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57) 서울, 수원, 부산 동시 전쟁 - 6
한편, 유일하게 살아남은 비행선인 베이커 제독의 기함 역시 전투에 휘말린 상태였다.
“선내 침투입니다!”
“당장 놈들을 떼어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빌딩은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지만, 그 순간, 빌딩에 붙어 있던 몇 마리의 언데드가 비행선 위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 그게 선루 갑판병들이 맞서 싸우고 있지만 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계와 성벽을 뚫어낼 만큼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비행선이었지만, 탑승 인원이 47명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전투에 특화된 승무원은 고작해야 서른 명 남짓이니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군이 미, 밀립니다!”
“너희들은 기함의 경비대다! 절대 뚫리지 마라!”
그나마 가장 준수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기함 승무원으로 선발되었기에,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놈들이 이쪽, 함교로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데드들이 선루 갑판을 벗어나, 비행선 외벽을 타고 함교로 향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 이미 왔습니다!”
이내 십여 마리의 구울이 함교의 창문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흉기 같은 손을 휘둘렀다.
쩡! 쩡! 쩡!
함교의 유리창 위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나자 모두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안돼!”
“이대로면 노, 놈들이 침입합니다!”
하지만 베이커 제독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의 등 뒤로 장총 3자루가 서서히 떠올랐다.
“제, 제독님?”
“제독님! 부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누군가의 닦달에 베이커 제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싸워. 못 하겠으면 저리 꺼지고.“
최후의 명령치고는 무책임하기 그지 없었다.
콰一직!
결국,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십여 마리의 구울이 함교로 침투했다.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울보다 빠를 순 없었다.
꺼一윽! 꺼—윽!
그것들은 길길이 날뛰며 승무원들을 덮쳤고, 조종 공백이 생긴 기함이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베이커 제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균형을 잡았다. 동시에 3개의 총구가 적들의 머리를 겨누었다.
타—다—당!
그것들이 연달아 불을 뿜자 구울 3마리의 두개골이 산산이 조각나며 엎어졌다.
하지만 조각난 것들이 다시 엉겨 붙으며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베이커 제독은 인상을 찌푸렸다.
“역겨운 것들······.“
철컥一
3자루의 장총이 저절로 장전되었다. 물론 약실을 채우는 건 실물 탄환이 아니었다. 실린더 부분에 원형 도형이 떠오르더니 회전하며 마나를 공급했다.
“으아아! 저리 가! 저리 가!”
“······제, 제독님 사, 살려······ 컥!”
거의 모든 승무원이 학살당한 가운데 , 베이커 제독만이 유일하게 꼿꼿하게 서 있었다.
“쯧쯧, 쓸모없는 것들······.“
제독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마법으로 만들어진 탄띠가 뻗어 올라왔다. 그것들이 허공에 떠오른 장총에 연결되었다.
이어서 어깨 부근에서 마법으로 만들어진 지지대가 솟아오르며 장총을 단단히 고정했다.
“미국은 함락했어도 내 함교는 함락 하지 못한다.”
이내 3개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다!
그건 일정 시간 동안 장전 없이 난사할 수 있는 스킬이었는데, 마치 베이커 제독의 몸뚱이가 기관총 포대가 된 것 같았다.
꺽! 꺽!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총알 세례에, 구울은 베이커 제독을 향해 접근하지 못했다.
조각 난 구울의 사체가 이리저리 튕겨 나가고 함교의 계기판이 벌집이 되었다.
“······이 더러운 것들!”
언제나 무표정했던 베이커 제독의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건 분노였다.
“당장 내 집에서 꺼져!”
구울은 특유의 변칙적인 기동력으로 움직이며 베이커 제독을 노렸으나, 그는 조금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말 인간 포탑 그 자체로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딱?
몸을 숙이고 몰래 접근한 아주 작은 언데드 한 마리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건 고블린 스켈레톤이었다.
“······뭐야 이건?”
녀석은 장검 한 자루를 쥐고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넓적 엎드려 있었다.
타다다-당!
베이커 제독은 서둘러 등 뒤의 장총 한 자루를 움직여 사격했지만, 녀석은 영리하게도 몸을 던져 총알을 피해냈다.
“망할!”
그 작은 괴물은 어느새 베이커 제독을 향해, 세 걸음 거리까지 파고 들어 왔다. 총구가 기울어지며 녀석의 머리통을 따라갔다.
턱-
그런데 어깨의 지지대에 걸려 총으로 맞힐 각도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베이커 제독은 황급히 뒷걸음질치며 허리춤에서 ‘핸드 캐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명중했지만, 녀석의 왼쪽 갈빗대 몇 개를 튕겨내는 데 그쳤다.
딱딱!
녀석은 잠시 주춤했지만, 멈추지 않고 들러붙었다. 어느새 한 걸음 거리까지 다가왔다.
“저리 꺼져!”
베이커 제독은 장전이 필요한 핸드 캐논을 내던지고 호신용 칼을 뽑아 들었다.
그래, 저런 작은 괴물쯤이야, 맞붙어 튕겨낸 뒤, 각도를 확보하여 총으로 맞히면 그만이었다.
“······뭐?”
그런데 맞붙기 직전, 고블린 스켈레톤이 칼을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허리춤에서 ‘핸드 캐논’을 뽑아 들었다.
베이커 제독은 멍하니 그 총구를 바라보았다. 핸드 캐논이 그의 머리로 겨누어 졌다.
“······아?”
수 싸움에서 완벽히 저버렸다.
콰—앙!
산탄총이 베이커 제독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머리 잃은 몸뚱이 허망하게 무너지며, 언제나 고고하게 앉아 있던 그 의자 위로 미끄러져 내렸다.
“······.“
함교는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제독 포함 기함의 승무원이 전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으로 하나의 발걸음이 들어왔다.
“벌써 끝난 거야?”
성우였다. 그는 구울들을 시켜 난장판이 된 함교 안을 수색하게 했다. 그리고 머리를 잃은 베이커 제독의 시신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 결과, 그의 제복 안 주머니에서 특이한 물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천사?”
그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천사 인형이었다.
- 적대 진영의 아이템 ‘천사의 석상(축복의 증표)’을 획득했습니다.
* 천사 진영 소속 ‘고위 계급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보상입니다. 아군 진영의 6상징물(세계수)’로 가면 ‘진영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산맥의 왕이 말했던 석상이다.’
성우를 돕고 있는 어떤 존재가 대산맥의 왕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해왔었다.
석상 같은 물건을 총 2개 구하여 세계수로 가져가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걸로 한개는 얻었다.”
나머지 하나는 싱 장군이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그쪽을 끝내러 가자.”
전세가 확연히 기울었지만 싱 장군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판단하길, 재차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이대로 현상 유지를 하며 서울 쪽 지원을 기다린다면, 승리 버프까지 얻어 내어 다시 반격할 수 있다.’
그가 전해 들은 서울 쪽 최신 소식은 한국 서버의 잔당을 섬멸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이 었다.
그 이후, 네크로맨서의 공습이 시작되는 바람에 추가 보고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만, 압도적인 걸 넘어서 이미 승리한 상황이었기에, 곧 서울 쪽 지원이 도착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버틴다. 버티면 이긴다.’
그는 나머지 ‘정령제궤(精靈制櫃)’를 모두 개방하여 총 4개 분량의 ‘상급 물의 정령’을 통제했다.
그것들은 전장의 하늘에서 한 대 뒤엉키며, 성난 파도처럼 요동쳤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마치 대양의 폭풍우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끄에에에!
“그래, 더욱 분노해라. 나에 대한 그 분노를 나의 적에게 돌려라!”
자연재해를 웃도는 힘이 싱 장군의 손아귀에 담긴 것이다. 그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 육중한 기차처럼 돌진해오는 뼈 이무기를 덮쳤다.
콰과과과과과!
기차는 파도를 이길 수 없다. 뼈 이무기는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 오는 날의 도랑에 빠진 뱀처럼 무력해 보였다.
싱 장군은 뼈 이무기를 향해 뻗은 손을 그대로 주먹 쥐었다. 그러자 파도가 용솟음치며 회전했다.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마, 맙소사! 저건 또 뭐야!”
“이 전쟁······ 미쳤어.”
전장의 플레이어들은 치열한 전투 중일지라도 잠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끄에에에!
하물며 그건 단순한 소용돌이가 아니었다. 정령의 팔이 회전축을 중심으로 밖을 향해 길게 뻗어 나와 뾰족한 발톱을 드러냈다.
그러자 걸리는 모든 걸 회전 톱날처럼 갉아버렸다. 도로 양쪽의 콘크리트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피해! 가까이 가면 빨려 들어가!“
네크로맨서가 벌인 빌딩의 낙하가 지형지물을 추가한 상황이라면, 이 거대한 소용돌이는 지형지물을 삭제해버리는 중이었다.
그러하니 소용돌이의 중심에 놓인 뼈 이무기는 제아무리 튼튼하다고 한들, 형체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콰드드드드!
수십 미터짜리 괴물이 통째로 갈려 나가는 광경은 정말 압도적이었는데, 빌딩 낙하만 없었더라면 이번 전쟁 최고의 장면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대륙의 힘이다.“
언제나 신중한 싱 장군이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힘에 도취 되었다.
“역시! 치수(治水)를 이끄는 황제를 제외한다면, 대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있는 건 없다.”
인간에게 물은 언제나 두려운 대상이었다. 인간의 역사 내내 어떻게든 물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고삐를 놓치는 순간 모든 게 휩쓸려 나가고 말았다.
물은 그 무엇보다 예측 불가능하며 파괴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그 무시무시한 존재를 한 손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단언컨대, 그건 최고의 무기나 다름 없다.”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싱 장군의 판단은 확신이 섰다. 이대로면 버틸 수 있었다.
그때였다. 자신감 있게 걸어 나가는 그의 앞에, 난데없이 붉은 경고 문구가 태클을 걸고 들어왔다.
- 당신의 통제 아래 있는 ‘정령(상급 물의 정령)’이 치명적인 문제로 ‘행동 불능’ 상태에 빠집니다.
“······뭐?”
싱 장군은 당황하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저게 뭐야!”
쩌저저저저저一
그 거대한 소용돌이가 아주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물결이 딱딱하게 멈춰 서고, 엄청난 양의 물방울이 몸집을 불려가며, 마치 남극의 빙벽 같은 거대한 얼음 장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 부, 불가능한 일이야! 대체 뭐가 상급 물의 정령을 얼릴 수 있단 말이냐?”
정령은 일반적인 물과 달랐다. 강력한 마나를 내재하고 있는 존재이기 고작 빙결 마법에 맞는다고 얼어붙을 존재가 아니었다.
싱 장군은 고개를 돌려 그 말도 안 되는 빙결 마법의 진원지를 찾았다.
“아, 저건! 서, 설마?”
그리고 그게 고작 빙결 마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상공에 뜬 본 와이번 한 마리, 그리고 그 등 뒤에 서 있는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그는 독특하게 생긴 라이플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건에서 번져 나오는 특이한 파동······ 싱 장군은 정령술사로서 그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건 분명 ‘프로즌 시드’였다.
“말도 안 돼.”
싱 장군은 오래전부터 프로즌 시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열린 모종의 ‘히든 퀘스트’ 이후에 발견된 물건이었다.
황제의 친위대인 금의위(衣)가 2서버의 정령술사 리웨이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공수하려고 했지만, 운송 중 유실로 실패했었다.
물론 그 이후, 시베리아의 사냥꾼들이 그 물건을 손에 넣었지만, 서울 전투에서 네크로맨서에게 빼앗겼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통제하고 있는 거지?”
문제는 그 무지막지한 물건을 라이플 형태의 개인 병기처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싱 장군 역시 ‘프로즌 시드’의 파괴력은 익히 알았다. 그건 어떻게 해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막 되어 먹은 물건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정된 위치에 사용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사용자 측에게도 피해가 갈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프로즌 시드가 설치되면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뜨기에,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걸 총처럼 사용하다니? 저건 대체 무슨 기술이란 마, 말이냐!”
싱 장군은 뒷걸음질 쳤다.
“이건 졌다. 이길 수 없다.”
그는 손을 잡아당겨 얼마 남지 않은 상급 물의 정령을 후퇴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발아래로 옮겨왔는데, 그 위에 올라타서 마치 파도를 타듯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몸이 붕 떠올라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살아남을 방법 찾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병력과 서울에서 온 병력을 규합하여······.
푹!
하지만 그의 계획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억!”
무언가 발목에 박히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말았다. 그대로 물결 아래로 굴러 떨어져, 전장의 외곽, 아스팔트 바닥에 추락했다.
“으으으!”
신음하며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웬 단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게 느껴졌다.
“제, 젠장 마비 마법까지······.“
그때, 저 멀리, 누군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세레모니를 하듯 덩실덩실 괴상한 춤을 추며 다가오는데, 그 복장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나이스 샷! 잡았다!”
미관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듯한 거대한 철제 투구를 썼으며 팔은 무슨 여섯개나 달렸다.
그리고 그 이상한 차림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스러운 후광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니하오! 마마후후! 니 흐워거 쭝궈차마? 뿌!”
결정적으로 이상한 말을 해대기까지 했다. 이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의미에서의 공포였다.
“······뭐, 뭐?”
괴한은 싱 장군의 발치까지 다가와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음, 그러니까······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진 몰라. 고등학교 중국어 시간에 자다가 몇 개 주워들은 거거든. 그래도 너에게 친근해 보이려고 써본 거니까 이해해줘.”
미친놈이다! 싱 장군은 기겁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하체가 마비되어 일어설 수 없었다.
“뭐, 뭐, 뭐라는 거야! 너, 넌 누구냐!“
이에 괴한이 씩 웃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끔찍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딱 보면 몰라?”
싱 장군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괴한은 왼쪽 3번째 팔로 코를 긁적이더니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딱 보면 암살자잖아!”
“아, 암살······.“
“믿기지 않겠지만, 나도 잊고 있던 내 주특기가 바로 암살이란 말이지?”
“······저리 가 미친놈아! 나, 나는 그래도 장군이다! 명예롭게 죽게 해달란 말이야!”
“어어, 그건 걱정하지 마. 얼마 전에 블라디미르라는 친구도 충분하게 명예롭게 보내줬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또 무슨 말이야! 브, 블라디미르가 누군데?”
괴한이 추억에 잠기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햄스터!”
싱 장군은 명예를 지키지 못했다.
* * *
그렇게 싱 장군의 물의 정령마저 무력화되자 한국 서버의 일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구멍 방어에 전념하던 크루세이더 팀이 돌격하여 특유의 난전을 이끌었으며, 사정거리에서 밀려나 결계 안쪽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던 세계수 함대가 출격했다.
“기세가 꺾였다! 쓸어 버리자!”
중국군은 이미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한 데다가 지휘관까지 잃었기에 더는 버틸 요량이 없었다. 결국, 구심점 없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이,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네크로맨서가 등장한 직후, 수원 전장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정리되었고 전투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아직 끝이 아니야! 빨리 끝내고 서울 전장으로 가야 한다! 추격해서 쓸어 버려!”
하지만 거의 다 이겼음에도 다급하기만 했다. 아직 서울 전장에 고립된 아군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 쪽, 아직 버티고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성우 역시 서울 전장의 상황을 아직 전해 듣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걱정을 접을 수 없었다.
* * *
얼마 뒤, 마침내 마지막 전장, 서울의 전장의 한쪽에 ‘합류 포탈’이 열렸다.
- 수원·부산 전장의 ‘승리자(한국 서버)’가 해당 전장에 ‘합류’합니다.
* 한국 서버 측에 ‘전장 승리 버프(2 단계)’가 부여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 상승 +15)
그리고 포탈 안에서 성우를 비롯한 수많은 병력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뭐야 이게!”
그러나 그들을 맞이건 건 서울의 대로 위에 깔린 엄청난 양의 시체뿐이었다. 약 400여 명, 그들은 중국군이 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목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이 사람들······ 단 일격에 죽었다.’
성우는 그렇게 추정했다. 시체들이 전부 똑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었으며, 핏자국 역시 똑같은 궤적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성우의 아는 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헐, 여기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죠?”
방송을 통하여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식은 듣고 왔지만, 막상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건 상상 이상으로 기괴한 장면이었다.
“이보게!”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 건물의 옥상 난간에 누군가 걸터앉아 있었다.
“그래, 여길세!”
대산맥의 왕이었다. 그는 피에 절은 백색 두루마기를 입고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자네들은 늦었어! 그것도 너무 늦었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평양에서 선보인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멋들어지게 도착하는 역할에 실패했군? 네크로맨서, 자네는 지금 딱히 멋있지 않다는 걸세!”
그는 낄낄거리며 곰방대를 들어 올려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뿌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이번에는 저쪽이 멋있지.”
성우는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체가 이어지는 8차선대로의 끝자락, 그곳에는 유독 많은 시체가 쌓여 있었다.
싱 장군이 언젠가 올 거라고 믿었던, 그 강인한 군단이 허무하게 학살을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3개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 신격(神格)을 마주합니다.
‘······신격?’
신격이라니? 성우는 예상하지 못한 메시지에 당황했다.
“설마······.“
신격의 당사자는 검붉은 갑주를 입고 있었다. 곳곳에 새겨진 검은 날개가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날개 문양은 끈적끈적한 피로 뒤덮여 있었다.
“어, 어라? 지, 지수 누님? 맞죠?”
그녀는 당연하게도 지수였다.
그리고 그녀의 좌우로 죽은 줄만 알았던 호걸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몸은 어딘가 불투명했다. 그리고 한 줄기의 빛이 지수의 몸과 이어져 있었다.
‘······권속?’
두 호걸은 마치 지수의 권속처럼 느껴졌다.
“······자네들은 죽음과 인연이 깊군?“
대산맥의 왕이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죽음의 사자인 ‘발키리(Valkyrie)’와 죽음을 겪은 전사인 ‘에인헤랴르(Einherier)’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