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62화 (162/244)

# 162

57) 서울, 수원, 부산, 동시 전쟁 - 2

리치(Lich)란, 죽음을 다루는 마법사 중에서도 경지에 오른 존재로서, 하위 직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죽음의 권능’을 발휘한다. 마법사로 따지면 ‘아크 메이지’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한 팀에 3명의 리치가 존재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타 서버에서 탄생한 보스 몬스터를 권속으로 삼은 뒤, 오래전에 주운 알에서 태어난 드래곤이 내 마법을 배워 순식간에 리치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야.’

그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며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랜덤 스킬 1종을 ‘궁극’ 단계로 강화 해주는 〈죽음의 하모니(히든)〉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성우가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시너지보다 효과적이고 파괴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게 바로······

- 〈시체 폭발(전문)〉스킬이 일시적으로 〈시체 폭발(궁극)〉등급으로 격상됩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시체 폭발

- 등급 : 궁극

- 분류 : 액티브

- 소모 : 마나 1

시체를 기폭제로 하여 폭발을 일으킵니다. 추가 데미지(+200%), 폭발 이후 죽음의 힘이 담긴 ‘심연의 호흡’을 다량 방출합니다.

+ 고압 폭발 : 시체가 20초간 팽창한 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추가 데미지(+600%), 심연의 호흡 추가 방출(+200%)

단, 팽창하는 도중에 공격을 당하면 폭발이 실패하며 시체는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요한 건 이 아래에 추가 옵션이 한 가지 더 붙었다는 것이었다. 성우는 그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황혼 범람 : 일정 범위 내(10km)의 모든 시체에 죽음의 권능을 부여하여 30분간의 ‘연성’ 과정을 거친 뒤 ‘초대형 폭발’을 일으킵니다. 추가 데미지(+1,200%), 심연의 호흡 추가 방출(+500%)

또한, 폭발이 가신 뒤에는 일대에 ‘황혼 피폭’ 현상이 발동하여 모든 시체가 ‘좀비’로 되살아납니다.

단, 연성 과정 중에 공격을 당하면 폭발이 실패하며 해당 시체는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황혼 범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성우는 이 무지막지한 스킬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노력했다. 12시간의 대기 시간 동안 철저한 작업을 거친 것이다.

’이번 전장은 부산 내에서도 도심 일부로 제한된다. 그렇다는 건, 놈들을 폭발 범위 안에 깡그리 집어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성우는 귀신과 언데드를 총동원하여 아주 은밀하게 시체를 흩뿌렸다. 지하 시설과 건물 지하 등, 부산 시내 곳곳에 시체를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기 30분 전 ’황혼 범람’을 부여하여 역사적인 팡파르를 일으킨 것이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황혼 범람’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적들의 눈에도 그러한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30분은 상황 파악을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혹여나 ‘황혼 범람’이란 게 무엇인지 빠르게 눈치챘다고 한들, 12시간 동안 작업해 놓은 시체를 모두 발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거대한 폭발이 놈들을 그대로 휩쓸어버렸다.

그러나 그건 전조에 불과했다. 치솟은 화염 아래, 엄청난 양의 심연의 호흡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폭발에서 살아남더라도 그 짙은 심연의 호흡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었다.

“더 부어버려.”

성우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본 와이번 무리가 부산 상공을 비행하며, 마치 폭격기처럼 시체를 떨어뜨렸다.

이어서 어떤 가스통까지 떨어뜨렸다. 그건 ‘심연의 호흡’이 담긴 통이었다. 일전에 진화 학회 본진에서 얻은 뒤 마을의 창고에 고이 보관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제대로 쓰일 날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던 녀석들이, 오늘 일제히 깨어난 것이었다.

그래도 살아남는다면?

“······맹독 구름.”

- 주의! 해당 지역에 ‘맹독 구름’이 형성됩니다.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딱딱 저도 사용하겠습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맹독 구름’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빅터 역시 ‘맹독 구름’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두 개의 거대한 구름이 넓게 펴져, 지옥이 된 땅 위로 독극물을 쏟아부었다.

끙!

이에 더불어 심지어 미르까지······.

- 주의! 해당 지역에 ‘맹독 구름’이 형성됩니다.

이렇듯, 리치 셋이 모이자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성우가 생각하기에, 이 게임을 만든 이들조차 이런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좋아. 둘 다 잘했어.”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7,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6,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7,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8,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잘 먹히고 있군.”

눈앞에 끝없이 떠오르는 메시지가 성우의 작전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증명했다.

그렇게, 부산의 중국군이 전쟁 시작 10분 만에 괴멸되었다.

* * *

“아, 지금 이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안 기자의 스튜디오는 여전히 마비 상태였다. 부산의 거대한 폭발을 목격한 게 전부였다.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드론까지 폭발에 휘말리면서 약 5분째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부산을 촬영하고 있는 드론은 한 대가 아니었다. 수십 대의 드론이 부산 각지에 흩어져 있었지만, 단 한 대도 남김없이 박살이 난 것이었다.

“자, 그러니까······ 그 폭발의 정체가 무엇이든,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식 채널’ 아닙니까? 시스템의 의도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엄청난 변수라는 뜻입니다.”

“와, 그렇군요? 그 이후로 수원과 서울 쪽 화면만 나오는 상태인데, 혹시 부산 근처에 계신 분들, 부산은 지금 어떤지 제보 부탁드리겠습니다! 포, 폭발에 휘말리지 않으셨다면 말입니다.”

물론 부산의 플레이어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대피를 마친 상황이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방금 화면 복구되었습니다!”

마침내 부산 쪽 화면이 복구되었다. 또 다른 드론이 투입된 모양이었는데, 훨씬 높은 하늘에서 부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두 해설자는 기다리고 있던 광경을 다시 마주한 순간, 천천히 벌어지는 입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 부산이······.”

“사, 사실상 부산이 사라졌습니다.”

폭발의 열기는 어느 정도 가신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지옥을 방불케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두 해설자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시청자는 두 눈을 의심했다. 그들이 알고 있던 도심이라고 할만한 것들 전부 ‘검은 연기’ 속에 잠겨 있었다.

“바,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저도요.”

살아남은 몇 개의 마천루가 검은 연기 밖으로 간신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검은 바다 위에 떠있는 네모난 섬처럼 보였다.

또한, 보랏빛의 먹구름이 하늘을 봉쇄한 채 검은 비를 마구잡이로 퍼붓고 있으니, 폭풍우가 덮친 망망대해의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분명 멸망을 겪고 있지만, 저건 그 이상의 멸망입니다. 정말,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해본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지옥도의 언저리, 하늘을 날고 있는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보였다.

드론 카메라가 그를 따라갔는데, 그는 지금도 부산을 향한 맹렬한 폭격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였지만, 이 모든 게 네크로맨서의 소행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제 생각을 정정하겠습니다.”

안 기자가 흥분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우리 한국 서버가 수원에 병력 대부분을 배치해서, 수원에서 이긴 뒤 다른 곳으로 합류하려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아, 서울과 부산에서 버티면서요?”

“맞습니다. 서울과 부산이 방패고 수원이 창 역할이리라 생각했죠. 하지만······.”

안 기자는 손을 뻗어 등 뒤 스크린, 부산의 광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역시나 네크로맨서가 창이었습니다. 그것도 뭐든지 뚫을 수 있는 창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창이 어디로 쏘아질까요?”

“서울? 아니면 역시 가장 중요한 수원? 당연히 둘 중의 하나일 텐데 어디를 우선시할지가 문제네요.”

조수의 말에 안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됐든, 중국 플레이어의 심장을 꿰뚫어 버릴 거라는 걸, 이제는 믿을 수 있겠네요.”

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야 확신합니다. 이 전쟁, 우리가 이길 겁니다.”

안 기자는 다시금 네크로맨서를 믿기로 했다.

* * *

한편, 서울에 배치된 한국 서버의 병력은 ‘버티기 작전’이 맞았다.

“형님! 놈들이 북쪽에서 몰려옵니다!“

호걸이 보고했다.

“그래? 감히 그렇단 말이지? 그럼······.”

대산맥의 왕은 불을 붙이기 직전의 곰방대를 털어내고는 품속에 집어넣었다.

“······예정된 퇴로로 도망친다!”

그들은 서둘러 골목을 향해 달렸다. 산속에서 살아온 몬스터인 만큼, 적들의 접근을 빠르게 눈치채고 대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춰 섰다.

“······후, 벗어난 것 같습니다. 다시 경계태세로 주변을 살피겠습니다!”

이처럼 지수와 대산맥의 왕, 그리고 그 휘하의 ‘백성’들은 서울 도심 전역으로 흩어져 ‘회피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4천 명에 이르는 적군과 부딪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목숨을 지키면서, 어떻게든 ‘패배’에 이르는 걸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들의 추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대산맥의 왕은 서울 전역에서 자신의 권속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점점 포위망이 좁혀지네요.”

“그러게 말이오. 많이 죽고 있소.”

“그럼 맞붙어서 적들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건······.”

지수가 그런 제안을 했지만, 대산맥의 왕이 고개를 저었다.

“낭자, 이번 작전은 그게 아니지 않소?”

“······그렇죠.”

지수는 자신을 추격하는 이들을 베어 넘기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억눌렀다.

‘맞아. 맞붙어서 잡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야. 오히려 꼬리를 밟히게 될 가능성이 커. 계획대로 최대한 도망치는 게 맞다.’

지수는 본능을 억누르며 허리춤의 칼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지수 낭자, 저들도 뛰어난 칼잡이 같은데 혹시 안면이 있는 자들이오?”

“······어쩌면요.”

지수와 대산맥의 왕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집단은 한 번 상대한 적 있는 ‘닌자’ 직업군이 분명했다. 즉, 놈들은 일본 서버 ‘검성’의 부하였다.

검성이 지수에게 패한 이후, 놈의 부하들이 칼을 갈아온 것일까? 지수를 쓰러뜨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게 느껴졌다.

“내가 볼 때 그들은 지수 낭자 같은 칼잡이를 잡기 위해 훈련된 자들이오. 그 점, 각별하게 유념하셔야 하오.”

“네. 저도 느꼈어요.”

놈들은 지수와 칼을 맞대서 이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검성을 베었으니, 제대로 느꼈겠지.’

그렇기에 검객이 아닌, 철저히 사냥을 위해서 행동했다. 지수를 발견하더라도 절대로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조금씩 포위하고 들어와 고점을 점한 뒤, 온갖 원거리 무기를 퍼부어 대는 것이었다.

‘특히 조금 전에 그 폭탄 같은 건 나도 위험하다.’

화살 정도는 아무리 많이 쏘아대도 쳐낼 수 있었기에, 놈들은 더 악랄한 무기를 준비해왔다.

구슬이나 쇳조각이 잔뜩 들어간 ‘폭탄주머니’를 던져대는 것이었는데, 발을 움직이는 게 조금이라도 느리다면 순식간에 벌집이 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위험했다. 운이 좋았어.’

약 10분 전, 난생 처음 보는 물체가 근처에 바닥에 떨어졌다. 이상한 생김새에 경계는 했지만, 본능적으로 칼을 들어 올리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건 칼로 쳐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 대산맥의 왕이 나무뿌리로 지수의 몸을 뒤덮지 않았더라면 정말 죽었을 수도 있었다.

“또 접근합니다!”

“이, 이번에는 퇴로까지 먹혔습니다!“

같은 작전을 반복하면서 계속 성공하길 바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지수는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뚫어 내죠.”

“이번에는 어쩔수 없군.”

대산맥의 왕이 청룡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일행은 포위망의 한쪽을 향해 돌진했다. 십여 명이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지만, 지수가 사생결단으로 돌진하자 단 몇 초 만에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폭탄 주머니가 날아 들 때마다 대산맥의 왕이 뿌리로 덮어 버렸다.

“낭자! 주변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전진하시오! 내가 엄호하겠소!”

그렇게 포위망을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대산맥의 백성 몇 마리가 낙오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폭발음과 고함이 들려왔다.

“형님, 백성들이 죽어 나갑니다.”

“벌써 절반 이상이······.”

아군이 일방적으로 사냥당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결국 우리 밖에 안 남을 거예요. 그렇게 적 병력 전체가 우리를 포위하면······ 더는 도망갈 수 없어요.“

고작 30여 분이 지났지만, 벌써 한계에 달했다. 놈들은 서울 전장 전체를 점거하고 숨통을 조여왔다.

그리고 조금만 더 지나면 그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한 개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놈들은 지금, 우리를 천천히 몰고 있다. 결국 이길 거라는 걸 알고 있어.’

마치 제아무리 열심히 도망치지만, 결국 막다른 길에 봉착하여 사냥당하고 말 호랑이 같은 꼴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버텨야 하오. 방법은 그것뿐이지 않소?”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대한 늦게 죽어야겠어요.”

이들이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다만, 무력하게 죽게 된다면, 그 피해가 다른 전장으로 고스란히 옮겨질 거라는 게 두려웠다.

즉, 이곳의 죽음이 다른 이의, 더 많은 죽음과 직결된다. 그 재앙을 막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생존이 아니었다. 지연이었다.

“늦게 죽는 방법이라······.”

지수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최후의 순간, 최대한 오래 저항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요.”

“장소?”

“사방이 막혀 있어서 적들의 포위 공격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게요. 뿌리로 그런 걸 만들 수 있을까요?”

대산맥의 왕이 턱을 만지막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내 재주만으로는 어렵겠소만, 단단한 건물을 찾아서 그걸 기반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다만, 뭘 어떻게 하든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외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 최악 중에서 최선을 선택해야만 했다.

“뭘 어떻게 하든, 그게 가장 오래 버티는 방법일 거예요. 당장 적당한 곳을 찾아보죠.”

“하하! 그럼 그곳이 우리의 무덤이 될 수도 있으니 최대한 휘황찬란하게 꾸며봐야겠소.”

지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산맥의 왕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또 혹시 모르지 않소? 죽음은 끝이 아닐 수도?”

“······.”

지수는 그게 끝이든 아니든,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빗나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녀의 감각은 언제나 정확했다.

* * *

수원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국 서버의 거의 모든 병력이 총집결되어 있었음에도 중국 측에 비교하면 현저한 숫자였다.

쾅! 쾅 쾅! 쾅!

그나마 ‘결계’와 6성벽’이 있기에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군은 성벽의 동쪽을 포위한 채, 하나의 점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동쪽 결계의 색이 옅어졌습니다! 이, 이대로면 몇 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특히, 베이커 함대에 장착된 캐논은 끔찍할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베이커 함대는 겨우 3대뿐이었지만, 한국 서버 연합군의 사정거리 밖에서 교대 사격을 하며 결계를 두드려댔는데, 수십, 수백 발의 포탄이 전부 하나의 점에 명중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젠장! 저놈들 캐논은 우리 비행선이랑 같은 걸 쓰면서 왜 저렇게 멀리서 쏠 수 있는 거야?”

“······서, 설마, 그사이에 개조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없는데?”

세계수 진영의 비행선 역시 ‘허스트 공방’에서 제작되었다. 즉, 분명 같은 모델일 텐데도, 명중률, 사정거리, 파괴력 뭐 하나 할 것 없이 베이커 함대가 한 수 위였다.

“스킬일 거야! 일단 버티는데 주력한다!”

이는 베이커 제독의 직업이 ‘캐논 오퍼레이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 캐논을 원격으로 조종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온갖 버프 효과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건 역시나 ‘사정거리 증가’였다.

“일방적으로 처맞기만 하니까 이렇게 기분이 더럽구나······.“

모든 전력이 한 수 아래인 한국 서버 연합군으로서는 밖으로 치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구석에 몰린 채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었다.

“구, 구멍이 뚫렸다!”

결국, 집요하게 폭격당한 부분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계의 일부분이 녹아 내리면서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쾅! 쾅! 쾅!

뒤이어서 몇 차례 폭격이 이루어지자 공들여 쌓아 올린 성벽까지 무너졌다.

그건,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 꺼지는 순간이었다.

“무너진 곳을 방어하라!”

그리고 그 틈을 향해, 엄청난 수의 적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 *

“······아, 절망적입니다. 부산은 분명 우리가 유리하지만, 서울과 수원은 조금의 희망도 없어 보입니다.”

안 기자의 방송은 다시 한번 톤 다운 되었다.

“······.”

방금까지 당당히 승리를 예측했던 안 기자였지만, 또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중국군의 전력이 생각 외로 막강한 것이었다.

“트, 특히 서울은 이변 없이 완전히 진 것 같습니다.”

이런 해설을 해야 한다는 게 울화통이 치밀며 새삼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입을 뗐다.

“······하, 수원은 어느 정도 버티긴 하겠지만, 서울에서 승리한 중국군이 수원으로 합류한다면 네크로맨서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공식 채널의 중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무너진 성벽에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미 떼 같이 몰려드는 중국군에 맞서, 한국 서버 연합군이 화력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밀리는 기색이었다.

그나마 정훈과 크루세이더 팀이 전방으로 나서, 특유의 황금색 보호막을 두른 채로 막아내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돌파당했을 수도 있었다.

“······.”

“하······.”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으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

이어서 다른 곳의 성벽 무너지며, 그 위에 있던 수십 명이 한 번에 전사하는 장면이 그대로 중계되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대기 중이던 중국군 전사들이 돌격했다. 그곳에는 크루세이더 팀 같은 단단한 방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이거, 생각보다 더 빨리 무너지는데요······.”

안 기자는 다리를 떨었다. 속이 꽉 막힌 것 같이 답답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고 싶었다.

이어서 다른 성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은 보호막까지 처져 있었지만, 맹렬한 포격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아, 안 됩니다. 3곳을 동시에 공격받으면 정말로 답이 없······.”

그때, 화면이 전환되었다.

“······응?”

“······어?”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화면이 전환되다니?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훨씬 더 중요한 순간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부산이었다.

카메라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폐허의 도심을 비추었다.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지옥 한가운데에 네크로맨서가 서 있었다.

“컥, 커······.”

그리고 그는 누군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게 왜 다시 돌아왔어?”

네크로맨서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버둥거리고 있는 건, 일명 차르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랭킹 1위, 네크로맨서를 죽이기 위해서 보내진 암살자······ 보리스였다.

그는 두 눈이 충혈된 채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만들어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지만, 그뿐이었다.

“어때, 시베리아보다 이 땅이 더 혹독하지?”

부산 전장의 마지막 생존자가 네크로맨서의 손아귀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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