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52화 (152/244)

# 152

53) 수원, 추락한 미국 범선 - 2

“······조니, 이봐 조니, 이제 슬슬 정신 좀 차려.”

깜빡거리는 불빛 아래에서 조나단 케이지는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비행선 ‘메신저’와 대원들은 어떻게 된 거고?

“······오, 조니, 센트럴 파크의 영웅이 이렇게 안타까워 보일 때가 다 있다니! 지금 자네의 모습은 마치 중성화 수술을 막 마친 도베르만 같아.”

“파커······.”

조나단은 뿌연 시야 속의 남자를 알아보았다. 브라운 헤어의 백인 남자, 일등 항해사 로빈 파커, 그는 조나단의 직속 부하였다. 그가 거수경례를 해 보였다.

“맞습니다. 선장님! 하하, 드디어 대화가 통할 수준이 되었군?”

다분히 조롱이 섞여 있었다.

“배신인가? 어, 어째서?”

조나단은 W·P·U의 외무 1팀장이자 메신저호의 선장이며 레벨 19의 암석 계열 마법사로서, 상당한 실력자였다.

하지만 아군의 배신에 이어 등 뒤에서 날아든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배신이라니? 배신은 한때 같은 편이었어야 성립이 되지, 우리는 애초에 너희와 마음을 나눈 적이 없어.”

그가 씩 웃으며 조나단의 뺨을 툭툭 쳤다.

“그러니까 이건 작전이지. 제임스 본드 뺨칠 정도로 아주 제대로 먹힌 작전이란 말이야.”

파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정리하자면, 러브 의장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이 작은 땅의 광대 한 놈과 잘 지내보려고 하나 본데······ 베이커 제독의 의견은 달라. 그분이 요즘 동양식 정원 꾸미기에 관심이 많나 봐. 그래서······.”

“설마 세, 세계수를 노리는 건가?”

“오, 빙고.”

조나단이 비행선 메신저를 이끌고 이곳에 온 이유는 네크로맨서와 접촉하여 우호 관계를 쌓아나가기 위함이었다.

W·P·U의 수장인 러브 의장은 이 동양 땅의 영웅이 가진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자신들처럼 절대 종족의 휘하에 들어가지 않았을뿐더러, 절대 종족에 맞서기까지 하는 사내, 그 사내야말로 인류 재건의 핵심 인물이 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W·P·U 내에도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존재했다. 윌리엄 베이커 제독을 필두로 한 강경파였다.

“······파커, 베이커 제독은 이번에도 쓸데없는 희생을 치르려는 건가? 자네도 그 말도 안 되는 영웅주의에 빠진 거고?”

“조니! 이건 영웅주의가 아니야. 너도 봤잖아 그 끔찍한 나무의 자태를 말이야.“

“······.”

“그게 그저 그늘막으로 보였던 건 아니겠지? 그건 중동 사막 어딘가에 묻혀 있는 대량살상무기와 비슷해. 그 앞에 쭈그려 앉아서 코란을 읊으면 분명 날아올라, 워싱턴 시티를 레고 블록처럼 무너뜨릴 거야.”

파커는 양팔을 벌리며 마치 호소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이봐 친구, 우리는 언제나 미래의 재앙을 막아왔어.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것도 그 일환이야.”

베이커 제독 휘하의 미군 출신 플레이어들은 이렇듯, 여전히 미국의 주도하여 모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자라나는 힘은 미국 중심의 질서에 해가 될 ‘잠재적 위협’으로 판단하여 과감하게 제거했다.

조나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파커,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그리고 이번 메신저호의 추락이 기폭제가 될 거야.”

그는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와 메신저호는 배타주의적인 동양의 테러리스트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한 거라고 알려질 테고, 베이커 제독이 ‘임시의회’의 지지를 받게 될거야. 그럼······ 드워프들이 함대를 내주겠지.”

조나단은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W·P·U의 ‘드워프 함대’가 태평양을 건너, 세계수를 폭격하는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평화를 위한 절대 길이 아니었다.

“제발 잘 생각해······.”

“······응?”

그때, 파커의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깜빡이는 전등 불빛 가장자리, 구석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허연 물체가 두 개가 두둥실 떠 있었다.

“저게 뭐야?”

그건 분명 유령이었다. 저런 게 왜 여기에······.

콰—앙!

별안간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굉음이 고막을 내리치며 천장이 풀썩 내려앉았다.

암석 계열 마법사인 조나단은, 포박된 상태인데도 추락하는 콘크리트에 마법을 걸어, 동그란 돔 모양을 형성하여 머리를 방어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두 명 모두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콜록! 콜록! 대체 뭐······.”

파커는 돔 밖으로 기어 나오며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폈다.

잔해 사이로 희미한 빛과 정체불명의 검은 여기가 스며들어왔다. 파커는 본능적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젠장! 안을 확인해!”

“항해사님! 괜찮으십니까?”

근처에서 부하들의 육성이 들려왔다. 다행히도 전부 매몰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쩌저저저一

머리 위를 막고 있던 잔해가 통째로 들어 올려지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신이시여······.”

파커는 제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손,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잔해를 한 움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파헤쳐진 개미굴 속 개미가 된 기분으로, 파커는 몸을 웅크렸다.

“찾았습니다!”

머리 위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리고, 이내 누군가 이곳으로 뛰어내렸다. 암녹색의 로브를 걸친 동양인 사내였다.

그 뒤로 몇 사람이 더 내려왔는데,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세계수 진영’ 소속의 플레이어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 유명한 네크로맨서가 왔다는 뜻이었다.

“너희, 여기를 어떻게 안거지?”

파커가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 조나단? 조나단 맞습니까?”

이 목소리는 경수였다. 그는 몇 차례 만난 적 있는 외무 1팀장 조나단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조나단이 쇠사슬로 묶여 있다는 점에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 남자다.”

이어서 맨 뒤에 서 있던 백색의 웨어 울프가 말했다. 그는 길쭉한 손가락을 들어 올려 파커를 가리켰다.

“저 백인 남자가 그 배에서 벌어진 학살극을 주도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통하여 시체와 사물에 담긴 기억을 읽고, 이곳까지 추격해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뭐?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파커는 당황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미 해군 부사관으로 오랫동안 군생활을 해온 그였기에 이런 위급한 상황에 대한 면역력이 있었다.

“이봐, 무슨 일로 이렇게 거칠게 치고 들어온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FBI라도 들어오는 줄 알았다니까? 우리 같은 지성인으로서 말은 통하겠지?”

그는 능청을 떨며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네크로맨서, 성우를 마주 보았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은 분명 파커 쪽에게 불리했다. 파커와 부하들은 소수이며 이곳은 그들의 본진과 아주 먼 곳이었다.

하지만 기 싸움에서 지면 협상은 물론이거니와 포로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저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자, 여길 봐. 이 남자를 알 거야. 조나단 케이지, 우리를 대표해서 당신들을 만나러 갔었지. 그렇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런데 웬걸? 여기 앉아 있는 조나단의 주도로 반란이 일어났어. 이게 복잡한 집안싸움이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우리는 그 반란을 진압하고 사건의 경위를 추적하기 위해서 심문 중이었단 말이야.”

그는 의자에 묶여 있는 조나단의 어깨를 움켜쥐며 성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당신들, 양측의 외교적 만남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뤄졌지만, 우호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어서 부디 이해해줬으······ 컥!”

그의 능청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성우의 오른손이 날아들어, 목덜미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말이 왜 이렇게 길지?”

“커, 컥! 컥!”

“뭔가 큰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너희와 외교적인 대화를 하러 온 줄 아나?”

“크······ 허······.”

“나에 대해서는 네가 더 잘 알고 있던데?”

성우는 파커의 목덜미를 잡은 채, 손을 크게 휘둘렀다. 거구의 몸뚱이가 바닥에 사정없이 패대기쳐졌다.

“으으으······”

날개뼈가 콘크리트 덩어리에 찍히며 골절됐다. 척추에도 금이 간 건지 하반신이 저릿했다.

끝이 아니었다. 성우가 그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발로 짓눌렀다.

우두둑!

무릎이 수수깡처럼 꺾였다. 파커는 엄청난 고통에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꺽꺽거리는 쉰 소리를 내며 손톱이 으스러질 정도로 바닥을 긁어댈 뿐이었다.

“네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나는 그저 배타주의적인 테러리스트로서, 우리 땅에 온 외국 놈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싶을 뿐이야. 그게 내 취미거든.”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 말은, 직전에 파커가 조나단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 벽에 붙어 있던 유령 두 마리, 스펙터를 통하여 모두 보고 듣고 있던 것이었다.

“이게 네가 원하는 시나리오잖아?”

파커는 신경을 불태우는 것 같은 고통에 눈물을 주룩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으흐흐······ 웃기지 마라. 이, 이딴 고문으로는 소용없다. 나는 미합중국의 군인이다.”

끼이이一 쿵!

그때,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도 버티고 서있던 철문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 뒤로 검을 쥔 여자가 나타났다.

“······다 처리했어요.”

지수였다. 그녀는 검에 묻은 피를 털며 성우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녀가 털어낸 핏방울이 파커의 얼굴 위로 후두두 떨어졌다.

“뭘 해도 소, 소용없다. 나는 아무것도 말 안 해. 시간 낭비하지 마, 말고 그냥 나를 빨리 죽이는 게 좋을걸?”

허리가 나가고 무릎이 부러졌음에도, 파커의 얼굴에는 여전히 강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애국심으로 다져진 강인한 군인이었다. 그 어떤 고문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성우는 비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고문 같은 거 안 해.”

“······뭐?”

“우리가 누굴 고문해서 여길 찾은 줄 아나?”

그때, 파커의 얼굴이 무언가로 가려졌다. 복면이었다. 파커는 자신의 입가에 감도는 피 냄새를 맡으며 어딘가에서 울려오는 네크로맨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널 죽이지도 않을 거야. 이제부터 정치 싸움에 이용당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바로 너희야.”

파커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지만, 잘못 물렸다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너는 죽지 않겠지만, 네 자랑스러운 조국에 최악의 군인으로 오점으로 기억될 거야.”

* * *

파커의 패거리가 숨어 있던 곳은 용인시 상현역의 지하였다. 성우 일행은 무너진 잔해 밖으로 나와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에서 발견된 물건입니다.”

수색대원들이 큼직한 케이스를 끌고 나왔다. 성우는 멀찍이 물러서서 스켈레톤으로 하여금 케이스를 열게 했다.

이전에 추락한 비행선에서 발견된 ‘플레이어 킬러 박스’처럼 함정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요?”

다행히도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케이지 안에는 주황색의 구체가 들어 있었다. 총 4개였다.

“이게 바로 엔진룸에 있던, 핵심 부품이군요? 맞죠?”

옆에서 지켜보던 경수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비행선을 수색한 엔지니어들이 말하길, 엔진실에서 중요 부품이 빠진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비행선에 손을 댔을 때, 동력원이 미탑재된 상태라고 했는데 이게 바로 그 동력원인 듯했다.

성우는 부품 위에 손을 얹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비행선 엔진 코어 타입-3 (비행석)

- 등급 : 불명

- 분류 : 플레이어 제조 아이템

- 효과 : 마나를 주입하면 일정 부피의 무게를 최대 98% 감소시키며 2차 주입시 허공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 설명 : 일반적인 ‘비행석’에 무게 감소 효과를 300% 증폭시켜주는 ‘증폭기’를 부착한 모델이다.

이 아이템은 W·P·U의 귀중한 재산이며 1급 보안·관리 등급의 아이템으로써, 관계자 외 조작을 엄격히 금지한다. (제작자 직접 기술)

이 아이템을 엔진에 장착하면, 그토록 거대한 범선의 무게가 98% 이상 감소하여 공중으로 쉽게 떠오를 수 있게 되는것이었다.

물론 그 외 추진 장치나 조타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무게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모든 과정이 훨씬 쉽게 이루어질 것이었다.

“이걸 깊숙이 챙겨둬.”

웨어 울프 스켈레톤이 배낭 안에 케이스를 넣었다. 이 상태로 ‘공허의 안식처’에 복귀시키면 잃어버릴 염려가 전혀 없었다.

W·P·U에서 애지중지하는 물건인 게 분명했지만, 성우는 자신의 손에 들어 온 이상 반환해줄 생각이 없었다.

한편, 한호는 조나단 케이지라는 흑인 남자에게 힐을 걸어주어 상처를 치료해주는 중이었다.

“아, 너 프리스트였지?”

“그러게요? 저도 까먹고 있다가 방금 생각났어요.”

성우는 잔해에 걸터앉아 조나단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스펙터를 통하여 엿들은 결과, 이 남자는 세계수 진영에게 우호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우호 외교 어쩌고 그런 형식적인 것 말고 실질적인 이유를 말해.”

성우의 물음에 조나단은 한동안 두꺼운 입술을 굳게 닫고 있었다. 하지만 성우가 계속해서 쳐다보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미국 서버는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가하게 한국 서버까지 왔겠지.”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남미는 아니죠.”

“남미? 어디? 브라질?”

“구체적으로는······ 아마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열대 우림 아마존, 그곳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아마존은 워낙 넓고 험준하기에, 브라질 서버의 플레이어들 역시 도저히 손 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

성우는 대번에 이해했다. 태백산맥에서 그리고 북한 서버에서 몬스터의 왕이 등장한 것처럼, 아마존 역시 방치된 몬스터들이 진화를 거듭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진화한 놈들은 태백 산맥과 북한 서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할 가능성이 컸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깊고 드넓은, 지구 최대의 미지 중 하나이기에, 플레이어의 힘은 전혀 미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탄생한 몬스터가 북미 대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힘만으로는 막아내는 게 어렵게 되리라 판단하여 세계적인 연합을 꾸려서 힘을 합치는 것, 그게 우리가 바라는 일입니다.”

“그걸, 너희 전체가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조나단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드니 권력 투쟁과 암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조나단의 말에 따르면, 러브 의장이라는 노인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여러 조직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W·P·U가 미국 동부를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하지만 러브 의장은 강렬한 리더십은 가지고 있되, 그 리더십을 지켜 낼 수 있을 만한 압도적인 무력은 없었다는 게 큰 문제였죠.”

바야흐로 개인의 무력이 집단을 무너 뜨릴 수 있는 시대였다. 권력을 탐하는 강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첨예한 갈등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메신저호의 추락 소식, 놈들이 날조한 이야기가 이미 워싱턴으로 흘러 들어갔을 겁니다. 아직 러브 의장과 그 측근들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거짓 소식이 의회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우리를 공격하러 올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이 일을 꾸민 베이커 제독이 바라는 겁니다. 아마 이미 선동을 시작하여 의회를 설득하고 있겠죠. 젠장!”

한호의 힐이 끝나자 조나단의 혈색은 한결 안정화 되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갈수록 굳어갔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상황인데도, 제가 W·P·U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핸드폰으로 미국 서버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건? 통신이 될 텐데?”

조나단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습격을 감행한 직후, 미국 서버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는 핸드폰은 모두 수거되어 파기 되었습니다. 새로운 핸드폰을 구하더라도 미국 땅에 그려진 QR코드를 스캔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죠.”

성우는 수색팀에게 지시하여 적의 시체의 소지품 중 핸드폰이 있는지 확인하게 했지만, 단 한 개의 핸드폰도 발견되지 않았다.

“······파커와 부하들 역시 이런 상황까지 철저하게 대비하여 자신들의 핸드폰을 파기한 겁니다. 작정하고 오래 전부터 이번 프로젝트에 침투해왔으니······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겠죠.”

조나단은 큼직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담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보였지만, 어느 새 좌절감을 내비쳤다.

“항공기를 구해서 준다면? 미국까지 갈수 있겠나?”

성우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 웬만한 항공기로는 태평양을 건널 수 없습니다. 기이한 마법 폭풍과 몬스터의 공격을 버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메신저호가 필요한데······ 완파되어 W·P·U의 드워프라는 기술자들이 고치지 않는 한, 제 기능을 할 수 없을겁니다.”

조나던은 그 말을 끝으로, 콘크리트 파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때, 성우가 내뱉은 말은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메신저호, 그건 이미 고치는 중이다.”

“······예?”

성우는 고개를 돌려 경수를 바라보았다.

“경수씨, 그 범선, 고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합니까?”

“아, 그거요? 별로 오래 안 걸릴 겁니다. 내일 아침이면 작업 끝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나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여기서 고칠 수 없습니다.”

“왜지?”

“상당한 마법 공학 기술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우리도 상당해.”

* * *

이런 거대한 비행선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W·P·U의 기술자들이 대단하다는 걸 알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수 진영의 본진, 수원의 마을 역시 만만치 않은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으며 차고 넘치는 재료와 골드를 바탕으로, 종일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는 공대생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때? 마법이 부여된 목재긴 한데, 내구성은 그렇게 좋지 않지? 재생력도 전혀 없는 걸 보아하니 트를 피를 섞는 걸 모르는 걸까?”

“야, 누가 벽돌이나 목재 같은 거에 트롤 피를 섞을 생각을 하겠어? 어떤 미친놈이 빨간 물감인 줄 알고 칠하기 전까진 우리도 몰랐잖아?”

오히려 한 수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보호막이 있었던 모양인데, 선체 자체에 걸려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선내 어떤 기관에서 방출하는 것 같은데? 2팀은 들어가서 내부 시설 다시 한번 점검해 봐. ”

물론 외관만 수리한다고 해서 끝나는 작업은 아니었다.

“엔진이나 조타 장비도 일부로 의도적으로 파손한 흔적입니다. 아예 비행선 못 쓰게 하려고 작정한 듯하네요.”

“그런데 이 정도는 쉽게 수리할 수 있겠는데? 못 쓰게 할 거면 태워버렸어야지. 멍청한 놈들이네?”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엔지니어들은 각 기관의 설계 방식을 분석하고 파손된 부품을 그대로 재현하여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작업은 밤샘 이루어졌으며 어느덧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눈 아래에 짙은 그늘을 매단 엔지니어가 닭처럼 소리쳤다.

“모든 점검 끝났습니다!”

낯선 땅에 추락한 비행선 ‘Messenger‘는 완벽하게 재정비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4개의 엔진 코어 타입-3이 장착되자 강력한 에너지가 공기 흡입구에 감돌며 선체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출항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었다.

“마나를 주입할 15명의 마법사 탑승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1차로 마나를 주입하여 선체의 무게를 감소시키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2차로 마나를 주입하면 선체가 떠오를 겁니다. 시작할까요?”

경수의 말에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실험 이륙 시작합니다!”

“······오! 사!”

모든 이들이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삼! 이! 일!”

“1차 테스트, 이륙합니다!”

구우우우-

85미터짜리의 거대한 함선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 넓적한 그림자가 구경꾼들의 머리 위를 천천히 뒤덮었다. 그리고 약 50여 미터 상공에서 멈춰 섰다.

“이륙 성공입니다!”

“선내 상황 안정적, 선체 떨림도 거의 없습니다! 아직 조금 더 많은 테스트를 거쳐 봐야겠지만, 당장은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조나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걸 몰라도 적어도 기술력 하나만큼은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조나단이 성우를 바라보았다.

“······뭐하는 사람들이죠?”

성우가 작게 대답했다.

“거봐, 상당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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