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53) 수원에 추락한 미국 범선 - 1
성우는 수원으로 향하는 동안 일전에 밀어두었던 ‘레벨 업 카드 선택’을 진행했다.
- 레벨 업 카드를 선택하세요.
1) 능력치 (랜덤)
2) 스킬 (랜덤)
3) 아이템 (랜덤)
4) 기타 (랜덤)
5) 시체 폭발 (확정)
‘시체 폭발이다.’
5번, 확정 항목의 ‘시체 폭발’이 단연 눈에 띄었다. 시체 폭발은 그 어떤 스킬보다 요긴하기 쓰여 온 것이었다.
현재 등급이 ‘숙련’으로, 폭발이 일어 날 때마다 ‘심연의 호흡’이 소량 방출되는 옵션이 붙어 있었는데, 전문 등급으로 향상된다면 과연 어떤 옵션이 붙을 것인가?
성우는 5번을 선택했다.
- 스킬 등급이 향상되었습니다. (숙련 → 전문)
[스킬 정보]
- 이름 : 시체 폭발
- 등급 : 전문
- 분류 : 액티브
- 소모 : 마나 5
시체를 기폭제로 하여 폭발을 일으킵니다. 추가 데미지(+50%), 폭발 이후 죽음의 힘이 담긴 ‘심연의 호흡’을 다량 방출합니다.
+ 고압 폭발 : 시체가 30초간 팽창한 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추가 데미지(+300%), 심연의 호흡 추가 방출(+100%)
단, 팽창하는 도중에 공격을 당하면 폭발이 실패하며 시체는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추가 옵션으로 ‘고압 폭발’이라는 추가 스킬이 붙었다. 평소에는 일반 시체 폭발을 사용하다가 선택적으로 ‘고압 폭발’을 적용할 수 있었다.
‘30초라는 캐스팅 시간이 문제가 되겠지만, 때에 따라서 유용하게 쓸 수 있겠군.’
30초는 전쟁의 판도는 물론이거니와 생사를 갈라놓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기존의 시체 폭발처럼 마구 잡이로 쓸 수는 없을 것이며 상황을 잘 판단하여 영리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잠시 후, 성우 일행이 탄 헬리콥터가 세계수의 결계를 통과했다. 경수가 착륙장에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시죠. 다행히 빨리 돌아오셨군요. 성우 씨가 오래 자리를 비우시면 아직도 불안합니다. 무슨 일이 이렇게 계속 생기는지······.”
“미국 쪽 접촉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성우는 복귀와 동시에 가장 중요한 소식부터 물었다. 경수는 기다렸다는 듯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성우 씨가 오시기를 기다리던 중에······ 들으셨겠지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만, 미국에서 온 사절단이 누군가에 의해 전멸했다고 했다.
“우리와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우리를 찾아온 상황에서 변을 당했으니 흔히 말해서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쉽게 말해, 세계수 진영이 오해를 받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현장에 인력을 보내서 조사 중입니다. 안전을 확보해두었으니 조금 있다가 저와 함께 가시죠.”
“알겠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면 바로 보고해달라고 현장에 전달해주세요.”
그런데 세계에서 들려오는 골치 아픈 소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중국 쪽 소식도 있습니다. 1서버가 2서버를 굴복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됐군요.”
1서버의 패자인 자칭 ‘황제’는 3개로 나뉜 중국 서버를 통일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펼치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3서버를 초창기에 굴복시켰으며 2서버의 패자인 ‘정령술사’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게 성우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2서버를 꺾어버린 모양인데······ 분명 다음 목표는 우리가 될 거다.‘
2서버와 총력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훗날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세계수 진영을 견제하기 위해서 시베리아의 사냥꾼들을 보낸 놈들이었다. 이미 한반도를 집어 삼키겠다는 야욕을 대놓고 드러낸 셈이었다.
‘통일된 중국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다면 그땐 전쟁이다. 직접적인 공격은 아닐지라도 이전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견제를 해오겠지.’
오래전부터 예상해온 것처럼 대규모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였다.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듯, 그때를 대비해야 나가야만 했다.
“성벽 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내일 중으로 작업 끝날 것 같습니다.”
성벽과 공성 병기 제작 역시 그 일환이었다.
“재료가 충분하고 돈도 많으니 뭐든지 척척 이루어지네요. 역시 돈이 최고입니다.”
상당한 규모의 대공사임에도 순조로이 마무리 과정에 도달했다. 정확한 위치에 자재만 옮긴다면 무연의 ‘자동 건설’ 스킬로 단숨에 쌓아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성벽이 거대한 세계수를 중심으로 두고 수원 마을 전체를 에두르고는 광경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크, 성벽 멋있다! 여기서도 잘 보이네요. 그런데 처음 여기 왔을 때를 생각하면, 와, 진짜 엄청 달라지지 않았어요?”
한호가 감격한 듯 중얼거렸다.
“원래는 흡혈귀들이 사람들 다 죽이려고 모은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제일 안전한 곳이 됐네? 크······.”
한호의 말을 들으니 성우도 새삼스레 이 공간이 새롭게 느껴지긴 했다.
‘확실히 투자한 만큼 성장하긴 했지.’
성우는 마을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영험한 힘을 가진 거대한 나무가 마을의 중심에서 솟아올라 탄탄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가지와 나뭇잎이 장대한 폭으로 뻗어 나가서 드높은 천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늑한 그림자 아래에서 삼백여명의 플레이어들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창고를 불리고 자재를 옮기며, 하루가 다르게 도심을 일구어 나가는 중이었다.
그들의 소란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번 가죽은 진짜 잘 뽑혔는데? 약초 물에 담가뒀더니 체력 회복 버프도 달렸어.”
“잘했어. 갈수록 실력이 좋아지네.”
각종 공방이 수많은 물건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이 공간에서 작업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쪽 블록을 통째로 정비하여 ‘공방 거리’를 조성한 상태였다.
“서쪽 공사장으로 벽돌 자재 운반할 예정입니다! 수송 2팀 집합하세요!”
깨끗하게 치워진 도로 위로 화물차와 지게차들이 수시로 오가는 중이 었다.
또한, 버려진 건물들을 개조하여 새로운 용도로 활용해나갔으며 일부 낡은 건물을 허물고 밭을 조성하여 작물을 재배했다.
북쪽의 팔달산에서는 신비로운 약초들이 자라났다. 산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산지기’들을 두어서 약초를 남획하지 않게 통제했는데, 그들은 약초를 개량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기술까지 익혀나갔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완벽한 자급자족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예비 경비 1팀, 전원 집합! 지금부터 비상 대응 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 그 안쪽에 솟아오른 단단한 성벽, 포탑, 경비병력까지······.
어느덧 마을은 거대한 도시이자 요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넋 놓고 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었다.
“성우 씨, 사고 지점에서 사전 수색이 끝났다고 합니다. 이제 가봐도 될 것 같습니다.”
경수가 말했다. 성우는 마을을 둘러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가보죠.”
저절로 지켜지는 건 없다. 단단한 집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면 집과 함께 무너질 것이었다.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뿌리를 뽑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빼앗으려는 자는 반드시 존재한다. 누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던, 다시는 그런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게 평화의 기초였다.
* * *
경수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수원 외곽이었다. 오래된 시가지였는데, 한 상가 건물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 뭐야?”
한호가 입을 쩍 벌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상가의 옥상, 어떤 물체였다.
“진짜 배잖아? 아니 배가 왜 여기 있어요?”
5층짜리 상가 건물 위에 배가 한 척 얹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항구 도시에 있을 법한 이색 건축물로 보였지만, 그건 진짜 목조 범선이 었다.
곳곳에 구멍이 뚫린 범선은 5층짜리 상가의 옥상을 짓이긴 채 기울어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듯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비행선입니다.”
경수가 말했다.
“날아요? 이게?”
“맞습니다. 저도 보고 황당했습니다. 구름 속에 숨어 있었던 모양인데, 오늘 아침에 폭발음과 함께 이 자리로 추락한 겁니다.”
경수의 말을 듣고 살펴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선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선체 양측에 거대한 엔진이 달린 것이었다.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조심히 접근해야 합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기에, 일행은 옆 건물을 통하여 상가의 옥상으로 진입했다.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일대를 첨예하게 경계 중인 가운데, 범선의 내부를 살펴보고 있던 기술자들이 갑판 위로 나왔다. 그들은 성우와 경수를 내려다보며 탐문 결과를 전해왔다.
“엔진실을 살펴보니, 엔진마다 원형의 빈칸이 발견되었습니다. 중요 부품이 빠진 흔적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아이템이 들어가 있는 자리 같습니다.”
“그렇군요. 뭔지 몰라도 습격자들이 빼 간 것 같은데, 꽤 귀한 물건이 분명합니다.”
이런 거대한 물체를 날게 만들어줄 아이템이라면, 분명 엄청난 가치를 지닐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어딘가 이런 비행선이 몇 척 더 있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경수의 추론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런 걸 제조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을 겁니다. 진화 학회가 생물학 분야의 아이템을 제조했던 것처럼요.”
‘하이 아키텍트’라는 직업을 가진 무연은 단 며칠 만에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성 벽을 쌓아 올렸다. 이 런 거대한 장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직업도 존재할 것이었다.
“미국은 멸망한 이후에도 기술력은 최고다 이건가? 아, 성우 씨, 가까이 다가가면 아이템 정보가 떠오릅니다.”
범선이 내리박히면서 옥상 바닥이 일부 무너진 상태이기에 임시 발판을 설치해둔 상태였다. 성우는 삐걱거리는 발판 위에 서서 범선의 하부에 손을 얹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드워프제 3등급 비행선
- 등급 : 불명
- 분류 : 플레이어 제조 아이템
- 효과 : 고공비행 및 대규모 방어막 전개
- 설명 : 드워프의 기술로 만들어진 항공 수송기 , 길이 85미터, 최대 적재량 40톤, 총원 55인, 최대 속력 35노트, 관리총책 ‘조나단 케이지’ 외무 1팀장, 이하 세부 정보는 기밀로 한다.
이 아이템은 W·P·U의 귀중한 재산이므로 승인되지 않은 접근은 경고 없이 사살될 수 있다. (제작자 직접 기술)
- 상태 : 가동 중지(완파, 동력원 미탑재)
메시지를 다 읽은 성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진 몰라도 뭘 잔뜩 써놨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구색 맞추는 놈들일지, 아니면 진짜 체계가 잡힌 건지······.”
이점에 있어서 성우는 부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과 구색을 추구하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것들을 아직 보지 못했다.
물론 잘 잡힌 체계는 언젠가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융통성 있는 생존 전략이지,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는 절차와 규칙이 아니었다.
“선내에서 발견된 시체가 총 42구입니다. 정확히 파악은 안 되지만 내부에서 반란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정됩니다.”
옥상 한쪽에서는 선내의 시체를 운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성우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성우에게 시체는 다른 무엇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 같이 머리와 팔다리가 잘려나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스켈레톤으로 되살릴 수 없기에 기억 파편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때, 사고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인호가 다가왔다.
“이 정도라면 텍사스에서 전기톱 휘두르는 미국인도 같이 온 거 아닙니까?“
그는 농담을 한마디 하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시체를 내려보며 제 생각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왜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인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쉽게 생각해서 희생자의 신원을 추정하기 어렵게 만든 게 아닐까 합니다.”
“신원이요?”
“그들은 아주 멀리에서 왔습니다. 한국 서버에 적이 있을 리가 없죠. 그렇다면······ 내전이 아닐까 합니다.”
흥미로운 추측이었다. 단순한 반란을 넘어서 내전이다? 성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미국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암투가 벌어졌다고 가정한다면,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게 그래서 배신자가 누구인지 추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거죠.“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
성우의 말을 끊은 건 지수였다. 그녀는 칼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범선을 노려보았다.
“성우 씨, 안에 있는 사람들을 피신시켜야 해요.”
성우는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반응했다는 건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성우는 인호를 바라보았고, 인호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손에 쥔 무전기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전원 대피, 전원 범선 밖으로 대피한다. 지금 즉시 범선에서 이탈하라.”
이내 범선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성우는 그제야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 씨,무슨 일이죠?”
“무언가 작지만 엄청나게 많은 움직임이 느껴져요. 이건······ 그래요. 벌레예요.”
성우는 그 즉시 스펙터 2마리를 소환했다. 그리고 지수의 설명에 따라 움직임이 느껴지는 곳, 범선의 깊은 곳으로 진입시켰다.
스펙터는 범선을 투과하고 들어가서 단숨에 문제의 지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검은 상자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성우는 스펙터를 통하여 그 물건의 정보를 열람했다.
우우우우-
[아이템 정보]
- 이름 : 플레이어 킬러 박스(극독 벌레)
- 등급 : 알 수 없음
- 분류 : 플레이어 제조 아이템
- 효과 : 플레이어가 5미터 이내에 접근할 시 상자가 열리며 3,000마리의 ‘극독 벌레’가 풀려납니다. 방어력과 관계없이 10번 쏘이게 되면 무조건 사망처리 됩니다.
‘이건 사실상 부비트랩이다.’
누군가 세계수 진영이 잔해를 수색할 거란 걸 알고 끔찍한 선물을 남겨 놓고 간 것이 었다.
‘방어력과 무관하게 사망이라니, 최악의 선물이군.’
다행히도 그 물체는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큰 피해를 발생시키기 위해서 초기 수색에 발견되지 않고, 뒤늦게 발견되기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성우는 모든 인원을 멀리 피신시킨 뒤, 스켈레톤들을 투입하여 그 상자를 꺼내왔다. 물론, 꺼내온 뒤에도 플레이어는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건, 사실상 테러나 다름없네요. 제가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많은 주민이 죽었을 수도 있어요.”
지수의 얼굴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반면 성우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럼, 아직 개봉하지 않았으니 그대로 돌려주죠.”
“······.”
테러를 그대로 돌려주자는 뜻이었기에 지수의 표정에 당황이 번졌다. 테러에 테러에 맞선다니? 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갚아주지 않으면, 그다음은 정말 누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적이 누구인지 어떻게 찾죠?”
싸울 의지는 있으나 싸울 대상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체의 기억 파편만 볼 수 있었더라면 만사가 해결될 일이었지만, 하필 머리가 잘려나가다니······.
“아.”
성우는 그때 누군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장 경수를 돌아보았다.
“경수 씨, 헌터 컴퍼니에 연락해주세요.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하면 들어줄 겁니다.”
헌터 컴퍼니는 성우에게 아주 우호적인 집단이었다. 그들의 수장이 성우의 극성 팬이었으니 그 어떤 부탁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쪽과 연락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보낼까요?”
“누굴 좀 찾아야 합니다. 아, 사람은 아니고 늑대 한 마리, 하얀색 웨어 울프라고 전해주세요.”
백색의 웨어 울프, 물건에서 기억을 읽어내고 정신을 연결하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갖춘 자라면, 머리가 잘린 시체에서도 어떤 정보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네? 그 웨어 울프가 누구입니까?”
경수가 물었다. 그는 백색 늑대의 능력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알지 못했다. 이에 성우는 범선을 올려다보며 짧게 대답했다.
“무단 투기범을 잡아줄 사냥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