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49) 평양, 황제 사냥 - 1
류경 호텔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마, 말도 안 돼! 폐, 폐하! 이, 이 무슨!”
황제의 보좌관, 리자드맨은 절규했다. 그 거대한 빌딩이 폭삭 무너지며 황제의 침소를 말 그대로 뭉개버렸다.
쿠구구구구-
류경 호텔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열기가 먼지와 뒤엉켜 마치 화산 폭발하듯, 엄청난 풍압이 터져 나왔다.
리자드맨이 어떻게든 다가가려고 했지만, 마치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몰아치는 터에 도저히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콜록! 콜록!”
그런 상황이 몇 분이나 계속됐다.
후우우-
잠시 후, 시야가 서서히 회복되며 재난의 현장의 실체가 드러났다.
평양의 상징물이 한순간에 삭제되어 탁 트인 하늘이 낯설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아래, 콘크리트 파편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회색 산 위······ 푸른 열기를 내뿜는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저건······ 확실하다. 네크로맨서다.”
중국-1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네크로맨서를 알아봤다. 북쪽으로 진격해오다가 꼬리를 말고 후퇴했다던 네크로맨서가 바로 이 자리에 나타났다. 그것도 모자라 류경 호텔을 통째로 찌그러뜨려 버린 것이었다.
“······노, 놈이 어떻게 여기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사주하지 않아도 어차피 결판을 내려는 모양이니, 우리는 일단 몸을 피하자.”
중국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서둘러 멀찍이 물러섰다. 사절로 온 만큼, 네크로맨서와의 직접적인 전투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평양의 몬스터들이 네크로맨서를 제거해주기를 바랄 뿐이 었다.
* * *
류경 호텔의 잔해 위에 서 있던 성우는 발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아직 살아있다.’
헬 파이어 갑주를 입은 그에게는 그저 공기의 흐름으로 느껴질 정도였지만, 인근에 있는 철골이 붉게 달아오르는 걸 볼 때, 이건 무시무시한 열기였다.
“저 말고는 이 열기를 견딜 수 없어요.”
“맞습니다. 발이 녹는 기분이네요.”
성우 옆에 서 있던 민석도 고통을 호소했다.
“분명 이놈을 지키기 위해서 떼 거지로 몰려올 겁니다. 그걸 막아주세요.”
적들의 주력 병력은 빅터가 유인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수비 병력이 있을 것이었다.
“혼자서 가능하시겠습니까?”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가장 큰 무기가 통하지 않으니까 할만합니다.”
샐러맨더, 불의 정령으로 불리는 거대한 도마뱀, 놈의 주력 무기는 분명 ‘화염’이었다. 하지만 성우에게는 통하지 않을것이었다.
“그럼 뒤는 걱정하지 마시죠.”
민석이 주인 잃은 대검을 뽑아 들었다. 어쩌면 오늘로써 자격 증명이 완료될지도 몰랐다.
“역시 저기 몰려오네요.”
민석이 고갯짓을 하는 곳, 평양의 텅빈 대로변을 따라서 적지 않은 수의 몬스터가 몰려오고 있었다.
‘확실히 수준이 다르다.’
주력 병력이 빠져 있다고 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드레이크’도 있었다. 그것들이 브레스를 뿜는다면, 단숨에 수십 마리가 녹아내릴 것이었다.
’하지만 저기에 신경 쓸 틈은 없다.’
쿠구구구-
어느새 발아래에서 엄청난 진동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저놈들 때깔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늘 좋은 뼈가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민석이 너스레를 떨며 앞장섰다.
푸르르-
이어서 듀라한이 뒤따라 나갔으며 잔해 뒤에서 언데드 군단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가 땅 위로 부상했다. 적어도 1시간 동안은 그 어떤 돌파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성우는 시선을 돌려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쿵! 쿵! 쿵!
간헐적으로 울리는 충격······ 무언가 잔해를 해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콰과과과과!
한 줄기의 화염이 잔해를 뚫고,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엄청난 무게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단숨에 밀어내며, 지하에서부터 긴 터널이 뚫렸다.
“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그곳에서부터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내 궁궐을······ 이따위로······.”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마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무쇠 같았다.
그리고 허리까지 늘어지는 장발은 적색이었으며 붉은 눈동자는 세로로 찢어져 성우를 후빌 듯 노려보았다.
“네놈이구나? 하아······.”
맹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성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더워 보여서 환기 좀 시켜준다는 게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
“······네가 누군지 묻지 않겠다. 불태워서 잿더미로 만든 뒤에 내 침소에 깔아둘 거다.”
- 필드 보스 몬스터 ‘샐러맨더’가 출현했습니다.
그가 바로 샐러맨더였다. 한때는 드레이크 종족이었지만, 남다른 힘을 얻은 뒤, 대산맥의 왕처럼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는 듯했다.
“말이 없는 건 좋네. 우리 동네 어떤 왕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거든.”
성우가 샐러맨더 앞으로 다가갔다.
놈이 숨을 내뱉을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하아······ 그게 네 유언이라면 불에 타는 순간부터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거다.”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개의 불이 마주 보았다.
이곳의 승부로, 메인스트림이 조기 종료될 예정이었다.
* * *
한편, 지수와 한호는 대산맥의 왕의 인도를 따라서 어느 동굴 앞에 섰다.
“바로 이곳이오.”
“여기가······ 뭔데요?”
한호의 물음에 대산맥의 왕이 턱을 긁적거렸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이산맥의 혈관 속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할까? 산의 정기가 모이는 곳인데, 이곳을 통해서 백두대간 어디로든 순식간에 갈 수 있지.”
백두대간은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뜻했다.
“그러니까 여기로 들어가면, 바로 북한 서버 어딘가를 향해 순간 이동해서 선배를 지원할 수 있다는 거죠?”
“바로 그거라네.”
왕은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두 마리의 호걸이 삶은 감자를 짊어진 채,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한호는 어두침침한 동굴 안을 쓱 둘러보고는 떫은 입맛을 다셨다.
“저, 지수 누님? 근데 여기 호랑이굴 아니에요? 혹시 우리 이대로 납치 돼서 잡아 먹히는 거 아니죠?”
“글쎄요? 그런데 감자도 제대로 못 삶아 먹는 호랑이한테 잡아 먹힐 걱정을 하세요?”
“혹시 모르는 겁니다. 저거 다 연기일 수도 있잖아요? 갑자기 돌변해서 떡 하나······ 아, 같이 가요!”
그렇게 지수와 한호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내부는 싸늘했다. 그리고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왕이 검지를 들어 올리자 작은 불꽃이 하나 피어올랐다. 그걸로 어렴풋하게나마 어둠이 밝혀졌다.
“저도 꺼낼게요.”
이어서 지수의 어깨에서 푸른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오! 이제 좀 밝네요. 아, 누님? 저번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건 대체 뭐예요?”
지수가 어깨 위에서 날아다니는 불꽃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아, 저번에 산에 혼자 떨어졌을 때, 히든 퀘스트로 얻은 거예요. ‘도깨비불’이라고, 귀속 아이템이죠.”
성우가 사용하는 ‘헬 파이어 갑주’처럼, 한 번 사용하면 사용자에게 귀속되어 떨어지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오, 아이템 효과는요?”
“기를 발산하는 스킬을 대폭 강화해 줘요.”
“아하? 그래서 막 검기가 수십 발 나가고 그랬구나? 사실 저도 한 번에 단검 한 번에 여러 개 던질 수 있어서 그게 얼마나 짜릿한지 압니다.”
“아, 뭐, 비슷하죠.”
그 대화를 끝으로 일행은 급격한 내리막길 구간을 마주했다. 까마득한 불빛이 닿지 않았기에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모두 발 조심하시오. 말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이니 말이오. 그리고 너희들은 처음으로 잘 삶아진 감자를 떨어뜨리지 않게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라.“
“ 예!”
동굴은 아주 깊었다. 그리고 험했다. 발 디딜 곳도 거의 없을뿐더러 습기때문에 매우 미끄러웠다. 그 때문에 근육이 절로 긴장되어 금방 피로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래서! 이렇게 감자를 잔뜩 쪄온 거요. 힘든 길에는 언제나 간식이 필요한 법! 이제 내 큰 계획을 알겠소?”
왕은 감자를 씹으며 내리막을 걸었다. 전혀 타당하지 않아 보였기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굴 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부터 푸른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다 왔군.”
어느새 동굴의 밑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잔잔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호수인가?”
동굴 바닥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하수가 고여서 만들어진 웅덩이처럼 보였는데, 그게 푸른 빛의 진원지였다. 물 자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와······.“
내려와서 살펴본 동굴의 바닥은 너무나 신비로웠다. 코발트블루로 빛나는 호수는 물론이거니와, 어디선가 내려온 나무뿌리가 마치 커튼처럼 호수 주변에 잔뜩 흐드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뿌리 사이 사이에 온갖 아이템들이 마치 열매처럼 뒤엉켜 있었는데,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처럼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오? 이 아이템은 전부 뭐예요?”
한호가 박물관에 온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물었다.
“사실 여긴 내 보물창고이기도 하네. 대산맥을 지켜내면서 모은 것들인데, 꽤 쓸만한 게 있을 거라네. 필요한 게 있으면 하나씩 골라보게나.”
“어? 정말 주시는 거예요? 그래도 돼요?”
“지금은 보물이 아니라 무기가 필요할 때니까.”
왕은 그렇게 말하며 두꺼운 뿌리를 헤치고 그 사이에서 무언가 끄집어냈다.
“좋아. 오랜만에 잡아 보는군.”
그건 날이 푸른색을 띠는, 엄청나게 거대한 도끼였다. 왕의 무기인 듯했는데, 아무리 봐도 인간 체구로 다룰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왕은 가볍게 들어 올려 어깨에 얹었다.
그 생김새 역시 범상치 않았다. 긴 손잡이에는 청룡 두 마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것들은 손잡이를 타고 굽이치며 올라가다가 날에 닿는 순간 부터양각으로 튀어나오며, 각기 하나의 날에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어디 보자······ 간지 나는 게 뭐가 있을까······.“
그 사이, 한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
가장 굵직한 뿌리 사이에 나무 밑동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웬 항아리가 하나놓여 있었다.
“응? 이건 뭐지?”
그때, 대산맥의 왕이 한호 앞을 가로 막았다.
“어허, 그건 안된다네.”
경계가 가득한 표정이 었다.
“뭐길래요?”
“술일세.”
“······술? 에이 뭐야.”
한호는 곧 흥미를 잃고 돌아섰지만, 지수는 그제야 흥미가 생긴 표정이었다.
“술이요? 설마 저거?”
“맞소. 낭자가 가져다주신 내단으로 술을 담은 거요.”
태백산맥의 내단, 성우가 가지고 있던 걸 지수가 가져다준, 그 물건이었다
“그 지독한 물건은 지금도 산의 정기를 머금으며 날로 진해지는 중이라오. 자자, 낭자도 빨리 쓸만한 물건을 골라 보시오.”
왕의 재촉에 지수도 아이템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검 한 자루에 눈에 갔다.
“낭자, 역시 물건 볼 줄 아시는군?”
그러자 대산맥의 왕이 끼어들더니 곧장 검을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이게 정답이오.”
“아직 안골랐는······.“
“자, 사양 말고 받으시오.”
그가 지수에게 검을 내밀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울프베르흐트
- 등급 : 전설
- 분류 : 한손 검
- 효과 : 적을 벨 때마다 근력과 민첩성이(+1)만큼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최대 10 중첩) 최대치에 도달할 경우 5분간 ‘전장의 노래’ 효과를 얻습니다. (상태 이상에 면역이 생기며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분명 좋은 선택일 거요.”
그는 뭔가를 알고 이 선택을 권유한걸까? 지수의 눈앞에 예상하지 못한 메시지 한 줄이 떠올랐다.
- 일정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세계수의 주민(특별한 정체성) + 전설 등급의 바이킹 소드(전사의 증표) + 알수 없음(추가 획득 필요)
“······이건?”
대산맥의 왕이 당황한 지수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시오.”
“알겠어요.”
대산맥의 왕, 이 존재는 생각보다 멀리 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걸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한다는 걸, 지수는 알고 있었다.
한호는 고심 끝에 웬 철제 투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친위대의 정신’이라는 아이템이었는데, 일정 시간 자신과 동료 1인에게 방어막을 걸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도적이 판금 투구라고요?”
지수는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만, 한호는 저 홀로 뿌듯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멋지죠? 으하하! 프리스트와 도적과 아수라에 이어서 탱커까지 해볼까 합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대산맥의 왕이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그 모습을 본 한호가 주춤거리며 물러 섰다.
“어, 어라 설마 잠수해서 가는 거 아니죠? 수영할 줄모르는데······.“
“이건 보기와 다르게 물이 아니라네. 산의 정기가 모여서 만들어진, 일종의 응축된 ‘기’라고 보면 되는데, 내가 여기에 공간 이동을 위한 주문을 걸어 문을 열 걸세.”
호걸 둘이 왕을 따라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지수까지 물속으로 들어가자 한호도 어쩔 수 없이 동참해야만 했다.
그렇게 모두가 몸을 담그자, 왕이 왼손을 들어 올려 입에 가져다 대며 숨을 내뱉었다. 놀랍게도 숨결은 푸른 일렁임으로 실체화되었다. 그리고 그걸 호수 위로 떨어뜨리는 순간······.
- ‘산맥의 길’이 열립니다.
눈앞에 파란색으로 번쩍였다.
- ‘연결된 지역(두류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낯선 산골짜기에 서 있었다. 북한 땅이었다.
“어? 뭐야? 벌써 끝이에요?”
“뭘 더 기대했나?”
“아뇨 딱 좋은데요? 난 또 막 울렁거리고 그럴 줄 알았는데 나쁘지 않네! 가서 몬스터 우두머리 때려잡으러 갑시다. 선배 혼자 다 잡기 전에 빨리 가는 게 좋을걸요?”
한호가 호기 넘치게 외쳤다.
그러는 사이, 대산맥의 왕이 지수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 미리 언질을 못 드려서 미안하네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호걸이 짊어진 보따리에서 삶은 감자 하나를 끄집어냈다.
“사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몬스터의 황제, 그놈들이 전부가 아니오.”
“······네?”
대산맥의 왕은 감자 하나를 입에 집어넣은 뒤, 우물거리며 말했다.
“······월드 이터.”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전장 위에 이름을 올렸다.
“나는 이번에 한바탕이 벌어지면 그 놈이 나올 거라고 보고 있소.”
* * *
샐러맨더가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 순간, 그의 팔목에서부터 불길이 일어나며 브레스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과!
콘크리트가 잔해가 불길에 휩쓸리며, 마치 모래사장을 뒤집어 까는 것처럼 긴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위에 한자루의 검에 박혀 있었다.
치지지지一
마치 마그마로 빗은 것처럼 시뻘건 대검이 땅 위에 박힌 채, 회색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었다.
이내, 그의 손으로 그 물건이 날아왔다.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엄청난 크기의 대검이었다.
“갈가리 찢은 다음에 부위 별로 불에 구워주마.”
성우는 그를 상대로 그림리퍼가 아닌, 낯선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건 평택에서 ‘붉은 기수’를 잡고 얻은 ’플레일’이었다.
붕!
놈이 먼저 달려들었다. 머리 위에서부터 대검을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성우는 뒷걸음질 치며 그 공격을 피했다. 놈의 대검은 콘크리트 잔해를 강타했다.
쾅! 퍼어어어一
땅에 내리꽂히는 순간, 전방으로 화염이 치솟으며 일대의 모든 걸 녹여버렸다. 성우는 옆으로 몸을 던지며, 화염을 피해내기 위해 큰 궤적을 움직였다.
그건 의도된 연출이었다.
붕!
놈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사슬 끝에 철퇴가 달린 플레이의 구조상, 가드 형식으로 막을 수 없기에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같은 방향으로 휘둘러야만 했다.
쩡! 쩡!
단 두 합을 마주쳤을 뿐인데, 성우는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성우도 근력에서는 꿀리지 않는 편이거늘, 샐러맨더는 격이 달랐다.
한 번 부딪칠 때마다, 마치 줄에 묶인 공을 치는 것처럼 성우의 플레일이 뒤로 날아갔다가 돌아왔다.
‘힘이 엄청나다.’
오죽하면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성우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단 3합이 남았다.
쩌一엉!
‘2번 남았다.’
이어서 놈은 바닥을 내리찍으며 화염 세례를 퍼부었다. 성우는 역시나 과장된 움직임으로, 그 화염을 간신히 피해내는 척을 했다.
놈은 그 틈으로 파고들어 대검을 찔러넣었다. 배가 꿰뚫리기 직전, 성우의 플레일이 대검의 끝자락을 내리치며,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쩡!
이번에는 성우 차례였다. 플레일을 빠르게 한 바퀴 돌리며 들어 올려 놈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놈은 엄청난 탄력으로 대검을 들어 올려 방어했다.
쩌一엉!
그런데 그 순간······.
촤르르!
플레일이 보라색 사슬로 변하며 대검을 휘감았다. 두 물건은 한 대 뒤엉키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성우의 다른 무기들도 마치 자석처럼 그 위로 끌려갔다.
샐러맨더는 허망한 표정으로 ‘봉인’된 제 무기를 내려다보았다.
“······뭐?”
[아이템 정보]
- 이름 : 투사의 족쇄
- 등급 : 영웅
- 분류 : 둔기
- 효과 : 상대의 무기와 5번 격돌할 시 ‘투사의 족쇄’ 스킬이 발동됩니다. 자신의 무기와 상대의 무기를 5분 간 ‘봉인’합니다.
“맨손 격투 좋아하나?”
쩍!
놈이 당황한 틈을 타, 성우의 발차기가 놈의 무릎에 적중했다.
“큭!”
놈은 휘청거리면서도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성우는 그 자리에 없었다.
성우는 놈의 등 뒤,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뼈로 만들어진 너클이 채워져 있었다.
“······어, 언제!”
성우는 놈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성우의 그림자가 일어나며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쩍! 쩍!
총 2번의 주먹질이 놈의 옆구리에 적중했다.
“컥!”
무려 황제라는 칭호를 얻은 몬스터이기에 신체의 내구성은 엄청났다. 하지만 성우 역시 신격을 얻은 플레이어였기에 절대로 만만치 않은 파괴력이었다.
그렇게 놈이 휘청거리는 사이에 성우는 또 다른 공세를 준비했다.
- ‘황혼 습격’이 시작됩니다.
놈의 바로 앞에서 성우의 몸이 검은 연기에 뒤덮였다.
구우우우-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놈의 몸뚱이를 집어삼켜, 바닥 위로 내리꽂았다.
다음 순간, 놈의 몸은 20개의 ‘망령의 손’에 구속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성우가 우뚝 서서······.
쩍! 쩍! 쩍!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북한 서버의 ‘황제’는 망령의 손에 묶인 채 사정없이 두드려 맞았다.
쩍! 쩍! 쩍! 퍽!
단 10초였지만, 샐러맨더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무너진 호텔에 깔렸을 때보다 더 큰 데미지가 들어간 듯 보였다.
결국, 놈의 몸이 풀썩 꺾였다.
“커, 커으······ 네놈······ 퉤!”
샐러맨더는 엎드린 채 선지피를 뱉어 냈다.
“······정체가 뭐지?”
“아까는 궁금하지 않다더니 그 잠깐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나 봐?”
성우가 빈정거렸고 놈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두 눈에는 여전히 살기가 담겨 있었다. 아직 싸울 의지를 잃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네 놈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뭘 원해서 여기에 온 거지?”
“내가 원하는 건 딱하나다.”
성우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네 뼈.”
놈의 눈에 담긴 강렬한 살기 속에서, 어렴풋이 경악감이 피어올랐다.