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64화 (164/244)

# 164

57) 서울, 수원, 부산 동시 전쟁 - 4

성우의 선택이 시작되기 약 10분 전, 수원의 전장은 과열되고 있었다.

성벽 앞, 수만 명이 뒤엉켜 혈투를 벌이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쾅! 쾅! 쾅!

곳곳에 쇠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마법이 작열했으며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쏴라! 어떻게든 접근을 저지하라!”

그리고 오랜 접전 끝에 중국 서버 쪽으로 승기가 기울어진 상태였다.

“뚫린 곳을 막아라!”

무너진 성벽은 총 세 군데였으며 그 곳을 향해 중국군이 개미 떼처럼 몰려 들었다.

“너, 너무 많습니다!”

“아군이 밀리고 있다! 더 많은 화력이 필요해!”

비행선과 성벽 등지에서 원거리 공격과 폭격을 퍼부으며 적의 접근을 견제하려고 했지만, 중국군은 그에 대해 대비가 되어 있었다.

“놈들이 방어막을 전개한다!”

중국군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방어막 뿐만 아니라 온갖 아이템을 활용하여 다중 방어막을 펼쳤다.

그렇게 꾸역꾸역 밀고 들어와 성벽 위로 엄청난 양의 화살과 마법을 쏘아대니, 성벽 위의 수비 병력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절대로, 절대로 침투를 허용해선 안 된다!”

“마지막 벽은 우리 자체다! 몸으로 막아라!”

가장 좌측 구멍은 크루세이더 팀이 강력한 방어막을 전개하여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구멍은 이 성벽을 쌓아 올린 장본인인 ‘하이 아키텍트’ 무연이 투입되어 ‘간이 성벽’을 건설했다 . 비전투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자재를 날랐고, 무연은 그 자재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수리하는 것이었다.

“3번째 구멍으로 적들이 몰려온다!”

문제는 가장 늦게 발생한 3번째 구멍이었다. 앞선 두 구멍과 달리 그곳은 특별한 방어 방법이 없었다. 그저 인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백병전을 벌일 수밖에······.

그리고 그 선봉에 ‘데스나이트’ 민석이 섰다. 성우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민석을 수원 방어에 투자하고 간 것이었다.

“이 자리에 선 한 사람의 죽음이 열 사람! 아니 백 사람을 구할 겁니다! 모두 물러서지 마세요!”

민석의 외침과 함께 백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거대한 구멍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학생, 그런 단검으로 괜찮겠나?

민석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의 옆에는 한호가 서 있었다.

구멍을 막기 위해 나선 이들이 전부 전사 계열인 가운데, 오로지 한호만이 암살자 계열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단검이 1개면 몰라도 6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역사상 유례없는 기술 아니겠습니까?”

이내 그의 등 뒤에서 4개의 팔이 돋아나며 총 6개의 단검을 들어 올렸다.

“물론 학생만큼 버틸 수 있는 플레이어는 드물겠지만, 도적 계열이 이런 전 면에서다니······.“

그때, 한호가 쓴 철제 투구에서 푸른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한호의 물론이거니와 민석의 몸에도 방어막이 생성 되었다.

이는 대산맥의 왕에게 받은 철제 투구인 ‘친위대의 정신’의 효과로, 자신과 아군 1명에게 방어막을 걸어주는 것이었다.

“해골 아저씨, 저는 평범한 도적이 아니에요.”

한호가 씩 웃었다.

“잡, 아니, 다양한 도적이군······.“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었다. 중국군의 선봉대가 그들의 목전까지 당도했기 때문이다.

“온다!”

한국 서버 측이 초라해질 정도로, 압도적인 숫자의 군세가 메뚜기 떼처럼 달려들었다.

“모두 충돌 대비!”

“······방패 앞으로!”

모두가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한국 서버를 내걸고, 한바탕 힘 싸움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쉭! 쉭! 쉭!

두 진영이 맞붙기 직전, 한호는 3개의 단검을 동시에 던졌다.

중국군 선봉대 역시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한호의 단검은 그 모든 움직임을 계산한 듯 포물선을 그리며 방패 안쪽으로 낙하했다. 그림 같은 골인이었다.

“······억!”

선두의 2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한호의 몸에 성스러운 방어막이 덧씌워졌다. ‘신념의 처단자’가 발동한 것이었다.

그때, 민석이 왼손을 뻗자, 한호의 6개의 팔에 녹색 기운이 감돌았다.

-당신의 무기에 ‘마비 독’이 적용됩니다.

* 적을 공격할 시 ‘마비’효과를 일으킵니다.

한호가 놀란 표정으로 민석을 바라보았다.

“······오? 이건 뭐에요?”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사실 나도 그냥 기사가 아니라네!”

“크, 좋다, 좋아! 다 덤벼라!”

그렇게, 마법을 쓰는 기사와 이것저것 다 하는 도적이 선두에 서서 적들을 맞이했다.

“싸우자!”

“버텨라!”

전사들의 고함과 동시에 맹렬한 충돌의 순간, 한호의 머리를 향해 대여섯 개의 무기가 날아들었다. 방패가 없는 걸 보고는 가장 먼저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텅! 텅! 텅! 텅! 텅!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한호는 크루세이더 팀 이상으로 두꺼운 방어막을 뒤집어쓴 데다가, 그게 끝없이 리필되기까지 했기에 그 어떤 탱커보다 튼튼한 상태였다.

푹! 푹! 푹!

그렇기에 한호는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적과 아주 가까이 엉겨 붙은 뒤, 6개의 단검을 마구잡이로 찔러 넣는 무지막지한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저, 저리 가! 컥!”

“윽, 이, 이 새끼 대체 뭐······.“

제아무리 넓적한 방패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착 달라붙어서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찌르고 들어오는 무려 6개의 칼날을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악!”

“억!”

“컥!”

한호의 앞에서 비명이 연달아 터졌다.

또한, 민석이 걸어준 마비 스킬 역시 적의 돌격을 저지하는 데 한몫했다. 한호와 맞부딪치는 적들은 그야말로 살살 녹아내렸다.

“덤벼! 덤벼! 너도 덤벼! 다 덤벼!”

심지어 그 옆에 나란히 선 ‘데스나이트’ 민석보다 더 많은 적을 쓰러뜨렸다. 멀리서 보면 6개의 칼날을 가진 믹서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민석조차 적의 공세가 두려워 방패를 꼬나쥐고 단단히 버티고 선 채, 방어를 위주로 맞서고 있건만, 한호는 그런 것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학생,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군?”

민석은 진심으로 놀랐다. 같은 전장에 선 적은 여러 번이었으나, 한호의 싸움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으하하! 거, 이제 아셨다니 실망입니다! 네크로맨서 팀의 숨은 고수가 저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이렇듯, 한호의 활약 덕분에 3번째 구멍은 우려와 달리 아주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된다! 버틸 수 있다!”

“모두 최강 도적을 중심으로 버텨라!”

이에 사기가 충족되며 곳곳에서 한호의 이름이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이렇듯, 언제나 잊고 있지만, 한호는 나름 손꼽히는 강자가 맞긴 맞았다.

그러나······ 그 장면을 곱게 지켜보고 있을 중국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곧장 추가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어, 저건?”

마을 성벽의 가장 높은 곳, 감시 타워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적들의 기함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베이커 제독이 직접 선루 갑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었는데, 그는 장총 한 자루를 3번째 구멍을 향해 겨누었다.

“······저격인가?”

“저 거리에서?”

감시병들로서는 그 행동의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총구에서 붉은색 레이저 한 줄이 뻗어 나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저거······ 설마 유도탄?”

지상군이 공중 폭격을 유도하는 기술과 비슷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함의 선미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그건 회색 연기를 꼬리로 달고 수직으로 상승하더니,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성벽을 향해 날아들었다. 일종의 미사일이 분명했다.

구우우우-

그건 베이커 제독이 쓸 수 있는 전용 스킬 중 하나로, 연달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엄청난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경계병들이 기겁하며 3번째 구멍을 향해 소리쳤다.

“피하십시오! 장거리 폭격입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양측 병력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백병전을 벌이는 가운데, 그 위로 유도탄이 낙하했다

콰—아—앙!

붉은 열기가 3번째 구멍을 가득 메웠다. 한국 측, 중국 측 할 것 없이 백여 명이 한 번에 폭사했다.

막힌 통로를 뚫어내기 위해서 자기편까지 몽땅 날려버리다니······ 정말 잔악무도한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으, 으으으!”

한호는 다행히도 목숨을 건졌다.

“컥! 토, 토할 것 같아······.“

하지만 엄청난 폭발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 성벽 안쪽으로 튕겨 나가 가로등에 부딪히기까지 했기에 정신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찔했다.

- 큰 충격으로 모든 방어막이 소멸합니다.

그의 몸을 뒤덮고 있는 보호막이 깜빡거리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하, 한호야!”

저 멀리, 전투를 지원하고 있던 비전투 계열의 플레이어 사이에서 한호의 어머니, 은희가 뛰쳐나왔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말리는 가운데, 애타게 한호의 이름을 불렀다. 한호가 최전방으로 나간다고 했을 때부터 남모르게 뜯어말렸던 그녀였다.

“한호야! 아, 안 돼! 이리와!”

한호는 머리를 뒤흔들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너 마, 많이 다쳤어! 빠, 빨리 치료해야 해!”

한호는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을 느끼며 간신히 일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소리칠 힘도 없기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어, 엄마 미안해.”

그는 다시 3번째 구멍을 향해 몸을 돌렸다.

“큭, 사실 나도 막상, 지금은 이런 멋진 역할 벼, 별로 하고 싶진 않은데······ 내가 거기로 가면······ 전부 큰일 나는 거잖아?”

그는 투구를 고쳐 쓰고 아수라의 팔을 다시 소환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서, 선배가 나를 믿고 맡기고 간 건데······.“

하지만 그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 좌절하고 말았다.

“······아?”

몸이 휘청거렸다. 동시에 엄청난 통증이 온몸을 헤집으며 뒤통수까지 기어 올라왔다.

모든 신경계가 시큰거리는 통에 하마터면 그대로 엎어져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미친, 진짜 너, 너무아픈데?”

그렇다. 하필이면 발목이 부러진 것 이다. 그는 그 자리에 굳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안 되는데? 어, 어쩌지?”

한호는 당황했다. 어떻게든 싸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도저히 걸을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주변에 상위 등급 프리스트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호 자신도 프리스트라는 게 새삼 기억났지만, 뼈를 단번에 붙일 정도는 아니었다.

“······아, 안 되는데?”

고개를 들어 3번째 구멍을 바라보았다. 단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이렇게 아픈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고, 또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형! 최, 최강 도적 형!”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한호를 불렀다.

“······응?”

한호의 유일한 팬인 꼬마 녀석, 영인이었다. 녀석은 비전투 인원으로 분류되어 2번째 구멍으로 벽돌 자재를 나르는 중에 한호를 목격한 것이다.

“혀, 형? 괘, 괜찮아요? 괜찮은 거예요? 아니죠?”

녀석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와 낮은 레벨에도 불구하고 호기가 넘치던 녀석이었지만, 이런 전쟁은 차원이 달랐다. 녀석은 지금 겁에 질려 있었다.

“우, 우리 져요? 이번엔 지는 거예요 ? 해적들한테 당했을 때처럼······.“

해적들에게 아버지를 잃었을 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걸까? 그때처럼 밀리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한호는 엄청난 통증에 눈물이 핑핑 돌았지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보였다. 억지 여유였다. 그 순간, 내상을 입은 건지, 코피가 주룩 흘렀다.

“······야, 인마,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싸워! 언젠가 누구처럼 강해지고 싶다며?”

한호는 강화도에서 영인이 저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도 형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방금 형처럼 막! 엄청 강한 적들 앞에서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싸울 수 있을까요?’

부끄럽지만, 한호가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뿌듯한 말이었으며 그 이후로 더욱 열심히 싸웠던 것 같았다.

“야, 다음에는 저 구멍 앞에 네가 서 있어야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제, 제가요?”

“왜? 못 해?”

“······.“

영인이 녀석은 이 순간, 차마 호기롭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수 있었다.

“······그래, 사실 나도 못 해 먹겠다. 근데, 못 한다고 내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한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3번째 구멍을 향해 쩔뚝이며 걸어갔다.

“친구 잘못 만나서 덩달아 팔자에도 없는 영웅 노릇이나 하고 있고······.“

한호는 허리춤에서 체력 회복 물약 한 병을 꺼내 마신 뒤, 성벽의 구멍을 향해 나아갔다.

“아, 망할······ 그냥 누구 뒤에서 칼이나 던지는 들러리가 좋은 거였구나?“

폭격 한 방으로 구멍은 더욱 커져 있었다. 그 폭격은 아군 적군 구분 없이 몽땅 밀어버렸기에, 3번째 구멍 앞은 아주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적의 두 번째 병력이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군 진영은 여전히 수습 불가능한 상태였다.

“뭐해! 모, 모두 빈 자리를 채워!”

“누구든 저 구멍을 막아야 해!”

구멍을 지키던 전사들이 폭격 한 방에 전멸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 누가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겠는가?

딱 한 명, 민석이 구멍 앞에 서 있었다. 민석 역시 폭발에 튕겨 나가는 바람에 두개골과 갑옷 곳곳에 균열이 난 상태였다. 하물며 방패는 완전히 반토막 나버렸다.

“학생, 역시 보통 도적이랑은 다르군?“

한호가 씩 웃으며 민석의 옆에 섰다.

“제가 그거 입 아프게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야 알아주는 사람이 음, 두명째 생겼네요.”

“응? 두 명밖에 없다니 그것도 놀라운데? 실력을 너무 숨기고 있는 거 아닌가?”

한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제가 다크 나이트처럼 좀 조용히 활약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나저나 저 새끼들, 회심의 일격으로도 우릴 못 죽였으니 골치 좀 아프겠죠? 이제 누가 등장할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한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오늘은 좀 늦네. 너무 늦으면 진짜······ 이제는 좀 힘들 것 같은데?”

* * *

싱 장군은 조급해졌다. 한국 서버 측 저항이 생각보다 끈질겼다. 아니, 사실 이 정도 시간은 투자하는 게 당연했다. 전부 예상 범주 안의 저항이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너무 이른 시간 안에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절로 조급 해지는 것이었다.

‘길을 내야 한다. 베이커 제독이 직접 나서서 숨기고 있던 기술까지 썼지만 실패했다. 저 두 놈이 문제다.’

마치 장판교(長板橋)의 장비처럼 단 두 명이 길목을 막은 채 전선의 흐름을 이상하게 바꿔놓고 있었다.

‘내가 직접 나선다.’

싱 장군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금방 뚫릴 거라고 예상했던 성벽의 구멍이 여전히 막혀 있으니 지휘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부관! ‘정령제궤(精靈制櫃)’를 개방하라!”

그의 외침에 뒤에 서 있던 부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 장군 직접 나서시려는 겁니까? 현재 상(上)등급 ‘정령제궤’는 현재 4개뿐입니다.”

“그래, 중요한 순간까지 아껴두려고 했건만, 시간이 없다. 지금 바로 2개를 개방한다.”

그의 명령에 트럭 2대가 나타났다. 화물칸에 백색의 남 나무가 상자가 실려 있었는데, 온갖 부적이 부착되어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봉인 마법’을 뜻하는 사슬 아이콘이 상자 언저리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봐! 조심히 다뤄! 무려 상(上)등급 상자라 개방되면 우리도 전멸이야!“

그 상자에는 ‘수(水)’와 ‘상(上)’이라는 글자가 붓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싱 장군은 그 두 대의 트럭을 대동하고 전선 가까이 접근했다. 그의 주변으로 상급 마법사들이 포진하여 방어막을 전개했다.

그 방어가 워낙 첨예하여 누가 봐도 중국군의 총사령관이 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개방하라.”

싱 장군의 명령에 대기 중이던 마법사들이 상자를 향해 ‘봉인 해제’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봉인 마법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상자는 폭발할 것처럼 요동쳤다.

구구구구구—

그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고통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쩍一 쩌一 적!

이내 상자가 깨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 흘러나왔다. 그건······ 그저 투명한 물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봉인을 해제한 마법사들 역시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어? 이게 끝이야?”

그런데 다음 순간······.

끄에에에!

비명과 함께 흘러내렸던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수십 개의 가닥을 나누어지더니 인간 얼굴의 형상으로 변했다. 하나 같이 고통에 찬 표정이었다.

“저, 저건······.“

“······사, 상급 물의 정령이다!”

마법사들 그제야 상자에서 튀어나온 게 무엇인지 눈치챘다. 그건 물이 아니었다. 정령이었다.

“2서버의 정령술사 리웨이를 꺾고 사로잡은 상급 정령, 그게 여기에 이렇 게 있을 줄이야······.“

그것들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2서버’를 주름잡던 정령술사의 동료였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에게 상냥한 편이라고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물장구를 쳐준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보라색 사슬에 묶여 있는 포악한 짐승일 뿐이었다.

끄에에에!

“명한다! 나의 통제를 따라 나의 적을 휩쓸어버려라!”

싱 장군이 손짓하자 보라색 사슬이 짙어졌다. 그러자 마치 목줄에 끌려가는 개처럼, 싱 장군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닌가?

“정령이여, 저항하지 마라! 허튼 저항의 끝은 소멸일뿐이다! 너희는 내 손아귀 안이다!”

싱 장군 역시 정령술사였다. 그러나 그는 ‘친화력’을 키워서 정령의 힘을 빌리기보다 ‘지배력’을 이용하여 정령을 노예처럼 부리기를 선호했다.

이를 위해서 정령을 사냥하여 구속해 두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특수한 용매와 용기가 필요했기에, 정령술사와 연금술사로 이루어진 수십 명의 ‘전담 수집반’을 운영할 정도였다.

‘느낌이 좋다. 무려 리웨이가 데리고 있던 놈들이다.’

‘상급 물의 정령’은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재료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를 상대하기 위하여 아껴둔 것이었거늘, 방금 그 일부를 과감하게 투자했다.

끄에에에!

물의 정령은 사슬에 묶인 채 끌려다니며 마치 거품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어? 모두 피해!”

“서,성벽에서 떨어져!”

중국군은 방금, 베이커 제독이 감행한 무차별 폭격을 기억하고 서둘러 물러 섰다.

이내 상급 정령들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용처럼 솟구치더니, 성벽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그리고 성난 강물처럼 모든 널 휩쓸고 지나갔다.

콰과과과과과!

성벽에 균열이 일어나고 구멍 앞에 서 있던 모든 것들이 ‘정령의 파도’에 휩쓸려 나갔다.

그건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었다. 물줄기 사이사이에서 기다란 팔이 튀어 나와 걸리는 모든 것을 붙잡고, 긁어내고, 안으로 잡아당겨 익사시켰다.

한순간이자 단 한방이었다.

그렇게 3번째 구멍이 다시 한번 청소 되었다. 베이커 제독의 폭격보다 깔끔한 기술이었다.

싱 장군은 뒷짐을 쥐며 부관에게 말했다.

“자, 문을 열었다. 이제 성을 점령하라.”

그런데 부관의 표정이 다른 의미로 일그러졌다.

“자, 장군! 저, 저기 보십시오!”

“······응?”

그 압도적인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버티고 선 이들이 있다.

“마, 말도 안 돼······.”

“뭐, 뭐야, 저걸 버텼다고?”

역시나 민석과 한호였다. 민석은 성 벽에 사슬을 걸고 버텨냈으며 한호는 6개의 단검을 바닥에 내리찍은 채 견뎌냈다. 천재지변을 온몸으로 막아낸 것이다.

“컥! 컥! 켁! 뭐, 뭐야 이거? 오션 월드 파도 풀장에 비교하면 벼, 별것도 아니네! 커, 커 켁!”

한호는 팔을 후들후들 떨면서도 악다구니를 내뱉었다. 마치 골목을 점거한 도둑고양이가 물벼락을 맞았음에도 제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를 드러내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돌격을 준비하던 적들을 다시 한번 주춤거리게 했다. 끝내 쓰러지지 않고 구멍을 지키는 모습에 기가 질려 버리는 것도 당연했다.

“저, 저 사람······ 대체 뭐야?”

“어째서 안 쓰러지는 거야?”

그리고 마침내······.

- 부산 전장의 ‘승리자(한국 서버)’가 해당 전장에 ’합류’합니다.

* 한국 서버 측에 ‘전장 승리 버프’가 부여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 상승+10)

때가 왔다.

이 전장 위, 모든 이들의 눈에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호는 피가 섞인 물을 뱉어내며 씩 웃었다.

“······아오, 드디어 살았네.”

반대로 중국군 측에는 짙은 혼란이 감돌기 시작했다. 놈들은 더욱 시끄럽고 분주해졌다. 네크로맨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놈은 어디에서 나오는거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언데드 군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싱 장군이 소리쳤다.

“어디에서 나오든 우리의 군세가 압도적이다! 폭발에 유의하며 놈의 진격을 막고 성문을 뚫는다!”

정체불명의 기술을 통하여 부산을 통째로 날려버리긴 했다만, 그런 짓거리는 수원에서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래, 그딴 말도 안 되는 짓거리 말고는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싱 장군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놈의 죽지 않은 군단을 막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물의 정령과 후방의 병력으로 놈을 지연시키고 성문을 뚫고 세계수를 뽑아낸다.’

네크로맨서의 병력은 분명 강력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중국군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투는 필연적으로 길어질 것이고, 네크로맨서의 힘은 한정되어 있기에 언젠가 중국군이 승리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곧 서울의 병력이 합류할 테니 결국 우리의 승리는 변함 없다.’

거기에다가 서울 쪽 병력까지 합세한다면 사실상 게임 오버였다.

쩌一엉一

그때, 굉음과 함께 머리 위로 푸른 빛이 번져나갔다. 모두가 고개를 쳐들었다.

우우우우우-

전장의 하늘, 회색의 구름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다!”

“놈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대공 사격을 준비해!”

중국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공중에서의 공격이야 예상 가능한 범주였기에 대응 전략을 마련해 두었다.

이내, 하늘에서 포탈이 하나 열렸다. 일순간, 모두가 침묵하며 그곳을 바라 보았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어? 저, 저게 대체 뭐야!”

그런데,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존재였다. 중국군 진영이 그 말도 안 되는 물건의 거대한 그림자 안에 집어 삼켜졌다.

“저거 설마······.”

“······비, 빌딩?”

포탈 안에서 튀어나온 건 뒤집힌 빌딩의 마천루였다.

구구구구구一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팔이, 반 토막난 빌딩을 통째로 들고 나타났다. 해운대에 서 있는 그것이었다.

“말도 안 돼, 빌딩이 어떻게 하늘에서······.”

대폭발에 휘말렸기 때문인지, 건물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벽면에 수백의 언데드 군단이 달라붙은 채, 더 많은 양의 사체를 끌어안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一

그 거대한 물체가 적진 한가운데를 향해, 회색 연기를 긴 모락모락 내뿜으며 낙하했다.

“······.”

그건 마치, 소행성 충돌 직전의 풍경이었다.

한호는 그 장면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합류가 지연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메테오(Meteor)를 만들어 올 줄이야? 이건 좀 너무 한데?”

네크로맨서는 긴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한 방을 준비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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