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58) 전후 수습, 두 번째 시스템 오류 - 3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이무기의 입을 빌려 말하길, 자신의 목적은 ‘시스템의 붕괴’라고 했다. 성우는 그 비밀 작전의 메인 카드로 선정된 셈이었다.
‘그렇다는 뜻은 나 말고도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고려되었다는 거다.’
즉, 그 플레이어들 역시 조력자의 영향권 하에서 성우를 돕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대산맥의 왕을 이용하여 지수 씨의 각성과 신격 획득을 유도한 것 역시 그 일환일 테고?’
그리고 이 여자, 리웨이 역시 조력자의 패에 들어 있는 카드 중 한 장일 것이었다.
“응? 왜 그렇게 노려 보지?”
리웨이는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성우를 마주 보았다.
“지금 되게 못마땅하다는 표정인데? 음, 이러다가 나 다시 쫓겨나는 건가?”
못마땅한 건 맞았다. 그녀는 성우와 마주 앉은 채 ‘악마의 석상(축복의 증표)’을 책상 위에 올려뒀는데, 왼팔로 그 물건을 가리고 있었다.
분명 성우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가져 온 것일 테지만 쉽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도 있어.”
“하, 역시 여기나 저기나 매정한 세상이야.”
“그래서, 넌 뭘 원하지?”
“······.”
성우의 물음에 그녀는 딴청을 피웠다.
“중국 서버? 황제를 무너뜨리고 잃어버린 네 권력을 찾아주길 바라나?”
성우가 직설적으로 묻자 그녀가 고개를 홱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 땅은 내 소유가 아니야. 모두의 땅으로 돌아가는 게 맞아. 그리고 나는 2서버를 소유했던 게 아니라 그저 그 서버 랭킹 1위였을 뿐이라고. 다만······.”
순간 그녀의 표정에 울분이 어렸다.
“내 정령들이 놈들한테 붙잡혀 있어. 나는 그 녀석들을 되찾고 싶어.”
“정령이라······.”
성우는 싱 장군이 다루었던 ‘정령제궤’가 떠올랐다. 놈이 정령을 구속하고 억지로 부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것들 리웨이의 정령인 모양이었다.
“그 정령들은 베이징에 있나?”
“맞아. 마법으로 구속되어 있을 거야.”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중국 서버를 공격할 예정이다. 그때 정령을 구할 기회를 주지. 베이징으로 데려가면 알아서 할 수 있겠지?”
“좋아. 그렇게 해줘.”
리웨이는 쥐고 있던 석상을 탁자 위로 미끄러뜨렸다. 그 물건이 마침내 성우의 손에 들어왔다.
- 적대 진영의 아이템 ‘악마의 석상(축복의 증표)’을 획득했습니다.
* 악마 진영 소속 ‘고위 계급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보상입니다. 아군 진영의 ‘상징물(세계수)’로 가면 ‘진영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세계수로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성우는 축복의 증표를 챙기며 리웨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그 정체불명의 존재······ 그러니까 네가 망할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와 어떻게 접촉했지?”
조력자와 접촉하는 방법은 오로지 그가 찾아오는 것뿐이었는데,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여 물어본 것이었다.
“음, 그건 너도 알 것 같은데? 시스템 오류 말이야. 갑자기 에러 메시지가 막 출력되면서, 그거 알지?”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와 전투에서 진 뒤에 ‘정령왕’을 소환하여 탈출했는데, 그때 그 시스템 오류가 일어났어.”
“정령왕?”
“아, 정령왕은 정령술사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정령인데, 아무튼 그 녀석한테 빙의하더니 황제를 꺾고 싶으면 너한테 가라고 알려준 거야.”
결국, 조력자가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하, 그래서 도망치던 중에 방향을 틀어서 싱 장군의 거처로 몰래 잠입했다니까?”
그녀는 의자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진짜 죽을 뻔했지. 심지어 죽을 뻔한 상황을 넘기고 탈출하던 중이었는데, 다시 놈들의 입속으로 기어들어 가서 죽을 뻔한 상황을 두 번이나 넘긴 거야.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겠지?”
성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역시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그리고 있는 거대한 그림이 취향에 맞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 * *
성우는 두 개의 석상을 세계수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어떤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 적대 진영으로부터 얻은 ‘전리품’을 소비하여 ‘보상(진영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제사장의 표식
2) 대장군의 표식
3) 심판관의 표식
진영 운영에 필요한 아이템을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당연하게도 3번에 눈길이 갔다.
“역시 얻을 수 있다는 게 이거였나?”
얼마 전 천사 심판관을 잡고 얻은 아이템, 심판관의 표식, 그 아이템은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어떤 ‘조건’ 중 하나였다. 성우는 고민 없이 3번을 선택했다.
우우우-
천사와 악마, 두 개의 석상이 형체를 잃고 한 줄기의 빛으로 합쳐졌다. 그리고 다른 형상으로 조형되더니 성우의 손 위에 안착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심판관의 표식
- 등급 : 특수
- 분류 : 진영 아이템
- 효과 : 해당 표식을 가진 이는 같은 진영 소속원을 ‘심판 대상자’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위치를 추적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90%에 이르는 모든 능력치 감소를 부여합니다.)
- 설명 : 진영의 특별한 성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능으로 진영의 규율과 치안 유지에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 을 것이다.
‘이걸로 모든 조건을 만족했다.’
이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 특별한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 리치(죽음을 다루는 자) + 비형랑의 부채(귀신을 부리는 자) + 심판관의 표식(법을 집행하는 자) + 심판관의 표식(법을 집행하는 자)
- 새로운 신격 ‘염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염라? 아누비스처럼 죽음을 다루는 신격이다. 신격을 두 개나 가질 수 있는 건가?’
아누비스의 권능은 성우의 전력을 엄청난 폭으로 끌어 올려주었다.
그 위에 새로운 신격이 추가된다면 단순히 2배가 되는 걸 넘어서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 주의! 아직 레벨이 부족하여 두 개의 신격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는 포기해야만 합니다.
* 다중 신격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최소 ‘25레벨’이 되어야 합니다.
“아, 이러면 낭패인데······.”
성우는 현재 23레벨이었다. 두 개의 신격을 다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2레벨을 올려야 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전쟁 전에는 달성하기 어렵다.’
전쟁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니 사냥에 나서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성우 씨, 백색 늑대가 도착했습니다.”
역시 사냥에 나설 여유 따위는 없었다. 사이코메트리를 깨고 싱 장군의 기억을 보는 게 우선이었다.
* * *
백색 늑대, 그는 충남 지역에서 수인들의 마을을 조성하는 중이었는데, 성우의 협력 요청에 응하여 곧바로 달려 왔다. 벌써 두 번째 응답이었다.
그는 네크로맨서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기에 반강제적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음, 그러니까 저 시체에 사이코메트리에 의한 간섭이 걸려 있단 말이지?”
백색 늑대는 성우의 설명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싱 장군 스켈레톤에 손을 슬쩍 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느껴져. 확실히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
“그걸 깰 수 있나?”
“음······.”
그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사이코메트리 간의 대결은 몸이 아니라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잘못되면 내 정신이 파괴당해서 죽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지.”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반대의 경우가 존재하긴 한다는 뜻인데?”
성우는 어떻게든 싱 장군의 기억을 볼 생각이었고 백색 늑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주 극단적인 방법인데······ 당신이 먼저 기억 안으로 들어가서 놈의 주의를 끌어줄 필요가 있어.”
그는 검지를 들어 올려 스켈레톤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이곳은 지금 놈의 정신세계나 다름 없어. 그러니까 정신을 사납게 만들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면······ 내가 놈의 정신 속으로 파고 들어갈 틈이 생길 거야.”
“그래서, 어떻게 주의를 끌지?”
백색 늑대는 스켈레톤의 해골을 움켜 쥐고 흔들었다.
“혼란을 만들어. 누군가 자신의 정신 속으로 파고 들어오고 있다는 걸 모를 정도로 다른 곳에 집중하게 하면 돼. 쉽게 말하면······ 열 받게 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인지 알겠어. 한 번 해보도록 하지.”
백색 늑대는 성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우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명심해. 놈이 눈치채면 이 싸움은 성립되지 않아. 정신은 육체와 달라서 조금의 충격만으로도 말소되고 말 거야. 부디······ 나를 죽이지 말아줬으면 해.”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켈레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백색 늑대의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신중히 고려해볼 시간조차 없었다.
- 망자의 ‘기억 파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기억 안으로 들어갔다.
타닥- 타닥-
이번에도 역시 똑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화로가 놓인 방, 탁자, 콧수염의 남자가 보였다.
“또 뭐지?”
그는 성우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 못 한 방문이 언짢은 기색이었다.
“······아, 설마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들어온 건가? 헛수고하지 마. 이 기억은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건 언제 어디서든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알아.”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혹시 내 제안을 승낙하려고 온 건가? 응?”
놈은 씩 웃으며 고개를 디밀었다. 아무래도 또다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모양이었다.
“돌아가서 생각해보니 두려움에 잠이 오지 않던? 그래서 그 고집을 꺾고 황제께 충성할 마음이 생긴······.”
“닥쳐.”
그 순간,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원형 탁자를 뒤집어 엎어버렸다.
쾅!
탁자가 붕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찻잔이 튕겨 나가며 놈의 이마에 맞았다.
“뭐, 뭐 하는 짓이야!”
텅!
이번에는 화로를 걷어차 버렸다. 그 거대한 쇳덩이가 공처럼 날아가 벽을 뚫고 나갔다. 장작이 산탄총처럼 흩어지고 잿가루가 방안을 뿌옇게 만들었다.
“미, 미친! 이게 갑자기 뭐 하는 짓이냐고!”
하지만 성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 전체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장식장을 박살 내고, 괘종시계를 끌어내리고, 화분을 들어 올려 놈의 얼굴에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쾅! 쾅!
화를 돋워 정신을 사납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난동’이었다. 분노라는 원초적인 감정은 단순무식한 자극만으로도 쉽게 일어나는 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난데없는 광경을 바라보는 놈은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미, 미친놈! 여, 여기는 현실이 아니라 허상 속이다! 그렇게 굴어도 아무 소용 없다고 이 교양 없는 족속 같으니라고! 대체 왜, 왜 이딴 짓을 하는 거야?······.”
놈의 말대로 허상 속이지만, 눈앞에서 이런 식으로 난동을 부려대니 열이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검지를 들어 올렸다.
“으으! 당장 꺼져! 그리고 다신 오지 마.”
그는 단호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이전처럼 성우를 강제로 퇴장시킬 작정이었다.
“······.”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우는 여전히 기억 파편 속에 서 있었다. 놈은 이상함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뭐야? 대체 왜?”
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 세상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얼굴 한가득 당황이 번져나갔다.
그때, 어디선가 제삼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곳은 이제 네 세계가 아니다.”
이내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창밖에서 바람이 치고 들어오며 백색 커튼이 휘날렸다. 구름이 걷히며 보름 달이 드러났다. 그 찬란한 빛이 놈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이제 내가 통제한다.”
어느새 테라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파란 눈동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건 백색의 웨어 울프였다.
성우가 난동을 일으킨 틈을 타 놈의 정신세계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대체 뭐야?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백색의 웨어 울프가 방안으로 걸어들어오자 콧수염의 남자는 뒷걸음질 쳤다.
“꺼, 꺼져! 아, 아니 날 그냥 내보내 줘!”
이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으니 누군가를 쫓아낼 수도, 심지어 스스로 나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놈이 할 수 있는 건 벽에 등을 댄 채 벌벌 떠는 게 전부였다.
“제, 제발······.”
백색의 늑대가 천천히 다가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놈의 목을 대번에 물어뜯었다.
“커, 컥······.”
놈의 정신을 죽여버린 것이었다.
- 망자의 기억이 얽히며 ‘감추어진 장면’이 드러납니다.
“······감추어진 장면?”
백색 늑대가 입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을 거다. 이것도 사이코메트리의 효과다.“
그 순간,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엉망이 된 방이 움직여 등 뒤로 사라지더니, 성우는 어느새 베이징의 어느 고층 빌딩 안에 서 있었다.
드디어 진짜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패배할 일은 없다.”
싱 장군이었다. 그는 창문 아래, 8차 선 도로 위에 정렬 중인 병력을 내려다보며 승리를 자부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하! 이런 대군을 그 무엇으로 막아내겠습니까?”
그의 양옆에 선 참모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싱 장군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 우리의 위세만으로도 차고 넘치니 저 끔찍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는 고개를 돌려, 건물 안의 난간을 붙들었다. 난간 아래로 드넓은 로비가 보였는데, 그곳에 보라색 포탈이 열려 있었다.
‘끔찍한 무기?’
그건 아무래도 저 포탈을 지칭하는 듯했다.
“정말 저건 언제 봐도 소름 끼칩니다.”
우우우우우-
그런 포탈이 무려 십여 개로, 로비를 가득 채운 채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 소리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울음 소리처럼 울리며 빌딩 안을 떠돌았다. 성우는 저 괴상한 포탈이 뭔지 알았다.
‘마굴의 문이다.’
끔찍한 괴물을 끝도 없이 쏟아내는 그 구멍이 무려 21개나 열려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진정······ 저 괴물들을 통제하실 수 있겠지요?”
“그분을 의심하는 건가?”
“그, 그런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싱 장군은 싱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포탈을 가리켰다.
“황제 폐하는 마굴의 우두머리와 약조를 맺으셨다. 저 구멍 안의 괴물들은 언제든 우리를 위해 싸울 거다.”
마굴의 우두머리라면 마굴의 지배자 ‘월드 이터’를 뜻하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군.’
황제의 정체가 드러났다. ‘진화 학회’처럼 월드 이터의 가호를 받으며 성장한 플레이어, 즉 ‘타락자’가 분명했다.
그 장면을 같이 보고 있던 백색의 늑대는 질린 표정으로 성우를 쳐다보았다.
“저걸······ 이길 수 있겠나?”
성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문을 닫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다.’
평양에서 샐러맨더를 죽였을 때, 월드 이터가 나타나 십여 개의 마굴의 문을 연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산맥의 왕이 가져온 산의 정기가 담긴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포탈을 강제 폐쇄했었다.
‘하지만 저렇게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면 닫는 것조차 어려울 텐데······‘
평양에서 문을 닫는 게 가능했던 건, 개방된 장소였던데다가, 다수의 마물이 기어 나오기 전에 빠르게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닫고 나서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건 정말로······‘
오랜만에 좌절이란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할 때, 다행히도 한줄기 희망이 함께 내려왔다.
[전용 퀘스트]
- 이름 : 수호자의 의무-3
- 유형 : 목표 파괴
- 목표 : ‘마굴의 심장’ 파괴
- 보상 : ‘신격(神格) 상승’, ‘직업 변경권’ 중 택1
당신은 외부 차원의 대대적인 공습을 미리 예견하였다. 그리고 수호자로서 그 재앙을 막아낼 의무가 있다.
마굴의 문은 모두 하나의 세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는 ‘마굴의 심장’이 있다. 그것을 파괴한다면 마굴을 통째로 무너뜨림으로써 두 세계의 악연을 영영 단절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마굴 진입 후 48시간 이내에 공략하지 못할 시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됩니다.
* ‘마굴의 심장’을 파괴되면 이 세계에 열려 있는 모든 ‘마굴의 문’이 폐쇄됩니다.
이 세계의 ‘수호자’에게 저 말도 안되는 시련에 대응할 수 있는 힌트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래, 마굴이다.”
성우는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던 마굴의 문 스크롤을 떠올렸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마굴의 문 2층
- 등급 : 특수
- 분류 : 마법 스크롤
- 효과 : 사용 시 36시간 동안 마굴의 문을 연다.
- 설명 : 마굴과 이어지는 통로를 만듭니다. 마굴 안을 탐험하면 매우 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섣불리 시도하지 않길 권유합니다. 내가 들어 갈 수 있는 문은 누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권장 레벨 43)
언젠가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듯했다.
그리고 무려 권장 레벨43의 던전이라면······.
“······25레벨을 만들 수 있다.”
전쟁이 재개되기 전, 2개의 신격을 탑재할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