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70화 (170/244)

# 170

59) 제주도, 마굴 공략 - 1

“네크로맨서, 너도 마굴의 문으로 들어가본 적 있어?”

성우가 중요 인사들을 모아두고 ‘마굴 공략 작전’을 언급했을 때, 리웨이가 물어왔다. 성우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너도라니?

“······그럼 넌 가봤다는 뜻인가?”

“하, 거기서도 죽을 뻔했지.”

성우는 그녀의 경험에 대해서 캐물었다. 중요한 사전 정보가 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음, 며칠 전에 황제에게 사로잡힌 정령들을 구출하러 베이징에 잠입했다가 고립되고 말았어. 완전히 포위돼서 꼼짝없이 죽을 위기였는데, 역발상으로 놈들이 열어둔 마굴의 문으로 뛰어들어 간 거야. 하······ 미친 짓이었어.”

베이징 도심에 다수의 마굴의 문이 열려 있다는 건 성우도 목격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거길 공략하겠다고? 글쎄, 벌집에서 나오는 벌을 때려 잡는 것과 벌집에 손을 집어넣는 일은 다르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곳이지?”

리웨이는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죽기 딱 좋은 곳이야. 폐허 그 자체에 괴물을 제외하고는 생태란 게 없고 심지어 방향을 잡을 수조차 없어. 중요한 건 이거야.”

그녀는 목을 그었던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가려 보였다.

“어둡고 모래바람이 불고 방향을 어림짐작할만한 것도 없고······ 거의 미로에 가깝지. 들어가는 건 쉬울지 몰라도 나오는 건 안 돼.”

“넌 어떻게 탈출했는데?”

성우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나서 가능했던 게 아니야. ‘정령왕’을 소환했던 게 바로 그때야.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의 눈’이라는 스킬을 활용해서 정말 간신히 탈출할수 있었지.”

“세계의 눈?”

“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그건 일종의 ‘미니맵(Mini-Map)’ 같은 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줘.”

미니맵은 게임 내에서 일종의 내비게이션 같은 개념이었다. 그런 스킬이 있다면 길을 찾는 일이 훨씬 쉬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리웨이는 그 이후에 ’망할 신’의 빙의가 일어났고 다시 싱 장군의 거처로 들어갔다고 덧붙이며 푸념했다.

“혹시 그 정령왕, 또 소환할 수 있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못 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데다가, 지금은 30일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려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돌았다. 답답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미니맵? 그런 길잡이 스킬을 가진 자가 있었나?’

적어도 성우가 알고 있는 플레이어 중에서는 없었다. 그 자체가 흔하지 않을뿐더러, 지역 구분이 명확한 현대의 도심에서는 그리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존에 불리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건 무리다.’

리웨이의 말처럼 벌집에서 기어 나온 벌을 때려잡는 것과 벌집으로 손을 집어넣는 건 다른 문제였다.

특히나 방향조차 구분할 수 없는 곳 이라면······ 퀘스트 성공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심지어 일종의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퀘스트가 아니던가?

’마굴 진입 이후 48시간 이내에 그 심장을 파괴하지 않으면 마굴 자체의 저항을 받게 된다.’

그때였다.

“그런 능력······ 한 명을 알고 있다.”

그 말을 꺼낸 건 백색 늑대였다. 모든 이들이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는 성우를 마주 보았다.

“······그런데 플레이어는 아니야.”

“그럼 수인인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운 옛 별명, 사수(四獸)의 첫 째가 ‘포식자의 영역’이라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네 마리의 수인 리더 중 마지막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없었다.

“정령왕 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 반경 내의 모든 걸 감지해낼 수 있어. 아마 그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면······ 마굴의 심장을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성우의 물음에 백색 늑대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제주도······ 그것밖에 모른다.”

시간이 얼마 없거늘, 해야 할 일은 점점 더 늘어갔다.

“제주도로 가야겠군.”

방법은 하나였다.

* * *

진화 학회와 수인의 동맹은 평등한 입장에서 시작되었지만, 꽤 오래전부터 일방적인 관계로 변화했다고 한다. 진화 학회가 수인을 이용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실험체로 사용한 것이다.

그 무렵, 사수라고 불리는 수인의 리더들은 유 박사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저항했지만, 그 결과는 성우가 목격한 대로였다.

“유 박사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했다. 그 첫번째 희생자가 바로 ‘검은 사자’라고 불리는 우리의 리더였다. 큰 부상을 입은 그분을, 내가 제주도로 탈출시켰다.”

“그 이후 연락이 안 된 건가?”

백색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고 성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이후에 죽은 건 아니고?”

“그건 아니야. 그저 그분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신 것 같아. 진화 학회와 손을 잡음으로써 동족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여기셨으니까, 그래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으시려는 거야.”

“그에게 접촉할 방법이 있다면, 그 죄를 씻을 시간이라고 알려.”

“그래, 접촉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그분을 만났던 한라산 중턱의 산장을 찾아가면, 물건에 남은 기억을 잡아내서 어떻게든 추격할 수 있을 거야.”

다행히도 완전한 백지에서 출발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활용한다면, 특정 인물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세계수의 함대가 출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쟁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3일 정도다.”

앞으로 ‘반격 선택’까지 36시간, 다시 ‘종목·장소 선택’까지 12시간의 시간, 마지막으로 전쟁 시작까지 24시간의 대기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을 초과하면 중국 서버 측에 ‘주도권’이 넘어가게 될 것이었다.

“그 안에 모든 일이 끝내야 해.”

단 3일 이내에 마굴의 심장을 파괴하고 25레벨을 달성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다.

“출항 준비 끝났습니다.”

경수의 보고를 받은 뒤, 성우는 한호, 지수와 함께 세계수 함대의 기함 ’메신저호’에 올랐다.

“크! 본 와이번도 헬리콥터도 아니고 이제 마법 비행선이라니? 우리 출세했네요?”

함교에 도착하니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출항을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인호가 일행을 맞이했다.

“육군 병장 출신이 이런 배를 타고 그것도 하늘을 날다니, 이거 어색하기 그지없네요. 어쨌든, 함장님, 당장이라도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세계수 진영은 노획한 비행선을 바탕으로 ‘공군’을 창설하여 항해술을 익혀 나가는 중이었다.

비행선은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많은 인력이 필요했는데, 이번 전쟁 때, 외부에서 온 플레이어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이들을 선발하여 보충했다.

그렇게 이번 작전에는 3대의 비행선과 65명의 승무원이 동원될 예정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출발하죠.”

세계수 진영의 비행선이 남쪽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 * *

제주도, 한국에서 가장 큰 섬이자 관광지였지만, 성우는 세상이 게임이 된 이후에는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는 세계수 진영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서버 내륙의 모든 거대 집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먼 거리에 떨어진 섬에 신경 쓸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남해를 마주했을 때쯤, 인호가 제주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아 보고했다.

“조금 신기할 정도인데,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어느 순간부터 제주도에 대한 언급이 없어집니다.”

“그럼 생존자가 거의 없는 겁니까? 북한이나 아마존처럼 몬스터가 지배하고 있다거나?”

“그건 아닙니다. 헌터 컴퍼니에서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분명 체계가 잡힌 생존자 조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몬스터를 숭배하는 극단주의 집단이 제주도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제주도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추측입니다.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리는 것조차 막고 있는 거죠.”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성우 씨, 그들이 우릴 방해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야겠습니다. 몬스터를 숭배하는 수준의 집단이 사리 분별을 잘 해내리라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왕왕 짖어대다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질 수도 있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지역을 지배하면서 폐쇄 정책을 펼치고 있는 집단이라면, 외부 세력의 접근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접촉하게 된다면, 조용히 볼 일만 보고 갈 건데, 만약 방해한다면 남김없이 쓸어버릴 거라고 전할 겁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할 겁니다.”

지금으로써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갈 여유가 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과감하게 치워버려야만 했다.

어느새 저 수평선 너머로 제주도 일부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날이 맑았기에 시계가 아주 넓었다.

“오, 한라산이다! 아, 그러고 보니 지수 누님 본가가 제주도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한호의 물음에 대답하며, 지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와, 그럼 진짜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 거네요? 기분이 좀 이상하시겠어요?”

“글쎄, 별로 그리운 곳은 아니에요.”

그녀는 언제나 고향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아꼈다. 성우는 그저,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겠거니 생각하고 구태여 묻지 않아 왔다.

“아하, 하하하, 저는 제주도 처음이라서······ 좋을 때 한 번쯤 놀러 왔어야 했는데 말이죠.”

영 눈치가 없는 한호지만, 그래도 지수가 껄끄러워한다는 걸 느끼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발아래로 보이는 제주도의 모습이 점점 부풀어 갈 때였다.

“제주도 방향에서 뭔가 접근합니다!”

관측 담당 승무원의 보고와 함께 선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 약 20기 정도 되어 보입니다. 넓게 퍼져서 다가옵니다!”

“전원 전투 준비!”

인호의 외침에 선루 갑판과 곳곳의 포탑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포구가 적들을 향했다. 이미 한차례 전투를 치렀기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어, 근데 말인가 저거?”

그건 독수리와 말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생김새, ‘히포그리포(Hippogriff)’였다. 그것들은 엄청난 속도로 공중 기동하며 세계수 함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공격합니까?”

화기통제 담당 승무원이 물었고 인호가 성우를 돌아보았다.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기다리죠.”

“어? 저들의 선두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는데 아무래도 착륙하라는 신호 같습니다.”

성우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착륙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도를 낮추고 정지 비행한 뒤, 우리 갑판으로 내려오라고 하세요.”

꿀릴 게 없는 상황에서 저들의 요구에 고분고분하게 따라줄 마음은 없었다.

성우의 명령은 메신저호의 선루 갑판에 전해졌고 갑판장이 히포그리프 부대를 향해 착륙 사인을 보냈다.

성우는 함교의 창문을 통하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착륙 요구에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듯, 한동안 메신저 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아댔다.

“······내려옵니다.”

이내 몇 히포그리프 몇 마리가 고삐를 틀어, 메신저호의 갑판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들 중 일부가 갑판에 착륙했습니다.”

성우는 무장하고 갑판으로 나갔다. 정말 딱 한 마디만이라도 제안해볼 생각이었다.

“모두 물러서세요.”

갑판병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갑판의 한쪽 구석에 거대한 짐승 5마리가 내려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거대한 날개를 접으며 콧바람을 내뿜어댔다.

“총 10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석궁과 창으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이 걸어 나왔다.

‘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다.’

성우는 그들의 얼굴을 살피는 순간, 대번에 이상함이 느낄 수 있었다. 하나 같이 눈동자가 풀려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성우 앞에 섰다.

“당신들은 지금 성역을 넘어왔다. 더 늦기 전에 이 무식한 물건을 돌려서 나가길 경고한다.”

“······성역?”

“여기서부터는 신성한 산의 호수, 백록담에 잠들어 계신 신의 영역이란 말이다.”

그 말에 인호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들은 보나 마나 제주도를 점령하고 있다는 몬스터 숭배자들이었다.

“뭐가 됐든 우리는 당신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온 게 아니야. 길을 비켜주면 볼일만 보고 가지.”

성우는 예정해두었던 최후의 통첩을 했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은 한층 험악해졌다.

“시발, 이거 아무래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신을 모시는 곳이라고 했잖아? 이게 무슨 톨게이트 지나가게 해주는 그런 문제 같나?”

이번에는 인호가 나섰다.

“저기 혹시, 당신들 우리가 누군지 모르시는 겁니까? 핸드폰으로 커뮤니티나 방송을 보시거나······.”

“그런 악마 같은 물건은 진작에 폐기했다. 너희가 누구건 간에 당장 여기서 꺼지는 게 좋을 거야. 악마에 홀린 것들 같으니라고······.”

황당한 대답이 나오자 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군. 그랬던 거야.”

언젠가부터 커뮤니티 내에서 제주도 관련 언급이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맨정신이라기보다 뭔가에 홀렸군. 붉은 혁명군의 천공장군 같은 세뇌 능력자가 있는 건가?’

아무리 세상이 무너져내리고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악마가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하는 건 문명을 겪은 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 였다.

“너 지수냐?”

“맞지? 나 기억하냐?”

광신도 사이에서 지수를 알아보는 이가 등장했다.

“야, 나 강태수다. 한 동네 고등학교 동창끼리 서운하게 기억 못 하는 척은 하지 말지?”

지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에서 그다지 좋지 못한 인연을 우연히 마주친 모양이었다.

“그래, 안녕.”

“이야, 너는 더 이뻐졌네?”

“혹시 가족들 찾아온 거야?”

가족이라는 말에 그녀가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런데······ 모두 살아 있어?”

태수가 피식 웃었다. 그 공허한 눈 안에 멸시가 어리는 게 느껴졌다.

“아, 그게, 미안하지만, 이곳 성역에서는 믿음이 없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어.”

“그럼······ 죽었다고?”

“음, 그게, 내가······ 너희 체육관에 불을 질렀어.”

그렇게 말하더니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놈의 동료들 역시 뭐가 재밌는지 같이 히죽거렸다.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

지수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태수의 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재수 없는 새끼들, 너희 집안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 좀 한다고 학교에서 깝죽거리고 말이야. 오래전부터 죽이고 싶긴 했어. 근데 너도 사실······ 네 가족 혐오하는 거 아니었어? 혼자 배다른 자식이었잖아?”

“오, 뭐야? 요즘 시대에 그런 게 있어?”

“완전 막장 드라마인데?”

“형님들, 얘네 집안 학교에서 유명했어요. 아버지가 학교 앞에서 합기도 도장 운영하는데, 수시로 여자 바꿔가면서······.”

성우는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성우는 태수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이 이상 길게 말하지 않을 거야. 길을 비키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에 선택해.”

성우가 엄포를 놓았지만, 그들의 표정에 분노와 비웃음이 어렸다.

정말로 핸드폰을 모두 폐기하고 아무런 소식도 접하지 않은 것인지, 자신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좋아, 그럼 죽어.”

성우는 단 한 마디라도 더 권유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핸드 캐논을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갑판병들이 무기를 들어 올렸다.

히이이이!

그때, 히포그리프 빛이 터져 나오며 그들의 몸을 감싸 안았다. 백색 방어막이었다.

’믿는구석이 있었군.’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게 비행선에 올라탄다 싶었다. 역시 탈출할 자신이 있던 것이다.

성우는 등에 둘러매고 있던 ‘겨울 포식자’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날아오르는 히포그리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방어막이 풀리는 순간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성우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었다. 성우의 등 뒤에서 누군가 튀어나갔다.

지수였다.

“제가 할게요!”

그녀는 순식간에 선루 갑판을 가로지른 뒤, 선수를 밟고 도약했다. 비행선 밖, 드넓은 창공을 향해 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몸에는 검붉은 색의 전신 갑주가 장착되어 있었다. 발키리의 권능이었다.

히이이이!

하지만 히포그리프의 비상 속도는 남달랐다. 갑판 위를 말처럼 박차고 올라 독수리처럼 날개를 펼치자 단숨에 수십 미터를 주파했다.

그것들을 따라잡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지수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훙一

그녀의 몸은 저 먼 하늘, 히포그리프 대열의 앞에 나타났다. 마치 순간 이동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성우가 아는 ‘그림자 추적’ 기술도 아니었다.

촤아아아아아一

그리고 그 두 지점 사이에 모든 것들이 머리를 잃었다. 인간이나 짐승 할 것 없이, 힘을 잃고 허물어지며,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맙소사.”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는 순간 이동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몸 자체가 마치 한 줄기의 섬광처럼 쏘아져, 적들을 꿰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지수의 검이 거대한 궤적을 그렸으며, 그 궤적을 따라서 파란 하늘 위로 한 줄기의 핏자국이 길게 뻗어 나갔다.

‘생각 이상이다. 살상력의 극치에 달했다.’

서울의 전장에서 일도에 수백 명의 머리를 쳤다는 그 기술, 성우도 직접 본적 없는 ‘발키리’의 위력이었다.

텅一

지수는 다시금 섬광처럼 날아와 비행선에 착지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갑판 위로 내던졌다. 그건 태수였다.

“윽! 너, 너는 대체 정체가 뭐야?”

단숨에 공중의 적들을 도륙하면서도 정확히 태수만을 골라내 사로잡은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면 아쉽잖아?”

애애애애一

그때, 지상에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너, 너희는 신의 노여움을 샀다! 저, 전부 제물로 바쳐질 거야! 으흐흐!”

태수가 몸을 웅크리며 낄낄거렸다.

“지상에서 감시하고 있던 병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뭐, 당연하겠지만요.“

이내 더 많은 숫자의 히포그리프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장면에 인호가 한탄했다.

“하, 이거 참······ 역시나 사리 분별 못 하는 놈들 같은데요? 어떻게 할까요? 이 정신병자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한담?”

성우는 한라산, 백록담 부근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종류의 환자들에게는 확실한 약이 하나 있다.

“신이 없다는 걸 보여줘야죠.”

신을 죽이는 것이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