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45화 (145/244)

# 145

51) 용산역, 시베리아의 냉기 — 2

열기와 냉기가 부딪치며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우우우우-

바닥과 벽면 등 표면에 엉겨 붙었던 서리가 수증기로 피어오르고 다시 허공에서 눈발이 되어 흩뿌려졌다. 그 현상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타타냐는 자신이 내뿜는 강렬한 냉기로 성우 일행을 뒤덮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 생각보다 훨씬 짜증 나는 놈이었네?”

“벌써 그러면 안될텐데?”

그 사이, 성우의 등 뒤에서 군단이 탄생했다. 검은 연기 속에서 수백의 언데드가 걸어 나왔다. 진짜 성가신 건 죽지 않는 수백의 병력이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도 시베리아의 사냥꾼들은 겁먹지 않았다.

“저것 봐, 귀여운 녀석들이 잔뜩 나타났는데?”

“어이, 안드레이, 네 마누라 닮은 놈도 있어.”

“우리 마누라한테 죽고 싶은 거지?”

오히려 흥밋거리가 생겼다는 듯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들의 숫자는 총 21명, 언데드 군단에 비교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차르가 일어나기 전에 쓸어버리자고!”

“맞아. 지금 일어나면 술주정을 부릴게 분명해.”

덜그럭! 덜그럭!

언데드 군단이 성우를 스쳐 지나가며 용산역 광장을 향해 파도처럼 밀고 들어갔다.

그렇게 양측이 격돌했다.

쩌저저저!

타타냐가 손을 휘두르자 바닥에서 얼음송곳이 치솟았다. 언데드 군단의 선봉대가 단숨에 으스러지며 얼음 장벽이 진군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언데드 군단은 멈추지 않았다. 부서진 뼈 무더기를 타고 기어 올라가 얼음 장벽을 뛰어넘었다.

콰—앙!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캐논이었다. 사냥꾼 중 한 놈이 제 몸뚱이만 한 포신을 치켜들고 있었다.

“오! 손맛 죽이는데?”

그들은 ‘사냥꾼’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공략 방법을 찾아갔다.

타타냐는 뒤로 빠지며, 성우와 거리가 있는 주변부에 빙결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언데드 군단의 상당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콰—앙!

화력을 담당하는 마법사와 사수들은 후방의 언데드들에게 공격을 쏟아부었으며 부서진 뼛조각 위로 빙결 마법이 작렬했다.

재조합되어야 할 뼛조각이 얼음으로 코팅되어 버렸기에 부활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사냥꾼들의 전략은 역시나 남달랐다.

’이대로면 계속해서 밀린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네크로맨서를 공략하기 위한 카드로 ‘본체 암살’을 선택했다.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피해를 감내하기 어렵기에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전략을 꺼내온 것이 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암살이 실패하는 순간 모든 게 수포가 되고 만다.

“알렉세이! 파고 들어가서 방패 돌격으로 뼛조각들을 멀리 쳐버려!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리게 만들라고!”

사냥꾼들의 전략은 사뭇 달랐다. 개개인의 실력이 출중했기에 ‘줄다리기’를 선택했다. 네크로맨서와 힘겨루기를 하여 조금씩 조금씩 숨통을 조여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수의 언데드 군단이 버티고 있지만, 빙결과 화력 공격이 계속될수록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숫자와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물론, 잠깐 방심한다면 금방 원상 복구될 테지만, 이들은 그런 틈을 내주지 않았다.

그아아아!

거대한 불곰이 알렉세이라는 거구의 전사와 함께 돌진하며 언데드를 멀리 날려버렸다.

불곰이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의 언데드가 수십 미터를 날아가 버렸다.

‘전 병력을 돌격시켜서 크게 한 방 붙였는데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한 명 한 명이 상당한 수준이다.’

성우는 언데드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당겼다.

퉁! 퉁! 퉁! 퉁!

하지만 놈들은 바닥을 구르거나 방패를 들어 올리며 화살을 막아냈다. 놀라운 감각이 아닐 수 없었다. 직선으로 날아가는 무기로는 맞추기 어려울 듯 싶었다.

“그렇다면······.“

성우는 ‘비형랑의 부채’를 꺼내어 귀신을 소환했다. 10마리의 귀신이 성우 주변이 나타났다.

- ‘귀신’을 부릴 수 있습니다. (죽음 속성 친화력이 최고 수준입니다.)

* ‘물리 공격’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 ‘모든 등급’의 무기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 공격 대상에게 ‘혼란’ 저주를 부여 합니다.

* 일정 등급 이하의 대상에게 ‘빙의’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스펙터 2마리를 추가 소환하여 ‘시너지 효과’를 부여했다. 〈실체가 없는 존재(3단계)〉 효과로 이동속도가 30% 상승했다.

그리고 녀석들을 앞으로 내보내는 동시에 다시 한번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당겼다.

퉁! 퉁! 퉁! 퉁!

귀신들의 염동력으로 화살의 궤적을 틀었다. 화살이 워낙 빠르기에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는 없었지만, 찰나의 순간 방향을 틀었다.

픽!

결국, 한 남자의 허벅지에 화살이 명중했다.

“윽! 마, 맞았다! 그리고 뜨거워! 악!”

발화 효과 때문에 고통이 배가 되었다. 옆에 서 있던 빙결 계열의 마법사가 그의 허벅지에 재빨리 얼음 마법을 사용하여 온도를 낮췄다.

“으하하! 멍청한 알렉세이가 첫 번째로 화살에 맞았다! 저 새끼가 내일 설거지 당번이다!”

하지만 그들의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10개의 화살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들었으니 말이다.

“······악!”

“젠장! 놈이 또 이상한 수를 쓴다!”

“사수들 조심해! 유령 같은 게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곳에 신경이 팔리게 되면 정면의 힘겨루기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 조각난 채 얼어붙어 있던 언데드들이 하나둘 재조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라? 저게 뭐지?”

“하늘을 조심해!”

다량의 물체가 허공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타타냐가 손을 들어 올려 거대한 얼음 우산을 만들었다. 사냥꾼 전원이 그 보호 아래 들어갔다.

콰과과과과-

그 위에 수십 발의 창대가 박혔다. 그건, 신기전이었다. 성우는 ‘인벤토리’ 기능을 활용하여 인근 옥상에 신기전을 미리 설치해둔 상태였다.

“좋아! 전부 막았다!”

“역시 타타냐다!”

하지만 그들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퍼- 버- 버- 버- 벙-

수십 발의 화살이 폭발하며 얼음 우산을 산산이 조각냈다. 그 파편이 사냥꾼들의 머리 위로 우박처럼 쏟아졌다.

“으악!”

“젠장, 저, 정신없어 죽겠네!”

사냥꾼들은 서서히 침착함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 혼란 위에 또 다른 혼란에 겹쳐졌다.

“주인님! 제가 왔습니다! 딱!”

사냥꾼 진영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서 있는 건 역시나 해골바가지, 리치였다.

그리고 그 뒤로 수천의 좀비 떼가 몰려왔다.

우어! 우어어!

“이건 또 어디서 온 거야!”

“미친,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시베리아보다 더 지옥 같잖아!”

“정신 차려! 정신 차리면 살 수 있다! 우린 야생의 힘을 받고 있어서 쉽게 죽지 않는 걸 잊지 마!”

DMZ 근처에 있던 좀비 군단을 여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으니 모두 소환 해제한 뒤, 한국 서버 내에서 몬스터 사체를 긁어모은 것이었다.

그 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아주 늦게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니콜라이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뒤에서 오는 걸 보고도 안 해 주다니!”

“니콜라이! 응답하라! 니콜라이!”

니콜라이라는 감시 임무를 맡은 작자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지수는 미르를 돌보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변을 탐색하며 적들의 눈과 귀를 도려내는 중이었다.

“고작 좀비다! 다쓸어버려!”

“발사!”

콰—앙! 콰—앙!

캐논 한 방에 열 마리 이상의 좀비가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제아무리 잘난 화력을 지녔다고 한들, 앞뒤로 조여드는 물량 공세를 밀어내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충돌대비!”

“백병전이다!”

결국, 난투가 벌어졌다.

‘이제 내 턴이 왔다.’

성우는 스펙터의 눈을 빌려, 허공에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적재적소에 권속들을 배치했다.

가장 성가신 상대 인 타타냐에게는 평양에서 얻은 ‘본 샐러맨더’를 보냈다.

비록 원래 내재 되어 있던 힘은 ‘불의 정력석(상급)’ 형태로 빠져나온 상태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강렬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젠장! 저리 가!”

그렇기에 타타냐가 쏘아 보내는 빙결 마법이 허무하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꺼지라고!”

타타냐는 물러서면서 빙결 난사했다. 물론, 계속해서 빙결 마법이 중첩될수록 본 샐러맨더의 몸에 서리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한동안은 아무것도 못 하게 묶어둘 수 있을 것이었다.

한편, 압도적임 힘으로 언데드 군단을 짓이겨버리고 있는 불곰에게는 민석과 듀라한을 붙였다.

쿵— 쿵— 쿵— 쾅!

민석이 본 드레이크에 탄 채 밀고 들어가 불곰을 들이받았다. 덩치는 본 드레이크가 조금 더 컸지만, 완력에서는 불곰이 앞섰다.

그아아아!

불곰은 비교적 자유로운 앞발을 이용하여 본 드레이크의 턱을 잡고는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본 드레이크의 아래 턱뼈가 쩍, 하고 갈라져 버렸다.

“부릴 줄 아는 재주는 그게 다냐!”

하지만 진짜 공격수는 민석이었다. 민석은 본 드레이크의 머리를 밟고 도약했다. 그리고 ‘지배자의 대검’을 불곰의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푹!

이름이 바뀐 뒤 한층 더 강력해진 대검이 놈의 질긴 털가죽을 찢고 치명상을 입혔다.

또한, 민석은 ‘죽음의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여 상처 부위를 곪게 만드는 저주를 퍼부었다.

두두두두두—

이어서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좀비 무리가 갈라지며,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이 치고 들어왔다.

촤-악!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불곰을 스쳐 지나가는 동시에 옆구리에 긴 자상을 남겼다. 이어서 선회하며 불곰의 주변을 정신없이 오고 가며 계속해서 상처를 늘려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민석은 놈의 머리 위에 매달린 채 대검을 내리찍었다.

푹! 푹! 푹!

두 기사의 협공은 살벌하게 계속됐다. 옆구리와 허벅지에는 선이 그어지고 목과 등에는 점이 생기니······.

그어어······

그 육중한 괴물은 결국 버티지 못했다. 놈의 몸뚱이가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쿵—

- 에이션트 드루이드의 ‘권속(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 11단계)’을 사냥하여 4,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성우는 놈이 쓰러지는 즉시, 스켈레톤으로 일으켰다. 가죽과 살점이 날아가고 3층 높이의 거대한 곰이 머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젠장! 미스터 빅이 당했다!”

“모두 피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우는 괜스레 뿌듯했다.

‘역시 얻었군.’

그가 원하는 뼈는 반드시 손에 들어오는 편이었다.

한편, 한호도 그 난전 속에 있었다. 그런데,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적이 21명밖에 되지 않다 보니 끼어들 틈이 없었다.

“아오!”

그는 뒤에서 종종 단검을 던지다가 숨이 차올라 근처에 있던 벤치에 잠깐 앉았다. 그런데······.

“어이, 꼬맹이!”

누군가 직접 찾아왔다.

“······응?”

족히 2미터 10센티미터는 될 법한 거구의 사내가 전투 도끼를 휘두르며 좀비 무리를 헤치고 다가오고 있었다.

“······네?”

한호는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방금 들은 말이 생각나서 발끈했다.

“뭐? 꼬, 꼬맹이? 너 지금 나한테······.“

“응? 동양 놈들은 어린애인지 다 큰 놈인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어차피 애나 어른이나 전부 조막만 한 것들 아닌가? 죽어!”

놈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한호의 머리 위로 전투 도끼가 낙하했다. 한호는 단검을 들어 올려 맞부딪쳤다.

캉! 카-강!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한호는 자신의 힘뿐만 아니라, 아수라 망토의 4개의 팔을 전부 들어 올려 간신히 버텨냈다.

“어쭈구리······.“

한호는 도끼를 막아내던 6개의 단검 중, 하나를 움직여 사냥꾼의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사냥꾼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손쉽게 피해냈다.

“오, 제법인데 꼬맹이?”

한호는 씩씩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닥쳐 뚱땡아!”

“뭐? 으하하! 꼬맹이, 너 참 귀엽구나? 이름이 뭐냐? 나는 블라디미르다.”

한호는 그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블라디미르라고?”

“그렇다.”

“진짜 블라디미르라고?”

무슨 일인지 한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니까?”

“으하하! 아이고 웃겨!”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라니! 으하하!”

블라디미르는 영문을 모르는 비웃음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전투 도끼를 들어 올렸다.

“뭐, 뭐야? 기분 나쁘게 왜 웃고 지랄이야?”

한호가 웃음을 멈추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을 날렸다.

“우리 햄스터 이름이 블라디미르였거든. 으하하! 그럼 너 햄스터랑 이름이 똑같네? 으하하! 너는 그 덩치에 햄스터 이름이네? 으하하!”

블라디미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누가 햄스터라는 거야! 대가리 깨지면 헛소리도 못 하겠지!”

놈은 발끈하여 달려들었다. 햄스터랑 이름이 똑같다는 말이 왠지 모르게,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다.

“머리를 쪼개주마!”

그의 도끼가 한호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조금 전에는 단검으로 막았다만, 이번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붕—

철제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두개골을 깨질 것이었다.

쩡—

하지만 블라미디르의 도끼는 허공에 멈춰섰다. 정확히는 황금색 보호막에 막혔다.

“응?”

“어이구, 지능 수준도 햄스터네 딱?”

푹! 푹! 푹! 푹! 푹! 푹!

그 사이에 한호의 단검 6개가 블라디미르의 몸 곳곳에 박혀 있었다.

“커, 커어······.“

“우리 햄스터도 투명 케이스 안에 넣어두면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막 박박 긁어대더라고 근데 너도잖아? 완전 그냥 덩치 큰 햄스터잖아?”

“미친······ 새끼······ 큭.”

블라디미르는 한호의 발 앞에 쓰러졌다.

“나, 나는······ 큭, 저, 전사······.“

“잘 가 햄스터야.”

“······.“

한평생 시베리아 벌판에서 거칠게 살아온 전사의 최후는, 햄스터 취급이었다.

그렇게, 전황은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타타냐가 본 샐러맨더에게 묶여 있는 게 컸다.

“······됐다!”

하지만 계속된 빙결 마법에 결국 본 샐러맨더마저 얼어붙고 말았다. 타타냐는 그 괴물을 단단한 얼음으로 봉인한 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반격한다!”

그때였다.

쩌一 적!

얼어붙은 본 샐러맨더의 몸뚱이가 무너져내리며, 그 틈 사이를 뚫고 푸른색의 불덩이가 달려들었다.

네크로맨서였다.

흥!

타타냐의 목덜미로 낫이 떨어졌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소형 방패, 버클러(Buckler)로 막아냈다. 엄청난 데미지에 버클러가 반 토막 났지만, 목이 달아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뻑!

하지만 이어서 날아온 왼손을 막아내진 못했다.

“ 컥!”

엄청난 근력 수치가 담긴 주먹질이 타타냐의 왼쪽 광대를 내려 앉혔다. 그녀의 몸이 붕 떠올라 빙판 위로 내리 꽂힌 뒤, 또 한참을 미끄러졌다.

“허, 허어······.“

그녀는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기 위해 버둥거렸다. 광대가 내려앉은건 물론이거니와 한쪽 눈이 완전히 감긴 상태였다.

“한 번에 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튼튼한데? 좋은 뼈를 가지고 있나 봐.”

성우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싸움이 벌어지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타타냐는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다.

“······큭, 안 되겠다! 그냥 차르를 깨워!”

타타냐가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사내들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뭐? 진심이야? 개지랄할 텐데?”

타타냐가 사내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안톤! 여기서 절반쯤 죽으면 살아남은 절반한테 더 난리 칠 텐데 그건 괜찮겠어?”

“아? 그럴 바에 죽은 절반에 속하고 말지······ 알았어! 어서 차르를 깨워! 더 늦기 전에!”

놈들은 서둘러 작전을 변경했다. 도대체 그 차르라는 놈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깨우기를 주저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앙!

별안간 용산역 한쪽 벽면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어, 버, 벌써 깼나?”

그리고 그 안에서 방금 전 한 마리 처치한 ‘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 4마리나 나타났다. 그러자 사냥꾼들이 옆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끅! 으, 머리야······.“

4마리의 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 사이에서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보드카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뭐야······ 시발.”

사내는 여전히 술이 덜 깬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타타냐를 바라보았다.

“타타냐, 해 떨어질 때까지 깨우지 말랬지? 술 마신 나보다 기억 못하는 거야?”

“그런데 안 그러면 우리 목이 떨어질 상황인걸? 차르, 내 얼굴 좀 보라고······.“

“응? 네 얼굴은 원래 우그러져 있었어.”

“나쁜 새끼······.“

차르, 그는 타타냐에게 보드카 병을 던지듯 건네고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성우와 마주 섰다. 그는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이내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 중국 놈들이 말한 그 죽음의 개?“

그는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밝게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성우를 향해 검지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주 근사하군! 포르말린 처리한 뒤에 관절에 못을 박고 내 방 입구에 세워두면 그림이 딱 되겠어!”

성우가 피식 웃었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군?”

“응? 그래?”

성우도 차르를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아직은 좀 별로야. 혹시 변신 같은거 할수 있나?”

“응? 무슨 말이지?”

그때였다.

“서,성우씨!”

등 뒤에서 지수의 목소리였다. 다급함이 느껴졌다.

“ 미르가······.“

미르? 성우가 돌아보니 그녀의 품에는 미르 녀석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웅—

성우의 발아래, 정확히는 그림자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림자 이동까지 복제했다.’

새삼 놀라웠다. 정말로 성우의 모든 스킬을 따라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성우는 발로 미르의 몸을 가렸다.

‘드래곤이라는 걸 알면 무조건 노리려고 할거다.’

그런데 녀석은 성우의 발 밖으로 돌아 나와 정면, 정확히는 거대한 곰들을 노려보았다.

“응? 걔는 뭐야? 고양인가? 아, 강아지인가?”

꿍 끄-릉!

그리고 그 강아지만 한 녀석이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제 몸집보다 수백 배는 더 큰 곰들에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 ‘드래곤 피어’가 발동합니다.

* 레벨과 지능이 낮은 생명체를 경직시킵니다.

놀랍게도 그게 먹혔다.

그으으?

곰들이 입을 쩍 벌리더니, 그 거대한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다. 덜덜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차르는 고개를 돌려 제 권속들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이었다.

“너희들은 또 왜 그래? 나 잘 때 내 보드카 마셨냐?”

- 대상의 레벨과 근력 수치가 상당 하여 ‘드래곤 피어’가 일정 부분만 적용됩니다.

* 모든 신체 기능이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60%)

에이션트 자이언트 베어, 저 괴물들은 이 작은 새끼 드래곤보다 훨씬 힘이 센 존재다.

하지만 격과 지능이 낮기 때문일까? 확실히 조금이나마 ‘드래곤 피어’가 먹히고 있었다.

“하, 참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배, 이 시베리아에서 온 놈들······ 덩치만 크지 전부 햄스터 수준인데요?“

오늘, 시베리아의 사냥꾼들이 용산역에서 햄스터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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