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44화 (144/244)

# 144

51) 용산역, 시베리아의 냉기 -1

다음 날 아침, 세계수 진영에도 불청객이 찾아왔다.

“예? 누가 왔다고요?”

세안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경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누군가 결계 앞에 나타나 네크로맨서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경수는 그 보고를 받고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전 병력을 소집했다.

“······외국인이라고 하셨습니까?”

경수의 물음에 경비 1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흑인 남자하고 백인 여자인데, 자신들이 미국 서버에서 왔다고 합니다.”

“미국이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뇌신의 철퇴’를 대기 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감시반’이 결계 주변을 철통같이 감시하는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경수는 다수의 경비 병력을 대동한 채 결계 밖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반면, 상대는 단 두 사람뿐이었다. 당초 보고대로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였다.

“미국서버에서 오셨다고요?”

“그렇습니다.”

경수의 물음에 키가 훤칠한 흑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 손에 긴 지팡이를 쥐고 있는 거로 보아 마법사 계열로 보였다.

그 옆에 서 있는 백인 여성 역시 정장 차림에 등 뒤에 방패와 검을 둘러매고 있었다.

“정확히는 미국-1 서버입니다. 미국 동부에 해당하죠.”

그들의 태도에는 적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떤 의도가 깔렸을지 모름으로, 경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미국 서버라니? 그렇다면 태평양을 건너서 왔다는 건데······ 어떻게? 그리고 왜지?’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의 한반도 공격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올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자기 서버 안에서 세력 기반을 다지고 생활 시설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때다. 그 먼 거리를 주파해왔다면, 그럴 만한 목적이 있다는 걸 텐데······.‘

그렇기에 경수는 감시반을 총동원하여 일대를 철저하게 살피라고 해두었다.

흑인 남성이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3일 전에 근처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당신들, 세계수 진영의 놀라운 활약은 ‘월드 메시지’와 ‘공식 채널’ 방송을 통해서 여러 차례 접했기 때문에, 반드시 만나 뵙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흑인 남성이 옆에 서 있던 백인 여성에게 지팡이를 건네고는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지갑 안에서 나온 건······ 무려 명함이었다.

“미국-1 서버의 최고 세력인 W·P·U소속, 외무 1팀장, 조나단 케이지라고 합니다.”

명함에는 Wellington Plays Union 이라는 조직명과 함께 조나단 케이지의 직함이 쓰여 있었다.

이런 시국에 명함 같은 걸 주고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경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 저는······ 세계수 진영의 총무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경수는 그의 거대한 손을 맞잡았다. 조나단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곧장 본론을 꺼냈다.

“혹시 네크로맨서, 그분을 뵐 수 있을까요?”

역시나 이들이 방문한 목적은 네크로맨서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혹시 안 계신 겁니까?”

경수는 고개를 저었다.

“안에서 중요한 작업을 처리하시는 중입니다.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 같은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죄송하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결계 안으로 모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네크로맨서는 마을 안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무턱대고 밝힐 수는 없었다.

‘이들이 만약 침략을 목적으로 접근했다면, 성우 씨가 없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조나단은 백인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둘은 어떤 사인을 주고받은 건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12시간마다 한 번씩 연락책을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저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신 겁니까? 네크로맨서께 미리 일러두겠습니다.”

이에 조나단의 대답은 생각보다 거창한 문제였다.

“무너진 세계의 재화합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국제적인 통합 기구의 필요성을 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명성을 지닌 한국 서버의 영웅을 초청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분과 의논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국제 통합 기구? 그렇다면 멸망 전 세계의 UN 같은 조직이 아니던가?

‘글쎄, 말이 쉽지 불가능한 일이다.’

경수는 그 거창한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그런 게 과연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시스템은 언제나 거친 스토리를 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평화를 위한 초석은 일찌감치 뿌리 뽑아 버릴 것이다.

하물며 W·P·U, 저들은 진정 평화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을까? 절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입에 발린 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평화를 울부짖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평화는 여유가 생겼을 때나 떠올릴 수 있는 이상이다. 그게 아니라면 정치나 사업에 불과할 것이다.

‘약탈자가 아니면 장사치들이 꼬이는군.’

* * *

그 시각, 성우는 서울로 향하는 헬리콥터 안에 있었다. 오늘 새벽, 광복 길드로부터 급히 날아온 지원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놈들이 나타난 건 어제 오후 8시 무렵입니다.”

민흠은 헬리콥터 안에서 브리핑을 이어갔다. 이미 전반적인 상황은 설명이 된 상태 였지만, 중요한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었다.

“슬라브족으로 보이는 백인 플레이어 그룹이 은평구에 위치한 북부 경계 초소와 경비 병력 50명을 일방적으로 학살한 뒤, 뻔뻔하게도 협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협상이라고요?”

“말이 협상이지 사실상 힘을 과시한 뒤에 손쉽게 굴복시키려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커맨더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시지 않으셨고 결국······.“

민흠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성우 씨에게 저를 보낸 직후, 놈들에게 맞서러 가셨다가, 크루세이더 팀 전체와 함께 서울역 근처에서 통째로 얼어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규모 빙결 마법에 당한 거로 추정됩니다.”

“얼어붙었다면······ 생사는 어떻게 됩니까?”

얼어붙었다는 것만으로는 죽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빙결 계열 스킬 중에서는 피격 대상에게 데미지를 주지 않고 ‘상태 이상’만을 부여하는 게 허다했으니 말이다.

“아직 모릅니다. 그걸 모르니 미치겠습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이동을 종용한 겁니다.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민흠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추가 설명을 했다.

“······어쨌든 그 직후, 남산에 무언가를 심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서울 일대의 기온이 확연하게 내려간 상태입니다.”

“기온? 일정 지역이 추워지고 있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 물건이 뭔지는 광역감시팀에서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산이 완전 에베레스트처럼 변해버려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브리핑을 들은 성우는 정체불명의 공격자들이 누구인지 감이 왔다.

‘러시아의 사냥꾼들이 내려왔군.’

중국-1 서버의 사주를 받은 시베리아의 사냥꾼, 러시아의 랭킹 1위가 한반도에 온 것이었다.

“어, 갑자기 확 추운데요?”

한호의 말처럼 서울 상공에 진입한 이후, 체감 온도가 확연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히터 껐어요? 입김이 막 나오네?”

한반도 역시 한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강력한 한파였다.

“남산 근처에서 측정한 결과, 영하 25도까지 내려갔고 지금도 계속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떨어질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와, 영하 25도? 미친, 그럼 거의 시베리아 아니에요? 허, 발 시려워······.“

“영등포역에 도착하면 두꺼운 방한복이랑 핫팩이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끙— 끙—

블랙 드래곤이 칭얼거렸다. 녀석은 성우의 무릎 위에서 치킨 스켈레톤을 끌어안은 채 자고 있었는데, 녀석도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성우는 가방 안에서 ‘불의 정령석(상급)’을 꺼내 들었다. 샐러맨더를 잡고 얻은 전설 등급의 아이템으로써, 꺼내는 것만으로도 헬리콥터 안이 한층 따뜻해졌다.

“이걸 끌어안고 자.”

끄르······.

녀석은 성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불의 정령석을 배아래 깔고 몸을 말았다. 그리고 치킨 스켈레톤을 움직여 제 몸을 덮게 했다.

“아, 맞다. 선배, 저 이 녀석 이름 생각해봤어요.”

성우는 블랙 드래곤의 이름 짓기를 한호에게 맡겼었다. 지난밤, 수첩을 펼쳐놓고 뭔가를 막 적고 있더니, 주어진 임무에 충실히 임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크 파이어 어때요?”

“······뭐?”

성우는 귀를 의심했다.

“별로예요? 역시, 까탈스러운 선배가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다 준비해놨죠. 그럼 더 카이사르 오브 코리아는 어때요? 웅장하고 의미 있지 않아요? 애칭으로는 카이? 이것도 별로면 카오스 엠페······.“

“됐다. 너한테 부탁한 내가 잘못이지.“

생각해보면, 제 별명의 최강의 성스러운 아수라 도적 따위로 짓는 녀석에게 작명을 부탁한 게 실수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지수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슨······ 한호 씨, 예전에 햄스터 키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대체 걔 이름은 뭐였는데요?”

“블라디미르였어요. 왜요?”

“해, 햄스터가 블라디미르에요?”

한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죠? 새끼 낳아서 볼코프, 세르게이, 아나스타샤라고 지어줬었죠. 아, 그리고 사슴벌레도 키웠는데 걔는 미야모토 무사시였고 그다음 키운 장수풍뎅이는 금강불괴 였어요.”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라는 법칙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보다 못한 지수가 나섰다.

“그냥 미르는 어때요? 순우리말로 용을 뜻하는 건데, 드래곤하고 용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귀엽고 부르기도 쉽지 않아요? 블라디미르보다야······.“

“좋네요. 그걸로 하죠.”

성우는 지수의 의견을 곧장 채택했다. 그러자 옆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던 한호가 발끈했다.

“와, 아니! 둘 다 왜 이리 센스가 없어요? 제가 어젯밤에 잠도 설치면서 고민한 건데! 블라디미르나 미르나!”

하지만 아무도 한호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헬리콥터는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곧 착륙합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영등포역은 마치 새하얀 비닐로 덮인 것 같았다. 눈이 내린 건 아니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되어 서리가 낀 것이었다.

건물 옥상이나 외벽, 아스팔트 도로나 인도, 각종 기물까지 온통 얼음막 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그 시베리아에서 온 놈들이 서울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두면 한반도가 시베리아가 될 상황이 아니에요?”

한호의 말에 민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민 전체가 얼어 죽을 지경입니다만, 대규모 피난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크루세이더 팀도 없는 상황에서 놈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게 뻔하니까요.“

시베리아의 사냥꾼들이 사냥을 마음 먹는다면, 피난 가는 광복 길드쯤이야, 순식간에 전멸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불이나 얼음을 다루는 마법이 가장 유용한 동시에 파괴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광범위한 영역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 진짜 빙하기가 오는 거 아닌가?“

한호가 농담 삼아 말했지만, 놈들의 목적이 정말 그것일 수도 있었다.

* * *

놈들은 성우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비밀리에 움직였음에도 결국 들킨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협상 요구가 들어왔다.

“분명 속셈이 있을 겁니다. 협상 자체가 목적이 아닐 거예요.”

민흠은 협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애초에 50명을 학살하고 협상을 요구했던 놈들이었다. 그 이후에는 크루세이더 팀이 전멸했다.

“그래도 협상 테이블에 나가보실 겁니까?”

“그래야죠.”

성우 역시 협상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놈들의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혹시 함정일 수도 있으니 협상 장소 주변에 광역감시팀을 최대한 배치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놈들의 시선이 분사된 사이에 크루세이더 팀의 생사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겠군요······.“

협상 장소는 영등포역과 남산의 중간 지점으로 볼 수 있는 용산역이었다. 성우 일행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용산역으로 이동했다.

끙— 끙끙—

그런데 ‘미르’가 성우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문제였다. 결국, 지수가 안아서 재운 뒤에야 겨우 따로 움직일 수 있었다.

“깨기 전에 얼른 가세요. 저도 얘 데리고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게요. 문제 생기면 바로 갈 수 있게요.”

초월적인 감각을 지닌 지수가 바로 옆에 있어 주는 게 가장 든든할 테지만, 당장은 미르 녀석을 얌전하게 묶어 두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새끼 드래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놈들이 작정하고 노릴 수도 있다.’

저 작고 연약한 녀석을 지키면서 싸우는 건 정말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나 번거롭군.’

갓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한 걸까? 성우와 조금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 문제였다. 빨리 자라서 독립성을 가지길 바랄 뿐이었다.

“우린 출발하죠.”

성우는 한호, 민흠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 용산역 광장이었다.

“안녕. 어서 와.”

놈들이 먼저 와 있었다. 흰색 샤프카를 쓴 여자가 일행을 맞이했다.

그 뒤로 덩치 큰 남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죄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안 봐도 보드카였다.

‘저들이 시베리아의 사냥꾼들이군.’

그 추운 동네에 사는 거친 남자들이라는 게 대번에 느껴졌다. 놈들이 저지른 어떤 문제 때문에 무려 영하 26도까지 내려간 상황이건만, 그들 중 몇몇은 덥다는 듯 웃통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어디에 있지?’

그런데 정작, 기억 파편에서 본 남자, 러시아 서버 랭킹 1위 악마 드루이드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놈이 데리고 다니던 엄청난 크기의 불곰 한 마리가 광장 한쪽에 몸을 뉘고 있었다.

그르르-

바닥에 엎드려 있음에도 족히 버스만 해 보였다. 성우는 우람한 그 모습에 눈길을 빼앗겼다.

‘저 뼈, 괜찮아 보이는데 꼭 갖고 싶다.’

그때, 샤프카를 쓴 여자가 성우의 눈 앞에 손을 흔들어 댔다. 성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마주 봤다.

“이봐, 눈깔 빠지겠어. 나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 어디를 그렇게 보는 거야?”

성우는 순간 ‘네 뼈는 필요 없으니까.’라고 대답하려다가 자제했다.

“네가 이 조직의 책임자인가?”

“아니. 그건 아니야.”

그녀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인 뒤 입을 열었다.

“나는 타타냐, 시베리아 헌터 조합의 동부 조합장이야. 우리 차르(Tsar)는 술 먹고곯아떨어져 있어.”

차르(Tsar)라니, 제정 러시아의 황제를 칭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랭킹 1위인 만큼 거창한 별명을 달고 있었다.

‘중국의 황제나 일본의 검성이나 전부 허례허식에 찌든 놈들이군.’

그나저나 이런 순간에 술을 먹고 자고 있다고? 놀라운 걸 떠나서 오만할 정도의 여유였다.

그게 아니라면 방심을 유도하고 어떤 수작을 부릴 생각일 수도 있었다. 성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게 끌지 않을 생각으로 곧장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협상 요구 사항은?”

“아, 진행이 빠르네? 나는 직함 한줄 정도는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그건 간단해.”

타타냐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의뢰인이 2억 골드를 줬어. 네 목과 한국 서버 전체를 뭉개 버리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2억 골드짜리 싸움이야. 여기서 문제를 낼게. 얼마로 이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

“골드를 요구하는 건가?”

“······얼마지?”

가격을 물은 건 민흠이었다. 광복 길드는 이미 막다른 골목이 내몰린 상태로,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이었다.

“오, 우리 쪽 제시부터 듣겠다? 좋아. 그런데 너무 놀라지는 마.”

“······.“

“물러가는 조건으로 3억, 혹시나 너희의 잠재적인 적대자인 우리의 비밀스러운 의뢰인을 역으로 처단하고 싶다면······ 거기에 3억을 더 얹으면 돼. 총 6억 골드, 가지고 있어?”

그렇게 큰돈은 없을 뿐더러 가지고 있다고 해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의미에서 구미가 당겼다.

‘그럼 지금, 적어도 2억 골드를 가지고 있단 말이잖아?’

하지만 민흠은 조용히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3억이든 6억이든 광복 길드가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응? 둘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래가 성사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둘 중 누구라도 흥정해볼 마음은 없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고만장하고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없으면······ 후······ 어서 도망가. 우리 차르가 일어날 때까지는 도망칠 시간이 있어. 근데, 최대한 멀리 가야 할 거야. 바다 건너, 너희가 그토록 좋아하는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가든지 해.”

타타샤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녀의 검지에 물려 있던 담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럼 몇 달은 더 살 수도 있으니까.”

쩌저저저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발아래, 바닥에서부터 빙판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리석 재질이 순식간에 얼어 붙으며 그 위로 날카로운 얼음이 돋아 났다.

“안 가? 그러면 내가 이 역에 동상 몇 개를 세워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녀의 눈동자가 파랗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일대의 기온이 순식간에 하강했다.

피부가 찢어질 듯 아려왔으며 뒤에 앉아 있던 러시아 남자들 역시 옷깃을 여미기 시작했다.

크루세이더 팀을 통째로 얼려버린 게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성우 씨?”

민흠 역시 살을 찌는 것 같은 추위에 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성우는 달랐다.

그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의 몸에 흑색의 갑주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헬 파이어 갑주’였다.

절그럭一 절그럭一

그의 몸을 휘감은 흑색의 갑주에서 푸른 불꽃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의 발아래까지 다가왔던 빙판이 녹아내리며 서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一

모든 곳에서,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오, 뭐야 너? 네크로맨서 아니었어? 맞잖아! 근데 왜 뜨겁고 지랄이지?”

화염 면역력을 지닌다는 건, 그래서 뜨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의 강력한 열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하나의 버프가 더 추가되었다.

- ‘불의 정령석(상급)’이 당신의 힘에 반응하여 ‘특별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 일시적으로 화염 면역력 상승 (+10%)

* 일시적으로 화염 데미지 상승 (+10%)

성우의 걸음에 따라 사방이 수증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타타냐의 등 뒤, 옷깃을 여미었던 사내들이 다시금 지퍼를 반쯤 내렸다. 그리고 술병을 내려 놓고 무기를 빼 들었다.

성우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웃음을 띠었다.

“나는 조금더 싼 값에 해주지.”

“······뭐?”

“살려 보내주는 조건으로 2억이다.”

“미친 새끼!”

“안 갈 거야? 그러면 나는 동상 대신에······.“

성우의 오른손에 거대한 흑색 낫이 나타났다.

“네 뼈를 세울 거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