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54화 (154/244)

# 154

54) 창원, 대규모 함대전 - 1

창원시 진해항, 이곳은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화랑 길드’ 소속의 생존자 그룹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한일전 당시, 한국 서버에 상륙한 일본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으므로 나름 튼튼한 기반을 유지하며 발전하고 있었는데······.

“잿더미가 되었군.”

W·P·U의 비행선에서 내려다보는 진해항은 완전히 초토화 상태였다.

7대의 비행선에서 온갖 마법 포탄을 장맛비처럼 쏟아부었으니 무언가 남아 있을 리가 만무했다.

“장관이지?”

베이커 함대의 4번 함 〈Vanguard〉의 갑판에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난간에 기댄 채 한가로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지옥도를 관람했다.

“그래. 너무 장관이라서 살아남은 게 없겠어.”

“자네, 이런 광경 처음이 아니잖나?”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

두 남자는 동시에 말하며 씩 웃었다.

“제독께서는 이런 멋들어지는 장면이 한국 서버에 방송되기를 바란 거지? 기를 죽이려고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몬스터 토벌도 아니고 이렇게 쏟아붓다니?”

“그래. 베이커 그 양반, 알고 보면 완전 행위예술가야. 이런 퍼포먼스도 일종의 전략이라고 보시잖나?”

“필라델피아?”

그들은 다시 피식 웃었다. 필라델피아에 남다른 추억이 있는 듯 모양이었다.

“그래. 필라델피아도 그런 이유에서 벌집으로 만들어 버린 거지. 러브 의장쪽이 불필요한 희생이었다고 비난하니까······ 뭐랬더라? 필라델피아 연합이 일찌감치 항복한 게 전부 그 무차별 폭격 때문에 기가 질려서 그런 거라면서, 포탄이랑 병사 목숨이라 맞바꾼 거라고 했었나?”

“베이커 제독, 심리학 전공하셨대?”

“예전부터 부하들 심리를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시던 노인네야. 그런데 웬 걸?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리니까 그 양반 주장이 전부 먹히는 것 같지 않아?”

“맞아. 함교에서는 두 눈 뜬 오딘이 라고 부른다더라. 언젠가 러브 의장을 제치고 일인자로 등극할 거란 건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이야.”

이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임시 의회가 베이커 제독 손에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메신저호 추락과 승무원 학살 소식이 컸지. 네크로맨서가 시체를 조종하는 미친 마법사라는 건 모두가 알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야만인 사이코패스일 줄이야?”

“그건 러브 의장을 지지하던 의원들도 몰랐던 거야. 그러니까 표가 한 번에 넘어와 버렸겠지. 아마존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잠재워줄 지원군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꺼져버렸으니 말이야.”

역시나 그 잘못된 소식이 의회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커피를 홀짝이며 혀를 쯧쯧 찼다.

“아, 그나저나 하이퍼 게이트 설치 완료까지 6시간 정도 남았다고 하던데 그럼 그때까진 좀 더 쉴 수 있으려나?“

“글쎄, 함교 쪽 이야기 들어보면 부산 쪽도 공격할 수도 있다더······.”

그때였다. 갑판 위에 그림자가 하나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

“······방금?”

그림자라니?

그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구름이 아닌 이상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갈 수 있는 건 없었으며 구름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지 않는다.

“저기 봐!”

그들의 시야 끝자락, 날개 달린 무언가가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그 미확인 비행체의 정체를 고민하기도 전에 또 다른 물체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텅!

별안간 네모난 상자 하나가 갑판 위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 주의! ‘플레이어 킬러 박스’가 열립니다!

“이, 이건!”

그들은 그게 뭔지 알아챘다.

수백 마리의 ‘극독 벌레’가 들어있는 깜짝 상자······ 임시 의회에서 사용 금지 판결이 내려질 만큼 비인도적인 살상 병기인 ‘플레이어 킬러 박스(극독 벌레)’였다.

그리고 그런 물건이 자신들의 발 앞에 떨어졌다는건······.

“우린······.”

“······다 죽었다.”

위이이잉!

다음 순간, 상자의 사면이 기계음과 함께 열리며, 검은 연기 같은 벌레 떼가 뿜어져나왔다.

그것들은 비행선 곳곳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막을 수 없었다.

이내, 비행선은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격하게 뒤흔들렸다.

* * *

성우는 스펙터를 통하여 먼 거리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범선 한 채를 완전히 집어삼켰군.”

‘플레이어 킬러 박스(극독 벌레)’는 한 번 시동한 이후에 멈출 수 없다. 오로지 플레이어가 가까이 다가가야지만 열리는 물건이 었다.

성우는 그 물건을 발견한 이후, 언데드가 들고 있게 하여 작동되는 걸 방지했으며 그 상태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적들에게 역으로 전해준 것이었다.

‘눈에는 눈, 적당히 싸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놈들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비행선 한 채와 다수의 승무원을 통째로 잃고 말았다.

이내 다른 비행선들은 긴급 회피를 시작했다. 벌레가 들러붙은 비행선을 피해 멀리 달아나는 게, 마치 역병 감염자를 피하는 것 같은 꼴이었다.

“좋아. 이렇게 한척 더 얻었다.”

하지만 쉽게 버릴 생각은 아닌 모양인지, 멀찍이 회피한 뒤, 함대에서 작은 비행체들이 분리되어 나왔다.

비상용 쪽배 같았는데, 그 위에 방호복을 입은 화염 계열 마법사들이 타 있었다. 극독 벌레 처리반인 걸까?

“하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재산을 쉽게 버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것들은 얼마 못 가 다시 방향을 틀더니 황망한 심정으로 함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그들 사이에서 당황한 외침이 들려왔다.

“적의 함대다! 함대가 나타났다!”

성우 역시 고개를 돌렸다. 내륙 쪽 하늘에서 다가오고 있는 검은 형체······ 그건 수십 마리의 본 와이번 무리와 메신저호였다.

창원의 해상에서 대규모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 * *

“전원 전투 준비! 북쪽에서 세계수 진영의 비행 함대가 나타났다! 전원 위치로!”

사이렌과 함께 방송이 울리자 W·P·U의 함대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함교는 명령을 하달했고 기관실은 고속 기동을 이어나갔다.

오랫동안 숙달된 듯, 모든 기관이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6대의 비행선은 거대한 대포를 달구며 포격 전열을 형성했다.

“전체 포구를 정렬하고 대기한다!”

‘포 갑판(Gun deck)’의 플레이어들은 포구를 적 함대로 향한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침묵 속, 부사수들이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폈다.

“뭐야, 와이번? 저거 뼈로 만들어진 와이번 맞지? 지금, 고작 저딴 걸로 돌격해오는겁니까?”

부사수가 콧방귀를 뀌며 사수에게 망원경을 넘겼다. 사수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미친놈들, 아주 자살하러 들어오는군!”

비행선 한 척을 통째로 잃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의기양양했다.

베이커 함대의 병사들은 대부분 전직 군인으로서, 제독의 절대명령에 복종하여 무패의 신화를 일구어냈다. 미국 동부의 핵심인 W·P·U는 사실상 이들이 일구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작품을 눈앞에 두고 저렇게 돌격해 온다고? 저 야만인 새끼들 예술 감각이 전혀 없는 거 아니야?”

포 갑판 곳곳에서 조롱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 검은 물감 좀 더 짜야겠는데?”

불과 몇 시간 전, 진해항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버리지 않았던가? 그깟 날개 달린 뼈다귀 몇 개쯤이야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다들 입 닥쳐! 명령이 내려왔다!”

포술 장교가 소리치자 갑판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내 어디선가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매니저님! 그래서 고객님의 요청 사항이 뭡니까?”

이에 포술 장교가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붓 터치 시작하라는 명령이다!”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편, ‘선루 갑판(superstructure deck)’ 역시 분주했다. 다수의 전투 병력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적들이 가까이 접근할 경우 공격 마법을 퍼부어 사전 차단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갑판 위에 올라타 백병전을 버릴 경우를 대비하는것이었다.

“······어?”

“뭐지? 그림자?”

그런 그들은 당황하게 만든 건 역시나 갑판 위에 드리운 그림자였다.

그런데 이번 그림자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점점 더 커지며 갑판을 가득 메웠다.

이건, 노골적인 접근이 분명했다.

“위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날개 한 쌍이 다가왔다. 유난히 큰 본 와이번, 본 와이번 알파메일이었다. 적이 머리 위에서 습격해온 것이었다.

“빙결 마법 준비!”

“당황하지 마! 어차피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모든 함선에는 강력한 보호막이 덧씌워져 있었다. 그렇기에 갑판 위에 뛰어 내리는 건 불가능했다. 누군가 뭣도 모르고 몸을 던졌다가는 그대로 미끄러져 바다 위로 추락할 것이었다.

갑판 위에 대기 중인 병력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것이었다.

“모두 마나를 아껴, 멍청하게 보호막을 건드리면 벌집을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퍼一 엉!

본 와이번 알파메일의 등에 장착된 거대한 크기의 대포가 불을 내뿜었다. 한 줄기의 불벼락이 함선의 보호막을 강타했다.

쩌一 엉!

단 한 방에 보호막이 우그러지며 갑판이 뒤흔들렸다. 갑판병들이 균형을 잃고 죄다 넘어졌다.

이어서 보호막을 녹여버릴 정도의 엄청난 열기가 내려앉으며, 얼굴과 목덜미에 화상을 입기까지 했다.

“······윽!”

“대, 대체 뭘 쏜 거야!”

그건 ‘불의 정령석(상급)’이 장착된 ‘초자연의 폭풍’이었다. 대장장이의 예상과 다르게 단 한 방에 비행선을 추락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보호막을 뚫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미국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처음 보는 메시지와 함께, 그들의 머리 위, 거대한 피막의 날개 위에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먹구름인 줄만 알았다.

“맙소사.“

“······신이시여.”

하지만 이내 그 연기 속에서 언데드 군단이, 마치 폭포수처럼 갑판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텅! 텅! 텅! 텅!

보호막이 사라졌기에 그것들을 막아낼 건 없었다.

“어, 어!”

당황한 플레이어들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스켈레톤에 깔려 죽었다.

덜그럭! 덜그럭!

그것들이 한순간에 선루 갑판을 뒤덮었다. 그리고 선실 안으로 몸을 욱여넣고, 계단을 내려가 비행선을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예상 밖의 전개였고 워낙 순식간이었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기에 명령 전달은 더욱 늦어졌다. 선내의 플레이어들은 머리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전달 받지 못했다.

“······방금 그 충격은 뭐랍니까?”

포 갑판의 플레이어들 역시 다가오는 본 와이번을 조준한 채,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직 아무런 명령이 없다.”

달라진 점이라면 웃음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덜그럭! 덜그럭!

그 끔찍한 요동침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누군가 자리를 이탈하여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규율 위반이었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

그는 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 순간······.

쾅!

문이 부서지며 백색의 악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이 진해항에 그려 놓은 칙칙한 폐허에 대비되는, 강렬한 붉은색의 예술 작품이 탄생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