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51) 용산역, 시베리아의 냉기 — 3
드래곤 또는 용, 그 전설의 동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강의 생명체로 묘사된다.
끙! 끙!
때론 신에 필적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며 혹은 신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마저 있다.
끄르르!
그리고 그런 드래곤의 위엄을 가장 잘 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바로 ‘드래곤 피어’이다.
“응? 뭐야, 너희 왜 그래? 설마······ 저 주먹만 한 녀석한테 쫀 거야?”
차르의 추측대로 ‘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드래곤 피어, 그건 말 그대로 드래곤을 목격했을 때의 공포를 뜻한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에게서 느낄 수 있다는 초저주파를 넘어선, 근원의 공포다.
유약한 생명체가 그걸 마주한다면 모든 근육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건 물론이거니와, 심할 경우는 즉사할 수도 있었다.
‘아직 약하지만, 충분히 효과가 있다.
미르 역시 그 절대적인 종족이기에, 아직 해츨링 상태임에도, 저보다 몇백 배는 더 큰 괴물들을 움츠러들게 만든 것이었다.
그, 그아아아!
하지만 저 덩치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갈 정도는 아니었는지, 기둥 같은 앞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그런데 곰들의 움직임이 유난히 굼떴다. 하물며 놈들의 다리가 부르르 떨리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마음의 공포는 이겨냈다고 해도 육체의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쿵······
시스템에 의해 ‘경직’ 판정을 받았으니 알맞은 조치를 하지 않는 한 ‘상태 이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후······ 이 병신들이 대체 왜 이럴까?“
그 우스꽝스러운 꼴에 차르는 기분이 퍽 상한 듯 보였다. 그는 손을 등 뒤로 뻗었다. 그러자 타타냐가 품에 안고 있던 보드카 병을 넘 겨주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보드카를 들이켜더니 병을 집어 던져 깨트려버렸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 올려 미르를 가리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시발! 저 꼼지락거리는 걸 당장 밟아 죽이라고!”
끙!
그 고함에 미르는 놀란 듯, 성우의 발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으르렁거리며 차르를 노려보았는데, 붉은 눈동자가 한 차례 번쩍였다.
웅—
그 순간, 짙은 파동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마나였다. 어떤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이 무엇인지 성우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니, 모두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나 가장 놀란건 그 누구도 아닌 성우였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뭐? 대강령?”
벌써 공허의 안식처와 대강령을 배웠다니? 그리고 도대체 뭘 소환한다는 거지?
성우가 이 작은 천재의 주인이었지만,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매 순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덜그럭! 덜그럭!
비교적 작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켈레톤 무리가 걸어 나왔는데······.
“······치킨?”
전부 다 ‘치킨 스켈레톤’이었다. 총 14마리, 그동안 녀석에게 먹인 전기 통닭의 뼈가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전부 공허의 안식처에 집어 넣어두었던 것 이었다.
“너 지금······ 뭐하자는 짓거리지?”
차르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을 기만한다고 여긴 걸까? 하지만 성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
정말 몰랐다. 그리고 모르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
- ‘블랙 드래곤(해츨링)’이 당신에게서 물려받은 스킬을 응용하여 ‘새로운 스킬’를 창조합니다.
“또 뭐야?”
[스킬 정보]
- 이름 : 죽음의 불꽃
- 등급 : 숙련
- 분류 : 액티브(ON/OFF)
- 소모 : 불꽃 1개당 마나 5
휘하 언데드에게 ‘죽음의 불꽃’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으며 접촉하는 상대에게 ‘화염’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다음 순간, 치킨 스켈레톤의 갈비뼈 안쪽, 몸 중심부에서 붉은색 빛이 점등했다.
불이었다. 심장이 위치했던 곳에서부터 불길이 치솟더니 온몸을 뒤덮는 게 아닌가?
“헐? 선배? 저건 뭐예요?”
성우의 대답은 이번에도 똑같았다.
“나도 몰라.”
역시 정말 몰랐다. 그저 추측하건대, 성우가 가진 ‘샐러맨더의 아우라’를 네크로맨서의 스킬에 접목하여 말도 안되는 걸 개발해낸 것이다.
심지어 이뿐만이 아니었다.
- 팀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시너지 목록]
4) 죽음의 하모니(히든)
- 구분 : 직업 시너지
- 조건 : ‘리치’ 단계의 죽음 마법 사용자 3명 이상
- 효과 : 전용 스킬 ‘궁극’ 단계로 격상(랜덤 1종)
어느새 미르 녀석의 언데드 활용 수준은 ‘리치’ 등급에 이른 모양이었고, 그렇게 성우의 진영에는 총 셋의 리치가 존재함으로써 ‘히든 시너지’를 부여 받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궁극 단계라고?’
- 〈뼈 무기 제조(숙련)〉 스킬이 일시적으로 〈뼈 무기 제조(궁극)〉등급으로 격상됩니다.
역시나 ‘장인’ 등급보다 더 높은 단계가 존재했다. 일명 ’궁극’ 등급, 이름만으로도 최종 단계라는 게 느껴졌다.
‘드래곤 한 마리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활용 가능성이 정말 무궁무진해졌다.’
끙!
성우가 감탄하고 있을 때, 미르 녀석이 주둥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불타오르는 치킨 스켈레톤들이 뒤뚱거리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진군 명령이었다.
“오! 불닭이다! 불닭 스켈레톤!”
그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한호가 신이 난 듯 외쳤다.
덜그럭! 덜그럭!
한호가 명명한 ‘불닭 스켈레톤’ 분대는 용감하게 진군하여, 무려 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와 격돌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었다.
쿵! 쿵!
하지만 몸이 경직된 곰들은 제 다리 아래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불닭 스켈레톤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불닭 스켈레톤들은 놈들의 털가죽 위에 몸을 비비면서 불을 옮겨 버렸다.
치이이이一
불길이 다리에서부터 허리를 타고 등까지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곰들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렸다.
“크! 이게 바로 한국의 매운맛이다! 두 유 노 불닭? 디스 이즈 코리안 뻑킹 스파이스!”
정말 기가 차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차르는 그 기가 차는 광경을 지켜볼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곰이 형상이 피어났다. 공격 마법이었다.
’위험하다.’
성우는 서둘러 뼈 방패를 제조하여 미르의 몸을 가렸다. 직후, 차르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등 뒤의 곰의 형상이 앞발을 같이 휘둘렀다.
쿠-웅!
마치 소닉 붐(Sonic Boom) 이 일어난 것처럼 공기가 터지며 곰의 앞발 형상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그 목표는 다름 아닌 차르 자신의 권속, 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였다.
쩌一엉一
단 한 방에 모든 불곰이 우르르 쓰러졌다. 하나 같이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불닭 스켈레톤들 역시 산산이 조각났다. 단 한 마리만이 금이 간 채 튕겨 나와 미르 앞에 굴러떨어졌다.
끄르르!
미르는 제 스켈레톤들이 조각나는 걸 보고는 잔뜩 흥분하여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성우는 녀석을 재빨리 들어 올렸다.
끙! 끙!
차르가 손목을 흔들어 풀며 성우를 쳐다보았다.
“······후,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대, 얘들은 내 애완동물이야. 너처럼 그딴 해골에 의지하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나는 너랑 달라. 내가 직접 싸워!”
놈이 땅을 박찼다. 공격이었다. 동시에 사냥꾼들과 언데드 군단이 다시 움직이며 2차 충돌이 일어났다. 성우는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당기며 뒤로 물러섰다.
퉁! 퉁! 퉁! 퉁!
차르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놈은 양팔로 몸을 감쌌다. 그러자 등 뒤에 떠올라 있던 형상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거북’이었다.
텅! 텅! 텅! 텅!
놈의 몸에 녹색 보호막이 떠오르며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다만, 거북의 특성이 반영된 건지, 달려드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지수씨!”
성우는 미르를 지수를 향해 던졌다. 지수는 재빨리 점프하여 미르를 받아냈다.
저 꼬마 녀석이 이번에도 그림자 이동을 사용하여 탈출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차르는 정확히 10초 뒤, 놈은 또 다른 형상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늑대’ 였다.
“너는 고작해야 사냥감이다! 조금 질긴 사냥감!”
엄청난 속도였다. 놈은 순식간에 성우의 목전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등 뒤의 형상이 또한 번 바뀌었다.
이번에는 ‘호랑이’였다. 늑대처럼 가볍게 달려들어 호랑이처럼 단숨에 숨통을 끊을 생각이 었다. 놈의 주먹을 휘두르자 호랑이의 형상이 앞발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찢었다.
쩍!
뼈 방패로 막았지만 팔이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성우의 몸이 튕겨 나가 벤치 하나를 으스러뜨리고 용산역 벽에 부딪혔다.
“컥!”
제대로 한 방 먹은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그로기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성우는 곧장 몸을 일으키며 언데드를 조종했다.
‘놈을 포위해.’
차르는 다시 늑대 형상을 꺼내 들고 성우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성우의 언데드 역시 빨랐다. 기동력이 좋은 녀석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저리 꺼져!”
차르는 양손을 좌우로 휘둘렀다. 거대한 발톱이 일대를 긁고 지나갔고 차르의 목덜미를 노리고 들었던 구울들이 토막 나 흩어졌다.
하지만 그 찰나의 틈만으로도 성우가 다음 공격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후一웅一
성우가 그림리퍼를 휘두르자 10개의 검은 구체가 쏘아졌다. ‘악령 폭격’이었다.
하지만 차르는 이번에도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다시금 팔로 몸을 감싸니 거북 형상이 떠올랐다.
구一구一구一궁一
검은 일렁임이 허무하게 보호막 위를 타고 흘러, 차르의 등 뒤로 흩어져버렸다. 놈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방어력이 엄청나다. 악령 폭격도 먹히지 않으면 단순 화력으로는 잡을 수 없다.’
다시 10초 뒤, 늑대 형상이 되어 맹 렬하게 따라붙었다. 성우는 뒤로 빠지면서 계속해서 언데드를 내던졌다. 또한, 퇴로에 언데드를 배치해둠으로써 놈의 추격을 최대한 저지시켰다.
“이봐! 언제까지 이러고 놀 건데?”
차르는 추격을 멈췄다. 그리고 성우를 향해 양팔을 벌려 보이며 도발하기 시작했다.
“천사와 악마까지 적으로 돌린, 그 대단한 플레이어가 아니던가? 설마 전부 거품이었던 거야?”
“······.“
“제발 좀, 이 성가신 놈들은 좀 빼고 우리끼리 한 판 붙자고! 응?”
차르는 해골 하나를 으스러뜨리며 부탁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정한 사내라면 자기 자신의 힘을 보여줘야지. 동양 남자들이란 계집만도 못해서 원······.“
도발이 계속되었지만, 성우는 아무런 대답 없이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 발 당겼다.
퉁!
차르는 고개를 돌려 화살을 피했지만, 촉이 털모자에 걸리며, 그의 모자가 저 멀리 날아 가버렸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시발 새끼! 그래! 어차피 네 의견을 들을 생각은 없었어!”
그는 잔뜩 흥분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등의 문신이 검은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데몬 비스트’가 소환됩니다.
무언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메시지만으로는 추측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단어 뜻으로만 볼 때, 악마 같은 짐승이 나오는 걸까?
“데, 데몬 비스트다!”
무슨 일인지, 오히려 사냥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르가 지, 지옥 순례자의 능력을 사용했다!”
“젠장, 모두 일단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피해!”
성우의 언데드 군단과 맞서고 있던 사냥꾼들이 차르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성우 역시 불길함을 느끼고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차르의 어깨 위에서 검은 균열이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작은 포탈이 두 개 열리더니, 검은 덩어리들이 흘러나와 툭, 툭, 떨어졌다. 총 20개가량이었다.
꾸륵- 꾸륵-
그것들은 꿈틀거리며 어떤 모습을 가지기 시작했다. 네발 달린 짐승······ 분명 짐승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아니었다.
카악!
머리가 2개 달리거니 눈이 6개 달리는 등, 어딘가 일그러진 괴물들이 몸을 일으켰다.
‘악마의 드루이드······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
중국 서버 플레이어의 기억 파편에서, 그들은 차르를 ‘악마의 드루이드’라고 칭했었다. 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알 수 있었다.
‘1차 직업으로 상위 등급 드루이드인 에이션트 드루이드, 2차로 지옥의 괴물을 다룰 수 있는 직업을 뽑았군.’
그 두 가지가 연계되어 지옥의 짐승 ‘데몬 비스트’를 다루는 것이었다.
하물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신체 기능이 위축됩니다. (두 개의 기운이 충돌하여 보다 강력한 파동의 영향을 받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5)
성우와 차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눈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르 역시 정체불명의 ‘신격’을 꺼내 든 것이었다.
“더 재밌어졌지 있지? 안 그래?”
이내 형태를 완성한 ‘데몬 비스트’가 움직였다.
쉬익一
마치 화살처럼 빨랐다.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성우와 차르 사이, 길목을 막고 있던 언데드를 드릴처럼 뚫어 버렸다.
쩍—쩍—쩍—쩌—
성우 주변을 지키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때? 네가 가진 것보다 좀 더 낫지?”
그것들은 사방으로 퍼지며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리고 성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우는 즉시 본 와이번 한 마리의 발톱에 매달렸다. 그물망처럼 달려드는 데몬 비스트를 피하기 위해서는 하늘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카악!
하지만 데몬 비스트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었다. 용산역 옥상을 밟고 도약한 두 마리가, 본 와이번과 충돌, 갈비뼈를 부수고 몸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내부에서 이리저리 튕기며 본 와이번을 철저하게 분해해버렸다. 성우는 서둘러 본 와이번에서 떨어져 나와 좀비 괴조의 등에 매달렸다.
‘계속 시간을 끌 수는 없다. 큰 한 방이 필요하다.’
성우는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반격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게 하나 생각났다. 시너지 효과로 얻은 〈뼈 무기 제조(궁극)〉 스킬이었다.
정신이 없는 상황 속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탈출구를 제시해줄지도 몰랐다. 지금은 게임메이커가 필요할 때였다.
성우는 데몬 비스트의 추격을 따돌리며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스킬 정보]
- 이름 : 뼈 무기 제조
- 등급 : 궁극
- 분류 :액티브
- 소모 : 마나 5〜100
사체의 뼈를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제작합니다. 현재 제작할 수 있는 무기 유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일반 무기
(2) 고급 기술 장비
(3) 공성 병기
(4) 자유 조형
재료의 종류와 품질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며 숙련 등급이 올라갈수록 보다 완성도 있는 구성의 무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토대로 보건대, 성우가 본래 사용하고 있던 〈뼈 무기 제조(숙련)〉은 ‘(1) 일반 무기’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스킬이 강화될수록 정말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할 듯 싶었다.
‘3번, 공성 병기도 놀랍지만, 4번, 자유 조형이라? 말 그대로 마음대로 조형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려 ‘궁극’ 단계인 만큼 허술한 수준은 아닐 것이었다.
“언제까지 도망 다닐 거지? 응? 남자가 이렇게 약해 빠졌으니 너희 민족의 역사가 한심할 수밖에 없는 거다!”
차르의 빈정거림을 뒤로하고 성우는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당겼다.
퉁! 퉁! 퉁! 퉁!
“소용없다니까!”
차르는 역시나 팔을 모으며 거북 형상으로 바뀐 뒤, 성우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저 스킬이 있는 한 견제조차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10초다.’
성우가 뒷걸음질 쳤고 차르가 땅을 박찼다. 성우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5초 4초, 3초······.‘
그리고 마지막 1초, 차르의 등 뒤에 호랑이 형상이 떠올랐다.
’역시 맞다. 이제 10초 동안 거북 형상을 취할수 없다.’
차르의 공세를 피하며 꾸준히 관찰한 결과, 한 번 형태를 변화하면 10초 동안 다시 바꿀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틈이 제대로 한 방 먹일 기회였다.
성우는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마법을 시동했다.
“뼈 무기 제조.”
그와 동시에 하늘 곳곳에 날고 있던 본 와이번 무리가 날갯짓을 멈췄다. 녀석들의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왔다. ‘소환해제’였다.
그러자 그 거대한 백색 몸뚱이가 산산이 분리되며 쏟아져 내렸다. 그건, 뼈로 만들어진 비였다. 온 세상이 새하얀 뼈와 검은 그림자로 뒤덮였다.
우우우우-
이윽고 그것들이 허공에서 소용돌이치며 하나의 줄기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이내 어떤 형태가 완성되었다.
거인의 다리였다.
“······뭐?”
거대한 발이 차르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콰—앙!
첫 번째 걸음이 내려앉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마치 태고의 거인이 되살아나 인류 문명을 향해 종말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바닥이 무너 져 파이프가 깨지고 물이 치솟았다. 일대의 건물들이 휘청이며 유리창이 쏟아져 내렸다. 도로 곳곳에서 버려진 차들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뼈 무기 제조.”
이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불곰의 거대한 사체를 비롯하여 온갖 뼛조각이 단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이번에는 거인의 손이었다. 발이 들어 올려지는 순간, 거대한 손바닥이 그 위로 낙하했다.
쩌一억!
역시나 엄청난 충격이 도심을 훑고 지나갔다. 거인의 손아귀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 아래 깔려있던 무언가를 움켜쥔 것이었다.
그건 당연하게도 차르였다. 단 두 번의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놈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컥! 이, 이런 시발······.“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놈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치켜 떴다.
그건 성우의 등 뒤, 뼈로 만들어진 십 여 대의 ‘뼈 발리스타’였다. 역시나 뼈 무기 제조 스킬이었다.
“그 잘난 힘자랑은 죽기 전에 실컷 해둬. 터프 가이.”
인종차별주의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사실 너라는 인간이 그다지 우월한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