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50) 5000일의 끝, 자격 증명 - 2
성우는 민석이 내민 ‘주인 잃은 대검’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아이템 정보가 출력되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바뀐 상태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지배자의 검
- 등급 : 신화
- 분류 : 양손 검
- 효과 : 근력(+10), 공격 대상의 방어 효과를 일부 무시한다. (20%),
- 설명 : 이 검은 드래곤을 깨울 수 있는 열쇠이자 드래곤을 다룰 수 있는 목줄의 상징입니다.
당신이 이 검의 주인이며, 당신의 행적을 통하여 이 검에 ‘새로운 이름’이 부여될 것입니다.
그렇다. 이제 주인이 생긴 것이었다. 정확히는 5000일 만에 주인으로 인정 받은 것이었다.
“그럼 이제······ 알이 부화하는 겁니까?”
민석이 물었고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알’을 꺼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정체불명의 알
- 등급 : 불명
- 분류 : ‘용기사(★★★★★)’ 직업 전용 아이템
- 효과 : 불명
- 설명 : 껍데기를 바라보며 실망하지 마세요. 이 알을 지켜낸다면, 껍데기를 깨고 무언가 나오는 순간, 당신의 운명이 달라질 겁니다.
웅— 웅—
역시나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옅은 진동이 일정 주기로 울리고 있었다. 차가운 돌멩이 같던 감촉은 사라지고 이제는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 ‘정체불명의 알’이 곧 부화합니다.(47:59:59)
단 이틀 후에 드래곤이 부화할 예정이었다. 오래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만······ 막상 앞두게 되니 막막한 기분이었다.
‘드래곤이 태어나면 뭘 먹여야 하지?‘
드래곤은 개나 고양이 같은 평범한 반려동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직업이 용기사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얻게 된 거라 정보가 전혀 없다.’
정석 루트로 드래곤을 얻은 것도 아닌지라, 이렇다 할 매뉴얼 조차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누군가 떠올랐다.
’아, 혜연, 그리핀을 키운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혜연은 그리핀 라이더로서 이계의 생명체인 그리핀, 태풍이를 오래 시간 키워왔다. 그렇기에 정답은 아니더라도 가장 적합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이었다.
“이제 수원으로 돌아가죠. 아, 그런데 구경꾼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성우는 월드 이터와 전투 전,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들을 추격하라고 명령 했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난리통에 두 놈은 도망가고 한 놈을 사로잡았는데, 지금 기절한 상태입니다. 제가 좀, 뒤통수를 너무 세게 내리쳤나 본데······.“
“잘 하셨습니다. 일단 잘 포박해서 수원으로 데리고 가죠.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심문합시다.”
“알겠습니다.”
성우 일행은 대산맥의 왕과 작별한 뒤 곧장 수원으로 이동했다.
알이 부화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 미리 자리를 잡고 안정을 취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 * *
마을은 어느새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었다. 얼마 전부터 계획된 ’외부 성벽’과 ‘마법 포탑’ 건설이 시작된 것이었다.
“바닥에 표시된 칸 안에 차곡차곡 담으면 반장님이 스킬로 성벽을 쌓으실 겁니다. 칸 밖으로만 삐져 나가지 않게 잘 쌓아주세요.”
“어어, 트롤 피를 섞은 벽돌 자재는 이쪽으로! 거기 말고 이쪽이라니까요!“
‘하이 아키텍트’인 무연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인력이 투입된 토목 사업이었다.
무연의 스킬 중에서 ‘자동 건설’ 기능이 있었지만, 그래도 일정 장소에 자재를 옮기는 작업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성우는 가장 먼저, 건설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무연을 찾아갔다.
“잘 되어 가는 것 같네요.”
“아, 오셨습니까? 대전과 일본에서 대규모 물자가 들어온 덕분에 충분한 자재가 확보되어서 꽤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일주일이면 기초적인 틀은 완공될 겁니다. 물론 그 이후에 세부적인 부분까지 점검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발생한 이슈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 근처로 다가가자 경수가 성우를 찾아왔다.
“어제, 작은 생존자 그룹 하나가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한 서른 명 정도인데, 현재 결계 밖에 구류 중입니다. 그런데 성우 씨와 아는 사이라고 하더군요.”
“저를 안다고요?”
“네. 평택에서 온 그룹입니다.”
평택이라면 인연이 있는 그룹이 하나 있었다. 지옥의 문이 열렸을 때, 한 학교에서 함께 싸운 이들이었다.
“알 것 같네요.”
성우는 결계 밖에 대기 중인 생존자 그룹을 찾아갔다. 그들은 세계수 진영의 호위를 받고 있었지만, 아직 결계 안으로 출입하는 게 허용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 네크로맨서님! 혹시 저희 기억하십니까?”
역시나 얼굴이었다.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혹시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지······.“
“아닙니다. 잘 오셨습니다.”
현재 큰 공사로 인해 인력이 필요했으며 이들은 검증이 된 이들이었다. 성우는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경수 씨, 이분들 좀 챙겨주세요. 제가 급하게 볼 일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진중하게 인사를 나눌 틈은 없었다. 당장은 드래곤의 알에 신경을 써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 * *
성우는 세계수 앞에서 정체불명의 알을 꺼내들었다.
우-웅- 우-웅-
알에서는 옅은 심장 박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약 43시간 뒷면 알이 부화할 것이었다.
‘이게 부화하면 종족의 기원, 일명 신화 퀘스트의 조건 중 하나는 완성된다.‘
물론, 나머지 조건인 세계수의 ‘완성’ 단계에 도달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세계수(성숙 1단계)가 성장 중입니다. (41%)
세계수는 이제 겨우 성숙 1단계였다. 성숙이 몇 단계까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완성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전까지는 드래곤 관리에 집중한다.‘
당장은 앞으로 태어날 새끼 드래곤이 도움이 될지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골칫거리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정식 루트로 얻은 게 아니니까 어떤 패널티가 있을지 모른다. 주인을 무시해서 삐뚤어진다거나 이기려고 든다거나······.‘
그렇기에 성우는 만발의 준비를 다할 생각이 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무려 드래곤이었으니 말이다.
성우는 혜연을 불러서 드래곤 육성에 관한 질문을 했다. 첫 번째는 먹이에 관한 것이었는데······.
“······어, 머, 먹이요?”
혜연은 당황하며 볼을 긁적거렸다.
“어, 저희 태풍이 같은 경우는 육식성이라서 새끼 때는 고기 같은 거 다져서 줬거든요. 드래곤도 젖을 물리지는 않을 테니까 음, 그렇게 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아, 그리고 포만감이나 영향 상태같은 게, 주인한테 메시지로 뜰 수도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랬거든요. 음,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지 아는 걸 최대한 쥐어 짜내려고 했다.
“아! 맞다! 새끼지만 이게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보이는 대로 때려 부술 수도 있거든요?”
“때려 부숴?”
가장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태풍이도 집 안 장판이고 가구고 뭐고 죄다 걸레짝을 만들어 놨는데, 아오!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튼, 드래곤이면 더 하지 않을까요? 얌전할 거라고 기대하시진 않는 게 좋을 듯해요.”
“확실히 그런 건 필요하겠네.”
“맞죠? 그렇죠?”
혜연은 하나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게 기쁜 기색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아무리 새끼일지라도 드래곤이었다. 집안을 부수는 걸 넘어서 세계수에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격리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했다. 요람 겸 우리의 개념이었다.
성우는 무연에게 잠시 시간을 내줄걸 요청했다. 성벽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새끼 드래곤을 위한 둥지를 마련해야만 했다.
성우의 부탁에 무연 역시 난처한 기색이었다.
“음, 어떤 요람을 만들어줘야 할까요? 혜연이가 저 태풍이 녀석을 키울 때 옆에서 봤는데, 아주 기가 막힙니다. 눈에 보이는 건 다 박살 내 버리더라고요······.“
무연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핀 역시 야수 중의 야수인지라 새끼 때부터 한 성질 했던 모양이었다.
“말씀대로 새끼지만 드래곤인지라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금방 자랄 수도 있으니 꽤 넓어야 하고, 또 부수고 나올 수도 없는 그런 둥지가 필요합니다.”
“다칠 위험도 없어야겠네요. 최대한 날카롭지 않은 자재로 지 어야겠어요.”
“맞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잠깐 고민 좀 더하고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무연은 급히 설계도 작성에 들어갔다.
한편, 한호의 어머니, 은희는 조리장으로서 새끼 드래곤을 위한 이유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막 태어났을 때는 아직 장이 약할 때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걸 해줘야해.”
은희는 동료 조리사들과 함께 메뉴를 연구 중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한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 근데 얘는 드래곤인데요? 장이 약할까요?”
“응? 드, 뭐? 그게 뭔데?”
“음······ 이 친구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땡깡 부리면 우리 마을이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어요. 아빠가 화투패 쥐고 뒤흔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걸요?”
조리사들이 피식 웃었다. 은희가 한호의 등을 내리쳤다.
“악! 왜요!”
“어휴! 얘는 또 뭔 소리야? 방해만 되니까 저리 가 있어 이놈아!”
“아, 진짠데! 드래곤인데! 악! 악!”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걸 알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요리 솜씨 하나는 확실했다. 뭘 먹여야 할지 불분명하다면 온갖 음식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조리실이 바빠졌다.
* * *
다음 날, 새끼 드래곤을 위한 ‘둥지’가 마련됐다. 무연에게는 ‘자동 건설’ 기능이 있기에 골드만 충분하다면 하루아침에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자동 건설에 총 2백만 골드가 들었습니다.”
“싸게 먹혔네요.”
“그, 그렇죠?”
둥지의 위치는 세계수의 서쪽, 팔달산 산중이 었다. 건물이 많은 곳보다는 산속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더 자라서 날아오를 때, 아무래도 산 위에 둥지가 있어야 더 편하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산 중턱을 평평하게 드러내고 그 위에 원형의 건물을 올렸다. ‘트롤의 피’를 섞은 콘크리트를 재료로 썼는데, 약간의 파손은 저절로 회복되는 기능이 있었다.
“벽 재질 마감 같은 것도 금방 끝날겁니다.”
이어서 경수가 몇 명이 남자들과 함께 무언가를 지고 올라왔다.
“지붕만 있다고 다 집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닥에 깔 것 좀 가져왔습니다.”
매트릭스, 담요, 솜이불 등이었다.
“솜이불은 뻬죠. 분명 찢어질 것 같네요.”
“그렇군요. 아, 그리고 이런 것도 가져왔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가지
- 등급 : 신화
- 분류 : 제작 재료
- 효과 : 몸에 지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깃든다. 재료로 사용한다면 완성도에 따라 상이한 효과가 부여된다.
- 설명 : 자연스럽게 떨어진 세계수의 가지이다. 여전히 강력한 힘이 어려 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축복의 꽃
- 등급: 전설
- 분류 : 약초
- 효과 : 섭취 시 체력과 마나가 급속도로 회복된다. 또한, 10분간, 모든 재생 능력이 향상된다. (50%)
“자라나는 녀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해서요.”
“좋은 생각이네요. 일단 전부 준비해 보죠.”
그렇게 일사불란한 준비와 함께 점점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덧 또 하루가 지났다. 순식간에 D-DAY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정체불명의 알이 부화를 앞두고 있었는데, 성우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팔달산의 ‘둥지’ 건물에 모여 있었다.
“자자,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꼭 필요한 관계자 제외하고 모두 둥지 밖으로 나가세요!”
드래곤의 탄생은 이미 마을 전체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구경을 원했다.
하지만 구경거리로 치부될만한 사건은 결코 아니었기에 경수가 그들을 통제하고 나섰다.
“멀리서 구경하면 안 되나요?”
“이게 구경할 일입니까? 모두 조용히 하고 나가세요. 이제 태어난단 말입니다.”
구경꾼들을 경수에 의해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는 사이, 성우는 알을 꺼내어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정체불명의알’이 곧 부화합니다. (00:01:48)
이제 2분도 채 남지 않았다. 둥지 건물 중앙에는 세계수의 가지가 깔린 요람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성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멀찍이 물러섰다.
“이거, 꼭 불발탄 처리 작업을 보는 것 같네······.“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후······ 우리 실수하는 거 아니겠죠? 고대의 저주받은 악마 같은 게 태어나는 건 아니겠죠?”
“한호 씨, 제발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성우는 정체불명의 알을 품에서 꺼내어 허리 높이의 요람 위에 올렸다.
우우우- 우우우-
이제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진동이 커졌다. 심장 박동은 물론이거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알 내부에서 큰 변화가 진행 중인 것이었다.
그건, 껍질을 밀어내는 힘이었다.
‘나온다.’
성우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쩌저저一
알에 균열이 갔다.
쩌一엉!
그리고 터져버렸다.
“악!”
“뭐, 뭐야?”
알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터에 주민들이 놀라며 물러섰다. 그런데 알이 놓여 있던 곳, 세계수의 가지 위에 아주 작은 검은 생명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끄르르-
“저게······ 드래곤?”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블랙 드래곤의 새끼이거늘, 강아지와 별만 다르지 않은 크기였다. 하지만 그 생김새를 자세히 살핀다면 남다른 품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젖은 조약돌처럼 반질거리는 검은 비늘, 황금색의 눈, 그리고 부드러운 유선형 몸까지······ 마치 아주 잘 조형된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끄-릉!
녀석은 장난감 같은 날개를 천천히 펼치며 기지개를 켰다.
“오오!”
“귀여워!”
그나저나 등장부터 일반적인 부화와 차원이 달랐다. 몸을 감싸고 있던 껍질을 수류탄처럼 튕겨내 버리며 등장한 것이었다.
’성질머리 알만하군.’
성우는 그 모습마저 불안했다.
끙— 끙—
녀석이 샛노란 눈동자를 끔뻑이며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성우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 한국 서버에서 ‘고결한 존재’가 탄생했습니다.
월드 전체에 해당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드래곤의 탄생은 그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성우의 눈에는 더 많은 내용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 ‘블랙 드래곤(해츨링)’은 주인을 통하여 ‘마법’을 습득합니다.
* 압도적인 마법 재능을 가진 종족이기에 높은 등급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또한, 본능적인 응용을 통하여 더욱 강력한 마법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뭐야? 내가 쓰는 마법을 배울 수 있다고?’
그렇다는 건, 리치가 셋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성우는 우선 눈앞에 태어난 그 작은 생명체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끙— 끙—
녀석은 성우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고개를 바짝 들고 앞발을 슬쩍 뻗 었다. 마치 안아달라고 보채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성우는 섣부르게 접근하지 않았다.
“먹을 것 좀 가져다주세요.”
성우의 말에 은희와 조리사들이 미리 준비된 이유식을 들고 와, 성우의 등 뒤에 잔뜩 깔았다. 마치 뷔페를 차리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특제 분유를 먼저 줘보세요.”
은희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권했다. 성우는 그녀의 말대로 하얀 스프가 담긴 접시를 드래곤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끙!
녀석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꼬리로 접시를 내쳤다. 은희의 특제 분유가 바닥에 엎어졌다.
“어머! 쟤 좀 봐라?”
역시나 성질머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럼 이건 어때?”
성우가 다음 메뉴를 내밀었다. 그건, 전기 통닭이었다. 그림은 쫙 빠지고 살코기는 아주 부드러운 상태였다. 사람의 아이였다면 절대 권할 수 없지만, 파충류의 새끼라면 다를 것이었다.
킁- 킁-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관심을 보이며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어, 먹는다?”
아니었다. 한호의 추측은 틀렸다. 녀석은 먹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 블랙 드래곤(해즐링)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卷屬)됩니다.
“······뭐?”
성우는 눈을 의심했다. 메시지를 잘못 본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통닭이 몸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살을 벗어내고 닭 뼈가 몸을 일으켰다.
덜그럭一
“오오! 뭐야? 발골 마법인가? 크! 치킨 먹을 때 개꿀이겠는데?”
한호의 황당한 추측은 이번에도 틀렸다. 그건 그저, 단순히······ 스켈레톤이 었다.
끄릉!
녀석은 자신이 일으킨 치킨 스켈레톤(?)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마치 놀이를 하듯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앞발을 휘두르고 이빨로 날개뼈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덜一 덜그럭!
치킨 스켈레톤은 어딘가 버거워 보이는 기색으로 드래곤의 품에서 탈출했다.
끙!
그러자 드래곤이 그 뒤를 추격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밥보다 먼저,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모두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한호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 녀석 확실히······ 아빠 닮았네요. 끄, 끔찍해라.”
그렇게 네크로맨서를 닮은 드래곤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