생할 것이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성우 자신이었다.

성우는 선루 갑판으로 나왔다.

- 주의! 해당 지역이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쿠구구구구一

마치 먹구름이 피어오르듯, 3척의 비행선 위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존재들이 날개를 펼쳤다. 히포그리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세계수 함대의 진짜 핵심, 본 와이번 무리였다.

“······놈들을 사냥한다.”

비행선이 하늘을 항해하는 군함 같은 개념이라면 ‘본 와이번’이야말로 진짜 공군 전투기나 폭격기에 가까웠다.

독립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재빠른 공중 기동이 가능하기에, 벌떼처럼 몰려오는 히포그리프를 요격하기에 최적이었다.

후우우우!

본 와이번과 좀비 괴조가 급하강하며 발톱을 들어 올리자, 포격에도 물러서지 않던 히포그리프 부대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말벌 떼 앞에 천적인 까마귀 떼가 나타난 셈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고삐를 돌린 것이었다.

“어라? 놈들이 후퇴한다!”

“으하하! 그래, 이제야 깨달은 거지?“

근접 전투를 대비하여 긴장하고 있던 갑판병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반면 함교는 더욱 바빠졌다.

“고도를 낮춰서 본 와이번 무리에게 포격 지원을 할 수 있게 하세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으니 진짜로 단숨에 휩쓸고 가는 겁니다!”

인호는 3대의 비행선에 명령을 내렸다. 그 역시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쓸어버려야 한다.’

성우의 본 와이번 무리는 급하강하며 놈들의 꽁무니를 뒤쫓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히포그리프는 본 와이번보다 빨랐기에 따라잡을 방법은 요원하기만 했다.

퉁! 퉁! 퉁!

다만 본 와이번의 등 뒤에 장착된 ‘고정 포탑’을 격발하여,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멀어지는 놈들의 등에 비수를 박아 넣는 데 성공했다.

끽! 끼!

총 4마리를 잡았는데, 그렇게 죽어 지상으로 떨어지던 히포그리프들이 다시금 눈을 떴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눈동자였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卷屬)됩니다.

성우의 공군 부대에 새로운 기종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좀비 히포그리프’였다.

카아아!

녀석들은 찢어진 날개와 독수리 발톱을 펼치며, 살아있는 히포그리프를 덮쳤다.

그렇게 한바탕 도그 파이팅이 벌어지더니, 몇 분 뒤, 좀비 히포그리프의 수는 11마리까지 늘어났다.

어느새 지상이 가까워졌다.

“딱! 주인님! 지상에 놈들의 포탑이 보입니다!”

성우의 뒤에 있던 빅터가 소리쳤다. 성우도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지상, 제주 시내 곳곳에 놈들의 성채가 있었는데, 옥상마다 발리스타가 배치되어 있었다. 나름 해상과 공중을 방어하기 위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콰과과과一 광一

엄청난 폭발이 지상을 휩쓸었다.

쿠구구구구一

단 한 순간, 제주 시내 3개 블록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딱?”

빅터가 이빨을 부딪치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고도를 낮춘 비행선들의 함포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세계수 함대는 고작 발리스타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발리스타를 포함하여 일대 지형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이다.

인호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통쾌한 한방이었다.

“좋아, 모두 네크로맨서를 따라서 속도를 높이세요!”

비행선 두 척은 성우를 따라 진격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척은 제주도의 중심, 한라산을 향해 고도를 높였다.

그건 백색 늑대와 지수를 태운 수색조였다. 시간이 없기에 임무를 두 개로 나눈 것이었다.

‘검은 사자를 찾기 전에 방해물을 모두 처리한다.’

성우는 비행선의 지원 사격을 믿으며 도주하는 히포그리프 부대를 집요하게 쫓아갔다. 놈들은 제주 시내 통과해 한라산 국립 공원 방향인 북쪽으로 날아갔다.

이내 제주도 특유의 단성화산 지형인 ‘오름’이 나타나자 그곳을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는데, 반투명한 보라색 돔이 그 오름을 통째로 뒤덮고 있었다.

‘······결계?’

성우는 어쩔 수 없이 그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이 바로 놈들이 본진인 모양이었다.

세계수 진영을 보호하는 ‘신목의 그늘’ 만큼은 아니지만 깨뜨리는 데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본진이라면 다수의 병력이 있을 거다.’

성우는 비행선이 오기 전까지 정지 비행하며 결계 안을 살폈다.

그 작은 화산 지형 위로 성벽과 망루를 비롯한 온갖 건물이 건설되어 있었다.

이내 비행선이 가까이 다가왔고 성우는 메신저호의 갑판 위로 내려앉았다. 직후, 함교의 보조 창문이 열리고 인호가 머리를 내밀었다.

“성우 씨!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성우는 오름을 덮고 있는 결계의 윗부분을 가리켰다.

“저기 상층부를 집중적으로 포격해서 제가 공중에서 치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때 한호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할 말이 있다는 듯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선배! 여기 좀 이상해요! 커뮤니티가 안 들어가지는 거 있죠? 쟤들이 뭔 짓 해놨나 봐요!”

성우는 한호의 말에 따라 핸드폰을 꺼내서 커뮤니티에 접속해보았다. 그러자 정말 접속 불가 메시지가 떴다.

- 한국 서버 커뮤니티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

* 연결이 방해되고 있습니다. 지역 내, 접속 장애를 유발하는 아이템을 제거하고 다시 시도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섬 전체를 통제하고 있던 거군?’

핸드폰 악마의 물건으로 몰아가서 폐기하는 것만으로는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 얼토당토않은 광기에 저항하는 이들 존재할 것이며 그들이 핸드폰을 숨기고 외부에 구조 요청을 하는 등, 연락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템으로 커뮤니티 접속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모양이다.’

아이템을 활용한 커뮤니티 차단, 그리고 히포그리포 부대를 동원한 출입 통제까지······ 제주도를 완전히 고립된 세계로 만들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짓거리도 오늘부로 끝이다.’

이내 결계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콰—앙! 콰—앙!

비행선의 캐논이 불을 뿜었다. 중국 서버와의 전쟁 당시, 베이커 함대가 수원의 마을을 공격했던 것처럼, 결계의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지지지지지—

곧 해당 부분이 자글자글하게 일어나며 비닐 막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신목의 그늘에 비교하면 유약하기 그지 없는 방어력이었다.

쩌저저저一

두 번째 포격이 끝이 나자 연기 너머로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게 보였다. 성우는 손을 들어 올려 포격 중단 신호를 보냈다.

“당장 진입한다!”

그리고 본 와이번 무리를 이끌고 그 구멍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투—웅! 투—웅!

오름 안에 설치된 발리스타가 시위를 튕기며, 거대한 철창을 쏘아 보냈지만 수십 마리의 본 와이번 무리의 침투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결계 안의 하늘을 장악한 다음, 본 와이번의 등에 타고 있던 언데드 군단이 지상으로 몸을 내던졌다. 공수부대의 강습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오름 내부는 나무를 모두 베어내 민둥산이 된 상태였는데, 그 위로 언데드 군단이 추락하며 으스러졌다. 그리고 다시 재조립되며 몸을 일으켰다.

“······악마다! 악마가 들어왔다!”

“악마를 처단하라!”

이내 오름 곳곳에 파인 참호에 숨어 있던 숭배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5백여 명, 갑자기 벌어진 전투이기에 전력이 모인 게 아닌 걸까? 그리 많지는 않은 숫자였다.

“모두 신의 눈물을 마셔라!”

“마시자!”

“싸우자!”

그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정체를 알수 없는 물약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으아! 으아아!”

“싸, 싸, 싸워!”

그러더니 짐승처럼 포효하기 시작했다.

‘광기를 일으키는 게 저건가?’

플레이어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여 세뇌하는 게 어떤 마법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장면을 볼 때 아이템을 이용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일부는 물약만으론 모자란 건지 붉은 빛이 도는 약초를 통째로 뜯어댔다.

“악마를 죽이자!”

“신을 위하여!”

놈들이 언데드 군단을 향해 몰려들었고 난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그게 무식한 자살행위라는 걸,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이런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은 성우가 아는 한 단 하나, 죽음뿐이었다.

* * *

성우가 적진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가 난전을 벌이는 사이, 한호와 인호는 소수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폭격을 이용하여 미리 뚫어 놓은 하단부의 구멍을 통하여 오름 안으로 진입했다.

인호가 주변을 살핀 뒤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적들의 뒤를 공습한 뒤, 네크로맨서를 보조하여 이곳을 함락할 겁니다. 적과 정면충돌은 최대한 피하고 은밀하게 움직입시다.”

비행선이 아무리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전투를 마무리 짓는 건 지상군이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성우의 언데드 군단만으로도 부족함은 없겠지만, 때로는 지성을 가진 이들이 보조해줘야만 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순간을 대비하여 인근에서 대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오름을 오르던 중, 선두가 다급하게 정지 신호를 보냈고 모두 바닥에 넓적 엎드렸다.

“적 한 무리 발견, 어? 그런데······.“

선두의 척후병이 난감한 표정으로 인호를 바라보았다.

“그게, 저들도 결계를 뚫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결계를 뚫고 들어오다니? 인호는 오르막을 기어 올라가 척후병 옆에 나란히 엎드렸다. 그리고 척후병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결계의 한쪽을 찢어내고 오름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약 서른 명 정도였다.

“자, 어서 가자! 절호의 기회야!”

“저기가 포로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성우의 공격 때문에 혼란한 틈을 타, 오름 중턱에 있는 어떤 건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숭배자들이 섬 전체를 점령한 건 아니었군.’

인호는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됐다. 제주도 안에 남아 있던 저항군인 것이다.

그들은 몬스터 숭배자들의 본진이 공격받는 걸 보고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숭배자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불신자들이다!”

“아래에서도 온다! 전부 죽여!”

그 숫자가 수십 명에 달했는데, 저항군이 노리는 건물이 꽤 중요한 곳인 모양이었다.

“지민 씨! 조심해요!”

“걱정 마요!”

다행히 선두로 나선 지민이란 여자가 매우 잘 싸웠다. 그녀는 철제 너클을 끼고 있었는데, 오르막길을 순식간에 달려 올라가, 눈 깜짝할 사이에 3명의 안면을 으스러뜨려 버렸다.

저항군은 그녀를 중심으로 건물의 경비병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워, 저 사람 장난 아닌데요? 칼만 들었으면 지수 누님인 줄 알았겠네.“

한호의 감탄은 과장이 아니었다. 인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쪽이랑 합류해서 공격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저들도 우리 덕 좀 보고 싶겠죠.”

그때였다.

꽈과과과과과!

난데 없이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푸른빛이 하늘을 물들였다. 인호는 그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백록담 부근에서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카로운 포효가 들려왔다.

“저게, 그 신?”

무언가 깨어났다.

* * *

성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빛이 터져오르는 곳, 한라산의 정상 부근을 바라 보았다.

‘백록담에 잠든 신이라는 몬스터인가?’

몬스터 숭배자들이 말하길,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백록담 부근에 잠들어 있다고 했다.

그때, 오름의 중심에 설치된 재단 위로 붉은 망토를 두른 이들이 올라섰다. 그중에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오, 오오, 신이시여!”

그리고는 백록담 쪽 하늘을 향해 일제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그 신이라는 존재를 소환한 걸까?

쿠구구구-

섬 전체를 뒤흔들며 푸른빛을 뿜어내는 백록담, 확실히 경악할만한 장면이긴 했다.

“이 죽은 땅을 숨 쉬게 하시는 신이시여! 부디 멸망한 세계에서 악마들의 마수를 뿌리쳐 주시옵소서!”

그때, 백록담에서 솟아오른 빛으로부터, 한 줄기의 번개가 날아들었다.

쩌一 엉!

번개는 재단 위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곳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푸른 색의 포탈이 하나 열렸다.

‘뭔가 나온다.’

성우도 사뭇 긴장하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포탈에서 섬광이 뻗어 나왔다.

그 섬광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본 와 이번 3마리를 순식간에 박살 내버린 뒤, 다시 재단 위에 착지했다. 이내 빛이 가시며 재대로 된 모습이 드러났다.

“여우?”

그건 거대한, 족히 불곰만 한 크기의 여우였다.

- 필드 보스 몬스터 ‘구미호’가 출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떠오른 이 메시지처럼, 그것의 뒤로 9장의 꼬리가 피어 올랐다.

“아아, 신이시여!”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거대한 여우의 등장에 숭배자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주, 죽기 전에 저 자태를 볼수 있다니! 아아!”

“신이시여, 부디 악마들을 벌하소서!”

놈들은 당장이라도 눈을 뒤집고 자지러질 듯 굴었다. 다른 것도 아닌, 분명한 요괴의 모습을 보고 신이라고 믿고 있다니······.

전반적인 상황을 볼 때, 아무래도 구미호가 이 지역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여 환각을 일으키는 약초를 자라게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걸 먹은 플레이어들은 저 모양 저 꼴인 된 것이다.

“그나저나 구미호라?”

성우는 싱긋 웃었다. 구미호, 그게 제 아무리 대단한 영물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그 이상의 존재인 이무기의 뼈까지 손에 넣고 있는 성우였다.

“이러면······ 생각보다 쉽겠는데?”

쿠구구구구—

그때, 오름의 저지대에서부터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산을 통째로 갈아엎는 것 같은 진동이 오름 전체를 뒤덮자, 구미호 역시 뭔가 느꼈는지 털을 바짝 곤두세웠다.

그르르······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번뜩거리며 자세를 낮췄다. 당장이라도 섬광처럼 튀어 오를 기세였다.

콰과과과과!

그때, 가파른 오르막을 타고 백색의 거대한 무언가가 치솟았다.

뼈 이무기였다. 녀석은 구미호를 향해 그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렸다.

마치 호숫가에 온 작은 동물을 낚아채는 아나콘다와 같은 모습이었다.

탁!

구미호는 땅을 박찼다. 특유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뼈 이무기의 아가리를 피하는 듯했으나······

촤르르르—

뼈 이무기의 머리 부근에서 두 줄기의 사슬이 튀어나오더니 구미의 앞발과 목덜미에 감겼다.

“이놈, 잡았다!”

민석이었다. 그가 뼈 이무기의 머리 위에 올라탄 채 검은 사슬을 던진 것이었다.

깽!

검은 사슬에 걸린 구미호는 뜻대로 멀리 튀어나가지 못했고 결국, 그 우악스러운 아가리에 먹히고 말았다.

깨갱! 깨갱!

신으라고 믿는 존재의 목에서 비참한 깨갱거림이 터져나오자, 숭배자들이 입을 쩍 벌렸다.

“시,신이시여!”

“······어째서!”

이어서 구미호를 낚아챈 뼈 이무기 한바탕 뒹굴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건 신의 싸움이 아니라 짐승의 싸움이었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싸움조차 아니었다.

뼈 이무기의 아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미호를 향해, 주변에 몰려 있던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달려들었다.

깨갱! 깨갱!

그리고 신으로 모셔지는 구미호를 그야말로 동네 똥개 패듯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경험치에 좋은 뼈까지, 들렀다가 가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었군.’

성우는 본 와이번 알파메일에서 뛰어 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숭배자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신은······ 이제 내 수집품이다.”

어느새, 광신도들의 눈이 조금 맑아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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