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65화 (165/244)

# 165

57) 서울, 수원, 부산 동시 전쟁-5

지수는 벽에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아······.”

캐논이 불을 뿜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 바닥에 엎드리며 시체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 덕분에 목숨은 건졌으나 중상을 면할 수 없었다.

“하······.”

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피에 잠겼다. 온몸의 상처에서 주체할 수 없는 양의 피가 흘렀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미 쇼크로 죽었을 것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수원에 도착했소. 이제 안심하시오.”

대산맥의 왕이 다가왔다. 그는 이제 이 엄청난 양의 뿌리를 유지하는 걸 그만두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럼 서, 성공했네요. 우, 우리······.”

지수가 미소지었다. 이들의 작전은 성공인 셈이었다. 무려 6천에 달하는 병력을 서울에 묶어둠으로써, 한국 서버를 지켜내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콰—앙!

복도에서 폭음이 들렸다. 이내 피투성이가 된 호걸 두 마리가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역시나 대형 캐논에 맞은 것이다.

“······컥!”

지수가 쓰러진 뒤, 그 둘이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제 한계였다.

“큭,형님, 아우가······.”

호걸이 다른 호걸의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주, 죽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호걸의 몸은 지수 이상으로 만신창이였다. 털가죽은 이미 피로 흥건했으며 곳곳에 쇳조각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저, 저도 이제, 끝인 것 같습니다. 죄, 죄송······ 합니다.”

살아남은 호걸마저 눈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게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 수고했다.”

대산맥의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호걸은 그제야 고개를 떨구었다.

“평생 감자만 먹다가 죽다니, 불쌍한 놈들······ 그러나 너희에게는 다른 운명이 있을 것이다.”

대산맥의 왕이 바닥에 박아두었던 청룡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소란이 들려오는 복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직 남아 있는 뿌리가 커튼처럼 움직이며 복도를 틀어막았다.

“낭자, 이제 뿌리가 거둬질 테니, 놈들이 다시금 이 빌딩을 통째로 무너뜨리려고 할 거요. 어떻게 하시겠소? 밖으로 나가나 여기 있으나 죽는 건 매 한가지인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순 없죠.”

지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무력하게 누워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럴 줄 알았소.”

벽과 창문을 막고 있던 뿌리가 사라지며 빛이 스며들어왔다. 그러자 적들이 내뿜는 소란이 짙어졌다. 공성 병기가 굴러가는 소리였다.

쿵! 쿵!

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다시금 포격이 시작되었다.

궁- 구구구구!

그리고 단 두 방 만에 건물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벌써? 아! 지지하고 있던 뿌리가 사라지니 건물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오! 당장 나가야 하오!”

대산맥의 왕은 남은 뿌리를 움직여 지수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곧장 창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신중하게 살피고 나갈 틈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건물에 깔려 죽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창문을 뚫고 나간 순간······.

콰—앙!

별안간 폭발이 일어나며 두 사람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따로 떨어져 나갔다.

“맞았다!”

건물 밖에 대기 중이던 마법사들이 화염 마법을 날린 것이었다.

“으, 윽!”

지수는 바닥 위를 사정 없이 굴렀다. 평소였다면 낙법으로 충격을 최소화 한 뒤, 곧장 균형을 잡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소화전에 허리를 부딪친 뒤에야 멈춰섰다. 그녀는 검을 지팡이 삼아서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얼굴이 피로 물들어 시야가 불투명했다만, 그 언저리에 수많은 발이 나타났다.

“······.”

지수의 주변에만 수백 명의 적이 서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포위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명성을 익히 들었을 테지만 지금 꼴은 다 죽어가는 한 마리 여우에 불과해 보였고 그들은 용기를 내어 가까이 접근했다.

“오호, 이년은 지금 움직이지도 못한다. 당장 죽여!”

지수는 피식 웃으며 이를 꽉 다물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벌써 발아래 피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그녀는 목덜미까지 늘어져 있던 귀면갑(鬼面甲)을 올려 썼다.

“그래······ 좋은 기회니까 어디 해 봐.”

그 순간, 고함과 함께 사방에서 칼, 창, 도끼, 표창, 화살이 날아들었다.

챙! 챙!

지수는 화살 두 대를 쳐냈으나 표창이 등에 박히는 걸 막지는 못했다.

‘최대한 죽인다.’

아니, 막지 않았다. 이제는 몸이 더 망가져도 상관없었다. 더 많이 죽이기 위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움직였다.

채一쟁!

3개의 칼날을 동시에 쳐냈으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고작 이 정도의 충격도 버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균형을 잃은 건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수는 그 틈으로 검을 욱여 넣었다.

“······컥!”

정확히 심장을 꿰뚫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2,00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놈의 흉부에서 검을 뽑아내는 동시에 등 뒤로 휘둘렀다. 두 놈의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4,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4,00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 순간, 허벅지와 어깨에 표창이 박혔다. 왼팔이 축 늘어졌다. 힘줄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자 잠시 주춤했던 포위망이 다시 좁혀졌다.

“죽여!”

하지만 지수는 아직 검을 쥐고 있었고 그러는 한 한 놈이라도 더 죽일 수 있었다. 그녀는 왼쪽으로 달려드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

그런데 검이 없었다.

아니, 오른팔이······ 없었다.

“······아?”

눈을 돌리니, 잘려나간 오른팔이 공중으로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피 웅덩이 위로 낙하했다.

철퍽一

“······대단했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지수의 팔을 자른 복면이 말했다.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끝이 맞다.

지수는 고개를 숙였다. 복면이 다가왔다. 그가 칼을 양손으로 잡았다.

머리 위로 칼날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붕!

목에 닿기 직전, 몸을 틀었다. 옆구리로 칼을 빗겨내며, 놈에게 엉겨 붙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어깨에 박힌 표창을 입으로 뽑아내는 동시에, 고개를 휘저어, 놈의 목덜미를 그어버렸다.

“······커, 컥!”

왼쪽 볼이 길게 찢어졌지만, 놈의 숨통을 끊어냈다.

“그래, 어서 끄, 끝내 봐. 해 봐.”

지수는 완전히 패배한 상황에서도 고분고분하게 죽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 독한 년, 끝까지 정말······.”

“······대단해. 정말 대단해.”

이제는 주변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검성을 섬기며 검을 수련하던 이들이기에, 그들로서는 경외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었다.

푹! 푹! 푹!

가슴팍에 화살 3대가 박혔다.

온몸에 모든 피가 빠져나가는 걸 넘어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흘러나가 버리는 게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영혼?’

세상이 어두워졌다.

“······.”

그리고 다시 밝아졌다.

- ‘알수 없는 장소’에 입장하셨습니다.

‘뭐야, 시끄러워.’

그리고 아주 소란스러워졌다. 사방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고함이 들려 왔다.

노랫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거친 싸움 소리까지······ 뭐랄까, 난데없이 파티장의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았다.

여긴 뭐지?

지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희뿌연 시야만으로 추정하길, 아주 거대한 오두막 안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먹고 떠드는 중이었는데······.

‘조용!’

그때 누군가 소리치자 침묵이 감돌았다. 오두막의 가장 높은 곳에 앉은 남자였다.

지수의 감각이 말하길, 이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어떤 메시지 전달을 위한 이벤트 신(Event scene)이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운명이 이곳에 당도했다. 아주 강렬한 싸움 끝에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 자이다. 죽기 직전까지 숱한 목숨을 거두었다. 그러하니······.”

그건 지수를 뜻하는 것일 텐데······ 그 모든 걸 떠나서 그녀는 고민했다.

이 황당한 장면은 죽는 과정의 망상일까? 아니면 시스템에 의한 어떤 변화를 뜻하는 걸까?

후자이길 바랐다. 그때, 높은 곳에 앉은 자가 입을 열었다.

’······자격이 충분하군.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 더 많은 목숨을 거두어들이는 역할을 할 만한 그릇이야. 이견이 있는 자가 있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수는 그 말에 귀가 확 뜨였다. 지상으로라니?

‘그렇다면, 이자에게 그 역할을 맡기도록 한다.’

그녀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어서, 날 다시 내려보내.’

아직 거두지 못한 목숨이 너무나 많았다.

* * *

빌딩이 하늘에서 내리꽂히며 상공에 떠 있던 베이커 제독의 함대를 강타했다.

“마, 말도 안돼······.”

그 엄청난 공격을 버텨낼 리가 없었다. 2대의 비행선은 그대로 매몰되었다.

오직 베이커 제독의 기함만이 특수 장착된 엔진을 활용, 순간적인 기동으로 겨우 회피할 수 있었다.

쿵- 쿠구구구-

그렇게 비행선 2대를 잡아먹은 뒤, 중국군의 진영 위에 내리꽂혔다. 수십 대의 공성 병기가 설치된 곳이었다. 그 모든 것이 빌딩 아래로 사라졌다.

“아······.”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거꾸로 처박힌 빌딩이······.

기기기기기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아! 이, 이쪽으로 온다!”

이대로면 4차선 도로를 따라 정렬해 있던 중국군의 본대를 완벽하게 깔아 뭉개어, 수천 명이 즉사할 것이었다.

“다, 당장 여길 벗어나!”

“모두 도, 도망쳐!”

그때였다. 성벽 쪽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치솟았다. 그건 성벽을 휩쓸고 지나갔던 ’상급 물의 정령’이었다.

쿠구구구구!

그것들은 소용돌이치며 기울어지는 빌딩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기울어지는 건물을 떠받혔다.

콰과과과과!

사방으로 콘크리트 파편과 뼛조각이 튀었다.

“뭣들 하나? 우린 아직 전쟁 중이다!“

싱 장군은 빌딩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어서 다시 움직여! 진군하라! 적의 성을 함락하라! 놈은 내가 막는다!”

하지만 싱 장군의 포부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착각 중이었는데, 네크로맨서의 군세는 결코 혼자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덜그럭! 덜그럭!

물줄기에 의해 허공에 멈춰 선 빌딩에는 수백 마리의 언데드 군단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제히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수송기에서 강하하는 공수부대 같은 모습이었다.

“어, 어? 저게 뭐야!”

하물며 빌딩을 쥐고 있던 거대한 ‘뼈 손’이 분리되며 공중으로 흩어졌는데, 그것들은 수천 개의 ‘뼈 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군의 머리 위로,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뼈 무기 제조〉스킬을 응용한 공격이 었다.

“마, 맙소사······.”

“바, 방어막을 전개해! 어서!”

중국군은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해괴한 현상 앞에서 사기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명령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서 우왕좌왕했다.

구구구구구-

그리고 기울어진 빌딩의 외벽을 타고 달려 내려오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건 ‘듀라한’이었다. 그 머리 없는 기사는 이전에 이무기를 탔던 것처럼, 마치 활주를 타고 도약하듯, 중국군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리로 오, 온다!”

그리고 도로 위에 착지하는 순간, 마치 날개가 펼쳐지듯, 그의 좌우로 유령 기사단이 튀어나왔다.

퍼버버버버!

그리고 당황한 중국군을 말 그대로 짓밟으며 전진했다. 끔찍한 학살이었다.

그 엄청난 광경은 한국 서버 측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들은 한층 여유로워진 성벽 위에서 숨을 돌리며,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에 감탄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와, 진짜 규모가 다르다.”

그러나 진짜 스케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쩌저저저一

빌딩의 한 가운데가 무너져내리며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멍 안에서 엄청난 것이 튀어나왔다.

오죽했으면 도주하던 이들조차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저건 또 뭐야······.”

“우린 이제 끝장이다.”

그건 뼈 이무기였다. 그 거대한 괴물을 오래전부터 빌딩 안에 따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승기가 넘어오는 순간, 그야말로 깜짝 등장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의를 상실한 적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승리의 쐐기를 박을만한 등장이었다.

콰과과과과!

뼈 이무기는 중국군의 포진한 4차선 도로를 향해 그 육중한 몸을 미끄러지 듯 밀어 넣었다. 마치 사람이 빼곡한 인도 위로 KTX 열차가 내달리는 꼴이었다.

“딱딱! 폭발!”

그리고 뼈 이무기의 머리 위에는 ‘빅터’가 올라타 있었다. 녀석은 중국군 진영 한가운데에서 시체 폭발을 일으켰다.

쾅! 쾅! 쾅!

머리 위에서 콘크리트 파편, 뼈로 만들어진 창, 언데드 군단이 쏟아진다.

등 뒤에서 듀라한과 뼈 이무기가 마치 쓰나미처럼 몰아친다.

그리고 정면은 거대한 성벽이 버티고 서 있었으므로······.

그 가운데에서 도망칠 곳 없는 대학살이 진행 중이었다.

‘더 빨라야 해.’

하지만 먼 상공, 본 와이번 알파메일에 올라탄 채 그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성우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서울이 위험하다. 빌딩을 뽑아 들고 온 덕분에 전투 시간을 단축했지만, 이대로면······ 진짜로 지수 씨가 죽을 수 도 있어.’

그러나 성우가 입버릇처럼 말하기로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 그가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가 일어나고 있었다.

* * *

안 기자는 입을 쩍 벌리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조수는 아예 입을 감싸 쥐고 있었다.

모든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부산의 대폭발로 중국군 병력이 단숨에 날아간 것도, 수원의 전장 위로 뒤집힌 마천루가 떨어진 것도, 그 안에서 뼈 이무기가 튀어나온 것도, 전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공식 채널의 화면은 그 치열한 수원의 전장이 아닌, 서울의 한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드론 카메라가 향한 곳은 서울 전장의 피범벅이 된 어느 도로 위였다.

“그, 그녀가······.“

조수가 겨우 입을 벌렸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안 기자가 나서, 그 중요한 말을 끝맺음했다.

“······다시 일어섰습니다.”

변수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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