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57화 (157/244)

# 157

55) 워싱턴, 함대 강탈 - 2

러브 의장의 ‘워싱턴 임시 의회’ 재장악은 한순간이었다. 그녀의 강력한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했으며 ‘네크로맨서’라는 압도적인 무력이 더해지자 감히 반기를 들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지지세력이 워싱턴 각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군사·생산·교통 등, 하루 동안 잃었던 주도권을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한국 서버의 피해 정도를 떠나서 우리가 전쟁을 일으켰으며 고통을 안겨준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러브 의장은 성우가 요구한 전쟁 범죄에 대한 배상에도 호의적이었다.

아무리 지지자가 많더라도 강력한 무력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지난 이틀간의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교류가 앞으로 양 서버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어줄 끈끈한 사슬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꼭 정치인에게 돈을 받고 고용된 폭력배 같군.’

그런 점에서 미국 내 공포 정치의 총구가 되는 셈이었는데,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제값만 치르면 뒤에 서서 으르렁대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그리고 마침내 회의의 말미, 러브 의장은 성우에게 어떤 배상을 원하는지 물어왔다.

성우는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는데, 모두가 긴장한 채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음, 비행선 4척을 넘겨주시죠.”

대다수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의 요구는 다소 과한 것이었다.

“······뭐, 뭐라고? 지금 4척이라고 하셨습니까?”

다른 것도 아닌, W·P·U 전력의 핵심인 비행선 4척이라니? 곳곳에서 반대 의견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가동 가능한 비행선이 겨우 5척입니다! 오늘 파손된 걸 수리하더라도 10척이 채 안될 텐데······.“

“절대 불가능합니다. 비행선이 없다면 멕시코에서 올라오는 몬스터와 카르텔을 제압할 수 없습니다! 단 한 개의 함대도 꾸릴 수 없단 말입니다!”

성우도 알고 있다시피 W·P·U 소속 플레이어의 전투력은 허약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기에 함대를 잃는다면 방위력 자체가 없어진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물며 W·P·U가 보유하고 있던 비행선 중 무려 7대가 세계수 진영의 손아귀로 넘어간 상태가 아니던가?

‘메신저호’를 비롯하여 베이커 함대에서 노회한 3대, 그리고 오늘 워싱턴 함대에서 강탈해간 3대까지······ 그렇지 않아도 상당량을 빼앗긴 상황이기에 이들로서는 눈이 뒤집히는 게 당연 했다.

“의장님, 이건 결코 건강한 동맹 관계가 아닙니다! 민심이 흔들릴 겁니다!”

“이 정도면 동맹 간의 교류가 아니라 장사가 아닙니까? 앞으로 또 얼마나 요구할지 벌써 걱정됩니다!”

곳곳에서 4대나 인계하는 게 불가능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지만, 성우는 깍지를 낀 채,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물론 4대는 과하긴 하지. 하지만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보다 더 큰 걸 달라고 해야 한다.’

그건 협상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 이후로 1시간가량 더 이어진 설전 끝에, 성우는 한발 물러서는 척, 작은 크기의 비행선 2대와 2억 골드를 받기로 합의했다.

처음부터 2대를 제안했다면 고작 1대를 얻는 것에 그쳤을 것이었다.

‘잠깐의 미국 여행치고는 괜찮은 수익이군.’

근래 들어 골드 지출은 많았으나 수입이 드문 편이었다. 그런데 이걸로 한 동안 재정 걱정은 없을 듯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자 의원들의 얼굴이 녹초처럼 내려앉았다. 불쾌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그때, 성우가 다시 운을 뗐다. 그와 동시에 의원들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또 뭔가를 요구하기라도 할까 봐, 사방에서 노골적인 경계심이 쏘아졌다.

“그 드워프 공방이라는 곳에 들르고 싶습니다. 손님으로, 이왕이면 VIP 손님으로요.”

하지만 미국 관광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더 남아 있었다.

* * *

비행선을 비롯한 온갖 고급 장비를 만들어낸 ‘허스트 공방’은 의사당 뒤에 우뚝 서 있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회색 건물인지라, 시원스러웠던 의사당의 배경을 답답하고 삭막하게 만들고 있었다.

’청와대 뒤에 군수 공장을 지어 놓은 꼴이군.’

W·P·U가 허스트 공방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와 무슨 고대 건축물 보는 것 같아요. 피라미드도 이런 느낌일까?”

멀리에서 봤을 땐 그저 부피만 큰 칙칙한 회색 덩어리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오니 색다른 모습이 느껴졌다.

외벽에 새겨진 온갖 문양이 차례대로 불빛을 내며 마치 우주정거장처럼 깜빡거렸다. 어딘가 신비롭고도 음울한 펑크(Punk)적인 느낌의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저 불빛은 뭐에요?”

한호의 물음에 조나단이 고개를 돌렸다.

“건물 자체에 축복 마법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필요한 축복을 시동하는 거죠.”

모든 생활·제조 능력에 축복을 둘러주는 세계수의 축복에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들은 그 축복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조 분야는 우리보다 확실히 앞서 있군.’

세계수 진영의 대장장이들이 비행선을 수리할 때, 상당 부분의 설계를 금방 재현해낸 건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수준은 허스트 공방이 한참 앞서고 있었다.

실내는 일반적인 공장과 다르지 않았다. 높은 천장 아래에서 컨베이어벨트같은 작업대가 끝없이 이어졌으며, 벽에 달린 프레임에는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들이 매달려 있었다.

텅! 텅! 채 챙!

안으로 들어갈수록 다양한 소음이 울리며 거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쇳소리와 기계음이 메아리치며 기괴한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공정의 중심, 홀로 솟아오른 철제 타워 위, 그 합주를 진두지휘하는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 이 새끼야! 담금질할 때 입 열거나 고개 돌리면 망치로 정수리 내리칠거라고 했지!”

라틴계 노인이 거친 욕설과 함께 머리 위로 망치를 들어 올렸다. 공방의 대장장이들은 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작업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헨리! 이 멍청한 자식! 뭘 하든 여기서는 다 보인다고! 아직도 몰라? 응? 혹시 뇌가 절연체로 만들어져서 신경 회로가 안 돌아가는 거냐?”

그가 고함치는 것처럼, 사면이 개방된 타워는 마치 파놉티콘(Panopticon)처럼 공장 전체를 감시·감독할 수 있는 구조물이었다.

“······딱 봐도 고집 세 보이네요.”

“맞습니다. 장난 아니죠.”

조나단이 타워를 향해 손을 흔들자 노인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호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는데, F 워드가 분명해 보였다.

“어디서 사전 허락도 없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어? 용광로에 담가버려도 모자랄 것들······.”

조나단과 일행이 타워로 올라가자 노인은 낡은 철제 의자에 털썩 앉으며 시가를 한 대 물었다.

“아, 이거 참······ 마스터 허스트, 포토맥강 전투 못 들으셨습니까?”

“그게 뭐?”

“워싱턴 내에서 전투가 벌어진 상황 아닙니까? 그리고 러브 의장이 다시 의장석에 앉으셨고, 아무튼 아주 난리였습니다. 이런 시국에 절차를 따지다뇨?”

그러자 이 공방의 주인인 마스터 허스트가 회색 콧방귀를 내뿜었다.

“그래서 내가 알게 뭔가? 우리 이 허스트 공방이 함락된 것도 아닌데? 응?“

그는 오른손에 든 에메랄드색의 망치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 공방이 몇 달간 땀과 피를 쏟으며 만들어 놓은 비행선을 하루아침에 몽땅 박살 내버려? 스타트렉 장난감도 그렇게 쉽게 부서지진 않을 텐데?”

“······.”

“꺼져! 너희 W·P·U는 당분간 뭘 기대하지 마. 내가 너희를 위해서 다시 팔을 걷어붙이는 건 지옥에 눈덩이가 굴러다닐 확률이니까!”

그는 W·P·U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자존심이 어마어마한 사람인 것이었다.

그 말에 조나단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결국, 성우가 직접 나섰다.

“마스터 허스트, 저는 W·P·U 사람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왔는데, 아이템 제작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허스트의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오호라, 자네군? 내가 만든 비행선을 모조리 박살 낸 게? 어디 보자······ 잃은 놈이랑 딴 놈이 같이 오다니, 그럼······.”

그가 시가를 길게 빨아들였다.

“······이쪽이 돈이 더 많은 손님인가?”

“아주 많죠.”

허스트가 시가를 재떨이에 지져서 껐다. 그리고 손을 털고 일어섰다.

“그럼 상담실로 가지.”

역시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건 돈이 었다.

* * *

공방의 마스터, 아놀드 허스트의 직업은 ‘엘더 블랙스미스(Elder Blacksmith)’로 5성의 대장장이였다.

그는 ‘공방’이라는 조직을 만들 수 있었으며 ‘추가 직업’을 부여하여 대장장이를 육성할 수 있었다. 정훈의 크루세이더 팀과 비슷한 개념인 듯했다.

“마침 잘 됐어. 손님이 워싱턴 양복쟁이들밖에 없어서 지루하던 차였거든. 벤츠나 물 줄 아는 사람한테 랩터를 만들어주는 꼴이었어.”

그는 자존심 강한 대장장이였지만 한 편으로는 실속을 챙기는 장사꾼이기도 했다.

조나단에게도 비행선 수리 따위는 해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이미 공방의 대장장이 팀이 도크로 파견되어 수리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골드가 없으면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긴커녕 이 거대한 공방을 돌릴 수 조차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흠, 그래서 만들고 싶은 물건이 뭐지?”

“이 아이템을 꺼내려면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성우의 말에 허스트는 피식 웃었다.

“이봐 친구, 작업하는데 이 허스트 공방보다 더 안전한 공간이 있을 것 같나? 어디, 애리조나 사막으로라도 떠날까? 거기 어딘가에 버려진 미군 연구소가 있을 텐데?”

“혹시나 다른 작업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그렇습니다. 섬세한 작업인 만큼, 조금의 온도 변화라도 미치면 결과물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이에 허스트가 한 발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맘에 드는 말이었어. 따라 와.”

그는 성우를 텅 빈 작업실로 데려갔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과 그을린 자국이 있는 걸 보아하니 위험한 실험이 진행되는 공간인 듯했다.

“차가운 건가? 아니면 뜨거운 거? 아니면 찌릿한 거? 아니면······ 황홀한 거?”

“냉기 속성입니다.”

“알겠네.”

잠시 후, 그의 부하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자재를 잔뜩 가져왔는데, 허스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저절로 구부러지며 거대한 상자가 하나 제조되었다.

“방금 이 안전 상자를 만드는 작업에 10만 골드가 들어갔네. 이것도 자네에게 청구될 걸세.”

“그렇게 하시죠.”

무연의 건축 기술과 비슷하게 ‘자동 완성’ 기술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이는 마나가 부족할 경우 골드를 소비하여 작동시킬 수 있었다.

성우는 그 ‘안전 상자’의 안으로 들어가서 스켈레톤 한 마리를 소환했다.

덜그럭!

그 녀석은 배낭을 둘러메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배낭과 등이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뼈 사이 사이에 고드름이 돋아나 있기까지 했다.

“맙소사. 역겹군.”

허스트가 중얼거리는 가운데, 성우는 녀석의 배낭에서 ‘프로즌 시드’를 꺼냈다.

그 순간 허스트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 신이시여······.”

그는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는 눈동자만 굴려서 프로즌 시드를 관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안전 상자 안의 온도는 급속도로 낮아졌다.

“단언컨대,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역겨운 물건이야.”

그는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안전 상자의 철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부하에게 겉옷을 가져오라고 소리치더니 다시 성우를 돌아보았다.

“자, 그래서 그걸로 뭘 만들어주면 되겠나?”

성우는 ‘리피팅 크로스보우’와 ‘핸드 캐논’을 꺼내 보였다. 자주 애용하던 원거리 무기였지만, 최근 들어서 그 파괴력이 미비하다는 느낌이었다.

“이 아이템으로 이런 핸드 캐논,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핸드 캐논을 만들어주세요.”

그 말에 허스트가 헛웃음을 지었다.

“······자네 미쳤군? 이걸로 개인 병기라니?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플루토늄으로 리볼버를 만들어 달라는 거야. 차라리 핵폭탄을 만들어달라고 해.“

“불가능합니까?”

“······.”

“그럼 이 상자 값만 내고 가겠습니다. 한국 서버에도 유능한 기술자들이 있거든요.”

허스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질긴 자존심이 피어올랐다.

“흠, 허스트 공방에서 불가능한 건 없어. 골치 아픈 이들만 잔뜩 있을 뿐이지.”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허스트가 시가를 꺼내 물었다.

“······망할. 골치 아파지겠군.”

* * *

특별 주문한 아이템이 제작되는 동안, 성우는 러브 의장의 사무실에서 미국 서버의 상황과 W·P·U이 목적에 대해서 전해 들었다.

“미국은 너무나 복잡한 땅이야. 질서가 무너진다면 오히려 난장판이 되기 딱 좋은 곳이 바로 미국이 아닐까 해.”

미국 서버는 총 3개로 나뉘어 있었다. 동부, 중부, 서부가 각각 1서버, 2서버, 3서버였다.

역시 3개의 서버로 나뉜 중국과 비교하면 인구는 훨씬 적지만, 육지 면적이 엇비슷하며 발달한 도심이 많은 만큼, 3개의 서버로 분할된 것으로 추정했다 . 다만, 알래스카는 독립 서버로 분리 되어 있다고 했다.

“······땅도 넓은데 서버도 3개나 되고 인종과 문화도 다양한 만큼, 상당히 많은 세력으로 분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러브 의장의 지도력이 제1 서버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온 이야기였다.

그렇게 W·P·U는 미 동부의 패권을 쥐고 중부와도 동맹 관계를 맺었으며, 캐나다의 모든 서버와도 교류 중인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일본 서버 그리고 자네, 한국 서버와도 접촉했지.”

그리고 W·P·U는 ‘세계 플레이어 연합’을 조성하기 위해서 타 서버와 연락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첫 번째 걸음에서 ‘네크로맨서’라는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베이커 제독의 잘못된 공작으로 거대한 벌집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건 누군가 한 명의 잘못이 아니야. 우리 전체가 오만했어. 다른 서버와 비교해서 큰 피해 없이 버텨냈으니 우리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커피잔을 움켜쥐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른 세력과 과감하게 접촉하고 기고만장하게 설득하려고 했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거야.”

그녀는 성찰하면서도 여전히 그 원대한 꿈을 버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연합은 여전히 필요해.”

러브 의장이 성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포기하지도 오래 기다리지도 않을 생각이야. 더 늦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러니······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일에 자네가 함께해주길 바라네.”

예상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성급하게 수락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전 지구적인 통합 같은 걸 바라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세계 플레이어 연합 조성의 필요성, 그건 단순한 대의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남미에서 올라오는 위협을 W·P·U 자체적인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신 거 아닙니까?”

성우는 이에 대해서 이미 한 번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세계 통합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에는 W·P·U의 개인적인 필요가 반영되어 있었다. 러브 의장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에게 처한 위협, 그리고 누군가에게 처한 위협, 그 모든 걸 힘을 합쳐서 해결하고자 하는 거야. 자네 말대로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은 영 좋지 않아. 곪고 썩고 결국에는 전염병이 되어 올라올 거야. 그리고 우리가 무너지면 미국 전체가, 캐나다가, 세계가 차례차례 무너지고 말 거야.”

“······그 원흉은 브라질입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멕시코의 카르텔도 분명 골칫거리긴 해. 무법적인 도적 떼인데, 종종 우리 땅으로 올라와서 휘젓고 다니거든. 하지만 세력이 워낙 분열되어 있어서 큰 위협은 아니야. 그런데 자네가 알고 있듯, 브라질, 정확히는 아마존에서 성장중인 그 괴물들······.”

러브는 말을 멈추고 미지근한 커피를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네도 드래곤 새끼를 데리고 있지?”

“그렇습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곳에 성체 드래곤이 있어.”

마침내 그 이름이, 온전하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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